공실의 도미노


공실공실


이곳은 시내 중심가의 가장 중심 건물의 일요일[2024년 4월 20일] 정오의 모습이다. 상가는 대부분 공실이고 이 시간에 우르르 다니던 사람들 역시 거의 사라졌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는 말이지.


생긴 이래 이렇게 공실이 많고 사람이 이토록 없었던 적은 없었다. 모두가 처음 겪는 일에 놀라고 있지만 일상이 지속되니 그것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음악을 듣고 티브이를 보고 밥을 먹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으니까 자영업의 몰락이 무섭기는 하지만 일상이 되어 버리면 그것대로 흐름에 딸려 흘러갈 뿐이다.


현재 상가 공실률이 급증하고 있다. 광수네 복덕방 대표 이광수 애널리스트의 말을 빌리면, 지난해 4분기 기준 전국 소규모 매장 공실률이 7.3%로 역대 최고치라고 한다. 자영업자들의 폐업이 증가하고 있다. 이게 공식 통계인데 이광수 대표는 비공식적이지만 15%로 보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몰락 수준이다.

출처: 광수네 복덕방


신촌 같은 곳은 18%(5분의 1이 비었다는 말), 장안동은 15% 정도라고 한다. 이 엄청난 공실을 이미 사람들은 체감하고 있다. 위의 사진에서처럼 비어있을 수 없었던 매장이 전부 공실이 되었다. 심각한 상황이다.


출처: 광수네 복덕방


이렇게 폐업이 많고 공실이 많은 이유는 자영업자들의 몰락 때문이다. 매출이 줄고, 무엇보다 대출을 받았던 타격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전체 대출액이 천조억이 넘는다고 한다. 천조억? 이런 액수가 도대체 얼마일까.


장사가 잘 된다면 매출도 늘고 대출도 갚을 수 있는데 장사가 전혀 되지 않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대출을 끌어서 쓴 자영업자들은 이자도 못 내는 형편이니까 폐업이 줄줄이 이어진다. 자영업자 1인당 대출액이 1억 원도 추정된다고 한다. 초반에 투자비용이 많이 든다. 인테리어부터 해서 각종 물품비용까지.


자영업자들은 부채를 갚는 것만으로도 돈을 번다고 생각을 한다. 그래서 대체로 영차영차 열심히 같은 루틴으로 매일 장사를 한다. 부채를 갚는 돈은 자신의 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돈을 벌어들인다, 그래서 부채를 다 갚고 나서는 나는 돈을 번다고 생각을 한다.


자영업자의 운명은 돈이 벌리지 않더라도, 손님이 별로 없더라도 늘 나가서 매장을 지켜야 한다. 그래야 한다. 휴일이라서 쉬고, 주말이라서 쉴 수 없다. 그러니 국힘 전 비대위원장이 자영업자들에게도 출산 휴가를 준다는 말은 터무니없는 말일뿐이다. 주인이 며칠 나오지 않으면 사람들은 그 매장은, 그 가게는 장사를 안 하는구나,라고 생각을 하고 발길을 돌려 다시는 오지 않는다.


자영업을 이용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소득이 줄어들었다. 그래서 지출이 줄어들었다. 경기가 마이너스인데 자영업이 줄 폐업을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20%의 일하는 사람이 자영업이기 때문에 자영업이 안 좋아지면 실업률이 증가하고 민간소비가 감소하게 된다고 이광수 대표는 말했다. 자영업자 중에서는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 즉 직접 일을 하는 사람들이 75%가 된다. 직원 없이 부부라든가 주인이 직접 하는 경우를 말한다. 영세업자다. 이 75%가 무너지면 실업자가 급증하고 경제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만약 자영업자들이 장사가 잘 되면 자영업자 부채율이 줄어든다. 그렇게 되면 금융 문제가 해소되고, 자영업자가 영업이 회복이 되면 실업자도 증가하지 않게 되고, 공실률도 감소하게 된다. 즉 부동산 시장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자영업자는 아니지만 지금 중소건설사가 월간 100개 이상 문을 닫고 있다고 한다. 위태위태한 전선 위에 놓인 사람들이 있고, 그 밖의 사람들로 나뉜다면 나는 어디에 서 있는 걸까.



요즘 아이들은 자라면서 이전에는 신경 쓰지 않았던 부분까지 신경을 쓰며 살아야 한다. 위에서 말한 경제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천재지변까지 인간의 삶을 고통스럽게 한다.


지진도 많아졌다. 8, 90년대 누가 지진에 대해서 신경을 쓰며 살았을까. 지진이라는 볼케이노와 단테스피크 같은 영화에서나 볼 법한 천재지변의 단어였다. 하지만 포항지진으로 집들이 무너진 이후 우리는 지진이 오면 신경이 날카로워지며 스트레스를 받는다. 얼마 전에 대만에도 엄청난 지진이 왔고 그 이전에는 아이티에 대지진으로 섬나라가 초토화되었다. 이제는 휴대전화로 매일 크고 작은 지진의 정보를 받아 보고 있다.


대만 같은 경우는 7.0이 넘는 대지진이 났지만 인명피해는 그에 비해 크지 않다. 대만은 지진이 굉장히 많이 일어나는 나라다. 그러다가 1999년 9월 21일에 7.3의 대지진으로 2,415명이 사망했고, 11,305명이 부상을 당했고, 29명이 실종되었고, 주택만 51,711채가 붕괴되었다. 그 사건을 대만에서는 921 대지진이라 부른다. 그 뒤로 대만은 모든 건물이 강진에 대비를 했다. 그 덕분에 이번 7.0이 넘는 대지진에도 인명 피해가 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은 지진, 폭우, 폭염에 대해서 예전처럼 나 몰라라 하며 지낼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자연이 주는 경고를 위해 각 가정에서는 아이들을 위해서 물품을 구비해야 하는데 그에 따른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앞으로 더 벌어질 것이다.


또 미세먼지를 이제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광고에서도 아이들이 하늘은 황토색으로 그리며 하늘색이라고 했다. 봄에는 황사도 심하다. 황사가 이토록 심하다고 예전에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리고 지금 아이들이 대학생, 성인이 되면 위에서 말한 경제적인 부분을 체감하면서 지내야 한다. 얼마 전부터 인공지능이 인간 생활에 틈입하게 되었다. 인공 지능을 가진 로봇이 서빙을 보는 식당이 늘어가고, 주유소는 전부 셀프로 바뀌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예술하는 쪽의 사람들만 살아남고 과학이나 제조업에 종서하는 사람들이 전부 몰락한다고 했지만 인공지능 쳇이 등장하면서부터 딥페이크, 영화, 각본, 소설, 시까지 인공지능이 인간을 능가하게 되어서 예술 쪽이 불안하게 되었다. 그만큼 현재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입지가 너무 좁아질 것이다. 그리고 성인이 된 아이들은 경쟁에 견디지 못하고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외국인들은 한국으로 취업을 위해, 살기 위해 매년 들어오는 수가 늘어나고 있다. 내가 사는 도시의 구에서도 외국인들이 너무 많아서 기사에 나기도 했다. 한 구역에서는 지나다니면 외국말을 더 많이 듣는다. 중국말과 동남아시아 쪽 말들. 아직 그들은 힘든 일에 몸을 아끼지 않고 뛰어든다.


아무튼 시내 중심가의 공실 상태를 보며 난생처음 조금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이들이 후에 어른이 되었을 때는 이런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게 될 수 있게 만드는 사람들은 정치인들인데.....


밑의 기사는 대구 매일신문 기사인데 지금은 닫혔다. 매일신문에서 이런 기사를 낸 걸 누군가 싫어해서인지 지금은 들어가지지 않는다.

근데 우리 금쪽이 대통령 '2036 서울올림픽' 유치 직접 나선다고 2022년에 불굴의 의지를 보였는데 지금은 이러지 않겠지ㅠ 이 현실이 그저 꿈이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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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콜리에 마요네즈는 이상하지 않지



이상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아무래도 사람들은 어려워서 못 하는 게 아니라 쉬워서 안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하는 건물 화장실에 [문을 닫아 주세요]라고 써 놨지만 문을 닫지 않는다. 문을 닫는 게 어려워서 못 하는 건 아니거든, 쉬워서, 너무 쉬어서 안 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러는 건 아니다. 만약 사람들이 전부 문을 닫지 않는다면 받아들이고 내가 일일이 닫겠지만 다 그러는 게 아니다. 다수보다는 소수가 절대적으로 문을 닫지 않고 나온다. 늘 그렇게 하는 사람이 언제나 그렇게 할 뿐이다.


그게 어려운 일은 아닌데 절대 닫지 않는다. 마치 닫으면 자신의 자존심 같은 것에 금이 간다고 여기는 것처럼 말이다. 화장실을 나오면서 문을 닫는 일이 어렵다면 이 세상은 너무나 어려운 일들로 가득 차서 사람들은 서로 미워할 것이다. 미움이란 증오를 불러일으키고, 증오는 공격성을 드러내고 결국 망하는 꼴이 되겠지.


쉬우니까 해봐,라는 말은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쉬우니까 사람들은 하지 않는다. 쉬우니까 나중에 언제라도 하면 된다는 얄팍한 생각을 가지게 된다. 쉬우면 당연히 성공할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또 이렇게 쉬운데 자신 혼자 이 쉬운 걸 성공하지 못하면 타인에게 비방을 들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있다. 그런 불안이 쉬워서 안 하는 것에 가득 붙어 있는 것이다.


[얼마 전의 일인데 일방통행으로 차를 몰고 가고 있었어. 그 도로는 한 300미터 정도 되나, 반 정도 왔을 때 저 앞에서 차가 오는 거야. 나는 상향등을 깜빡 깜빡였거든. 근데도 계속 오는 거야. 마주하고 보니까 그걸 썼더라고. 선캡. 김여사더라. 양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절대 비켜주지 않을 것처럼 가만히 있는 거야. 일방통행이라고 했지만 김여사는 그냥 운전대를 잡고 나와 대치를 할 뿐이었어. 나도 더 이상 말하기 귀찮아서 신호 때마다 잠깐 읽으려고 차에 둔 짤막한 소설책을 집어 들어서 봤지. 그리고 내 뒤로 여러 차들이 온 거야. 차들은 빵빵 거리고 난리가 났지. 차들이 계속 빵빵 거리니까 일방통행 도로의 양 옆의 상가 사람들까지 나왔지. 김여사에게 여기는 일방통행이니 차를 뒤로 빼라고 해도 꼼짝도 하지 않았지. 여기저기서 이해 못 하겠다는 소리가 나왔고, 끝내 경찰에게 신고를 했어. 그리고 경찰이 와서 김여사를 끌어내렸는데 김여사는 그때에도 버티더라고, 결국 경찰이 김여사를 차에서 내리게 해서 여기는 일방통행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왜 차를 뒤로 빼지 않았냐고, 도대체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냐고 하니까 자신은 후진은 해 본 적이 없어서 그렇데. 그저 전진만 할 뿐이다, 오직 앞으로만 갈 뿐이다! 참 좋은 미래지향적인 생각이야. 후진도 못하는 사람에게 운전면허증이 나오는 것을 그때 처음으로 의심해 봤지.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경찰이 차를 뺐지. 김여사는 뭐랄까 사람들에게 욕을 많이 들어도 아무렇지 않더라고. 그래 너네는 짖어라, 같은 모습이었어. 욕을 많이 들었나 봐. 정말 아무렇지 않더라고. 그 자세에서는 나는 내일에도 앞으로만 갈 거고, 내가 가려고 하면 일방통행이라고 역주행을 할 거거든, 같은 분위기가 흘러나왔어. 물론 나만 그렇게 느낀 거겠지만 말이야]


강변을 조깅을 하다가 산스장 같은 강스장에서 몸을 푼다. 근데 거기서 허리 돌리기를 하던 한 아저씨가 가래가 끓어오르니 그 앞에 퉷 뱉는 것이다. 한 번은 그렇다고 해도 몇 번이나 가래를 뱉는 것이다. 3미터만 나가면, 고작 3미터만 나가면 강변이라 풀숲에 뱉어도 될 텐데 모두가 운동하는 거기에 가래를 계속 뱉는 것이다. 입을 꿰매어버리고 싶더라고. 누가 운동하다가 가래 뱉은 자리에 넘어지기라도 해 봐라. 정말 상상하기도 싫다.


몇 걸음 나가서 가래를 뱉는 게, 그게 정말 어려운 일일까.

쉬워서 사람들은 하지 않는 것 같다.

어려워서 못하는 게 아니라 쉬워서 안 하는 것이다.

그런 이상한 사람들이 너무 많은 거 같다.


에쿠스를 모는 어떤 아저씨는 인도로 차를 올려 주차를 하려고 했다. 근데 전봇대 옆에 근처에서 내놓은 쓰레기봉투가 있었는데, 에쿠스가 인도로 올라와서 쓰레기봉투를 밟은 것이다, 봉투가 다 터져서 그 안의 쓰레기가 다 봉투 밖으로 나왔는데 그냥 아무렇지 않게 가버렸다.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쳐다보고 있는 내가 있음에도 뭐야? 같은 표정이었다. 한 60 중반정도로 보이는 아저씨들은 대체로 고집이 센 거 같다. 내가 한다는데 뭐? 같은 분위기가 몸에 가득 배어 있는 거 같았다.


그리고 가장 이상한 사람은 종교인이다. 특히 내가 아는 기독교인. 나는 신은 없다고 생각하는 인간에 속한다. 만약 신이 있다면,라고 해서 쓴 글도 많다. 가장 간단하게 하느님이 있다면 하느님을 자신과 동격으로 놓고 사람들에게 말하는 전광훈이라든가, 그간 입에도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신도들을 유린한 목사 놈들을 가만 내버려 둔다는 게 신을 믿지 않는 나로서는 하느님의 존재는 없다고 본다. 기독교인 대부분이 하느님이 자신 옆에 왔다고 말하는 개소리를 늘어놓는데 참 웃긴 소리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신은 잘못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신을 믿는 신도들 역시 잘못은 없다고 생각한다. 없는 신을 만들어서 인간 형상화 시켜 중간에서 신을 믿게 만드는 중간자들이 나쁜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내가 아는 교인도 교회에 나가면 세상 착하고 나긋한 말투에 친절하다. 너무나 사람 좋아 보인다. 그런데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는 화를 자주 낸다. 짜증도 가장 그러지 말아야 할 옆사람에게 다 풀어 버린다. 그럴 때 이게 뭐지? 하게 된다. 제일 사랑하고 온화하게 대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고 타인들에게는 그저 온화할 뿐이다. 이거 왜 이러는 걸까. 너무 이상하다. 교회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지 못해서 밖에 주차를 했을 때 그 공간이 타인의 주차공간인데 차를 빼달라고 연락하면 연락도 안 되거나 연락이 되면 적반하장의 경우가 온라인에 많이 있다.


이렇게 이상한 교인들 대부분 어른들이다. 아이들이나 청소년들은 그러지 않는다. 이상한 교인들은 전부 어른들이다. 사람들은 청소년 범죄에 대해서 큰일이다, 문제다, 세상이 말세다, 같은 말을 하는데 뉴스를 장식하는 사건 대부분이 어른들이 저지른다. 청소년들이 주식 사기나 전세 사기를 치나? 피를 빨아들이는 악독한 범죄는 어른들 뿐이다.


나도 누군가의 눈에 이상하게 보이겠지. 이상한 나라에 이상한 사람이 많은 건 정상일지도 몰라. 그러나 정상이 정상이 아니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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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TA 영화는 재미없을 것 같은데 보다 보면 영화라는 세상에 빠져들어 장면 장면을 놓치지 않고 보게 된다. 다큐를 보는 것 같은데 극한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고, 인간을 보는 것 같은데 인간 이면의 괴물을 보는 것 같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신들린 것처럼 연기를 한다. 아니 욕망에 찌들어 갈수록 고독해지는 신이 된다. 이처럼 묵직하게 빨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 전반에 깔리는 음악은 뇌간을 긁고 지나간다. 이토록 팽팽한 긴장감을 주는 음악이 이야기 내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욕망의 근원으로 생겨났다는 것 낱낱이 까발려준다.

석유를 향한 강한 집착의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종교에 빙의하여 미쳐 보이는 폴 다노의 광기가 마치 사자와 호랑이의 대치를 보는 것 같다.

거대한 야망으로 석유를 거머쥐지만 탐욕으로 쓸쓸하고 외롭게 나락으로 떨어진다.

PTA와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조합은 그냥 엄청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현대물보다는 시대극에서 늘 진가를 발휘한다.

다시 봐도 이런 느낌이라니 역시 PTA. 이 영화는 1927년의 소설 ‘오일!‘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석유재벌의 탄생, 그리고 재벌의 자본을 필요로 하는 광기의 종교 이야기다.

제목인 ’데어 윌 비 블러드‘는 출애굽기에서 가져왔다. 피가 되리니, 저주의 문장이다. 피가 상징하는 하는 건 천국이기도 하지만 지옥이기도 하다.

남녀의 쾌락을 욕하지만 가장 신성한 생명의 잉태를 나타내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영화광들이여 PTA의 영화에 빠져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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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에 목마른 사람들에게 딱인 영화다. 제이슨 스타뎀은 나이가 들었는지 언젠가부터 나오는 액션은 힘이 딸리고 성에 차지 않게 되었다.

이 영화에서 제이크 질렌할의 액션은 액션에 목말라 있는 사람들에게 단비 같은 존재다.

전직 유에프씨 선수 출신이 로드하우스에서 일을 하면서 동네 깡패들부터 부동산 기업의 하수인들을 아작내는 이야기다.

보면 그간 액션배우들이 뭔가 모자란 액션에 경종을 울리듯 시원시원하고 강력한 액션을 보여준다.

액션배우들은 액션에서 벗어나면 인기가 없는데 제이크 질렌할은 액션배우는 아닌데 왕왕 액션 영화에 주인공으로 나온다.

예전에 페르시아 왕자에서도 벌크업된 몸으로 액션을 보여주더니 옥자에서는 또 그렇게 나사가 하나 빠진 박사 역을 하더니, 라이프에서는 외계 생명체와 사투를 벌이고, 나이트 크롤러에서는 광기를 보여줬다.

나이트 크롤러는 제작까지 맡아서 해서 그런지 굉장한 연기였다. 아무튼 이 영화에서 제이크의 굉장한 근육을 볼 수 있다. 이 영화는 리메이크로 원작은 1989년 페트릭 스웨이지 주연의 동명 제목의 영화다.

제이크는 이 영화에서 주연을 위해 엄청난 몸을 만드는데 맨즈헬스 채널에 훈련 과정이 영상으로 있다. 대단해.

이 영화의 백미는 실제 유에프씨 선수인 코너 맥그리거가 빌런으로 나와서 둘이 맞짱 뜨는 액션이 시원시원 끝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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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역시 오리올 파울로의 가장 최근의 영화다. 주인공 알리스 굴드로 나오는 바르바라 레니는 한국판 [자백]에서 나나 역할을 원작에서 했던 배우다. 매력적이고 아주 예쁘다.

신의 구부러진 선은 70년대 스페인의 소설가의 동명소설을 영화로 만들었다. 그래서 영화 속 배경도 70년대다. 화면상으로는 70년대 같지 않지만 그렇다.

보다 보면 스페인산 셔터 아일랜드인가 할 정도로 진실과 허구, 진짜와 가짜가 모호해진다. 알리스는 탐정으로 한 사건을 의뢰를 받는다. 굴지의 부자인 델올모 가문의 아들이 정신병원에서 죽었는데 자살로 판명이 난다. 델올모는 알리스에게 자살이 아닌 것 같으니 정신병원에 들어가서 자살이 아니라는 증거를 찾아 달라고 한다.

알리스는 정신병원에 들어가기 위해 환자로 위장을 하고 들어가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정신병원에는 많은 환자들이 있고, 그 환자들과 접촉을 하면서 단서들을 필두로 사건에 가까워진다.

그런데 병원장이 알리스를 진짜 편집증 환자로 취급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알리스 역시 자신이 환자인지 사건을 의뢰받은 탐정인지 모호해진다. 밖에 있는 의뢰인과 남편도 딴 소리를 하고 병원장은 자신에게 계속 주사를 맞힌다.

알리스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믿을 수 없는 환자들 뿐이다. 진실과 거짓이 뒤바뀌고 다시 한번 반전을 거듭하면서 이야기는 미궁 속으로 들어가는 스릴러가 된다.

영화는 150분이 넘는 긴 러닝타임인데도 감독의 재능이 발휘되어서 그런지 지루한 감이 없다. 미스터리 스릴러를 영상으로 표현하면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말을 하는 영화다. 이런 류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보다 보면 윤곽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이 감독의 이전작들이 전부 재미있고 볼만하기에 이 영화도 그 연장선에 있다고 보면 될 것 같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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