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일전에, 코로나가 덮치기 전, 미친놈처럼 오전에 집을 나서서 하늘을 보다가 아? 하며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하루키가 실린 문예춘추 6월호를 너무나 갖고 싶은 바람에 일본으로 건너갔다

하루 동안 내가 일본에서 한 일은 문예춘추 6월호를 구입한 일 뿐이다. 달랑 문예춘추 한 권 사들고 오기 좀 그래서 큐스포스켓 히데를 하나 구입을 했다. 히데는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구입하는 게 더 저렴하다

문예춘추를 갖고 싶은 이유는 하루키의 단편이 실려 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그런데 까막눈인 내가 봐도 단편은 없는 것 같다. 하루키가 쓴 아버지에 대한 에세이가 실려 있을 뿐인 것 같다

하나도 못 읽으면서 갑자기 일본으로 건너가 문예춘추를 구입한 이유를 물어도 나도 잘 모르겠다. 갖고 싶으니까 구입했고 가지고 있으면 뭐 어떻게든 읽히겠지(누가 읽어주든),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대작가로 분류된 하루키도 문예지의 지면을 통해 글을 발표하는 것도 마음에 들고. 이렇게 하루키가 실리면 적어도 문예지를 펴낸 출판사는 망하지는 않을 것 같다. 우리는 종합선물 같은 문예지나 계간지를 사람들이 거의 읽지 않으니 대부분 사라져 가는데,,같은 생각도 들면서 

어느 날 문득 든 생각은 그대로 발길을 돌리게 만든다. 얼마 전에 조사할 게 있어서 요양병원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곳의 한 병실에서는 나이든 사람들이 침대에 일렬로 시체처럼 누워있었다.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저 하루 종일 잠을 잘 뿐인데 아직 살아있는 것이다. 살아있다고는 도저히 믿지 못할 장면이지만 아직 살아있게 만들고 있었다

누워있는 식물인간 같은 노인들은 죽지도 살지도 못하고 그렇게 있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저 분들은 살아있기를 바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발전한 노력으로 겨우 생명을 유지하는 것으로 어딘가의 누군가는 부를 축척해나간다. 목숨이라는 게 소중하지만 죽음 역시 소중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근래에 양을 쫓는 모험을 다시 읽고 있는데 오전에 집을 나설 때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잠깐 읽어서 한 달 정도 읽으니까 거의 다 읽어간다. 2, 3분이 모이면 책 한권을 읽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면 신기한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동이 느끼기에 확실한 것은 그 병원은 연어 같았다. 목적지에 도달해서 무엇을 찾지 못한다하더라도 설령 목적지까지 가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계속 거슬러 오르는 것이다. 대기실의 선풍기며 병원 안에 풍기는 포르말린냄새가 역하지 않았고 그곳에서는 어쩐 일인지 시간이 느릿느릿 움직였다. 물론 느끼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분홍간호사를 따라갔던 복도, 검사실, 침대 그리고 여자의 호감을 사게 만드는 얼굴을 가진 의사와 분홍간호사의 얼굴도 떠올리면서 달리다보니 속력이 너무 빠르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여기는 숲이 아니라 일반 도로가이기 때문에 밤이라 하더라도 산 속을 벗어난 곳에는 어디에도 사람들이 있다. 도로에는 자동차의 행렬이 끊이지 않았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았다.

 

마동이 달리는 속력이 비현실적이다. 대기 중 산소농도가 높아졌다. 공기 속에 산소 함량은 대체로 21퍼센트에 이른다. 마동의 폐로 들어오는 산소는 37퍼센트를 넘어서 40퍼센트에 육박했다. 다윈의 진화론에 따르면 숫자 3이 증가하는데 몇 천 년, 아니 몇 만 년이 걸린다. 진화는 눈에 보이지 않게 지금까지 이루어져왔다.

 

나는 진화적 변이를 하고 있을까.

 

마동은 시간과 공간의 제어가 무의식의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처럼 현상제어가 가능했다. 몸의 질량을 줄이고 지구중력에 단계별로 버틸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평지이다 보니 마음먹고 달린다면 산속을 내려 올 때보다 더 빠르게 달릴 수 있었다. 그렇지만 마동이 빠르게 달리는 모습을 사람들이 휴대전화로 촬영을 하며 SNS에 올린다면 이후의 파장에 대해서 대답하지 못하는 일들만 따라다닐 것이다.

 

마동은 전혀 땀을 흘리지 않은 채 달렸다. 땀구멍에서 조밀한 땀의 흔적조차 이제 보이지 않았다. 다시 어제의 패턴으로 돌아가서 보도위로 올라가 바닷가의 조깅코스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다리는 비슷한 보폭으로 같은 간격을 유지하며 장군이가 있는 곳으로 달렸다. 어제 70대 노인이 사고가 났던 도로를 지나쳤다. 70대 노인의 아파트가 보였다. 아파트는 하나의 완벽한 세계를 이루고 있었고 그 속의 아파트라는 에고가 성벽을 굳건하게 만들어놓았다. 70대 노인은 아파트에 흡수 되었다. 노인은 자신의 존재는 아파트라는 에고에 남김없이 다 빨려 버렸다. 그것이 노인이 완벽하게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믿었고 완벽한 삶을 유지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파트라는 하나의 세계는 노인 자신이자 바로 아파트 자신인 것이다. 마동은 아파트가 있는 도로를 지나쳐 해안가의 조깅코스로 들어섰다.

 

어제와 별반 다름없는 풍경이 고스란히 해변에 있었다. 한여름의 해변은 그야말로 콩나물시루였다. 밤의 해변에서는 내일일 따위는 생각하지 않았다. 밤이 깊을수록 해무가 담배연기를 뿜어내는 것처럼 보였다. 바다는 취하는 일에만 몰두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들이 입을 벌리면 생채기를 가득 머금은 독 번데기가 튀어나와서 서로에게 붙었다.

 

독 번데기를 맞은 상대방은 더 큰 독 번데기를 입에서 뱉어내고 결국에는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그 상처의 벌어진 틈으로 소금을 뿌려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서로에게 독을 뿜어내는 것에 에너지를 소모했다. 사람들은 술에 많이 취했다. 젊은 사람이든 나이가 든 사람이든 여름밤의 해변에는 술에 취하지 않은 사람을 찾아보기 드물 정도로 대부분 술에 취해있었다. 곳곳에서 호루라기를 부는 소리가 들렸고 어떤 민간인은 호루라기를 구입하여 경찰 옆에서 보란 듯이 철지난 월드컵 응원가를 불어대고 있었다.

 

무더위의 기승은 바다가 있는 밤이라도 더운 공기가 해변의 대기를 가득 매웠다. 마동은 숨을 쉴 때마다 더운 공기에 마동의 숨결이 부딪혀 입주위에서 묘한 기류를 만들어 냈다. 마동은 산 밑을 내려와서 해변의 조깅코스를 달렸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조금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는 기분만 들 뿐이었다.

 

[계속]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완벽 한글자막이라고 해서 결재하고 다운 받았지만 완벽 영어자막이었다. 영알못이지만 대충 화면만 봐도 괜찮았던 닥터두리틀. 닥터두리틀은 전체 관람가다. 아이들도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아니 아이들을 타깃으로 삼은 영화다. 온 가족이 모여앉아서 봐도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영화 속으로 빠져든다. 판타지이며 아직 인형과 이야기를 하는 아이가 있다면 더 괜찮을 영화다

비슷하게 우리나라에도 동물을 주제로 한 영화가 두 편이 나왔다. 이 두 영화 역시 12세 관람가다. 아이들도 볼 수 있게 만들었다는 말이다. 할리우드의 영화와 비교하는 건 너무나 단순한 생각이지만 이 두영화는 아이들이 보는 영화인데 아이들을 너무 생각지 않고 만들었다. 특히 ‘미스터 주‘는 아이들을 목표로 삼았다. 이 영화는 아이들이 폭소하는 영화라고 했지만 아이들이 심각한 얼굴로 지겨운 시간을 보내게 만든 영화였다. 어디서 웃어야 할지도 모르고 그저 기괴한 몸동작으로 아이들의 웃음을 끌어내게 하려는, 아이들을 전혀 고려치 않은 설정과 구성으로 영화가 만들어졌다

어린이를 모르고 어린이 영화를 만들면 성인이 어설프게 연기를 하면 어린이가 좋아 할 거라는, 이런 망할 마인드로 영화를 만든다. 어설프게 영화를 만들면 아이들이 좋아 할 거라는 생각이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아이들이 보는 영화는 유치해도 괜찮다는 마인드를 가진 영화인들은 아이들이 보는 영화를 만들면 안 된다. 어째서 아이들이 보는 영화라고 해서 유치해도 된다는 것일까. 아이들의 감성인 디즈니의 영화를 유치하게 만드는 경우는 없다

성인, 그 이상 진지하고 디테일에 신경을 써서 아이들이 보는 영화를 만들어야 아이들이 마음을 조금 연다. 미취학아동 그 이전의 아이들이 본다면 방구나 끼고 똥이나 먹고 하면 먹힐지 모르나 그 이상 아이들은 그런 유치함을 영화 속에서까지 원하지 않는다

시간 내서 극장을 찾은 아이들이 두 시간 가까이 지루하고 지리멸렬한 얼굴로 앉아 있는 것을 생각해보라. 당황한 아이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일찍 극장을 나가는 상황이 생활권 안에 없었기에 그저 앉아 있어야만 한다. 아이들이 참 딱하다

유치원생 정도의 미취학아동을 성인이 대할 때 잘못된 점은 남자친구와 결혼할거야? 여자 친구와 결혼할거야? 같은 질문을 하는데, 아이들은 이런 어른들의 관점에서 보는 로맨스가 없다고 서천석 박사가 분명 말했다. 어린이는 그런 질문을 받으면 남자친구와 결혼을 해야 하는 건가? 남자친구가 있어야 하는 건가?라고 생각을 한다고 한다. 어른들의 프레임에 일찍부터 들어오게 하는 질문을 어른들은 한다

닥터두리틀은 남녀노소 온 가족이 부담 없이 같이 볼 수 있어서 괜찮은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타조 같은 경우에는 타조의 특징까지 잘 잡아서 보는 아이들이 타조에 대해서 궁금해 할 것 같다. 우리나라의 더빙 같은 경우, 전문 성우가 더빙을 맡지 않고 유명인들이 동물의 더빙을 할 때 좀 더 그 동물에 대해서 연구를 하고 더빙을 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누군가를 잊지 않고 매일 떠올리는 건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기억한다는 것, 그건 얼마나 시간을 길게 기억을 가지고 가느냐의 문제보다 얼마나 자주 그 사람을 기억하느냐에 기인하는 것 같습니다

 

어젯밤에 어떤 부부가 바닷가에서 버스킹으로 ‘슬픈 사랑의 노래’를 부르는 걸 들었습니다. 두 사람은 독백하듯 노래를 시작해서 아내가 ‘세상에 너밖에 없는데..’ 하는 부분을 부를 때 두 사람은 서로 쳐다봤습니다. 부부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는 우리는 알 수 있었습니다. 부부는 서로 볼 수 없다는 것을

 

세상에 너밖에 없는데,,, 하는 가사가 그렇게 슬픈 것도 아닌데 노래를 듣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눈앞이 흐렸습니다. 부부는 노래에 얽힌 사연을 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노래를 부르는 부부에게서 기민함이라든가 민첩함 같은 건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평안했고 편안했고 애틋함이 노래를 부르는 내내 흘러넘쳤습니다

 

권태와 단조로움을 등에 짊어지고 있던 사람들 모두 부부의 노래를 듣고 빠져들었습니다. 그렇게 부부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세상에 조금 아플지라도 너는 내 곁에 있어야만 한다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컨테인먼트는 기묘한 이야기와 왕좌의 게임을 보고 난 후 대체하는 영화를 찾느라 보게 된 미드였다. 이 영화는 바이러스의 이야기로 미국 내 한 구역의 병원에서 슈퍼전파자에 의해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그 구역이(도시) 폐쇄가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주인공들의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고 유치원선생님이었던 여 주인공이 자신의 아들과 유치원의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에 견학을 갔다가 갇히게 되고, 그 구역과 밖의 구역의 가교역할을 하는 남자 주인공이 있고 밖에서 모니터로 이 상황을 지휘하는 하는 일마다 잘 안 되서 늘 성이 나 있고 독하게 보이는 지휘관이 있다

이 영화 속 바이러스는 치사율이 거의 백퍼센트에 가깝다. 일단 걸리면 죽게 된다. 바이러스가 파고드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이 바이러스는 접촉에 의해서만 전파가 가능하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접촉만 피하면 바이러스가 침투하지 않는다. 치료제가 없고 병원 내에서 감염내과 전문의가 계속 연구를 하고 있지만 속수무책으로 사람들은 죽어 나가고 그것 때문에 사람들은 두려움에 휩싸이고 타인을 의심하고 내 몰고 전시상황에 이르게 된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모습은 좀비 바이러스 같은 영화적 허용이나 뱀파이어처럼 물어뜯고 하는 모습은 없다. 시즌 1에서는 여주인공이 마지막에 아들을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바이러스에 덮여 죽는다. 이 영화가 처음에는 우한의 상황과 거의 흡사하다고 생각했다. 도시를 폐쇄하고 제대로 된 치료법도 없이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가는 것이 다를 게 없었다

그런데 작금에 와서는 일본의 크루저 상황과 비슷하다고 생각된다. 독하게 보이는 지휘관은 어떤 진실을 숨기고 있다. 폐쇄구역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지구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기에 전 세계의 모든 매체는 그곳에 집중을 하고 있다. 그리하여 어떤 진실은 쉽게 묻힐 수 있다

그리고 정부가 해야 할 일, 그러니까 한 사람이라도 구해서 조사를 하고 바이러스 확진 자들은 음압병실에 넣어서 치료를 해야 하지만 어쩐지 바이러스가 걸린 사람은 그 잘못은 개인에게 돌리고 있다. 21세기에는 절대 생각 할 수 없는 일인데 21세기니까 가능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바이러스가 다 나았다고 해도 그 사람 가까이 가기를 꺼려한다. 오히려 바이러스가 왔다가 면역체계가 생기면 그 바이러스는 그 사람에게 죽을 때까지 들어가지 않음에도 사람들은 회피한다. 그리고 슈퍼 전파자는 죄인으로 덧씌워 인간사회에서 고립시킨다

이 모든 것이 어떤 진실을 덮기 위한 모종의 권력자들의 일그러진 욕망 때문이다. 일본 크루저의 상황은 앞으로 점점 심각해질 것이고 그럴수록 모든 매체의 관심은 크루저에게 쏠릴 것이다. 아베의 진실은 어떤 면에서 크루저 때문에 묻힐 수 있으니 대재앙이 기회일지도 모른다

일본은 자국 밖에서 일어나는 개인 적인 일, 사고나 감염 같은 경우는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고 있고 일본인들은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렇다. 컨테인먼트를 보면서 사실적인 영화적 묘사에 그럴싸해보였지만 이런 일이 앞으로 일어나겠어,하며 봤는데 1년 만에 흡사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니. 놀랍고도 신비한 2020의 초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