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복의 정치학 - 21세기를 위한 선언
안토니오 네그리 지음, 최창석.김낙근 옮김 / 인간사랑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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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입니다. 제가 공역한 <전복의 정치학> 옮긴이 후기를 올립니다.

<전복의 정치학> 본문을 읽으시다가, 오타, 오역, 비문 등이 발견되면 댓글 달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전복의 정치학> 옮긴이 후기

 

1968년 프랑스에서 학생운동이 극에 달했던 시절, 바리케이드 안쪽에 씌어진 여러 낙서 중에 'Ten days of happiness'라는 글귀가 있었다고 한다. 열흘 동안의 행복. 그 정도면 충분하다. 문학을 하는 이유로도, 살아가거나 사랑하는 이유로도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에서

  

전복의 정치학초판은 이미 1991년 세계일보사에서 번역·출판된 적이 있고, 20121월 현재, 한국에는 수많은 네그리 관련 번역서들과 해설서들이 나와 있다. 그렇다면 네그리 사상에 대한 일반론과 이 책에 대한 요약·해석을 덧붙이는 게 독자들에게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질까? 본 후기에서는 전복의 정치학이 탄생하게 된 시대적 배경(1)과 이 책이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갖는 의미(2·3)에 대해 논하겠다.  

 

1. 1986년 파리 학생투쟁과 새로운 주체의 출현

우선 1986년 파리 학생투쟁의 배경에 대해 살펴보겠다. 19863월 프랑스 최초의 좌우 동거정부(cohabitation)가 들어섰다. 사회당 대통령 미테랑(Mitterrand) 밑에 자크 시라크(Jacques Rene Chirac)가 총리인 우파(右派)내각이 수립된 것이다. 우파내각이 성립되자, 자크 시라크는 강도 높은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추진하였다. 사회질서확립과 범죄예방이라는 명목 하에 강력한 치안행정을 실시하였고, 프랑스인들의 실업 감소를 목표로 이민법을 강화하였다. 또한 사유화청(Privatisation)을 통해, ·공영기업의 민영화 정책을 시도하였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개혁은 대입 선발개념 도입, 등록금인상, 대학 재정 자율권 확대를 골자로 하는 모노리-드바케법안으로 이어졌다. 알랭 드바케(Alain Devaquet) 교육부장관은 이 법안의 취지가 대학 자율화에 있다고 주장했지만, 학생들은 미국식 돈덩어리 대학개혁안이라고 거부하였다. 전복의 정치학1장은 모노리-드바케법안에 반대한 1986년 파리 학생투쟁에 대해 논하고 있다.

 

1986년 파리 학생투쟁의 의미에는 크게 세 가지 차원이 있다.

첫째, 네그리 자신이 갖는 개인적 차원이다. 이탈리아 총리 알도 모로(Aldo Moro) 암살사건의 배후로 지목되어, 프랑스에 망명 중이던 네그리에게 1986년 학생투쟁은 네그리 자신이 1970년대 이탈리아에서 보았던 새로운 주체(사회적 노동자)의 출현이 옳았다는 것을 보여준 실례였다. 또한 네그리에게 있어, 1986년 학생투쟁의 승리(결국 모노리-드바케법안은 폐기되었고, 이에 알랭 드바케 장관은 사임하였다)는 신자유주의 국가정책과 극좌파 테러리즘에 대한 대안이자 희망이 되었다.

둘째, 새로운 주체론(사회적 노동자론)이 갖는 이론적 차원이다. 네그리는 1986년 파리 학생투쟁의 얼굴성(Faciality)에 주목한다. 1960·70년대 피아트 공장의 노동자 상()이 남부 이탈리아 농민 출신인 마르코였다면, 1986년 파리 학생투쟁의 대표상은 북아프리카 출신 대학생 말릭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증오(La Haine)에서 이민자 청년들의 모습이 소외·불안·증오의 존재였다면, 네그리의 새로운 주체는 지적이고, 긍정적이며, 아름다운 주체이다.

셋째,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의미를 갖는 동시대적 차원이다. 네그리가 말하는 21세기가 서기(西紀) 2000년대가 아니라 카이로스의 시간이라면,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2011년 반값 등록금 투쟁 및 한미 FTA 반대시위는 1986년 파리 학생투쟁과 동시대성을 가진다고 말할 수 있다. 1986년 새로운 주체의 출현과 마찬가지로, 현대중공업 골리앗 투쟁의 노동자는 오늘날 한국에서 광화문 네거리와 인터넷을 오고가며 SNS로 소통하는 집단지성들(다중들)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본문에서 네그리가 지적한 바와 같이, 오늘날 새로운 주체인 집단지성들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도구 활용에 능숙하고, 소통을 중시하는 사회적 노동자라고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새로운 주체들은 1986년 파리 학생투쟁 이후 승리의 역사를 쓰게 된다. ‘모노리-드바케법안은 폐기되었고, 시라크 정부의 민영화 정책은 저지되었으며, 필립 세갱(Philippe Seguin) 노동부장관의 노동시간 연장안은 철도노동자들의 장기파업과 정국 혼란을 가져왔다. 이후 1988년 대선과 총선 결과, 우파내각은 해산되었고 사회당 중심의 대통령과 단독내각이 구성된다.

 

2. 신자유주의와 빈곤화 전략

새로운 주체에 대한 자본의 대응으로 나타난 것이 신자유주의다. 네그리는 전복의 정치학개정판 서문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자신의 예측이 대부분 옳았다고 주장한다. 1980년대 중·후반에 나타난 기술적인 변화들과 신자유주의적 정책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무엇보다 오늘날 한국사회와 연관시켜볼 때, 네그리의 신자유주의론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자본에 의한 빈곤화 전략이다. 네그리의 주장에 따르면, 빈곤은 지배계급에 의해 의도적으로 계획된 것이다. 자본가들의 빈곤화 전략은 사회적 노동자들의 연대와 통합을 저지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고, 부수적으로 빈곤은 가난한 자들을 협박하는 무기로 작동한다

 

1986년 프랑스 파리로 돌아가 보자. 앞서 언급한 승리의 기억 이면에는 자본의 빈곤화 전략이 가져온 어두운 측면이 있다. 1970년대 중반 이후, 프랑스에서는 경기침체와 고실업이 지속된다. 일자리의 감소는 이민자를 배척하는 외국인 혐오증(Xenophobia)과 반()이민정책, 무엇보다 장 마리 르펜(Jean-Marie Le Pen)으로 대표되는 국민전선(FN)의 대두로 이어졌다. 특히 1986년 총선에서 국민전선은 35석의 의석과 9.7%의 득표율을 획득하였고, 이후 대선과 총선에서도 자신들의 지지율을 높여갔다. 즉 실업에 따른 빈곤화는 연대가 아니라, 외국인 증오로 표출되어 나타난 것이다. 1986년 파리 학생투쟁에서도, 아랍계 청년 말릭 오세칸이 프랑스 경찰에 구금된 상태에서 총에 맞아 사망하는 비극이 발생하였다.

 

2012년 한국 역시, 자본의 빈곤화 전략에 따른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양극화 현상은 지역 간 갈등을 넘어 세대 간 갈등으로 번져가고 있으며, 아직까지 극우정당이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웹(Web)상에서 반외국인 정서가 급속히 펴져나가고 있다. 그러나 ‘88만원 세대로 대표되는 새로운 빈곤층은 앞서 언급한 집단지성과 분리되지 않는다. 새로운 주체는 결정론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 활동으로 구성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주체는 자본의 빈곤화 전략에 맞서 연대와 통합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전복의 정치학은 새로운 주체의 등장을 선언했지만, 새로운 주체의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책은 빈곤화 전략이 가져온 폐해에 대해 적시하고 있다. 따라서 21세기 새로운 주체에게는 보다 적극적인 연대와 통합을 위한 존재적론 활동이 요구된다.

 

3. ()국가론과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

오늘날 사회적 노동자의 출현과 자본의 정보재구조화로 인해,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해지는데 반해, 국가는 비밀주의를 기반으로 한 핵국가(nulear state)로 나타나고 있다. 지배계급들은 비밀주의가 안보(security)상의 이유로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을 수탈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역설적으로 선진 자본주의국가일수록, 보다 높은 민주화와 보다 내밀한 비밀주의가 공존하고 있다. 이러한 네그리의 핵국가론은 지그문트 바우만이 말하는 액체근대(Liquid Modernity)의 근본적이고 불확실한 불안과 관련된다. 현대의 다양한 불안[공포]는 대체 무엇이 위험한지 알 수 없는 인식불가능성과 그것에 대항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판단할 수 없는 우리의 무력함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비밀주의는 현대 사회의 불안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다

 

비밀주의와 불안은 오늘날 국가와 국가에 대항하는 투쟁을 국가와 테러리즘의 대결로 거짓 포장하고 있다. 예컨대, 미국과 알 카에다(al-Qaeda), 미국과 불량국가들(이란, 북한 등)의 대결은 양자의 비밀주의를 강화시키고, 세계 민중들의 불안을 증폭시키는 효과만 낳는다. 이에 네그리는 본문 9장에서 국가폭력과 테러리즘을 넘어서 새로운 삶을 발명하기 위한 사회적 실천을 강조한다. 결국 사회적 노동자[다중]들의 사회적 실천은 비밀주의와 불안[공포]을 넘어서기 위한 존재론적 행동이자, 파괴를 목적으로 하는 테러리즘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구성하기 위한 삶 권력이다.

 

근 몇 년간, 한국사회는 비밀주의와 불안[공포]에 대항한 다중들의 저항을 경험하였다. 2006년 광우병 촛불시위는 신자유주의적 안전(security)조차 보장 못하는 정부와 이를 불신하고 불안해하는 다중들의 사회적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2011나는 꼼수다열풍 및 SNS 선거운동 규제논란은 한국정부의 비밀주의와 언론통제에 대항해,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도구들(팟케스트 방송, SNS)을 활용한 다중들의 사회적 실천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오늘날 핵국가에 대항하는 다중들의 투쟁은 비밀주의와 불안에 맞서 정보를 공유·개방하고, 커뮤니케이션을 확장하는 일부터 시작된다.

 

금까지 전복의 정치학이 가질 수 있는 여러 의미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번역사항에 대해 정리하자면, 이 책은 James Newell이 영역한 The politics of Subversion : A Manifesto for the Twenty-First Century(Polity Press, 2005)를 번역하였고, 일본어판(小倉利丸 譯, 顚覆政治學 : 21世紀けての宣言, 現代企劃室, 2000)을 참조하였다. 개정판 서문부터 6장까지 최창석이 번역하였고, 7장부터 14장까지 김낙근이 번역하였다. 인간의 모든 활동과 마찬가지로, 이 책의 번역 역시 여러 사람들의 도움 속에서 만들어졌다. 지금까지 여러 지식들을 가르쳐주고 공유해준 학교 은사님들과 세미나 동료들, 번역 교정을 곁에서 도와준 아내, 번역의 알파와 오메가인 인간사랑 출판사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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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없는 사람들 - 헤겔 역사철학 비판
라나지트 구하 지음, 이광수 옮김 / 삼천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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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의 역사철학은 유럽 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배제한 채, 유럽의 역사성만 강조한 문명화 담론이다. 구하는 서구중심의 역사서술을 넘어설 대안으로 문학 속의 역사성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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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 바바의 탈식민적 정체성 ROUTLEDGE Critical THINKERS(LP) 21
데이비드 허다트 지음, 조만성 옮김 / 앨피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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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 차이, 혼종성 등 난해한 해체주의적 탈식민 이론을 주장하는 호미 바바에 대한 입문서. 루틀리지 시리즈물이라 믿음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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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사회 (반양장) - 새로운 근대(성)을 향하여
울리히 벡 지음, 홍성태 옮김 / 새물결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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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 의료, 각종 오염물들에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이를 관리, 조정할 수 있는 통치체제가 과연 한국에 존재할 수 있을까? 국민의 건강을 미국의 국익(FTA)과 맞바꿀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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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의 공동체
장 뤽 낭시 지음, 박준상 옮김 / 인간사랑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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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개인 주체가 아니라, '우리 사이'라는 공동체 원리에 대해 사유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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