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이 이 세상 어느 구석에 쳐박혀 있는 줄도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어느날 갑자기... 그래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어느날 갑재기 말이다. 그 어떤 것이라는 것이 내 삶을 야금 야금 파먹고 들어와 내 삶의 중요한 한 부분이 되어 버리는 그런 경우가 혹 가다가 있다고도 한다. 그러니까 직소 퍼즐이라는 것을 처음 산 것이 지난 유월 초였으니 아직 두어달이 못 되었다. 그건 정말 우연적이었다. 교보에 들렀다가 그냥 그림이 예쁘고 심심하던 차에 마누라가 아무 생각없이 하나 샀던 것인데, 이리 될 줄은 그때는 몰랐더라. 

퍼즐을 즐기는 사람을 퍼즐러라고 한단다. 퍼즐러가 되면서 독서인으로서 심히 부끄럽게 되었다. 지난 두어달 동안 읽은 책이라고는 <온더로드> 한 권이 전부니 옛 선비를 본 받자면 입안으로 가시밭길이 뻗어야 할 것이언마나만, 역시 고인의 경지는 아득하였다. 구중생형극은 커녕 입안에 혓바늘 하나 돋지 않았다. 퇴근하여 마누라와 둘이 퍼즐을 펼쳐놓은 밥상에 착 붙어 앉아 있으면 시간이 가는 지 멈추었는 지 알지 못했다. 생각건대, 우리 부부가 아이가 없고 둘다 그리 다이내믹한 스타일이 아니고 방구석에서 구부르는 부류라 퍼즐과 궁합이 맞는 것 같다. 내가 그림에 관심이 있는 것도 한 몫 할 것이었다.




 클림트의 <키스>와 <엄마와 아기>이다. 처음 산 것들이라 더 애정이 간다. 국산 퍼즐클럽의 제품이다. 퍼즐의 손맛이나 결합력은 그럭저럭이다. 하지만 가격은 저렴한 편이다. 유약을 발라 액자에 넣어 침실 머리맡에 걸어 놓으니 정말 그럴 듯 하다. 침실 분위기와 어울리는 듯해서 더 마음에 든다. <엄마와 아기>는 클림트의 <여자의 삼단계(혹은 삼대)>라는 작품의 한 부분이다.

 




1000피스짜리만 하다가 500피스짜리도 하나 해 봤다. 역시 클림트의 <거시기뭐시기 부인>이라는 작품이다. 부인의 이름이 좀 어렵다. 퍼즐클럽 제품이다. 생각했던 것 보다 색상이 조금 어둡고 부인의 얼굴이 멍청해 보여서 나는 별로인데, 그래도 마누라가 좋아라 해서 침대옆 협탁 유리 밑에 깔았다.

 



퍼즐클럽에서 나온 고흐의 <해바라기>이다. 거의 모든 국내외 퍼즐 제조사에서 해바라기가 나온다. 12송이 해바라기도 있고 14송이짜리도 있다. 해바라기 퍼즐로는 일본퍼즐 빅3중 하나인 에포크의 해바라기가 제일이라는 중평이지만 나는 보지 못해 모르겠다. 다만 국산 퍼즐클럽의 해바라기는 실망이다. 원화의 물감을 떡칠한 듯한 질감과 붓터치감을 전혀 살리지 못했다. 그래도 유약을 발라 식탁 유리밑에 깔아 놓으니 그런대로 볼만은 하다.





국산 푸코(PUKO)사에서 나온 샤갈의 <도시 위에서>와 마티스의 <자주색 코트를 입은 여인>이다. 샤갈의 그림을 출시하는 퍼즐 제조사는 국산 푸코가 유일한 것 같다. <도시 위에서>는 어느 드라마에도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인기가 좀 있다 한다. 푸코의 퍼즐은 조각이 약간 크고 모양이 여러 가지라서 맞추기가 좀 쉬운 편이다. 가격은 국산 퍼즐클럽보다 조금 비싸다.




국산 퍼즐만 하다가 드디어 외제 퍼즐로 손을 뻗었다. 이탈리아 클레멘토니사에서 나온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과 <봄>이다. 외제 중에서는 그래도 가격이 그리 비싸지는 않다. 조각이 국산보다 훨씬 작고 퍼즐의 재질이 마치 천조각 같은 느낌이다. 퍼즐에서 아주 미세한 파스텔 가루 같은 것이 떨어져 나오기도 하지만 신경쓸 정도는 아니다. 인쇄상태가 좋고 끼워 맞추는 손맛도 좋다. 특히 결합력이 강하다. 끝에 하나를 들어 올리면 전체가 다 딸려올라온다. 밑에 사진은 퍼즐을 하도 많이 사다보니 사은품으로 하나 받은 것이다. 무슨 로마화랑인가 뭔가 하는 작품인데 국산 블루캐슬 제품이다. 별로다. 그러니까 공짜로 줬겠지만 말이다. 한 번 맞춰보고 다시 통안에 넣어 놓을 계획이다.

 






손 맛 좋고 인쇄상태 좋고, 여하튼 그 몹시도 좋다는 일본 퍼즐 빅3(비버리, 야노망, 에포크)의 제품도 한번 해보고는 싶으나, 이제는 퍼즐러의 생활에 종지부를 찍어야 할 것 같다. 역시 본인의 본분은 독서. 독서인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퍼즐은 책보다 훨 비싸고 이 좁은 집구석에 더 이상 어디 붙여 놓을 곳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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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6-07-24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아, 그 사이에 무지 많이 하셨네요. @.@

붉은돼지 2006-07-26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쉽지만 이쯤에서 그만둘까 생각중 입니다...
 
On the Road -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
박준 글.사진 / 넥서스BOOKS / 200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우선 책 표지의 사진이 눈길을 잡아끈다. 아득한 지평선 너머까지 뻗어있는 곧고 넓은 황토길, 소들이 어슬렁 거리고 다니는 저곳은 어디일까? 어디선가 한줄기 바람 불어오면 흙먼지 뿌옇게 일어날 것만 같은......그 길위에 내가 서있는 상상을 해본다. On the Road.

오래된 유행가의 가사가 아니더라도 인생은 나그네 길이고 모름지기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못하는 법이다. 함성호의 시. 사내의 발바닥에도 몇 천분의 일 지도 같은 미세한 길들이 사방으로 팔방으로 나 있었다. 필시 객사의 운명이려니… 역마살낀 자의 운명은 객사라. 어차피 우리 모두는 인생이라는 나그네 길위에서 우왕자왕 방황하고 있으니 누구도 객사의 운명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이른바 여행자들의 천국이라는 태국의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내외국인 14인과의 여행을 주제로 한 인터뷰를 모은 것이다. 내용은 소략하고 깊이는 없다. 이제는 배낭여행이라는 것이 그리 특별한 것이 아니듯 이 책에서 특별히 얻을 것은 없다. 14편의 인터뷰가 표지 사진 한 장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헛도는 대화는 한 장의 사진 앞에서 공허하고 무력했다. 


 

멀리서 들려오는 북소리에 이끌려

나는 긴 여행을 떠났다.

낡은 외투를 입고

모든 것을 뒤로한 채…


이것이 터기의 옛 노래라는 것은 무라카미씨의 여행에세이 <먼북소리>를 읽고 알았다. 여행이 가지는 매력(혹자는 마력이라고 하고, 마약이라고도 한다)을 설명하기는 실로 난감하다. 우리는 흔히 인생을 여행에 비유하기도 한다. 사실 삶 자체가 긴 여행이라면 우리는 지금 여행중이므로 따로 떠날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여행을 원하는 것은 아마도 우리의 삶이 만족스럽지 못한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른 인생을 살아보고 싶은 것이다. 누구나 여행을 떠나고 또 꿈꾼다. 인류가 한 곳에 정착하여 땅을 파먹고 살기 시작하면서 먹을 것을 찾아 온 천지를 떠돌아 다니던 수렵시대의 생활은 버렸지만 그 습성의 일부는 여전히 우리 유전인자에 남아 아직까지 전해져 오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어디서 이 비슷한 소리를 읽은 것 같기도 하다.)


여행에는 종류도 많다. 학교에서는 수학여행, 결혼하면 신혼여행, 이별여행, 심지어 자살여행까지, 휴가철에 잠시잠깐 쉬었다 오려고 떠다는 짧은 여행(쉬려고 갔다가 고생만 실컷하고 돌아오기 일쑤)에서부터 배낭하나 달랑 매고 수년동안 온 세상을 떠돌아 댕기는 오랜 세계 여행에 이르기까지, 멋진 유적을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여행지에서의 낭만을 즐기려는 관광여행에서부터 인생의 비밀이나 삶의 진리 혹은 신을 찾아(아니면 자기 자신을 찾아) 떠나는 구도여행에 이르기까지 여행이란 실로 다양하고 천차만별인데, 대부분은 세계 이곳저곳을 떠돌아 댕기는 오랜 여행을 더 꿈꾸기 마련이다. 


길고 오랜 여행에의 꿈이 참기 힘든 냄새를 뿡뿡 풍기며 우리를 유혹하지만 현실이라는 것이 가지는 위력 또한 대략 단단한 것으로 본인같은 한심한 인사에게 이르면 대충 꿈만 꾸고 잠만 자다가 결국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어디로도 떠나지 못한 채, 어느듯 마흔살을 넘기고 쉰살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뭐 그리 슬플 것은 없지만 그래도 뭔가 빠진 것 같은 아쉬움은 남는다. 직장문제, 주머니 사정, 자녀에 대한 문제, 양가부모의 반대......갔다 와서는 뭘 먹고 살지.......이런 것이 현실의 힘이고 위력인데, 난관이 첩첩산중인 것 같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한방에 해결할 수도 있다. 그냥 떠나면 되는 것이다. 항상 그렇지만 선택은 나의 몫이고 결정에는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는 또 다른 무엇인가를 버려야 한다. 공수래 공수거의 인생임에도 무엇이든 버리기는 싫고 또 어렵다.


각설하고, 이 책의 표지 사진을 보고 있자니 무슨 타잔영화를 보고 있는 것도 아닌데 어디 저 멀리에서, 아니면 가슴속 깊은 곳 어디에선가, 둥둥둥 심장소리인지, 둥둥둥 북소리인지 여하튼 무슨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가슴이 벌렁거리고 궁뎅이는 들썩거린다.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고민 좀 해봐야겠다. 결론은 항상 버킹검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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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


어제 저녁에 TV를 보니 누가 김광석 풍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가사가 많이 보고 듣던 것이었다. 곽재구의 시 <사평역에서> 였다. 저게 노래로도 나왔던가 의아한데, 노래를 부른 사람은 김현성이라하고 시에 노래를 붙이는 작업을 꾸준히 해온 뮤지션이라고 한다.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도 그가 작사 작곡 했단다. 노래에 별 무관심인 나로서는 금시초문이다. 다만 옛날에 좋아했던 시를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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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6월 10일자 2면의 바로잡습니다라는 코너를 보니 일전에 정동영 의장이 사퇴의 변으로 인용한 “현애철수장부아(懸崖撤手丈夫兒)” 라는 말 중에 ‘철’은 ‘살’로 써야 맞으니 바로 잡는다고 한다.  야후 옥편을 찾아보니 ‘거두다’, ‘치우다’의 의미로 쓰일 때는 철로 읽고, - 예를 들자면 철수(撤收) - ‘뿌리다’, ‘놓다’, ‘놓아주다’의 의미로 쓰일 때는 살로 읽는 것 같다. 살포(撒布)처럼 말이다. 내 생각에는 손을 거두다로 해석해서 ‘철’로 읽어도 무방할 것 같은데 과문한 주제에 감히 왈가부 하기가 어렵다.


‘낭떠러지에 매달렸을 때 손을 탁 놓아 버리는 것이 대장부’라는 의미의 이말은 백범이 거사 전 윤봉길에게 전한 말이라고 한다. 흔들림 없는 결단과 대의를 위해 목숨을 초개로 여길 것을 주문하는 말일 것이다. 양인간에 교감되었을 감정을 생각해 보면 그 비장함이 시황제를 시해하러 가는 자객 형가의 노래 “역수의 시”를 떠올리게 한다. 지방선거에 패배해 당을 떠나는 정동영의장의 마음과 꽃 같은 대한남아를 사지로 떠나보낼 수 밖에 없었던 백범의 마음, 그 두마음 사이의 간극을 생각해보면 비유가 차고 넘침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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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가게에선 흔히 <엄마와 아기>로 표기되어 있는데, <the three age of woman> 의 한 부분이다. <키스>보다 더 어려운 것 같다. 살색 부분이 실로 난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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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6-06-11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작업속도가 훨씬 빨라진 거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