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의 달인 로버트 몬다비
로버트 몬다비 지음, 이병렬 옮김 / 바롬웍스(=WINE BOOKS)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내가 자서전이라고 읽은 건 아마 이게 두 번째 일 것이다. (별로 궁금하지도 않겠지만 그래도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처음 읽은 자서전은 백범일지이다) 말인즉슨 자서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인데, 자서전이라는 것이 대충 자화자찬 일색으로 흐르기 마련이고 우리는 보통 남 자랑을 듣기를 즐겨하지 않는다. 이 자화자찬이라는 것이 본인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부모 더 나아가서는 조부모에게까지 미치게 되니 이게 뭐 해동육룡이 날아다니는 용비어천가도 아니고 자연 흥미가 떨어지게 마련이다.

로버트 몬다비 자서전이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다.(물론 몬다비씨도 부모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는 않았다. 누군들 아니겠는가) 이 책을 읽으면서 자서전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가만히 생각해봤다. 처음에는 객관성과 진솔함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어차피 자서전이라는 것이 자신이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니 엄밀한 객관성을 요구하기는 어려울 것이고 , 어쩌면 자서전이라는 것은 작가의 자신의 주관적인 이야기를 더 들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선전이 진솔해야 한다는 것에는 두말이 필요없을 것이다. 독자는 작가의 겉치레 번드르르한 말이 아니라 진짜 진솔한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자서전은 과연 진솔하게 쓰여졌는가' 하고 어떤 할 일 없고 오지랖 넓은 인사가 나에게 묻는다면 내 대답은 "다소간에 그런 것 같다" 이다.  다소간에라는 말을 넣은 것은 대체로 진솔하게 쓰여진 것 같지만 다소 거시기한 부분에 있어서는 생략화법이 적용된 것 같다는 말이다. 동생과의 불화조강지처 아내와의 이혼 문제에 있어서 그런 생각이 드는데 우리에게 뭐 그런 것까지 다 활짝 까발리라고 요구할 만한 권리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알려지지 않은 그런 이야기들이 무척 궁금하고 또 자서전이라고 쓸라고 한다면 쓰기 싫은 이야기도 좀 써줘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약간 언급은 되었지만 독자로서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작가가 열정을 바친 대상이 와인이라는 것말고는 여타의 자서전과 다를 바는 없다. 대대수의 성공한 사람이 그렇듯이 몬다비씨 역시 일에 대한 깊은 사랑과 열정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충만해 있고 항상 완벽함과 최고를 추구했으며, 결단력과 추진력을 가진, 말하자면 성공한 사람의 덕목을 두루 갖춘, 자서전을 쓸 수 밖에 없는 쓰지 않고는 베길 수 없는 그런 인물인 것이다. 본인 같은 한심한 인사에게는 참으로 지지난난하고 요요원원한 덕목이지만 뭐 별로 부럽지는 않다. (그래서 나는 성공못했다..한심한 인사 같으니라고...)


그러한데, 한가지 몬다비씨의 또 다른 성공요인인 어린아이와 같은 열린마음은 조금 본 받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물론 이건 본 받고자해서 본 받을 수 있는 그런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타고나야 하는 것인데 바로 우리의 안타까움이 여기에 있다) 두 번째 부인인 마그릿의 증언을 들어보자. 몬다비는 영화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완전히 빠져서 흥분한 나머지 화면에 대고 말은 한다. 과장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가득찬 극장에 앉아 큰소리를 지른다. “안돼! 그러지마!” 또는 “뒤를 조심해. 뒤쫓아 오잖아! 이런, 내가 온다고 얘기했지!” 진솔함도 결국은 거기서 나오는 것이리라.


추신 : 몬다비씨는 올해 94세로 아직 생존해 있을 뿐만 아니라 활발한 활동도 하고 있다고 역시 와인은 장수만세에 한 힘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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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1-11-13 0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책을 뒤적여 찾아보니 내가 로마인이야기를 처음 읽은 것이 1996년이다. 무심한 세월이 진정 무심하게 흘러흘러 10년이 훌쩍 넘었다. 지금 기억에는 시오노 할머니가 매년 한권씩 20년에 걸쳐 로마인이야기 20권을 쓰겠다고 했던 것 같다. 어쨌든 대단히 집요하고 고집센 할머니다. 늙은이 고집은 쉬 꺽이지 않는 법이다. 나에게는 무삼하게 흘러버린 10여년이었지만 그녀에게는 아마도 하루하루가 아깝고 의미있는 날들이었을 것이다. 아~ 지난 십여년 동안 나는 무엇을 했단 말인가...


1권의 소제목은 너무나도 유명한 말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다. 눈을 감고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또 든다. 어쩌면 하루살이 조차 현재의 그 하잘 것 없는 몸뚱이를 이루기 위해 수억년 혹은 수천만년을 근근히 버텨왔을지도 모르는 일인 것이다. 당근당당연하게도 이 책 로마인이야기도 하루이틀사흘아침에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시오노 할머니의 그 끈기와 그 고집과 그 열정과 그 노고에 찬사와 박수를 보낸다.


오늘 대단원의 15권을 드디어 주문했다. 컬렉션의 이가 빠진 2권과 3권, 9권은 아마도 서울 사는 조카가 빌려 간 듯하다. 단언컨대 내가 이 책을 사지 않았을 리는 없다. 그러나 항상 그렇듯이 이 책들을 다 읽지는 못했다. 아마도 5권 율리우스 카이사르 까지 읽은 것 같다. 15권을 주문한 오늘 고민이 두가지 생겼다. “이빠진 2,3,9권을 다시 구입해야 하는가”가 그 하나이고 “로마인 이야기를 다시 읽어볼 것인가”가 그 둘이다. 아마도 고민만 하다가 고만할 것 같다. 끈기와 고집과 열정없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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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터인가 국내 소설을 읽지 않게 되었다. 마음은 있는데 손이 가질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영화로 말하자면 방화에는 자주 눈길이 가는 반면 외화와는 어느듯 거리가 생기고, 소설로 말하자면 방설(우리나라 소설, 댓구를 고려한 나의 신조어)로부터는 멀어지는 반면 외설(외국소설)과는 가까워 지는 것 같다.


국내 소설도 읽어야 된다는 생각에 착안한 것이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이었다. 이 한 권으로 지난 한해 한국소설을 정산한다는 편하고도 가당찮은 생각을 품었던 것인데, 그 놈의 정산이 통 되질 않고 있다. 아마도 제29회 부터는 전혀 읽지 않은 것 같다. 금년에도 어김없이 책은 구입했다. 우수상 수상작가의 면면을 살펴보니 금시초견의 인사도 서너분 계신 듯 하다. 나름 독서가를 자처하는 처지에 심히 부끄럽고 한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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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에 지다>를 읽다가 문득 생각해 본다. 할복에 대해서. 자기 배를 자기가 푹~ 찔러 쭉~ 째면 피바다야 뭐 말할 것 도 없겠고, 아프기도 엄청 아플 것이고, 창자나 내장 같은 뱃속에 있던 것들이 배밖으로 흐믈흐믈 기어나오기도 하고 하는 것인데, 혹은 까칠한 넘 중에는 기어나온 자기 창자를 집어 던져 분사(憤死)하기도 했다고 하는데 정말 눈알이 튀어나올 일이다. 자결하는 사무라이가 배를 떡 갈라놓은 채 헐떡거리고 있으면(아시다시피 배쨌다고 바로 죽지는 않는다.) 그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뒤에 대기하고 있던 또 다른 사무라이가 배 짼 무사의 목을 한 칼에 댕강 잘라 주는 것인데 이른바 가이샤쿠라고 한다.

이 가이샤쿠라는 것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 것이, 전언에 의하면 그 이름도 빛나는 미시마 유키오가 큰 마음 먹고 할복할 때 가이샤쿠한 아무개씨는 검도가 몇단이나 되는 유단자 임에도 다리를 덜덜 떨다가 단칼에 유키오의 머리와 몸통을 분리시키지 못해 여러차례 칼질을 했다고 하니 자결하는 자의 고통을 감해주는 것이 아니라 배가 시키는 것이 되고 보면 그 칼질에 실수가 있어서는 무사의 수치라고 할 만한 그런 것인 것이다.(역시 전언에 의하면 아무개씨는 자살방조무시기죄인지 살인방조거시기죄인지로 징역 몇 년을 살았다고 한다)


계속해 보자면, 몸통에서 분리된 머리통이 다다미 장판위로 뚝 떨어져 이리저리 구부르기도 했을 것이고, 그 머리통을 잃어버린 원통한 목아지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분수는 또 어떠 했을 것이며, 그 유혈낭자함과 그 피비린내하며....... 이른바 주신구라 운운하는 40여명이 떼거지로다가 동시 할복을 할 경우 그 비장장엄한 장관은 실로 두눈뜨고 지켜보기 어려웠을 것인데, 일본 개항초기에 서양 코쟁이들이 이 할복하는 광경을 목도하고는 기절초풍 놀래 자빠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거니와 아마도 꿈에 다시 볼까 두려웠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할복이라는 것이 되나마나 퍼질러 앉아 배만 째면 되는 것이 아닐뿐더러 자기가 하고 싶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것이다. 일종의 허가사항이었고 말하자면 무사만의 특권이랄 수도 있는 것이니 참말로 무섭고도 대단한 특권인 것이다.(농민이나 상인에게는 할복이 허용되지 않았다)


할복하기 전에는 ‘지세이(辭世)’라고 하는 하이쿠 비슷한 짧은 글을 남겨야 하고,(자기 일생을 한두줄에 요약하는 일종의 유언이랄 수 있는데, 그 파란 많은 삶을 한두줄에 줄이자면 글 재주 없는 넘은 고민도 참 많았을 것이다) 배째는 순서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리고 위에서 아래로  어쩌고 저쩌고 해야하고, 가이샤쿠하는 무사가 있어야 하고(가이샤쿠라는 것이 무나 호박 자르듯 댕강 자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본 책을 보면 알 수 있다. 힘으로 내리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함과 정밀함이 요구되는 대단히 기술적인 작업인 것이다.) 가이샤쿠가 실패할 때를 대비해 또 다른 무사를 대기시켜야 하고 어쩌고 저쩌고.......절차와 법도가 나름으로 복잡했던 것이니, 참으로 궁금하다. 이러한 전통은 과연 어디서 유래하여 어떻게 진화 발전되어 왔는지, 일본역사는 정말 흥미롭다. 친일 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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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해일지 23 - 공구의 날개

   우리들의대장만출이가스스로저희삶과바다를반납한 것

(좋게해석해서)이라고가정한다면,  공구는정말달랐다.

   공구는정말달랐다.  그녀석은이른봄에제일먼저피는할

미꽃이고,  이른봄천사에게서제일먼저날개를받아날아다

니는찔찌리새였다.  청승맞게새의울음소리를잘내는공구

의겨드랑이에는언제나날개가두장달려있다.

   녀석이날개를퍼덕이며날아다닐때우리들은하늘속이거

나별속에떠있었다.  위험해위험해. 초장동사람들은우리

들이떠있는것이위험하다고항상공구의날개죽지부터묶어

놓았다.  우리들이숲속에서잡은찔찌리새를갖고놀다가새

가죽자공구는울었다.  이른봄바다가보이는언덕에서새의

장례식을올리며공구는한마리찔찌리새가되어울었다.  어

른들에게날개를뺏긴공구는결코날지않았지만그대신한마

리새가되어울었다.  며칠뒤공구가죽고우리들의머리위로

처음보는커다란날개를퍼덕이며공구가날아올랐을때,  우

리들은저마다함께날아오르려고버둥거렸지만모두땅으로

떨어졌다.  그새는먼별속으로날아갔다.


   별을보며인사동에정박하다.  새벽두시.  수부들은부질

없이날아오르기를다투며술을마시다.  공구가가진날개를

빌지않고나는착실하게나의노만저으리라.  노를젓고저어

서저별에닿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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