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민족의 대명절 설날 그 바로 전날 오후 2시경. 황제폐하께옵서 친히 전화를 주셨다. 제 폰 남바를 어찌 아시고. 아아 망극하여라. 친철하신 폐하께옵서는 미천한 소신이 놀래 뒤로 자빠져 코라도 깨어질까봐 미리 승정원을 통해 통지하셨다.(어쩌면 내시부 인지도 모르겠다.)  

 

“대통령실입니다. 잠시후 대통령신년인사 발송예정입니다. 수신거부 080*******"  

 

바삐 목욕재계하고 의관을 정제한 채 자리 깔고 북쪽을 향해 꿀어 엎드려 있기를 몇 시진, 양다리에 찌리리~ 쥐가 올려는 찰나, 드디어 무슨 뻐꾹새 몸으로 울 듯이 폰이 진저리를 치며 울었다. 통지가 있었음에도 아둔한 소신 “대통령 이명박입니다.” 라는 황제폐하의 옥음을 듣고는 일순 얼매나 놀랬는지 모른다.  

 

아~ 질곡의 세월을 눈물로 인내한 보람이 있었던가~ 궁벽한 시골 초려에 엎어져 있는 이 몸을 어찌 알아보시고 측근으로 불러 중하게 쓰시려나 보다...아 어이할꼬, 산림의 기개로, 선비의 기개로 삼고를 기다려야 할 것인가....맨발로 뛰쳐나가 폐하의 탑전에 엎어져 망극한 성은을 받들아야 할 것인가.   

 

고민이 깊어가는 사이 녹음된 폐하의 옥음은 계속 이어졌다....“...공무원이 나라의 중심이니 열심히 일해야 어쩌고 저쩌고....친지들에게 안부 전해주시고.....어쩌고 저쩌고...새해 복많이 받으시고.....어쩌고.....다시 들으시려면 1번을 눌러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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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의 연배에 이런 사진을 올리는 게 뭐 별로 부끄럽지는 않다. 금지옥엽을 낳아 본 사람은 안다. 본인으로 말하자면 뭐 죽기살기로 후사를 도모하여 가문의 대를 이어야겠다는 그런 주의는 당근 아니지만 그렇다고 뭐 무자식 상팔자니 마누라하고 둘이만 잘먹고 잘살자는 그런 주의자도 아닌 것이 언필칭 이래도 흥~ 저래도 흥~ 그런 한심한 주의자였던 것인데  

역시나 이 한심한 돌머리가 알고 있는 것과 이 뜨뜻한 가슴이 느끼는 것은 한참 틀려도 틀리더라는 것이다. 대가족의 막내로 조카만 11명쯤되고 보니 형, 누나, 형수들이 조카들 대하는 것 보면서 저리 예쁠까 억시로 충성이네 뭐 그런 생각도 하곤 했는데 내가 내 새끼를 낳고 보니 역시로 그렇더라는 한심한 이야기  

우리 모두가 누군가의 금지옥엽이었고 우리 모두가 우리 모두를 누군가의 금지옥엽 어화둥둥으로 여긴다면 세상은 문득 전쟁도 없고 갈등도 없는 천국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유치한 생각도 해본다. 마음에서 우러나오지는 않더라도 남의 자식을 보고 대할 때 이넘도 누군가의 금지옥엽이거니 머리로나마 생각은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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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9-01-13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한심하긴요, 세상사는 이치죠. 이뽀라.

붉은돼지 2009-01-14 09:43   좋아요 0 | URL
...세상 사는 게 그런 거 같습니다..ㅎㅎ

무해한모리군 2009-01-13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예뻐라

붉은돼지 2009-01-14 09:44   좋아요 0 | URL
예쁘긴 예쁘죠..ㅎㅎㅎ...무슨 불출 같다는....
 

 

지난주엔가 EBS를 보다보니 “듄의 아이들”이라는 프로가 방송중이었는데, 전에도 드문드문 본 적이 있어 제목과 대강의 분위기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왜 갑자기 그때 책을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요동친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 정녕코 독서는 독서인이 짊어져야 할 운명이자 십자가일진져!!  

 

- 사실 본인은 신화나, 전설, SF, 황제와 공주, 무슨 무슨 경(卿) 혹은 기사가 나오고, 눈부신 초능력과 극적으로 실현되는 예언, 그에 따르는 비극, 수대를 걸친 얽히고 설킨 가족간의 애정과 원한...말하자면 대서사시...이런 내용을 무척 좋아한다. 그리하여 본인 스타워즈 광팬이다. 광팬은 아니고 약간 팬이다 -      

 

알라딘을 검색해보니 총18권이다. 작가가 20여년간 힘들인 노작이라하니 나름 독서인인 본인 독서인의 노작에 대한 예의로 일독이 당근지사일 것이다. 대서사시를 즐기는 본인으로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32권) 이래 간만에 만나는 대하다(큰 새우가 아님). 

 

나름 독서인이자 자칭 글하는 선비로서 기축년 한해를 한 마리 소처럼 영어공부와 한자공부에 매진용진키로 다짐한 마당에 대하까지 보태니 부담이 되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얼마나 재미있을까 마음이 설레인다. 오늘 1,2권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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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눌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1
헤르만 헤세 지음, 이노은 옮김 / 민음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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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고등학교 시절인 것 같다. 다시한번 그러니까 그게 20년이 조금 넘었다. 생각해 보면 세월 참 빨리 지나갔다. 세월유수란 말이 옛시인의 허사는 진정 아니었다. 그렇다고 지금와서 그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아 풀숲을 뒤적여보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그때 고등학교 시절엔 라디오도 꽤 듣고 그랬는데, 아직도 기억나는 것이 매일 저녁 10시쯤 되면 무슨 공익광고협의회 같은 데서 청소년 선도 광고 같은 것을 방송하는 것이었는데 그게 바로 본인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인 것이다. 고때의 방송내용을 오랜 옛기억을 더듬더듬어 생각나는대로 옮겨보면 이렇다. 틀린지도 모른다. 여하튼 내 기억에는 요렇게 남아있는 것이다. 

 “…… 여러분은 헤르만 헷세의 소설 ‘크눌프- 삶으로부터의 세이야기’를 읽어보셨습니까?……어쩌고 저쩌고(크눌프가 젊음을 낭비하며 호랑방탕하게 살았다는 요지의 이야기가 나옴)…크눌프는 눈덮인 산속에서 젊음은 결코 충동적인 낭만만은 아니라고 절규하며 죽어갑니다……어쩌고 저쩌고(그러니까 청소년 여러분도 젊을 때 되나마나 놀지말고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요지의 이야기가 이어짐. 그리고 시간이 늦었으니 거리를 방황하는 청소년들은 빨리 집으로 귀가하라는 이야기도 있었던 것 같음)……”  

이 방송을 수십번 아니 - 총명하지 못한 내 머리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아마도 - 수백번쯤은 들은 것 같다. 그래서 그때도 혼자서 나름 독서인이었던 나는 냉큼 크눌프를 사서 읽었는데 이게 뭔가 방송멘트하고 책 내용은 조금 틀려먹었다는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각설하고, 요 며칠 감기로 좀 아팠다. 지난 토요일 일요일 계속 누워있었는데, 그래도 좀 살만은 했는지 가만히 누워있기가 심심해서 뭐 쉽게 읽을 만한게 없을까 책장을 뒤적이다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크눌프를 잡았다. 책도 얇고 행간도 넉넉하고 위에서 말한 그 옛날 방송멘트도 불현듯 생각나고 해서 읽어볼 생각을 했던 것이다.  

(이건 여담인데, 본인 열린책들에서 나오는 미스터노 페이퍼백 시리즈를 좋아한다. 책이 표지 디자인도 멋지구리 예쁘고 또 가볍고 작아서 좋은데 - 책정리나 이사를 해보면 알겠지만 책이 가벼운 건 무척 중요하다 - 다만 행간이 너무 좁아 읽기에 눈알이 다소 아프다는 단점이 있다. 미스타노 세계문학전집에 비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은 행간이 시원시원하고 목록이 다양해서 좋은 것 같다. 말인즉슨 둘다 좋다는 이야기)  

역시 헤세의 소설은 뭐랄까 아늑하고 포근하고 또 쓸쓸하고 슬프다. 깊이가 없다는 비평도 있는 듯 하지만 편안하고 감흥도 있다. 어쨌든 천천히 문장을 음미하며 재독한 결과, 크눌프가 눈덮인 산속에서 죽어간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 삶을 후회하고 절규하며 죽어간 것은 결단코 아니었다.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 듯한 자유롭고도 쓸쓸한 크눌프의 삶도 의미있는 삶이었다는 하느님의 이야기를 듣고 편안하게 두눈을 감은 것이다. 절규하며 죽은 것이 아니란 말이다. 말하자면 노장의 무위사상과도 일맥이 서로 통하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그때 그 방송원고를 쓴 사람은 과연 책을 읽어보고 쓴 것일까? 그것이 궁금하다. 누구 아는 사람없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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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경 2010-04-21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바로 위의 글... 저와 (너무나도) 똑같은 경험이신 것 같습니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옛날 그 유명한(?) 멘트 "젊음은 충동적인 낭만만은 아니라고 절규하며 죽어갑니다..."를 찾아 보다가 우연히 님의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잘은 모르오나 동시대인으로 생각되어 몇 자 남기고 갑니다.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
빌 브라이슨 지음, 이덕환 옮김 / 까치 / 200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빌 브라이슨의 책은 처음이다. 그 유명한, 표지에 커다란 곰얼굴이 나오는 <나를 부르는 숲>도 미안하지만 읽어보질 못했다. 사실은 책을 사긴 샀는데, 표지를 봐서는 숲이 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곰이 나를 부르는 것 같아서, 혹은 곰이 길을 떡하니 막고 있는 것 같아서 선뜻 그 숲으로 걸어 들어갈 용기가 안나더라는 가당찮은 이유로 일독을 미루고 있다가 서재용량 초과 도서 수만권(?)을 알라딘 고물상에 초특가 대바겐세일로 팔아치울 때 아무 생각없이 처분하고 말았던 것인데, 이 책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다 읽은 작금에 이르러 어느 시인의 싯구 비슷한 것이 내 입에서 무심코 터져나오고 말았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어리석은 짓을 했던가.  

 

 대광활광대한 우주에서부터 초극미세한 분자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와 그 위에 살았던 혹은 현재 살고 있는 모든 생물과 존재했던 혹은 현재 존재하고 있는 모든 무생물들에 대한, 말인즉슨 거의 모든 것에 관한 책이다. 대단하고 신기하다.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생각을 했을까. 하기야 생각하기는 쉽겠지만 행동으로 옮기기에는 지난했을 것인데, 가만히 누워서 읽기에도 코막히고 숨찬데 거의 600쪽에 이르는 이책을 쓸려고 한다면(그것도 영어로 말이다) 과연 얼마만한 수고를 퍼부어야 하는 것일까. 문득 브라이슨씨에 대한 존경의 념이 무슨 오월의 분수처럼 솟아올라 무지개를 피운다. 호킹씨의 <시간의 역사>, 세이건씨의 <코스모스>와 더불어 과학 교양서로서 일독의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아무 생각없이 입으로 처넣고 코로 숨쉬며 대충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를 포함한 우리 주위의 모든 것들이 그렇게도 어마어마하고 신비하고 알 수 없는 비밀과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정말 깜짝 놀랄 일이다. 나름 독서인을 자처하는 본인도 전혀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분야에서 이상한 무엇인가를 알아내기 위해 혼신의 힘을, 피와 땀과 눈물을 쏟았던 인사들이 또 그렇게 많았다는 것 역시 정말 놀라운 일이다. 혹은 살아 생전에 노벨상을 받거나 빛나는 명성을 얻기도 했지만 혹은 죽은 뒤에도 몰이해와 무관심속에 잊혀지기도 했던 것이니 생각해보면 아무런 보상도 없는 그 삶이 몹시 가슴이 아프다. 과학자들에 대한 가쉽적인 묘사가 재미있고 흥미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쉬운 책은 아니다. 거의 모든 것의 어마어마한 비밀과 역사를 조금이라도 맛볼라치면 약간의 노력은 필요하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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