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의 작은 놈은 라이타 올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귀한 야만인과 태양의 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붉은돼지 2006-02-18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액자에 내 얼굴이 조금 비치네..
 

 

물살 센 노량해협이 발목을 잡는다

宣川서 돌아온지 오늘로 몇 날인가

윤삼월 젖은 흙길을

수레로 천리 뱃길로 시오리

나루는 아직 닿지 않고

석양에 비친 일몰이 눈부신데

망운산 기슭 아래 눈발만 차갑구나

 

내 이제 바다 건너 한 잎

꽃 같은 저 섬으로 가고 나면

따뜻하리라 돌아올 흙이나 뼈

땅에서 나온 모든 숨쉬는 것들 모아

화전을 만들고 밤에는

어머님을 위해 九雲夢을 엮으며

꿈결에 듣던 남해 바다

삿갓처럼 엎드린 앵강에 묻혀

다시는 살아서 돌아오지 않으리


 

------------------------------------


유배문학이라는 것이 있다. 생각해 보면 옛날의 유배라는 것이 멋이 있었다는 생각도 든다. 철없는 넘의 천지를 분간하지 못하는 소리일 것이다. 아마도 우리 국문학의 대단히 아름다운 것들 중 많은 것들이 유배지에서 생산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서포 김만중이 유배지에서 사씨남정기와 구운몽을 지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유배문학의 대가로는 단연코 윤선도를 들 수 있겠다.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어쩌구 저쩌구리하던 어부사시사가 아마도 그 유명산 보길도에서 지어졌을 것이다. 다른 문장은 기억에 가물거리는데 ‘지국총’하던 부분은 분명하게 기억난다. (그런데 지국총이 무슨 뜻이었지?) 고등학교 고문시간에 어부사시사를 배우면서, 죄를 지어 귀양간 인사가 배를 저어라, 닻을  올려라 어쩌고 저쩌구리하니 참 팔자도 좋아 늘어졌구나, 그런 귀양이라면 서로 갈려고 줄섰겠다 하는 한심한 생각도 했었다.


정약용 형제를 뺄 수 없겠다. 다산이 남해 일대를 전전하며 18년의 유배생활을 했지만 끝내는 살아 생전에 고향땅을 밟았고, 유배지에서 저술한 대단한 저작들로 그 명성이 후세에까지 자자하게 회자했으니 그 삶이 덧없었다고 할 수는 없으리라. 그러나 형 정약전은 끝내 적소 흑산도에 뼈를 묻었으니, 섬 주위에서 물고기들이나 물풀들과 벗하며 쓸쓸하게 살았을 그 삶을 생각해보면 슬프다. 후세의 한 현직 고등학교 생물교사가 <현산어보를 찾아서>라는 책을 내게 된 것은 진정 의미있는 작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붉은돼지 2006-02-20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영승의 시에는 빤스가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김영승은 빤스가 하나 뿐인 것 같다. 빤스가 너무 적어서 반성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