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파리대왕 (1판 83쇄, 2021.11.24.)
두 번째 읽는다. 10년 전인지, 20년 전인지 기억도 가물가물 가물치ㅋㅋ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난 뒤 무언가 뒷골이 서늘하게 섬뜩하고 무서웠던 기억만은 뚜렷하게 남아있다. 뭐 <15소년 표류기> 같은 권선징악의 해피엔딩의 흥미진진한 모험소설은 아니었다.
알라딘에는 백자평이 94건이 올라와 있는데 거의 반 정도는 번역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졸역이니 최악이니 꽝이니 하는 표현들이 보인다. 소생도 소설을 읽어보니 조금 이상한 문장도 있고, 지문에도 한문체 용어가 많이 나오지만 특히 12세의 소년들이 대화 중에 회합, 미구, 화경, 미채 등등 그 뜻도 어려운 한자를 사용한 것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예를 들어보면,
- 넌 헤엄치지 않으련?(p16)
- 그래서 랠프가 회합을 연 거야(p28)
- 잭은 멋있게 창칼을 빼들었다.(p42)
- 한동안 부산하게 과일을 찾아 걸귀처럼 먹으면서(p43)
- 따라서 미구에 배가 한 척이 이리로 찾아들 거야‘(p53)
- 저 애 안경! 그걸 화경(火鏡)으로 쓰면 돼!(p57)
- 미채(迷彩)라는 속임수 있잖아?(p90)
- 열적은 듯 킬킬거리는 소리가(p118)
- 랠프는 모경(暮景) 속에 서 있는 꼬마를 응시하였다.(p127)
- 주위의 어둠은 (중략) 수수께끼와 위협으로 미만했다.(p146)
- 창칼 : 여러 가지 작은 칼을 통틀어 이르는 말
- 걸귀 : 음식을 몹시 탐내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미채 : 적군이 식별하지 못하도록 차량, 비행기 따위에 주변의 색과 비슷한 색을 칠하는 위장
- 미구 : 얼마 오래지 아니하다
- 화경 : 햇빛을 비추면 불을 일으키는 거울이라는 뜻으로 ’볼록렌즈‘를 이르는 말
- 모경 : 해가 질 무렵의 경치
- 미만 : 정한 수효나 정도에 차지 못함 또는 그런 상태
창칼이 작은 칼을 이르는 말인줄 처음 알았다. 볼록렌즈를 화경이라고 하고, 미채가 군사적으로 위장 색칠을 이르는 말인 줄 처음 알았다. 견문 일천한 소생의 천학 무식이 부끄러워 몸 둘 곳을 알지 못하겠다.
2010년 이전에 나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뒷날개에는 ’새 문학전집을 펴내면서‘라는 발간사 비슷한 글이 실려 있다. "(상략) 세대마다 문학의 고전은 새로 번역되어야 한다. <두시언해>는 조선조 번역 문학의 빛나는 성과이지만 우리에게는 우리 시대의 두시 번역이 필요하다. 엊그제의 괴테 번역이나 도스토예프스키 번역은 오늘의 감수성을 전율시키지도 감동시키지도 못한다. 오늘에는 오늘의 젊은 독자들에게 호소하는 오늘의 번역이 필요하다. (하략)" 편집위원으로 김우창, 유종호, 정명환, 안심환의 이름이 올라있다. 요즘 나오는 책에는 이 발간사가 없어졌다.
민음사의 <파리대왕>은 이른바 대한민국 문단의 4대 평론가(김현, 김우창, 유종호, 김윤식) 중 1인인 유종호 번역인데, 그는 1935년생이고, 이 책 초판이 1999년에 나왔으니 역자가 65세에 번역했다는 이야기인데, 이제 20년도 훌쩍 넘었으니 위 발간사에서 아주 적확하게 지적했듯이 오늘의 젊은 독자에게 호소하는 오늘의 번역이 필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