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뒤적여 찾아보니 내가 로마인이야기를 처음 읽은 것이 1996년이다. 무심한 세월이 진정 무심하게 흘러흘러 10년이 훌쩍 넘었다. 지금 기억에는 시오노 할머니가 매년 한권씩 20년에 걸쳐 로마인이야기 20권을 쓰겠다고 했던 것 같다. 어쨌든 대단히 집요하고 고집센 할머니다. 늙은이 고집은 쉬 꺽이지 않는 법이다. 나에게는 무삼하게 흘러버린 10여년이었지만 그녀에게는 아마도 하루하루가 아깝고 의미있는 날들이었을 것이다. 아~ 지난 십여년 동안 나는 무엇을 했단 말인가...


1권의 소제목은 너무나도 유명한 말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다. 눈을 감고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또 든다. 어쩌면 하루살이 조차 현재의 그 하잘 것 없는 몸뚱이를 이루기 위해 수억년 혹은 수천만년을 근근히 버텨왔을지도 모르는 일인 것이다. 당근당당연하게도 이 책 로마인이야기도 하루이틀사흘아침에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시오노 할머니의 그 끈기와 그 고집과 그 열정과 그 노고에 찬사와 박수를 보낸다.


오늘 대단원의 15권을 드디어 주문했다. 컬렉션의 이가 빠진 2권과 3권, 9권은 아마도 서울 사는 조카가 빌려 간 듯하다. 단언컨대 내가 이 책을 사지 않았을 리는 없다. 그러나 항상 그렇듯이 이 책들을 다 읽지는 못했다. 아마도 5권 율리우스 카이사르 까지 읽은 것 같다. 15권을 주문한 오늘 고민이 두가지 생겼다. “이빠진 2,3,9권을 다시 구입해야 하는가”가 그 하나이고 “로마인 이야기를 다시 읽어볼 것인가”가 그 둘이다. 아마도 고민만 하다가 고만할 것 같다. 끈기와 고집과 열정없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언제부터인가 국내 소설을 읽지 않게 되었다. 마음은 있는데 손이 가질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영화로 말하자면 방화에는 자주 눈길이 가는 반면 외화와는 어느듯 거리가 생기고, 소설로 말하자면 방설(우리나라 소설, 댓구를 고려한 나의 신조어)로부터는 멀어지는 반면 외설(외국소설)과는 가까워 지는 것 같다.


국내 소설도 읽어야 된다는 생각에 착안한 것이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이었다. 이 한 권으로 지난 한해 한국소설을 정산한다는 편하고도 가당찮은 생각을 품었던 것인데, 그 놈의 정산이 통 되질 않고 있다. 아마도 제29회 부터는 전혀 읽지 않은 것 같다. 금년에도 어김없이 책은 구입했다. 우수상 수상작가의 면면을 살펴보니 금시초견의 인사도 서너분 계신 듯 하다. 나름 독서가를 자처하는 처지에 심히 부끄럽고 한심스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칼에 지다>를 읽다가 문득 생각해 본다. 할복에 대해서. 자기 배를 자기가 푹~ 찔러 쭉~ 째면 피바다야 뭐 말할 것 도 없겠고, 아프기도 엄청 아플 것이고, 창자나 내장 같은 뱃속에 있던 것들이 배밖으로 흐믈흐믈 기어나오기도 하고 하는 것인데, 혹은 까칠한 넘 중에는 기어나온 자기 창자를 집어 던져 분사(憤死)하기도 했다고 하는데 정말 눈알이 튀어나올 일이다. 자결하는 사무라이가 배를 떡 갈라놓은 채 헐떡거리고 있으면(아시다시피 배쨌다고 바로 죽지는 않는다.) 그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뒤에 대기하고 있던 또 다른 사무라이가 배 짼 무사의 목을 한 칼에 댕강 잘라 주는 것인데 이른바 가이샤쿠라고 한다.

이 가이샤쿠라는 것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 것이, 전언에 의하면 그 이름도 빛나는 미시마 유키오가 큰 마음 먹고 할복할 때 가이샤쿠한 아무개씨는 검도가 몇단이나 되는 유단자 임에도 다리를 덜덜 떨다가 단칼에 유키오의 머리와 몸통을 분리시키지 못해 여러차례 칼질을 했다고 하니 자결하는 자의 고통을 감해주는 것이 아니라 배가 시키는 것이 되고 보면 그 칼질에 실수가 있어서는 무사의 수치라고 할 만한 그런 것인 것이다.(역시 전언에 의하면 아무개씨는 자살방조무시기죄인지 살인방조거시기죄인지로 징역 몇 년을 살았다고 한다)


계속해 보자면, 몸통에서 분리된 머리통이 다다미 장판위로 뚝 떨어져 이리저리 구부르기도 했을 것이고, 그 머리통을 잃어버린 원통한 목아지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분수는 또 어떠 했을 것이며, 그 유혈낭자함과 그 피비린내하며....... 이른바 주신구라 운운하는 40여명이 떼거지로다가 동시 할복을 할 경우 그 비장장엄한 장관은 실로 두눈뜨고 지켜보기 어려웠을 것인데, 일본 개항초기에 서양 코쟁이들이 이 할복하는 광경을 목도하고는 기절초풍 놀래 자빠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거니와 아마도 꿈에 다시 볼까 두려웠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할복이라는 것이 되나마나 퍼질러 앉아 배만 째면 되는 것이 아닐뿐더러 자기가 하고 싶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것이다. 일종의 허가사항이었고 말하자면 무사만의 특권이랄 수도 있는 것이니 참말로 무섭고도 대단한 특권인 것이다.(농민이나 상인에게는 할복이 허용되지 않았다)


할복하기 전에는 ‘지세이(辭世)’라고 하는 하이쿠 비슷한 짧은 글을 남겨야 하고,(자기 일생을 한두줄에 요약하는 일종의 유언이랄 수 있는데, 그 파란 많은 삶을 한두줄에 줄이자면 글 재주 없는 넘은 고민도 참 많았을 것이다) 배째는 순서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리고 위에서 아래로  어쩌고 저쩌고 해야하고, 가이샤쿠하는 무사가 있어야 하고(가이샤쿠라는 것이 무나 호박 자르듯 댕강 자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본 책을 보면 알 수 있다. 힘으로 내리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함과 정밀함이 요구되는 대단히 기술적인 작업인 것이다.) 가이샤쿠가 실패할 때를 대비해 또 다른 무사를 대기시켜야 하고 어쩌고 저쩌고.......절차와 법도가 나름으로 복잡했던 것이니, 참으로 궁금하다. 이러한 전통은 과연 어디서 유래하여 어떻게 진화 발전되어 왔는지, 일본역사는 정말 흥미롭다. 친일 좀 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항해일지 23 - 공구의 날개

   우리들의대장만출이가스스로저희삶과바다를반납한 것

(좋게해석해서)이라고가정한다면,  공구는정말달랐다.

   공구는정말달랐다.  그녀석은이른봄에제일먼저피는할

미꽃이고,  이른봄천사에게서제일먼저날개를받아날아다

니는찔찌리새였다.  청승맞게새의울음소리를잘내는공구

의겨드랑이에는언제나날개가두장달려있다.

   녀석이날개를퍼덕이며날아다닐때우리들은하늘속이거

나별속에떠있었다.  위험해위험해. 초장동사람들은우리

들이떠있는것이위험하다고항상공구의날개죽지부터묶어

놓았다.  우리들이숲속에서잡은찔찌리새를갖고놀다가새

가죽자공구는울었다.  이른봄바다가보이는언덕에서새의

장례식을올리며공구는한마리찔찌리새가되어울었다.  어

른들에게날개를뺏긴공구는결코날지않았지만그대신한마

리새가되어울었다.  며칠뒤공구가죽고우리들의머리위로

처음보는커다란날개를퍼덕이며공구가날아올랐을때,  우

리들은저마다함께날아오르려고버둥거렸지만모두땅으로

떨어졌다.  그새는먼별속으로날아갔다.


   별을보며인사동에정박하다.  새벽두시.  수부들은부질

없이날아오르기를다투며술을마시다.  공구가가진날개를

빌지않고나는착실하게나의노만저으리라.  노를젓고저어

서저별에닿으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오즈 클라크의 와인 이야기
오즈 클라크 지음, 정수경 옮김 / 푸른길 / 2001년 12월
평점 :
절판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유홍준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에서 처음 인용한 이래 인구에 무수하게 회자되어 온 말이다. 홀대 받고 있는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어찌할 수 없는 애정에서 솟아나온 이 말로 인해 우리는 우리 자신을 다시 돌아보고, 우리 주위를 다시 둘러보게 되었던 것이다. 유홍준이 각주에서 밝힌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의 원전은 이런 것이었다.(내 기억에)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에 보이는 것은 예전과 같지 아니하리라.”  말하자면 요즘 와인관련 서적을 열심으로 읽는 한 이유이기도 한데, 어쩌면 와인에 관해서는 남들로부터 ‘와~대단한데~’하는 소리가 듣고 싶고, 나도 속으로는 ‘어때, 멋지지~’ 하고 뻐기고 싶은 마음이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근자의 시류에 빠져 따라 흘러흘러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렴 어떠랴. 이 책은 세 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첫장 <와인의 향>은 와인의 향과 맛 그리고 포도의 품종에 대한 이야기. 몇 번 와인을 마셔본 실로 일천한 경험으로는 와인에 좋은 냄새가 난다는 정도만 알지 이 향이 자두향인지 딸기향인지 복숭아향인지 바닐라향인지 초콜릿 냄새가 나는지 탄 냄새가 나는지, 흙냄새가 나는지 도통 알수가 없고 맛이라는 것도 대체로 떫기만 하고...그리고 포도에는 우리가 흔히 먹는 포도, 청포도, 그리고 거봉이 있는 줄로만 알았지 그렇게 많은 종류의 포도품종이 있는 지는 또 어떻게 알았겠는가

두 번째 장 <와인 즐기기>에서는 코르크 마개 따는 법에서부터 와인잔, 디캔팅, 와인 시음하기, 레스토랑에서 와인마시기, 와인과 음식의 조화, 와인과 건강, 와인 구입과 보관, 와인 라벨 읽기 등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자나가던 소나 개도 피식~하고 웃을 대목.

 

<p58 고급 레스토랑과 불량 레스토랑의 차이>

• 고급 레스토랑 : 와인리스트에 와인정보를 성실하게 실어 놓은 곳, 문제 있는 와인을 기꺼이 교환해 주는 곳. 요리에 어울리는 와인을 정선하여 소개해 놓은 곳

• 불량 레스토랑 : 와인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없는 곳, 손님의 불평에 이의를 제기하는 곳. 와인지식을 갖춘 직원이 없고 태도가 위압적인 곳

<p66 와인샵의 차이>

• 고급 와인샵 : 와인지식을 갖춘 직원이 정보를 제공한다. 값싼 와인을 소개할 때도 세심하게 배려한다.

• 저급 와인샵 : 와인 지식을 갖춘 직원이 없다. 손님이 원하는 것 보다 더 비싼 와인을 판매하려 한다. 병에 먼지가 쌓이고 변질되어도 방치한다.


이게 expert tips 란다.  대단단단 유익하고 심오하게 전문적인 정보다. 이게 말인지 똥인지....좀 웃기기도 한데, 그래도 빛나리 클라크 아저씨 얼굴을 보면 애교로 봐줄만도 하다.

세 번째 장 <세계의 와인>에는 프랑스, 이탈리아, 에스파냐, 포르투칼, 독일, 미국, 캐나다, 칠레, 아르헨티나, 호주,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와인을 제조하는 거의 모든 나라가 망라되어 있으며 주요 국가들은 또 주요 지역별로 소개하고 있다. 각 나라의 각 지역마다 와인산지에 대한 기본적인 개요 소개 뒤에 <이곳의 와인 산지는 중요한가>, <이곳의 빈티지는 중요한가>, <언제 마셔야 할까>, <내 주머니 여건으로 구입이 가능할까>하는 항목이 나오는데 그 내용이 거의 동어반복적인 면이 없지 않다. 각 와인 산지마다 꼭 마셔야 할 10가지 정도의 와인을 추천하고 있는 퀵가이드라는 코너는 유익하다는 생각이다. 가격이 영국현지가라 우리나라와 맞지 않고 또 쉽게 접할수 없는 것도 많겠지만 그래도 앞으로 와인을 고르는데 꽤 도움이 될 것도 같다.


총평을 하자면 고급 저급 와인샵의 차이 등 몇 군데 웃기는 장면, 중언부언하는 느낌, 다소 비싼 듯한 책 가격은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고, 틈틈이 등장하는 빛나리 클라크 아저씨의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 사진들이 잘 나온 점, 전세계 와인산지를 총망라한 점, 적정한 가격의 꼭 마셔볼 만한 와인을 선별 추천한 점 등은 마음에 든다. 어쨌든 이제 처음으로 와인을 마셔보았고, 앞으로 와인을 좋아하게 될 것 같고, 와인에 대해 공부를 좀 하고자 한다면 이 책을 읽어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부모의 자식 사랑이 잘난 자식 못난 자식 가리지 않듯이, 그 책이 좋은 책이든 그렇지 않은 책이든 와인에 관한 책이라면 읽어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뭘 알아야 보이든지 느끼든지 할 것이 아닌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