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 보아도 내사랑~ 저리 보아도 내사랑~ 얼씨구 절씨구야 지화자~~ 춘향가의 한 구절이 아닌가 모르겠다. 영화 서편제에도 나왔던거 같다. 우리 혜림이(금지옥엽 우리딸 이름이다. 온갖 궁리 심사숙고 끝에 결국 철학원에 가서 15만원 주고 지었다.)를 보고 있으면 이 노래가 오토메틱 자동 뽕으로 나온다.  

전에도 한두서너번 이야기한 것 같은데 본인은 반드시 대를 이어야 하니 수단방법 불문하고 후사를 봐야만 한다는 뭐 그런 주의도 아니고 그렇다고 애새끼 너무 신경쓰인다 무자식이 상팔자다 그런 주의도 아닌 것이 생기면 낳고 안생기면 말고 이런 주의자였던 것인데, 어쩌면 본인이 하는 모든 일이 그런지도 모른다. 대충 대충 되면 되고 말면 말고 될대로 되겠지라는 주의. 말하자면 노자 영감이나 장자 영감의 무위자연주의라고나 할까 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사람인데, 하!! 애새끼를 하나 낳고 나니 생각이 바뀌더라는 이야기다. 요즘 줄줄 빨고 핥고 죽고 못산다. 보면 볼수록 너무 예쁘고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너무 신기하기만 하다. 아아아~이게 도대체 무슨 마음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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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9-09-30 0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고 빨고 할 만한데요. 딸래미 키우는 재미는 그야말로 최고죠.

붉은돼지 2009-10-01 13:10   좋아요 0 | URL
역시 딸래미 키우는 재미가 솔솔한 것 같아요..저야 뭐 아들이나 딸이나 처음이지만...혜림이와 이름이 비슷한 해람이도 정말 잘 생겼더군요.

무해한모리군 2009-09-30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웅 넘 귀여워요~
카메라를 아는데요 ㅎㅎㅎ

붉은돼지 2009-10-01 13:12   좋아요 0 | URL
밑에 세장은 돌기념으로 스튜디오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제일 아래에 있는 사진은 이른바 "성냥팔이 소녀" 컨셉이라고 하는군요...
 
한한대사전 - 색인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엮음 / 단국대학교출판부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색인에 대한 리뷰를 써 보기는 처음이다. 사실 이 글은 리뷰가 아니다. 일종의 다짐이고 선언이다. 무슨 독립선언은 아니고 일테면 도서구입선언문 비스무리 한 것이다. 작년 10월 28일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에서 한한대사전(색인포함 전16권)을 30년만에 완간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본인은 얼마전에 알았다. 글하는 선비로서 몹시 부끄럽고 변명이 궁하다. 대만의 <중문대사전>이 5만자, 40만 단어, 일본의 <대한화사전>이 4만9천자, 39만단어를 수록한데 비해 한한대사전은 5만5천자, 45만 단어를 수록하고 있다고 한다. 수록 한자 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오랜 세월동안 많은 사람들이 흘리고 쏟았을 그 피땀과 그 노고를 생각하면 마음이 숙연해진다. 언론에 소개된 출간의 배경과 경과는 대충 이러저러하다. 

수천년간 축적된 조상들의 한자문화 유산을 해독할 사전이 없었고, 일본의 사전으로 연구하다보면 일본어를 중역해야 하고, 그나마 한자 어휘의 한국식 용례나 풀이가 없거나 중국 원전과 다른 해석 등으로 연구에 어려움이 컸다. 장충식 당시 총장은 스스로 동양문화사를 전공한 학자로서 한국적 기준으로 풍부한 어휘가 실린 한자사전을 펴내겠다고 결심하여 1970년 동양학연구소를 설립한 뒤 초대 소장으로 일석 이희승 박사님을 초빙하여 산하에 편찬실을 구성, 1978년 6월 편찬원 선발을 마치고 공식 실무에 착수해 1996년 한국한자어 사전(전 4권)을 펴내고 1999년 한한대사전 제 1권을 펴낸 것을 시작으로 2008년 전 16권의 완간에 이르게 되었다. 숫자로 본 한한대사전이라는 자료도 있어 옮겨본다.   

 

 

11,680
1978년 6월 제1기 편찬원을 구성, 투입하여 완간에 이르기까지 소요된 사업기간의 일수(日數). 만으로는 총 30년 4개월이 걸렸다. 사립대학의 힘으로 감당하기 벅찬 인고의 대장정을 상징하는 수치이다.  

 

21,254
한한대사전은 총 16권으로 1권 당 1,250면 정도로 편집했으며 총 면수(面數)는 21,254면이다. 이처럼 사전의 부피가 큰 것은 종교, 정치행정제도, 건축, 지명 등 한자어로 표기된 전문용어까지 망라한 백과사전식 편집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55,000 & 450,000
한한대사전에 실린 한자는 총 5만 5천자, 각 글자 별로 구분된 수록 어휘는 45만 단어이다.  단국대학교版 <한한대사전>은 글자와 어휘를 모두 수록하고 있는 사전으로는 규모면에서 세계 최대의 한자사전이 되는 셈이다.

200,000
사업 기간 중 1일 평균 약 25명의 전문가가 상근을 했으며 이를 연인원으로 환산하면 총 20만 여명의 인력을 투입한 셈이다. 초기에는 서당에서 한자를 배우기 시작한 전통적인 한학 전문가로 편찬실을 구성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대학원에서 한학, 고전문학을 전공한 연구원들로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2,120,000
한한대사전을 위해 작성한 원고를 200자 원고지로 환산하면 약 212만 매에 달한다. 이를 차곡차곡 쌓아 올린다면 높이는 159m에 이르고 빌딩으로 비유하면 53층 높이와 맞먹는다.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속담은 바로 이같은 경우에 딱 들어맞는 말일 듯.

31,000,000,000
국내에 없었던 한자 서체의 디지털 폰트개발에 필요한 사업비를 포함해 연평균 10억 여 원이 소요되었다. 완간에 이르기 까지 대학 자체 예산 285억 원, 국가보조금 25억 2천 여 만원, 총 310억원의 재정이 투입되었다.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김훈 편을 보면 김훈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제가 읽은 책의 거의 대부분은 버립니다. 자료나 도구가 될만한 책만 가지고 있지요. 내가 필요한 책은 자료나 사전이에요. 일종의 공구죠.… 이 방(서재)에는 나의 도구가 있는 공간이죠. …가장 중요한 것은 사전이죠. 각종 언어 영어, 독일어, 한문, 국어사전과 우리나라의 여러 법전을 가지고 있지요. 한문 사전을 주로 많이 찾아보는 편인데, 여가가 있을 때는 한자의 글자를 찾아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그런 일도 있었어요. 책을 많이 읽고, 책과 밀착됨으로써 만들어낼 수 있는 문장이 있겠지만, 나는 한국어로 문장을 쓰려면 외국어, 특히 한문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네이버가 제공하고 있는 동영상으로 봐서는 김훈의 서재 어디쯤에 한한대사전이 꽂혀 있는 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김훈의 서재사진 옆에 한한대사전만 별도 뽑아 찍은 사진을 실어 놓았다. 16권이 나란히 나란히 줄루래기 늘어서 있는 모습이 몹시도 당당하고 또 예쁘다. 지름신 고공 수직낙하 강림하사 본인 큰 결심을 했다. 16권 155만원이란다. 30년 걸려 완성되었으니 구입에도 몇 개년 계획쯤은 잡아줘야 예의다. 310억짜리 물건을 155만원에 살 수 있다면 남는 장사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원래 글하는 선비들이란 이재에 어두운 법이니 이 산식이 맞는지 틀린지는 차치하고라도 가정경제에 찬서리 나리는데 거금 155만원이 어데 있을 것이며 이것을 장만하다고 해서 밥이 나올 것이냐 떡이 나올 것이냐 이런 일말의 근심도 있다. 또 전공자도 아닌 마당에 호기로 산 책을 몇 번이나 들춰 볼것인가 하는 것도 문제다.    

 

 

그러나 저러나 어쨋거나 설령 그것이 자랑이나 과시를 위한 경망스런 현학취미라 하더라도 한한대사전 16권을 서재에 꽂아 놓고 보면 흐믓하기는 몹시도 흐믓할 것이다. 먼지만 덮어쓴 채 책장에 꽂혀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코피 좀 터졌다고 죽지는 않을 것이다. 옛 선인들은 초근목피로도 잘 버티셨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야 한다. 이제 색인은 구입했으니 다음달에는 1권을 구입할 것이다. 나중에 16권을 모두 모으게 되면 반드시 사진찍어 올릴란다. 기대하시라~ 해 놓고 보니....아무도 기대하시는 분이 없는 것 같다. 그럼 뭐 어때!!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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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 

뭐니뭐니해도 역시 고사성어 정치의 진정한 달인은 김종필이다. 영원한 2인자로 오랜 정치여정 동안 파란곡절의 굽이굽이마다 시의적절한 사자성어로 혹은 시대를 평하고 혹은 울분을 토하고 혹은 자신의 심정을 애둘러 전하기도 했다.   

우선 신년휘호를 살펴본다.
1994년 상선여수(上善如水·물과 같이 순리에 따라 산다)
1995년 종용유상(從容有常·무슨 일이 있어도 어긋나지 않게 산다)’
1996년 부대심청한(不對心淸閑:대꾸하지 않으니 마음이 한가롭다),
1997년 줄탁동기((啐啄同機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는 설명)
1998년 사유무애(思惟無涯:생각하는데 막힘이 없다),
1999년 일상사무사(日常思無邪:매일 나쁜 생각을 버려야 한다),
2000년 양양천양 유유고금(洋洋天壤 悠悠古今:우주는 한없이 넓고 역사는 아득히 멀다),
2001년 조반역리(造反逆理:뒤바꾸는 것은 세상이치를 거역하는 것),
2002년 이화위존(以和爲尊:화합하는 것이 가장 존귀하다).  

JP가 선정한 고사성어에는 운치와 멋이 있었기 때문에 인기가 좋아 요즘 개그맨의 유행어 못지않게 히트친 사례도 많았다. 1980년 이른바 '서울의 봄'이 왔다고 모두가 생각하고 있을 때, 당시 JP는 "한국에는 지금 봄이 오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꽃이 피어날 봄인지 겨울 속으로 돌아갈 봄인지 알 수 없다. 춘래불사춘의 정국이다"라고 했다. 요즘도 가끔 들먹이는 유명한 춘래불사춘의 유래다. 1995년 김영삼 당시 대통령과 결별하며 민자당을 탈당할 때에는 '토사구팽(兎死拘烹:토끼 사냥이 끝난 뒤 사냥개를 삶는다.)' 당했다고 말해 인구에 회자된 경우도 있다. 일반인들도 누구로부터 조금 섭섭한 일을 당하면 “팽”당했다“ 고 줄여서 쓰기도 했다. 내각제 개헌을 빌미로 삼당합당후 내각제 개헌이 좌절되자 ‘소이부답’으로 심경을 나타내기도 했다. 토사구팽을 말할 때는 분노와 울분이 있었지만 소이부답에 와서는 체념과 초탈의 감상이 느껴진다.  

3김 중에서 줄기차게‘대도무문(大道無門)’만 열심히 썻던 YS나 ‘실사구시(實事求是)’, ‘경천애인(敬天愛人)’ 등 교과서적인 문구만 선호했던 DJ에 비하자면 JP의 사자성어에는 확실히 글하는 선비의 풍류와 멋이 있었고 여운과 깊이가 있었다. DJ도 박학다식이지만 아무래도 인문학적인 특히 한학적인 소양에 있어서는 역시 JP만한 이가 없다는 생각이다.  

JP는 5살 때부터 부여 서당에서 천자문으로 기초부터 익혔다고 한다.여기에 인전 신덕희에게 배운 필법을 더했고 일중 김충현,여초 김응현 등 대가들과의 친분도 있었다. JP는 예서를 즐기는데 굵고 반듯한 서체인 만큼 강한 힘이 느껴진다는 평이다.80년 신군부에 의해 연금당했을 때는 붓을 잡고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적소의 긴밤을 버티기에는 역시 독서와 서예. 즐겨 쓰는 글씨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5·16 이후 좌우명으로 삼은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도 자주 쓴다.술집에서 기분이 좋으면 치마폭에 글씨를 써주는 멋을 부리기도 하고 친한 기자에게는 일필위공(一筆爲共)이라는 휘호를 선물하기도 했다 한다.JP는 대표적인 한자병용론자다.총리 시절 카드형 주민등록증이 만들어질 때 이름에 한글만 사용키로 했다는 보고를 받고 그 자리에서 한자를 병용토록 지시한 일화는 유명하다.  

JP가 1997년에 쓴 줄탁동기(啐啄同機)가 십년지나 다시 등장했다.줄탁동시(啐啄同時)라고도 하는데, 1997년 대선을 앞두고 김종필 당시 자민련 총재가 신년휘호로 사용하면서 널리 알려졌는데 당시 JP는 세상 일에는 때가 있다는 의미로 사용했지만  2008년 8월 삼성경제연구소의 경영자대상 사이트인 SERICEO가 국내 CEO 307명을 상대로 불황대처를 위한 사자성어를 조사한 결과 줄탁동시란 응답이 21.6%로 가장 많았다고 밝혔다.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려면 새끼와 어미닭이 안팎에서 알을 쪼아야 하듯 기업이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사 간 이해와 협조가 최우선이다.’는 해석이다.   

‘줄탁동시’란 중국 송대 선종(禪宗)의 화두를 모은 공안집(公案集)인 ‘벽암록’에 나오는 화두다.‘줄탁동기( 啄同機)’라고도 한다. 알 속의 병아리가 밖으로 나가려고 안에서 껍질을 쪼아대는 것을 ‘줄’이라고 하고, 어미 닭이 이에 맞춰 밖에서 껍질을 깨주는 것을 ‘탁’이라고 하는데 말하자면 아들은 수레를 앞에서 끌고 아버지는 수레를 뒤에서 밀어주는 형국이라 할까 뭐 그런 의미다. 어려운 한자인 탓인지 일상에서 잘 안 쓰이는 사자성어다.  

지난날 3김의 영토는 그리 무성하고 울창했건만 지금은 그 언저리 어디에 쓸쓸한 풀 몇 포기만 남아 있는 듯하다. 3김시대. 무슨 삼국시대 이야기처럼 아득하게 느껴진다. 내 말투가 마치 옛시절을 그리워하는 것 같다. 과거를 잊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세월의 무상함을 안타까워 하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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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밥  식  

오사카 교외 사카이 지역의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집단 식중독 사태'가 발생했다. 식중독의 원인은 병원성 대장균인 O-157균으로 주로 장출혈 설사, 복통 등 식중독 증상을 일으킨다.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무려 9,500여 명의 초등학생이 식중독을 일으키고 10여명이 숨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의 학교급식은 완전 탈바꿈되어 급식의 질이 수업의 질을 넘어선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일본 학교급식에는 두가지 원칙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냉동식품 불가이고 다른 하나는 당일 조리의 원칙이다. 

O-157은 1982년 미국에서 햄버거에 의한 식중독 사건으로 처음 학계에 보고되었다. 안과의사 출신인 로빈쿡은 이 사건을 소재로 의학 추리소설 《독, O-157》을 쓰기도 했다. 이 소설은 전형적 미국 음식인 햄버거에 들어가는 쇠고기를 O-157균의 감염 매개체로 설정하고, 균에 감염된 한 아이의 죽음을 중심으로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어 있는 쇠고기 업계와 이윤추구에만 급급한 병원의 비합리적 경영 현실을 파헤치면서, O-157균이 어쩌면 인간의 방만과 부주의로 생겨난 재앙일지 모른다는 경고의 메세지를 담고 있다고 <알라딘>에 소개되어 있다. 한국인은 유난히 O-157균이나 이질균에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 당시 O-157균이 전국적으로 퍼졌을 때에도 제일교포가 감염된 사례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김치, 마늘, 고추 등 매운 음식에 든 항균성분이 살균작용을 한 덕분이라는 이야기가 있으나 가설이다.  

3월에는 영국에서 소의 광우병이 인간에게 전염된 것으로 보이는 사례가 전해지며 시작된 광우병 파동은 영국산 쇠고기의 최대수입지역인 유럽뿐 아니라 전세계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유럽연합(EU)은 영국산 쇠고기 수입금지조치를 취한 뒤 영국에 대해 소의 대량도살을 요구, 영국과 외교마찰을 빚기도 했다. 중국과 일본은 7월부터 조어도(釣魚島·일본명 센카쿠열도) 영유권 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했다. 일본 우익단체가 현지에 새 등대를 설치함으로써 불붙은 이 분쟁은 대만, 홍콩, 마카오도 가세했다.  

페루의 좌익 투팍 아마루 혁명운동(MRTA)소속 무장 게릴라들이 12월17일 리마주재 일본대사관에 난입, 이원영 한국대사 등 각국 외교관과 페루 정치인 기업가 등 400여명을 억류하고 인질극을 벌였다. 게릴라들은 후지모리 대통령의 좌익게릴라에 대한 강경책에 항의, 투옥된 조직원의 석방을 요구했다. 이 인질극은 126일을 끌어오다가 1997년 4월 22일 페루 특수부대원들의 기습작전으로 인질범 14명은 모두 사살되고 남아있던 인질 72명은 1명을 제외하고 모두 구출됐다. 일부 인질들의 증언에 따르면 상황이 그렇게 살벌하지는 않았을 뿐만아니라, 인질범들의 교육수준이 상당해서 법률과 요리 등 다양한 주제로 자주 토론을 벌이기도 했으며 인질범들이 인질의 교양에 점차 동화되더니 가족과의 편지교환, 미식의식 등도 허용했다고 한다. 여기서 인질이 인질범의 상태에 동화되는 ‘스톡홀름 증후군’의 대칭되는 용어로 ‘리마 증후군’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거사를 도모함에 있어서는 역시 인정(人情)을 허용해서는 안되는 법이다. 물론 인질극이 성공해서도 안되겠고, 인질극이 성공한 사례도 극히 드물지만 어쨌든 자신의 신념하에(그 신념이라는 것이 올바르고 올바르지 못하고를 떠나서 말이다) 목숨을 걸고 거사를 감행한 인질범의 입장에서 보자면 리마 인질극이 실패한 이유는 바로 리마증후군 때문일 것이다. 인질들에 동화된 인질범들이 인질들의 여러 요구를 들어주게 되고 인질의 요청으로 들어온 보온병 등에 도청기가 설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대사관 내부사정을 훤히 파악한 진압군이 방심하고 해이해진 인질범들을 제압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덕분에 인질극 진압을 진두지휘했던 페루 대통령 후지모리는 ‘강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3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후지모리 역시 숱한 부정을 저지르면서 장기집권을 도모하다가 결국 실각했다. 집권 10년만이었다. 화무십일홍이요 권불십년이라 했던가. 2000년 일본으로 도주하여 일본에서 5년간 도피생활을 하다가 2005년에 페루를 들어가기 위해 칠레 입국을 시도하다가 칠레 경찰에 체포되었다. 2009년에 페루 특별재판부는 인권침해 등의 혐의로 그에게 25년 징역형을 선고했다. 인생사 새옹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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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올해의 사자성어
五里霧中 

 

교수신문이 전국의 교수 7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2001년 한해를 정리하는 사자성어로 23명(33%)이 뽑은 오리무중(五里霧中)이 선정되었다. 교수들은 오리무중을 든 이유로 ‘우리 사회가 상식이나 예측으로는 한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워져 원칙과 기본질서를 찾아보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다사다난(多事多難), 점입가경(漸入佳境), 새옹지마(塞翁之馬), 설상가상(雪上加霜), 빈익빈부익부(貧益貧富益富) 등이 거론되었다.  

 

국제적으로는 이슬람 무장단체인 알카에다에 의한 전대미문의 911 동시다발 테러사건이 있었고, 예로부터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했으니 복수는 복수를 알까고 피는 피를 부르는 법.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 선포로 아프카니스탄 전쟁이 발발했다. 탈레반 정권은 무너졌지만 테러의 배후로 알려진 알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의 행적은 사건 발발후 1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 그야말로 오리무중이다. 미국의 그 거대막대 어마어마한 정보력도 오리 안개(五里霧)속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국내적으로 DJP 공조가 무너져 국회가 여소야대 정국으로 뒤바뀌었으며, 테러사태의 여파로 수출이 사상 최악의 감소율을 보이는 등 정재계에 걸쳐 혼미한 형국이었다.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로 조선일보, 동아일보, 국민일보 사주가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오리무중은 후한서(後漢書)에 나오는 이야기다. 후한 안제 때에 장해(張楷)라는 학문이 뛰어난 사람이 있었다. 자는 공초(公招)라고 했다. 하루에 담배 20갑을 넘게 피웠다는 우리나라 시인 오상순의 호는 공초(空超)다. 원래 뛰어난 학자 아래는 제자나 문인들이 꼬이기 마련이니 제자만 100여명이 넘었고 당시 조정의 내로라 하는 환관과 외척들도 장해와 어떻게 끈을 연결해 볼려고 몹시 분주했던 모양이다. 학문 높은 큰 선비는 원래 또 고고하기도 하여서 번잡한 것을 싫어 했으니 소인배들과의 교제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급기야 장해는 어느날 홀연히 깊은 산속으로 은거해 버렸다. 그러자 또 많은 학자와 제자들이 그를 좇아 모여드니 그 산 기슭에 어느듯 시장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름하여 공초시(公招市)다.  

  

이 장해라는 인물은 학문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도술에 또한 능통했는데 사방 오리를 자욱한 안개로 뒤덮이게 하는 ‘오리무(五里霧)’라는 방중술에 특히 능했다. 역시 방술에 나름 뛰어난 자로 ‘배우(裵優)’라는 자가 있었는데 이 자는 사방 삼리에 안개를 일으키는 재주가 있었다. 삼리무 되겠다. 당구 300수지가 500수지를 선망하듯 배우가 장해의 소문을 듣고 제자가 되기를 청하며 찾아갔다고 하나 장해가 오리무를 일으켜 배우를 피하니 배우가 결국 500수지의 비결을 알지 못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비상한 재주를 자신을 숨기는 데만 쓴다면 세상에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뛰어난 재주와 학문이 널리 사람을 이롭게하는 데 쓰이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오리무를 만드는 도술이 있었다면 오리무를 푸는 비술도 있었을 터, 그렇다면 오리무중에 빠진 온갖 어려운 일들도 반드시 해결할 방법이 있었을 것인데 오리무의 비법이 전승되지 못하니 오리무중에 빠진 사건들이 결국 오리무중으로 남는 것이 아닌가 하는 한심한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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