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저러나 어쩌나저쩌나 시간은 흘러 시절은 바야흐로 폭염의 계절
똥구녕이 탁 트이는 시원한 맥주가 생각나는 계절이 되었다.
게다가 더구나 마누라가 맥주를 몹시도 좋아하여
봄 여름 가을 겨울 할 것 없이 거의 매일 저녁 마누라와 둘이 앉아
한 잔의 맥주로 그날 하루분의 정신적 육체적 노동으로 피곤한 심신을
위로 격려하며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더불어 소생이 온갖 잡다한 것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온갖 술병 - 와인, 위스키, 사케, 소주, 맥주, 약주, 막걸리 -
에 붙어 있는 라벨을 수집하고 있고 맥주로 말하자면 병뚜껑까지 모으고 있는데
맥주 라벨 모은 것은 백여만장에 이르고 맥주 병뚜껑 모은 것이 50여만종이 넘는다.
(상기 숫자중에 ‘만’자는 강조용법이니 알아서 접수하시기 바란다.)

 

당근한 이야기지만 주류 관련 책도 대충 여러 권을 가지고 있는데
금번에 <500 맥주 beer> 란 책이 떡 나오고 보니 사지 않고는 베길 재간이 없는 것이다.
하여 일단 사기는 샀고 대충 훑어도 봤다.
안 먹어본 맥주가 많다. 뿐 아니라 소생이 가지고 있지 않은 라벨과 병뚜껑도 당근 많다.
어디서 구할꼬 궁리를 해본다. 비행기 함 타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수집이라는 행위에는 약간의 중독성이나 마성이 내포되어 있는 것 같다.
소생이 직접 그 많은 종류의 와인이나 맥주나 소주나 사케를 다 사먹을 수 없으니
주위에 도움을 구하지 않을 수 없다. 친구나 친지에게서 빈병을 얻기도 하고
어디 술자리에서 소장하고 있지 않은 라벨이 보이면  빈병을 가방에 넣어 오기도 하고
급기야 요즘은 우리 아파트 단지내에 있는 재활용 수거장을 뒤지고 있는 형편이다.
한번식 재활용 쓰레기 버리러 갔다가 때묻은 빈병 몇 개 주워오면
마누라가 한심하다고 혀를 끌끌 찬다. 왜 아니겠는가. 수집이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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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영 2010-06-14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런, 우리 나라에서 모을 수 있는 것은 다 보이는 건 같네요. 외국에 잠깐 갔는데도 저 책에 나오지도 않는 맥주는 더 많고 더 많더군요.

붉은돼지 2010-06-22 10:26   좋아요 0 | URL
기네스도 없고...산미구엘도 없고...
 

임석재의 서양건축사 5권을 드디어 완성했다. 감개가 무량 무량 넘친다. 완독이 아니다. 각 권의 분량이 500쪽에서 800쪽에 이르고 총 쪽수는  3344쪽에 이르는 엄청나게 방대한 분량으로 완독이란 본인 살아 생전에는 이루기 어려운 작업으로 사료된다. 살아서도 못하는 데 죽어선들 할 수 있을까하는 한심한 생각도 해본다. 완성이란 5권을 모두 구입했다는 이야기다. 그것도 모두 중고로 말이다. 음 하하하. 작년 9. 1. 중고샵에서 1권 <땅과 인간>을 처음 구입한 것을 시작으로 하여 9.15.에 5권 <역사 기술 인간>을 구입했고 같은 해 11.21.에는 4권 <인간과 인간>을,  2010. 2.12.에는 2권 <기독교와 인간>,  역시 같은 해 5. 1.에 마지막으로 3권 <하늘과 인간>을 구입함으로써 장장 8개월에 걸친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중고샵에서 구입한 사유를 밝히자면 두말 필요없이 싼 맛에 산 것인데 작금에 이르러 그 경제적인 손익을 계산해 보자면 셈이 매우 복잡하지만 대충 이러한 것 같다. 중고 구입가는 5권 합해서 123,140원이고, 신간 5권의 정가는 189,000원으로 정가의 할인가는 172050원인데, 마일리지 4,220원과 플레티넘 멤버십 마일리지 5,160원을 제하면 162,670원으로 39,530원을 저렴하게 구입한 것 같은데, 가만 생각해보면 중고구입에는 배송비가 추가되는 경우가 있고 신간은 땡스투에다가 5만원이상 구입시에 2000원 추가 할인이 있고, 중고가 비록 새 책에 버금가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그래도 이건 남이 보던 헌책인데..흠흠’ 하는 약간의 께림직함이 있고, 책 5권 사는데 8개월이나 걸렸으니 중고가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그 마음의 초조함과 중고가 올라왔는데 누가 먼저 사가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 등 심리적, 정신적 부담감 같은 것들을 다 끌어모아 그것들을 돈으로 환산한다면 차액 39000원 정도는 가볍게 넘어설 것도 같다. 이렇게 생각하니 왜 안달복달하며 눈알 빠지게 중고를 기다렸나하는 후회의 마음도 생기고하지만 또 한편으론 그때 그 당시에 소생이 운용할 수 있는 자금의 규모가 그정도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준엄한 경제원칙에 입각하자면 당시로서는 그 정도의 심리적 정신적 희생은 마땅히 감수해야 할 숙명이었던 것 같다.  

구구절절하게 이야기했지만 어쨌든 오늘날 그 유명하다는 임석재의 서양건축사 5권을 모두 구입하여 책장에 모셔놓고 보니 몹시도 흐뭇하기는 흐뭇하다.  언제 읽을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언젠가 먼 훗날 시간이 난다면 찬찬히 쓰다듬으며 읽어보고 싶다. ‘임석재의 서양건축사 읽기 5개년 계획’이라도 세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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쟈니 2010-05-26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포스팅을 보고 저도 지름신이 ㅡ.ㅡ;;;; 저만 지름신을 영접할 수 없어서, 추천합니다. ^^;

붉은돼지 2010-05-28 08:43   좋아요 0 | URL
쟈니님도 중고로 함 구입해 보심이 어떨지.....(인내와 끈기가 무지 필요하다는...성격 급한 인간은 속에 천불날 수도 있다는..말씀을 드림)
 
<메두사의 시선>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메두사의 시선 - 예견하는 신화, 질주하는 과학, 성찰하는 철학
김용석 지음 / 푸른숲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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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견하는 신화, 질주하는 과학, 성찰하는 철학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신화야 누구나 좋아한다. 물론 혹자 중에는 별 시덥지않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어린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대충적으로다가 재미있어 한다. 사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재미있다. 야리꾸리한 이야기도 많이 나오고, 별별 괴상한 짐승과 호색한 신들과 영웅들과 미녀들이 등장하고, 말하자면 드라마틱한 드라마의 연속이다. 상징과 은유의 바다요 상상력의 보고라 할만하다. 

반면 과학과 철학은 대충적으로 어려운 학문이다. 요즘은 쉽게 쓰여진 대중적인 관련도서들도 많이 나오고는 있지만 어쨌든 과학이나 철학이라고 하면 어렵다는 생각이 우선적으로다가 먼저 든다. 소생이 어릴 때는 장래 희망에 과학자라고 당당하게 적는 어린이들도 많았는데 요즘은 거의 없지 싶다. 철학은 뭐 더 말할 것도 없다.  

한번 슬쩍 보기만 해도 땡땡하게 굳어버리는 뱀대가리 메두사, 수간으로 태어났다가 영웅 테세우스의 몽둥이에 맞아 죽은 소대가리 미노타우로스, 어줍잖은 수수께기로 사람들 놀리다가 똑똑한 오이디푸스에게 걸려 절벽에서 떨어져 죽은 스핑크스, 공자앞에서 문자쓰다가 - 물론 잘 쓰기는 했는데 - 뒤지게 귀싸때기 맞고 피 본 아라크네, 영화 마네킹의 모델 피그말리온, 등등 신화는 그 속의 무수한 상징과 은유를 다 해석하고 풀이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이야기 그 자체로서 무척이나 재미있는데, 그 재미있는 이야기를 철학적으로 풀이한 본 책은 소생같은 문외한이 읽기에도 별 재미도 감흥도 없다. 그래도 혹시 신화의 철학적 해석에 관심있는 분들은 일독을 하시든지 말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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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속의 세상, 세상속의 교회>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 - 법학자 김두식이 바라본 교회 속 세상 풍경
김두식 지음 / 홍성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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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런 말을 하면 어떨지 모르지만 한국 교회에 대하여 호의적인 비기독교인은 거의 없다고 소생은 생각한다. 감히.(이건 순전히 소생 혼자의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소생 주위의 분위기가 대체로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고 기독교에 존경할만한 목사님이나 신자들이 없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그 이유는 이 책에도 나오지만 우선 교인들에 대한 비교인들의 기대치가 무척 높은 점을 들 수 있겠다. 똑같은 짓을 해도 교인이 하면 아~ 저 사람은 예수 믿는다는 사람이 어떻게 저런 행동을..쯔쯔쯔...,어쩌고 저쩌고....이리 되는 것인데, 이리 되는 원인은 교인에게도 일부 있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항상 사랑과 용서라는 너무나 좋은 말을 입에 붙이고 다니지만 누구나 그렇듯이 사랑과 용서의 삶을 살기란 어려운 법이다. 말씀만 익은 이가 되기 십상인 것이다.    

 

다음은 기독교의 배타성을 들 수 있겠다. 요즘은 개신교에서도 석가탄신일에 축하 메시지를 보내는 등 분위기가 상당히 화기애애하게 관용적으로 흐르고 있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하느님이 진실로 우주를 창조하고 만사를 주관하는 유일신이라면 플랜카드를 내걸 것이 아니라 유일신을 영접하지 못하고 진실에 눈 어두운 이교도를 궁휼히 여겨 진심으로 전도해야 마땅할 것이다.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 자꾸 옆길로 빠지려는 자식을 가르치는 부모의 마음으로 말이다. 불교야 보살을 만나면 보살을 죽이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는 종교이고, 고승대덕들 중에는 날이 몹시 추워 불알이 얼얼하게 얼면 도끼로 목불木佛을 쪼개 장작을 만들어 태워서리 언 불알을 데우는 스님도 있다고 했으니 야소 탄생을 축하하여 곡차라도 한 잔 할 수 있겠지만 야소교의 입장에서 보자면 유일신을 인정하지 않는 이교도를 대량으로 양산하게 되는 수괴로서의 석가모니 부처의 탄신은 그리 축하할 만한 일은 아닐 것인데 ‘축석가탄신’ 플래카드를 내붙이는 것은 어찌 보면 기만적인 통일전선전술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지금은 중세처럼 기독교왕국도 아니고 뭐 어디서 오합지졸일지언정 십자군을 끌어 모을 수도 없는 세상. 이성과 합리와 관용이 나름 득세하고 판치는 계몽주의 인본주의 시대에는 잠시 수그려 있자는 전술.   

 

교인들의 언행불일치야 사람살이가 다 그런 것으로 널리 양해될 수 있는 것이겠고, 기독교의 유일신 신앙이 갖는 배타성은 어찌보면 사랑이라는 계명보다 더 강력한 흡인력으로 작용하여 오늘날 득세의 원인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본다. 아마도 세계에서 신자가 가장 많은 종교는 유일신교인 기독교(천주교 포함)와 이슬람교일 것이다.     

 

2.
과거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이나 조성기의 <야훼의 밤> 같은 소설을 무척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난다. 그때나 지금이나 가지고 있는 의문들. 정비석의 <산정무한> 식으로 말하자면 유구한 영겁으로 보면 천년도 수유라 할 것인데, 고작 60~70년 찰나지간의 인간 생애에 실수든 뭐든 어쨌든 한 순간의 결정으로 하느님을 영접하지 못하였다고 죽은 후에 억만겁년 영원의 시간을 불구덩이에 떨어져 고통을 당하여야 하는 것은 너무 억울한 일이 아닌가. 살아생전 온갖 악행을 저지른다고 하더라도 죽는 순간에 진심으로 회개한다면 천국에 들 수 있고, 반대로 평생 정직하고 타인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았더라도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진다니 이 무슨 황당한 이야기란 말인가. 알수 없는 일. 아~ 어찌 신의 높고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있으리오.   

 

3.
1장 <교회속의 세상>, 2장 <비전과 욕심>, 3장 <진보와 보수>는 비기독교인이 볼 때 무릎을 ‘딱’ 치면서 ‘맞다! 말 잘한다.’ 라고 할만한 깊이 공감할 만한 내용들이다. 나름 교회에 관심있는 비신자들이 교인 혹은 교회를 욕하는 내용들이 총망라 되어 있다. 근100여년의 일천한 개신교의 역사에 비해 한국 개신교의 양적 팽창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배고프다고 한번에 너무 많이 처먹으면 속에 탈이날 수 있느니, 키도 한번에 너무 크면 허벅지가 트고, 경제도 그렇지만 급속한 성장에는 그늘이 있기 마련. 4장 <콘스탄티누스>, 5장 <16세기>, 6장 <중세의 이단>은 교회의 역사와 교리에 대해 너무나 많은 공부가 되었다. 특히 6장은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6장의 제목 <중세의 이단- 먼저 실험을 시작한 사람들>이라는 제목도 유의미하다. 이단이란 것이 교리를 멋대로 해석하여 도덕적 윤리적으로 타락해버린 사악하고 괴상한 집단이 아니라 부패한 기존 기독교에 대항하여 일종의 개혁적이고 진지한 실험을 용감하게 감행했던 선구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4~6장은 언제 시간내어 다시 한번 읽어 봐야 겠다는 생각이다. 7~9장은 한국교회가 나아가야할 방향이나 실험적 대안 등에 대하여 작가 자신의 생각들을 정리한 내용이다.   

 

4.
이건 사족인데, 한권의 책을 읽다가 그 책 속에서 또 다른 책을 발견하는 것은 말하자면 가외의 즐거움으로, ‘엔도 슈사쿠’라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깊은 강>같은 책을 썻는데  아직 읽지는 못했지만 구입해서 서재에 모셔두고는 있는데, 이 엔도 슈사큐가 <숙적>이라는 책을 지었다고 한다. 그 내용인 즉슨 소생이 무척이나 좋아라하는 일본 전국시대 이야기로, 그 유명한 가토 기요마사와 고니시 유키나가의 이야기인데, 엔도 슈사쿠 만한 작가가 쓴 역사소설이라는 점에서 몹시 기대가 되어 즉시로 알라딘에 검색했는데 마침 또 중고시장에 저렴하게 나와 있는 넘이 있어서 두권(1,2권임)을 언능 주문했다. 그런데 이 ‘숙적’이 이 책에서 언급된 이유는 바로 고니시 유키나가가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다는 점 때문이다.(엔도 슈사큐도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다고 한다.) 그래서 고니시에게 상당히 호의적이라는 이야기인데, <도쿠가와 이에야스>(아시다시피 이건 전32권짜리다, 소생은 이걸 두 번 읽었는데 무척 재미있더라나)를 보면 두 사람 다 히데요시의 가신으로 히데요시 사후에 가등은 도쿠가와편에서 서고 고니시는 히데요시의 아들 편에 서서 싸우지만 고니시보다는 가등에게 보다 호의적이고, 저간의 복잡미묘한 사정이야 많겠지만 어쨌든 가등은 결론적으로는 히데요시를 배반해서 잘먹고 잘살아 지금도 일본 구마모토에 가면 그의 동상이 늘름하게 서 있고 가등의 본거지인 구마모토 성은 일본3대 고성의 하나로 소생도 가봤는데 볼만한 곳이더라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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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혁명>을 읽고 리뷰를 남겨주세요.
밥상 혁명 - 세상을 바꾸는 21세기 생존 프로젝트
강양구.강이현 지음 / 살림터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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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 혁명이라고 하니 문득 밥상이 그리워진다. 옛날에는 밥상에 빙 둘러앉아 밥을 먹었다. 그게 언제 이야기인지 까마득하게 생각된다. 우리집은 대가족이어서 저녁 때가 되면 큰상을 두명이서 양쪽 끝을 잡고 안방으로 옮겨 빙 둘러앉아 먹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설거지 거리도 엄청났을 것이다. 지금 셋이 먹는 설거지거리도 귀찮아 마누라하고 가위바위보를 하니 주사위를 굴리니 어쩌고 하는데 당시 아버지는 말할 것도 없고 누나들도 공부한답시고 도와주지 않은 설거지를 엄마 혼자 다 할려면 참 많기도 많았을 것이다. ) 당근 아버지가 먼저 한 술 뜨셔야 식사가 시작되었다. 그때는 뭐 유전자 변이 식품도 없었고, 유기농업이니 공정무역이니 그게 뭐 밥달라고 개가 짓는 소린지 등가렵다고 소가 우는 소린지 그런 단어도 아마 없었던 시절이라 속시끄러운 콩가루 집안에서는 혹간 밥상이 전복되는 경우가 있기도 했지만 밥상이 혁명하는 사건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었다. 무슨 소린지.   

 

말도 안되는 소리는 이만 각설하고, 항상 그렇듯이 듣거나 읽어 아는 것 하고 실천궁행하는 것은 별개 문제다. 자식 두엇 키우면서 사교육비에 등골이 휘고 부모 봉양이다 주택 마련이다 노후 준비다 이래저래 분주하기는 되게 분주한 게 쥐꼬리 선낯곱쟁이 월급받으며 광역시의 변두리에서 그럭저럭 근근히 먹고싸는 소시민으로 말하자면, 이 물건(먹을거리)이 몇만 마일을 날아왔든 몇십만백만 마일을 뛰어왔든 값싸면 최고다. 거기다가 맛도 좋으면 금상첨화 왠떡이냐다. 웰빙은 다음이고 세계화와 농업정책에 대한 관심은 더더더 다음이다. 하물며 온실가스 배출과 관련한 환경문제는 말해 무엇하리오다. 광우병 파동으로 반짝이며 흔들리고 넘실대던 촛불의 물결이 서울광장을 꽉꽉 채워 광장이 미어터질 듯 하던게 언제였던가. 미국산 쇠고기 지금 잘팔리고 또 잘들 자시고 계신다. 한우는 귀족들이나 먹는 음식이다. 상것들 먹는게 양반들과 같을 수가 없다. 그저 배 부르면 그만이다. 공짜면 양잿물도 마신다고 했다.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는 말이다. 피부에 직접 접촉되면 모두가 민감하게 반응할 것인데(뾰족한 바늘로 몰래 옆에 있는 사람을 살짝만 찔러 봐라 아마 깜짝 놀래 자빠질 것이다) 그때는 이미 대책을 세우기에는 너무 늦었을 것이다. 그래서 소생 생각이 먹거리 문제, 환경문제 등에 대해서 어릴 때부터 교육을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보고, 비록 소생이 근근히 먹고싸는 소시민이지만 우선 가족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로컬푸드나 유기농산품에 조금 관심을 가져봐야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세계화니 환경문제니 농민을 죽이는 농업정책이니 하는 조금 심각스러운 것들은 일단 차치하고 말이다.  

 

이건 사족지나 오족쯤 되는 이야긴데(말하자면 쓸데없는 이야기라는 뜻이다), 로컬푸드 영수증에 온실가스 줄인 양이 표시되어 있는 사진을 보다가 문득 생각났다. 지난주 목요일에 서울 출장을 다녀왔는데 저녁에 동대구역에 도착해서 보니 나가는 출구 벽면에 크게 쓰여져 있었다. “당신은 오늘 소나무 여덟 그루를 심으셨습니다”. 승용차로 서울 가는 것 보다 열차타고 가는 것이 당근 편하고 돈도 적게 들고 또 시간도 빨라서 열차를 이용했을 뿐이고 열차안에서는 침을 질질 흘리면서 잠을 잤을 뿐인데, 소생이 혹시 꿈에라도 소나무를 한 그루 심었다면 모를까 동대구역에 내려서 저런 문구를 떡 보니 뭔가 소홀찮게 켕기는 기분이다. 주말에 어디 산에라도 가든지 해서 아니면 아파트 단지내 화단에라도 작은 묘목 하나쯤 심어야 할 것만 같다. 잘 한 일도 없는데 과분한 칭찬을 받으면 이거 이넘이 나를 놀리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법이다. 온실가스 줄인 양’이나 ‘소나무 여덟 그루’는 허수고 뭔가 속임수라는 생각이 든다. 소생이 너무 민감 과민하게 반응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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