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끼 뚝딱! 맘 편한 토핑 이유식 - 한 번 보고 따라 하는 우리 아이 영양 식단
율마(오애진) 지음 / 온더페이지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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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하율이네 블로그 와 '맘편한 토핑이유식' 까페를 운영하고 있는 오애진 작가는 우리 아이 영양 식단, 맘편한 이유식을 개발하였다. 작가에게는 두 아이, 하율이 지율이가 있다. 입이 짧아서, 이유식을 거부하는 아기에게 , 영양만점 이유식, 마음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아이 맞춤형 이유식, 알레르기에서 자유로운 이유식을 소개하고 있어서, 모유나 분유를 끊고 이유식으로 전환할 때, 아기가 반은 먹고, 반은 흘리는 이유식을 만들수 있는 이유식 요리를 소개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이유식을 시작한 뒤, 만 6개월까지 ,초기 이유식을 시작한다. 이유식 재료준비 부터,조리도구까지, 이유식을 만들 때 주의해야 할 것들, 책에서는 , 다양한 이유식을 만들 수 있는 방법,식자재 재료를 손질하고, 반찬을 만들면서,식자재 재료를 하나하나 손질할 때까지 하나하나 소개되고 있었으며,초기이유식으로는 아기의 성장을 도와주는 소고기,닭과,브로콜리 이유식을 초기이유식의 대표적으로 보면 된다.






7개월 8개월이 되면 ,중기이유식에은 흰살생선과 아보카도가 있다. 작가의 어린 아이 하율이가 소개되고 있으며, 이유싟 만들기 경험이 꼼꼼하게 소개되고 있었다. 대구,광어, 도미,가자미,우럭, 조기,갈치가 대표적인 흰살생선이며,흰살생선 이유식을 항 때 ,반드시 딱딱한 가시를 제거하고, 꼭꼭 씹어먹어서, 아기가 소화시킬 정도가 되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직 아기는 유치가 나오는 시기이기 때문에, 여느 아기들보다 치아가 늦게 나온다 해서, 초기,중기, 완료기에 다라서, 이유식 재료, 식단을 바꿀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편한 토핑 이유식>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글입니다.기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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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거란전쟁
길승수 지음 / 들녘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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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군의 침략은 벌써 10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었다. 거의 매년 거란은 고려를 침략했고 무수한 고려인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특히 9년 전 (1010년),3년 전 (1016년) 에는 양측의 주력군 간에 대규모 회전이 벌어졌었다. 그 두번의 전투에서 고려군은 모두 패해서 수만 명이 전사했다. 이번이 세 번째였다. 이 전투에 고려의 운명이 달려있었다. (-12-)

왕건은 사망하기 전에 ,후손들에게 유훈을 남겼다. 그것을 '훈요 10조'라고 한다. '훈요10조'에는 연등회와 팔관회의 지속적인 개최를 강조하고, 거란에 대한 적개심과 북진의 의지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33-)

고려 국경지역에 서북면과 동북면이라는 특별행정구획이 설치된다.서북면은 거란을 방어하기 위해서 설치한 것이었고,동북면은 동북쪽에 사는 여진족들을 방어하기 위해서 설치한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고려는 서북면과 동북면에서 걷히는 세금을 모두 이 지역의 국방비로 충당했다.

서희가 거란군에 대항하기 위해 설계한 방어 전략은 '방패와 창' 이 었다. (-95-)

거란군의 침공이 예견되자,고려는 세 가지 방어계획을 준비한다.

첫 번째는 압록강에서 도강하는 거란군을 기습하는 작전이었다.

두 번째는 통주 근처 삼수채에서 거란군과 일대 회전을 벌이는 것이었다. 앞의 두 작전은 비록 실패했지만 고려에는 아직딕 마지막 작전이 남아 있었다.

마지막 세번째는 동북면에서 군사를 차출하여 서경을 구원하는 것이었다. 이 계획에 따라 1010년 12월, 동북면도순검사 탁사정과 중랑장 지채문은 3천여 명의 동북면의 군사를 이끌고 서경으로 들어갔다. 탁사정과 지채문은 항복을 결정했던 서경부유수 우너종석 등 서경 지휘부를 일소하고, 서경에 온 노의와 유경을 베어버림으로써 항전의 결의를 다졌다. (-159-)

또한 성종 때 폐지되었던 연등회와 팔관회를 부활시켰다. 연등회와 팔관회 모두 국가와 개인의 안녕을 기원하는 행사였다. 어려운 시기에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고 하나로 모를 수 있는 국가적 행사가 필요했다.

그리고 불에 타버린 고려 초기 기록들을 복원할 것을 명령했다. (1013년). 이 일에는 많은 시간이 걸려서 20여 년이 지나서야 (1034년 즈음),칠대실록이라고 불리는 고려 초기 역사 기록물이 어느 정도 복원된다. (-229-)

소배압은 이번 전쟁을 준비하며 대담한 전략을 세웠다. 고려의 성곽을 공격하는 일은 의미 없는 일이었다.고려의 주력군은 패배시키는 것도 그다지 의미가 있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두 번이나 회전에서 대승을 거두었으니 고려를 무릎 꿇리지 못했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써야 할 것이었다. (-291-)

한국인에게 익숙한 노래 『한국을 빛낸 100인의 위인들』에는 노래가사'바다의 왕자 장보고 발해 대조영,귀주대첩 강감찬' 이 나온다. 이 노래가사 말 속 인물 장보고, 대조영, 강감찬과 연관된 현대인이 사극 전문 배우 최수종이다. 2023년 하반기에 살수대첩, 한산대첩과 더불어 3대 대첩으로 손꼽히는 귀주대첩을 모티브로 한 사극이 방영된다고 한다. 작가 길승수의 『고려거란전쟁』 의 주인공 강감찬이 2023년 하반기 KBS에서 방영될 사극, 최수종의 역할이다.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려라는 나라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고려는 936년 태조 왕건이 세운 나라다. 고려 (918~1392)는 몽골,여진,거란, 왜나라의 침략으로 500년 내내 전쟁 속에 살아왔다. 신라(BC 57~935년) 의 국운이 서서히 꺼지고 소멸되고 있었던 시점에, 북방에는 발해(698~926) 가 있었으며, 발해는 요나라가 될 거란족에 의해 멸망하였으며, 한반도에는 고려가, 거란 옆에는 여진족이, 중국 본토에는 송나라가 있었다. 유목민이었던 거란족은 호시탐탐 고려 땅을 탐내었으며, 26년간 3차에 걸쳐,고려거란전쟁, 즉 여요전쟁이 시작되었다.여요전쟁 중에 서희의 담판, 그리고 강감찬 장군의 승부수였던귀주재첩이 있다.

거란족 장수였던 소배압 (~1023) 은 10만 정예군을 앞세워 속전속결로 고려를 침입하였으며, 10만 대군으로 개경으로 곧바로 진군한다. 그가 개경으로 들어온 시기는 고려 8대 왕 현종이 있었던 시기로서, 서서히 왕권을 확립해 나가는 시기였다.거란족 장수 소배압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흥화진을 거치면서 ,곧바로 개경으로 가는데, 그 당시 문인이었던 강감찬 장군은 소배압의 전략을 미리 눈치채고, 철저한 준비를 하게 된다. 고려의 수도 개경을 탈취하려던 소배압의 계획은 실패하였고, 귀주에서,고려군과 전면전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귀주에는 강감찬의 전투부대가 대기하고 있었으며,소배압의 10만 군대가 섬멸된다. 평생 전쟁으로 살아왔던 고려 거란 전쟁의 귀주대첩의 결과, 요나라가 멸망하고, 여진족의 금나라가 세뤄졌다. 물론 고려는 앞으로 100년간 평온한 채, 몽골 족이 고렬를 침입하기 전까지, 고려는 평온한 나라가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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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협의 무지개 연구 - 무지개로 푸는 과학의 원리와 역사
김상협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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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원주민이 1,500년 전에 남긴 암각화에 무지개 그림이 있다. 무지개를 본 인류는 그 속에서 어떤 이야기들을 만들어 냈을까? 인류가 무지개를 목격한 순간부터 무지개 이야기는 시작된다. (-31-)

무지개를 만드는 물방울은 공처럼 표면이 동그랗다. 빛이 이런 물방울 속으로 들어가면 진행 방햐이 꺾인다. 빛이 서로 다른 물질의 경계면에서 진행 방향이 꺾이는 것을 '굴절'이라고 한다. 돋보기나 카메라에 달린 렌즈는 모두 굴절의 원리를 이용한 것으로 물체의 확대된 상을 보여준다.

비 온 다음 하늘에 떠 있는 물방을도 마치 렌즈와 같은 역할을 한다. 이 물방울 렌즈가 포착한 태양의 신비로운 모습이 바로 무지개인 셈이다. 우리가 렌즈가 들어 있는 망원경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행성서의 상을 확대해서 선명하게 보듯이, 물방울 렌즈로 태양의 상을 보는 것이다.

그래서 무지개는 물방울 렌즈로 본 태양의 모습이다. (-80-)

사실 달빛은 태양 빛을 달이 반사하는 것으로 햇빛의 스펙트럼과 달에서 오는 빛의 스펙트럼은 일치한다. 그러나 무지개의 모든 특성이 달무지개에도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꽤 보기 힘든 게 단점이다.아리스토텔레스는 "달에 의한 무지개를 50년 동안 두 번 봤다"라고 쓰기도 했다. (-112-)

당시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이 뉴턴의 이론들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뉴턴의 무지개 이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로는 최신 수학인 미적분을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많은 '수포자' 들이 미적분을 풀지 못해 직업 선택에 엄청난 제한을 받는데 300년 전 중세 사람들에게 미적분은 쉽게 범접하지 못할 공부임에 틀림이 없었으리라. 이 시기에 벌써 무지개 이론은 진보된 수학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따라올 수 없는 시점에 이르렀던 것이다. (-164-)

물방울의 지름이 1밀리미터 정도는 돼야 무지개가 만들어지는데 대기 중 이물질들은 물방울의 습기를 가로채서 무지개를 만들 물방울의 크기를 줄여 무지개가 만들어지는 것을 방해한다.

한편으로는 이런 희소성 때문에 무지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지만 막상 무지개가 뜨면 연예인이 나타난 것처럼 인증샷 찍기 바빠서 좀처럼 무지개를 진지하게 살펴보지 않는다. 무지개에 숨은 수많은 관찰 포인틀르 제대로 보지 못하고 또 무지개는 금방 사라져 버린다. (-223-)

친구와 함께 둘이서 호스 3~4개를 들고 정처 없이 하늘로 고루고루 물을 뿌리면 된다.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꿋꿋이 부려 보라. 순간 희미하게 무지개가 나타날 것이가. 무지개가 작게 보여 불만이라면 내 위치에서 좀 더 먼 곳에 물을 뿌리면 된다. 그러면 무지개가 좀 더 커 보인다. 대신 일부만 보일 것이다. 더 웅장한 무지개를 보고 싶자면 이제 호스로는 택도 없다. 소방서에 전화해서 소방차 몇 대로 하늘 높이 물을 뿌려야 한다. 그러면 거대한 무지개를 관찰할 수 있다. (-237-)

맑은 하늘에 보이는 무지개를 보면, 하늘로, 카메라를 들이댄다. 카메라 하나로,기분이 상쾌하다. 무지개는 평화로움과 행복으로 이어진다. 한편 무지개는 과학자들에게 연구대상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뉴턴의 무지개 이론 이전까지 무지개에 대해과학적 상식으로 굳어졌다. 그 당시 일반인에게, 무지개는 성스러운 존재였고,하늘과 인간을 연결하는 하나의 통로라고 생각해왔다. 맑은 날, 호숫가를 가면, 무지개가 보이고,가까운 댐에도 무지개를 볼 수 있다. 무지개의 본질이 태양에 비추어진 물방울이기 때문이다. 단 무지개가 생성되는 원리는 이 책에 소개되고 있으며,어릴 적 호수로 물장난을 할 때,우연히 발견한 무지개를 보며서, 흥미로웠던 기억도 있다. 책에는 무지개의 원리에 대해서, 원소의 구조까지 분석할 수 있다.

뉴턴이 발견한 미적분학은 무지개의 물리학적 원리를 이해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발견이었다.하지만 뉴턴(1643~1727년) 이 살았던 시기에는 미적분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극소수였다.물론 뉴턴의 무지개의 과학적 원리를 이해하는 이들도 소수였다. 하지만 과잉 무지개가 갑자기 등장하였다. 그 과잉 무지개를 이론적으로 풀어낸 영국의 물리학자 토머스 영도 등장하였다.그는 빛의 입자성에 더해 파동성을 발견하였고,그것이 무지개의 새로운 원리를 발견하게 된 과학적 진리를 얻을 수 있었다.

지금 우리는 무지개를 볼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 도시로 갈수록 불순물이 많아서,무지개가 생성될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물이 있는 곳, 호숫가,시골에서, 안개 낀 날씨에 무지개가 나타나고, 그것이 흥미로운 사진으로 관찰이 되고 있다. 이 책에는 무지개를 사진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리지 말고, 무지개의 과학적 원리를 이해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과학적 진리와 연결하고 있다. 작성자 가시고기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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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서, 나의 일곱 번째 이름
이현서 지음, 장영재 옮김 / 실레북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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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극장, 식당, 또는 세련된 대중문화로 유명한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혜산의 매력은 고대로부터 한국과 중국의 국경을 이룬 압록강과 가깝다는 것이었다. 북한처럼 폐쇄적인 국가에서 혜산은 세상에서 가장자리에 있는 되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 지역 사람들에게 혜산은 온갖 진귀한 외국 제품(합법적, 불법적, 그리고 매우 불법적인) 이 들어오는 관문이었다. 따라서 혜산은 무역과 밀수의 중심지로 번창했으며 지역 주민들에게 많은 혜택을 안겨 주었다. (-33-)

1997년 겨울에 우리 집 가까이 사는 학교 친구 하나가 자기와 함께 강 건너 중국 장백현에 가 볼 생각이 있는지 물었다. 우리 어머니처럼 친구의 어머니도 그곳에 거래처가 있었다. 친구는 벌써 몇 차례 강을 건너 장백에 갔다 온 적이 있었으며 방법을 알고 있었다.

민호 또한 여러 차례 불법 도강을 한 적이 있었다. 어린 소년들은 흔히 그런 일을 했다.민호는 건너편에 있는 중국 아이들과 같이 놀고 싶어 했다. (-138-)

'사랑하는 아버지,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학교 시절 한자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하도록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자를 배우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거린다. 마지막 필기 시험이 수사관들의 마음에 끝까지 남아 있었던 의심을 몰아냈다.

아버지가 나를 구했다. (-211-)

한 웨이트리스의 소개로 처음 만난 브로커는 1만 6000 달러를 요구했다.나는 됐다고 했다. 두 번째 브로커는 더 높은 금액을 불렀다. 장백의 갱들이 떠올랐다. 내가 불법 체류자임을 아는 사람은 누구나 이를 이용하려 했다. 바가지를 씌워 최대한으로 돈을 뜯어내려 했지 도와주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갱스터를 피하려면 더 나은 전술이 필요했다. 그럴듯한 이야기를 꾸며내야 했다.(-235-)

"어떻게 2년 동안이나 내게 숨길수 있었지?" 마음이 상한 그의 말에는 긴장감이 돌았다."그렇게 오랫동안 내 면전에 대고 거짓말을 했단 말이야?" 그는 내가 적국에서 왔다는 사실보다 자신을 속였다는 것에 훨씬 더 화를 냈다.

"제발 이해해줘.: 나는 침착한 목소리를 유지하려 애쓰며 말했다.

"선양에 있을 때 나는 사람들에게 진실을 말했기 때문에 북한으로 송환될 뻔했어.나를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상하이로 왔고, 북한 친구 한 명만 진실을 알고 있어.이제 당신도 아니까 두명이지."

그는 다시 새로운 눈길로 나를 쳐다보면서 오랫동안 침묵을 지켰다. (-282-)

놀랍게도 우리는 내가 첫날 찾아왔을 때 밖에서 맥주를 마시며 무관심한 태도로 북한 사람은 없다고 했던 사람들이 있던 감옥에 도착했다. 엄마와 민호, 정말로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박에서 걱정밖에 할 게 없더라도 나는 매일같이 찾아왔을 것이다. 벽 너머로 "엄마! 민호야! 걱정하지만.내가 무슨 슈를 찾아서하고 살려낼 테니까." 라고 소리쳤을 것이다. 매일 오후에 이민국 사무소에서 이곳으로 와서 땅거미가 깔리고 매미 울음소리가 밤공기를 채울 때까지 않아 있었을 것이다. (-382-)

작가 이현서 는, 북한 양강도 혜산에서 성장했으며, 일일곱 되던 1997년 ,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넘어갔다. 북한과 중국의 국경지대에서 살았다. 생존을 건 탈출, 중국에서 감시원으로 살수 잇었던 건,아버지가 철저하게 딸에게 가르쳐 준 한자 공부 때문이었다. 언어가 생존의 도구였다는 것을 본인은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 사람이라는 것을 철저하게 숨겨야만, 중국에서 살아갈 수 있었다.

책에는 1997년부터 2008년까지 중국에서 어떻게 살아야 했는지 하나하나 살펴 볼 수 있다. 중국 상하이에서, 불법체류자로 살아야 했고, 중국어를 내 목숨처럼 여겨야 했다. 아무리ㅏ 가까워도 자신이 북한 사람이라느 걸 알아서는 안된다. 아느 순간 북하으로 송환도리 수 있기 때문이다. 10여년 동안 이름을 바꾸었으며, 자신의 신분을 철두철미하게 감춰 버렸다. 단 두 사람만이 무덤까지 가져가야 할 비일을 알고 있었을 뿐이며, 감춰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삶에 대해서, 비밀과 진실 사이에서, 어던 선택을 할 것인가 고민할 때가 있다. 작가 이현서의 삶를 보면, 우리가 느끼는 고통이나 아픔이 크지 않다는 걸이해할 수 있다.내 손가락에 찔린 가시가 이세상에 제일 아픈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결국 시간이 해결해 주며, 견디고 인내하는 삶이 나를 먹여 살려주며,어떤 삶에 내 앞에 놓여진다 하더라도, 나는 살아갈 수 있는 생존법, 처세법을 얻을 수 있다. 탈북민으로서, 사랑하는 이에게조차 나를 드러낼 수 없었던 그 시절의 아픔이 느껴진 삶, 아픔이자 슬픔이 될 수 있지만, 지나고 보면, 부질없는 것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어찌 되었든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면서 , 앞으로 전진하는 삶, 현재의 나를 돌아보면서, 다음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스스로 결정하고,선택할 수 있는 사람만이 행복한 삶을 얻을 수 있다. 이름>|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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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라탄이즐라탄탄 2023-05-26 0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어가 생존의 도구였다는 말이 이 분에게는 단순히 밥벌이 수준이 아니라 목숨이 왔다갔다 할 수 있을정도로 중요한 도구였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숙연해집니다.
 
밥 한번 먹자는 말에 울컥할 때가 있다 - 그리움을 담은 이북 음식 50가지
위영금 지음 / 들녘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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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로운 남쪽의 생활에서 빈자리를 채울 수 없는 마음.그것은 분단된 한반도의 아픔이고 고향을 떠나온자, 돌아갈 고향이 없는 자의 슬픔이다. 꽉 막힌 답답함을 풀어줄 무언가를 찾고 싶었다.

문득 덩그라니 놓인 김치냉장고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황급히 김치통을 꺼내 열고 김치를 입에 넣었다. 음식,맛, 어머니, 고향....머릿에서 단어들이 어지럽게 흩날렸다. 음식은 그렇게 기억의 중추신경을 자극하면서 현재의 나를 과거와 연결했다. (-11-)

둘째 오빠는 소아마비로 걷지 못해 늘 자리에 누워 있었다. 아버지가 약을 제조해 몇 년을 꾸준히 먹이자, 뒤틀리기는 해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어머니 이야기로는 약에 명태 애(간) 엑기스를 넣었다고 했다. 당시 명태 애는 만병 통치약이었다. 아버지는 눈이나 간이 안 좋은 사람이 명태 애를 많이 먹으면 해독작용으로 치료 효과가 좋다고 하셨다. (-58-)

밀가루로 만든 뜨더국을 쫄깃한 맛에 먹는다면 , 강냉이 가루로 만든 뜨더국은 구수한 맛에 먹는다. 하나를 선택하라면 강냉이 뜨더국을 고르겠다. 입에서 살살 녹는 맛도 좋지만 입자가 느껴져 씹는 재미가 있는 구수한 강냉이 맛을 넘지 못한다. (-127-)

투박한 엄마 손 같은 부채마 뿌리

얼기설기 잘도 뻗어가

굵고 긴 줄기 기름지게 영글어 가도

어무도 찾는 사람이 없었더라

한 줌의 식량을 얻을 수 있게 되자

수많은 사람들

산이 벌집 되도록 뿌리를 들어내고

이고 지고 기차타고 멀리 신의주까지

밀가루로 교환해

어려운 시기를 넘겼다.

부채마

그 연약한 허리 부여잡고

땅 밑에 뿌리로 산을 지키고 있음을

알길 없으니

자연과 인간이

궁핍으로 몸부림치고

쏟아지는 장맛비는

뿌리 없는 공간에 그대로 내리부어

그 큰 산이

휘청거리며 인가를 덮쳤다

1996년

홍수와 산사태가 빈번하더니

고향의 산은 벌거숭이가 되었다.

위영금 「부채마 뿌리 」 (-179-)

향수는 모두를 포용한다. 자신이 살았던 지역을 지금도 줄줄이 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말끔하게 잊은 사람도 있다.그렇더라도 몸이 기억하는 것이 있으니,그 시기먹고 살았던 음식이다. 고향 동창들끼리 만나는 사람도 있고, 라오스,미얀마, 태국, 캄보디아를 거치면서 우정으로 뭉친 사람들이 각자 다른 모습으로 만난다. 잊힌 사투리를 즐거이 듣고, 고향음식을 먹으며 지나간 날을 돌아본다. (-250-)

과거보다 풍요로운 삶을 살아도, 어려움 없이 살아간다 하여도, 마음이 텅 비어 있을 때가 있다.외로움과 쓸쓸함, 생존, 내 편이 없다는 답답함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현존하는 삶 에 있었다. 누군가는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 오는 경험들, 의식주, 물질, 과거들에 대해서, 어떤 이는 당연하지 않을 때가 있다. 전세계 유일하게 남한이 분단되어 있는 곳, 서로 떨어져 살아간 지, 70년이 넘었건만 ,살아온 민족의 정서는 사라지지 않는다.

작가 위영금.2968년 함경남도 고원군 수동구 자동에서 태어났다. 1998년 탈북을 하였고, 2006년 대한민국에 정착하였고,어느 덧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온 지,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왔다. 고향에 갈수 없는 삶, 강냉이죽 하나 먹을 수 없는 현재의 삶은 고달픈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북한에 나왔지만, 그것이 다시 북한에 들어가고 싶은 이중적인 생각을 할수 밖에 없었다. 고난의 행군 시기, 기아로 죽어가던 이들을 보면서, 탈북하기로 결심하였다. 살아가면서, 어디에 살아가든 ,현재의 장소보다는 나을거라 생각하였다. 죽기보다 더 두려운 것은 없었기에, 죽음을 각오하고 탈북했을 것이다. 이제 대한민국 국민이 되었다. 하지만 , 내마음 속의 울컥거리게 되는 정서는 여전히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북한 고향에 머물러 있었다. 어쩔 수 없는 현실, 그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는 고국에 대한 향수, 탈북민과 정서를 공유하였고, 그것은 우리를 슬픔과 그리움으로 채워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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