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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아의 로렌스 - 전쟁, 속임수, 어리석은 제국주의 그리고 현대 중동의 탄생 ㅣ 걸작 논픽션 12
스콧 앤더슨 지음, 정태영 옮김 / 글항아리 / 2017년 6월
평점 :
"너에게 줄 선물이 있노라."
로렌스 대령은 영국 역사를 공부한 이로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국왕에게 상을 받을 때 이용되는 나지막한 의자에 그가 무릎을 꿇으면 ,국왕은 수백 년 전통의 근엄한 예식(쟁반에 놓인 어깨띠와 메달을 수여하고 칼을 들어 어깨를 두드리면 수상자가 맹세를 외친다) 을 통해 로렌스를 대영제국의 기사로 임명할 참이었다. (-35-)
로렌스와 울리에게 오스만 군인들보다 훨씬 더 커다란 도전은 빈 사막의 '황량함' 그 자체였다. 두 고고학자는 뉴컴의 잦은 간섭에도 불구하고 지도 제작에 나선 군인들과 따로 움직였다. 그들은 낙타와 인부 몇몇을 데리고 꾸준한 속도로 험한 곳을 돌아다니면서 유적지를 찾아다녔다. 그 지역의 기후에 적응된 현지인과는 달리 비교적 선선한 시리아 북부에서 지냈던 로렌스와 울리에게 타는 듯 내리쬐는 햇볕은 끔찍한 고토이었다. (-121-)
""우리의 주적은 터키입니다. 터키가 무너질 날이 임박한 지금, 우리가 남의 일인 양 팔짱을 끼고 있으면 되겠습니까? 터키인들은 곧 우리를 의심할 것입니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우리를 파멸시킬 수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겁쟁이가 아닌 이상 우리는 터키를 상대로 쓸모 있는 정보를 캐내서 영국에 전달해야 합니다. (-240-)
아랍 반란 소식은 정치적인 측면에서 카이로와 런던의 환영을 받았다. 갈리포리와 쿠트에서 연이어 쓰라린 낭패를 당한 터에 마침내 중동발 희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슬람 성지의 수호자이자 아랍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 중 한 명인 후세인이 콘스탄티노플과 무력 충돌을 벌인 덕분에 터키와 독일이 범이슬람 지하드라는 충격 요법을 촉발할지도 모른다는 오랜 두려움이 확실히 제거되었다는 점이다. (-323-)
헤지즈로 돌아온 이후 로렌스는 이러한 운명을 맞기 전에 상황을 바꿔보려고 노력해왔다. 그러한 활동의 핵심 표적은 로렌스의 현지 직속 상관인 시릴 윌슨 중령이었다. 그는 임시로라도 로렌스를 아라비아에 배치해서는 안 된다고 맹렬히 반대했으며, 이 사실을 익히 알고 있는 로렌스로서는 그동안 제다에 상주하는 윌슨을 제치고 카이로의 고위급 인사들과 직접적인 소통을 시도했다. 12월 5일 길버트 클레이턴에게 보낸 전보가 그 첫 번째 시도였다. (-412-)
로렌스 역시 사이크스-피코 협정을 철저하게 모른 체했다. 사이크스가 파이살에게 밝힌 멸균처리 비전과 충돌할 수 있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가 후세인에게 떠들어댄 버전과 다를지도 몰랐다. 모든 정황을 고려할 때 대립을 촉발한 쪽은 모두 기록을 남기진 않았으나 대단히 열띤 대화였을 것이다. 그리고 로렌스가 사이크스에 대해 노골적으로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한 것도 그날 이후부터인 것으로 여겨진다. 사이크스가 어떻게든 자신을 물어뜯어서 변방으로 몰아내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볼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513-)
또한 그런 능력이 그들의 친구가 될 수 있는 핵심이었다.
이들에게 로렌스는 도적 떼의 두목이었고,습격 대장이었고, 진정한 전투의 유일무이한 지휘관이었습니다. 로렌스 역시 아랍인들에게 귄위를 내세울 수 있는 주된 근거가 그것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로렌스와 함께 야르무크 작전에 나서기로 한 현지 주민들은 표적이 열차가 아니라 철교라는 설명을 듣고는 싸늘한 표정이었다. (-627-)
1918년 9월 12일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지 50개월이 되던 날이었다. 그날 작지의 전황을 살펴보던 연합국의 군사 및 정치지도자들은 동맹군의 붕괴가 머지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확신이 오판으로 증명된 사례가 한 두 번이 아니었기에 안심할 수는 없었다.당시 서부 전선의 독일군은 춘계 대공세에서 획득한 땅을 도로 내어주고 힌덴부르크 저지선 뒤로 물러나 전열을 가다듬고 있었다. (-739-)
프뤼퍼는 히틀러와 같은 꿈을 꾸었다. 독일 부활의 꿈이었다. 그러나 초기 독일 사회에서는 이러한 나치들에 대해 독일의 수많은 보수 인사쯤으로 여겼다. 다소 건방지지만 쓸모가 없지 않은 얼간이, 즉 다듬어지지 않은 난동꾼들이지만 그럴싸한 조직으로 통제할 경우 이용가치가 있을 것이라는 정도의 인식이었다. 그러나 프뤼퍼는 1936년이 되기 전에 이와 같은 오해와 혐오감을 완전히 떨쳐냈고, 외무성 인사 책임자로서 히틀러 정권에 동참했다. 그리고 다음해에는 정식으로 나치에 입당했다. 1939년 9월, 폴란드 침공으로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에 불을 댕기자마자 프뤼퍼는 브라질 대사로 임명받아 남미로 떠났다. (-807-)
스콧 앤더슨의 『아라비아의 로렌스』 는 실제 주인공 영국 장교였던 T.E 로렌스 (1888~1935) 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그의 실제 이야기가 영화 『 아라비아의 로렌스』 로 제작된 바 있다. 그 영화는 1962년에 제적되었고,지금까지 역대 영화 최우수 작품 10위안에 손꼽힐 정도로 수작이다. 4시간 가까운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10년 정도의 제작기간이 걸렸으며, 그 영화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제국주의 국가 독일,영국, 프랑스, 그리고 오스만투르크 제국, 페르시아 제국에 대해서, 전쟁의 양상을 이해하는데 이해를 돕고 있다
독일과 영국은 전쟁을 한창 벌이는 중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은 처칠 수상이었고,아랍권 전쟁에서, 아랍 역사에 정통한 T.E 로렌스 를 투입하였다.그건 터키, 즉 오스만 제국과 독일이 서로 유착관계에 있는 것을 보고,두 나라를 떼어내어야 중동 전쟁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다고 보았으며,그것이 어느 정도 주요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T.E 로렌스 는 아랍 민족과 아랍 부족국가들과 소통하면서, 불가능한 전쟁 미션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아랍 역사를 전공하였지만, 전쟁에서 유리한 곳을 선점하기 위해, 화학을 공부하였고, 다리를 직접 폭파를 시킬 수 있는 화학과 관련한 지식으을 습득하는데 공을 들이게 된다.
아 과정에서 그가 영국 정교로서 해왓던 역할은 무시할 수 없었고, 소위 기대하지 않았던 결실을 영국군에게 얻어갔다. 독일의 힘을 빼았을 뿐만 아니라, 독일과 터키가 서로 연합하는 것을 해체했다. 영화는 실제 아라비아 사막에서 전쟁이 시작되었고, 총과 칼, 말과 낙타가 어우러지는 가운데, 중동 전쟁의실체를 적나라하게 묘사하였다. 그리고 영화나 그가 쓴 자서전을 읽어 본다면, T.E 로렌스 의 리더십과 전쟁 수행능력을 이해할 수 있었고,제1차 세계대전은 영국이 주도한 연합국의 몫으로 돌아갔으며, 독일은 값비싼 전쟁 배상금을 토해내야 했다. 물론 이 책에는 중동 여러 국가들이 등장하고 있으며, 유럽과 아랍인, 페르시아인, 터키가 주축인 투르크족까지, 그들이 수행한 전으로 인해 중동에 사우디아라비아,이스라엘과 같은 신생 나라들이 생겨났고, 민족의 특성과 무관하게 ,사이크스-피코 협정 으로, 영국과 프랑스 주도로 영토를 직선으로 나누었기 때문에,지금까지 끊임없는 중동 국가 나라들의 투쟁과 내전이 지속되고 있다.물론 시리아ㅓ, 레바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내전도 여기에 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