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잘 풀리는 인생
김새해 지음 / RISE(떠오름)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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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풀리는 인생은 내가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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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잘 풀리는 인생
김새해 지음 / RISE(떠오름)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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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엔 겨우 기능을 하는 신장을 달래가며 살았다. 먹는 것, 마시는 것, 자는 것 모두 신장에 부담되지 않는 선 안에서 조심고심 산다. 하지만 이는 내 약점이 아니라 강점이다. 나는 병을 앓게 된 이후, 치료도 받지 못하고 고통받는 환자와 그들을 돌보는 가족들에 대한 커다란 공감대를 가지게 되었다. 또 주어진 시간 안에 빠르게 일처리를 하는 습관이 생겼다. (-73-)

모든 좋은 문구나 가으이는 특히 일어나자마자 그리고 잠들기 전에 집중적으로 들었는데 ,무의식 속에 강력한 힘을 불어넣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지내며 많은 것이 변했다. 언제 어디서나 희망을 말하고, 희망을 노래하고, 희망을 찾고 ,희망을 전하는 초긍정형 인간이 된 것이다. (-130-)

나의 증상은 점점 악화되었다. 나중엔 너무 예민해져 평소엔 느끼지도 못했던 남편의 숨 냄새를 맡고 비위가 상해 구토를 참을 수 없었다. 엘리베이터에 타면 함께 타고 있는 모든 사람의 각기 다른 숨 냄새를 전부 맡을 수 있었다. 후각이 너무 예만해진 것이다 .남편은 나를 위해 향이 없고 간단히 먹을 수 있는 빵이나 주먹밥 등으로 나를 위해 햐이 없고 간단히 먹을 수 있는 빵이나 주먹밥 등으로 끼니를 대신하며 눈에 띄게 말라갔다. (-198-)

누구나 주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주는 즐거움을 느낀 사람들은 받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을 느낀다. 나는 여행을 통해 많은 노숙자를만났다. 그들 중에는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는 시민권자나 대학 졸업자도 있었다. 그들은 학교를 다니며 아르바이트로 한 달 내내 일해 봐야 50만 원도 벌지 못하는 내게 돈을 달라고 손을 벌리곤 했다. 나는 오죽하면 나에게까지 손을 벌릴까 하는 생각에 그들에게 돈을 주곤 했다. 그런데 칼리지 사회복지 담당 교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돈을 주면 약을 구하니, 정 그들을 돕고 싶다면 반드시 물품으로만 주라고 하셨다. (-271-)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있고,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있다. 이 세상에서 주어진 시간 안에 초긍정형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어떤 습관이 필요하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싶다면, 『무엇이든 잘 풀리는 인생』을 읽어 보면 가능하다. 우리 앞에 주어진 환경이나 조건과 무관하게 나 스스로 긍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으며,설령 내 앞에 깜깜한 일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폭력과 혐오, 분노가 가득한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희망이 필요하다. 자기 긍정은 자기 사랑으로 이어질 수 있고, 누군가를 아끼며, 서로가 함께 상호존중하며 살아갈 수 있다. 받는 사람이 아닌 주는 사람이 되는 것, 특별한 것 아니더라도,내 손안에 있는 것 하나를 누군가에게 주겠다는 마음가짐 하나면 충분하다.

저자의 삶은 사실 매우 어렵다. 직업적으로 신장질환을 가지고 살아왔으며,그것을 꾹 참고 견뎌야 한다. 10년 동안 신장질환으로 인해 견뎌내야 했고 고통스러운 경험을 스스로 감내하면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으며,내 앞에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결코 넘어지지 않겠다는 마음 가짐을 안고 있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그런 삶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른채 살아간다. 내 앞에 주어진 인생이 결코 나에게 유리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살아간다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고,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섭섭함에서 벗어나 내가 가진 것을 스스로 보고, 느낌면서, 감사와 행복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다.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 나에게 주어진 삶에 대해서,고마워한다면,저자가 꿈꾸었던 그 꿈,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가면서 희망과 행복,긍정을 스스로 만들어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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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 한국전쟁에 대해 중국이 말하지 않았던 것들 걸작 논픽션 4
왕수쩡 지음, 나진희 외 옮김 / 글항아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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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반도국이다. 남북 직선 길이는 약 800킬로미터,동서 최대 너비는 약 300킬로미터, 면적은 약 22만 제곱킬로미터다. 반도 남부는 살기 좋은 기후를 자랑하는 농산물 풍작 지역이다. 북부는 산림이 무성하고 광산물이 풍부하다. 한국은 동아시아 교통의 요충지로서 특수한 지리적 위치로 인해 무시할 수 없는 전략상의 의미르 지니는 지역이다. 동해를 향해 도약판 형태로 뻗어 있어 강대국이 극동 지구를 침입하는데 가장 간편한 필수 경로인 동시에 타국의 침입을 저지하기 위한 천연 교두보이기도 하다.북위 38도선은 한반도 중부를 가로지른다. (-29-)

6월 26일 저녁 7시 15분, 대통령의 초청으로 블레어 하우스에 모인 백악관과 국방부 고위관료들이 백악관에서 급히 준비한 만찬을 들었다. 저녁상을 물리자 식탁은 바로 회의 탁자로 변했다. 회의에서 에치슨이 제기한 세 가지 제안이 통과됐다. 첫째, 극동 주재 미군 총사령관 맥아더에게 권한을 위임해 한국에 필요한 지원을 제공할 것, 둘째, 미 공군에 명령을 내려 미국 대사관 직원과 교민, 한국에 체류 주인 미국인들을 철수시키고 북한 인민군 지상부대를 폭격할 것, 셋째, 미 제7함대에게 즉각 타이완 해협으로 가서 중국 공산당의 타이완 공격을 저지할 것 등이 그 내용이었다. 특히 세 번째 제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제안은 현재까지도 역사학자들의 논쟁이 그치지 않는 부분이다. (-36-)

트루먼의 반신반의하는 얼굴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중국군 참전 가능성에 대한 맥아더의 판단이 전부 근거 없는 오만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 장기간 전쟁을 경험한 지휘관으로서 멕아더는 다량의 정보 분석을 기초로 결론을 도출했다. 애석한 일은 미국중앙정보국, 특히 극동지부가 중국의 참전 가능성에 대한 문제에서 역사적 실수를 범했다는 사실이다. (-169-)

중국군에게 운산전투는 미군과 최초의 교전이었다.그들은 미군의 전술특징과 작전능력에 대해 그다지 아는 바가 많지 않았는데도 원만한 성공을 거두었다. 마오쩌둥의 10대 군사원칙을 충실하게 이행해 고립, 분산된 미군에게 절대적으로 우세한 병력으로 집중 포위하고 적극적이고 용감하게 야간 백병전을 실시한 것이 성공의 주요인이었다." (-270-)

'이게 다 트루먼 그자가 압록강 다리를 완전히 폭파하고 중국 땅에 폭격을 가하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야!'

맥아더는 문득 윌러비가 방금 그의 책상에 놓고 간 '일급 기밀'문서를 떠올렸다. 내용은 중국군 고위 장교 랸바오가 부하들과 나눈 대화였다.

맥아더 장군이 우리 병참선과 교통선에 대해 취하려 한 보복성 조치를 미국 정부가 저지하고 나설 것이라는 사실을 사전에 확실히 알지 못했다면 나는 부하들의 목숨과 나의 군사적 명예를 담보로 하는 이번 공세를 결코 일으키지 않았을 것이다. (-407-)

량싱추, 루시위안 그리고 38군 전체 동지들!

이번 전투로 1차 전역 에서 각 동지들의 마음 속에 있던 일부 지나친 우려를 떨쳐냈고 38군은 전투에 임하는 훌륭한 태도를 유감없이 발휘했소,특히 113사단의 사단의 신속한 행동으로 적보다 앞서 삼소리와 용원리를 점령했고, 남으로 도주하는 적군과 북상해 지원하는 적군을 저지했소,적기와 전차 각각 100여 대가 최종적으로 폭파되었고, 적군의 반복된 포위 돌파 시도는 그 목표를 이루지 못했소. 어제 (30일)까지의 전과는 실로 대안했소, 노획한 물품들 중에서 전차와 차량만도 거의 천 대에 달하고 포위당한 적군도 많소.어려움을 극복학도 용기를 힘껏 발휘해 포위된 적군을 계속해서 완전히 섬멸하기를 바라오. 그리고 북성해 지원하는 적군을 저지하는 데 유념하기 바라오. 이에 특별히 표창사실을 전군에 통고하고 그대들의 연전연스을 빌겠소. 중국인민지원군 만세! 38군 만세! (-440-)

이른바 '7가지 미스터리'는 다음과 같다.

첫째, 중국군이 한국전쟁에 개입한 목적, 동기, 규모

둘째, 중국군의 정찰 방법.

셋째, 중국군의 위장, 토목공사 능력

넷째, 우너시적 병참 체계로 부대에 장비와 물자를 보급한 방법

다섯째, 중국군의 탁월한 야간전투 능력

여섯째, 죽음도 불사하는 인해전술.

일곱째, 기계적 운송수단이 지원되지 않는 상황에서 중국군이 보인 기민한 추격 속도. (-536-)

군용 다리 상류와 하류에서는 인류의 대참극이 벌어졌다. 피란민들은 살을 에는 삭풍을 맞으며 얼음 위를 걸어 강을 건넜다. 얼음이 미끄러웠기 때문에 사람들이 넘어져 바닥을 엉금엉금 기어서 남쪽으로 도망갔다. 아이를 꼭 끌어안은 어머니,노인이나 환자, 장애인을 업은 남자들, 큰 짐을 짊어진 사람들과 작은 이륜차를 미는 사람들이 강 북쪽의 제방에서 갑자기 뛰어 내려와 얼음판을 건너갔다. 그러던 중 높이 솟은 짐과 아이들을 실은 마차가 급히 지나갔다. 황소의 네 다리가 허공에 뜨는가 싶더니 얇은 얼음이 깨져 물속에 빠지고 말았다. 피란민은 완전히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누구 하나 넘어진 사람을 도와주는 이가 없었다. 비참한 피란길에서는 아무도 옆 사람을 도와줄 여유가 없었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없었고, 다만 힘겹게 얼음판을 건너느라 숨을 헐떡이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648-)

2월 24일, 펑더화이는 중국 주재 소련 군사총고문 사하로프를 만나 소련 공군이 출동해 후방 교통선을 엄호하고 방공무기를 지원해주길 바란다고 협의했다. 그러나 사하로프는 "소련이 한국전쟁에 개입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는 상투적인 말만 되풀이해서 펑더화이를 분노케 했다.

2월 25일, 저우언라이의 주재로 군사위원회 확대회의가 소집되어 중국인민지원군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에 대해 중점적으로 토론했다. 이 회의에는 군위원회의 각 본부 지도자, 각 군별 지도자,국무우너 관계자가 참석했다. (-779-)

한편 한국군 전쟁 사료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미 제10군단과 미 제8군의 적절하지 않은 조치 때문에 아군 제3군단은 생각지도 못한 재난을 맞았다, 아군 제9사단은 작전에서 미 제3사단에 배속되었으므로 미 제3사단장을 파면시키는 것이 마땅했다.그런데 그들은 도리어 국군의 얼굴에 먹칠을 했고, 국군의 사기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도 자신들은 태연자약했다!"

1951년 5월 16일 전투는 한국군 제7사단의 패배로부터 시작되었다. (-882-)

한국전쟁 휴전 협상은 꼬박 2년간 진행되었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대규모 병력이 투입되는 기동전은 발생하지 않았다.

이 기간 동안 쌍방의 방어선에는 약 200만 명에 달하는 대군이 집중 배치되어 있었다. 세계 전쟁사상 가장 길고 가장 복잡하며 가장 견고한 방어참호가 구축되었다. 유엔군의 방어선은 빈틈없이 배치된 화포진지, 전차군단 그리고 보병으로 구성되었다. 층층마다 이루어진 진지의 종심은 300킬로미터에 육박했으며, 방어선의 층층마다 견고한 참호가 구축되었다. (-971-)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경, 북한군이 남한으로 침공했다. 그 결과 서울이 북한군에 의해 함락되었으며, 이승만은 한강 다리를 폭파한 뒤, 남쪽으로 피난하엿다. 그리고 미국은 즉각 북한군을 상대로 , 전면전을 시작하였으며, 에치슨에 의해 중국 공산당의 타이완 공격을 저지할 것을 지시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는 미국이 생각한 것 이상의 미참한 전쟁 양상으로 이어졌으며, 중국의 모숨을 건 인해전술이 한반도에 이어지게 된다. 여기서 미국 맥아더 장군의 오판이 있었다. 북한군을 상대로 쉽게 처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중국군이 한반도로 내려올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에치슨의 타이완 문제는 그 역사적 실수가 제2차 세계대전보다 더 끔찍한 전쟁을 보여주게 된다. 전략의 실패, 중국이 한반도에 물밀듯이 들어올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화인민지원군 총사령관 펑더화이彭德懷 ,미국의 멕아더 장군을 상대로, 밀고 밀리는 한국 전쟁이 이어지게 된다.한반도 땅에 대해 이승만. 트루먼 미구 대통령,북한 김일성, 미국 맥아더 총사령관, 중국 마오쩌뚱과 펑더화이, 타이완의 국민당에 속한 손문, 그리고 소련의 스탈린까지 엮이게 된다.

미국의 오판은 맥아더 장군의 영웅심리에 있었다.그가 인천상륙작전으로 서울 수복에 성공해였던 전쟁영웅으로 비추어 지고 있지만, 실제로 전선 곳곳에 승리를 장담하는 전쟁 영웅이미지르 구축하게 된다. 그가 손으로 들어들었던 곰판대가 우리의 기억 속에 떠나지 않는다. 실제로 한국 전쟁에서,맥아더 장군의 모습을 보면,그 이미지가 본인이 만은 이미지였다. 한국전쟁이라 부르지만, 중국은 6.25 전쟁을 항미원조전쟁이라 일컫고 있었다.즉 미국이 한국 전쟁에 전쟁 물자,인적 물자를 원조하지 않았다면, 남북한이 분단되지 않았을 것이고,이승만은 남한으로 도망 후, 퇴각 조치, 김일성과 마오쩌뚱의 지배하에 한반도가 통일되었을 것이다.

70년이 지난 지금, 친일파,빨갱이로 나뉘어서, 서로가 서로를 정치적으로 공격하는 원인에는 한국 전쟁이 있었다. 추운 12월 얼어부튼 한강 위를 걸어 다니면서, 그 시절 재산이었던 황소를 끌고 피난길에 오르다가, 얼음이 깨져서 ,피란민은 눈앞에서, 같이 죽게 된다. 피로 흥건한 한강 물을 보았던 세대들에게, 전쟁은 동족 학살의 지극지긋한 트라우마로 남게 된다. 특히 이 전쟁에서, 미국이 보여준 처세, 중국이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시작한 이유는 기술 중심의 미국을 성대로 , 정신력으로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그것이 한반도 분단으로 이어졌다.한반도에 수십만 톤의 폭약을 투하하여, 미군 전차를 파괴하였고, 산으로 옮겨 다니면서, 풀을 뜯어 먹으면서 연명햇던 중공군은 한반도에서,보급부대가 원활하지 않은 상태에서 전투를 진행할 수 있었다. 이러한 모습을 볼 때, 그 때 공산당과 국민당의 힘겨루기에 찬물을 끼얹었던 미국 백안관이 한반도의 지정학정 위치로 인한 침략의 명분을 제공하였으며, 지금도 여전히 중국 주변 국가에 미국 군대가 배치되고 있는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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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에 대해 중국이 말하지 않았던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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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사람
김숨 지음 / 모요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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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마에 휩쓸려 죽은 사람이요! 서너 해 전 가을에는 붉은 사과가 가마니로 쏟아붓듯 떠내려왔답니다. 물운대 아래 모래밭에 사과가 널렸다는 소문을 듣고 애 어른 할 것 없이 몰려가서 사과를 줍느라 바빴답니다. 나도 사과를 두 가마니나 주웠답니다. 흠집 난 건 애들 먹이고 성한 건 부산장에 내다 팔았지요." (-60-)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백 씨의 성긴 머리카락이 뽑혀 날아갈 듯 날린다. 그는 바다를 등지고 앉아있다.

"히로시마에 원자탄 떨어질 때 화기를 온몸에 뒤집어쓰고 죽었어요. 천치 같은 여편네가 원자탄 떨어지는 걸 구경하고 서 있었나 봅디다."

"히로시마에서 살다왔어요?" (-124-)

"일본에서 조선이 해방된 건 어떻게 알았소?" 담배꽁초를 그새 다 피운 사내가 묻는다.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도조 히데키가 항복 문서를 낭독하는 방송이 나오더군요. 일인 감독이 무릎을 꿇고 있으며 그러더군요.'도우아키타라 이이?' 그러고 얼마 있다 미군 비행기들이 날아와 낙하산 두 세개에 커다란 상자를 매달아 야하타 제철소로 내려보내데요. 총, 총알, 수류탄, 속옷, 양말, 식량, 군복, 철모가 상자에 들어 있었어요. 엊그제까지 포로 신세였던 미군들이 기세가 등등해져서는 무장을 하고 부대를 편성하더군요." (-227-)

"칠식아,그만 따에 내려가자. 따에 내려가고 아버지하고 누나하고 고깃국에 흰쌀밥 먹자."

땅에는 썩은 땅콩 껍질, 담배꽁초, 개동, 생선 뼈, 장작이 타고 남은 잿더미, 찌그러진 깡통, 깨진 정종병 조각, 죽은 쥐가 널려 있다.

"개미들도 땅에 내려가네."

"참새들도 땅에 내려가네."

"앵두나무도 따에 내려가네." (-325-)

"과부로 악착같이 돈만 모으며 살다 새로 남편을 얻었는데 하필이면 조선 사내지 뭐야. 그런데 그 조선 사내가 어눌하니 칠푼이라는 거야.모자라니까 숫총각이 일본 과부에게 장가들었겠지. 일본 과부하고 산다고 자갈치에서 돌팔매질까지 당했다니까.남녀의 정분은 남이 알 수 없는 것인지 저 여편네가 늦은 나이에 아들까지 하나 앟았지. 남이야 손가락질을 하든 말든 둘이 금슬 좋으면 그만이지만, 남편이 재작년 겨울에 자전거 타고 영도다리 건너다 치여 다리병신이 됐지 뭐야." (-381-)

일본서 왔다고 하지 않았소? 일본 어디서 왔소?

"가고시마 제련소요! 처음 거기 가서는 가고시마 제련소가 쓰시마 어디쯤에 있는 줄 알았ㄷ자고 .쓰시마에 가는 줄 알고 연럭선을 탔으니까요. 면장이 징용장을 내밀며 쓰시마에 가서 일인들 심부름 좀 해주고 오라고 해서요. 가고시마에 간지 닷새쯤 지나 내가 와 있는 데가 쓰시마의 어디쯤인지 궁금하대요. 내가 읽지는 못해도 일본말은 그냥 저냥 할 줄 안다오. 나이가 오십은 돼 보이는 일인한테 물었지요.

'여기가 어디요?'

'너,바보로군.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다니.가고시마다!'

'쓰시마가 아니었군?'

(-541-)

마키노시마 유곽 골목 어귀의 돌부처 앞에는 보라색 들꽃과 능금 한 알, 흰쌀 한 웅큼이 놓여 있다.

참새 한 마리가 날아들어 능금을 부리로 콕콕 쫀다. 참새 두 마리가 날아들어 쌀알을 부리에 물고 날아간다.

돌부처 앞의 남은 흰쌀밥과 들꽃은 밤이 깊어지면 바람이 거두어간 듯 사라지고 없을 것이다. (-651-)

소설가 김숨(1974년~)이 쓴 소설 『잃어버린 사람』은 논픽션을 픽션화한 것처럼, 그시대를 자세히 묘사하였으며,우리의 과거를 복기하도록 스토리를 이끌어 나가고 있었다. 컴퓨터를 모르던 시기, 드라마 한 편에 울고 웃었던 그 시절, 우리는 이제 막 가난에 허덕이면서, 해방 이후의 행복감을 느낄 겨를이 없는 상태에서, 1950년에 일어난 6.25 전쟁이 발발했다. 소설 『잃어버린 사람』은 잠깐 평화로웠던 그 때 당시의 시대적인 이야기를 세밀하고 디테일하게 그려내고 있었으며, 작가 김숨이 그 시대에 살았던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1947년 9월 16일,음력 8월 2일, 화요일이 소설 『잃어버린 사람』의 시간적 배경이다. 24시간동안 일어났던 이야기, 사람이 있었다. 해방 전후 도조히데키가 항복 선언 후 미군정 하에 대한민국은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엿볼 수 있었다. 소설가 김숨은 그 때 당시 살았던 이들에게 구술 인터뷰로 자료를 모았으며, 냄새 나고,위생 개념이 전혀 없었던, 쥐가 굴러 다녔고,수마에 떠내려온 사과를 장에 나다 팔았다.

오로지 살아남기 위한 생존본능에 따라 살아가는 그들의 가난이 느껴진다. 동네 면장의 꼬임에 따라서, 일본 강제징용에 끌려 갔으며, 가고시마 항에서 강제 노동을 했던 그들, 전차로 인해 죽을 뻔했던 그 순간들,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고, 페렴이나, 기아로 굶어 죽어야 하는 일이 빈번했다. 언청이가 동네에 있었고, 칠삭둥이가 현존했고, 다리 병신, 벙어리와 함께 생활했다. 어느 누구도 배부르지 않았던 그 시절이기에, 서로 살아남기 위해서,아둥바둥하면서 살아왔을 뿐이다. 그들에게 주변에 장애, 문맹으로 살아가는데 큰 어려움이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에느 티가 나지만, 그때는 티가 나지 않았다. 문맹이 살아가는데 불편한 조건이 아니었다. 부지런하면 살 수 있었고,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도, 노력으로 풀칠을 할 수 있었던 그 시절이었다. 벙어리 세신사라도,일할 권리가 충분하였고, 그들은 그것을 관대하게 허용했다. 각자가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1947년에 살았던 이들은 가르치지 않아도,배우지 않아도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끼며 살아왔다. 공교롭게도 1947녕에 태어났지만, 5살이 되지 못하고, 죽어야 했던 어린 핏덩이들,그들을 안고 서글프게 울어야 했던 그들의 삶, 그렇지만 끝끝내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 1947년을 살아낼 수 있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지금은 그때 당시와 비교할 때, 더 나은 삶,더 풍요로운 삶,더 행복하고 감사할 수 있는 삶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가난하고, 불평하고, 차별하는 사화에서, 불행을 깊이 느끼며 살아간다.이 소설은 바로 과거의 우리 삶을 통해서,앞으로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성찰하게 해주고 있었으며,우리에게 정녕 필요한 삶은 무엇인지 느끼게 도와주고 있었다. 과거가 없으면, 미래가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절감하게 해주는 역사적 픽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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