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빈곤의 도시를 만드는가
탁장한 지음 / 필요한책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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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 동네는 고통스럽지만 순박하고 정직한 사람들이 살아요. 여기를 거쳐 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종착역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죠. 여기는 여기만의 법이 있어요. 여기 사람들은 가지지 못했고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머리를 굴리고 계산하면서 누군가를 속이지 못해요."

-동자동 쪽방촌 주민 구술 인터뷰 (-14-)


이 사태의 전말을 통해, 추방의 고리를 끊고 도시빈민들의 생존권 및 거주권을 보장하기 위한 대책으로서 '공공쪽방'을 검토해 봐야 한다. 동자동 9-20 사태에서 쪽방 건물은 세입자들의 투쟁을 통해 끝내 용도변경이 되지 않은 채 리모델링 후 보전되었다. (-67-)


이렇듯 인간이 보유한 기존의 다양한 관계들이 붕괴된 상태에서 단신 가구를 유지하는 쪽방촌 주민에게 내부 이웃과의 접촉은 중요한 의미가 될 수밖에 없다. 이웃이야말로 주민들이 외로워하는 상황에서 심리적 안정감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의존할 사람의 부재 상태에서 주민들은 인간관계 형성에 있어 공간적 영향을 특히 많이 받는다. 그것은 아무리 불편하더라도 노숙할 때에 비하면 훨씬 안정감 있는 삶이다. (-99-)


이에 따라 조밀한 관계성이 개입되고 있는 쪽방촌은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의지가 공유되는 공간이 된다. 그럼으로써 단순히 물리적 낙후 공간이기 때문에 사라져야 하는 문젯거리로서의 입지를 탈피한다. 주민들로부터 '편리하지만 개인주의가 만연한 아파트보다 낫다' 쪽방촌은 차별이 없고 인정이 넘치는 관계망','마음속 깊이 정든 고향','편히 쉴 수 있는 공간'으로 구술되기까지 한다.이들 텍스트에서 쪽방촌은 떠나려 해도 떠날 수 없을 정도로 매혹적인 곳으로 인식되곤 한다. (-140-)


이처럼 극도로 비참한 어휘들은 거듭 사용함으로써 뚜렷하게 드러나는 쪽방촌의 절망은 계급화된 공간의 문제가 현실에서 부재한다고 주장할 수 없음을 고발한다. 주민들이 겪는 우울과 괴로운ㅁ의 생생한 전달은 그 자체만으로도 사람들의 관심을 환기할 수 있다. 소위 '일상생활의 끔찍함'이라는 긴장 상태를 보여줌으로써다. (-201-)


쪽방촌은 들여다보면 볼수록 '복잡한'동네다. 각 공간(쪽방,족방촌)을 보는 시선과 사람(빈민)에 대한 시선이 서로 구분되는 한편, '상황속의 인간' 을 전제로 하는 사회복지학에서 사람과 사람을 둘러싼 주거 환경은 떼려야 뗄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가난한 삶 자체는 부당한 편견과 차별의 대상이며 동시에 그것에 대한 일종의 저항으로서의 '빈민'의 존재 자체는 설령 긍정하더라도 ,인간다움을 유지하기 매우 힘은 폭력적 공간인 1평 남짓의 '쪽방'을 긍정하기는느 힘들다. (-259-)


쪽방촌, 쪽방, 그리고 그들만의 공간인 쪽방 공동체는 ,도시개발이라는 미명하에 하나 하나 해체되고 있다.그들은 쪽방촌에 사는 이들의 가난을 해결한다는 명분과 불법, 경제적 해결 방안을 풀어나간다는 취지 하에, 쪽방촌을 제거하고,그 곳에 새로운 건물이나,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거주권, 생존구너이 파괴되고 있으며, 그들의 문제를 해결할 책인의 주체가 사라지고 있다. 1평 남짓 좁은 공간에 살아가는 그들은 그들만의 법이 있고, 도시 빈민의 표상이지만, 그들은 그것이 자신의 삶의 마지막 순간이라고 생각하였다.그러나 그들을 내쫒는 주체인 사람들은 그들의 입장을 잘 헤아리거나 고려하지 않는다.나에 대한 생각,나를 위한 조건,더 나아가 쪽방촌에 사는 이들을 주택공사의 영구임대주택으로 이동시켜 삶의 근본적인 변화를 강요하고 있으며, 도시재생이라는 미명하에 그들이 원하지 않는 선택권을 강요하고 있다.그들에게 가난,빈민은 문제가 아니다. 현재의 삶과 관계, 더나아가 의지하고 보듬어 안을 수 없는 상황이,그들을 힘들게 하고 있으며, 도시빈민이 처한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것을 주문하고 있었다. 가난하되, 자존심이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것, 정이 있고, 존재가 있고,사람과 장소가 함께 하는 그들만의 공동체에서 법칙과 기준을 해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삶의 리모델링,장소와 관계의 리모델링이 하나의 그들이 요구하는 대안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동안 하나의 목적,경제적 이해관계와 타산에 의한 결정이 그들의 공동체를 파괴하고, 그들이 거쳐할 수 있는 마음적 양식조차 솝멸시키고 있었다.겉으로 보기에 좋아보이지만, 현실은 어떤 파괴와 균열이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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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지 못한 단 하나의 오프닝 - 방송가의 불공정과 비정함에 대하여
이은혜 지음 / 꿈꾸는인생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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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의 지름길과 에움길이 갈라지는 지점은 고등하교 3학년에 있었다. 늘 글쓰기를 좋아했지만 고3 갈림길에서 작가가 아니라 도서관을 택했다. 문예창작학과와 문헌정보학과 합격증을 각각 한쪽 손에 들고 저울질하다 문헌정보학과에 입학 등록한 것이다.'글쟁이 배 곪는다'는 부모의 만류가 절반, 그리고 '책 쓰는 사람이 아니라 책 보는 사람으로 살면 되지' 라는 약팍한 마음 절반으로 한 선ㅌ택이었다. (-32-)


'원래 그런 것' 이라는 말은 기득권의 언어다. 논리와 혁명에 대응하는 가진 자의 마스터키다. '원래'에 의구심을 품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아직까지 여성들은 투표소에 들어갈 수 없고, 흑인과 백인이 따로 앉아야 했을지도 모른다. 과정은 어려울 수 있겠지만 시작은 어렵지 않다. '원래'를 뒤집으면 된다. 방송작가는 원래 휴가가 없다는 말의 '원래'를 , 프리랜서는 원래 계약서를 쓰지 않는다는 문장에서 '원래'를 뒤집으면 될 일이다. 그리고 그 일은 절대 혼자 할 수 없다. (-89-)


작가들은 본인이 작업한 기사가 송출되는 순간을 기다렸다. 취재와 섭외, 타이핑의 결과물이 세상에 나가는 순간이니까,나와 함께 일했던 한 동료 작가는 본인 이름이 적힌 바이라인이 처음 나가는 날을 다이어리에 표기해 두고 고대하기도 했다. (-118-)


그렇게 2014년부터 작가로 살다가 2019년 갑작스럽게 '계약해지'를 당했다. 인간은 경험에 지배당하는 동물이라고 하던데, 내가 그랬다. 부끄럽게도 큰일을 겪은 후에야 관련 기사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중 반가운 소식이 있었다. 방송작가들이 '방송작가유니온'이라는 노동조합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162-)


민주언론시민연합은 공개 글을 통해 "이재학 pd와 같은 고용 및 노동차별 문제가 언론계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벌어졌다면 언론의 관심이 지금처럼 적었을까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227-)


책장을 덮고 나니 무심코 지나쳐 가던 동네 지구대도 예전과 다르게 보였다. 글을 통해 잠시나마 한 경찰관의 자리에 서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경험을 많은 이들이 해 봤으면 좋겠다. 우리가 잠시나마 서로의 자리에 서 볼 수 있다면 티끌만큼의 이해라도 자라나게 될 것이라고 믿기에, 설령 이해하진 못하더라도 혐오하지는 않을 것 같기에. (-261-)


방송국, 방송작가, 열정페이,이 세가지는 거의 단골처럼 서로 엮이고 있다. 돈과 꿈,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방송일을 한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새롭게 그 직업을 가진 이들을 쳐처다보게 된다. 이상적인 관점에서 그걸 보게 되고, 그것이 가지고 있는 현실을 보지 못할 때가 있다. 불공정, 불합리, 불공평함, 차별과 혐오가 존재하는 방송가에서, 언론이 해야 하는 일, 방소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일들을 방송작가의 입에서 직접들을 수 있고, 그들에게 일과 꿈은 무엇인지 간접적인 경험을 마주하게 된다.그릴고 우리가 생각하는 '원래'라는 언어를 바꾼다면 ,세상은 바뀔 수 있다.


즉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저자의 쓰지 못한 단하나의 오프닝을 엿볼 수 있다. 라디오나 텔레비전, 점점 더 우리에게 잊혀져 가고 있는 미디어 채널이지만, 방송작가에게,특히 저자처럼 프리랜서에게,방송 작가는 자신의 모든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 소위 어떤 프로그램이나 뉴스의 끝자락에 올라가는 자막들, 그것을 책에서는 바이라인이라 부르는데,그것이 방송작가에게 어떤 의미로 부각되는지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책임과 의무, 권한과 역할에 대해서, 하나 하나 검증해 나가는 시간이며, 이 책에 등장하는 불공정과 비정함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닌 현재의 우리의 자화상이었다. 즉 살아남고, 견디는 것, 철저한 분업은 그들에게 여전히 요원한 현실이며, 그 안에서 보여지지 않는 다양한 에피소드가 책 속에 기술되어 있다. 삶의 희노애락은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다. 방송작가도 마찬가지다. 월급 40만원으로, 방송에 필요한 사람들을 섭외하는 것이 일인 방송자가에게 달을 따올 수 있는 방법을 물어보는 것은 웃픈 현실이며,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혐오와 차별의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 ,하나하나 방송에서, 방송사의 밑바닥을 통해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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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공산당 100년의 변천 - 혁명에서 ‘신시대’로
이희옥.백승욱 지음 / 책과함께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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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홍기'가 상징하듯이 공산당이 노동자, 농민, 소부르주아, 민족부르주아를 이끄는 것이 고, 건국 직후 토지개혁 속에서 '경자유전'을 원칙으로 삼아 일종의 소농 경제를 보장한 것도 점진주의 gradualism 와 점증주의 incrementalism 적 접근이었다. (-19-)


중국공산당은 1921년 창당되었다. 직접적으로는 1919년 5.4 운동을 뎨기로 본격적으로 등장한 대중운동과 마르크스주의 학습조직의 형성을 그 기원으로 하며, 1917년 러시아혁명 이후 소련과 코민테른의 지원이 중요한 조건이었다. (-39-)


민영기업의 끊임없는 자본주의적 이익추구 특성 때문에 민영기업은 필연적으로 공산당과 사회주의 시스템과 충돌할 수 밖에 없다고 예측했다. 중국 경제가 발전할수록 공산당의 지위가 약화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의 기본 가설이다. (-107-)


1936년 12월 시안사건을 계기로 국공합작이 다시 추진되었다. 1937년 일본의 전면적인 중국 침략으로 국민당 정권의 도시와 농촌의 기반이 급속하게 와해되었지만, 중국공산당은 농촌에서  근거지를 확대하면서 세력을 키워나갔다. 옌안 시기 중국공산당의 토지 정책은 잠시 소비에트 시절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온건했다. (-137-)


중국공산당에게 노동계급은 과연 무엇인가. 노동계급의 조직인 '공회工會'와 당은 어떠한 관계인가. 이 글에서는 100년 정당을 앞둔 공산당 성격의 변화와 통치의 특징을 당과 노동자(조직)의 관계 변화 속에서 살펴본다. (-198-)


2010년대 중반, 한 사회학자가 1950년대에 태어난 중국여성에게 마오쩌둥 시대로 돌아가고 싶으냐는 질문을 했다."가난이 싫어서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라고 답한 여성은 묻지 않았음에도 자신의 어머니 이야기를 했다. 1927년생인 어머니는 "공산당에게 감사해야 돼. 해방이 되지 않았더라면 네 아버지는 분명 첩을 여럿 들였을 거야." 라고 했고 문맹교육반에 열심히 나가는 자신이 못마땅해서 대문을 잠가버린 시어머니 얘기를 하면서, "공산당이 옳아, 엄마는 예전엔 글을 몰랐지만 해방 후 문맹교육 덕분에 지금은 책도 신문도 읽을 수 있단다" 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261-)


현재 부상하는 '신시대' 의 함의는 지난 100년의 역사를 '혁명사'로서가 아니라 '투쟁사'로 재정의하는 것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보인다. 이때 '투쟁사'란 경쟁적인 세계질서에서 한 세기에 걸쳐 '중화민국의 굴기의 투쟁사'일 것이다. 혁명사를 상대화한다는 것은 그런 의미가 될 것이고, 그만큼 역사 재해석의 함의에 대해 더불어 고민하기는 더 어려워질는지는 모른다.  (-322-)


지금의 중화민국은 1919년 5.4운동이 첫 시작이었다. 청나라의 반봉건주의, 반제국주의 혁명운동 이후, 공산당의 역할과 공산당이 추구하는 이데올로기가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그 과정에서, 국민당의 쑨원이 중화민국의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공산당에게 세력에서 밀리게 되고, 중국은 새로운 변화의 물꼬를 트게 된다. 그 과정에서 ,중국은 일본에 의해 잠식되었으며, 복잡한 시대적 상황과 맞물리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한가지 판단할 역사적 근거를 이해할 수 있다. 중국이 가지고 있었던 자부심은 아편전쟁과 중일전쟁으로 새로운 사회적 변화를 요구하게 되었으며, 마오쩌둥 체제가 만들어지면서, 중국인들의 의식구조가 깨어나게 되었다. 중국의 문맹률이 낮아지면서, 중국 사회는 공산당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과 부정적인 시선이 서로 양분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중국이 사회주의 체제안에서, 서민들의의식구조의 변화, 더 나아가 자본주의 경제구조를 채택한 흔적들을 엿볼 수 있으며, 중국이 추구하는 대국굴기의 역사에 대해 조망할 필요가 있다. 소위 동아시아 냉전 구조의 적대와 대립를 기초로 한 샌프란스스코조약에 대한 역사적 의미를 고찰하고, 동아시아 주도권을 쥐게 된 미국의 안보체계, 더나아가 중국이 가지고 있는 힘의 역학 구도는 100년의 시간동안 견디면서, 힘을 키워 나가게 된다. 과거 동방의 실크로드를 다시 만들고자 하는 중국은 기회의 땅이자 거대한 리스크가 존재하는 나라였다. 그 하나 하나 알아내고, 냉정의 역사를 이해하면서, 각 세대가 가지고 있는 중국에 대한 시선의 도드라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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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드모델입니다 - 날것 그대로 내 몸을 마주한다는 것에 대하여
하영은 지음 / 라곰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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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여 사고가 나서 몸이 다칠ㄹ까 봐, 몸에 작은 흔적이라도 남을ㄲ라 봐, 낯ㅅ헌 음식을 먹고 탈이 나서 제대로 작업을 완수하지 못할까봐 ,어디서든 정해진 내 규칙ㄹ대로만 움직이는 것이 몸에 밴 탓이다. (-11-)


나는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전신 거울 앞에 선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30년 넘게 해온 나만의 루틴이다. 거울 속에는 어제와 비슷하면서 또 조금은 다른, 멀건 몸뚱이 하나가 있다.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나의 지난 세월을 지켜봐준, 마치 나와 가장 가까운 친구처럼 느껴진다. (-18-)


대학의 패션학과에서도 누드모델에 대한 수요가 높다. 인체분할을 제대로 알아야 옷을 만들수 있기에 인체 드로잉 수업에서 누드 스케치는 빼놓을 수 없디.패션모델은 한 동작을 오래 유지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ㄱ리 때문에 인체 드로잉 수업은 누드모델이 담당한다. (-60-)


"말하는 것이 내게는 무척 어려운 일이에요. 왜 어려울까 곰곰이 생각해봤더니, 어릴 때 부모님이 늘 제게 '말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아니야,네 말은 들을 필요가 없으니까 조용히 해'라고 했거든요. 내가 뭔가를 말하는 것이 상대를 불편하게 한다는 강박관념이 그때부터 생긴 것 같아요." (-112-)


그럴 때면 나는 평소보다 더 꼿꼿한 자세를 유지했다. 내가 움츠러들면, 누드모델의 입지 또한 예전처럼 쪼그라들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우리를 잘 이해하고 우리를 필요로 하느 예술계 종사자들 중에도 누드모델을 얕잡아 보는 무지한 이들이 있었다. 나는 더 뾰족하게 날을 세워 방어했다. (-164-)


저자는 1988년부터 지금까지 누드모델이다. 자신의 직업에 대한 프로정신이 있었으며, 인간의 인체가 우리 사회에 끼치는 긍정적인 효과를 스스로 보여주고 있다. 대체적으로 예술적 영역으로 바라보았던 누드에 대해서, 누드모델에 대해서, 이 책을 읽어본다면,우리의 편견과 왜곡에서 어느정도 벗어날 수 있고,누드모델에 대해 객관적으로, 잇헝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더 나아가 그 시선과 관점을 확장할 수 있으며, 서로 협력하고, 함께 소통할 수 있는 기본적인 원칙이 세워질 수 있다. 저자는 30년 동안 자신의 몸관리를 완벽하게 유지하고 있다. 매일 매일 자신만의 생활 패턴이 있고,거기서 벗어나지 않았다. 작은 흉터라고 가볍게 여기지 않았으며, 갑작스러운 복통이나 통증, 몸에 어떤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각별히 몸을 아끼고 ,관리하고 있었다. 즉 몸과 정신에 있어서 자기 관리가 철저하지 못하면, 버텨낼 수 없는 직업이다.그래서 누드모델이 되기 위해서, 누드모델 협회에 가입하기 위해 공무원이 찾아올 때가 있다.하지만 누드모델 협회 가입은 공무원은 원칙상 가입이 불가하다.


예술 뿐만 아니라 산업 분야에도,누드모델이 필요하다.의상 전문 옷을 만드는 일에 종사하는 이들은 사람의 인체의 비율과 특징을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영화나 드라마 속 어떤 장면을 모형으로 대체하지 못할 때,그곳에 누드모델이 투입되며, 자시의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며,누드모델은 CG로 대체할 수 없는 곳까지 파고들어가고 있었다. 인체의 모형이 되느 마네킹을 제작할 때, 누드모델의 인체비율을 참조해 제작읖 하고 있었다. 즉 어떤 일을 도모할 때,그것이 자신에게 원하는 일이 되었을 때 그것에 대한 자존심과 자존감이 있다. 내 몸에 대한 철저한 관리는 자신의 몸을 사랑할 때, 완성된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편견 ,외설의 범주가 아닌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직업이라는 인식이 정착될 때, 누드모델에 대한 시선이 바뀔 수 있고, 새로운 변화와 기준, 나만의 선택과 원칙을 가지게 된다.그리고 누드모델과 어떤 작업을 할 때, 최소한의 기본 예의와 에티켓을 가질 수 있고,그들을 프로직업으로 인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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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시나리오 기획자의 생각법 - 14년차 기획자가 제시하는 직업 실전과 창작에 관한 조언
이진희 지음 / 들녘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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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게임 시나리오 작가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프로그램은 다름 아닌 '엑셀'이다, 게임 시나리오라고 하면 워드나 파워포인트로 보기 좋게 작업한 문서를 떠올리겠지만, 실무에선 작업 내용을 바로 데이터로 전환할 수 있는 엑셀을 주로 사용한다. 최근엔 공유하기 용이하다는 강점이 있는 위키 문서도 많이 활용하는 추세다. (-22-)


지금까지 이름 짓는데 가장 오랜 시간이 걸렸던 건 <블레이드 앤 소울> 침묵의 해적선의 최종 보스였다. 몽골엣헌 왕을 '칸'이라 부른다. 의미도 의미지만 발음이 강한 편이어서 나는 그 캐릭터의 이름을 끝 글자를 '칸'으로 정해버렸다. 그 다음 이틀 정도 더 고민한 뒤 나온 이름이 '타이칸'이다. (-67-)


반면 게임 시나리오 작가에게 인문학은 정말로 밥이 된다. 누구나 대단한 스토리를 만들어 낼 수는 있지만 계속해서 만들기는 어렵다. 세상엔 수많은 원 히트 원더 (one-hit-wonder)가 존재한다. 데뷔작을 수년 내지는 수 십년 동안 고민해서 만든 작품이기에 결과가 좋을 수 있다. 그런 콘텐츠를 지속해서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133-)


내가 입학할 당시 게임학과는 체계가 전혀 없었다. 무엇보다 게임 기획과 관련한 커리큘럼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실무 경험이 있는 교수진도 아니었고, 프로그래밍 위주의 수업이 대부분이었다. 프로그래밍에는 전혀 흥미가 없었기 때문에 게임만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밤새도록 게임을 하고 아침에 잠을 자느라 수업을 빠졌다. (-181-)


결론은 게임 시나리오 작법은 가장 최신의 스토리 작법이며, 스토리 창작을 위한 아주 강력한 방법론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활용하는가는 개개인의 선택에 달려있다. 여건이 된다면 저작권을 가질 수 있는 다른 매체의 스토리를 창작해보자. 게임 시나리오 작가로 일하면서 아쉬워썬 부분이많이 충족될 것이다. (-235-)


어떤 A라는 사람은 꿈만 가지고 있고, 그 꿈을 달성하지 못하고 , 꿈의 조건만 찾아다닌다. 반면 어떤 B라는 사람은 꿈을 가지고 있고,그 꿈이 모호하며, 그 꿈을 달성할 수 있는 방법론이 구체화되어 있지 않지만, 스스로 그 꿈을 찾기 위해 애를 쓰는 사람이다.이 두 사람의 경우, 주어진 조건에 따라서, 꿈의 크기는 달라질 수 있고, 꿈에 대한 자신만의 원칙과 기준,실천이 달라진다. 대체적으로 B의 경우가 꿈에 가장 근접하게 된다. 그들은 없으면, 불평하지 않고, 스스로 없는 것을 만들어 낸다. 이 책을 쓴 , 이진희 님도 마찬가지다. 14년차 기획자이며, 게임시나리오 기획자인 저자는 B에 해당되는 케이스며, 꿈을 착기 위한 지름길이 없더라도, 꿈을 달성하기 위한 조건들을 스스로 찾아내고 있었다.그건 그가 꿈을 가지고 있었을 당시 대한민국에는 게임 인프라가 전무하였고, 게임기획자도 거의 없었다.그래서 멘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게임기획에 도움이 되는 전공과 경험,실력을 쌓아가게 되었다.대학교를 가도 전공보다 ,기획에 도움되는 교양 수업을 선택하였고, 스스로 깨치고 터득하게 된다. 처음 게임프로그래밍을 시작하고,NC 소프트사에 입사하지만,다시 사퇴하고 새로운 길을 걸어아게 되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 스스로 기획자로서 역량을 키워나가기 위해서는 온라인 게임위주인 NC 소프트는 저자에게 원하는 직장이 아니었으며,어릴 적 보았던 닌텐도 게임에 대한 로망,그들이 추구했던 게임기획자로서의 프로정신,그것을 얻기 위해서,부단하게 노력하게 되었고, 원하는 길을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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