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비트겐슈타인, 나_라는 세계의 발견
나카무라 노보루 지음, 박제이 옮김 / 독개비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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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알 수 없는 일투성이인 이상한 세계가 애초에 '있다' 는 것. 이것은 대체 무엇인가? 왜 이렇게 되어 있는가? 이 지점에서 깊이 생각하는 것. 그것이 바로 철학이가. 왜 이 세계가 존재하는가, 이런 의문을 던져야 한다. 이 절대 해결될 것 같지 않은 높은 벽에 부딪혀 쓰러져서 옴짝달싹 못하게 되는 것이 바로 철학이다. (-15-)

이러한 방식으로 '윤리'를 정하지 않는다면,우리는 '무엇이든 가능한' 세계에서 날마다 살아가야 한다. 그렇기에 '윤ㄹ;'는 원래 상댑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러한 귀찮은 절차를 밟지 않으면 명령이나 금지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윤리를 비트겐슈타인은 어떻게 생각했을까.비트겐슈타인 일생에 딱 한 번 있었던 '윤리에 대한 강연' 의 내용을 살펴보자. (-40-)

비트겐슈타인은 말을 통한 주고받음을 '언어 게임'이라고 표현했다. 그다운 표현이다. 일단 전혀 '철학'스럽지 않다. '말' (언어) 과'게임' 이라는 누구라도 언제든 쓸 수 있는 말을 결합했을 뿐이므로,'말장난'이라고 번역하고 싶을 정도다. (-75-)

'고통'을 동반한 고통의 몸짓과 고통 없는 고통의 몸짓이 지니는 차이'를 이 두 방향에이라는 관점으로 보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다. 왜냐하면' 고통을 동반한' 이나 '고통 없는'이란 나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인데,'고통의 몸짓' 은 공공적인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고통이 있는지 없는지'는 나밖에는 모른다. 타인은 절대로 엿볼 수 없다. 그러나 '고통의 몸짓' 은 모두가 확인할 수 있는 언어 게임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다. (-153-)

단순히 나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인간은 그동안 고민하였고, 끊임없이 질문하게 된다. 해갈되지 못하고, 해결될 수 없는 궁극적인 가치에 대해서 말을 한다는 것은 나에 대한 기대치를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나라는 세계는 언제든 독자적이며,나를 함께 세울 수 있다는 기준이 포함된다. 나를 둘러싼 사람과 내가 쓰는 언어, 내가 소비하는 문화와 관습, 그리고 감정과 느낌을 표현한다는 것, 그러한 것은 나라는 세계 속에 포함하고 있으며, 나의 삶을 바로 세울 수 있는 남다른 기준이 되고 있다. 즉 나라는 세계를 이해하면, 나에게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다. 인간과 윤리는 벗어날 수 없고, 언어 속에 포함되고 있다. 즉 인간은 윤리 안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얼마든지 윤리를 이용할 수 있다. 즉 비트겐슈타인은 평범한 인간이 추구하는 세계를 다루면서, 거기서 원하는 것을 항상 갈구하였다.자신을 가두는 언어를 확장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그 노력과정에서 희열을 느끼면서 살아가게 된다. 그가 생각하는 철학은 이렇게 만들어지고 있다. 나 또한 이 책에서, 나라는 세계를 간파하게 되고, 그곳에서 ,나를 위한 인생을 서서히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주어진 원칙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탈피하려는 인간의 속성,이용하고,이용당하면서, 그안에서, 생존을 원하고,나만의 욕구와 욕망를 분출한다. 벗어나지 않되,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는 방향성을 찾아가는 것, 그 안에서,나에게 요구되는 여러가지 과정들을 완성해 나갈 수 있고, 나에게 이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을 가질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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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콰도르 미완성 교향곡
박계화 지음 / 꽃씨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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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에콰도르 미완성 교향곡,코이카 봉사단원의 남다른 음악교향곡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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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에콰도르 미완성 교향곡
박계화 지음 / 꽃길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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ϻ

'내 손길이 누군가의 희망이 되고, 내 웃음이 누군가의 용기가 되고, 내 발걸음이 누군가의 행복이 될 수 있다는 믿음, 코이카 단원이기에 할 수 있다.'

코이카 합격 통지를 받아든 순간부터 이 믿음은 가슴의 내밀한 울림이 되었다. (-5-)

식장에 세워진 태극기와 에콰도르 국기 앞에서 '나의 봉사활동 선언문'을 낭독했다.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거저 받은 은총의 삶을 사랑으로 내어놓아 세상의 작은 변화를 꿈꾸며 내맡김의 삶으로 봉사의 길을 가겠습니다." (-35-)

OJT 마지막 날, 엘리는 4번 선 없는 기타를 갖고도 연주한 내 음악 역량을 간파했는지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우리 학교에는 음악교과 자체가 없어요. 당연히 갖고도 연주한 내 음악 역량을 간파했는지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우리 학교에는 음악 교과 자체가 없어요. 당연히 음악교육 과정도 없지요. 어떻게 당신의 음악 열정을 쏟을 것인가요?"

"한국 교단 40년 음악교육 노하우를 에콰도르에서 펼쳐내려 합니다."

"학교에 특별 음악 프로젝트가 필요한데 무엇을 해주실 수 있을가요?"

"에콰도르 음악을 탐색해서 서양 음악을 기본으로 합창단과 기타 오카리아, 리코더로 구성된 작은 합주단을 지도해 보고 싶어요."

코워커 엘리는 내 손을 마주 잡고 고맙다는 뜻으로 말했다."

"무차스 그라시아스 " Muchas gracias (-59-)

케콰도르에서의 '성공적인 역할'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에 잡겼다. 가장 중요한 것은 스페인어로 아이들과의 원할한 소통이다. 교단에서 정년퇴임후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길을 걸었다. 스페인 북동부에서 북서쪽 땅 끝까지 917km 에 이르는 길을 40일동안 걸으며 세계 곳곳에서 모여든 순례자들과는 대체로 영어로 소통했다.순례길을 걷고 나서 배우기 시작한 스페인어는 다음 여행을 위한 필요에서였다. 그러나 코이카 해외봉사단원은 여행자가 아니다. 그 나라의 현지인으로 사는 것이다. 스페인어로 살아내야 하는 것이었다. (-121-)

나는 호세 마리아 벨라스코 아바라 공립학교의 음악교사다.미국에서 홀로 살아가기 힘들거라며 정으로 대해주는 우리 학교 교사들이 참 좋다. 이들과 함께할 수 있음은 행운이었다. 외국인이며 정규과목에도 없는 음악교사였지만, 학교의 모든 행사에 참여토록 배려해 주는 기관장과 코워커 덕분에 교직원과 친밀감ㅇ는 나로 높아져 갔다. (-150-)

우리 삶은 돈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는 말이다. 삶의 전반에 나의 삶과 연결되고 있으며, 돈은 부수적인 조건이 되고 있다. 이 책에서 배워야 할 것은 코이카 봉사단원이 되면, 어떤 지혜와 남다른 경험, 봉사가 봉사르 부르는 여러가지 인생 경험, 그 자체에 있다.

예순 여덟, 서울천일초등학교 교장을 마지막으로 41년 6개̛산 교단의 삶을 정리하였던 박계화 씨는 코이카 봉사단원에 응모하게 된다. 나이에 대한 한계와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될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꿈이 이루어질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졌고, 영월에서, 코이카에서 준하는 현지 교육을 배우게 된다. 에콰도르가 결정되었고, 에콰도르 공용어인 스페인어를 배우며,그들의 삶을 자신의 삶의 근본으로 삼게 된다.

학교 교내에서 음악을 주업으로 해왔던 저자는 에콰도르에서 자신이 해 왔던 것을 십분 발휘하게 된다. 암기 교육 일색이었던 대한민국에서 음악을 즐기지 않는 것을 볼 때, 음악 교육이 없는 에콰도르는 말그대로 안성맞춤이었다. 즉 코이카 교육은 한국에는 있지만, 해외 곳곳 에는 없는 사회적 인프라, 교육 인프라에 대해서, 꼼꼼하게 살펴 보고, 분석해 나가고 있었다. 즉 이 책에서는 남다른 꿈, 제2의 인생을 살고 싶은 사람,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시니어 세대에게, 새로운 길을 걸아갈 수 있다.새로운 길,성장하는 기회를 확보할 수 있고, 새로운 인생을 충분히 채워나간다. 살아가고, 견디면서,에콰도르에 없지만 한국에는 있는, 사회적 인프라,음악교육을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것,저자에게도 새롭지만, 현지인들에게도 새롭다. 그것이 저자는 에콰도르에서, 낯설고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고, 도전과 용기, 행복을 얻게 된다. 살아가고 존재하며,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찾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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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가장 특별한 탈선
한성규 지음 / 꽃씨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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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오스 코이카 봉사단원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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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가장 특별한 탈선
한성규 지음 / 꽃씨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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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내년이면 40, 나는 그동안 숨 가쁘게 살아왔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장교로 임관했다.

미군부대에서 정훈장교로 3년간 근무한 후에 중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다시 뉴질랜드로 떠나 재경직 공무원으로 국세청에서 일했다.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겠다며 바쁘게만 살아오다가 뉴질랜드에서 큰 지진을 겪었다.

진도 7.8 이었다. 그릇이고 tv 고 다 박사났다. 안 죽은 게 다행이었다.

직장 동료 하나가 죽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사건을 겪었다.

내가 일하던 건물 옥사에서 누군가 뛰어내려 자살을 한 것이다.

사람이 땅에 떨어지면 거의 폭탄 터지는 정도의 큰 소리가 들린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다른 사람들의 삶이 눈에 들어온 건 그때부터였다.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나는 나를 낳아준 대한민국으로 돌아가 코이카 해외봉사를 하기로 결심했다. (-5-)

라오스 사람들은 '버뺏냥' , 즉 '괜찮다' 라는 말을 번번하게 쓴다고 한다.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사고가 나도, 심지어 자기가 사고를 내놓고도 이 괜찮다는 말을 쓴다고 한다.이곳에서는 남을 용서하고 자기의 잘못까지 용서해 버리는 '습관'을 연습해 둘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52-)

오토바이는 나를 덮치기 한 2 초 전에 갑자기 옆으로 쓰러지더니 내 왼족에서 '와장창' 소리를 내면서 나자바졌다. 주인은 오토바이 핸들을 놓고 폴짝 뛰어올라 오토바이만 쓰러졌다. 사람은 웃기게도 자빠진 오토바이 옆에 빨딱 서 있었다.'이게 무슨 영화 같은 상황이디' 하고 있다가 문득 정신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는 외국이고, 나는 소수자이며, 그 녀석이 소리치고 경찰을 부르거나 하면 수리비고 뭐고 정신적 피해보상금이고 해서 한달 생활비 정도는 홀랑 떼어먹히겠구나 하는 불안이 엄습해 왔다.

"버뺀냥?"

그 오토바이의 주인이 물었다. 이건 "괜찮냐" 는 뜻의 라오스어다. (-117-)

저자 한성규는 2011년까지 오산 미군기지 정훈장교로 일하다가, 2019년부터 코이카 봉사단원이 되었다. 마흔이 되기전 자신 앞에 펼쳐진 불행이 삶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고, 스스로 주어진 안정적인 삶을 포기하게 된다. 코이카 봉사단원이 되기 위해서, 영월에서 교육을 받고, 라오스로 떠나게 된다.

그곳에서 한국과 다른 새로운 문화, 라오스 특유의 여유 문화를 보게 되었고, 스스로 문제를 알게 되었다. 라오스보다 풍요롭게 살만서,질서있게 살면서도, 풍족하면서 살아가 본 적이 없다는 것은 한국 사회와 문화가 가진 치명적인 문제였다. 여유가 소멸되고, 불평과 의심, 부정만 나타나게 된다. 라오스느 달랐다. 그들은 나에 대한 과오에 대해서도 괜찮다 말하고, 타인의 잘잘못에 대해서도 괜찮다 말한다. 부질서 속게 그들만의 질서가 있으며, 저자는 실제 현지에서, 자신의 불행을 초래할 수 있는 상황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행복하게 살아가며, 즐겁게 살아가되, 나름대로 현지에 적응하게 되면서, 코이카 봉사단원으로서 , 뿌듯함과 사명감을 얻게 되었고, 한국인에겐 없는 라오스가 추구하는 행복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타인을 의식하지 않았다. 노래를 못해도 괜찮고, 누구보다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 내가 좋으면 좋은 것이고, 내가 못해도, 못해서 좋은 것이다. 단 현재를 살아가고 있으며, 타인과 비교하지 않았고, 평가하지 않았다. 노래를 못하더라도,내가 노래를 좋아하면, 라오스인은 그대로 실천한다. 한국인이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노래를 못하거나, 발표를 못하거나, 수치심, 부끄러움 때문에, 나서지 못할 때가 있다. 라오스는 절대 그것이 없다. 나를 위해 살아갔고,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에 대해서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래서, 타인에게 관대하고, 나에게 관대하다. 나를 쉽게 용서하고, 타인의 잘잘못도 쉽게 용서한다. 한국인의 삶과 의식구조로 볼 때, 상당히 이질적이고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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