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을 잊은 그대에게 - 불안하고 막막한 시대를 건너고 있는
김성중 지음 / 흐름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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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 낭만이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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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을 잊은 그대에게 - 불안하고 막막한 시대를 건너고 있는
김성중 지음 / 흐름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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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세기 허무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신은 죽었다" 라고 선언하기 한 참 전, 이미 그 시대에는 신의 존재를 부정했던 사람들이 존재했다. 일례로 영국 낭만주의 시인 퍼시 비시 셸리 가 <무신론의 필연성> 이라는 글을 썼다가 옥스퍼드 대학에서 퇴학당했다. 계몽주의는 과학적 지식에 '힘' 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인류의 행복을 가져온다고 믿었다. (-25-)

어린시절의 순수함이 창조성과 삶의 낭만성을 유지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는 하지만, 성장하지 않은 채오 언제까지나 어린 시절에만 머무를수는 없다. 순수의 또 다른 얼굴은 미숙함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81-)

바람처럼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무언가에 얽매이지도 않고, 무거운 짐 하나 없이 가볍기맘 하고, 때로는 살랑이다 때로는 격정적으로 몰아치기도 하는 그 분방함이란, 바람의 또 다른 이름은 자유자.낭만중늬 시인들에게도 '바람'은 신비로움과 자유로움의 원천으로 여겨져서 시에서 자주 쓰이던 모티브였다. (-167-)

우울은 죽어야 하는 미와,

작별인사를 하려고 항상 입에 손을 대고 있는 환희와, 벌이 꿀을 바는 동안에 독으로 변하는 고통스러운 기쁨과

공존합니다.

베일에 가려진 우울은

희열의 성전에 그녀의 성소를 가지고 있어요.

그 성소는

환희의 열매를 강한 혀로 입안에서 터뜨릴 수 있는 사람만이 볼 수 있으리. (-234-)

예전에 여든 살을 바라보는 한 비구니 스님이 영어 교사로 은퇴하고, 뒤늦게 낭만주의를 공부하고 싶다며 내가 재직 중인 대학원에 입학하였다. 한번은 그분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데 다 거짓말이야, 늙으니까 수업 따라가기가 힘들어!" 솔직한 말씀에 스님이 순박함이 느껴지면서, 동시에 '그렇지 , 나이가 들면 벅찬 일이 분명히 있지. 그런데 우리는 왜 다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말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272-)

먹는다는 것은 중의적이다. 밥을 먹고, 나이를 먹고, 삶을 먹곤 하였다. 때로는 죽음을 먹고 살기도 하는 인간의 삶이 어느 순간 , 낭만 가득한 삶에서, 물질 가득한 삶으로 바뀌게 된다. 최백호의 『낭만을 위하여 』 를 꼭 부르지 않더라도, 노래방에서 누구나 읊었을 세씨봉의 번안 음악이 아니더라도, 우리 삶에 낭만이 필요한 이유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 , 삶과 배려, 존중에 있었기 때문이다. 물질적인 풍요 속에서, 기술이 발달함으로서, 사람의 목숨, 동물의 목숨을 자본과 맞바꿔 버리는 걸 보면서, 편리하고, 바른 것이 마냥 나에게 이득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을 자각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혁신과 변화, 속도전도 마찬가지다.

우리 삶의 변화에 낭만이 스며들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골목은 낭만 가득한 공간이다. 골복에는 사람으로 채워지며, 기술로 채워지지 않았고, 사람으로 채워진 그 공간에 우리는 평안과 마음의 안식을 느낄 수 있다. 골목에는 나눔과 행복과 기쁨이 깃들어져 있다. 낭만이 비록 직접적인 자본으로 연결되지 않더라도 돈으로 대체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느껴지기 때문에, 우리는 복잡한 삶, 고달픈 삶 속에서도, 낭만을 추구하며 살아가면서, 서로를 아끼고,나를 보호할 수 있는 무언가를 갈망하게 된다.

우리는 다시 낭만의 회복을 꿈꾸고 있었다. 증기기관차가 나타나고, 우리가 속도에 도취되어 가면서, 만족하지 못할 때, 남만주의 문학과 시인이 탄생하게 된다. 그동안 노벨 문학상을 소설가로 대체하였을 때, 2016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포크송 밥 딜런이 되었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기존의 관습과 관행을 깨고, 파격적인 실험으로 불리었으며, 그 당시 뜨거운 논란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그 논란이 사라지고 있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어른으로 갈수록 낭만이 사라지고, 순수가 사라지게 되는 사회적 풍토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시인, 포크송에서, 느껴지는 삶의 여유로움을 자각하면서 살아가되, 우리가 가지고 살아가야 햐는 것, 놓치지 않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망각하지 않는다면, 혼돈 스러운 세상에서, 자신의 삶을 회복할 수 있고, 정제된 삶을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을 믿게 되는 순간이 내 앞에 당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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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1페이지, 지적 교양을 위한 철학 수업 - 인간의 본질에 대한 통찰이 담긴 입문서
조이현 지음 / RISE(떠오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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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철학 교양 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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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1페이지, 지적 교양을 위한 철학 수업 - 인간의 본질에 대한 통찰이 담긴 입문서
조이현 지음 / RISE(떠오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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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은 지혜와 연결된다. 지혜롭지 않은 이들에게 인문적 소양이 깊지 않다고 언급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지식이 없으면, 무식하다는 것으로 지나칠 수 있지만, 지혜가 부족하면, 근심과 걱정은 끊이지 않는다. 해야 할 것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별 짓지 못함으로서, 발생하는 문제는 되돌릴 수 없는 깊은 상념, 후회로 남게 된다. 그래서, 인문학이 가지는 깊은 거부감보다, 가볍게 지나칠 수 있는 인문학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넓고 보편적으로 읽을 수 있는 책 『1일 1페이지, 지적 교양을 위한 철학 수업』 이 눈에 들어온 이유다.

기쁨은 불시에 찾아와도 반갑지만 슬픔은 예고 되어도 환영받지 못한다. 슬픔에는 딸려 오는 아픔의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기쁨에는 가족이 없어도 슬픔에는 처자가 있다' 라는 이탈리라 격언처럼 기쁨은 걸음을 가볍게 하지만 슬픔은 마음을 무겁게 한다. (-23-)

365일 기쁜 일만 생기는 것도 아니고, 365일 슬픈 일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기쁨은 손에 쥔 듯 하다 빠져 나가는 물과 같고, 슬픔은 내 손에 박힌 가시처럼 , 한 번 박히면 아픔이 생겨난다.그래서,지혜는 슬픔을 견디고, 기쁨을 머무를 수 있는 요령이었다.

마음이 순진한 것과 생각이 순진한 것은 확연한 차이가 있다. 전자는 친근함을 줄 수 있지만, 후자는 간교한 자들의 먹잇감을 자처한다. 지성없이 본능만으로 살면 주변엔 노략꾼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53-)

뻔뻔한 것도 문제이지만, 순진한 것도 문제가 된다. 단순히 순진하면, 타인에게 민폐가 되고 있음에도 민폐인지 모를 때가 있다.그래서, 이 책이 눈에 들어온 이유는 여기에 있다. 마음이 순간하더라도, 생각이 순진하면 안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 우리에게 필요한 삶의 원칙은 스스로 세워 나가야 한다.

인간은 용서함으로 악을 선으로 이겨야 한다. 복수를 하늘에 맡김으로 손에 피를 묻히지 말아야 한다. 원수가 굶주리면 먹을 것을 주고, 목말라 하면 마실것을 주어 원수의 머리에 숯불을 놓아 견딜 수 없게 해야 한다. 용서야말로 복수에 필적하는 것 이상이 가치 있는 화끈한 응징이다. (-69-)

사람의 본성에 비추어 용서는 어렵고, 복수는 쉽다. 우리는 누군가를 용서하면, 억울하고, 원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끔하게 혼내는 것이 용서하는 것보다 더 효율적이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수는 더 위험하다. 복수는 내가 피를 묻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 손에 피를 묻히면, 나에게 피가 묻기 때문이다. 삶의 철학으로 삶고, 인생의 신념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다. 용서를 실천하고, 내 삶에 있어서 복수와 거리를 두어야 한다. 공교롭게도 우리는 그 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기억은 깨달음을 안으로 받아들이는 것이고 망각은 교훈을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다. 기억해야 할 것을 망각하면 망각해도 될 것을 기억하며 살게 된다. 삶의 군더더기와도 같은 불필요한 기억들로 정작 소중한 생각들이 유실된다. 망각은 경험에서 유익을 얻지 못한 사고 思考 의 미숙함이기에 기억하고자 하는 의식자체가 변화의 시작이 될수 있다. (106-)

기억해야 할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망각해야할 것을 망각하지 못하는 인간의 우매함을 경계해야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우리는 망각과 기억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의식적으로 행동하고, 실천하고, 구분지어야 하는 하는 여기에 있다. 망각은 의식적으로, 행하고, 뿌리 깊숙한 곳까지 끊어내야 내 삶을 단순하게 만들어 나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복수를 기억하고, 용서를 망각한다.

가슴을 하찮게 여기면 머리만 내세우는 우를 범하고, 머리만 사용하면 가슴은 황량한 사막이 되어버린다. 사람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는 것은 머리가 아닌 가슴이기에 머리만 쓰고 가슴을 사용하지 않으면 상대의 마음에 의혹이 생긴다. 이들에게는 가슴으로 적은 일을 하는 것이 머리로 많은 일을 하는 것보다 낫다. (-156-)

가슴과 머리, 우리에게 상황과 조건에 맞는 마음과 생각이 필요학다. 우리 사회가 똑똑해지면서, 머리를 먼저 앞세우고, 말로서 상대방을 이기려 한다. 이겼지만, 찝찝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삶의 긍정을 확보하고, 새로운 삶, 다스한 삶, 가슴은 따스하게, 머리는 차갑게 살아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지혜는 신성한 것이기에 진리에서 찾아야 하고 깨달음을 삶과 경합할 때 생성된다.지혜의 본성은 청빈해서 족함을 모르는 자의 가슴에는 깃들지 않아 채우기 위해 먼저 비워야 한다. 지식은 전수할 수 있어도 지혜는 물려줄 수 없기에 삶으로 나타지 않는 지혜는 무익하며 이 또한 지나치면 비난을 자초하지에 발톱을 감추는 절차가 동반돼야 한다. (-165-)

죽을 때까지 지혜와 진리를 구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지식은 글로 쓰여질 수 있지만, 지혜는 글로 전수되지 않는다. 실천하고, 실행하며, 자신의 마음을 단속하는 것, 내 삶을 지헤로운 삶으로 바꿔 나가는 것,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것, 내 삶을 지헤로운 삶으로 채워 나가는 것, 이 책을 읽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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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니체가 내 삶을 흔들었다 - 니체와 함께하는 철학 산책
장석주 지음 / 문학세계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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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생각이라는 섬광에 기대어 세계와 논재를 직관한다. 철학자느 머리를 짜내어 '정리(定理)' 를 세우고,'명제'를 제시하고,'정리' 와 '명제' 를 통해 대상을 이해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철학은 서로 마주칠수 없는 것들을 접목하고, 그 내부로 삼투하며, 상호적으로 융합하는 사유의 방식! 철학은 대상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하고, 철학자는 사건과 현상의 발견자가 되어야 한다. 철학은 사유의 내용이 아니라 사유 그 자체에 바글거리며 발현되는 것이다. 철학이 자명한 것, 즉 상식, 대화,지혜 너머로 나아가려는 사유의 도약 속에서 뜨겁게 달아올라 빛을 내는 행위라면, 그 본질에서 논쟁술이 아니라, 사유의 약동이자, 도약이다. 이때 사유의 내용이 무엇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사유의 내용이란 늘 사유의 형식 자체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철학은 오로지 생각함에서 치르는 사유의 유격전이고 야전술 교본이어야 한다. (-13-)

세계가 존재하려면 동일한 것의 영원한 회귀가 있어야 한다. 우리 삶도 동일한 것의 영원한 회귀 속에 사라졌다 돌아오기를 거듭한다. (-33-)

시인이자 니체 철학 전공자인 진은영은 "영원 회귀는 우연을 강요하는 필연의 숨결이며 신들의 창조적 능력이 발휘되는 주사위 놀이이다. 주사위 놀이의 비유를 통해서 먼저 영원 회귀는 차이의 반복 운동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니체, 영원 회귀의 차이의 철학』 ) 라고 말한다. (-85-)

독수리는 고고한 동물이다. 독수리는 군집 생활을 마다하고 저 혼자 살며 높은 허공을 나는 크고 강한 새다. 니체는 독수리가 두려움을 아는 자, 그러면서도 그 두려움을 제어하는 자, 긍지를 갖고 심연을 바라보는 자라고 그 용기와 지혜를 예찬한다." 독수리는 눈으로 심연을 응시하고 있는 자, 독수리의 발톱으로 심연을 움켜잡고 있는 자렸다." (-176-)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라. 스스에게 거짓말하지 말고 항상 성실해야 한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습성을 갖고 있으며 어떤 반응을 보이는 사람인지 제대로 알아야 한다.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사랑을 사랑으로 느낄수가 없다. 사랑하기 위해, 사랑받기 위해 스스로를 정확히 하는 것으로 시작하라. 자신조차 모르면서 상대를 알기란 불가능하다. " ( 니체, 『아침 놀』) (-254-)

니체(F. W. Nietzsche)는 1844년에 태어나 1900년 8월 25일 사망하게 된다. 그가 쓴 대표작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가 있으며, 허무주의 영원회귀의 개념을 말하였던, 망치를 든 철학자라고 부르곤 한다. 그래서 그의 철학을 안다는 것은 위선이며, 그의 철학의 완벽함을 그 누구도 알 수 없다고 생각하는 철학을 독학으로 익힌 장석주의 철학 신념이 돋보이고 있었다. 철학자의 철학자라고 말하는 니체에 대한 경외감을 숨기지 않고 있다.

즉 니체의 철학은 고통 속에 잉태하였다. 그의 절대적 고독감과 외로움이 없었다면,그의 철학은 미완성이었을 것이다. 물론 저자도 니체에 대해서 잘 모르면서, 여전히 탐구하는 학생으로 나기를 바란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있었으며, 이 책에서, 니체의 철학의 정수, 본질을 알고자 한다면, 책을 덮으라고 미리 말하고 있다. '신에 대한 부인' 신은 죽었다고 말하였던 니체 이전의 유럽 사회는 절대적인 신의 존재가 현재하고 있었다. 그래서, 신의 세계에서, 인간의 세계로 전환됨으로서, 인간의 허무주의는 극대화하는 부작용을 잉태하게 된다. 소위 인간에게 부모가 없는 것이나 매한가지였기 때문이며, 신의 부재는 나의 존재의 부재와 일치하고 있었다. 그래서 니체는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목적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인간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신에 의지하였던 인간은 ,의지할 대상이 사라짐으로서, 니체를 원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니체는 목적없는 삶을 견뎌내지 못하는 인간의 속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진리를 탐구하고, 길을 만들어 나갔으며,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서 노력하고자 하였다. 즉 동물의 삶이 본성과 충동에 의존하였다면, 인간의 삶은 새로운 삶을 완벽하게 구축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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