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칠집 김씨 사람을 그리다 - 김병종 그림 산문집
김병종 지음 / 너와숲 / 2022년 11월
평점 :
품절

쓱쓱 밀어내는 무심한 손가락
심지어 내민 기차표 위로도,
재빠르게 지나가는 부끄러운
흉터
아아, 어디에 있어도 결국엔 갇혀
버리고 만다.
불구의. 그러나 힘센
너의 그 팔뚝 안으로.(-31-)
상학적인 시간의 제각기 다른 모서리를 찾아 돌아서기 시작하는 시간, 문득 수만 개 난타하며, 환청되어 드리는 저녁 종소리.
번쩍 고개를 쳐들었을 때, 아아 누가 걸어두었는가.
저 춥고 시린 허공에 번지는 따스한 불빛 하나, <만도>(-55-)
신림동 순환도로변에 화실을 정한 지 벌써 다섯 해가 되었다. 이 다섯 해 동안 밥을 대어 먹고 있는 뒷골목 식당에서 나는 '칠집 김씨' 로 통한다. 주로 공사판 인부들인데 식사도 푸짐하고 사람들도 재미있어 나는 만족하고 있다. (-56-)
4학년을 마치고 읍으로 전학온 나는 가끔씩 옛 급우들을 만나 선생님의 안부를 무심한 체, 그러나 가슴 졸이며 묻곤 했다. 중학생이 되던 해.나는 선생님과 꺽다리 아저씨가 결혼했다는 소식을 알게 됐다. 그리고 키득거리며 전해주는 옛 악동들의 입을 통해 선생님의 배가 남산만 해져서 계단을 오르는 데도 식식댄다는 처절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의 깊은 배신감과 낙담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80-)
나의 고유한 오리진. 나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키는 중재는 내가 밟고 돌아온 따의 장소성뿐 아니라 ,살랑거리는 수만 개의 댓잎 소리, 시각을 청각화시키도록 포위해 오는 그 댓잎들의 소용돌이며, 아직도 봄이면 분분히 날리는 송홧가루 같은 것들이다.그중에 과거를 현재로 불러내는 연자 누나의 목소리도 있음은 물론이다. (-111-)
어쨌거나 그때 느낀 착잡함이나 당혹감을 나는 메구로의 일본민에관에 갈때마다 똑같이 느끼곤 한다. 조선시대 미술품은 물론 에도 시대 미술품 등과 전시실을 달리하고 있지만, 과연 관람객의 몇 프로가 조선이 오늘날의 코리아라고 인식할 수 있을까 회의하게 된다. 더불어 수많은 한국의 미술학자나 평론가들이 왜 한 번도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는지 아쉽기만 하다. (-198-)
"용기가 없다면 단 한 번의 이착륙도 해낼 수 없다."
생텍쥐페리의 야간비행 서문에 소설가 앙드레지드가 썼다는 문장이다.그런 면에서 생텍쥐페리는 노후한 공군 수송기와 정찰기로 지중해를 왕래한 용기 있는 비행사였던 셈이다. (-210-)
그 김병기 선생님은 이제 106세가 되셨다. 그만큼 사신 분을 만나기고 어려운데 늘 작업을 하고 계신다. 내년에도 개인전이 잡혀 있다고 하셨다. 내가 정말 대단하다고 했더니 "병종 씨도 그럴 거예요. 우린 친한 데다가 이름도 비슷하잖아."하신다. 부디 그 덕담의 말씀이 내게도 이루어지기를. 그리고 그 덕담을 하신 분과 얼마 뒤 선생님의 부음을 듣게 되었다. 아버지가 김 선생님 얘기를 참 많이 하셨어요. 라며. 영정 속 선생님이 자애롭게 미소 짓고 계셨다. (-217-)
그는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 <천지창조>를 프레스코 기법으로 사 년 만에 완성했다. 몸도 불편한 노인이 높은 비계를 오르내리며 얼굴로 뚝뚝 떨어지는 물감과 땀을 견뎌내야 했다. 작품을 완성했을 때, 그의 나이 여든 일곱이었다.마지막으로 비계를 내려오던 날, 그는 '안코라 임파로 Ancora Imparo(나는 아직 배우고 있다)"라고 썼단다. 혹은 그렇게 중얼거렸는지도. (-261-)
그의 책이 지구인들에게 그토록 많이 읽힌다는 것은 한편 슬프고 한편 기쁜 일이다.이 행성에는 아직 허리 휘도록 노동해도 가족끼리의 저녁 한 끼가 자유롭지 못한 삶이 있다는 이야기이며, 대성통곡해도 풀리지 않을 응어리를 가진 삶이 너려 있고,허깨비 같은 죄와 싸우느라 기진맥진한 삶이 있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슬픈 일이다.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땅에 굳건히 두 발을 딛고 서서 눈 들어 하늘을 바라보려 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상처 받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 세상에 대해,죽음에 대해,신에 대해 묻고 싶어 하다는 점에서 희망적이다. 질문하는 것이야말로 인간됨의 특권일 것이기 때문이다. (-288-)
어느덧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 자신의 고향 남원에,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에 있는 <바보,예수>,<푸죽> 등 동양의 미학,조선의 미학을 나름대로 회복하려 했던 김병종 서울대학교 미대 명예교수는 어릴 적 문학소년의 꿈을 키워 나갔다. 위의 삶은 어떻게 바뀔 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지만, 자신의 태어난 그곳에서의 정서와 가치관은 일평생에 걸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풍각쟁이,환쟁이, 칠집 김씨로 불리는 김병종 가천대 석좌교수는 그가 남겨놓은 그림 하나하나에서 엿보듯이 미술적으로 볼 때, 철학적이면서, 소박하다. 우리 삶과 매우 깊이 침전하고 있는 예술적 가치를 다시 수면 위로 끝없이 올림으로서,동양의 미학을 새롭게 정립하고 있으며, 그는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그가 추구하는 미학은 서양의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미켈란젤로가 15세기에 남긴 불후의 명작 천지창조처럼, 자신의 삶의 영속성을 꿈꾸고 있었다. 짧은 인생과 비견하여,예술은 영원하다는 진리는 언제나 유효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고향 남원에 대한 기억들, 언제나 시선은 순백 생명의 색을 재현하려고 노력하였으며, 미술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질감과 색감을 보존하려고 애써왔다. 그의 미학은 문학적 교양에서 시작되었다.C.S 루이스가 남긴 『순전한 기독교 』, 셍텍지페리가 남겨놓은 『어린 왕자』, 『야간 비행 』처럼,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이해하고, 습득할 수 있으며, 함께 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도전과 용기르 미술에 채워나간다. 삶이란 우리 곳곳에 숨어 있으며, 모래위의 천막에서, 예쑬적 영감을 얻어낼 줄 아는 존재여야 했다.그래서, 끊임없이 예술적 영감을 얻기를 원하였고, 평생에 걸쳐서 미적인 감각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생명과 자연에서 얻는 배움에 집착하게 된다. 유년 시절 말집 소녀의 추억을 미적인 향수로 재현할 수 있었고, 평생 바다를 볼 수 없었던 그곳에 바다를 그릴 수 있었다. 자신이있어야 할 곳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그것을 삶의 지향점으로 삼았다. 있는 것 위에 있는 것을 덧칠하지 않았으며,없는 것,무심하기 그지 않는 것에 대한 무형의 가치를 발견하려고 애를 쓰게 된다.바로 그러한 추억들이 모여서 예술적 가치, 미학의 원천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