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쿠로스 쾌락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7
에피쿠로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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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로스의 죽음이 다가왔을 때 이도메네우스에게 다음과 같은 서신을 썼다.

"내 생에에서 축복받는 날,임종을 앞둔 이 날에 나는 자네에게 이 서신을 쓰고 있네.배뇨 곤란과 이질로 인한 통증이 최대한도의 고통으로 다가와 하나도 남기지 않고 내게 극심한 고통을 주고 있지만,이 모든 것에도 그대와 나눈 대화를 기억하면 내 마음은 기쁘다네,. 자네는 어려서부터 나와 함께 철학을 해온 사람이니, 자네가 메트로도로스의 자녀들을 돌보아주게,"

이것이 에피쿠로스가 남긴 유언이었다. (-29-)

우리가 가장 중요한 것들의 원인을 정확히 알아내는 것이 자연학의 과제이고, 행복은 천체 현상을 알고 거기에 비추어 천체의 본질을 알며, 이것을 정확하게 아는 데 필요한 그 밖의 다른 것을 아는데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천체 현상들과 관련해 원인이 여러가지 일 수도 있고 다르게 일어날 수도 있지만, 의심이나 혼란에 절대로 포함될 수 없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 지성은 이것이 절대적으로 사실임을 안다. (-68-)

에피쿠로스주의자들은 모든 죄가 다 똑같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건강은 어떤 사람에게는 좋은 것이지만,어떤 사람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다. 용기는 본성적으로 생기지 않고,이득에 대한 계산에서 생겨나며, 사랑과 우정도 필요에 따라 생긴다. 하지만 열매를 거두려면 땅에 씨앗을 뿌려야 하듯이,사랑과 우정도 먼저 기초가 놓여야 한다. 완전한 쾌락을 이룬 사람들 사이에서 삶의 공유를 통해 사랑과 우정을 얻는다. (-103-)

어떤 쾌락도 그 자체로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어떤 쾌락들을 만들어내는 것은 쾌락보다 훨씬 더 많은 괴로움을 가져온다. (-145-)

하지만 이오니아의 여러 도시는 기원전 530년 페르시아에 정복되고, 밀레토스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이에 따라 흑해 연안의 그리스 식민지와의 무역은 아테네인의 수중으로 넘어갔고, 이오이나에서 활동했던 철학자들은 대거 아테네로 이주했다. 그 후 아테네는 그리스 여러 도시의 주도권을 장악하여 페르시아와 싸웠는데, 기원전 490년에는 마라톤 전투에서 ,기원전 480년에는 살라미스 해전에서 페르시아를 격파한 후에,기원전 447년에 아테네와 페르시아 간에 카리아스 협정이 맺어지면서 페르시아 전쟁은 끝났고, 이오니아 식민지들도 회복하게 되었다. (-173-)

안광복의 『식탁은, 에피쿠로스처럼』,에릭 와이너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얀 드로스트 『생각에 기대어 철학하기』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을 읽은 바 있다. 이 네권의 책의 공통점은 에피크로스 학파와 엮이면서,에피쿠로스 학파에 대한 배경지식을 얻을 수 있고, 에피쿠로스학파의 개념 이해를 돕고 있었다는 거다. 고대 그리스시대, 에피쿠로스[ Epikuros ,BC 341년경 ~ BC 270년경] 는 유물론자이면서, 헬레니즘 시대의 중요한 철학자이기도 하다. 특히 전쟁 와중에 고통과 배고픔,질병으로 인해 그리스인이 죽어가던 가운데, 그들이 선택한 것은 철학에 대한 이해이며, 정신적 쾌락이 눈앞에 놓여진 고통과 물행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본다. 에피쿠로스학파와 스토어 학팔르 서로 비교해보는 것도 좋다.

에피쿠로스는 그 시대의 상황에 맞는 대안을 제시한다.. 육체적 쾌락, 물질적 쾌락과 전혀 다른 정신적 쾌락을 강조한다. 자연법에 의거하여, 친구와 가족 간의 화목함, 지식과 지혜를 구하면서, 얻게 되는 만족감, 사랑, 그리고 세상에 대한 이치를 구하는 시간과 노력이 여기에 해당된다.즉 지금처럼 먹방, 혼영, 혼술,섹스에 도취해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폭력과 혐오,증오에 빠져 살아가고 있는 삶의 혼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에피쿠로스의 정신적 쾌락에 답을 구할 수 있었다. 즉 물질적 쾌락과 육체적 쾌락은 당장은 즐거울 수 있지만, 역설적으로 고통의 근원이 된다. 하지만 정신적인 쾌락은 당장 내 앞에 가시적인 쾌락이나 만족은 아니지만, 행복과 즐거움,만족과 평온함을 얻을 수 있다. 바로 유물론자 에피쿠로스 가 제시하는 쾌락이지금 우리 앞에 놓여진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으며, 행복과 평온이 내 삶에 깃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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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견디는 기쁨 - 힘든 시절에 벗에게 보내는 편지
헤르만 헤세 지음, 유혜자 옮김 / 문예춘추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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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내 말의 핵심은 '절제'이다.굳이 어느 오페라 공연의 초연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결정을 내리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요즘에는 많은 사람들이 일간지를 하루라도 읽기 않으면 큰일이라도 벌어질 것처럼 생각하지만 나는 유행이나 관습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 만의 길을 가는 사람들을 몇 알고 있다. 그들이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만 그들은 그런 용기를 낸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14-)

절제된 행동 습관은 '사소한 기쁨'을 내면에서 맛볼 수 있게 해 주어 쾌락을 만끽하도록 만들어 주는 능력이다. 그런 능력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타고나는데 현대 생활에서 왜곡되고 잃어버린 가치인 유쾌함, 사랑, 서정성과 같은 것들을 기초로 한다. 이른바 시간에 쫓기며 돈에 연연하는 삶을 지양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그러한 작은 기쁨들은, 일상의 곳곳에 너무나 많이 흩어져 있고 눈에 잘 보이지 않아서 일에만 몰두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둔감한 감성으로는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16-)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한없이 부러움을 느낀다. 그들은 시간도 많고 그만큼 여유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마치 그들은 어떤 사람의 아름다움이나 나쁜 사람의 비굴함에 대해 생각해 보기 위해 기꺼이 하룻밤과 오전 시간을 할애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 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이야기의 절반 정도를 들었을 뿐인데 자정 무렵이 되어 버리면 내일도 또 다른 하루가 있다는 것에 대해 알라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조용히 잠자리에 든다. (-28-)

삶이 힘겨울 때에는 사람의 본성이 드러난다. 정신적 혹은 이상적인 것들에 대해 개인들이 저마다 맺고 있는 관계 또한 마찬가지다.비록 맛볼 수도 없고 만질수도 없집만 ,외적인 삶을 익숙하게 뒷받침해 주던 것들이 사라지거나 파괴되었을 때 그것들은 비로소 진가를 드러낸다. 희귀한 경험을 하게 만드는 큰 시험에 처해서야 비로소 많은 사람들이 이상적인 것을 취하기 위해 죽음도 불사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54-)

『크놀프』,『데미안 』, 싯다르타 』를 쓴 헤르만 헤세(1877.72. ~1962.8.9) 의 영성 에세이 『삶을 견디는 기쁨』이다. 이 책을 통해 지금 21세기 현대인의 삶과 그가 살았던 100년전 삶을 비교하면서, 삶의 나침반과 지혜를 엿볼 수 있으며,그의 삶의 철학과 삶을 견디는 처세법을 얻을 수 있다.

영성에세이 『삶을 견디는 기쁨』은 스콧니어링의 자급자족적인 삶, 명상에 따라서,내 삶을 관조하는 삶을 꿈꾸고 있다. 목표를 우선하며 살아가면,내 삶이 불행해지고, 두려움과 공포 속에 살아간다고 말한다. 그가 살았던 시대에, 물질적링 풍요가 가져오는 사회적 부작용을 보면서, 그 당시 사람들에게 유익한 지혜를 제시하고 있다. 도시가 점점 확장하고, 커지면서, 도둑과 소매치기가 늘어나는 유럽사회의 변화를 보면서 개탄하고 있었으며, 나답게 살아가려면, 목표가 아닌 목적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의 생각과 그의 지혜는 지금도 유효하다. 절제된 삶이 행복과 만족을 준다. 복잡하고, 기술 주도의 세상에 살아가면서, 우리가 추구하였던 것들에 대한 상실을 회복하는 길을 인도에 직접 머물러 살아가면서 영성의 힘이 유럽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 데미안에서, 그가 말하였던 아브락사스에 대해, 책 『삶을 견디는 기쁨』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과 연결된다.지금처럼 시간과 계획에 따라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에서, 필요한 것은 여유와 미룸, 독립적인 삶을 우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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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들
신주희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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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란 무엇으로 존재 가치를 유지하는가.

햄은 자덥했다. 어떤 논리나 철학이 아니라 실험적 행위들을 통해서만 유효한 답을 얻을 수 있다고.나는 오랫도안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평안해 보였다. 고통으로 굳어 있던 턱이 느슨하게 벌어져 있었다. 검붉었던 반점도 활동을 멈춘 화산처럼 서늘하게 식어 있었다. 무엇보다 그의 몸을 집어삼켰던 지금의 냄새가 말끔히 사라졌다. 햄은 겨우 몸을 일으켰다., 침대 귀퉁이에 기대어 팔과 다리를 가슴에 붙였다. (-16-)

자매인, 자매님도 고양이를 좋아하시나 ㅘ요?

네? 아. 네.

얘네 어미가 없어요. 어디서 죽었나 봐.그래서 우유를 좀 가져왔죠.

너무 불쌍해요. (-43-)

지금이라도 아이를 데려오지 그러니.

그럴 형편이 아니에요.

형편이 무슨 상관이야. 죽이든 살리든 제 새끼는 무조건 어미가 키워야지.

숙모는 나무라듯 나를 매섭게 바라봣습니다. (-81-)

그렇게 보니 이렇게 실명이 가득한 소설도 괜찮을 것 같았다. 친구의 뒷담화를 하는 애, 뒷담화에 자꾸만 좋아요, 를 누르는 애, 좋아요 때문에 기를 쓰고 뒷담화에 가담하는 애들의 이름,거기에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뒷담화에 가담하는 애의 이름까지. 어쩐지 누군가를 고자질하는 느낌에 묘한 쾌감이 일었다. 그때였다. 혼자 빙글거리는 나와 블리의 눈이 마주쳤다. (-111-)

그날 집으로 돌아오면서 규림은 윤희가 하이힐을 모으는 취미가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규림은 또각또각 정확한 발소리를 내는 윤희의 하이힐을 내다봤다. 어딘지 아기를 갖고 싶어 하는 사람과는 대조적인 느낌을 주었지만 동시에 가파른 높이를 그러낸 윤희의 발등에 자꾸만 눈길이 갔다.

그런 구두가 얼마나 많아요? (-133-)

쥐약을 들고 선 영도는 혀뿌리가 뻐근함을 느꼈다. 침이 고였다.이제 영도는 화장실에 앉아서 아르바이트에 대해 생각했다. 월세를 셈하고 밥값을 계산하느라 더는 기은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다만 방안에 누워 잠이 오지 않던 언젠가. 천장을 보면서 이 작은 방을 ,상자와 다를 바 없는 이 공간을., 기은은 뭐라고 할까 생각해본 적은 있었다. 영도의 나이는 열아홉 살.이곳 청년들처럼 영도도 이제 그런 것에 꽤 깊은 슬픔을 느낀다. 그런데,쥐약이라니, 쥐약같은 것은 애초에 사지 말아야 했던 게 아닐까? 내게 편지를 쓴 이 소녀에게 이걸 줘도 될까? 정말 이런 것이 유용할까? (-165-)

엄마와 함께 걷던 남자가 어마의 허리를 부드럽게감쌌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입술이 엄마의 입술이 가닿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엄마, 하고 소리르 지를 뻔했다. 손이 떨렸다. 숨이 막혔다. 눈가가 시큰거렸다. 나는 엄마에게 달려가는 대신 조용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193-)

『너는 네 인생이 마음에 드니? 』, 『같은 하늘, 각자의 시선 』,『국경을 넘는 그림자』을 읽은 바 있다. 세 권은 신주희작가의 에세이,공동 소설이다. 소설 속 여린 문체 속에 격정적인 느낀을 잘 표현하고 있는 소설가이다. 그리고 일곱 편의 단편 이야기는 『햄의 기원』,『저마다의 신』,『허들』,『휘발, 공원』,『잘 자 아가, 나무 꼭대기에서』,『소년과 소녀가 같은 방식으로』,『로즈쿼츠』 는 한편의 소설 『허들』에 채워진다.

일곱편의 단편 속에 어둠과 죽음이 나오고 있었다. 인간은 죽음을 기억하고, 사유하하며 개념화한다. 죽음이 있기에 영혼, 유언, 신, 기억, 존재, 회상, 복수, 증오,중독 를 필요로 한다고 본다. 이 일곱 단편 소설에서, 주인공들에게 죽음이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있고, 나의 선택과 결정에 대한 기준이 되고 있었다. 어떤 중요한 선택과 결정에 있어서,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것이 삶,그리고 죽음이었다.

삶보다 죽음을 더 많이 생각하고, 염두에 두고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삶이자 생존방식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내 앞에 놓여진 고통도 누군가의 죽음을 회상함으로서, 위로가 되고, 치유가 될 수 있다. 슬픔도 고통도 죽음으로서 , 펴온해질 수 있다. 산다는 것이 죽음보다 고통스럽다고 말하는 이유,그 말에 공감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이기적이게도 인간은 타인이 죽음에 대해서 자신을 취유하려는 속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어떤 것에 집착하고, 어떤 것을 수집하고, 술이나 마약에 중독되는 원인도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와 공포에 내재되어 있었다.하이힐을 모으는 윤희, 쥐약을 들고 있는 영도, 엄마가 낯선 남자와함께 했던 시간을 바라보는 놀이터가 익숙한 아이의 마음, 이들이 응시하는 죽음에 대한 실체가 바로 우리 앞에 놓여지는 문제와 고민, 삶의 조건이 되고 있으며, 햄의 죽음을 응시하는 화의 깊은 내면 속에는 자신도 햄과 같은 운명을 살아갈 수 있다는 착각 속에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햄의 과거를 회상함으로서, 스스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답을 구하고자 한다. 일곱 편의 단편소설을 읽은 뒤, 작가의 해설을 통해 소설 속 주인공의 인생에 중요한 선택과 결정에 있어서, 결정적인 단 하나의 힌트를 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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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을 만지고 간 책들 - 곤고한 날에는 이 책을 본다
김병종 지음 / 너와숲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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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람이 있다. 별로 애쓰지도 않는데 인생이 술술 풀려나가는 사람, 크게 노력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늘 저만치 앞서가는 사람,안간힘을 써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은 사람.가까이에 그런 사람이 있어 평생 동행해야 한다면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니다.

가마리엘 문하의 사울이 바로 그런 인물이었다. (-21-)

그 죽음을 이집트의 <사자의 서>에서도 이렇게 말한다."죽음은 병든 사람이 회복하는 것 같이 병을 앓고 난 후에 정원으로 나오는 것 같이 오늘 내 앞에 있다. 죽음은 여러 해 동안 갇혀 있는 사람이 잔절히 집에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처럼 오늘 내 앞에 있다." 그런가. 그것은 과연 아름다운 꽃이고 축복이며 설렌은 귀향길인가. 그렇다면 왜 그토록 사람들은 그 설렘의 길에 들어서기를 두려워하는 것일까. 심지어 '죽음'이라는 두 글자만 들어도 외면하고 싶어 하는 것일까.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49-)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찔렸던 것은 바로 날카로운 질문들이 비수처럼 나를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어쩌면 이 시대 크리스천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아픈 지적이 아닐까. 교회마다 위로와 사랑의 메시지는 차고 넘친다. 그러나 아픈 지적은 점점 드물어진다. 이 즈음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로마 병사의 이야기 하나가 떠오른다. 용맹스러운 로마 병사 한 사람이 적에게 포로로 잡혔다. 투항하면 살려주겠다고 하자 병사는 자신의 오른편 팔뚝을 걷어 올려 문장을 보여준다. 로마 황제 가이사의 병사라는 문장이었다."나는 가이사의 종이다. 나를 살리겠다면 이 팔뚝부터 잘라라.이 문장을 한 채 그대들의 종이 될 수는 없다"라고. 피하고 싶은 것이기는 하지만,오늘날의 교회도 가끔은 질문해야 될 것 같다. 아니다. 교회까지 갈 것도 없다. 바로 나 자신에게 질문의 창을 겨누어야 할 것이다."그대는 누구인가." 그대는 정말로 그리스도의 종인가. 로마 병사처럼 그대도 그리스도의 보혈의 흔적을 가지고 있는가. 도대체 그대는 누구의 편인가. 아니 영적으로 살아있기는 한 것인가. 저자의 말처럼 피하고 싶은 그 질문이야말로 교회마다 차고 넘치는 크리스천 무신론자를 살라는 첫 해독제가 될 것이다. (-147-)

죄가 우리를 미혹하거나 격동시킬 때마다 그대로 방치한다면 결과는 뻔하다. 많은 사람들이 걸려 넘어진 것처럼 우리 역시 죄가 원하는 대로 끌려가다 보면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 것이다. 불결한 생각이나 눈짓은 간음으로, 탐심의 욕구는 탄압으로 , 불신의 생각은 무신론으로 발전할 것이다. 죄는 이런 식으로 기회만 오면 덤점 뻗어 나가 악의 정점으로 우리를 유도한다. (-212-)

『칠집 김씨 사람을 그리다』, 『거기서 나는 죽어도 좋았다』을 읽은 적 있었다. 그리고 세번 째, 『내 영혼을 만지고 간 책들』를 읽게 되었다. 이 세권의 책은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가천대 석좌교수이며, 저자 김병조의 저서다. 다수의 책을 써내려가며, 그림과 기독교를 함께 이해하는 시간, 책 한 구너이 넝쿨째 내 앞에 던져진 기분이 들었다.

인문학과 기독교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었으며, 『내 영혼을 만지고 간 책들』에는 44권의 책이 소개하고 있었다. 260페이지를 온전히 내것으로 받아들이고 싶다면, 김병종 교수님의 사유와 사색,질문을 훔쳐와야 한다. 그리고 44권의 책을 읽는다면 금상첨화다. 기독교가 우리 삶에 반영되려면, 진정한 크리스천이 되려면, 로마 병사가 보여주었던 그 모습을 이해할 때이다. 우리에게 사랑과 죽음, 용서로 대표하는 예수그리스도의 삶에 대해서, 교회가 바로 서기 위해서는 사랑 너머의 인간의 원죄에 대해서 들여다 보아야 한다. 세속적인 교회가 타락의 근원, 전쟁의 근원이 되고 있는 이유는 크리스천인 스스로 질문하지 않고, 사색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자신의 삶에 이로움을 추구하여, 성경의 발자국을 온전히 내것으로 만들내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책 『내 영혼을 만지고 간 책들』을 읽으면서, 최인훈 『라울전』 엔도 슈사쿠의 『침묵』 , c.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 』를 읽어본다면, 저자의 생각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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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보다 공감해 주는 나에게
정재기 지음 / 프로방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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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힘든 일을 겪으면 스스로를 포기해 버릴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포기하지 말고 나를 더 사랑해야 한다.

나를 버렸다는 사실은 훗날 트라우마로 자리 잡아 또다시 나를 쉽게 버릴 수 있다.

내가 힘들 때 외면하지 말고 더 가까이 다가가 주어야 한다. 그리고 또다시 부서지지 않게 안아주어야 한다. (-23-)

우리는 서로를 바라볼 때 가끔은 죽음을 앞두고 있는 사람이라는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미워하고 ,원망하고, 증오하는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언젠가는 너와 내가 함께 죽어갈 수 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어쩌면 내일 당장 죽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그냥 머물러서는 안된다.

죽음이라는 것이 갑작스럽게 올 일은 드물겠지만, 오해의 기나긴 터널과 흩어진 감정의 조각을 그대로 두면 많은 후회를 남기게 될 것이다. (-26-)

너무 미워하지 말아요.

너무 상처주지 말고요.

그래도

한때는

뜨겁게 사랑하고

열렬히 응원하고

서의껏 도와주던

그런때가 있었기에

사랑이 식고 오해와 미움으로

뒤범벅되어 버렸어도

다른 누군가가 마음에 들어와

하찮고 보잘것없이 보일지라도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으니까

서로 정말 사랑했었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멋진

우리였을 때가 있었으니까,

기억하며...

사랑했었다는 순간에 대한 예의는

지키도록 해요. (-40-)

정말 미안하지만, 우리 솔직해집시다. 사랑이 영원한가요?

남산에 올라 자물쇠를 채운들 그 사랑이 영원할까요?

그런데 사실 사랑하는 그 순간 당사자들은 몰라요.

사랑이 영원할 줄 알아요. 저도 그랬고, 여러분도 그럴 테고요.

사람들은 누구나 그래요. 한 사람에게 무너져내린 황홀한

인새의 순간 누가 마지막을 떠올리겠습니까?

결국 사랑은 시든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누구나 운명적인 영원한 사랑을 꿈꾼다.

그리고 사랑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사랑 후에 이별은 너무 힘들고 슬픈 일이기 때문에

사랑이 반드시 시든다고 하면 너무 잔인한 일이 아니겠는가.

정말 영원한 사랑은 없을까?

사랑을 지켜내기 위한 방법은 없을까?(-44-)

이성과 공감,우리에게 이성은 가깝고 감성은 멀어진다. 자칫 감정적인 태도와 말과 행동이 화를 부를 때가 있다. 분노와 증오와 배신과 멀어지려고 아둥 바둥하지만, 결국 나의 감정조절을 실패하고, 스스로 무덤을 만들 때가 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앍지만 되돌리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들게 된다.서운했더 마음을 덜어내는 삶의 자세가 필요하다.

책 『논리보다 공감해 주는 나에게』에서 정재기 작가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가까이 두고, 용서와 관용을 베풀며 살라고 한다. 다수의 책을 쓴 저자의 책들 중에서 처음 읽고 있는 책으로서, 나에게 삶의 휴식이 필요하다고 조언하는 듯 했다. 평온한 삶,행복한 삶을 살아가려면 ,나의 주변을 사랑해야 한다. 나의 행동 하나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나의 서운한 감정 하나가, 타인에게 트라우마가 된다. 예의는 몸으로 익혀야 할 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나와 내가 미워하는 대상은 죽음이라는 공통의 운명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오늘 미워하던 그 사람이, 내일 갑자기 죽음의 운명의 굴레에 빠진다면, 결국 내가 미워하는 대상조차 미워할 수 없게 괴고, 증오하던 그 대상조차 증오할 수가 없다. 논리적으로 따지기보다 잠시 내 마음을 다스리고, 상황과 조건에 맞는 자세와 태도가 필요할 때다. 즉 우리에게 필요한 선택과 결정은 우리에게 달려 있었다.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각성하면서, 살아간다면, 영원히 사랑하고, 상대방에게 베풀며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나를 위한 선택, 타인을 나를 아끼는 것처럼 아낄 수 있고, 삶을 내려놓고, 포기하지 않게 된다. 긍정의 씨앗을 뿌리며,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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