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이 뭐예요? 미래를 여는 키워드 3
예병일 지음, 우지현 그림 / 풀빛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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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스 (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 SARS), 메르스 (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MERS), 코로나-19 (Coronavirus disease-2019, COVID-19) 이 세개의 전염병이 10년 을 터울로 대한민국에 창궐하였다. 사스는 대만에 큰 인명피해를 낳았고, 대만은 코로나 19 전염병에 대비책을 만들었다. 메르스는 낙타를 사회적인 원흉으로 보았다. 헤프닝 아닌 헤프닝이 외고 만다. 세번째 코로나-19 는 3년 동안 우리 사회를 흔들어 놓았고,대한민국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 리스크가 되고 말았다. 백신, 수인성 바이어스가 우리 삶의 필요 지식, 상식을 요구하고 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40가지가 발견되었으며, 사람의 몸에서 발견된 것은 그중 7가지다. 현미경이 등장함으로서, 세균, 바이러스의 움직임을 현미경으로 감염병의 원인, 인질병 증상을 일으키는 숙주와 비이러스 종류를 분석할 수 있다. 문제는 인간의 이동 반경, 행동 반경이 늘어나고, 자연이 훼손됨으로서, 박쥐와 인간 공통 바이러스가 인간 사회에 침투하였다. 즉 밀림파괴, 동굴 탐험, 댐 건설로 인해, 야생동물의 자연 서식지가 파괴됨으로서, 박쥐와 낙타로 부터 바이러스가 옮겨 오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백신을 처음 만든 사람은 제너였다. 그리고 그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파스퇴르이다. 인간과 동물, 가축 모두에게 백신은 필요하다. 가축에게 생에주기에 맞춰서 백신을 맞음으로서, 인간에게 만에 하나 생길 수 있는 질병을 예방하고자 한다. 인간은 태어나자 마자 백신을 맞아야 했고, 면역력이 낮은 5세 미만,어린아이들의 사망률을 줄일 수 있었다. 이처럼 세균, 바이러스, 백신에 대한 이해, 백신의 역사를 돕고 있었다. 특히 혈청 치료법을 개발한 독일의 에밀 폰 베링은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할 수 있었고,'세균학의 아버지'가 될 수 있었다.



감염과 전염병의 해결책은 백신 개발에 있으며, 유럽이 신대륙에 들어가거, 원주민을 대상으로 이용핬던 것도 세균이다. 그들에게 없었던 세균을 극소수의 유럽인에 의해서, 신대륙을 정복할 수 있었던 이유다.



        <출판사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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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 오브 아트 - 80점의 명화로 보는 색의 미술사
클로이 애슈비 지음, 김하니 옮김 / 아르카디아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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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은 주문자가 있는 초상화에서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옷이 인물의 지위와 가치는 물론이고 나아가 사회적, 종교적 규제를 전달하는 것처럼 색 또한 마찬가다. 미술의 역사에서 검은 색은 부침을 겪던 색이었다. 하지만 16세기에는 권력과 위엄, 문화적 품위의 상징으로 여겨지면서 왕과 귀족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48-)

젊은 흑인 여성이 강렬한 파란색 숄을 두르고 안락의잘에 앉아 있다. 의자 등받이의 광택 있는 금색 테두리는 반작이는 금색 귀걸이와 조화를 이룬다. 따스한 검은색의 피부와 머리카락과는 대조적으로 복잡하게 묶은 머리 두건과 고전적인 스타일의 의상은 밝은 흰색이다. 크림슨색 리본을 허리에 옷을 고정했지만 묶지 않은 부분이 어깨에서 흘러내려 오른똑 가슴이 드러났다. 이때 그녀의 가슴은 자유를 상징한다. 평면적인 베이지색 배경과 달리 그녀을 이루는 다양한 색체가 노래하고 있다. 인물의 피부 또한 입술처럼 광택있게 반짝인다. 그녀는 차분하고 매력적인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우리와 시선을 맞춘다. (-92-)

이 작품은 보는 이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는다. 초상화의 쥔공인 베르트 모리조는 에두와르 마네의 도료 화가이자 훗날 그의 처제가 된 인물로, 그녀의 초상화는 마네의 인물 탐구이자 색조 연구의 결과물이었다. 마네는 인상주의의 시작점에 있었지만 이 작품의 절반 이상을 뒤덮는 검은 색은 인상주의 화가들이 가장 기피하는 색이었다. 온통 검은색으로 둘러싸인 모리고는 진줏빛 회색 배경에서 마치 조각상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강렬한 검은색 외투와 정교하게 그려 올린 모자에서 움직임이 느껴진다. 오직 붓질만으로 빛과 어둠을 표현해낸 것이다. 마네의 동료 화가였던 피사로는 "마네가 검은색으로 빛을 만들었다"고 극찬했다. (-112-)

'표현주의 Expressionism'는 대게 20세기 작품을 일컫는 용어이다. 하지만 이 새로운 미술 사조는 1880년대 후반 빈센트 반 고흐에 의해 시작했다고 봐야 한다. 반 고흐는 인상주의 작품과 고갱의 상징적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아주 선명한 색으로 구성된 팔레트를 사용하여 들쭉 날쭉하고 과열된 붓질로 캔버스를 채워나갔다. 고달펐던 삶이 끝나갈 무렵 그는 걷잡을 수 없는 창의력의 폭발을 경험했고 밤낮으로 쉬지 않고 일하며 캔버스에 자신을 쏟아부었다. 유토피아적인 노란색으로 해바라기를 그렸고, 꽃이 만개한 아몬드 나무와 밤의 카페 테라스를 그렸다. 늘 지나치게 흥분하고 했던 고약한 습관마저도 작품의 원동력이 되었다. (-153-)

이 작품은 젊은 여성의 옆모습을 보여준다. 금빛 녹색 벽 위로 그녀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그녀는 목이 높은 짙은 상의를 입고 머리카락을 목덜미 뒤쪽으로 동그랗게 묶었다. 긴장이 풀렸는지 입을 살작 벌리고 턱을 아래로 내린 모습이다. 그녀의 시선은 아래쪽을 향해 있다. 이아돔-보아케의 작품 속 모든 가상 인물들처럼 그녀 또한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다. 그녀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붇그럽게 올라간 입술과 내리 깐 속눈썹에서 슬픈 미소가 어려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234-)

클로이 애슈비 「컬러 오브 아트」 는 우리가 미술에서 색에 대해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살펴 보고자 한다. 고대부터 최근까지 미술이 품고 있는 상징과 의미를 미술 사조에 담아내고 있었으며, 사람과 산물에서, 인상주의,표현주의를 완성하게 된다. CMYK 로 이해되는 미술의 색채에 대해서, 색상, 명도와 채도로 이루어진 그림의 색의 3요소를 이해한다면, 자연 그대로의 및과 그림자에 의해 형성된 세상을 그림 화복에 담아내고자 하는 인간의 예술적 집착과 갈망을 엿볼 수 있다. 화가들은 죽음에 이르는 독을 이용하여,나만의 색을 만들고자 한다.

특히 이 책에서, 빛과 어둠에 주목해 보고자 하였다. 특히 검은색은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어둠, 그림자, 부정, 불결, 절제, 엄숙함 등등이다. 특히 종교에서, 검은색은 절제에 해당된다. 욕망에서, 자신의 삶을 최소화하며, 내 삶에 자유로움 뿐만 아니라 내면의 어둠도 살펴보고 있었다.

특히 검은색은 인간의 피부 색과 엮이고 있었다. 한때 살색이라 불리었던 크레파스 색이 사라졌던 것은 그 색이 인간의 차별과 혐오를 조장한다는 인식 때문이다.고인이 된 마이클 잭슨이 검은 피부색을 하얀 피부색으로 바꾸기 위해서, 성형 수술을 반복했던 것은 검은색에 대한 열등감, 트라우마 때문이다. 이 책에서, 검은 색이 인간의 내면 속 부정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다면, 밝음만이 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를 은유적으로 푠현하고자 한다. 한편 반고흐의 색은 표현주의에 맞는 독창적인 색을 만들었다. 때로는 불안했고 때로는 어두었으며, 희망과 절망을 담고자 하였다. 종교, 초상화에 검은색이 많이 쓰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뭉크의 절규 또한 컬러를 뒤섞어 놓음으로서, 한 인간의 심리적인 가면을 들추고자 하는 노력 하나하나, 미술에 투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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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 모든 것을 빨아들인 블랙홀의 역사
앤터니 비버 지음, 김규태 외 옮김, 김추성 감수 / 글항아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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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 히틀러는 폴란드에 대해 느끼는 국민의 강한 분노를 이용했다. 그 분노의 근원은 베르사유 조약으로 폴란드가 서프로이센과 슐레지엔 일부 지역을 소유하게 된 것이었다. 동프로이센과 나머지 제3제국을 분리하면서 폴란드를 발트 해에 도달하게 해준 단치히 자유시와 폴란드 회랑은 베르사유 조약의 가장 불공정한 조항 중 두 가지로 선전되었다. (-38-)

6월 10일 무솔리니는 이탈리아의 군사력과 자원의 약세를 잘 알면서도 프랑스와 영국에 전쟁을 선포했다. 그는 평화가 찾아오기 전에 영토적 이익을 얻을 기회를 놓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독일이 모르는 사이에 알프스를 공격했다가 결국 참사를 불러일으켰다. 프랑스군은 200명 남짓 병사를 잃었을 뿐이지만 이탈리아군은 600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급중 2000명 이상은 동상에 걸렸다. (-177-)

같은 날 이른 아침, 거만하기로 유명한 제8 비행단의 사령관 볼프람 폰 리히트호펜 항공 대장은 제5상악사단의 공격을 살피러 루펠 협곡을 통해 유고슬라비아 국경으로 가서, 자신이 지휘한 슈투카의 활동을 지켜보았다. 새벽 4시에 리히트호펜은 전투 사령부에서 일기를 썼다."날이 밝아오자, 대포의 포격이 시작되었다. 포화가 엄청나다. 이어서 폭탄이 터졌다. 그리스에 인사치레치고는 과도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그러나 리히트호펜의 항공기가 아군을 폭격하는 실수를 저지르면서 제 5 산악사단을 당황케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한편 그리스군은 리히트호펜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끈질겼다. (-240-)

'독가스 홀로코스트'는 두서없이 이뤄졌다. 1935년 초에 그랬듯이,히틀러는 일단 전쟁이 발발하면 안락사 프로그램을 도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심신미약 범죄자, '의지박약',무능력자,선천적 장애가 있는 아이, 이들 모두가 나치가 정한 '생존 가치가 없는 생명'에 포함되었다. 첫번째 안락사는 1939년 7월 25일 ,히틀러 자문위원회 구성을 부탁했던 히틀러의 주치의 카를 브란트가 실시했다.(p330)

1941년 12월 6일, 모스크바 주변에서 소비에트가 반격을 시작하고 있을 때, 미국 해군 암호해독 전문가는 일본 정부와 워싱턴 주재 일본대사 사이에 오가는 메시지를 해독했다. 비록 마지막 부분은 놓쳤지만 의미는 아주 명확했다. 신호가 잡힌 그날 저녁, 루스벨트는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 있던 해리 홉킨스에게 "이건 전쟁을 뜻한다" 고 말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히로히토 천황에게 싸움에서 물러나기를 촉구하는 개인적인 메시지를 막 보낸 참이었다. (-373-)

어떤 사람은 일기장에 "우리 눈 앞에서 사람들이 짐승으로 변했다" 고 기록하고 있다. 굶주림으로 미쳐버린 사람도 있었다. 소비에트 역사에서는 식인 행위가 없었던 것처럼 꾸미려 하고 있지만, 여러 일화와 기록이 식인행위를 증명해주고 있다. 포위 기간에 '인육을 식용으로 사용한 혐의'로 약 2000명의 체포되었고, 그중 886명이 1941~1942년 첫겨울에 잡혀갔다. (-435-)

히틀러가 연설한 다음 말인 11월 9일, 스탈린그라드에 겨울이 찾아왔다. 기온이 급격히 떨어져 영하 18도를 기록했고, 볼가 강을 건너는 일도 더 위험해졌다. 으스스한 소리를 들은 그로스만은 "얼음 덩어리가 서로 부딪쳐 부서지고 깨진다." 라고 기록했다. 재보급과 부상병 후송은 거의 불가능해졌다. 독일군 포병대 사령관들은 적군이 직면한 문제를 알고 도하 지점에 포격을 집중시켰다. 11월 11일에는 독일군 6개 사단으로 이뤄진 전투 집단이 4개 대대의 지원을 받아 공격을 시작했다.그날 밤 추이코프는 즉시 반격을 개시했다. (-551-)

독일군은 식량을 아끼기 위해 포로들에게 전혀 음식을 주지 않았다. 그 바람에 몇몇 생존자는 죽은 전우의 시체를 먹어야 했다.

현실을 오랫동안 부정할 수 없었다. 소비에트 전차가 타친스카야 비행장을 공격하는 바람에 이틀간 수송기가 오지 못했다. 제6군은 눈을 녹인 물에 말고기 몇 조각을 넣어 삶은 수프로 연명하다 굶어 죽었다. 12월 중순에 포위망 안으로 날라온 군 병리학자 한스 기르겐존 박사는, 시신 50구를 부검한 뒤 곧 놀라온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군인들이 굶주림 때문에 죽어가는 속도가 다른 상황보다 훨씬 더 빨랐던 것이다. 그느 이것이 스트레스와 장기간의 영양 결핍, 수면 부족,극심한 추위의 상호작용으로 인한 결과라고 결론 내렸다. (-600-)

11월에 할지의 군대는 라바울로 가기 전 마지막으로 큰 섬인 부건별 섬에 상륙했다. 맹그로브 늪지대와 밀림, 산악지대가 공존하는 부건빌 섬은 뉴조지아의 지세보다 훨씬 더 험난했다. 게다가 4만 명의 일본군 수비대는 4개 비행장으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었다. 할지는 가까운 섬들을 대상으로 몇 번의 견제 공격을 개시한 다음, 서해안 가운데 수비가 약한 지점에 2개 사단을 상륙시키고 이어서 라바울을 향해 대규모 공습을 벌여 일본군 비행기 100기 이상을 파괴했다. (-698-)

클라크 예하 제5군은 나폴리에서 서북쪽으로 30킬로미터 정도진군하던 중에 볼투르노 강에서 첫 번째 장애물을 만았다. 10월 13일 이른 시각, 사단 및 군단 포병대가 강 너머를 목표로 대규모로 포문을 열었다. 영국 제56사단은 해안 근처에서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강의 너비가 넓기는 해도 걸어서 건널 수는 있었기 때문에 다음 날 넓은 교두보를 확보했다. 히틀러와 마찬가지로 케셀링은 연합군을 최대한 반도 아래쪽에 고립시킬 생각이었다. 북쪽에서 독일 사단을 지휘하며 철수를 주장했던 로멜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798-)

제1사단의 어느 대원은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어떰 보트는 양륙 후 돌아오고 있었고, 또 어떤 보트는 다소 침수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분투하고 있었다. 어떤 보트는 좌초되어 프로펠러가 물 밖에 나와 열심히 돌아가고 있었지만 움직이지 못했다. 어떤 보트는 뒤로 약간 물러났다가 다시 접안을 시도했다....나는 옆에서 파도에 뒤짚혀 부대원들이 물속에 모두 빠져버린 상륙정의 모습을 보았다. 포탄에 맞아 크게 훼손된 상륙정이 파도를 타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도 보았다. 버려져서 병력은 없고 침수된 채 파도에 씻기는 보트도 보았다. 전우들은 그 비참한 가운데서도 어덯게든 자신을 지키려 애쓰고 있었다." (-877-)

독일의 저항이 거세지고 있었기 때문에 스탈린과 장군들은 신병들의 전투능력이 불만스러웠다. 헝가리 동부와 슬로바키아를 방어하기 위해 카르파티아 산맥에서 벌어진 전투에서는 히틀러의 마지막 동맹국 군대가 소련군 베테랑들을 놀라게 했는데, 특히 루마니아 군의 순식간에 붕괴된 것을 본 이후라 놀라움이 더 컸다. 어느 붉은 군대 장교는 "헝가리군은 사실 트란실바니아에 있는 우리에게 큰 골칫덩어리였다. 그들은 끝까지 , 그리고 최후의 한 명까지도 매우 용감하게 싸웠다. 항복이란 건 절대 없었다"라고 기록했다. (-974-)

이오 섬 전투가 종료된 3월 25일까지 해병대원 6821명이 전사하거나 치명상을 입었고, 1만 9217명이 중상을 입었다. 자살한 두 명을 포함하여 포로로 잡힌 일본군 병사 54명을 제외하고, 구리바야시의 병력 2만 1000명은 모두 사망했다. 구리바야시가 마지막 전투에서 중상을 입고 사망하자 그가 이끌던 병사들이 굴 깊숙한 곳에 그를 묻었다. (-1059-)

패전이 임박했는데도 아직 100만명의 일본 군사가 버티고 있는 지역에서는 특히 여성을 대상으로 잔학 행위가 계속되었다. 뉴기니나 필리핀과 같은 점령지와 마찬가지로, 일본군 병사들은 군량이 부족해지다 현지 주민이나 포로들을 식량으로 여겼다. 일본군인 에노모토 마사요는 자신이 어린 중국 여성들을 강간 및 살해, 도살했음을 훗날 고백했다. 그는 고기가 많은 부분을 고른 뒤 동료들과 나누어 먹었다고 했다. 그러고는 육질에 대해 "부드럽고 맛있었다. 돼지고기보다 더 맛있는 것 같았다"라고 표현했다. 음식의 정체를 안 지휘 장교도 에노모토를 꾸짖지 않았다. (-1169-)

제2차 세계대전 하면 히틀러와 마루타가 떠오른다. 인간을 향한 잔인하고 가혹한 그들의 행동, 그들은 왜 전쟁을 일으키고 자신의 야욕을 채우기 위해 무엇을 했는지, 전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펼치면서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지 그것이 알고 싶어졌다, 대한민국은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대전을 몸으로 역사로 겪은 나라이며, 여전히 전쟁에 대한 아픔과 고통, 상흔이 남아있었다.세대별로,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슬픔이 현존하고 있으며, 일본군 위안부 사태는 아직 미해결상태이다. 독일과 일본이라는 두 제국주의 국가가 자행한 전 세계를 상대로 한 전쟁 속에서 한 국가의 무능력함을 마주하였으며, 전쟁은 일어나면 안되는 것이라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된다. 하지만 최근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한 러시아군의 전면전이 시작되었다.

대한민국은 전쟁을 몸으로 겪은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로 구분된다. 두 세대가 서로 화합하지 않고 갈등과 반목을 일삼고 있으며, 서로를 이해하지 않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상황에 대해서 세대차이는 극명하게 나누고 있었다. 민족주의가가 강한 나라로서, 경제적 자본주의가 정착되었다. 최근 좌우 정권이 바뀌었고, 좌우 갈등이 다시 표출되고 있는 모양새다. 극우보수단체는 바로 우리의 과거의 역사를 들추어서 그들의 민주주의 가치에 대해서 정치쇼라 부르고 있다.하지만 나의 입장에선 남한과 북한의 리더가 만나서 남북 갈등 해소, 동족간의 전쟁을 피할 수 있다면, 서로에게 더 이익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통일 독일처럼 될 수 없다면, 분단된 상태에서 내 후대에 통일을 기약하면서, 우리는 그 안에서 서로가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면서 제대로 된 협력이 일어났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전쟁에 관련한 주요 사건 사고들보다 그 안에 있는 군인들의 모습, 민간인들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히틀러와 맥아더, 스탈린, 무솔리니, 일본과 독일, 미국과 소비에트, 처칠 등등등. 서로가 전쟁 속에 휘말리면서 히틀러가 생각했던 전쟁의 방향은 점점 더 어긋나고 있었다. 일본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히로타 고지,하야시 센쥬로,히라누마 기이치로,아베 노부유키, 요나이 미츠마사, 고노에 후미마로, 도조 히데키, 구이소 구니아키, 스즈키 간타로,이렇게 9명의 총리가 있었으며, 도조 히데키, 아베 노부유키, 스즈키 간타로는 그 당시의 역사와 엮이는 중요한 인물들이다.

전쟁 속에서 히틀러는 자신의 계획에 따라 전략과 전술을 밑으로 하달하지만, 그것이 계획된 바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새로운 변화를 꾀하게 된다. 선동과 분노를 이용한 전면전, 일본은 그 과정에서, 독일의 전선의 변화에 따라서, 전쟁의 명분을 확보하게 되었다. 공격을 하는 쪽과 방어하는 쪽, 서로가 서로에게 파괴와 약탈을 일삼으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가게 된다.전쟁이 야만적이고, 잔혹한 이유는 ,죽음 앞에서, 법,도덕은 현존하지 않기 때문이다. 살기 위해서, 인육을 먹었으며, 포로를 잡아 먹거나 가족을 잡아 먹어 버리는 참극이 반복되고 있었다. 전염병, 질병,기아로 인해 죽어가는 민간인이 늘어나게 된다.전쟁으로 인해 어린이가 죽어간다. 일본군과 독일군이 지나간 도시에는 파괴와 파멸만 존재하였으며, 복수와 응징, 배반이 존재하게 된다.그들이 생각하는 전략과 전술은 이성적이지 않으며, 선동적이었고, 감정적으로 표출되고 있었다.그 과정에서, 영국의 처칠 수상은 겨우겨우 버티는 수준에 불과했다.

그들은 철저하게 파괴하고 있었다. 연합군의 군인들은 죽어나갔고, 독일군 병사는 전쟁 속에서 독일 본토에서 수송기를 통한 군량수송이 끊어지면서, 스스로 생존을 건 목숨 유지, 자급자족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기록되는 경우보다 기록되어 있지 않은 전쟁 기록 속에서의 잔인함의 형태는 바로 사람이 사람을 먹는 인육 그 자체다. 내가 살기 위해서 내 옆의 또다른 인간을 먹는 행위는 결국 파멸로 종결될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들은 대안이 없었고, 생존을 위해서, 선택해야 한다. 말을 죽여서 말고기를 먹었으며, 민간를 약탈해 주린 배를 채워 나가게 된다. 포로를 통해 탐욕과 성욕을 채워 나갔다. 또한 유럽 각국의 나라들을 침공하면서, 그 나라의 풍토병을 이기지 못하고 죽어 나가게 된다. 혹사병, 콜레라와 같은 전염병이 발생하였으며, 대공항으로 인해 경제가 마비된 상태다. 러시아와 북유럽 각국에서의 전쟁은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면서, 적군과 아군 가릴 것 없이 죽음만 남아있었다. 히틀러의 오판 속에는 바로 독일군 병사들에게 처한 현실을 부정하고 , 미국의 전쟁 개입은 늦어질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어느 정도는 그의 생각이 옳았다.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스페인, 유럽 각국은 허약하였고, 겨우내 버티는 수준에 불과하였다. 하지만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인해 전쟁의 방향이 틀어지게 되었고,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히틀러가 생각했던 것보다 강했다는 걸 알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은 미국에게 태평양과 대서양을 기준으로 전면전이 시작되는, 절호의 기회였고, 영국의 처칠은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해서 자신의 역량을 제대로 과시하지 못하였으며, 히틀러의 잔혹한 행위를 억누르지 못하였다.

전쟁은 승리와 패배로 판가름되지 않는다. 전쟁은 생존과 죽음이다. 우리는 이 두가지 차이를 놓치고 있다. 전쟁을 몸소 겪어 보지 못하는 이들은 전쟁이 가져오는 참혹한 형태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그 안에 스스로 갇혀 버린다는 게 무엇인지 느끼지 못한다. 시리아 공습이나 중동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이슬람 -아랍 전쟁의 형태에서 본질은 빠진 채 미디어를 통해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양상도 마찬가지였다. 전쟁에서 옳고 그른 것은 없다. 전쟁이라는 것 자체가 일어나는 그 순간 옳은 것은 사라지고 그른 것만 존재한다. 이 책을 읽는 목적은 분명하다. 과거의 역사에서 전쟁이 일어나게 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지, 제2차 세계대전 이전과 전쟁 이후의 양상을 들어다 보면 전쟁을 결코 하면 안된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전쟁은 해서는 안 되는 것 뿐만 아니라,전쟁으로 인해 사람이 피폐해지고, 파멸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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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과학 고전 30권을 1권으로 읽는 책 위대한 고전
김성근 지음 / 빅피시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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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이의 망원경은 계속해서 센세이션을 불러왔다. 1613년 《태양 흑점에 대한 서한(Istoria e dimostrazioni intorno alle macchie solari)》 을 발표한 그는 태양도 결코 완전무결한 천체가 아니며,그 표면에는 불순한 흑점이 있다는 것을 알렸다. 그러나 갈릴레이는 책의 출판 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검열관의 트집에 시달렸다. 그는 《성서》 와 부딪히지 않도록 책의 내용을 계속 고쳐 써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릴레이의 발견들이 코페르니쿠스 천문학의 결정적 증거들임은 이미 확실해지고 있었다. (-31-)

아울러 자기력은 상호 간에 끌어당기는 힘이지만, 전기력은 한쪽이 물체를 끌어당기는 힘이라는 차이가 있다. 당시까지 사람들은 자기력과 전기력을 같은 힘으로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길버트는 이 장에서 전기력을 처음으로 자기력과 구분했고, 그것은 결과적으로 19세기 들어 영국의 과학자 마이클 패러데이가 그 두 힘을 '전자기력' 으로 합칠 때까지 전기학과 자기학의 발전에 서로 다른 길을 열어주었다고 할 수 있다. (-85-)

1735년 레이든에서 출간된 《자연의 체계》 초판은 일반 신문을 펼친 크기인 2절 판의 12쪽에 불과했다. 출간 당시 이 책은 완성된 책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직 항목들이 다 채워지지 않은 거대한 테이블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린네는 그 테이블을 채워나갈 방법론을 갖고 있었고, 그것은 식물학자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린네는 이 책을 첫 출간한 이후 수차례 수정판을 냈고, 그때마다 테이블을 채워 나갔다. 그는 초판 이후 30년 동안 약 12번의 수정판을 출판했는데, 1766~1768년 스톡홀롬에서 출판한 제12번째 개정판은 8절판으로 크기가 축소되면서 분량은 2,400쪽으로 대폭 증가했다. (-158-)

홍대용은 그곳에 있던 각종 서양 회화는 물론 자명종, 세계 지도 등 과학 도구들에 큰 감명을 받게 되었다. 《의산문답》 은 홍대용이 60일간의 북경 연행을 마친 후인 1766년 자신의 경험과 사상을 토대로 집필한 것으로 여겨진다. (-204-)

먼저 서장은 '한국 과학사의 새로운 이해'라는 제목이다. 전상운의 《한국 과학 기술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여기에 잘 드러난다. 그는 한국 과학사는 "실질적으로 중국 과학사의 한 지류였으며, 그 변형이기도 했다" 라고 지적하고,그러나 모든 경우에 있어서 중국의 과학과 기술이 한국인에게 그대로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한국인은 중국의 그것들을 언제나 한국적인 것으로 변형하고 개량하려고 노력했고, 그곳에서 더욱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려고 시도했기 때문이다. (-240-)

에피쿠로스는 이런 삶의 감정들을 원자론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노력했다. 즉 그는 좋고 나쁨과 같은 감정들은 물론, 색깔, 맛과 같은 질적 감각들도 모두 원자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한다. 예를 들어, 술이 열을 발생시키는 이유는 열을 야기하는 원자들이 몸 내부에서 뭉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술에는 열을 야기하는 원자와 냉기를 야기하는 원자가 있다. 열을 야기하는 원자들이 모이면 몸이 뜨거워지고 냉기를 야기하는 원자들이 모이면 몸이 차가워진다는 것이다. 이런 설명은 오늘날의 과학 수준에서는 큰 의미를 갖기 힘들겠지만, 어떤 현상의 원인을 신과 같은 외적 요인이 아니라, 그 내부에서 찾으려는 점에서 과학적 태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263-)

총 13권으로 구성된 《알마게스트》는 사실 천문 연구자가 아니면 읽기 쉬운 책이 아니다. 책 내용의 대부분은 천체 운동에 대한 기하학적 작도들과 수학적 증명들로 이루어졌다. 제1권과 제2권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을 비롯한 천문학상의 기본 문제들을 다룬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지구가 구형이고 아무런 위치의 변화도 없이 우주의 중심에 멈춰 있으며, 행성과 별들은 지구 둘레를 돌고 있다는 고대 천동설의 기본 이론을 소개한다. 제1권을 읽어보면 , 프톨레마이오스의 이론이 당대의 풍부한 관측 데이터와 합리적 추론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285-)

전남대학교 자율전공학부 교수로 재직중인 김성근 교수의 『위대한 과학 고전 30권을 1권으로 읽는 책』 이다. 이 책에는 30권의 과학 고전이 소개되고 있었으며, 고대부터 지금까지 과학 혁명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과학 혁명의 발자국을 하나하나 찾아간다.

특히 과학혁명에 있어서, 현미경과 망원경은 중요한 발명품이었다. 거시적인 세계와 미시적인 세계를 아우르기 때문이다. 천문은 망원경으로, 생물, 화학은 현미경의 도움으로 과학을 발전시키고 있었다. 특히 과학은 고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 을 기초로 하고 있었으며, 고대 이래 2만 년간 서양 문명을 지배한 그리스 과학의 본질이었다. 특히 과학은 위대한 권위를 손상시키는 것을 거부했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 과 에우클레이데스의 《기하학 원론》 은 고대에서 중세까지 지배하였던 권위를 가지고 있는 과학이론이다. 주술과 미신에 의해 의료행위가 진행되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이 책에서 눈여겨 보았던 과학고전은 칼 폰 린네의 《자연의 체계》 와 정상운의 《한국 과학 기술사》, 손응성의 《천공개물》 , 클라우디오스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 이다. 이 들은 서양과학에 의존하였던 과학 혁명에 대해서, 동양의 과학 발전사를 이해하는제 도움을 주고 있다. 특히 린네의 《자연의 체계》 는 식물학자로서, 기존의 식물을 체계화,분류하여 질서를 부여함으로서, 이후 과학자들이 학문 체계를 정리하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즉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과학이론을 찾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존의 과학적 사실이나 현상을 븐류, 체계화, 정리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지금처럼 컴퓨터, 인터넷이 없었던 그 시대에 한 사람에 의해 정리된 과학 백과사적은 과학 발전에 있어서 큰 공헌을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단순히 천동설을 성서에 의존해 왔다고 생각하였지만, 이 책을 읽으면,클라우디오스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 가 천동설 이론의 과학적 근거를 뒷받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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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커스 한국사연구소 지음 / 해커스한국사 / 202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2023년 첫 목표 중 하나,버킷리스트 하나로,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한국사를 한국의 역사,한반도의 역사에 대한 교양을 쌓는데 머물렀다. 목적을 가지고 해커스 한국사 능력검정 시험 4~6급 문제집을 펼쳐 보는 느낌은 남다르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은 역사적 흐름을 고대부터 , 현대까지 흐름을 짚어 나가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시대적으로 정치와 역사를 서로 엮어 나가는 과정에서, 큰 사건들이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 나간다는 간파하는 것이 우선 되고 있었다. 고대-삼국시대-고려-조선-일제시대-현대로 이어지는 역사적 사실을, 한반도의 과거를 읽을 수 있어서, 역사 이론과 함께 문제 풀이가 용이하다. 기출 주제별로 한능검에서 현대 파트의 경우 이승만정부, 박정희 정부, 전두환 정부 ~이명박 정부, 지역사, 세시 풍속과 민속놀이를 살펴 본다면, 역사적 흐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고려시대 흐름잡기를 보면, 왕건,고려 건국, 후삼국 통일, 광종 ,노비안검법 시행, 귀주대첩, 윤관,여진정버르 묘청의 난, 무신정변, 강화도 천도, 개경 환도, 공민왕, 쌍성총관부 수보그, 위화도 회군으로 이어지며, 이성계에 의한 조선건국으로 이어진다.

마지막 합격직행 노트의 경우 역사적 사건과 한반도의 역사를 서로 연결해 나가고 있어서, 한능검 2주 합격을 완벽하게 준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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