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면 헷갈리게 하지 않는다
마크 최 지음 / 포레스트북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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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관계의 '을'이 되었다고 해서

어리석다거나,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저 더 많이 사랑을 주고 싶은

배려 깊고 따뜻한 사람인 것이지요.

단, 사랑은 구걸이 아닙니다.

샇랑은 두 사람이 감정을 주고받는 것이지

이미 다 자란 누군가의 부모가 돼서

일방적인 애정을 주려고 하는 게 아님을

명심해야 합니다.

사랑에 너무 목매지 마세요.

사랑을 지키기 위한 사랑이 아니라

반드시 여러분이 행복한 사랑을 하세요.

진정한 사랑은 절대 여러분을

헷갈리게 만들지 않습니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혼자서 지나치게 애쓰고 있다면,

자꾸 혼자서 울게 된다면 그건 사랑이 아닙니다.

본인의 전부가 그 사람이 되게 하지 마세요.

아름다운 이별은 영화나 드라마 속에나 존재합니다.

사랑했던 사이의 마지막 장면이 아름답기는 힘듭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소중한 인생은

아직 그 자리에서 여전히 빛나고 있으므로

이별 때문에 잠도 안 자고, 밥도 안 먹으며

본인을 스스로 괴롭히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별은 누구에게나 힘든 과정이지만

결국 언젠가는 지나가게 돼 있습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흘러가게 내버려두세요. (-8-)

을의 연애를 하는 사람들이 제일 많이 하는 실수 중 하나가 연락과 만남의 '횟수'에 집착한다는 점입니다. 물론 사랑하느 사람과 자주 소통하고, 자주 만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겁니다. 하지만 각자 삶의 방식이 있고,처한 환경이 다르기에 조율이 필요한데 어느 한쪽이 무리하게 요구를 한다면 그 연애는 다시 한번 돌아봐야 합니다. (-61-)

일명 을의 연애를 하는 분들에게 있어 사랑은 일방적 헌신이자 희생입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연인 관계에서 사랑은 본인이 받고 싶은 것을 상대에게 주려고 애씁니다. 일게 모르게 어린 시절부터 삶 속에서 원하건 바로 그것을 연인에게 주려고 하는데, 그게 강한 헌신이나 희생인 경우가 있습니다. (-119-)

두 번째 이유는 더 근본적입니다.바로 본인 자신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본이의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나 꿈이 없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주로 집착하게 되죠.본인만의 멋진 계획이 있고,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연인에게 계속 집착할 시간이 있을까요?자기 삶을 살기도 바쁘니 상대방이 연락 한 번 안 했다고 이를 신경 쓸 시가닝 없다는 뜻입니다. 삶의 목표가 뚜렷하지 않고, 지금 하는 연애 위주로 하루를 보내는 분들은 인생의 구체적 계획이 없기 때문에 상대방으로부터 내가 쓰는 시간과 마음에 대한 보상을 받고 싶은 겁니다. (-149-)

더욱 최악의 말은 습관적으로 "헤어져"라고 히는 것입니다.순간적으로 본인의 감정을 이기지 못해서 혹은 이 역시 사랑을 확인받고자 진짜 헤어질 마음도 없으면서 하는 말입니다.속뜻은 상대에게 나를 잡아달라는 ,더 아껴달라는 것이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그 말의 숨겨진 의미보다 말 그 자체로 들리기 때문에 본인에게도, 관게에도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헤어지자는 말은 정말 끌낼 자신이 있을 때 해야 합니다. (-184-)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존재한다. 사람도 그러하고,사랑도 그러하다. 공교롭게도 이 두가지를 보면, 만남보다 이별이 더 서툴 때가 있다.서툴다는 것은 상처, 후회와 긴밀하게 엮일 때가 있고,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가 더 많았다. 해서는 안되는 말을 배설하게 되고, 끊임없이 을의 연애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가 있다.사랑에는 이해와 배려가 필요하다.

유투브나 책을 보면, 사랑에 관한 에세이, 사랑에 대한 처방전이 유난히 많은 이유는 내 앞에 놓여진 사랑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소유하려고한다는 것이다.내가 더 사랑할수록, 집착에서 내려놓지 못하게 되고, 필연적으로 사랑에 갈망하면서 살아간다. 우울하고, 절망하게 되고,스스로 내려놓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만들어지면, 사랑에 대해,갑은 아무렇지 않지만, 을이 되는 그 순간 ,순간 순간 벌어지는 상황에 예민해지고, 자신을 갉아 먹는 수단이 된다.

책 『사랑하면 헷갈리게 하지 않는다』은 사랑에 대한 처방전이다. 남자보다 여자를 위한 연예, 사랑이야기다. 내가 좋아하는 남자,내가 사랑하는 남자라면, 그 남자와의 관계가 긍정이어야 한다. 그래야 나도 자유롭고, 사랑을 느끼는 사람 또한 자유로워질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느 사람이 다른 사람고 가까워질 때, 힘들어진다. 오해가 생기고,집착이 발생한다. 즉 사랑이라는 것은 내가 의도한 대로 되지 않으며,때로는 상처도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을 놓치면 안된다.내다 원하는 것이 더 많아질 수록, 사랑에 대한 감정,생각, 느낌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가 있다. 사랑에 대해 적절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 이별 이후 관계에 있어서, 트라우마가 생기지 않고, 스르로 회복과 치유가 필요한 건강한 삶, 긍정적인 라이프스타일이 존재해야 한다.만남 이후에도, 나를 위한 신뢰가 필요하며, 이별 이후에도, 나를 위한 신뢰가 필요한 이유다. 만남이나 이별이후에도 우리의 삶은 중단되어서는 결코 안되기 때문이며, 다음의 사랑을 기다릴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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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 만드는 아이 그린이네 문학책장
이규희 지음, 토끼도둑 그림 / 그린북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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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걸이 대장간에 온지 2년 쯤 될 무렵부터는 제법 쓸 만한 일꾼 노릇을 해냈다. 무걸은 쇠를 녹이고 쇳물을 부어 호미와 낫, 갈퀴, 쇠스랑 같은 농기구를 비롯하여 송아지 목에 거는 도래, 문고리 등을 만드는 일을 도왔다.

"어린 게 참 독하구먼, 쇠를 부리는 기술이 보통이 아니네."

범개 아저씨는 혀를 내둘렀다. 하나를 가르쳐 주면 열을 알고 , 열을 가르쳐 주면 스물을 꿰차는 무걸이 참으로 신통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무걸이 범개 아저씨에게 물었다. (-26-)

"아직도 지방 군부에는 세종 임금님 대부터 쓰기 시작한 세총통을 비롯한 이총통, 삼총통, 팔전총통과 가은 소형 총통들이 대부분이라고 들었소. 하지만 사람이 손으로 직접 불을 당겨야 하는 총통은 자칫하면 사격수가 목표를 조중한 겨를도 없이 화약이 폭발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이다. 그러면 그 안에 든 불화살이 아군 쪽으로 날아가 버리기도 하더이다. 그러면 그 안에 평안도나 함경도에 오래된 총통보다는 화승총을 보내야만 하오! 또 몰려오는 오랑캐를 막아 내려면 역시 싱기전을 갖춘 화차도 보내야 하고 말이오!" (-69-)

무걸의 일행은 조그만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모두 모로 누워 새우잠을 자다가 어슴푸레 날이 밝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을 떠 보니 텁석부리 뱃사공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날이 밝기 전에 청나라 군사들의 눈을 피해 살곶이로 돌아간 모양이었다. (-99-)

"얼마전에 전투가 있었단다. 광주의 쌍령에서 경상 좌병사 허완과 경상 우병사 민영이 4만 명의 조총 부대를 이끌고 남한산성의 포위를 뚫고 임금님을 구하기 위해 청나라 군대와 맞서 싸운 거야. 하지만 막상 전투가 시작되자 우리 군사들은 말을 타고 돌격해 오는 청나라 군사들 앞에 맥없이 쓰러지고 말았지. 군사가 4만 명이라고는 하나 대부분 근처 지방에서 급하게 뽑은 농민들이었거든. 청나라 군대가 무서운 기세로 달려오자 농민들은 그만 거기에 질려 조총을 아무렇게나 마구 쏘야 댄거야. 더욱 안타까운 건 경상 좌병사 허완이 화약을 넉억하게 나누어 주볌 급하게 다 써 버릴까 봐 조금씩 나누어 줬다니 뭐니,. 그 바람에 군사들이 가진 화약이 금방 바닥났단다. 그 뿐인 줄 알아? 이번에는 경상 우병사 민영이 거느리고 있던 부대에서 병사들이 불붙은 점화선을 화약통에 떨어뜨리는 바람에 보급 막사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화약이 한꺼번에 다 폭발하고 말았다는구나." (-133-)

이규희의 『무기 만드는 아이』은 인조 반정 이후, 정요호란, 병자호란이 일어나던 혼란스러운 조선 중엽 시기를 반영하고 있었다. 이 역사 동화 표지에 등장하는 비장한 아이는 쇠를 녹여서 전쟁 무기를 만드는 아이 무걸이다.

임진왜란으로 선조가 피신을 떠나고, 광해군이 임진왜란 뒷수습을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광해군은 인조반정으로 인해 왕위에서 물러나 폐위되고 만다. 이 책은 인조 시대에 1627년에 일어난 정묘호란과 1636년에 발생한 방자호란으로 , 인조는 청나라의 조선 침략으로 강화도에 피난하였으며, 오랑캐라 불리는 청나라에 백기투항(白旗投降)했고 삼전도(三田渡)의 굴욕이 있었다. 봉림대군과 소현세자가 청나라에 볼모로 잡혔던 시기다.

즉 『무기 만드는 아이』에서 무걸은 목표가 있었다. 저잣거리 대장간에서,범개아저씨의 도움으로 쇠를 다루는 방법을 익히게 되었다. 쇠의 특징을 깨치게 되었으며, 무기를 만들고 남은 쇳조각으로 나름대로 무걸 특유의 조선 무기를 만들어 나갔다. 군기시 관원에게 눈에 띄어서,야로장에서 일할 수 있었던 무걸은 드디어 말단 야장이 되어서, 무기를 능숙하게 만들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진다. 즉 이 책은 조선이 무기 제작소 군기시에 대한 이해를 도모할 수 있으며, 무걸 스스로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예측한 것 마냥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온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무기 만드는 아이』 는 김훈의 역사소설 『남한산성』 을 읽기 전 배경지식을 하나 하나 얻는다. 어떤 시점의 역사적 사실을 다룰 때,그 시대의 배경 역사 지식을 익히고,꼼꼼하게 살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 그린북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된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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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쓴 마음은 어디다 버려요?
김단한 지음 / 처음북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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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사람만 봐도 미웠다. 저 사람은 행복하겠지. 또 어떤 날은 그랬다. 저 사람도 내가 겪은 것을 다 겪어 봤을 까? 또 어떤 날은 그랬다. 그리 좋다고 웃고 있을까? 별 뜻 없이 마음에 미움이 솟았다. 마음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종일 축축하고 눅눅한 마음을 끌어안고 살며 내가 내 마음의 눈치를 보는 날이 이어졌다. 중심이 잡히지 않았다.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겠고, 원하는 것이 있는지조차 불분명한 날들이었다. (-23-)

나무 하나가 자라기 위해선 여러 도움이 필요하다. 건강한 땅, 따스한 빛, 때맞춰 불어오는 바람, 달게 느껴질 비와 같은 것이 조화를 잘 이루어야 한다. 마음의 나무를 키우는 일에도 이러한 도움이 필요하다. 더 지치기 전에 적당히 볕을 쬐러 나가거나,불어오는 바람을 힘껏 들이마시는 일은 무조건 필요하다. (-94-)

기억이 생생할수록 물건을 배웅하느 시간은 자꾸만 길어지게 마련이다. 추억이 짙게 묻은 물건일수록 더 그렇다. 나의 좁은 방 안에 아직도 꿋꿋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옛 물건이 많은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몇 번의 유예를 거친 물건은 배웅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그래도 나는 조급하지 않다.이런 물건은 언제까지고 버릴 수 없을 것만 같다가도, 또 어느 순간 미련 없이 버리게 되기도 하니까. (-139-)

생각이 너무 많아서 탈이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은 뒤로 갈수록, 깊어질수록 그 무게과 크기를 더했다.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고 싶고, 뒷덜미를 당기게 만드는 것은 거의 '끝이 없는 생각들'이었다. 나는 생각의 꼬리를 스스로 자르는 법을 모르고, 누군가에게 토로하는 방식도 몰랐기에,생각에 자주 휘둘리며 살아왔다. (-149-)

책을 아주 조심스럽게 읽는 편이다.책갈피는 아주 얇은 종이로 된 것을 사용한다. 책에 자국이 남는 딱딱한 책갈피는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책장을 접거나, 책들을 위로 가게 하여 엎어 놓는 일도 없다. 형광펜으로 마음에 드는 문장을 빛나게 한다든지 , 연필로 밑줄을 과감하게 긋는 일도 없다. 그렇기에 나의 책들은 내 부주의함으로 인해 모퉁이가 찍히거나, 커피나 물에 종이가 젖는 불상사가 아니라면 대체로 깨끗한 편이다. (-199-)

아홉살 정도 됐을 무렵, 나는 우리 아파트에서 소꼽놀이를 제일 잘 하는 사람이었다. 소꼽놀이를 잘한다는 것은 어떤 역할을 맡아도 잘한다는 뜻이다. 친구들은 아빠나 남동생과 같은 역할을 맡는 것을 싫어했다. 무조건,'엄마' 의 역할을 고수하는 친구들 덕에 나는 주로 '아빠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그 역할을 곧잘 해냈다. (-245-)

나는 어떤 마음을 다 쓰고 나서야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어떻게 해야 기분이 좋아질 수 있는지,어떻게 해야 차분해질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물음을 멈출 수 있고, 어떻게 해야 상처를 잘 아물 수 있게 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조금 더 일찍 알았다면 그만큼 울게 될 날도 줄었을까? 아니다. 울지 않는 방법을 알게 되었더라도,나는 울었을 것이다. 우는 쪽을 택했을 것이다. (-286-)

김단한 작가의 「다 쓴 마음은 어디다 버려요」 이다. 책에는 나의 삶과 나의 생각과 일치하는 문장으로 채워져 있었다. 일치하는 것이 많다는 것는 이 책을 통해 나를 돌아볼 수 있고,내가 좋아하고,내가 싫어하고,내가 마음속에 담고 있는 생각과 문제에 대한 해결을 찾는 방법까지 구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먼저 저자의 삶의 과거와 현재,미래를 보는 것이 흥미로웟고,호기심이 느껴지는 동시에 설레암이 보인다. 서레임은 희마과 감사로 이어질 수 있다.생각이 많은 사람은 생각을 잘 배출할 수 있어야 한다. 작가 김단한은 책을 쓰는 이유가 자신의 생각을 잘 배출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생각,느낌을 잘 배출하지 않으면, 병이 나기 때문이다.생각을 배출하 동시에 채울 수 있고,마음도 동시에 이병한다. 꼬리에 꼬리르 무는 생각과 마음을 비움을 통해 나눔을 실천한다. 책을 유난히 좋아하고, 책을 소중히 다루고, 추억과 기억을 꼽씹는 아이, 작가는 일상 속에서, 자신이 관찰하고,그 관찰에서 얻는 일상 속의 소소함을 자신의 생각으로 연결하고 있었다. 특히 우리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 돋보였으며, 때로는 작가 특유의 강점도 인식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으면,독자들이 흔들일 수 있는,생각과 상황, 마음을 줄여준다는 것이다. 삶에 대한 해결책,상황에 대한 이해,나와 일치하는 생각,상처를 덜어내는 방법, 비슷한 생각이 많아지면,위기에서, 나를 스스로 벗어나게 이끌어 주며, 작가의 삶이 나의 삶에 반영 될 수 있다. 독서의 힘으로 생각을 잘 담고, 잘 배출할 수 있는 방법을 동시에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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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와 육군 - 제2차 세계대전을 주도한 일본 제국주의의 몸통
호사카 마사야스 지음, 정선태 옮김 / 글항아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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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일본은 열강의 대열에 합류했다. 동시에 일본 내에서 청나라와 조선을 경시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여론은 일본군을 신뢰하게 되었다. 조선을 지원한다는 애초의 목적은 조선에서 일본의 권익을 취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아울러 군사상 다양한 모순도 전승의 그늘에서 검증되지 않은 채 봉합되었다. (-33-)

"공격 정신은 충군 애국의 지성과 헌신순국의 대절에서 발현하는 정화다. 무기를 닦는 데 온 힘을 다하고, 교련을 통해 빛을 발하며, 전투에서 승리를 구가한다. 승패는 반드시 병력의 많고 적음에 달린 것이 아니다. 잘 훈련되어 있고 또 공격 정신으로 다져진 군대는 늘 적은 수로 많은 적을 격파할 수 있다." (-49-)

1935년에 접어들면서 두 파벌의 투쟁은 점차 정점을 향해 치닫는다. 통제파는 육군 상충부에 많았고, 불법적인 활동을 철저하게 배제하는 입장에 섰다. 그리고 전쟁에 대비해 국가 총동원 태세를 갖추기 위해서는 관료나 재계 사람들과도 연대하고 제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대소련전보다 오히려 중국 제압에 비중을 두는 실리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다. 이와 달리 황도파는 청년 장교가 많았고, 대부분 20대에서 30대로 지금처럼 부패한 일본은 천황의 뜻에 따르는 국가가 아니며,이상 적인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불법적인 활동을 불사한다고 주장했다. 이 그룹의 지도자는 앞에 서술한 바와 같이 아라키 사다오와 마사키 진자부로 같은 장군들이었는데,이 두 사람은 일이 있을 때마다 청년 장교들을 부추겼고, 그들의 순수무사 정신을 칭찬하며 부채질했다. 황도파는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에 대해 격심한 적대감을 품고 있었다. (-145-)

내 물음에 대한 우노의 답변은 명료했다.

"하나는 일본 육군 제도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사관학교 출신이 모든 것을 장악했고, 거기에 완벽할 정도로 위계질서가 확립되어 있었습니다. 이 안에서 한 단계든 두 단계든 계급이 올라가기 위해서는 눈에 띄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두 번째로 사관학교 출신은 정치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정치와 군사의 관계를 이해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체험에 입각해 말하자면, 신임장교가 병사들 앞에서 겁쟁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중국인을 시험 삼아 베거나 고문을 가해 군인다운 게 무엇인지 보여줘야만 했습니다." (-219-)

"1941년 7월 28일 남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 진주한 일본군이 미국으로부터 저처럼 즉각적으로 보복을 당하리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육군 내부에서 이를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요.

일본에 대해 석유 수출을 중단하거나 재미 일본 자산을 동결하는 사태는 루스벨트가 전쟁을 하기로 결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우리는 생각했던 것입니다. 육군만이 아니라 해군 또한 무슨 일이 있어도 미국이 전쟁을 각오하지는 않을 거라고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 점에 관하여 우리는 예측을 잘못했던 셈입니다. 그 책임은 막중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 자신도 국책을 담당하는 입장에 있었던 만큼 그 책임을 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337-)

"일본은 그 무렵 미국을 알려고 하지 않앗습니다. 육군에서 특히 그런 경향이 강했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일본은 미국인들에게 일본을 알리려고 노력하지도 않았습니다. 뉴욕에 일본 라이브러리와 같은 코너를 만들었음에도 몇 명의 미국인이 다녀갔는지를 기록하는 일 밖에 하기 않았지요. 나는 진주만 공격 50주년이니 뭐니 하면서 떠들어내는 작금의 정세를 보노라면 이상하게도 참을 수가 없습니다. 왜 일본은 저런 바보 같은 싸움을 했는지, 그것을 다시 물어야만 합니다." (-420-)

이때 병사들은 과달카날에서 어떤 나날을 보내고 있었을까?

"우리 진지에서 앞쪽으로 300미터쯤 떨어진 곳에 미군 진지가 있었습니다. 미군 병사는 우리가 이쪽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별로 두려워하지 않고 진지 위에 올라와 걸어다녔습니다. 우리는 탄약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쏘면 맞힐 자신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쏘지 않았지요. 만약 이 병사를 쓰러뜨리면 몇 배의 폭격이 퍼부어져 우리는 전원 사망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끔 미군 병사와 정국 속에서 총격을 주고받게 되면 실로 이상한 일이 일어나곤 했습니다. 우리가 이동한 지점에 반드시 총탄이 날아오는 겁니다. 정말 알 수 없는 일이었어요."

오토모가 그 이유를 상세히 알게 된 것은 50년이나 지난 1991년이었다. (-507-)

태평양전쟁의 개별 전투에서 일본군에게 가장 많이 부족했던 것은 후방사상이었다. 후방사상이란 병참, 보급에 관한 사고방식이라고 바꿔 말할 수도 있는데, 병력무기,탄약, 식량, 의약품, 의복 등을 전선의 병사에게 어떻게 공급할 것인지 그 시스템을 만드는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과달카날이나 동부 뉴기니에서 벌어진 전투를 봐도 알 수 있듯이, 일본군에는 이런 사상이 전혀 확립되어 있지 않았다. (-638-)

1944년 5월 2일, 공중에서 육해군이 한자리에 모인 통수부 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는 천황도 출석했다. 이 회의에서 육해군 통수부 대표가 현재의 전황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에 대해 천황에게 보고했다. 이 자리에서도 양 통수부는 마리아나를 공략하는 데에는 큰 희생이 따를 것이고 그곳을 확보하는 일도 쉽지는 않을 터이므로 미군도 경솔하게 손을 뻗치지는 않으리라는 경해에 뜻을 함께했다. 특히 참모차장 우시로쿠 준은 설령 마리아나 제도가 공격을 당한다 해도 제43사단을 파견하여 "적의 공략 기도를 분쇄할 수 있다" 며 자신감을 피력했다. (-704-)

오시로는 자신의 책 『오키나와 전투』에서 이렇게 말한다.

"남부전선에서는 전투원과 일반 주민이 같은 동굴에 뒤섞여 있어린 아이들이 울고 부상자는 신음한다. 그러자 적에게 진지가 발각될 수도 있다는 이유로 울어대는 아이를 살해하거나 부상자를 독약으로 처치하는 잔혹한 광경이 곳곳에서 펼쳐졌다. 패잔 심리까지 발동하여 약육강식의 극한 상황이 전개되었던 것이다. 전장에서는 어린아이, 노인,부녀자, 부상자 등 약자부터 순서대로 희생되었다. 이처럼 인간성이 무너져 버린 현상이 전장의 진짜 비극을 초래했던 것이다." (-798-)

1945년 8월 15일 정오, 쇼와 천황은 옥음 방송을 통해 선언을 수락한다는 뜻을 밝혔다. 국제법상의 문서에 조인한 것은 아니었지만 미국, 영국, 중국이 함께 발표한 포츠담 선언을 받아들인다는 의사 표시였다. 신징의 관동군총사령부에서는 참모들이 통한의 눈물을 흘리면서 옥음 방송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대본영으로부터 정전 명령이 있기까지는 "작전의 큰 틀을 바꿔서는 안 된다"는 태도를 취했다. 15일 오후 11시에 정전 명령이 떨어졌고, 관동군총사령관 야마다 오토조와 총참모장 하타 히코사부로 등 최고 간부는 이것을 받아들여 태도를 변경했다. (-887-)

그리고 하나 덧붙이자면, 도쿄전범재판에서 재판을 받은 것은 일본의 군벌이었는데 반론에 나선 28명의 A급 전범은 명확히 세 가지 유혀으로 나눌 수 있다. 태평양 전쟁은 극가의 선택으로 옳았다고 주장하는 피고가 첫번째 유형이다. 그들은 국가에 대한 변호와 자신에 대한 변호를 동일시하고,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은 모두 국가의 논리에 부합한다고 말했다.

다음으로 두 번째 유형에 속한 사람들은 국가의 정책과 자신의 신념 또는 정치 행동 사이의 차이를 강조하며,자신의 역할에 한정해서만 반론을 펼쳤다. 이들은 국가를 변호하는 입장보다 개인을 변호하는 입장에 서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 유형은 재판 자체에 전혀 관심 보이지 않고, 그 흐름에 몸을 맡긴 채 담담하게 처신한 피고들이다. (-1001-)

근대 일본의 군사 조직이 왜 독일 쪽으로 기울었는가?이와 관련하여 쇼와 초기 참모본부에 근무했던 어느 장교는 "독일에 가면 자동적으로 독일 육군은 여성을 메이드(하녀)라는 명목으로 삼아 동거하게 한다. 그래서 독일에 파견된 군인은 친독파가 된다는 이야기가 메이지 시기부터 은밀하게 전해져온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미국과 영국에서 독일 같은 시스템을 요구한 일본군 군인이 있었다고 하는데,이에 대해 미국과 영국의 군인으로부터 "우리나라에는 여성이 얼마든지 있다. 당신도 연애를 하면 되자 않겠는가"라는 야멸찬 소리를 들었다는 사실도 마찬가지로 암암리에 널리 알려져 있다. (1082-)

호사카 마사야스의 「쇼와 육군 (제2차 세계대전을 주도한 일본 제국주의의 몸통)」 를 읽게 되면, 1900년초로 시간 여행을 떠나 제1차 세게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의 전쟁 한복판에 서 있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우리가 뉴스와 미디어를 통해,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 정보와 전황에 대해서 실시간으로 듣고 있는 것처럼, 이 한 권의 책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대동아 공영권을 손에 쥐고자 하였던 일본의 야욕으 실체를 실시간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왜 저자는 쇼와 육군이라고 말하는가, 그건 제2차 세계대전이 일본이라는 국가가 전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메이지 시대에 태어난 군인이,1931년 9월 18일 , 만주사변(滿洲事變)으로, 만주를 전쟁 거점으로 바꾼 뒤, 동아시아 전역을 상대로 식민지화하기 위한 출발은, 1894년 청일전쟁 승리, 1904년 러일전쟁, 1910년 조선 침략으로 이어졌으며, 1941년 미국을 상대로 한 태평양 전쟁을 벌일 수 있었다. 일본 스스로 세계제 1위의 열강이라고 착각했기 때문에 벌어진 비극이다. 그건 일본이라는 국가가 아닌, 도조 히데키라는 군인이, 일본을 군국주의화하였고, 군벌이 지배하는 일본, 정치군인이 일본의 정치, 경제,문화,전쟁을 주도하게 된다.관동군을 중심으로,전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시작하였기에,군벌 일본 정치에 의한 전쟁, 쇼와육군이라 부르고 있다. 즉 군인이 전쟁을 주도하고, 전황을 이해하고, 군인이 전쟁의 흐름을 판단하기 전쟁전략을 만들기 때문이다.

즉 군인이 나라를 지배할 수 있었던 이유를 태평양전쟁으로 파악하고자 , 1900년 초에 태어나 전쟁을 몸으로 경험한 1990년대 후반에 사망한 이들을 대상으로 500 명의 일본인을 구술하고, 증언록을 확보하면서, 만들어진 책이 『쇼와 육군』의 본질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일본 사회를 이해하고, 한국 현대사회를 병행하여 이해할 수 있다. 한국의 경제발전을 이룩한 박정희가 일본군 관동군 장교 출신이며,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하나회가 한국을 지배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이 책에도 도움을 얻을 수 있다. 백선엽도 마찬가지다. 즉 한국 사회도 쇼와육군의 DNA를 물려받은 사회이며, 한국의 군대 운영방식, 병참기지 뿐만 아니라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주도한 대본영과, 참모본부의 실체, 내무상 도조 히데키가 도쿄 전범재판에서 , 사형당한 것까지, 그리고 , 일본이 임팔 작전에서 참패하고, 전황이 일본 주도에서, 미국 주도로 바뀌게 된 이유, 일본이 점령했던 사이판을 빼앗김으로 인해 일본이 패망할 수 밖에 없는 빌미를 제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나가사키, 히로시마에 원자 폭탄이 떨어지게 된 이유를 역사적인 증언에 의해 파악할 수 있다. 즉 메이지 시대(1867년 2월 13일부터 1912년 7월 30일까지) 에 태어난 일본인이 전쟁 지휘자가 되었고, 다이쇼 시대( 1912년 7월 30일~ 1926년 12월 25일까지)에 태어난 병사들이 일으킨 전쟁이 바로 우리가 역사적으로 잔혹함과 가혹한 전쟁으로 기억되는 파쇼 일본이 만든 태평양 전쟁이며,미국의 원자폭탄으로 전재을 종식할 수 없었다면, 일본은 영국, 소련, 독일, 중국을 상대로 전쟁을 시작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미국에 대해 이해하지 않은 채, 진주만 습격을 할 수 있었던 이유도 ,미국 스스로 일본을 상대로 전쟁을 할거라고 예측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일본는 1945년 8월 15일 포츠담 선언으로 전후 처리가 되었고, 28명의 A급 전범이 처형되었고, 미국이 세계 최강의 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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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해커스공무원 실전동형모의고사 한국사 1 (9급 공무원) - 9급 공무원 전 직렬 대비ㅣ모의고사 16회분 수록ㅣ모바일 자동 채점+성적 분석 서비스ㅣ무료 시대별 막판 암기 점검ㅣOMR 답안지 수록 2023 해커스 공무원 실전동형모의고사
해커스 공무원시험연구소 지음 / 해커스공무원 / 202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해커스 공무원시험연구소 에서 나오는 『2023 해커스공무원 실전동형모의고사 한국사 1(9급공무원)』은 공무원 9급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생에게,전략적인 과목으로 손꼽히고 있다. 9급 공무원 시험직은 크게 행정직과 기술직으로 나뉘는데, 영어, 국어, 한국사, 그리고 전공 2과목으로 시작한다. 공무원 시험 다섯 과목 중 한국사 시험의 경우 학습에 있어서, 질보다 양이 우선이다. 이 책의 경우 16회차로 이루어져 있으며, 문제 유형과 모바일 자동 채점 성적 분석 서비스가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공무원 수험생이 챙기지 못하는 곳까지 해결할 수 있다.

공무원 한국사의 경우, 삼국시대-고려-조선-근현대사의 흐름으로 역사이야기를 정립하고 있으며, 시대적으로 왕의 권한과 굵직굵직한 사건, 전쟁 뿐만 아니라 외침까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해마다 세계문화유산이 발표되기 때문에, 역사와 그 시대에 만들어진 문화재, 최신의 한국사 정보를 습득하고 있어야 한다. 책에는 본교재 인강(할인쿠폰수록),공무원 한국사 무료 동영상강의, 무료 시대별 막판 암기 점검, 해커스 회독 증강 콘텐츠, 합격예측 모의고사 (응시권 및 해설강의 수강권 수록)가 준비되고 있기 때문에, 한국사가 취약한 공시생에게 한국사 점수를 올릴 수 있는 충분한 공부와 학습이 서비스되고 있다. 특히 한국사의 경우,역사적 사건과 역사적 사건을 서로 섞어놓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큰 줄기와 흐름을 꾀뚫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공무원 한국사가 국어, 영어와 다른 공부방식이 요구되는 이유다. 한국사 연표를 시간대별로, 사건별로 완벽하게 암기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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