량치차오 평전
셰시장 지음, 김영문 옮김 / 글항아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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량쓰순 (1893~1966) : 맏딸 ,시사 연구 전문가

량쓰청(1901~1972) : 맏아들,저명 건축학자. 1948년 3월 중앙연구원 .인문학 분야 제1기 원사로 뽑힘.아내가 바로 문학가 린후이인 임.

량쓰융(1904~1954) : 둘째 아들. 저명한 고고학자. 1948년 3월 중앙연구원 인문학 분야 제1기 원사로 뽑힘.

량쓰중(1907~1932) : 셋째 아들. 국민당 제19로군 포병장교 역임. 병으로 죽음.

량쓰좡 (1908~1986): 둘째 딸. 저명한 도서관학자.

량쓰다(1912~2001) :넷째 아들. 장기간 경제학 연구에 종사.

량쓰이(1914~1988) :셋째 딸. 사회활동에 종사.

량쓰닝(1916~2006) :넷째 딸. 신사군에 투신해 중국 혁ㅁ여에 참가.

량쓰리(1924~):다섯 째 아들. 로켓 통제 시스템 전문가. 1993년 중국과 학원 원사로 선임, (-51-)

물론 이는 작은 에피소드에 불과하지만 당시 캉유웨이가 관직사회 및 사대부 사이에서 엄청난 명성을 누리고 있었음을 알게 해준다. 그러나 캉유웨이는 자존심이 강하고 성격이 오만했다. 다른 사람의 스승 노릇 하기를 좋아하고 고집이 세서 많은 사람이 그에게 호감을 느끼지 못했으며 그를 경원시하는 사람도 있었다. 캉유웨이는 또 사상 측면에서 지나치게 시대를 앞서갔기 때문에 그에게 호응하는 사람이 드물었고, 세속 사람들과 전통을 옹호하는 수구파 인사들은 더더욱 그의 사상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162-)

큰 형님[캉유웨이] 께서는 일의 규모를 지나치게 크게 벌이고, 기상이 지나치게 예리하고, 담당하는 일이 지나치게 많고, 동지는 지나치게 적은 데 비해 거사 추진은 지나치게 관대했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형님을 배척하는 자, 시기하는 자, 밀어내는 자, 비방하는 자가 거리에 가득한 상황에서 황상께서는 실권이 없으시니 어찌 일을 이룰 수가 있겠습니까? (-229-)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캉유웨이는 줄곧 청 황제를 복위하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고, 이번에는 다만 군벌들의 신의를 지나치리만치 쉽게 믿었을 뿐이다. 그는 쉬저우회의 결과 이미 위안스카이를 타도했으므로 북양군벌을 수습하려는 목적을 이루었다고 보았다.그러나 황제 복위가 어찌 그렇게 쉽게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캉유웨이는 이 북양 군인들이 일찍부터 조변석개하는 정치적 술수에 익숙한 자들임을 전혀 몰랐다. 이처럼 목적이 서로 판이한 회의에서 결정한 약속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캉유웨이는 오히려 그들이 파놓은 함정 속으로 깊이 빠져들고 말았다. (-326-)

쩡롄은 심지어 황제에게 이렇게 요청했다. "캉유웨이와 량치차오를 참수하여 사특한 언론의 길을 막으십시오., 그런 연후에야 천하 인심이 저절로 고요해 지고 국가도 저절로 평안을 되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무술변법 2) (-446-)

량치차오는 신문을 일인 신문, 일당 신문, 일국 신문, 세계 신문으로 나눈 뒤 이렇게 설명했다. "일인 혹은 한 회사의 이익을 목적으로 삼는 신문은 일인 신문이다. 일당의 이익을 목적으로 삼는 신문은 일당 신문이다. 국민의 이익을 목적으로 삼은 신문은 일국 신문이다. 전 세계 인류의 이익을 목적으로 삼는 신문은 세계 신문이다.중국에는 옛날 일인 신문은 있었지만 일당 신문, 일국 신문, 세계 신문은 없었다. 일본에는 오늘날 일인 신문, 일당 신문, 일국 신문은 있지만 세계 신문은 없다. 이전의 『시무보 』 와 『지신보 』를 예로 들자면 아마도 일인 신문의 범위를 벗어나 일당 신문의 범위로 진입했다고 할 수 있다. (-540-)

쑨 선생은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물이가. 이는 누구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다. 내가 그에게 탄복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의지가 굳건해 수많은 풍파를 겪으면서도 시종일관 좌절한 적이 없다. 둘째, 일처리가 기민해 변화에 대처하는 능력이 뛰어난 데다 특히 군중 심리를 가장 정확하게 관찰하고 가장 적절하게 운용했다. 셋째, 몸가짐이 청렴결백하여 최소한 -혹은 적어도- 자기 자신은 돈을 함부로 벌려 하지 않았고, 돈을 벌 때도 절대 개인 목적을 내세우지 않았다. (-602-)

"첫째, 국민이 정치를 경시하지 않고 항상 자기 임무로 삼도록 해야 한다. 둘째, 국민에게 정치의 적절성 여부를 판단하는 상식을 갖게 해야 한다. 셋째, 국민에게 정치적 능력을 갖게 하여 항상 스스로 떨쳐 일어나 그 요충을 지키게 해야 한다. 대저 국민이 이 세가지 자격을 갖춘 연후에야 입헌 정치가 이루어질 수 있다. 또 반드시 입헌정치를 건립한 연후에야 국민의 이 세가지 자격이 발전할 수 있다. 국민의 수준이 낮은데도 불구하고, 앉아서 그 수준이 높아지길 기다린 연후에 입헌을 추진하겠다는 것은 망령된 생각이다. 그러나 입헌을 소리 높여 외치면서도 국민의 수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쏟지 않는 일 또한 망령된 짓이다." 그럼 국민의 정치 소양은 어떻게 하면 높아지고, 또 이일은 누가 담당해야 하는가? (-716-)

량치차오는 마음을 모두 터어놓는다는 어투로 위안스카이에게 권유하고 있다."저는 진실로 우리 대총통께서 자기 한 몸을 바쳐 미래 중국의 새로운 영웅으로 신기원을 여시길 바라지, 과거 중국의 구태의연한 간웅처럼 낡은 파국을 보여주시는 걸 바라지 않습니다. 저는 또 우리 대총통의 영예가 중국과 더불어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지, 중국의 역사가 우리 대총통을 따라 함께 끊어지길 바라지 않습니다. 가슴을 두드리고 피눈물을 흘리며 이 최후의 충언을 올립니다." (-837-)

당시 량치차오의 견해에 반대하는 사람이 아주 많아서 량치차오는 한동안 공중 여론의 비난 표적이 되었으며 오랜 친구조차도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우좡이 량치차오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 당시 분위기를 대표하고 있다."형님께서 수십 년 애국심을 간절하게 유지해오셨는데 결과적으로 이제 중국이 형님의 손에 망하게 되었습니다. 형님께서는 본인의 명예가 실추되는 건 애석하세 여기지 않으셔도 되지만 국가가 망하는 것조차 애석하게 여기지 않을 수 있습니까?" 당시 이런 시각으로 량치차오를 바라보는 사람이 소수가 아니었다. (-960-)

여기서 말하는 "새로운 정치"란 "결국 군벌 타파와 사회개선을 목표로 삼는 정치를 가리킨다." 량치차오는 이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새로운 친구와 인재를 더 많이 사귄 뒤 자신의 주위에서 그들을 단결시켜 하나의 세력으로 만들 수 있기를 희망했다.그는 "늘 생각에 담아두고 한시도 잊지 않았던 건 바로 동지를 규합하는 일이었다" 라고 회고했다. (-1066-)

이어서 벌어진 일도 후스의 화를 더욱 부채질했다. 1922년 3월 4일 량치차오는 베이징대학 철학사의 초청으로 싼위안 대강당에서 「후스의 『철학사 대강 』을 비평함」 이란 강연을 했다. 후스의 『중국 철학사 대강』은 1919년 2월 출간되었다. 사상사적 의의로 말하자면 이 책은 철학사와 경학사의 한계를 돌파한 획기적 저작이었다. 후스 개인의 입장에서 이 책은 사상 문학계에서 그의 입지를 확고하게 마련해줬다. (-1139-)

1928년 6월 10일 량치차오는 아직도 유럽여행 중이던 량쓰청에게 편지를 보내 "베이징의 정세가 완전히 새롭게 바뀌었다" 라고 알렸다. 이 때문에 이전에 말한 적이 있는 "칭화대학 교직 임용은 무산되었다""이 학교는 정당 사람들이 주도권을 다투는 장소라 오래지 않아 전체 구조를 모두 바꿔야 할 것이다. 그럼 네가 어지 발붙일 여지가 있겠느냐?" 그리고 그는 쓰청에게 둥베이[만주]로 갈 것을 권했다. (-1224-)

량치차오, 그는 1873년에 태어나 1929년 사망하였다. 중국 근현대사에서, 량치차오와 쑨원을 핵심 역사적 인물로 보고 있는 이유, 량치차오가 추구하였던 중화민국의 미래를 , 『량치차오 평전』 에서 엿볼 수 있다. 그에게는 스승 망유웨이가 있었으며, 스승의 사상적 기반에 자신의 사상을 쌓아올리게 된다. 프로이트가 제자 구스타프 융을 두었지만, 구스타프 융은 프로이트와 다른 길을 가게 된다. 량치차오도 스승 캉유웨이와 다른 길을 걸어갔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존경심과 적대감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으며, 중국의 근현대사,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새시대에 이끌 사상적 철학의 기반을 나름대로 만들어 나가기 시작한다. 량치차오는 순자 사상을 비판, 성토하였고, 맹자 사상을 새롭게 해석하기에 이루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피에 의한 군벌 정치가 아닌 맹자가 꿈꾸는 세상, 인민이 원하는 민국 정치를 만들어 나간다. 그는 꾸준히 저술하였으며, 신문을 세개 창간하면서, 주필로서 글을 쓰면서, 세상에 이바지하였다.두 아내와 아홉 자녀를 두었던 량치차오는 쑨원과 연합하고자 하였지만, 그 시대적 상황이 둘을 갈라놓게 된다. 『시무보』 주필이었던 량치차오는 웅변가였으며, 달변가이기도 했다.그런 와중에 세상은 그의 앞서가는 미래의 비전을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비판받았고, 비난을 몸으로 견디면서 중국에서 살아가게 된다. 캉유웨이와 량치차오의 사상, 금문경학의 실체를 이해할 수 있었으며, 중국을 근본적으로 개혁하기 위한 무술변법이라 부르는 변법 자강운동,의화단 운동의 실패는 그가 생각한 철학이 그 시대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태후가 집권하였던 청나라 말기의 망국의 나라는 결국 량치차오의 사상이 추구하는 가치를 읽을 수 없었으며,그의 친구조차도 량치차오가 어떠한 중국을 원하는지 읽어내지 못하였다. 서태후의 권력에 밀리기 시작한 광시제는 량치차오를 중요하여 쓰고자하였다. 돌이켜 보면 이런 일은 량치차오만 있는 건 아니었다. 대한민국 또한 김구 선생이 암살당하였고,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이 된 것처럼, 난세엔 그 시대에 맞는 변화와 임기응변에 능한 사람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더욱 크다.캉유웨이는 스스로 문필에 의존하는 백면서생이라 할 정도로, 학문에 매진하였지만, 그 시대가 원하는 사회적 실무에 능하지 못하였고, 주류였던 군벌 정치에 의해서 사회적 불이익에 노출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중국의 새로운 세상, 새로운 문명의 주역이 되면서, 량치차오가 추구하였던 사상적 배경은 어디에서 기인하였으며,그가 추하였던 맹자사상과 춘추에 근거한 중국의 미래에 대해서, 중국이 현재 노출하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점과 부작용에 재해서, 량치차오의 식견이 옳았음을 검증하고 있다. 그는 사망하기 직전까지 책을 놓지 않았으며, 항상 저술에 힘써왔었다. 칼이 아닌 문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의 끈을 끝까지 놓을 수 없었던 것이다. 피는 피를 부른다는 그의 사상적 배경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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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없이 농촌 출근 - 워라밸 귀농귀촌 4.0
김규남 지음 / 라온북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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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내가 인생의 방향을 바꾸지 못한 가장 큰 장애물은 욕심이었다. 일복 하나는 타고 났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스스로 일을 만들어가며 해왔다. 일에서 해방되려면 방햐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으 깨닫고 욕심을 내려놓자 일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56-)

대략 농촌에서 직접할 수 있는 일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변기 물이 계속 빠지는 상황

갑자기 전기가 차단된 상황

보일러가 작동하지 않는 상항

세탁기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

전기밥솥이 작동하지 않는 상황

전구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 상황 등(-88-)

귀농귀촌인들이 생활엣허 어려움을 느끼는 이유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현지인의 텃세다. 때로는 이 문제로 인해 역귀농을 선택하기도 한다. 물론 역귀농 이유에는 주민 텃세보다 더 복잡한 여러 요인이 작용하지만 인간관계가 그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다. (-137-)

영농과 관련된 공사대금과 자재, 농약과 비료 씨앗, 묘목 등 각종 영수증은 반드시 보관해야 한다. 다연히 농협 조합원이 되면 발급 가능한 신용카드로 결제하지만, 영수증의 용도는 따로 있다. 구매르 취소하거나 농업경영체 등록, 천재지변에 의한 피해 보상 등에 반드시 필요하므로 사진을 찍어 보관하는 습관을 들이자.

농촌에서 건축이나 공사를 한다면 스스로 초보임을 자인하고 공부해가면서 진행해야 한다. 돈만 주면 알아서 해주겠지 한다거나 추진 과정에서 달콤하고 그럴듯한 말에 귀가 솔깃해지면 안 된다. 그 일과 그 분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 나중에 비싼 수업료를 치르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자. (-195-)

농업 경영체도 있고, 농협 조합원이다. 농민 수당도 받고 있다. 다만 직불금을 아직 수령하지 않고 있다. 이유는 아직 귀농 귀촌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도시에 살면서,귀농귀촌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시골에서 태어나 경제적 이유로 도시에서 살다가,은퇴 이후 다시 농촌으로 가는 케이스가 아니라면 말이다. 태어나면서 도시에서 살다가, 농촌으로 귀촌한다는 것은 농촌의 정서를 모른 채 멘땅에 헤딩하는 것과 같다.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는 내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다. 지역마다 인구를 늘리기 위해서, 다양한 귀농귀촌 정책을 도입하고 있지만, 여전히 미온적인 이유는 귀촌 귀농하면서,여러가지 어려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소위 농촌 공동체의 터줏대감의 텃세가 바로 그런 예이며, 더 나은 선택권을 얻기 위한 방법이 필요하다.과거와 달리, 농촌에도 1인 1가구 1자동차가 익숙하며, 트렉터,관리기 사용은 필수다. 예전엔 농촌지도소라 불리었고,지금은 농업기술센터로 불리는 곳에서는 귀농귀촌을 위한 다양한 지원책이 있으며, 농기계 임대, 농기구 수리 교육, 농사를 지을 때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하는 안전문제까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특히 대한민국은 농업에 다양한 특혜를 주고 있다. 금융 정책 도 여기에 해당되며, 보험이나 농지법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법적인 보조가 진행되는 것도 그러하다.하지만 그러한 정책에 독이 될 때도 있다.농사를 짓기 위해서, 대출을 무분멸하게 이용하다 보면 ,금융 이자조차 갚지 못하는 상태가 나타날 수 있다.그리고 농사는 하늘이 짓는다고 말할 정도로, 환경,기후,날씨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농사를 지을 때, 실제 농사지을 때 사용한 모든 돈의 출체를 영수즈으로 확보하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그 영수증이 보상 문제에 꼭 첨부되기 때문이다.추가적으로 농사지을 때, 울타리를 치거나, 측량을 하는 것, 경계를 구분하는 것은 유의해야 한다.도시민에겐 당연한 권리가, 귀농귀촌인에겐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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엣지 - 한 끗의 차이를 만드는 내 안의 힘
로라 후앙 지음, 이윤진 옮김 / 세계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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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스는 열심히 노력했다.

하지만 노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평가의 절대 기준이 노력이었다면 나가스는 2014년 올림픽 대회에 참가할 수 있어쓸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에게는 무엇이 더 필요했을까? 맞서 싸우는 것? 좋다. 인내심? 이 또한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나가스는 4년 동안 올림픽 출전이 그저 노력이나 기술에만 국한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무엇보다 올림픽 위원회가 노력과 능력을 어떻게 인식하고 판단하느냐가 중요했다. 위원회가 노련함에 돤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선수가 출전해야 미국 대표팀에 주목과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 등이 중요한 화두였다. 그리고 위원회는 프로그램을 선보이는 주체, 즉 아시아계 미국인 대 금발 백인 여성 스케이터를 두고 고민했을 수도 있다.

나가스는 앞으로 자신엑세 생길 모든 인식의 방향을 스스로에게 유리하게 이끌어야 겠다고 결심했다. 그녀는 2014년 선수권 대회를 앞두고 겪은 부당함으로 알려지는 사람이 아니라, 스포츠계의 한계를 뛰어넘는 선수로 회자되리라 마음먹었다. 그녀는 트리플 악셀이라는 고난도 기술을 레퍼토리로 만들어 미국 대표팀의 명성을 드높이는, 경기력이 뛰어난 선수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길 바랐다. 그녀는 또다시 팀에서 배제되지 않도로 자신에게 일어난 일의 원인과 과정을 정리한 뒤 사람들의 사고 방향을 바꾸기로 마음먹고, 본인이 컨트롤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언론을 적절히 활용해 미국 피계스케이팅 연맹이 공정하게 결정을 내리게끔 영햐을 미쳤다. (-48-)

상황을 더 나아지게 하려면 자신에게 있는 기본 재료를 어덯게 사용해야 할까?

우선 덜 붐비는 곳에서 시작하라는 조언과, 초보에게 프로로 가려면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기본을 쌓는데 시간을 들여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기본은 주위 사람 대부분이 가진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것이어야 한다. (-96-)

나는 어릴 때 즐겨보던 TV 드라마 <맥가비어>가 브리콜라주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멋지고 매력 넘치느 주인공 맥가이버는 세상의 온갖 문제 해결을 요청받는다. 한 에피소드에서는 맥가이버가 과학 연구실에서 도난당한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되찾아 왔다. 다른 에피소드에서는 엄청나게 큰 가짜 보석반지를 파괴하거나 전 세계를 날려버리려는 악당을 막아낼 때도 있었다. 프로그램이 방영되는 1시간 동안 그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뛰어난 지능과 온갖 지식, 기술을 동원한다. "아, 여기 클립이 있군. 성냥과 껌도 있으니...."이런 식이다. 그는 영리하게 주위에 있는 물건들을 조합하여 폭발 30초를 남겨두고 정지 버튼을 누른다. 소리 내며 움직이던 폭탄은 그제야 작동을 멈추고 세상은 다시 안전해진다.

이런 것이 브리콜라주다. 자신이 가진 것을 즉흥적이지만 혁신적인 방식으로 조합하여 새롭고 특별한 것을 만들어낸다. 브리콜라주를 할 수 있는 기업은 자원의 한계, 즉 제약을 뛰어넘고 제도적 장벽에 도전하여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 (-126-)

우리 대부분은 내적으로 강한 자기의식을 가지고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무엇이 강점인지를 타인이 판단하기 전에 스스로 생각해 볼 기회를 갖는다. 나는 고등학생 때 수학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개념을 흡수했고 문제를 푸는 게 재미있었다. 수학은 가볍고 편안했으며 무언가에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깨달은 자연스러운 자기의식은 타인의 의견에 영향를 받으며 서서히 잘려나간다. 우리는 본인의 선택과 상관없이 사람들과 얽힌 채 시끄러운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가 무엇을 성취할 수 있으며 얼마나 멀리 나아갈 수 있는지는 종종 다른 사람 손에 의해 좌우된다. 우리의 승진은 상사가 결정하고, 우리가 사용할 금융자원은 투자자가 결정한다. 회사의 시장 위치는 파트너 기관들이 결정하고, 우리의 직업 궤도는 때로 교사가 결정한다.'자기답게 살겠다' 라는 추상적인 생각만 반복한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타인의 관점과 인식에 영향받고 흔들릴 것이다. (-215-)

대한민국은 성실과 근면, 부지런함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항상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한다. 최근 벌어진 WBC에서, 우리가 야구 국가대표를 비난한 것도, 결과와 과정이 석연치 않았기 때문이다. 결과가 나빠도, 과정에서, 좋은 기억을 남긴다면, 긍정적인 기억을 남긴다면, 관용을 베푸는 정서가 있다. 우선 엣지 DDGE는 Enrich, Delight, Guide, Effort 로 이루어져 있으며, 한 끗의 차이를 만드는 내 안의 힘을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있다.

물론 이 책을 읽다보면, 스티브 잡스가 성공한 IT 전문가,사업가가 된 이유를 알 수 있다. 일론 버스크의 성공 비결도 나오고 있다. 그들이 왜 한 끗의 차이를 만들 수 있는지 알게 되면, 그 중 하나를 나 자신에게 적용할 수 있다.결국 나 스스로 바뀌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기억에 남는 사람이 되지 못한다.예를 들어서, 올림픽이 열리면, 모든 선수에게 금메달을 요구하지 않는다. 하지만 선수 중에 인상깊은 모습을 남길 때가 있다. 바로 도쿄 올림픽에 출전한 높이뛰기 선수 우상혁 선수였다. 나름 긍정적인 모습으로 결과에 안주하지 않으며, 스포츠를 즐기고 있었다. MZ 세대 스포츠 선수로서 , 과거 우리가 생각한 별종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과정과 더불어, 스포츠맨쉽이 있었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는 자신의 결과에 대해 최선을 다하였고, 상대 선수의 결과를 인정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패배감이 전혀 없다. 소위 그가 보여주었던 인상깊은 모습은 엣지 EDGE의 본질이 근접한다. 우리는 언제나 기회가 생길 수 있고,그 기회는 눈앞에 놓여질 수 있다. 소위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것들 하나하나 정당하고, 새로운 결과 기억에 남는 결과를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 즉 사람의 뇌리에 기억에 남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의 깊이 있는 본질을 간파할 수 있다. 목적과 목표가 있는 사람이 되어야 사람들에게 기억을 남길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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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사 미술관 1 - 로마의 건국부터 포에니 전쟁까지 로마사 미술관 1
김규봉 지음 / 한언출판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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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는 18세기 프랑스 조각가 클롣드 오귀스탱 카이요의 <디도의 죽음>이라는 조각이 전시되어 있는데요. 이 작품은 디도가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자신의 가슴 한복판에 단도를 찔러넣는 결연한 모습을 표현하고 잇습니다. 여왕이라는 지위와 명예도 사랑에 비할 바가 되지는 못했나 봅니다. (-26-)

17세기 프랑스 화가 시몽 부에는 <루크레티아와 타르퀴니우스 섹스투스> 라는 작품을 통해 이 사건을 그려냅니다. 작품을 보면 섹스투스는 정욕에 눈이 멀어 칼을 들고 난폭하게 루크레티아의 방에 들어가 그를 위협합니다. 루크레티아는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벗어나려고 필사적으로 방어하지만, 칼까지 들이대는 남자의 완력을 이기지 못하는 장면이 긴박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지금의 시선으로는 상당히 불편한 주제이지만, 강간은 유럽 예술과 문학의 주요 주제엿습니다. (-78-)

프랑스의 역사 화가 니콜라 기 브르네가 1785년에 그린 작품 『로마 여인의 경건함과 관대함』 은 카밀루스가 에트루리아 도시 베이를 정복할 당시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당시 그는 베이를 정복하며 얻은 보물의 10분의 1을 신에게 바치겠다고 맹세합니다. 하지만 카밀루스는 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 곤경에 처합니다. 그러자 로마 여인들이 그가 신에게 한 약속을 이행하도록 나섭니다. 이 그림은 여인들이 카밀루스에게 앞다퉈 재물을 바치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당시 카밀루스가 베이를 정복하여 얻은 많은 전리품조차도 신에게 바칠 귀중한 선물을 충족시키기에는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카밀루스를 존경하던 수많은 로마 여성들은 자신들의 장신구와 장식품을 기부해, 카밀루스가 신에게 맹세한 약속을 지도록 돕습니다. (-138-)

기원전 218년 여름, 한니발은 코끼리 37마리와 보병 9만 명, 기병 1만 2000명의 거대한 군대를 이끌고 로마로 향합니다. 에블 강에 도달한 한니발은 히스파니아에서 징집한 병사 중 장거리 원정을 두려워하는 이들은 귀가하도록 하고, 이곳을 방어하기 위해 보병 1만 명과 기병 1,000명을 남겨둡니다. 그리고 남은 보병 5만 명에기병 9,000명을 데리고 해안을 따라 북동쪽에 있는 피레네 산맥을 넘어 갈리아(현재 프랑스)에 들어섭니다. (-203-)

강력한 라이벌 스키피오는 이미 죽었지만, 로마의 실세로 군림하던 카토는 80세의 나이에도 노익장을 과시하며 카르타고를 집요하게 견제합니다. 하지만 스키피오의 온건한 제국주의 노선을 견지하는 원로원 의원들도 많았기에, 한동안 문제 없이 지내는 듯 보였습니다. 당시 아프리카에 있던 카르타고와 누미디아는 로마의 패권을 인정한 동맹 국가라는 입장은 같았으나, 누미디아는 엄연한 승전국이었고 카르타고는 패전국이었습니다. 당시 누미디아 왕국은 마시니사 왕의 통치하에 유목 국가에서 농경 국가로 탈바꿈하며 강대국으로 변모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273-)

15권 완결판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를 10권까지 읽은 바 있었다. 그 때 당시 로마의 역사를 깊이 알게 되었고, 로마에 관한 미드, 영드가 쏟아진 계기였다. 영화 글레디에이터가 흥행하였던 계기도 로마의 역사를 미리 알고 있었으며, 로마의 절대 권력자였던 ,'브루투스 너마저'를 외쳤던 율리유스 카이사르의 여성 편력과 로마가 추구하였던 권력 쟁탈의 배신의 역사를 엿보게 된다. 특히 로마의 미술사는 과거 익히 알고 있었던 그리스 로마 신화속 장면 장면을 묘사하고 있었으며,기원전 2세기경 제2차 포에니 전쟁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로마사 미술관 1』에는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등장하지 않으며, 로마 건국의 시조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등장하고 있으며, 그 때 당시의 사회,문화, 전통을 아우르고 있었으며, 알제리 북부 지역에 해당되는 누미디아Numidia 에 대해 함께 다루고 있다. 조각상으로 남아있는 제2차 포에니 전쟁 당시 로마 측 장군이었던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Publius Cornelius Scipio Africanus, 기원전 235년 ~ 기원전 183년)까지 이어지고 있다. 로마가 유럽 패권를 쥐기 전 , 알프스 산맥을 넘었던 카르타고의 정치가 겸 장군이었던 한니발 장군은 로마를 궁지로 몰아넣았으나 , 로마에는 한니발에 맞섰던, 로마를 구한 영웅 스키피오 장군이 로마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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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팡 테리블 걷는사람 시인선 83
안지은 지음 / 걷는사람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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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와 서정

애인이 집으로 왔다.

나갈 땐 죽을 것처럼 울더니 살아서 돌아왔구나

네가 없는 빈방에서 소리가 났는데

몸살이 났다.

몸에 살이 나면 원래 아픈 건가

우리는 하나의 소파를 나눠 쓰고

나는 자꾸만 등 쪽이 서늘해진다

가 닿을 수 없는

애인의 손과

어제 없는 미래

나는 그런 꽃의 충성심이 무섭고

살이 자꾸만 난다.

살이 몸이 된다는 건

소리에 목메는 것과 같고

애인은 소리 없이 웃는다.

한쪽이 정서면 다른 한쪽은 서정이다.

둘은 한집에 살고

소파는 이 집 중심에 있다. (-19-)

장례

편지를 불태우며 달리는 기차가 있다.당신은 틀린 맏춤법을 사랑하지. 나는 글씨를 거꾸로 쓰는 연습을 한다.내가 쓴 편지가 불타지 않는다.

장마가 오고 있어. 예감은 쉽게 예언으로 바뀐다. 모든 거짓말은 진실이 될 수 있다. 편지 봉투에 가면을 쓴다. 보내는 사람, 받는 사람 모두

애초에 둘로 나뉜적이 없잖아.

당신과 나는 쉽게 우리가 된다. 유언장에 내 이름을 싸줘. 당신은 유리창에 엑스를 그어 놓고 구원은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며 유리 조각을 나눠 먹는다. 서로의 이름에 구멍을 내며 돌림노래를 부른다.

청각이 통각으로 변한다. 기차는 곧 출발할 것이다. 기관실은 오른쪽에 있으나 당신은 왼쪽으로 들어간다. 돌림노래인 적 없다는 듯 노래가 끊긴다. 문을 닫기 전 찰나의 표정.

내게 당신의 표정이란 평생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맞다.

편지가 불타기 시작한다.

가명 위에 가명을 덧쓴다.

개에게는 개의 혀가 필요하듯. (-51-)

동심원

백야의 숲이다. 우리는 서로가 어디에서 왔는지 모른다. 텐트를 쳐야 할 때는 안다. 새의 지저귐이 멎을 때, 한 사람이 텐트를 치고서 대문처럼 멀뚱히 서 있다. 다른 사람은 장작더미를 세운다. 불은 붙이지 않는다. 우리는 안으로 돌아갈수 없다. 우리는 장작 주변에 둘러앉는다. 모두 말이 없다. 텐트 앞에 서 있던 사람이 손수건을 꺼내어 앉은 자들 주변을 서성거린다. 등을 보이건 한 사람이 빙그르르 몸을 돌린다. 원이 완성되고 있다. 수건은 여전히 한 사람의 손에 있다. 술래가 되는 건 이토록 쉽다. 한 사람이 재채기를 한다. 옆 사람이 눈물을 흘린다. 사바에 송홧가루를 흩날리고 있다. 모두가 훌적인다. 수건을 쥔 그는 우리 주변을 하염없이 맴돈다. 하늘은 여전히 밝으므로 시간은 희미하다. 우리는 서로의 눈을 피한다. 눈과 코가 붉어진다.송홧가루가 우리를 타고 번진다. 적막이 흐르고 저마다 떠올리는 사람은 제각각이지만 모두가 같은 마음이다. 술래의 손에 수건이 없다. 누군가의 등 뒤에 작은 그림자가 생긴다. 누군가는 낌새를 모른다. 누군가의 뒤는 깜깜하다. 누군가는 무게를 모른다.맴도는 자는 계속 맴돈다. 수건은 손에 쥐면 가볍고 땅에 내려놓으면 무겁다. 앉아 있는 사람들은 맨땅에 익숙해진다. 수건의 행방을 궁금해하지 않는다. 수건은 오직 하나다. 원이 깨지지 않는다. 누군가는 계속 맴돌아야 하는데 흐느낌 속에서 수건이 젖지 않는다. (-99-)

잊혀진 단어 『앙팡테리블(enfant terrible)』을 소환하고 있다.이 단어를 보면, 1990년대 후반 한국 K-리그를 축구를 휘날렸던 세 사람, 앙팡테리블 고종수, 테리우스 안정환, 라이언킹 이동국이 있다. 여기서 앙팡테리블(enfant terrible)이라는 단어의 뜻은 무서운 아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시집을 읽으면서, 무언가 묵직함과 상처가 드리워지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시인 안지은, 자신이 겪었던 사랑의 실체, 아픔과 상처로 얼룩진 사랑에 대해서, 상처와 마주할 때,절망을 느낄 때, 필요한 것은 그 상황을 견디면서 현재를 응시하는 것이다. 소위 우리가 추구하고자 하는 것들을 보면서,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한 몸부림처럼 느껴진다.

시를 읽으면서, 시인 특유의 시상과 시적 표현력이 느껴진다. 완전하지 못한 세계,그 세계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쓰는 언어는 불완전할 수 밖에 없었다. 무게감이 느껴지고, 삶의 언저리에 삶 그리고 죽음이 있었다. 어쩌면 우리가 현재 불안함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이유 또한 내면 속 불안과 절망감, 완전하지 못한 그 무언가에 있는 건 아닌지 꼽씹어 볼 때이다. 타인을 위해 살아가면서, 내 안의 마음을 채워 나가는 것, 숲에 나무가 없으면, 그것은 숲이 될 수 없다. 소위 우리가 어떤 것을 추구하려고 할 때, 채우지 않으면서 무언가를 이루려 하는 조급함이 어디서 기인하고 있는지 시인의 시적 표현속에서 답을 얻게 된다. 삶과 죽음 사이에 서서 동심원을 따라서 맴도는 현상은 나와 무관하지 않는 나의 또다른 모습이 관찰 되고 있었다. 누군가 나를 지켜봐 주길 바라면서, 나를 지켜조는 것이 불편한 모순과 역설,이러한 모습들이 우리를 힘들게 하고, 새로움을 갈구하는 또다른 원흉이 되고 있었다. 살아가고, 견디면서, 서로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시인은 왜 앙팡테리블, 무서운 아이라고 쓰고 있는지 꼽씹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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