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입 흰 귀 백조 소설선 1
유응오 지음 / 백조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빠는 다시 감옥에 갔고,성인이 되어 돌아왔다. 오빠는 출소 후 단 하루도 집에서 머물지 않았다. 오빠의 방은 먼지가 쌓여 갔지만 오빠의 소식을 궁금해하는 가족은 없었다. 오바의 소식을 다시 들은 것은 지방 경찰서에서 걸려 온 전화를 통해서였다. 죄명이 제법 거창했다. 특수 절도, 이번에는 단독 범행이 아니었다. (-12-)

"쥐새끼야, 얼른 나를 따라와."

보육원장은 검은 입의 손을 잡아끌었어요. 보육원장의 잔소리를 들으면서 걷다보니 검은 입의 눈에는 멀리 성냥갑처럼 생긴 건물들이 모여 있는 게 보였어요.

굉음이 나는 허름한 건물로 보육원장이 들어섰을 때 말쑥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사장이 오른손에 가죽 채찍을 들고 서 있었죠. 사장은 왼손으로 콧수염을 쓰다듬으면서 검은 입을 위아래로 훝어봤어요. (-70-)

당신을 처음 만난 것은 1988년.우리가 사는 나라에서 우리가 사는 도시에서 올림픽이 열렸던 해입니다.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는 크리스마스이브.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인류의 성자가 된 예수님의 생일 전야였습니다. 당신을 처음 본 곳은 원천교회 原泉敎會. 오르막길 중간에 십자가가 높이 솟아 있어서 골고다의 언덕을 넘어가는 예수의 십자가를 떠올리게 하는 교회였습니다. 내가 친구들의 손에 이끌려 교회에 들어섰을 때 강당에서는 여학생들이 합창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노래가 무엇인지 나는 기억할 수 없습니다. 내가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당신이 자리, 당신은 횡렬 맨 끝에서 두 번째로 서 있었습니다. 오래지 않아서 당신의 주변은 모두 희미해지고 당신만이 오롯하게 보였습니다. 당신이 주변인에서 주인공으로 바뀌느 순간, 친구에게 당신의 이름을 물었습니다. (-150-)

세간과 출세간을 막론하고 제자들은 염불보다는 잿밥에 관심이 많았다. 명정이 남긴 그림과 밑그림을 챙기려고 찾아온 게 자병했다.

명정이 지녔던 밑그림 중에는 100년이 넘은 것도 있었다.밑그림에는 전대 스승의 피와 땀과 눈물이 숨어 있었다. 그런데 듣기로는 최근에느 밑그림을 팔아먹는 놈들도 있다고 한다. (-189-)

"우여는 긴 칼 모양을 하고 있는 멸치과의 어류로 배는 은색이며, 꼬리는 회갈색을 띠고 있습니다. 4월이나 5월이면 바다에 백마강으로 올라가서 갈대밭에 산란을 하는 회귀성의 어류입니다.예부터 임금님의 수랏상에 오를 만큼 그 맛이 담백하기로 유명한 별미의 어류입니다. 꼭 부여의 백마강으로만 거슬러 와서 산란하기 때문에 우여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안내 방송은 사실과 달랐다. 방송에서느 부여의 백마강으로만 거슬러 와서 우여라고 부른다고 했지만, 우여는 표준어가 아니었다. (-229-)

오래되지 않았다.미국에 인종차별이 만여했다면, 대한민국은 장애에 대한 차별이 반연했다. 사회적으로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차별과 혐오, 한계를 강제로 규정하였다. 장애를 가진 이들은 사회에서 인정하지 못했고, 언어적 차별이 만연했다. 대한민국 사회는 그들에게 일반 사람에게 준하는 역할을 만들 의지조차 없었다. 대한민국이 군부독재 암울한 근현대사를 지나면서,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하면서, 장애를 비효율적인 존재로 인식하였다. 소설 『검은 입 흰 귀 』는 그 때 당시,우리가 잊고 잇었던 그 시절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검은 입은 벙어리, 흰 귀는 귀머거리를 의미한다 책에 등장하는 또다른 인물,육손이가 등장한다. 그들을 본다면, 우리는 이름보다, 장애를 먼저 언급한다. 곱게 말하지 않는다. 흰 귀라는 의미 속에서, 검은 입이 가지고 있는 선입견, 사회는 그들을 사랑하지 않았고, 유령으로 취급하였다. 결국 그들이 서로의 장애를 이용하여, 어떤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그것이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이야기, 작가의 의도가 분명하게 나오고 있었다. 불편하고, 말하지 않으려 했던 것, 오래 된 것처럼 보이지만, 길어야 40년 전 우리의 자화상을 언급하고 있었다. 손가락 하나 더 있다는 이유로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는 그들의 삶은 결국 불행했다. 남자에 대해서, 여자에 대해서, 우리가 보는 시선은 차별 그 자체였다고 본다. 그들이 저지르는 범죄는 사회가 책임져야 하는 역할을 다하지 못할 때, 그로 인해서 살기 위한 자구책이었다. 그들은 그것조차도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염주 백조 소설선 2
유응오 지음 / 백조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차일혁은 이현상의 시신을 발견했을 때를 떠올렸다.

이현상의 상의 주머니에서 염주가 나왔을 때 차일혁은 적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목에 걸면 배꼽까지 내려올 길이 108주였다. 차일혁은 108주를 한 알씩 돌려봤다. 손가락 끝에 진득한 게 느껴졌다. 피가 묻은 것이었다. 차일혁은 108주를 자신의 군복 바지에 문지른 뒤 두 손으로 고이 받쳐 들었다. (-11-)

원경 스님은 비비안나가 말하는 아버지와 닮았다는 눈언저리가 무엇인지 생각했다.

비비안나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원경이라는 이름은 뜻이 있는 거야? 본명은 병삼이라면서,"

"원경은 법명예요. 러시아 정교나 가톨릭으로 치면 세례명과 같은 겁니다. 원경 圓鏡 의 뜻은 '둥근 거울'입니다. 삼라만상을 모두 담ㅇ늘 수 있는 마음의 거울을 지니라는 의미이기도 하고, 제가 태어난 곳,그러니까 , 아버지와 어머니가 만난 곳이 청주인데, 청주의 옛 이름이 원경예요." (-50-)

원각사에는 빨치산 토벌 작전 중 죽은 인연 있는 영령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었다. 차일혁이 지휘한 작전에서 죽은 부하들의 위패를 차례대로 안치했던 것이다. 무주 구천동 전투에서 이영희 부대에서 참패한 후 차일혁은 천도재를 지내다가 자신의 연락병이었던 유병수의 위패를 보고서 오열을 터트렸다. 유명수는 여러 차례 차일혁의 목숨을 주해 준 적이 있었다. 재를 마친 뒤 현담스님은 말없이 차일혁의 손을 잡아주었다. (-154-)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넋은 적의 敵意 의 넋이었다. 적의로 가득 찬 사람의 마음이 적의의 넋을 만들고 있었다. 적의의 넋들은 온몸의 살점이 베어질지라도 칼날로 이뤄진 숲을 지나는 것을 멈추지 않고, 온몸이 뼈가 녹을지라도 벌건 쇳물의 강을 건너는 것을 멈추지 않고, 온몸의 피가 마를지라도 태양이 이글거리고 모래바람이 휘모아치는 사고 砂丘 를 오르는 것을 멈추지 않고, 온몸이 푸른색으로 변하고 혓바닥이 얼어붙을지라도 빙하 氷下 의 협곡을 헤매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자신을 불태우고 주변을 불태우고 세상의 모든 것을 불태울 때까지. (-205-)

소설가 유응호의 『염주』는 빨갱이,.좌파, 빨치산, 지리산 토벌대,남부군에 대해 나오고 있었다. 1948년 당시 대한민국은 매우 혼란스러운 시점이었고, 박헌영은 월북 후, 사형에 처하게 된다. 빨갱이가 말하던 박헌영의 아들은 소설 『염주』 에 등장하는 원경 스님이다. 자신의 본명을 버리고, 속세에서 벗어나 자신을 철저히 숨기게 된다. 즉 모나지 않게 살아가며, 잘 하지도, 못하지도 않는 딱 중간에 놓여진다.

이 소설을 읽으면, 실제 존재했던 근현대사에 현존했던 인물을 등장하고 있었다. 이름이 있지만, 이름 없이 살아간다는 것, 세상이 나를 철저하게 알지 못한 채, 숨만 붙어 있는 상황 그 자체였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북한에, 자신은 남한에 살지만, 국민으로서 기본 적인 권리나 의무가 주어지지 않았다. 바로 이 부분이 이 소설의 핵심이며, 대한민국 사회에서, 국가보안법이 있기 때문에, 원경 스님은 자신 뿐만 아니라, 부모에 대해서,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일평생 사고 치지 않고 살아가면서, 실수 하지 않으면서, 조용하게 살아가되 항상 세상에 대한 적의를 품고 있었다. 또다른 주인공 토벌대 대장 차일혁 서장, 그리고 박병삼이자 원경스님으로 살아가는 또다른 인물이 걸어온 인생 발자취, 이현상 체포작전 뿐만 아니라, 지리산 원혼 위령제까지, 우리의 근현대사 곳곳을 훑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 인생 정상 영업합니다 - 끝내기 실책 같은 상황이어도
쌍딸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실 별 이야기 아니다. 우리 직장에는 개인 컴퓨터가 있고 공용 컴퓨터도 있다. 정신없는 일이 끝나고 보니까, 공용 컴퓨터 파일 정리가 하나도 안 된 상태였다. 진심 외야 내야 중간에 애매하게 빠진 공에 야수 세 명 우르르 달려들었다가 박치기하고 넘어진 모양으로 아수라장이었다. 각자 필요한 자료가 있으면 개인 컴퓨터에 저장해 두고, 모두에게 필요한 자료가 있으면 공유 폴더에 옮겨 놔야 되잖아요. 근데 염병 그게 안 돼 있었다고. (-20-)

우리 엄마는 이런 노답 아동에게 어던 육아법을 적용했느냐, 바로 방목이었다. 분명 울타리는 있었는데, 내가 아무리 날뛰어도 제약이 없을 만큼 허용범위가 아주 넓었다. 쌍딸 나이 8세에서 16세는 게임에 미쳐 있던 시절이었다. 숨 쉬는 시간도 아껴가며 게임을 했다. 어느 정도였냐면, 14세에 이미 피시방 최장 기록 21시간을 찍었다. 구라 줄이라고요? 이거 구라 아닙니다. 리니지 유저이신 친구 아버지께서 동행해 주셨습니다. 10년도 더 지난 지금에서야 진심 어린 감사를 표합니다. 아직도 리니지 하신다는 소식으 들었습니다. 건승을 기원합니다. (-48-)

나도 야구 꽤 봤다고 생각하고 웬만한 정신 공격에는 내성이 좀 생겼다고 거드름 피우겠는데, 도저히 봐도 봐도 괴로운 게 하나 있다면 바로 연장전 패배다. 그리고 실책, 폭투, 보크 이단 것들로 인해 연장전에서 패배한다면? 그 시너지는 폭발한다. (-64-)

나는 야구를 보고, 그렇기 때문에 다연히 야구선수를 좋아한다. 내가 어릴 때 이미 큰 별이었던 선수들은 나의 우상이자 영웅이 되었고, 내 학창 시절에 데뷔해서 어른이 될 때까지 함께 성장한 선수들은 나의 벗이자 동반자가 되었다. 김상수는 이미 후자에 속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꽤 강하게 부정해 왔지만, 아니라고 고함을 질렀지만, 다들 알다시피 강한 부정은 긍정이다.

그래, 나 김상수 좋아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좋아했다. 됐습니까, 됐냐고요.

대구 경북 고등하교 출신의 삼성 1차 드래프트 선수 김상수, 2루와 3루를 열심히 훔쳐보겠다던 패기 넘치는 김상수. 파란색 유니폼 입고 유격수 자리에 서 있던 빼빼 마르고 까무잡잡한 김사수. 원조 대구 아이돌 김상수. 여전히 기억한다. (-132-)

다행히 옆에 앉은 사람은 아량이 넓었다. 앞에서 천상의 하모니가 펼쳐지는 중인데 이럴 정신이 있냐고 일벌백계하는 대신, 따뜻한 말을 건넸다. 자기도 경상도 사람이고, 아부지가 롯데 팬인데 막 야구 때문에 주고 살고 하신다고, 그래서 어떻게 됐냐면, 야구 이겼다는 소식에 함께 기뻐했다.뭃론 14대 7이었던 경기가 14대 12가 되기는 했고, 평소 같았으면 승리의 즐거움을 만끽하기도 전에 다 이긴 경기에서 왜 또 사람 간 쪼그라들게 점수 퍼주면서 장난질하냐고 욕했을 테지만은, 경기력을 꼽씹을 여건이 되지 않았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콘서트장에 있었기 때문이다.(-164-)

영화를 좋아하는 지인이 있다. '럽oo'라는 필명을 가진 영화 덕후였다. 영화 뿐만 아니라, 야구, 책을 좋아하는 야구와 영화 , 책 삼종 세트를 겸비하고 있는 문화 덕후였다, 야구 를 좋아하고, 책을 좋아하고,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 그들이 추구하는 삶은 어떤지 , 그 지인을 알고 난 이후 지금까지 알고 싶었다.그리고 책 『우리 인생 정상 영업합니다』을 마주하게 되었다.

책 『우리 인생 정상 영업합니다』 은 야구 에세이다. 야구를 좋아하는 저자는 특히 삼성을 좋아하고,야구 선수 김상수를 좋아한다. 야구 팬이라면, 야구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야구는 일상이 아닌 나의 인생이기 때문이다. 저자도 마찬가지였다. 삼성 팬으로서, 쌍딸이라는 필명으로, 야구에 대한 애정을 감추지 않는다. 경기를 보다가, 실책, 포일, 폭투가 나와서 역전패를 당하는 순간, 경기가 끝난 뒤 밥맛을 잃어버린다. 우승한 번 하지 못했던 삼성은 백인천 감동에 의해서, 첫 우승을 하였고, 선동력 선수 부인이후 삼성은 전성기 시절을 겪었다.

야구는 묘하다. 축구는, 큰 점수차로 이기고 있으면, 좀처럼 지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하지만 야구는 약한 팀이 강한 팀을 이길 수 있는 여러가지 변수가 있다. 특히 투수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선발 투수가 누구냐에 따라서,. 경기 성패가 갈리는 겨우가 있다. 5회 이전에 10점 차로 이기고 있다면, 후반 2이닝 남겨놓고, 대부분 안심하게 된다. 그런데 이 안심이라는 것이 중간계투와 마무리 툭수에 위해 엉크러지는 게 대다수다. 그래서 야구를 좋아하고, 야구에 분노한다. 역전승을 일굴 때와 역전패를 당할 때, 기분은 다르다. 물론 오승환 선수처럼 철벽 마무리 투수가 있다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팀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이 책에 나오는 여러가지 에피소드가 내가 겪은 이야기라서, 너무나 공감이 간다. 또한 직관으로 인해 그 경기가 진다면, 무언가 내 책임인 것 같은 징크스가 생길 때도 있다. 야구를 좋아하면 느끼는 일종의 죄책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저먼 지니어스 - 유럽의 세 번째 르네상스, 두 번째 과학혁명, 그리고 20세기
피터 왓슨 지음, 박병화 옮김 / 글항아리 / 201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런 태도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1961~1962년의 아이히만 전범 재판과 1967년에 일어난 중동의 6일 전쟁, 그리고 무엇보다 이스라엘이 (단기간에) 마치 패배한 것처럼 보였던 1973년 10월의 제4차 중동전쟁이 일아난 이후부터라고 노빅은 말한다. "이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미국 문화에는 '홀로코스트' 라 부르는 뚜렷한 현상이 등장했다. 이것은 단순히 일반적으로 나치가 저지른 야만성의 한 부분으로서가 아니라 별개의 위상을 지닌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제 홀로코스트라는 말은 온갖 공포를 묘사하는 언어가 되었다. (-45-)

빙켈만은 공부를 하겠다며 부모를 졸랐지만 그의 집안 형편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갖은 노력 끝에 베를린으로 간 그는 크리스티안토비아스 담 밑에서 가르침을 얻었다. 담은 "그리스어 연구가 완전히 무시당하던 시절에 라틴어보다 그리스어를 중시하는, 당시 독일에서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빙켈만은 이어 할레 대학과 예나 대학으로 옮겨가 가정교사생활을 하면서 의학과 철학, 수학을 공부했다. 그는 밤늦도록 그리스 문헌을 읽고는 낡은 코트를 입은 채 의자에 자다가 , 새벽 4시에 다시 일어나 책을 읽었다고 한다. (-160-)

오늘날의 평가로 고전음악의 '척추'를 구성하는 인물은 바흐, 헨델,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그리고 브람스이며, 모두가 독일인이다. 이들이 독일에 처음 등장한 시기는 19세기로 전환할 무렵이었다. 1800년대를 통틀어 이들 외에 음악의 대가로서 독일인이 아닌 음악가로는 헥토르 베를리오즈, 프레데리크 쇼팽, 차이콥스키, 베르디 정도만 꼽을 수 있다. (-248-)

1790년에서 1840년까지의 수십 년 동안은 근대 확문이 발전하며 체게를 갖춘 결정적 시기였다. 1840년에 이르러 자연과학, 물리학, 역사학, 언어가 독립된 학문 분야로 등장했고., 20세기 학문을 지배하게 될 핵심 문제를 만들어냈다. 이 말은 스티븐 터너가 1972년에 프린스턴 대학의 박사학위 논문인 프로이센의 대학과 연구 규범, 1806~1848』에서 한 것이다. 터너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조직화된 학문의 이 영웅적 시대가 도래하는데 대부분의 유럽 학자가 기여했지만, 독일 학자들이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339-)

휠덜린이 '우울한 실러" 였다면 하인리히 폰 크라이스트(1777~1811) 는 모든 극작가의 모범으로 훨덜린의 자리를 대신 차지했다. 프랑크푸르트인데 어오데르에서 태어난 클라이스트는 끝없는 발랑자로서 파리, 스위스, 프라하를 떠돌았다. 그러다가 1810년에 『베를리너 아벤트블레터 』 신문의 편집기자로 들어가면서 베를린에 정착했다. 클라이스트는 베를린에서 불안정한 보헤미안이자 화가 지망생인 헨리에테 포겔과 짧고 비극적인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포겔이 클라이스트를 부추기는 바람에 두 사람은 기상천외한 동반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클라이스트는 포츠담 부근의 클라이너 반제 호반에서 먼저 포겔을 총으로 쏘고 이어 자신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그의 나이 겨우 서른네살 때의 일이었다. (-438-)

1879년에는 베를린 무역박람회에 최초의 전철이 전시되었고, 베를린 카이저갤러리에는 최초의 전기가로등이 등장했다. 1880년에는 만하임에 최초로 전기를 이용한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었고, 이어 1881년에는 세계 최초의 베를린과 라히터펠데 사이에 전차가 운행되었다. 1886년에는 최초의 무궤도전차가 등장했고,1887년에는 베를린 마우어슈트라세에 발전소가 세워졌다. 1891년에는 전기드릴이 최초로 생산되었으며 1892년에는 시간당 전류량을 측정하는 전시계가 설치되었다. 이제 지멘스라는 이름은 그가 만든 전기공학 Elektrotechnik 이라는 말과 동의어가 되었다. (-531-)

우생학에서 가장 악명을 떨친 인물은 브레슬라우에서 성장한 의사인 알프레트 플뢰츠(1860~1940) 였다. 플뢰츠의 『독일 인종의 유용성과 약자 보호』는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 빈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히틀러도 읽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다음의 인용문을 보면 플뢰츠가 주장하는 방향의 한 자락을 알 수 있다. (-632-)

마침내 1871년 통일된 독일 제국이 탄생했다.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여파로 프로이센이 독일 국가의 연합을 주도하면서 베를린은 신흥 제국의 수도가 되었다. 하지만 베를린은 훗날 자신이 과시하게 될 수도로서의 면모는 아직 갖추지 못했다. 어쨌든 베를린에서는 대대적인 승리를 축하하는 군사 퍼레이드가 열렸다. 1871년 6월 16일 일요일,해가 쨍쨍 비치는 가운데 철십자 훈장을 단 4만 명의 병사들은 템펠호프 들판을 출발해 브란덴부르크 문을 거쳐 운터 덴 린덴 거리의 왕궁까지 행진했다. 전투에서 노획한 프랑스 군의 깃발 81개는 거의 누더기가 된 채 독일의 승리를 돋보이게 했다. (-755-)

정신분석 연구소와 바르부르크 연구소, 독일정치연구소, 프랑크푸르트학파는 모두 피터 케이가 말한 '이성 공동체' 의 일부로서 그들 공동의 문제와 경험에 과학적 합리성의 밝은 빛을 비추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모두가 냉정한 합리성이 답이라고 믿은 것은 아니었다.

바이마르 시대의 독일에서 과학의 "냉정한 실증주의" 에 반발한 운동 중 하나는 "신비로운 독일의 왕" 슈테판 게오르게를 중심으로 일파를 형성한 시인과 작가들이 주도했다. (-830-)

이런 모든 수법은 대학을 길들이는 정책에 포함되었다.가장 큰 관심 속에 많은 논란을 야기한 인물은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1889~1976) 였다. 특히 한나 아렌트와 관계나 그가 아렌트에 취한 태도는 악명 높었다. 한나 아렌트(1906~1975) 는 1924년 18세에 마르부르크 대학에 들어가 유럽에서 생존한 철학자로서는 가장 유명하다는 하이데거의 지도를 받으며 철학을 공부했다. 하이데거의 대표적 저서인 『존재와 시간』이 완성 단계에 있었을 무렵으로, 이 책은 3년 후에 나오게 된다. 아렌트가 하이데거를 처음 만났을 때 하이데거는 35세였고, 두 명의 어린 자녀를 둔 유부남이었다. (-939-)

아렌트는 1945년부터 1949년까지 저작활동에 매달렸고 1951년에 나온 『전체주의의 기원』은 미국 독자층에게 엄청난 충격을 준 동시에 그녀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의 서막이라고 할 일련의 사건을 이해하기 위한 시도였고, 무엇보다 어떻게 유대인 같은 소집단이 나치운동이나 세계대전, 죽음의 공장 같은 참혹한 역사의 기폭제가 되었는지를 추적하고 있다. 아렌트는 공산주의와 파시즘을 동일선상에 올려놓고 두 이념 모두 ,비록 계급차를 타파해 인류에게 영광스러운 미래를 제기한다는 의도가 있다고 해도 결국 계급의 세분화와 소외, 집 없은 상황을 불러왔다고 주장했으며, 대중사회의 핵심은 "인간공동체의 고급화된 형식"을 만드는 대신 고립과 고독을 낳은 것이라고 말했다. (-1039-)

독일서적상협회의 평화상을 수상한 바 있는 하버마스는 9.11 테러가 일어난 지 한 달 쯤 지난 2001년 10월에 종교적 근본주의와 나치즘 사이에 유사점이 있음을 지적했다. 그는 사람들이 '우리와 다른 사람들'이나 '야만인'을 탓할 게 아니라 그들 모두 현대화의 '열매' 이며 계몽주의의 어두운 면을 드러낸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1129-)

자크문트 프로이트의 영향은 카를 마르크스만큼 혼란을 초래한 것은 아니지만 결코 비중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프로이트의 유산을 평가하는 데에는 두 가지 관점이 존재한다. 하나는 프로이트 한 사람이 정신분석학으로 인간의 전 생애에 영향을 주는 특수한 방법을 개발했다고 보는 관점이자. 다른 관점은 프로이트와 함께 그의 동시대인 니체와 막스 베버를 묶어서 보는 방식이다. 여기서는 이 두가지 관점을 모두 살펴보고자 한다. 이것이 독일 사상가 집단의 완전한 성과를 이해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1182-)

21세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금까지 미국 주도의 글로벌 세계관이며, 유대인이 세계 경제 문화 패권을 쥐고 있다. 20세기 초 1933년 이전까지 미국이 주도한 세계가 아닌, 독일이 주도하는 세계였다. 1871년 프랑스와 전쟁 이후, 통일된 독일 제국이 탄생한 프로이센 제국은 서사히 제국주의로 변모하는 준비를 갖추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개최될 당시만 해도, 유대인보다는 아리아인이 세계를 운영하는 유리한 상황, 조건을 가지고 있다. 그때 18세기부터 20세기 히틀러, 한나아렌트가 등장할 때까지만 해도, 독일은 서서히 영국이 가지고 있는 권려과 힘을 양분하였다. 유럽은 영국, 독일,프랑스, 이탈리아가 이념에 따라서, 사상에 따라서, 자기 몫을 챙기는 형국이었다.여기서 주도권을 쥐는 나라가 비스마르크의 프로이센 왕국이었다.

독일의 지니어스들을 보면, 경제 뿐만 아니라, 음악,예술, 정치까지 이우르고 있었다. 어디 한 곳에 치우쳐 있는 한국의 근현대사와 달리, 독일은 다른 횡보를 보여주고 있었다. 칼 막스가 독일 출신이며, 칸트, 니체, 헤겔,후설과 같은 철학자가 독일의 중흥기를 이끌었던 핵심코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저먼 지니어스'였기에 가능한 정해진 조건과 유리한 상황이 있었기 때문이다.미국은 그 때 당시 남북 전쟁으로 인해, 흑인해방운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지질학 하면 베게너가 등장하고, 판게아 이론이 나타나면서, 6대륙이 하나의 큰 대륙으로 되었다고 말한다. 다윈의 진화론도 마찬가지다. 무의식에 대해서 ,정신병리학을 연구하였던 프로이트, 프로이트의 제자이자이며. 프로이트와 각을 세웠던 구스타프 융도 독일사람이다. 학문의 중심은 영국이 아닌 독일에 있었으며, 19세기 말, 영국은 케임브리지 ,옥스포드 대학교가 있었다면, 그 당시 독일은 수십개의 유럽사회와 네트워크 되어 있는 유명한 대학교가 있으며, 학문의 요람이 독일에 있었다. 근대 산업 디자인의 효시 바우하우스 가 독일에서 생겨난 것도 우연이 아니며,음악의 선구자 바흐, 헨델,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브람스 또한 독일인이었다. 즉 그들의 독일이 가진 강력한 힘이 독일이 유럽을 재패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계산이 깔려 있었으며, 히틀러는 유럽사회에 만연해 있었던 유대인 혐오를 부추겨서 ,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원인이 되고 있다. 반도 국가인 한국이 전쟁을 일으킬 수 없는 지정학적 조건이 있었던 반면, 일본이 동아시아 패권을 쥐고자 하였던 이유도 그러하다. 대한민국이 6.25 전쟁 이후 , 해방이 되면서, 독일의 산업 인프라를 모범으로 했던 것도 우연이 아니었다. 독일을 라인강의 기적이라 한다면, 한국을 한강의 기적이라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으며, 한나 아렌트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아이히만 전범재판에서, 악의 평범성을 강조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먹스 베버와 자크문트 프로이트를 독일의 자랑으로 여기며, 스탈린주의와 파시즘, 전체주의가 있었던 나라 독일은 나치,홀로코스트로 인해 미국이 패권을 가짐으로서, 독일은 야만 국가, 파시즘 국가가 되고 만다, 독일에 대한 선입견, 편견이 생기게 된다. 즉 독일이 패자이고, 미국이 승자이기 때문에, 미국의 우수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독일 또한 미국 못지 않은 지니어스 ,우수한 인재가 존재하고 있으며, 우생학, 아리아인에 대한 우수성을 강조하면서 극단적인 민족주의로 독일을 하나로 모으면서, 파시즘을 독일사회에 심었던 것은 우연이 아닌 ,독일이 가지고 있는 필연적인 상황이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블록스로 만드는 나만의 상상 놀이터 : 프로젝트편 로블록스로 만드는 나만의 상상 놀이터
㈜로보로보 지음 / 영진.com(영진닷컴)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로블록스 방탈출게임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