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걱정돼 - 바다를 위협하는 7가지 특서 어린이교양 1
조미형 지음, 김수연 그림 / 특서주니어(특별한서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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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는 파도와 햇빛, 바람에 떠돌면서 잘게 부서지고 물이끼가 새겨요. 그러면 냄새로 먹이 사냥을 하는 바닷새들은 쓰레기를 먹이로 착각해 삼키거나 새끼에게 플라스틱 조각을 먹이기도 해요. 어미 새와 새끼 새가 죽어가고 바닷새 둥지가 비어가는 이유도 바다를 떠도는 쓰레기 때문이에요. (-50-)

산호 조각에 다라붙어 있는 미세 조류와 남세균을 청소하는 과정이에요. 레아와 로먼은 아바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봤어요 많이 봐 왔던 과정이지만 직접 하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에요. (-72-)

촘촘한 이발은 딱딱한 산호초를 부숴 먹을 수 있을 정도로 강해요.이빨은 계속 자라기 때문에 닳지도 않안요. 파랑비늘돔은 산호에 붙어 사는 미세 조류와 남세균을 이발로 긁어 먹어요. 산호는 파랑비늘돔 때문에 균이 없어져 건강해지지요.

파랑비늘돔은 먹이 섭취과저에서 갉아 먹은 산호초를 모래 형태로 배설해요.따라서 산호초 주변의 투명한 모래는 파랑하늘돔이 만든 것이에요. (-87-)

지구는 육지생테계와 바다 생테계로 구분한다. 인간은 육지를 기반으로 살아오고 있으며,고래나 상어,악어는 바다를 자신의 생활반경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은 바다에서 살아가고 있는 야생 해양동물을 거대한 수족관에 옮겨서, 해양동물의 야생성을 잃어버리는 문제가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야생은 야생 그대로 살아가도록 하여야 하며, 육지 생명체는 육지 그대로의 삶을 유지 보존할 필요가 있다.

한편 지구는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저 8000M 고사지대에 있는 히말라야 산 꼭대기에도 쓰레기가 있으며, 바닷가 심해 마리아나 해구에도 인간이 바린 쓰레기가 존재한다. 플라스틱 같은 화학제품에 의해 만들어진 쓰레기는 지구를 황폐하게 만들어 놓고 있으며,인간이 개입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우주로 쏘아 올린 인공위성이 수명을 다하면, 바다로 투척하여, 폐기된다. 실제로 가까운 곳에 있는 호숫가 물이 녹색으로 변한 것을 보면서 충격을 먹은 바 있다. 어릴 적 손으로 씻고, 발을 직접 담궜던 그 물에 발을 담그는 것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황경오염의 실체적인 모습을 물과 호수,바다 해양에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으며,기후 문제, 온난화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바다를 위협하는 7가지로, 기름, 쓰레기, 선크림, 낡은 어구, 폐수,기후 변화, 해저 개발이 있다. 인간에 의해 바다가 오염되고 있다는 결정적인 반증이며, 자신의 쓰레기는 스스로 처리해야 한다는 대원칙을 쓰레기 처리 문화로 만들어 나갈 때이다. 폐어구는 어촌에서, 어부들의 경제적 활동으로 인해 발생하고 있으며, 물고기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기름의 경우, 바닷가 유조선이 침몰하여, 바다 전체를 급속도로 오염시킨 바 있으며, 기름에 찌들어 있는 괘이 갈매기는 인간의 잔인한 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선크림도 마찬가지다.자외선 차단제로 널리 쓰이는 선크림은 바닷가 산호를 오염시키고 있으며, 깨끗한 바다의 아름다움이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특히 산호는 바닷가 물고기들의 서식처이면서,해양생테계가 살아남을 수 있는 중요한 장소이면서,공간이기도 하다. 인간에게 공기가 없으면 살수 없는 것처럼 물로기들에게 산호가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인간이자신의 피부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편리하다는 이유로, 자외선을 차단한다는 목적으로 선크림을 바르는 행위에서 벗어나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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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로 피는 꽃
홍균 지음 / 하움출판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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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생계형 히키코모리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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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로 피는 꽃
홍균 지음 / 하움출판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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눕기

한달 쯤인가

그냥 누워 있었다

하루에 16시간쯤 잔거 같기도

하고 꿈을 꾸기도 했던 거 같다.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그러고 있었다.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나도 말하지 않았다.

내가 사람인가? (-11-)

정신승리

세 달 쯤 방구석에

살았다.

시간이 지나니 생각보다

괜찮았고 좋았다.

잔소리하는 사람도 없고

누군가랑 대화할 필요도

노력할 필요도

그 무엇도

방구석에 먼지가 쌓였다.

치우지 않고 멍하니

켜켜이 어두워지는 티끌을

바라봤다.

좋았다 마치 나와 같았다. (-45-)

우리의 삶은 북적북적 시끄럽고 정신없는 도떼기시장 안에 있었다. 내가 타인에게 다가가지 않으면 내 슬픔은 내 안에만 머무를 수 밖에 없었다. 구경하는 삶은 진짜가 아니었다.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리가 아파도, 마음이 아파도, 그 방향성이 어떻게 흐르든 인생은 방구석이 아니라 방 밖에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내 몸은 움직이지 않았고, 나의 생각은 방안에 갇혀 있었다. (-84-)

내 마음의 방어기제는 거리 두기였다. 사람과의 거리를 통해서 내 마음의 상처를 보호했다. 방구석에 들어가서고 나의 습관은 똑같았다. 내 고통을 밖으로 꺼내서 치유하기 보다는 스스로 꽁꽁 묶어놓고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모든 통증을 홀로 껴안고 있으니 더 힘들고 지쳤다. 그래서 그때의 나는 부끄럽게도, 모든 사람에게 온전히 대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111-)

학창 시절 육상부 운동선수였던 저자는 초등학교 6학년이 되어서, 서울시 대표가 되어, 출전하게 된다. 실패라는 단어와 무관한 삶을 살았고, 거침없이 꿈을 위해서, 앞으로 앞으로 전진하였다. 장학금을 받았던 것도 조기졸업도 또래 친구들보다 빨리 시작하였다.하지만 인생이 갑자기 추락하고 만다. 그리고 히키코모리가 되었다. 세상에 대한 원망과 절망이 눈앞에 펼쳐졌고,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시에 등장하는 그레고리잠자처럼 자신의 인생이 바뀌었다는 것을 인식하고 말았다.

열심히 살았고,성취감을 느꼈으며, 성공과 꿈을 꾸면서 살아왔다. 하지만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세상과 거리를 두었다.나를 보호하고,세상이 나를 안다는 것을 거부하고 싶었다.집 밖으로 나가지 않은 , 생계형 히키코모리가 되고 만 것이었다. 세상에 스스로 민폐가 되진 안핬지만, 가족은 항상 저자를 걱정하고 있었다. 잘못도니 선택을 할 수 있어서다. 기다려 주었고,다시 돌아오고, 회복되길 바랬다. 하지마 그런 기대와 달리 하루하루 무기력한 상태에서, 먹고 자고 생각하는 시간 이외에는 잠자는 시간으로 채워 나간다. 삶의 의미조차도 내려놓았고,무엇을 한다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밖에서 나오지 않았고, 100일 가까이 세상과 거리를르 두기 시작했다.방구석과 친구 먹었다. 낯선 세상에 대한 거부감은 어느 새 적응하였고, 인간 나무늘보처럼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외부에서,나를 볼 때,한심스럽게 본다하더라도, 저자는 스스로 만족하였고,살아갈 방법을 찾아낸다. 그것이 살아야 하는 이유였고, 왜 살아야 하는지,어덯게 살아내야 하는지 만들어 나간다. 히키코모리에 대해서, 세상이 그들을 낙인을 찍고, 혐오하고, 불편하게 생각하는 우리 사회가 그들이 다시 세상밖으로 나오기 위해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되돌아 볼 수 있다. 삶을 이어나가면서 함께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는 것이 어던 의미인지 돌아보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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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 탐구 생활 - 완벽주의와 자기의심에 대하여
사월날씨 지음 / 왼쪽주머니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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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매일 수치심을 느끼며 살아가고,그것이 불행,우울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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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 탐구 생활 - 완벽주의와 자기의심에 대하여
사월날씨 지음 / 왼쪽주머니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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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이 나를 데려가는 곳이 있다면 그곳은 자괴와 평가와 고립의 땅이다.

들킬까 봐 늘상 불안한 곳, 그곳에는 잘하는 걸로 자신을 증명해내려 하는 사람이 있다. 못난 사람이 되는 걸 견디지 못하여 우우러감과 열등감을 둘 다 갖는 사람이 산다.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받아들여지는 것으로 수치심을 해결하려 하기 때문에 남들에게 나를 납득시켜야 한다는 강박에 휩싸인 사람이 가면을 쓰고 수동적으로 굴며 거절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17-)

착함은 여성이었다. 여성이 사회에서 받아들여지려면 착해야 한다.그렇게 믿었기 때문에 착해지려고 애썼다. 공부를 잘해도 착하면 된다. 아니, 공부를 잘할 수록 착해야만 한다. 여성으로서의 사회화가 진행되면서 내 세계의 규칙이 바뀌고 있었다. 또래 사이에서 받아들여지기 위해 그전까지 필요했던 덕목이 친화력,주도력 같은 것이었다면 어느덧 착함, 튀지 않은,나대지 않음, 물러서고 양보하고 배려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중학생이 되면서 입기 시작한 치마 교복은 사회화의 상징이 되었다. 치마 교복을 입은 나는 여학생으로서 녹아들어야 했다. 착하고 배려하고 겸손한 사람, 그렇지 않으면 무리에서 떨어져 나갈지도 모르는 존재. 나는 짜인 각본을 충실히 따르느 타입이었다. (-70-)

구구절정이란 나를 타인에게 설득하거나 설명해내야 한다는 압박에 짓눌려 있을 때 스스로 느끼는 마음이고 그렇게 해도 나를 이해시키지 못할 거라는 깊고 막연한 두려움이 미리 입 아픈 감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즉, '구구절절'은 이해받고자 하는 몸부림이고 '말하기 귀찮아'는 이해받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이다. 수치심이 만들어내는 우울의 감각이다. (-111-)

평가하는 시선으로 스스로를 바라보는 순간, 내 몸이 드러나거나 드러나지 않는 것,누군가를 유혹하거나 유혹하지 못하는 것, 몸으로 무언가를 얻거나 얻지 못하는 것, 누군가가 내 몸을 원하거나 원하지 않는 것, 내 몸이 느끼거나 느끼지 못하는 것, 그 모든 것으로부터 수치심이 생겨난다. 드러나도 부끄럽고 드러나지 찮아도 부끄럽다. 욕마의 대상이 되어도 부끄럽고 되지 못해도 부끄럽다,. 세상이 쳐놓은 덫에 걸려 꼼짝없이 서서 더러운 시선이 내 몸을 멋대로 훑고 지나가는 동안 온몸으로 수치심을 받아낸다. (-188-)

이 수치심은 혼자서만 겪는 것도 아니고 혼자서만 만들어낸 것도 아니겠다는 깨달음, 수치심이 어떻게 사회화되어 왔는지, 사회화된 수치심이 개인의 특성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생각해본다. 그리하여 이 수치심이 정말 내 것일까? 물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까 처음 워크숍을 열 때의 기대와 조금은 같고 조금은 다르지만 분명히 얻었다. 나는 어딘가 잘못되고 어긋나서 나라는 인간의 개성은 숨겨야만 한다는 ,목을 죄고 있던 무언가의 힘이 조금 느슨해지는 안심을 말이다. (-218-)

행복한 삶을 살다가도 , 갑자기 수치심을 느끼는 순간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아담과 이브가 나체 상태에서 자유로운 삶을 살다가, 선악과를 먹고 난 뒤, 나뭇잎으로 자신의 몸을 가리게 된 것도 아담과 이브의 수치심에서 비롯된다. 이처럼 우리 삶에서,수치심은 부끄러움과 우울감, 감정과 분노로 이어지고 있었다. 상대방에게 아픔을 줄 수 있고,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어리석은 나 자신을 인지하게 된다. 실수,실패, 부끄러움, 이것들은 수치심의 근원, 원형에 해당되고 있었으며, 아이였던 소년이 어른이되면서, 점차 수치심을 느끼며, 삶에 있어서,가치관, 정체성과 엮이고 있었다.여기서 사회화는 남성다움,여성다움에서 시작되며, 여성의 경우, 초경,생리르 시작하면서, 수치심은 출발한다.수치심 유발은 불결하다,불경스럽다는 말과 일치할 때도 있기 대문이다.

어린 시절 아이들이 부끄러운 줄 모르고, 옷을 입지 않츤 채 여기저기 뛰어다닐 수 있었던 건,아이들은 수치심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머리가 굵어질수록, 아이들은 수치심을 학습하게 된다. 어떤 자리에, 어떤 장소나 시간에 격식을 차리는 이유는 예의,매너이기도 하지만, 나의 부끄러움, 수치심을 감추기 위함이다. 특히 지위가 높을 수록 수치심을 감추며 살아가고 있으며, 그들의 내면속 부끄러움,수치심을 건드리면, 발끈하거나,분노를 느낄 수 있다. 실제로 수치심은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으며,대한민국 사회가 자살이 만연한 이유도 수치심과 무관하지 읺았다. 요성은 365일 다이어트를 생각하고, 외모에 신경쓴다.

자기애가 깊을 수롟 수치심을 잘 느낀다. 누군가를 언어적 폭력을 하는 상황이 발생할 때,그 사람의 수치심을 적극 이용한다. 그건 직위가 될 수 있고,호칭이 될 수 있다.무시하거나, 무관심으로 일갈하거나, 객관적인 평가와 비교로,수치심을 유발하기도 한다. 여성의 경우, 남성의 어설픈 시선으로도 수치심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할 필요가 있다.수치심은 남녀가 다르고,우리 사회가 만든 사회화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배려하고 싶은 사람에게 오해를 사고 싶지 않다면, 그 사람의 수치심을 절대 건드리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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