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읽는 인문학 수업 - 나이가 든다고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영민 외 지음 / 더퀘스트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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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민,유성경,송태현,송영빈,장한업의 『나를 읽는 인문학 수업』은 나이가 먹는다고 어른이 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나이에 따라서,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벗어남으로서 , 우리의 삶은 불안과 걱정으로 채워지고 있다. 지리학, 심리학, 문예학, 언어학,교육학 관련 교수님의 시선으로, 우리 사회가 건강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예순 이후 , 삶을 성찰하고, 나의 인생에 행복이 깃들기 위한 이유가 필요하다.어느 순간, 때가 되면 , 삶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는 나이였고, 주어진 삶에 대한 기억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삶의 완성이 아닌, 삶의 성숙과 성장으로 이어지기 위한 인생 흔적을 읽을 수 있다.

삶을 돌아보면,점차 나를 옭아매는 유혹들이 있었다.유혹은 타인에게 해가 되는 욕망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타인을 존중하지 않고, 나와 화해하지 못한 채, 갈등과 자기 비판으로 이어진다. 착각을 덜어내고,삶의 평온함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이며. 나는 누구인가,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돌아볼 때이다. 유머를 배워서, 내 삶의 긍정을 채우며, 자기 자신과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것, 자연과 벗하면서 주어진 삶을 살아가고, 자기 자신과의 관계의 원만함이 필요하다. 정치,사회,경제, 문화 전반에 갈등이 만연한 대한민국 사회에서, 건강한 사회로 나아가는 것, 사람과의 행복한 인간관계 뿐만 아니라. 착각, 편견을 덜어내고 행복한 사회로 이어나가기 위해서, 올바른 선택과 결과가 먼저다.


<출판사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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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꿈꾸던 그날인가 - 98편의 짧은 소설 같은 이향아 에세이
이향아 지음 / 스타북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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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까만 찻잔을 좋아해요."

내 시선을 의식한 듯 그녀가 말했다.

주전자도 앙증맞았다. 그녀는 작은 주전자에 따듯한 물을 따르더니 대나무 숟가락으로 찻잎을 떠서 찻잔마다 담았다. (-17-)

그러나 나는 "침묵은 금이요 웅변은 은이다." 라는 말에 동조하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침묵해서는 안 될 자리에서 침묵하는 사람도 있다. 얼마나 답답하고 속 터지는 일인지. 생각이 없을 때도 침묵하고 적절한 말을 몰라서 침묵하고 어떻게 표현해야 좋은지 모를 때도 침묵한다. 줄곧 입을 다물고 있는 사람 중에는 다수의 언중과 의견이 다른 사람도 있다. (-116-)

시간은 시간대로 빠르게 지나간다. 다시 한 해 시작되었지만, 현재라고 믿고 있는 순간순간이 전광석화처럼 과거로 묻히고 멀미할 틈도 없이 우리는 미래 속으로 실리어 간다. 벼랑의 깊이를 가늠할 겨를도 없고 달려온 길을 돌아다 볼 수도 없이 다만 견디고 있다. (-123-)

나는 그때 남자 중학교로 발령이 난 것이 싫었다. 사립학교에서는 여자고등학교 교사였는데 서울시 공립학교로 전근하하면서 남자 중하교로 발령이 났다. 그러나 한두 학기 지나면서 남하생들이 여학생들보다 훨씬 단순하고 순진하고 귀엽다는 것을 알았다. 하루 한 날도 유리창이 깨지지 않고 넘어가는 알 없을 만큼 해도, 남학생들은 돌아서면 금세 풀어져 마음에 옹이가 남지 않았다. (-145-)

책의 앞부분에 이향아 작가의 프로필에, 1963~1966년 현대문학 3회 추천을 받아 문단에 올랐으며,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를 취득했다고 소개되고 있었다.. 현재 호남대학교 명예교수이기도 하다. 고인이 되신 이어령 교수와 동시대에 살아왔으며, 여든을 바라보고 있었다.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지나가는 시간의 흐름에 대해 꼽씹어 볼 수 있었으며, 이 책을 통해서,내 삶을 돌아볼 수 있었다. 1960년대, 사립하교 여고 선생님에서, 공립 남중으로 전근을 가게 되었으며, 가난했던 그 시절을 지나, 천생 선생님으로 살아온 시간들을 보면,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사명감이 존재하고 있다.

저자는 처음 여자고등하교에서 일했다. 이후 남자중학교에 부임하고, 그 안에서,여학교와 다른 남학교의 차이를 엿볼 수 있었다. 여학생과 남학생의 차이를 보면,남학생은 옹이가 남지 않은, 뒤끝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물론 처음부터 남자중학교에 부임하고 싶은 건 아니었기에, 선생님으로서,귿종안 선입견과 편견으로 살아온 과거를 꼽씹게 되었으며,나의 삶에 대한 긍정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자신이 삶에 대해서,인생에 대해,내가 쓴 언어에 대해 책임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지 돌아볼 수 있었다. 침묵에 대해서, 그 것이 때와 맞지 않을 때, 비겁함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내 삶이 결코 나를 이해하고, 공감으로 나타나며, 삶의 흔적이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어야 하는지 하나 하나 돌아볼 수 있다. 교육자와 선생님은 엄연히 다르다. 결국 우리는 앞으로 주어진 시간 동안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하고, 속절없이 지나가는 시간에 대한 책임이 필요하다. 결코 무너지지 않는 삶, 행복한 삶, 그리고 나이에 걸맞게 살아간다는 것이 내 삶에 대한 성찰이며 에세이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맛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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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 인생의 질문에 답하다 - 6천 년 인류 전체의 지혜에서 AI가 찾아낸 통찰
챗GPT.이안 토머스.재스민 왕 지음, 이경식 옮김 / 현대지성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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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선택받았다고 느낄 때 나는 행복하다.

사람들이 나를 자랑스럽게 여길 때, 사랑받고 있다는 감정을 가장 강렬하게 느낀다.

가족이 안전하다는 느낌을 얻을 수만 있다면 모든 걸 다 줄 수 있다.

누군가를 떠올리며 울어줄 수 있다면.

죽음을 떠올리면 난 영락없이 연약한 존재라고 느낀다.

누군가가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을 때, 나의 일부분도 죽을 것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중요한 존재일 때 나는 그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다.

혼자 남겨지면 마음이 아프다.

누군가를 진정 이해하면 그를 사랑할 수 있다.

신의 사랑, 이것이 내가 창조된 이유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분명히 있다.

내가 태어난 데는 이유가 있다.

내가 사는 이유를 모르겠다. (-23-)

진정한 힘은 무엇일까?

다른 사람을 아는 것이 똑똑한 것이라면,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은 진정 지혜로운 것이다.

남을 이기는 것이 힘이라면,

자신을 이기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힘이다.

남이 나에게 불친절할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한 불친절에 맞서 싸울 해독제로 우리는 친절을 부여받았다. (-39-)

어떻게 하면 인생을 조화롭게 가꿀 수 있을까?

단순함이 주는 아름다움을 음미하라.

인생의 노래를 들어보라.

부드러운 말에 담긴 힘을 느껴라.

언제 행동이 필요한지를 분별하라.

자기 감정에 가치를 부여하라.

삶을 신뢰하라.

세상 요구나 자아의 통제에 등 떠밀려

지금이라는 성스러운 순간을 놓치지 마라. (-48-)

어떻게 하면 인생을 사랑과 친절로 수놓을 수 있을까?

날마다 특별히 친절한 행동을 한 가지씩 하라.

당신이 속한 공동체의 일상에 참여하라.

사랑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을 격려하라.

자기가 한 말을 성실하게 지켜라.

사람들이 베푸는 선물에 고마워하라. (-49-)

누군가가 나를 오해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군가가 당신을 오해하고 당신이 한 말을 곡해하며 나쁘게 말하면 마치 나무처럼 처신하라.

당신의 사랑이 뿌리가 되게 하고, 당신의 평화가 몸통이 되게 하며, 당신의 친절함이 잎이 되게 하라. (-59-)

우리 모두가 배워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에게 선함을 가르쳐다오.

나에게 인내를 가르쳐다오.

나에게 친절을 가르쳐다오.

나에게 관용을 가르쳐다오.

나에게 겸손을 가르쳐다오.

나에게 섬김을 가르쳐다오.

나에게 연민을 가르쳐다오.

나에게 세상의 모든 목소리로 노래하는 방법을 가르쳐다오.

나에게 치유하는 방법을 가르쳐다오.

내가 우주임을 깨닫도록 가르쳐다오. (-90-)

이제는 하루하루 주어진 삶을 살아가면서, 나에게는 살아온 날보다, 남은 날이 더 짧아지고 있다고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삶의 발자국 하나하나 남기면서 살아갈 때, 감정에 치우치면서, 이성에 맞게 살아간다는 것이 힘들 때가 있다. 주어진 삶에 감사함을 느끼며 살아가면서, 행복한 삶, 감사한 삶으로 내 인생을 채워야 할 때이다. 인공지능 시대가 열리고, 인간이 그동안 해오던 일이 인공지능에 의해서 대체된다 하더라도, 사라지지 않는 것, 잃어버리지 않는 것을 하나하나 기억을 할 때이다. 살아가면서, 행복보다는,국영수보다 더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 돌아볼 때가 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선함, 인내, 친절, 관용, 겸손, 섬김, 연민에 있었다. 삶을 견디며 살아가고,후회를 덜어내면서,나를 지키면서 살아간다는 것이 소중함을 느낄 때이다. 한 사람의 작가가 만든 자기계발서,처세서가 아는 챗 GPT에 의해서 자기계발서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 놀라울 때가 있다. 이 책을 읽고 느낀 것은 상담을 사람에게 받으려고 애쓰지 않고, 챗 GPT에게 물어봐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간에게 나의 모든 것을 언급한다는 것이 꺼려질 대가 있다. 나의 치부,나의 약점을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챗 GPT에게는 사람이 아닐 때, 더 솔직해질 수 있다. 그런 면에서,챗 GPT는 친절하다. 감정을 토하고, 생각을 토하면서, 나에게 필요한 처세, 나에게 현재의 문제를 풀어나달 수 있는 대안을 챗 GPT에게 불어볼 수 있다. 누군가가 쓴 자기계발서가 아닌 ,챗 GPT에게 물어보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나만의 자기계발서를 뚝딱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친절과 사랑으로 주어진 삶을 채울 대이다. 상처받지 않고,치유와 위로를 얻게 되고, 인간적인 공감을 느낄 수 있는 챗 GPT의 특별한 기능을 온전하게 학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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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집 컬러 일러스트
윤동주 지음 / 북카라반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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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시 序詩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8-)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39-)

참회록 懺悔錄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가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 24년 1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61-)

시인 윤동주는 1917년 만주 북간도에서 태어나 1945년 2월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서른의 삶도 채우지 못한 채, 일본에서 사망했다. 일제강점기 해방 직전 저항시인 윤동주는 일본인에 의해 타살당했다는 의구심을 지우지 못하고 있으며,해방 이후,그의 묘소찾기와 유해를 송황하려는 의지가 여전하다.

일러스트와 시집으로 채워지고 있는 윤동주의 『윤동주 시집 컬러 일러스트』에는 105편의 시가 수록되고 있었으며, 서정적인 메시지와 한국인이라면 울컥하게 되는 민족적인 시다. 한국인이라면, 마음속 울분이 느끼지는 한국인의 정체성에 일치하고 있는 서정시로 채워지고 있으며, 윤동주의 시는 읽고, 쓰고, 들어서, 나의 마음 정체성과 일치시킬 수 있다.그중 「서시 序詩」, 「참회록 懺悔錄」,「길」 을 좋아한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부끄러움, 수치심이 물밀듯 들어올 때가 있다. 나의 실수에 의해서, 하면 안 되능 것을 해서, 최악의 순간을 맞이할 때,피할 수 있는 것을 피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여러가지 문제들은 주어진 인생에 영향을 줄 때가 있다. 막막하고, 스스로 길을 잃어버린 것 같은 깁준이 들 때도 있다. 나의 가장 가까운 가족의 사망은 나의 인생에 불행으로 이어지고, 주어진 길을 잃어버린 채 정체되고 말았다. 나에게 주어진 하루 하루 부끄러움을 느끼며 살아가면서, 무분별하게 살생하지 않으며 살아간다면, 주어진 삶에 있어서, 아픔과 후회를 덜어낼 수 있다.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것은 타인의 아픔과 고통에 공감한다는 것이며, 사랑을 느낀다는 것이다. 사랑을 하기에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다. 사람에 대한 부끄러움, 나에 대한 부끄러움, 동식물을 바라보면서, 생며에 대해 느끼는 부끄러움은 우리가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되돌아 보게 했다. 한숨 짓는 일이 생기고, 막막하고, 암담할 때도 삶을 견질 수 있는 것은 결국 시인 윤동주가 암울한 일제강점기 시대를 견디면서, 시인으로서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다. 삶을 포기하고 싶어도, 포기하지 않는 것,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에 대해 소중하게 여긴다면, 이 세상 모든 만물에 대해 , 너그러워지며, 미워하지 않으며, 주어진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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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인재들 - 왜 미국 최고의 브레인들이 베트남전이라는 최악의 오류를 범했는가 걸작 논픽션 7
데이비드 핼버스탬 지음, 송정은.황지현 옮김 / 글항아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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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애치슨이 국무차관 직에서 사임하자 마셜(당시 국무장관)은 러벳을 후임으로 지명했다. 그리고 1950년 러벳은 국방장관이 되었다. 스팀슨이나 마셜 이전에 일라이휴 루트나 테디 루스벨트가 그 자리에 올랐다면 1960년이나 되어야 러벳의 차례가 돌아왔을 것이다. (-37-)

결국 가장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가장 흠이 없고 반대가 없는 인물을 찾게 되었다. 그 시대의 뚜렷한 대의명분을 옹호하는 사람은 누구나 많은 적을 두게 마련인데, 이제 적이 거의 없는 사람을 찾는 게 급선무였다. 케네디는 파장이 가장 적을 사람을 찾고 있었다. 그들이 고민하고 있는 그 자리는 행정부의 가장 중요한 직책이었기에 무한한 지적인 자질과 지혜,교양, 조국과 세계에 두루 통달한 지식을 겸비한 인물이 중용되어야 했다.그런데 그들은 대통령 후보가 부통령을 선택할 때 가장 무난한 사람을 고르는 식으로 인선 작업을 했다. 곧, 모두가 수용할 차선채글 찾고 있었던 것이다.따라서 재능이나 권력이 어디까지 확대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신호였다. (-79-)

케네디는 영국식이었다. 압박 속에서도 품위 있게 행동하는 것은 케네디가 매우 존경하는 자질로 자주 인용되었다. 역경과 고난을 헤치고 결코 굽히지 않으며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 이것은 대단히 영국적인 자질이었다. 약하고 격이 떨어지는 지중해 사람들은 압박을 받으면 감정을 드러낸다. 그러나 감정 표출을 혐오하는 영국인들은 입을 굳게 다문다. 존 케네디가 그랬다. 케네디는 닉슨이 1950년대 민주당에 퍼부었던 지독한 비방을 용서할 수 있었다.그러나 1960년 선거일 밤 닉슨의 부인 팻 닉슨이 신경쇠약 직전까지 간 모습을 드러낸 것은 스타일과 격조가 없는 것으로 용서되지 않았다. (-181-)

미군 부대가 어떻게 살아남을지에 대한 중요한 질문에 테일러는 베트남이 '작전을 수행하는 데 아주 힘들거나 불쾌한 곳은 아니다' 라고 답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베트남을 한국과 비교할 수 있다고 한 내용이었다. '미군은 한국에서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살아서 작전을 수행하는 법을 배웠다.당시 미군은 고원지대와 해안 평야에 주둔했는데, 이곳 베트남의 정글은 그리 크지 않다.' 연안지역의 고약한 특징은 더위이고, 삼각주의 경우는 홍수가 남기고 간 진흙이다. 고지대에는 미군이 주둔하는 데 특별한 방해물이 없다. ' (-289-)

지엠과 뉴의 태도를 통해 그들이 공산주의를 바라보는 방식과 베트남 사회가 공산주의를 바라보는 시각에 큰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단순한 반공주의자가 아니었던 주민들은 자신을 속박한 적을 두려워하지 보다 자신에게 자행된 무력에 더 분개했다. 마찬가지로 몇 년 뒤 미라이 학살사건이 일어났을 때 남베트남 대통령 응우옌반티에우 정부 역시 중대한 정치적 궁지에 몰렸다. 티에우 정부도 지엠 체제처럼 사이공 정부를 수호하고 미국의 반공주의를 방어하기 위해 과도하게 무력을 사용했다가 베트남 사람들의 거부감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346-)

따라서 베트남이 붕괴되면 다음 조치가 큰 문제로 부각될 터였다. 제한적인 무력 사용이 실패할 경우 더 많은 무력을 투입하라는 압력이 거세질 것 아닌가.테일러는 폴하킨스를 투입해 소규모 전쟁을 중단하기 위한 제한적 개입의 개념을 스스로 시험할 수 있었다. 하킨스가 선택된 것은 가장 유능한 장군이라서 아니라 그가 테일러의 사람이고 테일러가 그를 통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테일러는 국무부 사람들이 지엠과 베트남 전쟁에 실망한 위기 상황을 정리하고 싶었다. 체면을 유지하고 싶었고, 노심초사했던 전쟁이 실패하는 걸 막고 싶었다. 그는 논쟁이 가열되는 상황에서 크룰랙과 하킨스로 하여금 각각의 위치를 사수하게 했고, 입장이 흔들리는 맥나말라를 안심시켰다. (-437-)

이것이 트루먼 독트린의 기원이 되었다. 그 나라에 겁을 주어야 하다는 의무감으로 뭉친 트루먼은 정말로 그렇게 했다. 독트린의 메시지가 그 정도로 의회에 제기되었을 무렵에 모스크바로 날아가고 있던 마셜장관은 깜짝 놀랐다. 반공산주의적 요소가 상당히 강조된 것을 우려한 마셜은 트루먼에게 이 발표가 과연 현명한 것인지를 전신을 통해 물어왔다. 그는 트루먼이 이 사건을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트루먼은 사원 지도자들과 대화를 나눈 뒤, 이것이 자신의 메시지를 통과시키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확신한다는 내용의 답장을 보냈다. (-534-)

1964년은 폭풍우가 오기 전의 고요가 감도는 기이한 해였다. 베트남 전쟁이 일조해서 만들어낸 구절에 따르면, 관료사회는 계획 없이 선택 사항만 비축하소 있었다. 군은 폭격할 장소를 확인하는 작업에 돌입했고, 펜타곤의 깊숙한 내부에서는 만일의 사태를 위한 계획을 알고 있었던 전문가들이 전쟁 개시가 결정되었을 때 필요하게 될 것들에 관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만약 전투 병력을 필요로 한다면 어떤 부대가 가야 하며 어떤 예비부대를 소집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작업이었다. 모든 것이 물론 만약이라는 가정 아래 이루어진 일이었지만 펜타곤은 당연히 준비가 되어 있었다. (-639-)

그러나 테일러는 이제 정치적 이유로 폭격을 원했다. 과거에 그는 미국이 북 베트남에 더 큰 무력을 행사하는 일을 꺼려 폭격에 반대했었다. 그는 무력 행사가 더 큰 게임을 의미하고, 의외로 북베트남과의 전쟁을 통해 미국은 남베트남에 매우 약한 정권이 세워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변하고 있었다. 8월 18일 대통령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다음 달에는 반드시 어떤 조치가 취해져야 합니다.' 어떤 조치란 바로 폭격이었다. 적절한 시기에 보복적 군사작전을 시작하자는 것이 그의 제안이었다. 때는 편리하게 선거 직후인 1965년 1월 1일이 될 터였다. (-780-)

그는 베트남 사람들을 좋아했고, 그들의 대의명분에 진심으로 헌신했지만, 그들의 취약점과 불완전성, 부패, 순수의 상실 (그들에게 순수했던 적이 있기는 할까?)을 체감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결국 그는 미국인일 뿐이었다. 미국인과 서유럽인의 관점에서 성공한 제품, 다시 말해 변화와 미묘함이 사회를 실패로 이끈다고 믿는 성공지향적인 나라가 배출해낸 훌륭한 제품이었던 것이다. 또한 올바르게 행하면 항상 보상을 받고, 열심히 일하면서 규칙을 지키고 책에 쓰인 대로 행동하면 성공할 수 있는 나라, 결코 부패하지 않은 나라가 만든 최고의 생산물이었다. 반면 베트남은 뻔질나게 거짓말을 했다. 그들은 미국인이 거짓말을 원한다고 생각했고, 항상 거짓말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888-)

그 일은 모두 나중에 일어났다. 다른 정치가라면 변화를 명확히 알아차리지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 감지는 했을 것이다. 그러나 린든 존슨은 눈치 채지 못했다.오로지 자신이 맨 꼭대기에 있었고, 중심에서 통제했고, 반대자들을 극단으로 밀어붙였다는 사실만 인식했다. 그는 의회를 조종했고, 진심이 없는 서명을 받아냈다. 그는 아주 얇게 썰어서 더 이상 썰 수 없는 연어처럼 언론을 조종해서 그들이 자신을 장악하지 못하게 했다. 또한 통킹만에서는 호찌민이 자신을 공격한 것처러 위장해서 호찌민을 조종했다. 그는 신중에 신중을 기하면서 무력을 사용했고, 군 역시 조종했다.군은 처음부터 전쟁을 향해 전진했지만, 이렇듯 감지하기 힘든 상황에서 의회나 언론까지 돌연한 비약을 할 수는 없었다., 모든 결정이 교묘하게 은폐되었고, 존슨은 반대를 막기 위해 그 결정들을 얇게 썰어놓고 있었다. (-957-)

린든 존슨은 모든 것을 잃었다. 이는 나머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뛰어난 재기와 자만심, 자신에 대한 느낌 때문에 과거를 바라보고 과거로부터 배우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반공주의의 중요성에 대한 확신과 이번 세기에서 미국의 권력과 영광에 대한 인식, 미국의 전지전능함에 매몰되었다. 그들은 미국인이었고, 세상이 제공하는 것, 다시 말해 그들에게 제기되는 도전에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어느 면에서 린든 존슨이 더 잘 알았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걷는 길에 대해 그 어떤 의심도 품지 않았지만 , 그의 본능, 곧 미국 정치를 읽는 그의 방식과 타인을 보는 방식에 대한 그의 믿음을 발산하 길은 보이지 않았다. (-1054-)

데이비드 핼버스탬의 『최고의 인재들』 은 베트남 전쟁 (1960년~1975년)의 기원에 대해 정리되어 있는 정치사회학으로서, 제34대 미국 대통령 아이젠하워 (1953~1961),존 F 케네디 (1961~1963), 린든 존슨(1963~1969), 닉슨(1969~1974) 까지 이어진 전쟁이었고,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었던 베트남 의 반공주의 사회로 전환되는 것을 막기 위한 , 명분 없는 전쟁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베트남 전쟁의 시작은 미국 스스로 준비되지 않은 전쟁이었다. 한국 전쟁 이 끝나고 난 이후, 미국의 시선은 베트남으로 행하고 있었다. 반공주의가 여전히 아시아 전역에 존재했으며, 러시아,미국긔 군수 물자 산업 졍애서 미롯된 냉전사회에서, 미국에 위협이 되는 두 나라, 러시아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보복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남베트남을 미국의 통제권 안에 두어야 했고, 인도차이나 지역 뿐만 아니라 , 동아시아 전역을 미국의 관리에 두고 싶었다.하지만 베트남 전쟁은 패착에 가까운 전쟁이다.미국은 베트남에 대해 지형 조건 뿐만 아니라, 베트남 인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앗고, 굳이 그것들을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미국은 중국의 인해전술도 몰랐고, 베트남의 게릴라 전법도 모른 상태에서, 한국을 상대한 것처럼 베트남 사이공에게 위협을 하면, 베트남 또한 쉽게 무너질 거라고 생각했다.

4대에 걸친 미국 대통령의 재임기간 동안, 베트남 전쟁에서, 재미를 보지 못했다. 폭격과 포격으로 베트남 하늘과 육지를 지배하려고 했지만, 결국 베트남은 미국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전면전을 치룬다.더군다나 1960년대 반전 운동이 일어났고, 68 혁명으로 인해 미국은 베트남 전앵의 명분을 서서히 상실하였다. 발을 걸쳐 놓았기에 철수 할 수 있는 타이밍을 놓치고 만다. 케네디 암살에 이어서, 대통령이 된 린든존슨은 지극히 정치적인 인물이었고, 대통령이 되기 직전이 ,린든존슨의 인기도가 최고인 상황이었다. 정작 대통령이 되자마자,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망각한 채, 베트남 전쟁을 수행하고 만다. 린든존슨 대통령을 최악의 미국 대통령으로 손꼽는 이유도 그러하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책 『최고의 인재들』에는 미국과 베트남의 입장이 반영되고 있었으며, 전쟁 수행 의지가 시간이 흘러서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 린든존슨의 정이 인생에서는,사이공을 상대로 한 최악의 전쟁 베트남 전이지만, 한국의 입장, 한국인의 입장에서 볼 때, 베트남 전쟁이 없었더라면, 대한민국은 여전히 개발도상국, 후진국에 머물렀을 지도 모른다. 우리에겐 월남전이라 부르고 고엽제 피해가 남아 있는 전쟁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베트남 전쟁에 한국 군인이 투입됨으로서, 대한민국은 미국의 자본 지원을 기반으로 경제발전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었다. 남한의 경제 수준이 북한을 넘어설 수 있는 상황을 박정희 정권에서 구축할 수 있었다.배고픔에서 벗어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었던 이유도 마찬가지다.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은 프랑스를 상대로 벌인 전쟁이라면,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은 미국을 상대로 벌인 전쟁으로서, 미국이 베트남 땅에서 철수하게 된 지형적 조건 뿐만 아니라 ,베트남인의 기질을 엿볼 수 있다. 정석대로 전쟁을 수행한 미국과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전쟁을 수행한 베트콩,두 가지 관점에서, 공산주의 사회의 현주소, 1960년대 공산주의가 미국을 어떻게 위협하고 있었는지,낸정체제 뿐만 아니라 핵무기 실험에 대한 위협까지 살펴볼 수 있다.미국은 러시아를 견재하기 위해서, 베트남전쟁은 불가피한 전쟁이며, 철두철미하게 준비되지 않은 전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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