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사와 에이이치 일본 자본주의의 설계자 - 500개 기업 창업. 재벌이 되길 거부한 경영자. 일본이 선택한 시대정신
신현암 지음 / 흐름출판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1840년 3월 16일에 태어나 1931년 11월 11일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일본 1만엔 지폐에 새 얼굴의 주인공이며, 양면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다.그는 정한론의 원흉을 제공한 위인이며, 일본 자본주의 설계자라고 부른다. '경영의 구루' 피터 드러커가 시부사와 에이이치에 대해 언급한 이후다. 그가 무사 출신에서 메이지 시대 변혁기에 상인의 아들로서, 보여준 과정 하나 하나 이해할 수 있다.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메이지 유신 시대에 살았으며, 부유한 집안의 장남이다.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편한 길을 걸어갈 수 있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특권을 버리고 새로운 변화를 적극 수용하였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갔다. 기업가이지만, 부자가 될 수 있는 길을 버리고, 새 시대를 열수 있는 시스템으 만드는 혁신가,자본주의 설계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책에서 눈여겨 볼 대목은 그의 생각과 가치관이다. 1860년대 ,20대였던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큰 꿈을 펼쳐 나갔으며,실행으로 옮기며 살아오고 있었다. 그 결심은 아버지를 설득하는 과정으로 이어졌으며, 일본의 자본주의 설계자라 부를 수 있는 시부사와 에이이치가 될 수 있었다. 자신을 밀어주는 아버지의 든든한 지원 속에서 일본에서 벗어나 유럽 파리에 가며, 유럽의 선진 문화와 경제,도시를 일본에 도입하였으며, 일본이 경제 성장을 꾀하고,제국주의 나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일본 사회를 변화시키려면 자신의 지위가 지금보다 더 높은 곳에 있어야 한다는 지헤와 깨달음을 가졌고, 실천해 나갔다. 그가 일본 제일 은행을 설립하고, 무사가 아닌 일본 금융과 산업을 장악할 수 있었으며, 500개 기업을 창업하고 , 그 500개의 기업을 운영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나갔다. 모방을 잘하는 한국 사람은 메이지 시대를 살았던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업적을 따라가면서, 그의 성공 노하우를 빌려서 기회를 만들어 나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양나래 변호사의 이혼 상담소 - 상담부터 승소까지, 한 권으로 끝내는 이혼의 모든 것
양나래 지음 / 길벗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내는 대학 졸업 후 바로 대기업에 취업한 '커리어 우먼'이었습니다. 원하던 직장에 취업하고 안정적으로 경제활동을 하게 되자, 자연스럽게 '아,나도 좋은 사람을 만나 경혼하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마침 그때 , 회사 동기가 지금의 남편과 만남을 주선해 주었습니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전문직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며, 대학교 재학 시절에도 손에 꼽히는 우동생이었고 성실하기로 소문 났으니 합격은 시간 문제라 했습니다. 지금 수험생인 것은 고려하지 말고 오로지 사람 자체만 보라고 했고요. (-19-)



장인 어른은 지역에서 유명한 사업가입니다. 외동인 아내는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는 데 관심이 없어서, 장인어른은 저에게 사업으 배우라고 하셨지요. 사업을 이어받으면 언젠가는 나도 사장이 되겠구나 싶어 설레는 마음으로 장인어른과 함께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잘못된 선택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하대 받는 것이 당연한 노예가 된 것 같아요. 장인어른과의 갈등고 이혼 사유가 되나요? (-74-)



결혼 후, 이혼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다. 경제적 이유, 자녀 문제, 그리고 이혼 후 사회적 편견 때문이다.하지만, 이혼을 해야 할 때, 유책사유에 충족하는지 살펴 보아야 이혼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할 수 있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여러가지 이혼 사유를 본다면, '적반하장'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이혼 사유가 상대방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혼요구를 당사자가 아닌 상대방이 할 수 있다. 이런 경우에 독박을 쓴 케이스다. 추가적으로 이혼의 증거로 쓰기 위해서, 녹음이나, 몰래카메라 설치,CCTV 솔치로 인해 말생하는 형사적 처분이 따를 수 있는데, 이런 경우,이혼을 하고 싶어도 이혼하기 망설여지는 또다른 이유다.



부부 사이에 발생하는 이혼 사유도 있지만,외부적인 이유로 이해 이혼사유가 나타날 때가 있다. 장인어린이 돈이 많아서, 잘 살거나, 시댁이 잘살아서, 결혼한 케이스, 결혼 후 처가에서 무시당하고, 장인에게 하대 받을 때가 있다. 뉴스에 단골로 소개하고 있는 공부 잘하는 남자가 사법고시 패스후, 돈 많은 여자에게 장가가는 케이스가 여기에 해당되며, 겉보기에는 남부러울 것 앖는 좋은 조건이지만 실상 안으로 들어가면, 이혼 빌비가 될 수 있는 여러가지 사례가 실제로도 나오고 있다.



책에는 실제 가까운 친척이 이혼한 케이스가 소개되고 있어서, 눈에 들어왔다. 부륜이나, 도박, 조건,자녀 무제 등이 이혼 사유가 될 수 있는데, 부부가 결혼 후 모은 재산을 분할할 때, 그 재산분할의 기준이 애매하다.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혼전문변호사 의 도움을 얻을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맹자 장자에게 리스크 매니지먼트를 묻다 - 중대재해처벌법 대응 ESG, ESH 관계자 필독서
최병철 지음 / 대경북스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ESG 경영과 중대재해처벌법이라는 외부환경의 변화가 안전경영의 중요성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있다. 안전경영이란 말이 사용된 지느 제법 오래되었다. 누구나 그 필요성이나 중요성을 인정한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안전경영을 실천했느냐고 물으면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이나 기업은 별로 없다. (-24-)



애쓰지 않는다는 것은 아무것도 합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일부러 의도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선진 안전문화란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상태를 말한다. (-60-)



혁신을 방해하는 ,즉 불선의 세번째 요인으로 맹자는 방심(放心) 을 꼽는다. 반성할 중 몰라 마음을 보존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인은 사람의 마음이요,의는 사람의 길이다. 그 길을 버리고 따르지 않는다. 개나 닭이 나가면 찾으면서 마음을 놓아버린 후 찾을 줄 모른다. 학문의 길이란 그 놓아버린 마음을 찾는 것일 뿐이다."라고 덧붙인다. (-127-)



맹자의 지적대로 '초나라 사람들이 떠들어 댄다면, 종아리를 치면서 가르쳐도 소용없을 것' 이기 때문이다. 경영책임자가 이 점을 간과한 것이다. 심하게는 경력사원을 채용해 놓고서도 간헐적으로는 "어디 얼마나 잘하는가 보자." 라는 입장을 피력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누가 그 이를 해낼수 있을까? (-190-)



안전지식의 유효기간은 얼마나 될까?안전관리 현장에서 서류양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안전기분 업데이트와 책임의 근거자료 측면에서 생산되는 문서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데, 실제로 안전보건관리자의 주요 성과는 이러한 서류를 생산하고 보존하는 속도나 작성 수준으로 평가된다. 관련 기관의 점검에 대비하는 일이 80% 이상이다. (-275-)



장자가 말하는 욕심을 버리면 천하는 잘 다스려질 것이란 말은 무슨 말인가? 효율성이란 성과를 말한다고 하겠다."이것을 버리면 천하의 조화로움이 자연스럽지 않겠는가?" 라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과연 그럴까? 어떤 조직이든 핵심적 구성요건이 있다. 첫째는 공동의 목표이고, 둘째는 1인 이상의 구성원이고, 셋째는 그 작동장치, 즉 시스템이다. (-314-)



우리 사회에서 가장 인가의 지혜에 의존해야 하는 영역이 정치다. 그 이유은 사법적 판단이 가지는 폐해를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정치가 사법에 자신들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판단을 넘겨주기 시작하면서부터 대화와 협상은 불필요한 일이 되어버렸다. 한 가지라도 더 증거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실수를 유도하고, 불신을 전제로 모든 행위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407-)



2500년 전 맹자 사상과, 장자 사상을 현실에 적용한다면, 어떻게 쓰여질 수 있는지, 어떻게 쓰여져야 하는지, 책 『맹자 장자에게 리스크 매니지먼트를 묻다』에서 쓰여지고 있으며, 안전 경영에 대해서, ESG 경영의 본질에 대해서, 논할 수 있다.



장자 사상과 맹자 사상은 무위자연(無爲自然)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이 두가지 사상에서, 우리가 인위적인 행동으로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을 문제시하고 있다. 예컨데, 쓰레기를 버리는 인간의 행위에 대해서, 재활용,친환경이라는 의미로 쓰레기를 다른 형태로 전환하고 있지만, 인간이 쓰레기를 배출하지 않는다는 전제를 깔고 시작한다. 즉,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문제가 해결된다는 의미는 안전 경영의 본질을 꿰뚫고 있으며,인간이 무언가 하려고 애쓰는 것 자체를 경제하고 있다.



책에는 방심(放心) 이 나온다. 여기에서 방심이란 어떤 일을 할 때, 스스로 틈을 만드는 것에 있었다.예컨데, 안전경영에 있어서, 간과하는 것이 꼭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에 있다. 하지 않아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마인드, 즉 인간 스스로 방심 하면서, 큰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가 방심의 대표적인 예다.



추가적으로 욕심이 나오고 있다. 우리가 안전 경영의 또 다른 한계가 욕심.에 있다. 덤프 트럭에 무거운 것을 추가로 쌓는 것이 욕심의 하나다. 배가 견딜 수 있는 하중을 넘어서는 물건을 쌓는다면,그것 또한 인간의 욕신에 해당된다. 결국 방심과 욕심, 이 두가지를 내려 놓는다면, 큰 문제가 발생하는 일을 줄여 나가며, 인간의 불필요한 노력을 덜어낼 수 있다.욕심을 버리면 천하르 다스릴 수 있다고 말하는 이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컨설팅 경영 : 소상공인편 - 1000만 소상공인의 경영 위기 극복과 성장을 위한 경영 전략 실전서 컨설팅 경영
황창환 지음 / 라온북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부 지원 프로그램을 활용하려면 해당 프로그램의 자격 요건, 신청 방법, 필요 서류 등을 미리 확인하고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관련 웹사이트를 방문하거나 담당 기관에 문의하여 상세한 정보를 얻는 것이 좋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소상공인들은 사업 운영에 필요한 다양한 지원을 받아 더욱 효율적이고 성공적인 사업 운영이 가능해 질 것이다. (-25-)



이웃 사업체와 손잡고 펼치는 프로젝트는 바로 우리 모두의 동네를 무대로 한 놀라운 아이디어 쇼케이스와도 같다. 소상공인들은 창의력의 대가가 되어 각자의 가게 앞에서 이웃 사업체와 함께 아이디어를 발휘해보자. 이 아이디언는 고객들을 단숨에 매료시키는 힘이 있으며, 이벤트 개최는 마치 지역 축제의 주인공이 되어 모든 이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71-)



비즈니스에서 고객의 경험을 개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 고객 여정을 분석하고 각 단계별 고객 경험을 개선하는 전략을 수립한다. 우선, 고객 여정 맵핑을 통해 고객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접하고 구매, 사용, 관리하는 과정을 단계별로 분석한다. 이를 통해 각 단계에서 고객이 느끼는 감정, 생각, 행동을 파악한다. (-106-)



첫 번째 도전은 'SWOT 분석'이었다. 마치 숨겨진 보물을 찾는 모험가처럼, 주인은 자신의 가게가 가진 강점(S)과 약점(W),그리고 마주할 기회(O)와 위협(T) 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이 분석을 통해 그는 자신의 가게가 가진 진정한 잠재력과 마주할 도전들을 파악할 수 있었다. (-144-)



소상공인이든 대규모 기업이든 M&A 를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바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명확한 목표 없이는 전략적 방향성을 결정짓기 어렵다. 예를 들어, 어떤 회사는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고자 할 수 있으며, 다른 회사는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거나 새로운 사업 영역에 진출하고자 할 수 있다. 이처럼 목표는 다양하게 설정될 수 있으며, 이는 전략 수립의 기반이 되며 효과적인 계획을 수립하는 데 필수적이다. (-205-)



멘토링은 성공한 사업가 또는 전문가로부터 직접적인 지도와 조언을 받는 과정이다. 이를 통해 소상공인들은 실질적인 사업 경험과 지식을 공유받으며, 사업 운영에 있어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해결 방안을 배울 수 있다. 멘토의 경험은 이론적 지식만으로는 얻기 어려운 실질적인 가치를 제공한다. (-248-)



책 『컨설팅 경영 소상공인편』에서는 5인 이하 소상공인들의 사업 노하우, 사업 전략, 사업 멘토링과 사업 컨설팅까지 아우르고 있다. 여기서 고객들을 단숨에 내 사람으로 끌어들이는 방법이 우선되어야 하며, 1000만 소상공인의 경영 위기 극복과 성장을 위해, 어떤 대안과 방편이 있는지 살펴볼 수 있다.



소상공인은 경쟁력 강화가 우선되어야 한다. 예컨데, 주변 상권 분석을 통해서,나와 다른 소상공인과 차별화하고, 나만의 특화된 아이템이나 이벤트가 필요하다. 책에는 소상공인 지원, 정부 지원 활용하기가 나오는데, 소상공인을 위한 공모사업이 그런 케이스다. 서류 작성 방법을 익힐 수 있어야 한다. 그 다음 대체자금 조달하기 가 있다. 소상공인은 5인 이하 직원을 두는 경우가 일반적이며, 월급날이 돌아오는 것을 두려워한다. 매출 대비 , 나가야 할 돈이 늘어난다면, 소상공인은 자신에게 돌아갈 몫이 줄어들 수 있다.즉 소상공인은 혼자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에, 지역 상권 활성화를 통해 서로가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방법이 필요하다. 즉, 나도 살고 ,너도 살아가는 대안적 노력이 필요하며, 현재의 나의 모습을 돌아보아야 하는 이유다.



소상공인이 실패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소상공인에게 실패를 극복하는 방법,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변화의 시간이 필요하다. 책에는 멘토링, 컨설팅, 네트워킹 이 나오고 있는데,이 세가지 요소를 통해, 소상공인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찾고, 해결할 수 있다. 대체로 TV 에 소개하는 사업가 백종원은 멘토링, 컨설팅,네트워킹을 아우르고 있다.


책에서는 소상공인의 도전 다섯 가지가 소개되고 있다.SWOT 분석, 재무 분석, 마케팅 분석, 운영 분석, 고객 만족도 조사가 있다. 이 다섯가지 요소로 소상공인 스스로 살길을 찾을 수 있고, 포기하지 않는 사업 전략, 무너지지 않는 사업전략을 얻을 수 있으며, 새로운 성장의 기회를 모색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전쟁의 기원 2-1 - 폭포의 굉음 1947~1950 현대의 고전 16
브루스 커밍스 지음, 김범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77년 나는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 있었는데, 한 직원이 큰 손수레 가득 골판지 상잘를 싣고 가면서 내게 그 안에 든 것을 읽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것은 '242 기록군 Record Group'인 '노획 문서'였는데, 1950년 가을 미군이 북한을 점령했을 때 수집한 출판물의 극비 자료로 이뤄진 보물 창고 였다.갑자기 내 연구 주제가 내 앞에 펼쳐졌다. 이를테면 1940년대 발간된 『로동신문』 은 북한 바깥에서 이용할 수 있는 복사본이 없었지만, 이 문서에는 그 공식 기관지가 거의 다 들어 있었다. (-15-)

팽창주의자는 국경과 아시아 방향의 서쪽으로 그리고 중앙아메리카와 카리브해가 있는 남쪽으로 눈을 돌린다. 제국주의자는 유럽 방향의 동쪽이나 유럽에 대한 관심의 확장으로"극동"으로 시각을 돌린다. 팽창주의자는 유럽 방향의 동쪽이나 유럽에 대한 관심의 확장으로 '극동'으로 시각을 돌린다. 팽창주의자와 제국주의자는 멀리 떨어진 지역, 존헤이의 표현에 따르면 "극서 가 극동이 되는" 지역에서 만난다. (-61-)

현재 세계정세의 특징은 제 2차 세계대전의 결과로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중심에 힘이 집중돼 있다는 사실이다. 이 두 강대국은 갈등 관계를 형설하고 있는데,소련이 공세에 있으며 미국은 기본적을 수세에 놓여 있다. 개별 국가를 끌어올 수 있는 제 3의 중심은 현재 없으며, 그 결과 어떤 쪽으로도 기울지 않은 국가들은 소련의 공세에 굴북하거나, 방어를 위해 미국과 연합을 모색하는 정치적 분할이 이뤄지고 있다. (-105-)

일본 점령 기간과 한국전쟁 동안 월러비는 세균전을 자행한 전범인 이시이 시로 장군을 비롯해 일본 군국주의자들과 비밀리에 계속 접촉했다. 1950~1960년대 그는 냉전 기간 동안 미국 정보기관에 고용돼 있던 라인하르트 게렌을 비롯한 나치 장교들과 가까운 관계였다고 주장했다. (-171-)

1945년 10월 프레스턴 굿페로는 이승만의 귀국을 종용하고 단독정부 수립을 도왔지만, 북한의 금광 채굴권을 다시 얻으려고 시도한 뒤인 1946년 5월 24일 한국을 떠나도록 강요받았다. 이승만은 자신이 동양합동광업회사에 금광 채굴권을 약속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뒤인 1946년 3월 대표민주의원에 일시적으로 참여하지 말라는 종용을 받았다. 한국 언론들은 이승만이 굿페로가 거기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운산광산을 개발하려는 목적으로 설립된 기구다. 북한과 소련은 그때까지 굿페로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지만 이 사건 후 그의 존재를 확실히 인식한 것으로 생각한다. (-231-)

1948년 중반 군부는 그보다 많은 청년 당원을 간부로 채용했다.테러에서 안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947년 9월 부산지방검찰청 검사보로 미군정청에서 근무한 정수박은 우익 청년 단원 4명을 폭력 혐의로 기소했다. 정수박은 곧 암살했지만 이 사건의 살인죌 재판에 회보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300-)

제2차 세계대전 직후 국가기구가 무너지면서 모든 곳에서 정치적 공간이 생겨났다. 좌익은 중앙에서 주변부까지, 서울에서 가장 작은 향촌까지 모든 행정 단위에서 자신들의 조직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대부분 하향식 관료주의화는 자발적이고 활발한 정치활동의 폭을 축소시켰다. 치안 유지 기관은 기능을 회복하자 곧장 서울 인민위원회를 페지하면서 웃건 중앙에서 권력을 공고히 한 뒤 곧이어 국가기구의 하부에 있는 좌익을 척결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좌우 대립은 1945년에는 국가 단위에서, 1946년에는 지방 도와 군 단위에서, 1947년에는 면과 리 단위에서 일어났다. (-357-)

미국의 시각에서 볼 때 이승만 정권이 완벽한 성공을 거뒀다면 1950년 봄 남한 빨치산은 분명히 패배한 쪽이었다. 1년 전 유격대 활동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커지는 것처럼이나 보였다. 그러나 1949년 가을 대대적인 진압 작전이 시작되면서 수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고, 1950년 초 봄의 새싹이 다시 돋아났을 때 유격대는 할수 있으리라고 예상했던 대규모 작전을 더 이상 전개할 수 없는 것으로 보였다. (-420-)

이 무렵 조선공산당은 정권의 정책을 단순히 전달하는 장치이자 중앙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어디에나 있는 수많은 조직의 하나였다. 북한 정권이 조선민주당원에게 ,좀더 천천히가 아니라 좀더 활발히 활동하라고 촉구한 까닭은 경쟁적 정당제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과 반대되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었다. 1947년 노동당이 조선민주당 남포 지부를 비밀리에 조사한 결과 그들은 당원을 확대하거나 예상한 표를 획득하거나 더 많은 지부를 조직하려는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당의 "민주화"는 지주와 친일파를 제거한다는 뜻이었지 그들을 동원한다는 것이 아니었다. (-463-)

조선인민군 창군 1주년 기념일에 김일성은 처음 "수령"으로 불렸는데 , 최고 지도자라는 뜻의 호칭은 그때까지 스탈린에게 쓰였다. 그 호칭은 나중에 널리 쓰였다. 그것이 김일성에게 사용된 것은 우연히 아니었다. 남한이 신라의 후예로 자처한 것과 마찬가지로 북한은 자신을 고구려와 동일시했기 때문이다. 1950년 창군 2주념 기념일에는 김일성을 수령으로 강조하는 경향이 더욱 뚜렷했으며, 신문에서는 만주 유격대를 찬양하는 기사를 날마다 내보냈다. 이 호칭으로 김일성을 부르는 것은 소련 이론가의 보기에 민족주의적 이단이었다. 그들의 공식 견해는 스탈린이 세계혁명의 지도자고, 드미트로프,마오쩌둥, 김일성을 비롯한 나머지 인물은 "민족지도자"였다. (-527-)

브루스 커밍스 <한국전쟁의 기원 2-1>는 전두환 정권 때 금서였고, 42년간 국내에 번역되지 못했다. 결국에 21세기 들어서서, 『한국전쟁의 기원』 시리즈가 완역 될 수 있었으며, 미국인을 위해서 쓰여진 한국전쟁의 전쟁양상을 이해하고자 한다,

6.35 전쟁은 잔인하였고, 1945년 일본이 항복하면서, 새로운 변화가 발생하였다., 소련이 주축이었던 좌익 세력과 . 미군이 중심이었던 우익 세력이 서로 힘겨루기를 시행하였고, 1948년 일어난 4.3 사건은 두 이데올로기 힘겨루기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경우다.서북청년단은 좌익세력 색출에 힘썼다. 미군정 하에서, 남한은 우익 세력이 점령하였지만, 저변에 좌익세력이 깔려 있기 때문에 ,정리할 필요가 존재했다.1945년 이전에 존재감이 거의 없었던 이승만이 세상에 나타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다.

어떤 사건이 역사적 사건이 될 때,우연과 필연이 동시에 나타난다. 그 당시 에치슨은 아시아 전역에 이중적인 태도를 보여주었고, 한반도의 상황을 가볍게 생각했다.오직 한 사람만 한반도가 앞으로 어떻게 최악의 길로 빠지게 되는지 알았을 뿐이다. 6.25 전쟁이 초래한 미극의 서막이 열리게 된다.

소련이 좌익의 지배자였다면, 미국은 우익의 지배자다. 두 나라 사이에 남한과 북한이 존재했으며, 한반도 내에 북한 금채굴권에 대해서, 탐욕스러운 투자자가 나타났으며, 남한과 북한이 서로 대척저에 있거나,전쟁을 발생할 대, 그 목적을 덜성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김구가 암살되었고, 그 당시 무능하였던 할아버지 대통령 이승만 대통령이 탄생될 수 있었다. 친일세력이 존재하였던 당시,나치의 부역자나 다름 없었던 이들은 혼란스러운 한반도의 상황을 간과하였고, 경제적 이익으로 생각하였다. 나라가 분단 된 상태에서, 나라의 주권을 상실한 남한은 불확실한 상황, 불확실한 세계에서 벗어나고자 하였다,. 결국 이런 상황은 미국의 이익에 따라 움직였던 이승만 대통령이 국가의 수장이 되었으며,미국의 바지사장이나 다름 없었다. 한국 전쟁의 비극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충돌, 미국과 소련의 이익과 군사적 효용성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었으며,그 피해가 한반도 곳곳에 이데올로기적인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