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 상품 -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히트상품의 비밀
김방희 지음 / 토트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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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셔리란,불필요하면서도 필요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기본적인 필요가 충족되면 그 이상을 찾게 됩니다. 그 이상은 사실 실제 쓰임에 비하면 불필요한 것이지요. 이것이 럭셔리입니다. 사람마다 정도가 다르지만 누구나 추구하는 법입니다. 누군가에게는 보석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예술, 그림, 집,자동차, 악기일 수 있지요. 처음에는 불필요한 것이었지만 익숙해지면, 어느새 필요가 되고, 그러면 또다시 그 이상을 찾게 됩니다. 결국 인간은 영원히 , 끝없이 럭셔리를 추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럭셔리는 인간 본성의 한 부분일 것입니다. 어떤 이유로 지구상에 다이아몬드가 하나도 안 남았다고 합시다.그러면 우리는 다른 종류의 럭셔리 돌을 기어코 찾아내고야 말 것입니다. (-20-)



소셜미디어는 환상 혹은 환상의 세계가 초래하는 폐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공간이자 상품이다. 누구나 그 세계가 현실이 아니며 자신의 세계의 그곳을 비교하면 비참해지리라는 사실를 안다. 심지어 당장 그만두는 것이 낫다는 점도 잘 안다. 그런데도 대부분은 소셜미디어를 중단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86-)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힘든 경험이었다. 우리가 건너갈 때는 폭탄이 떨어지는 상황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사실 영국인이라면 누구에게나 덩케르크는 어렸을 때부터 들은 이야기일 것이다. 그것은 명백한 패배지만 그 패배 속에서 벌어진 대단한 일을 담은 이야기다. 누군가는 구원을 바라고 그게 실제로 이루어졌다. 어쩌면 성서 같은 이야기이면서도 원초적 사건의 연속이다. 이게 매력적인 이유는 개인의 영웅담이 아닌 집단의 영웅담이기 때문이다." (-183-)



자동차와 오토바이 같은 내연기관 차량이 등장하자 더 이상 자전거는 옛 영화를 누릴 수 없을 것 같았다. 기껏해야 자동차가 널리 보급되기 전 개발도상국 소비자가 대용으로 사는 탈것이다. 환상 상품과는 거리가 멀었다. 자전거는 밀레니엄에 접어들면서 인기가 급격히 되살아났다. 그것도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 환상 상품으로 떠올랐다. 세계에서 자전거의 인기가 가장 높은 나라인 네덜란드에서는 탈 것 전체 수입의 약 60퍼센트가 자전거일 정도다. (-244-)



환상 상품을 만들고 싶거나 이미 나온 상품을 환상 상품으로 등극시키고다 한다면 해당 상품의 카테고리를 제대로 골라야 한다 손수건보다는 포켓스퀘어, 휴지보다는 휴지통, 과일보다는 채소로 분류되도록 해야 한다. (-263-)



환상상품이라는 단어와 속담을 연결해 보았다. 환상 상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속담'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환상 상품은 최근에 일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예전부터 상업,무역업이 발달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1960년대 비싼 텔레비전은 환상 상품이었으며,마을에서 한 두대 정도 있으며, 그곳이 부잣집일 때가 있다.지금처럼 한 집에 한 대 이상 있는 텔레비전은 환상 상품이 아니었지만,그 당시에는 텔레비전 앞에 미닫이문이 있어서,함부러 열지 못했다. 결혼 혼수품으로 선호했던 나전칠기 장롱 또한 환상상품 중 하나였다.



인간이 환상상품에 열광하는 이유는 내면 속의 욕망에 있다. 어떤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인정받고 싶어한다. 예컨데, 최근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난 교통사고 참사에서,미디어,언론이 주목하고 있었던 것은 자동차 모델이었다.그 자동차가 제네시스였으며,국내에서 비싼 차종 중 하나다.물론 운전자의 신분, 급발진도, 이슈였지만, 자동차 모델에 가려지고 말았다.



이 책을 읽는 이유는 단순하다. 장사를 하는 사람은 환상 상품 설계를 잘해야 돈을 벌 수 있다. 스타벅스나 편의점에서, 한정판,이벤트 상품을 항상 비치해 놓은 이유도,환상 상품 전략 중 하나다. 소비자들이 어떤 물건을 고르고 그 물건이 환상 상품중 하나로 선정되면,너도나도, 그 물건을 사고 싶어한다. 명품,사치품,한정판으로 치부하고,비난할 때도 있지만, 비난하면서 사고 싶은 게 인간의 심리였다. 야구에서, 한국시리즈를 암표를 구해서라도 참석하고 싶은 이유도, 환상상품이라는 핵심가치에 있었다. 즉, 영세자영업자라도, 매장 안에, 딱 하나의 환상상품 하나 비치해 놓거나, 서비스를르만들어서 놓느다면, 사람은 모이고, 물건 판매가 급증할 수 있다. 예컨데, 식당에 어떤 연에인과 친분을 과시하거나, 사인을 코팅해서, 비치 해 놓은 이유도, 환상 상품,환상 서비스를 비치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얻을 수 있으며,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직접 사가도록 하는 전략,이벤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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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ttori Recipe Book 핫토리 레시피 북
핫토리영양전문학교 지음 / 다이고코리아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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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토리 영양전문학교에서 소개하는 일본 요리 35가지를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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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ttori Recipe Book 핫토리 레시피 북
핫토리영양전문학교 지음 / 다이고코리아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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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Hattori Recipe Book』에는 일본에서 70 여년간 요리를 가르쳐 온 핫토리 영양전문학교의 교재에서, 일본요리, 서양요리, 제과 제빵 등 35가지 레시피를 소개하고 있다. 일본에서, 핫토리영양전문학교는 40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하교 교명을 핫토리영양전문하교로 교명을 바꾼 시점이 1957년 이후다.



책의 앞 부분에는 일본 요리의 기초 다시를 내는 기본적인 방법, 혼합 조미료, 조리기까지, 음식 요리에 따라서, 이 세가지 방법을 알맞게 쓰여지고 있으며, 일본요리 조리법으로 조림 ,다키아와세, 후쿠메니, 니코로가시, 니쓰케, 니비타시, 이타메니 이리니, 아게니, 쓰쿠다니, 생선조림의 조림법이 있다. 여기에는 건조 식재료르 불리는 방법도 소개하고 있으며,말린 표고버섯, 고야 두부, 간표 등이 있으며,나의 요리법에 따라서,식재료에 따라 달리하게 된다. 표고버섯은 특히 치아가 부실한 가족들이 좋아하는 식재료이기 때문에, 제대로 먹기 위한 요령이 필요하며, 버섯이 모두 물에 잠길 정도의 넉넉한 물을 준비한다.



책에서 내 가 선택한 요리는 방어 무조림과 버섯 포타쥬 수프다. 이 두가지 레시피는 무우를 특히 좋아하는 가족이 있어서 , 방어 무조림을 선택하였으며, 버섯 귀신에게 딱 맞는 레시피 버섯 포타쥬 수프 가 있었다. 특히 수프를 직접 만들기 위해서는, 믹서기가 필요하다. 버섯을 먼저 볶은 뒤,양파를 적절하게 넣어서, 약불에 붂은 다음, 숨이 죽어 투명해진 다음, 소금을 약간 넣어서 섞어주면, 버섯을 씹는 느낌과 수프에서,느껴지는 감칠맛을 동시에 음미할 수 있으며, 가족 레시피 뿐만 아니라 손님에게 내놓을 수 있는 특별한 레시피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책에는 표고버섯, 만가닥버섯, 새송이버섯, 베이컨, 버터,양파 등이 있으며, , 새로운 식재료를 바꿔서 쓸 수 있다.



요리는 레시피에 따라서,시간이 오래 걸린다.그래서 결국 요리의 기본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하며, 손이 매우 바른 사람에게 특별한 레시피를 제공하고 있었다. 일본을 대표하는 요리 35가지 중 10가지만 완벽하게 익혀도, 어떤 손님이 와도,가족이 함께 하더라도,오붓한 시간,즐거운 식사를 제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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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악집성
하응백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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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수대엽(三數大葉)


낙동강상(落東江上) 에 선주범(仙舟泛) 하니 취적가성(吹笛歌聲)이 낙원풍(落遠風)이로다

객자정참문불락(客子停驂聞不樂) 은 창오산색(蒼梧山色) 이 모설중(暮雲中 )이로다.

지금에 정호룡비(鼎湖龍費) 를 못내 설워하노라. [작자 미상]

석양에 취흥을 겨워 나귀 등에 실렸더니

심리계산이 몽리(夢裡)에 지나거다

어디서 수상어적(數聲漁笛) 이 잠든 나를 깨우나니 [조준]

삭풍(朔風) 은 마무 끝에 불고 명월(明月) 은 눈 속에 찬데

만리변성(萬里邊城) 에 일장검(一長劍) 짚고 서서

긴 바람 큰 한소래에 거칠 것이 없에라 [김종서]

우레같이 소래난 임을 번개같이 번뜻 만나

비같이 오락가락 구름같이 헤어지니

흉중(胷中) 에 바람 같은 한숨이 안개 피듯 하여라 [작자 미상] (-50-)



길군악(行軍樂)



오늘도 하 심심하니 길군악이나 하여 보자.

아이업다 이년아 말 들어를 봐라

노나느니 나루 노나니루 느니 로느닌니루나니 나를니루 히히

나니나루 노나니나니나루 노오오 나니나루 우우노너

가소가소 자네 가소 자네 가다가 내 못 살랴

정방산성(正方山成) 북문(北門) 밖에 해 떨어지고 저 달이 돋아온다.

눈비 찬비 이슬 맞고 홀로 섯는 노송(老松) 남기 짝을 잃고서 제 홀로 살아나니

각씨는 이리로 하대서 내 못살랴.

어이업다 이년아 말들어를 봐라

조고마한 상좌(上佐) 중이 부도(釜刀) 채를 두루쳐 메고

만첩청산(萬疊靑山) 들어를 가서 기다란 고양남글 이리로 찍고 저리로 찍어서

제 호롤 찍어 나리느니 각씨네 이리로 하다가 내 못 살랴

어이업다 이년아 말 들어봐라.

어이업다 이년아 말듣거라

네라 한들 한궁녀(漢宮女) 며 매라 한들 비군자(非君子) 랴.

남의 딸이 너뿐이며 남의 아들이 나뿐이랴

죽기 살기는 노늘날로만 결단(決斷)을 하자

어이업다 이년아 말 들어를 봐라. (-97-)



<수심가> 는 서도의 대표적인 소리이다. 내용은 인생의 허무함을 노래하고 사랑하는 님을 그리워하는 것이 주를 이룬다.<수심가>의 유래에 대해서는 서북인의 차별에서 비롯되었다는 설과 병자호란 때의 기생 부용이 지었다는 설이 있으나 이는 잘못된 것으로 보이다. 가사를 살펴 보면 여기저기 시에서 차용한 흔적이 두서없이 보이는 점, 그리고 한문 문투의 혼합적 사용이 보이는 점 등으로 보아, 오랜 세월에 걸쳐 평양 지방을 중심으로 기방(妓房) 등에서 구전되면서,소리하는 자에 따라 변형되고 증편에 증편을 거듭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208-)



배치기

어영도 칠산을 다 쳐다 먹고

연평 바다로 돈실러 갑시다.

어허어 어허어어 어허으어 어허으어 어어허어 어화요

돈실러 간다 돈 실러 간다

연평바다로 돈 실러 갑세다

간곳마다 치는 북은

우리 배가 다 치고 났단다

이물 돛댄는 사리화 피고

고물 돛대는 만장기 띄었다.

연평 장군님 귀히 보소

우리 배불러서 도장원 주시오.

오동추야 달 밝은 밤에

새우젓 잡기가 재미가 난다

정월부터 치는 북은

오눨 파송을 내 눌러 쳤단다

연평바다에 널린 조기

양주만 남기고 다 잡아 드려라.

암매 숫매 맞 마춰 놓고

여드레 바다에 두둥실 났단다.

에 -헤이이 에-헤이이 에-헤이에 -헤이에 에이 에헤이 어하요. (-300-)



금드렁 타령


놀구나 싶은 맘 태산과 같은데

원수의 금전이 허락질 않네

금드렁 금드렁

세월이 가기는 바람결 같구요.

인생이 늙기는 흐르는 물 같네

간다네 가누나 유정(有精) 님 버리고

동설령(東雪領) 고개로 나 넘어간다

바람에 불리는 갈대와 같이도

변하기 쉬운 건 사람의 맘일세

못 살것 같더라 죽을 것 같더라

유정님 떨어져 나 못 살갔네

저 달이 밝기는 내 맘과 같아도

속사정 펴 보긴 샘물과 같다네

저산에 붙은 불 일꾼이 껄지라두

내 가슴 타는 불 꺼내지 못하네

비야 뭐 올래면 소낙비 좋지

실타래 느려서 내 속을 얽나요.

입쌀에 좁쌀은 독독이 있어도

재미쌀 없이는 나는 못 살갔네

일상에 놀기는 풍악이 좋은데

절구통 춤에도 세월만 간다네

동산에 달 뜬 건 가득 차 메워도

덧 없는 세월엔 백발만 성성

당신의 사랑이 물밀 듯 깊어주

내 가슴 쓰린 건 어제가 오늘. (-332-)



이렇게 세 집서 하나씩 낳기는 낳았는데 신수가 불행턴지 한 집은 딸을 낳고 도 한 집은 계집애를 낳고 또 한 집은 여자를 낳았읍네다 이 세 아기의 이름을 짓되 어떻게 짓는고 하니 이 정승의 딸 이름은 태몽 꿈꿀 적에 달 세개를 받아 보았다는 꿈을 꾸고 그 애를 낳았다고 해서 꿈을 따라서 세월네라고 이름을 짓고 김 정승의 딸 이름은 꿈에 달 네개를 받아 보았다고 해서 네월네라고 이름을 짓고 최정승네 딸의 이름은 백발노인한테 달비 한쌍 받아서 배배 틀어 치마 폭에다 썼다는 꿈을 꾸고 애를 낳았다고 배뱅이라고 이름을 지엇습니다 (-456-)



님아 믿을 것이냐 못 믿을 건 님이로구나

꿈에라도 보인단 말은 그도 역시 못 믿을까

꿈아 무정한 꿈아 날과 무슨 원수길래

오는 님을 노내느냐 가는 님을 붙들어 놓고

잠든 나를 깨워 주지 지금쯤은 잠을 자느냐

다른 처자 뉘였느냐 모두 다 꿈에 그쳤구나. (-523-)



평양가 (平壤歌)


갈까 보다 가리갈까 보다

임을 따라 임과 둘이 갈까 보다

잦은 밥을 다 못 먹고

임을 따라 임과 둘이 갈까 보다

임을 따라 임과 둘이 갈까 보다

부모 동생 다 이별하고

임을 따라 임과 둘이 갈까 보다

불붙는다 불이 불붙는다.

평양성내 불이 불붙는다.

월선(月仙) 이 집에 행여 불 갈세라

월선이 집에 불이 불붙으면

육방관속(六房官屬) 이 제가 제 알리라

가세 가세 노리 놀러 가세

월선이 나와 소매를 잡고

가세 가세 어서 들어들 가세

놓소 놓소 노리놓소그려

직령(直領) 소매 노리놓소그려

떨어진다 떨어진다 떨어진다 떨어진다.

직령(稙領) 소매 동이 동떨어진다.

상침(上針) 중침9中針) 다 골라 내어

세모히 당사(唐絲) 로 가리감춰 줌세. (-622-)



까투리타령


까투리 한 마리 부두둥 허니 매방울이 떨렁

우여우여 허허 까투리 사냥을 나간다.

전라도라 지리산으로 꿩 사냥을 나간다.

지리산을 넘어 무등산을 지나 금성산을 당도허니

충청도라 계룡산으로 꿩 사냥을 나간다.

충청도를 올라 계룡산을 넘어 경상도 가야산 당도허니

경기도라 삼각산으로 꿩 사냥을 나간다.

걍기도를 올라 삼각산을 넘어 광주산성을 당도허니

경상도라 태백산으로 꿩 사냥을 나간다

경상도르 내려 문경을 넘어 청량산 보현산 당도허니

가원도 금강산으로 까투리 사냥을 나간다.

옫재산에 올라 금강산을 복 태백사에 당도하니

황해도 구월산으로 까투리 사냥을 나간다

구월산에 올라 금강산을 보고 태백산에 당도하니

황해도 구월산ㄹ으로 까투리 사냥을 나간다

구월산에 오라 달마산을 보고 불타산에 당도하니

평안도 묘향산으로 까투리 사냥을 나간다.

묘향산에 오라 천마산을 보고 평양 모란봉에 당도하니

함경도라 백두산으로 까투리 사냥을 나간다.

백두산에 올라 용왕담을 보고 보래산성에 당도하니. (-754-)



날 오라네


날 오라네 날오란메 건넌 말 벗님이 날 오라네

오라는 데는 다 뜨면 가고 동네나 술집은 낮에나 가지

청삽사리 짖지마라 낯익은 벗님이 찾아갔다.

님을 찾어 내 왔누라 그리운 벗님이 찾아왔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정 많이 든 님아 날 좀 보소

그립던 님 만나러 왔소 그대 얼굴을 보러 왔소

내 가슴에 깊이 든 병 그대로 인하여 병이 들어

골수에 깊이 드니 그대 아니면 고칠 수 없네. (-844-)



그 자리에 엎드러

[아니리]

이렇듯 목욕을 하고 수변에 나와 심봉사 옷을 입을 양으로

아무리 찾아보아도 의복이 없거날,

아, 내가 분명 여기다 지팽이로 누러 놨는디 아디로 갔을가?

바람에 날라 갔는가.

허허, 거 누가 나하고 농할라고 실쩍 감춘 것 아니여?

아,이리 내 놔.내 의복 내놔.

아무리 찾고 헤메어도 적막강산에 대답이 없거날

그제야 도둑 맞은 줄 짐작하고

[창]

그 자리에 엎드러져서

허허 이제는 꼭 죽었네 허허 이제는 영 죽었네

불꽃같은 이 더위에 옷을 훨씬 벗었으니 디여서도 죽겠구나

알몸이 되었으니 굶어서도 꼭 죽었네

백수풍신(白首風神) 늙은 몸이 황성 길을 어이 갈이거나

이 무지하 도적놈들아 내 의복 가져오너라.

머고 입고 남은 허다헌 부자집 다 버리고 내 것을 가져가니

그게 차마 될 말이냐

봉사 것 가져가면 열두 대 줄 봉사 난단다.

옷 가져 오너라 나 어쩌다 훨씬 벗었오.

귀머거리 앉인뱅이 날보다는 상팔자라

일월이 밝았으나 동서분별9東西分別)을 내 못하니 살어 있는 내 팔자야

모진 목숨 죽지도 못 허고 내가 이 지경이 웬일이냐. (-921-)



<적벽부> 는 원래 송나라의 유명한 시인인 소동파(蘇東坡,1036~1101) 가 1082년 귀양을 가서 쓴<적벽부>에서 유래한다. 원래의 <적벽부>(이를 '후적벽부'라 한다) 가 있는데, 한문 원본 그대로만 토만 달아서 송서(誦書) 로 부르는 경우(경기 송서) 도 있고,<적벽부> 의 원문을 우리말 속으로 재성하여 가사를 새롭게 만든 서도 송서도 있다. 누가 우리말 식으로 만들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서도 송서로는 오래전부터 붕여왔던 듯하다.


내용은 소동파가 벗(양세창) 과 술잔을 기울이며 뱃놀이를 하면서 조조의 대군과 오나라의 대군이 일전을 겨룬 적벽대전을 회상하고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생의 허무함을 노래하는 것이다. 1972년 발매된 김정연과 오복녀의 『서도소리대전집』에서도 <적벽부>는 송서로 분류하고 있다. 수심가 자락으로 끝을 맺는다.<적벽부> 는 묵계월, 유창 등에 의해 경기 송서로도 전승되었는데 ,가사는 소동파의 <적벽부>원문에 토만 단 것으로 서도 송서와는 조금 다르다. (-1039-)



문화평론가 하응백 작가의 『창악집성 昌樂集成』 이다. 가곡, 가사, 시조, 서도민요, 서도좌창, 서도입창, 서도시창, 경기민요, 경기잡가, 경기입창, 경기재담소리, 남도민요, 충청도민요, 제주도민요, 단가, 가야금병창, 경상도민요, 가원도민요, 송서,불가까지 아우르고 있으며, 가난과 아픔, 소시민의 서글픔,그이룸,허무함을 소리로서 , 구전으로 전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국악이 익숙하지 않았던 독자들에게 국악이 어떤 의미를 품고 잇는지 알게 해주고 있었다. 오래전 영화 서편제를 소환하느 책이기도 하다. 인생에 대해서, 말로 표현하기 힘들 대도 있다. 그것을 한풀이로, 민요나 가사로 대신하곤 한다. 지금은 사라진 자연의 멋을 가사와 소리로 접근할 수 있다. 사진 속 기생의 이미지는 존재하지 않지만, 그들과 함께 살아왔던 조선이의 생활사은 상상해 볼 수 있다. 문학,소리, 음악은 장르는 다르더라도,우리의 삶과 일치하고 있다. 삷ㅁ이 노래가 되고 ,삶니 가사가 되고,삶이 시조가 되었다. 지역마다 가사와 시조, 민요가 다른 이유다. 한국인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창악집성』을 필히 읽어야 하는 이유다. 



풍류에 대해서, 국악전문가 혹은 국악 전공예정자에게 국막,민요한자락에 대해서,정확한 소리를 전해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소리(昌) 와 음악(樂) 을 집성(集成) 하여서, 우리의 깊이 우러나오는 기쁨과 슬픔,희노애락에 대해서, 우리의 정서를 이해하고,전근대의 시와 시조, 한시, 현대시에 숨겨진 정서를 이해하는데 매우 도움이 되고 있었다. 우리의 정서라는 것을 글이 아닌 소리로 느껴야 한다.그것이 매우 어렵고 추상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다.이런 경우,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하나하나 짚어 나간다면, 음악이 추구하는 느낌 뿐만 아니라, 맛과 멋을 느낄 수 있으며,기록되어 있지 않아서,구전으로 흘러운 소리들,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되짚어 나감으로서,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서, 느낌을 다시 체크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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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문명의 지도 - 세계의 질서를 만든 4000년 법의 역사 Philos 시리즈 13
퍼난다 피리 지음, 이영호 옮김 / arte(아르테)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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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된 법은 지금의 이라크 지역인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에 있는 비옥한 땅인 메소포타미아에서 만들어졌다. 기원전 3000년 우르의 왕은 백성들에게 정의를 약속하는 선언을 하고, 서기관들에게 점토판에 법전을 기록하라고 명령했다. 몇 세기 후 중국 중부 지역의 호전적인 지도자들은 대나무 조각과 청동 그릇에 표의 문자를 새겼는데, 여기에응 범죄와 처벌에 대한 긴 목록이 적혀 있었다. (-17-)



초기의 법은 단순히 도시 생활을 규제하고 개별 청구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용적인 도구가 아니었다. 재판관과 조정자는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밥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또한 왕들은 관리들에게 세금을 올리고 범죄를 진압하고 바람직하지 않은 사람들을 거리에서 쫓아낼 방법을 제공하려는 의도도 없었다. 법이 있어야 하는 이들은 정의를 위한 자원으로 그리고 자신들을 억압하려고 하는 모든 사람들을 상대로 인용할 수 있는 기준으로 법이 필요했던 사람들이며, 이것이 바로 함무라비가 그들에게 준다고 주장한 것이었다. (-64-)



기원전 1세기 말에 또 다른 집단인 웅변가들이 로마의 법적 절차에 관여했다. 포럼에서 열린 많은 회의와 집회는 가장 설득력 있는 연설가들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원로원의 모임과 마찬가지로 변호할 기회를 제공했다. 어떤 소송 당사자들은 친구와 친척 또는 존경받는 법학자들에게 자신의 법적 사례를 제시하도록 요청했고, 웅변술이 발전함에 따라 수사학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이런 역할을 맡았다. 그들은 법을 이해하고,사용된 방식문과 증명되어야 하는 사실에 대해 길고 기술적인 논쟁에 참여해야 했다. 다만 그 사실은 승소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제시되어야 했고,'형평'과 정의의 문제가 심판인의 결정에 근본적일 수도 있었다. 이런 사항들은 분명히 중대한 사건이나 부패 혐의와 관련된 것이었다. (-143-)



앨프레드의 법에 따르면, 누군가가 창을 어깨에 매고 걸어가다가 부주의하게 방향을 틀어 지나가는 사람을 다치게 했을 경우 차의 각도에 따라 조금씩 다른 배상을 해야 한다. 법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창과 관련된 사고에만, 그리고 창을 어깨에 메고 다니는 경우에만 적용되는 이 조항은 실제 사례를 반영한 것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이 조항은 우발적인 부상과 창의 각도처럼 평범한 요소가 의미하는 부주의의 정도에 대한 중요한 원칙을 나타내기 때문에 법에 포함됐을 것이다. (-194-)



1896년 ,카이로를 여행하던 스코틀랜드 여성 두 명이 희귀한 히브리어 문서를 우연히 발견했는데, 상인은 그 문서가 게니자(Geniza) 에서 왔다고 말했다. 게니자는 오래된 문서를 보관하던 중세 회당의 창고였다. (회중은 하느님의 이름이 새겨진 어떤 것도 파괴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중국의 무덤 문서나 둔황의 두루마리 문서와 마찬가지로 이 역시 법률 문서였으며, 대체로 11~12 세기의 것이었다. (-257-)



판사와 조정자가 법정에서 일관된 규칙을 적용하고자 하고 사람들이 권위 있는 결정을 받아들이면서, 조정과 타협의 오래된 체계의 모든 층위에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법은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비인격적인 기구를 제공하기도 했지만, 다른 사람, 심지어 더 높은 지위의 사람들에게도 도전할 수 있는 언어 역시 제공했다. 법정에서 도시 집정관은 자작의 주장에 저항할 수 있고,자작은 대주교의 주장에 대응할 수 있으며, 대주교는 집정관들에게 도전할 수 있고, 그들 모두가 왕에게 대항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들은 멀리 떨어져 있고 더 강력한 사람들에 대한 논쟁에서 법을 인용할 수 있었다. (-315-)



고문은 진나라가 법전을 초안한 기원전 3세기에 이미 확립돼 있었다. 중국 관리들이 잘못된 유죄판결의 결과에 대해 기독교인 관리들과 비슷한 우려를 하고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타락한 지상 재판관들은 영적 재판관들이 탄원을 듣고 증거를 취하고 재판하는 저승에서 신의 응징을 예상할 수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중국 현령(지현) 들은 자백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361-)



20세기 동안 이 사상은 매우 지배적으로 되어 전 세계의 새로운 국가와 탈식민주의 체제가 유럽의 법 모델로 눈을 돌렸다. 식민지화되지 않은 국가들조차도 새로운 경제 및 상업 질서에 더 쉽게 참여할 수 있기를 희망하며 새로운 법 제도의 기초로 『프랑스 민법』을 선택했다. 라틴 아메리카의 탈식민 국가들은 이미 유럽 모델을 채택했다. 브라질의 법은 주로 포르투갈에서 유래했고, 이 법은 아르헨티나에 영향을 미쳤다. 1855년 칠레 민법은 나폴레옹 법전과 스페인의 『칠부전서』, 교회법의 요소에 기초했다. 19세기 일본의 메이지 헌법은 독일(프로이센) 모델을 기반으로 했고, 1932년에 수립된 태국의 입헌군주정은 힌두교 다르마샤스트라에서 파생된 법을 대륙법 원칙에 기초한 법전으로 대체했다. (-427-)



국제 상거래를 촉진하기 위해 만들어진 규칙은 고대의 선례를 가지고 있다. 2000여 년전 실크로드를 따라 물건을 실어 나르던 상인들은 기장하고 기록하기 위해 문자 체계를 발달시켰다. 상인들은 먼 나라에서 온 무역상들과 복잡한 거래를 할 때 이전에 동의한 방식으로 상품이 배달되고, 돈이 계산되고, 손실이 배분될 것라는 확신이 필요했다. 그들이 개발한 규칙과 도구는 초기 성문법 일부의 토대를 마련했다. 중세에 아랍 상인들은 인도에서 알렉산드리아로 향신료를 가져왔고, 아프리카 캐러밴들은 사하라사막을 가로지러 튀니지로 금을 운반했고, 몽골의 낙타를 모는 사람들은 크림반도의 항구에서 중국의 비단과 도자기를 하역했고, 그곳에서 선박들은 비단과 도자기를 북아프리카와 남부 유럽으로 가져갔다. (-491-)



법은 일단 명시적으로 만들어지면 사람들이 부패와 학대에 반대하기 위해 인용하고, 의존하며,사용할 수 있는 규칙이다. 함무라비는 누구든지 자기 화강암에 새겨진 법을 읽고 정의를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또한 이런 규칙을 무시하는 후계자에게 내려질 끔찍한 저주를 묘사했다. 그는 법의 지배를 생생하게 묘사했다. 그리고 법률 전문가들은 거의 항상 정치권력에 맞설 수 있었다. 인도의 브라만들은 왕이 장당성이 없다고 선언하기 위해 법을 언급할 정도로 강력한 다르마의 비전을 지지했다. 주에 교황은 유럽 왕의 관할권를 규정할 권한을 주장했다. 이슬람 세계에서는 카디가 강력한 칼리프의 후원을 받았지만, 무프티는 우월한 권위를 주장하며 자신들을 분리했다. (-526-)



문유석 작가의 소설 『미스함무라비』 가 있다. 무론 그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 도 JTBC를 통해 16부작 드라마로 방영되었다. 최근 들어서 법정 드라마,법정 소설이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현실 속의 법과, 드라마 속의 법이 다르게 흘러가기 때문이며, 부정의한 판사,검사가 즐비한 현실과 달리, 드라마 속 판사와 검사는 정의의 편에 서서 자신의 카리스마를 어필하고 있다.



뜬금없이 드라마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책 『법, 문명의 지도』을 소개하기 위해서다.고대 고대 바빌로니아 제1왕조의 제6대 왕 함무라비왕(재위 BC 1792∼BC 1750)이 있었다. 그가 기원전 1750년 성문법으로 만든 법이 함무라비 법전이여, 우리에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로 잘 알려져 있었다. 자신이 지은 죗값을 그대로 돌려주라는 기본 성문법의 원칙을 따르고 있으며, 21세기 지금 현재, 가해자에게 유리하고, 피해자에게 불리한 법적용에 대한 반발 심리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읽게 되면, 초기의 법이 만들어질 때, 그 법이 지금처럼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메소포타미아 문명에 처음 법이 만들어졌고, 점토판에 새겨지게 된다. 고대 메소포티미아가 법을 만들면서,사회적 기틀을 만들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다.



이후 법은 새로운 규칙을 적용하였고, 로마법으로 이어졌다. 집정관이 지배하던 로마에서, 법은 규칙, 처벌, 보상의 개념과 함께 한 가지 기능도 존재했다. 사회적 지위가 낮은 정치권력이 높은 지위를 가진 정치권력에 저항할 수 있는 기능이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법의 대원칙이 이 당시에 만들어지게 된다. 물론 현재에도,이런 대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나라가 있으니,북한과 같은 독재주의 국가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왕이 지배하는 나라에서,왕이 나라의 법을 준수하지 않는 나라도 있었다.



법은 관습법에서, 처벌과 징벌,보상을 위한 법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후 법은 체게적으로 만들어질수 있었고, 중국의 당나라 시대에 만들어진 법에 대한 주석서 『당률소의』가 현존하고 있기 때문에,당나라의 법이 이후 대명률에 어떤 영향을 끼쳣는지 법의 역사를 동시에 이해할 수 있었다. 법은 처벌을 위한 법도 존재하지만,정치 권력을 견제하기 위한 법률도 존재한다.물론 국가의 질서와 사회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법이 만들어졌고, 시행되었다. 조선시대 법이 대명륭에 따라서,시행되었고, 죄의 형평에 따라서, 참수형, 유배형에 처해졌으며, 그 정도에 맞게 법이 적용되었다. 



이렇게 법은 우리 곁에 항상 존재하고,실크로드로 무역을 해왔던 이슬람상인에게 법은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한 확실한 도구였으며,힘이 될 수 있었다.거래의 신뢰를 위해서,법을 통해 거래의 규칙을 정하게 된다. 법이 상인에게는 보험의 특성을 가질 수 있었다. 이슬람법에 코란의 경전을 기초로 한 법이 만들어졌으며,상법,무역법이 발달할 수 있었던 이유다. 전근대로 들어오면서, 낡은 법 체계를 유지하였던 나라들이 서서히 다른 선진나라들의 법을 수영하고, 참고하였다.일본의 메이지 헌법과 한국의 유신헌법이 독일츼 프로이센 법을 모델로 만들어진 것도 여기에 있으며, 전세계의 무역량이 급증하고, 인구가 증가하면서,법체계도 그에 발 맞춰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들은 무시하기 힘든 상황이며, 앞으로도, 법은 기술의 진보에 따라서, 국가의 정치 제도와 국민의 수준에 따라서, 환경의 번화,조건의 변화에 따라 바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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