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녕가
이영희 지음 / 델피노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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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어둠 속에서 무명댁과 채단이 반가이 인사를 했다. 이쪽 끝과 저쪽 끝에 숨어서 보던 아이들 중 화녕은 불에 탄 얼굴의 무명댁을 보고 놀랐다. 인서와 인예는 인두 자국이 남은 채단의 얼굴을 보면서 기겁을 했다. 하나로만 볼 때는 그저 익숙했던 흉터가 두 개로 합쳐지니 기괴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세 아이는 모두 제 입을 막았다. (-33-)



"워메, 화냥년 행차시구멍."

화녕을 조카처럼 예뻐했던 장신구점 영식 아재의 음성이 제일 먼저 날아들었다.

"오늘도 모다 왜년처럼 둘러 있었데이."

다음으로 들려온 것은 가래침을 밷어내는 소리였다. (-37-)



재후가 얼마나 깊숙이 품고 있었는지 종이가 너덜너덜하였다.,

이제 너의 문제는 어찌 사느냐가 아니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너의 문제로구나.

살거라., 어찌해서든 살아남거라. 니가 아비의 뒤를 따른다면 아비의 수고는 물거품이 될 것이다. 하지만 니가 살아남는다면 아비의 수고는 내 조국의 광명을 위한 마중물이 될 것임을 기억해라. 또한 너는 채단을 책임져야 할 유일한 사람임도 기억하거라. 그리고 명심하거라. 너의 재주는 바로 이 때를 위함이다. (-87-)



스바로는 광명회를 인가해 주면서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인서를 포함한 양반가 도령이 셋, 노래 파는 계집이 하나,백정의 아들이 한 놈, 요릿집의 예기가 한 년, 거기에 제 아들인 킨타로까지, 이런 조합의 모임이 자신에게 무슨 위협이 될까 싶어 신경도 쓰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보니 그게 아닌 것 같다.

제가 갖고 싶었던 계집의 아들, 그 계집의 얼굴을 꼭 빼닮은 아들.

그리고 현재 제가 갖고 싶은 계집, 그 옛날 계집의 목소리와 꼭 흡사한 계집.

진주부에서 제일가는 명문 양반의 아들,노래를 팔고 사는 천한 계집.

그런데 서로에게로 건너가는 둘의 웃음이 예사롭지가 않다.설마? (-139-)



채단이 너울너울 떠나고 난 후 화녕은 바로 일상으로 복귀를 하였다. 서린의 걱정 어린 시선을 받으며 유치원 일도 곧장 하였고, 인서와 현성의 걱정을 들으면서도 노래극 준비도 충실히 하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구는 화녕이 오히려 모두가 걱정스러웠다. (-209-)



소설 『화녕가』은 1940년대 ,경남 진주를 역사적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일제 치하에 헌병대 스바로가 있었다. 스바루에게는 한 계집에게 마음을 빼앗긴 아들, 킨타로가 함께 한다.진주에 는 1923년 형평사 운동(衡平社運動)이 있었다. 천민 신분인 백정이 신분해방을 위해 벌였던 조직이자 운동이다. 조선 말엽, 일제 하에 일어난, 사회적 운동은 진주를 뜨겁게 하였으며, 양반과 상놈의 신분 구별이 조금씩 깨지던 시기다. 소설 『화녕가』 은 주인공이 불 화(火) 를 쓰고 있는 류화녕이 주인공이며, 형평사 운동(衡平社運動)이 일어난 지 20년이 지난 1944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진주의 사회적 운동, 헌병대장과 헌병대장 밑에 있었던 아들 킨타로는 조선의 이름을 가지기로 하였으며, 화녕과 여러 조선인과 함께 모임을 가지고 ,진주부에서 제일가는 명문 양반 남초서댁 아들과 함께 광명회를 조직하였으며, 아빠 스바루는 그 모임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으로, 광명회르 인가해 주었다..



소설 『화녕가』에서 실세였던 스바루는 자신의 야욕과 한 여인에 대한 사랑의 추억이 있었기에, 화녕의 행동을 긍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화녕에겐 스바루와 다른 길을 걸어갔다.비록 화냥년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욕먹고 노래를 불렀던 화녕이지만, 나라를 구하고자하는 마음의 뜨거운 불꽃은 꺼트릴 수 없었다. 진주에는 남초시 양반이 있었고, 멸시와 모략을 견뎌애 했던 화녕은 스바루의 아들 현성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조직을 꾸려 나간다. 이외에 소설에는 인예, 인서, 순행이 나오고 있으며, 일제강점기 식민지통치에 반대하는 불량 조선인, 불령선인으로 찍혔던 화녕의 아버지가 있었다. 그런 아버지의 아픔을 뒤로하고, 화녕은 아버지의 뜻을 받들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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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10배, 재택창업으로 퇴사합니다 - 고졸 흙수저의 억대연봉 성공스토리!
이승주 지음 / 생각수레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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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원의 재산을 가진 할아버지가 사기꾼에게 돈을 받지 못했다면서 나에게 하소연하신 적이 있다.할아버지는 책 5권 분량의 고소장을 보여주셨다. 변호사 뺨치는 법 전문가이신데, 고소를 해서 이겨도 돈을 못 받고 계시다고 했다. 사기꾼은 돈이 없기 때문이다. (-31-)



사실 나는 사람들을 많이 경계했다. 그래서 교육을 하더라도 가족에게만 했다.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가족에게만 교육으 했는데 내가 고생해서 얻은 노하우를 남들에게 알려주기가 싫었던 것이다. 교육을 하더라도 일시적인 방법 만을 가르쳤다. (-51-)



나는 월 10만원으로 시작해서 월 1,000만 원을 찍기까지 너무 힘들었다. 고시원에서 친구도 만나지 않고 보름만 살아보면 알 것이다. 고시원에서 공부할 때를 생각한다면 정말 끔찍하다. (-57-)



가격 경쟁이 아닌 다른 것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 가격 경쟁은 모두가 멸망하는 지름길이다. 나는 마케팅을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오랫동안 장사를 하다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히 진성고객이 쌓이기 마련이다. (-90-)



나는 족히 세 사람 몫을 하던 직원이었다.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충직한 직원이 있다면 나는 월급을 1,000만 원씩도 줄 수 있다. 정말 그만큼 열심히 일했다. 능력과 경험은 리더가 만들어주는 것이다. 직원이 무능력하다고 욕하는 사장이 잘못된 것이다. 무능력한 직원을 뽑은 것도 사장이고, 무능력한 직원을 키워주지 못한 것도 사장이기 때문이다. (-170-)



작가 이승주는 재택창업 컨설턴트이며,'자수성가공부방(자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퇴근 후 하루 3시간 투자로 돈 버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으며, 부자되는 법, 창업, 투자 노하우를 예비창업자에게 전수하고 있다.



20살, 일찍 사업에 뛰어들었다. 고시원에서 일하면서, 공부하고, 회사 다니고, 창업 준비를 했다. 퇴근 후 ,밤에 돈을 벌었고,회사에 다시  출근하였다.고시원에 있으면서, 월 10만원을 벌었다. 절제가 몸에 배여 있었다.가난한 장의사 집에서 태어나, 아버지 없는 아들 소리를 들으며 성장하였다. 열등감, 트라우마,대인기피증에 시달렸으며,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강한 동기부여로 사업을 시작하였다.

중고나라는 찹업 성공의 실험장이었다. KT 유심칩을 구해다가, 중고나라 고객에게 팔았다. 재고가 없었고, 단종된 제품을 비싼 가격에 팔렸던 제품, KT본사에서, 재고로 남아 있었던 제품을 거의 공짜에 가깝게 사왔다.그리고 다시 팔아서 이문을 넘겼으며, 한달 400만원의 부수입을 얻었다.



시행착오,동기부여, 사기, 대인기피증, 자신이 살아오면서 겪었던 여러가지 상황들이 있었다. 포기하지 않았고, 생고생을 했다. 돈을 벌면서 고시원에서 생활했던 이유는 고시원 생활을 유지함으로서 생활비가 적게 들었기 때문이다.절제가 몸에 배여 있었고, 인내심으로 스스로 현재 상황을 극복한다. 포기하지 않았고, 넘어지지 않는 방법을 스스로 찾았다. 결국 저자가 월 1000만원의 순수익을 얻을 수 있었던 건,남들이 가지지 않은 정보를 기반으로 수익을 얻었고, 그것을 자신만의 사업 성공 경험으로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성공 경험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실패와 실수로 벌었던 돈을 날린 적도 있었다.그럼에도 끊임없이 실행하였고, 포기하지 않았다. 넘어지지 않는 길을 스스로 걸었으며, 자신만의 사업 노하우를 기반으로 ,재택창업 컨설턴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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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크면 지능이 높다고? - 통계로 보는 뻔뻔(FunFun)한 옛날 뉴스
김창훈 지음 / 갈라북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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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에도 복어로 인한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1923년 12월 한달 동안 경성에서만 복어를 먹고 생명을 잃은 사람이 12명이나 되었습니다. 1950~60년대에도 매년 20~30명이 복어 중독으로 사망했습니다. 2010년에는 탤런트 현석 씨가 복어를 먹고 중태에 빠지면서 복어에 대한 경각심이 다시 높아졌던 일화도 있습니다. (-40-)



요즘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예전에는 아기를 길거리에 버리는 사건이 종종 발생했습니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곤 하지만 참 씁쓸한 세태였습니다. 이렇게 버려진 아이들은 해외로 입양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우리나라는 1953년 전쟁 직후부터 2021년까지 총 16만 9,000여 명을 해외로 입양돼 한때'아동 수출국 세계 3위'라는 오명을 갖기도 했습니다. (-94-)



1948년 서울시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서울에서 최고 연봉을 받는 직업은 바로 유흥가에서 일하는 웨이트리스 즉, '여급'이었습니다. 월급 없이 팁으로 생활하던 당시 여급의 하루 평균은 2,000원, 월 6만원을 벌었습니다. (-97-)



1969년 기록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사용하고 있느 컴퓨터는 과학기술처, 한국은행, 보사부, 육군본부, 금성사 등 5개 기관에 사용중인 8대밖에 없엇습니다. 이는 미국에 컴퓨터가 보급된 게 5,000대 ,일본 2,000대에 비해서 미미한 숫자였습니다. 8대 중에서도 작동하는 컴퓨터는 5대에 불과했습니다. (-118-)



1922년에 1,700만 조선사람들이 일 년 동안 먹은 가축 수요가 총 41만 두였습니다. 그중에 소는 27만 5,800두였고, 돼지는 13만 926두, 말은 268두를 도축했씁니다. 특이한 사실은 당시에는 돼지고기보다 소고기가 더 식탁에 자주 올라왔다는 것입니다. (-129-)



경성시내 제일 부자는 일본인 나카무라 사이코라는 사람인데 그의 재산은 1,000만 원 이상이었습니다.

조선인 제일 부자는 '친일파'민영휘이며, 그의 재산 규모는 당시 왕실 재산과 맞먹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 부정부패와 친일의 대가로 모은 재산이 당시 기준 6,000만원에 달할 정도로 민영휘는 조선 역사상 최악의 인물 중에 한사람으로 평가받는 인물입니다. (-136-)



일부다처제는 불법입니다.조선시대 태조이 중혼을 금하는 법을 시행하면서 일부일처제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선 초기만 하더라도 일부 양반가문들 사이에 일부다처제가 많았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처첩제라는 표현이 맞습니다. 지역에 따라 중혼은 암암리에 행해지기도 했습니다. (-180-)



아르바이트로 벌어들인 월수입은 입주식 가정 교사가 제일 많았습니다.가정교사는 숙식에 제공된 가운데 월평균 1만~2만 5,000원 정도의 수입을 올렸습니다. 웬만한 직장인 월급 수준이었습니다. (-187-)



실제 조사에 따르면 1964년 대학 졸업생 2만 8,595명 가운데 취업자는 39%인 1만 1,085명이었습니다. 그나마 취업에 유리한 학과는 농림학계,체육계,공학계, 의약학계,사회과학계,사범계였습니다. 특히 축산학과 경쟁률이 18대 1로 경쟁이 제일 치열했씁니다. 농림학계가 졸업 후 취업에 유리했기 때문입니다. 제조나 건설업종 등의 취업자 수는 타 업종에 비해 미미했는데,. 당시 우리나라 산업구조가 1차 산업 중심으로 구성돼 제조업 기반이 미약했던 시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201-)



학위 과정으로 보면 박사가 711명, 석사 과정이 1,263명이었습니다. 전공 과목별로 보면 경제학, 화학, 전기공학 전공자들이 가장 많았습니다.

한편 당시 한국 유학생을 포함해 해외 유학생들이 가장 많이 다닌 학교로는 뉴욕대학이 3,293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마이애미 주립대, 버클리대, 컬럼비아대 순으로 조사됐습니다. (-213-)



1950년 6.25가 터지고, 대한민국은 남한과 북한으로 분단되었으며, 어느 덧 광복 79년이 되었다. 가난한 대한민국 국민들은 삼시세끼 흰쌀법을 챙겨 먹기 급급하였으며, 미군정이 주고 간 꿀꿀이죽으로 하루를 연명하였던 이들이 많았다. 지역마다, 달동네가 있었고, 가난한 이들은 재개발, 재건축법으로 인해 하루 아침에 먹고 살았던 집이 헐리고, 좁디 좁은 골목길로, 달동네로, 옥탑방으로 피신하였다. 그 달동네에 화재가 나면,구조되지 못한채, 소방차가 들어올수 없는 상태에서,사망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서울에 가면, 청량리 역 인근에 588 이 있었고, 그들은 자신의 몸을 팔아서, 하루를 살았다.



이런 현실은 책 『머리가 크면 지능이 높다고?』에 쓰여진 1920~1960년대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지금은 복어를 먹다 죽으면, 뉴스에 뜨고, 경찰 수사가 들어간다. 아기를 산부인과에 출산하고, 초등학교 입학 시기에 미취학 아동이 방생하여,뉴스이슈가 떠서, 논란이 되었다.. 어린 나이에 결혼 후 아기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한 사회 문제로 나타났다. 



가난했던 그 당시에 복어에 독이 있다는 걸 아는 이들이 많지 않았으며,제대로 손질되지 않은 상태에서 버려졌다. 배고픈 이들은 그 버려진 복어를 먹고 죽었으며, 뉴스에 단골로 떴다.1950년대엔,이승만 대통령의 담화발표, 뉴스가 올라왔다. 1980년대엔 전두환의 땡전 뉴스가 떴다. 한해 100만 명 아이들이 출산하였고, 가족계획 캠페인이 있다.지금은 아이들을 많이 낳는 가족 계획 캠페인이 실행되고 있지만, 그 효과는 미미하다. 국가 주도의 캠페인이 큰 실효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 당시 빈대떡 신사는 고소득자였다. 지금은 시골에 있는 다방이, 1990년대 전국 곳곳에 존재했다. 한집이 비워지면, 그 집에 다방이 들어섰다. 특히 건물을 올리면, 2층은 다방이 대부분이었다.옛날 드라마를 보면,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간간히 비추고 있다.대한민국은 고아 수출국이었다. 남아선호사상과 , 딸을 선호하는 풍토, 어일 적 기아 사망자가 늘어났기 때문에,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채, 아이를 1년 동안 키웠고, 1년 사이에 아이가 사망하면, 호적 없는 아이가 되는 경우가 흔했다. 이장이 동네 아이들의 출생신골르 도맡아 했던 그 당신의 우리 모습이다. 한 동네에 태어난 날은 달랐지만, 호적에 등록된 생일은 똑같았다. 글을 모르는 문맹자가 많았던 그 당시의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다.



조선 말엽, 민씨 일가가 조선을 장악하였던 당시, 명성황후가 시해되었다. 민씨 일가는 조선을 망하게 한 원흉이었고, 그 안에서, 친일행각으로 스스로 살아남으려 했다.친일파 민영휘는 일본에 부역하였고, 떵떵거리면서 살았다. 그 당시에도, 취업 관련학과가 인기가 있었다. 컴퓨터가 대한민국 안에 8개 밖에 없었고, 축산학과, 농림학과가 인기 있었던 이유다.특히 사범대는 그 당시에도 인기가 있었고, 지금도 인기가 있는 학과다. 돈 있는 가정집에 과외를 했던 그 당시의 우리의 모습, 미국이나 유럽으로 기술, 공학,과학을 배웠던 당시의 우리의 모습들을 보면, 교육에 매진하고,학교를 세웠던 우리의 모습들이 ,후진국에서 벗어나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이유다. 교육이 대한민국의 미래다라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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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도 쉽게 쓰는 인생반전 책쓰기 - 책쓰기 60대에 시작해도 결코 늦지 않다
김기덕 지음 / 신아출판사(SINA)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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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계기는 인생에 60의 나이가 되니 인생 전반을 돌아보게 되고 남은 시간들을 보다 알차게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지금까지 성공을 향해 도전해 왔지만 질병과 인간관계 실패 등으로 쓰라린 시련을 많이 겪었다. 이러한 나만의 사례가 타인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17-)



인생을 바꾸는 방법은 간단하다. 의사결정력을 높이면 된다. 인생이라는 미로에서 남들은 막다른 기로 갈 때, 나는 출구를 향한 길을 고르면 된다. 남들은 자의식에 사로잡혀 망할 주식에 달려들 때 재빠르게 익절하는 안목, 남들이 덜덜 떠는 폭락장에서 싸게 매집하는 배짱을 키우면 된다. 남들 말만 듣고 가게를 차리거나, 자기 아집에 사로잡혀 사업을 벌이는 사람은 인생이 꼬일 수 밖에 없다. (-60-)



공부는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이다. 앎과 모름의 차이를 통해 남보다 앞선 통찰력을 기를 수 있고 앞서갈 수 있기 때문이다. 지식을 습득함으로써 경쟁력을 키울 수 있기 때문에 공부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학생 때 뿐만 아니라 죽을 때까지 공부해야만 하는 것이다. (-127-)



문장을 짧게 쓰면 어떤 장점이 있는가?우선은 의미 전달이 깔끔하다. 어떤 단어의 복선이 없이 단순하여 쉽게 독자가 이해할 수 있게 전달이 된다. 다음은 독자가 읽기가 쉽다는 것이다. 읽기가 쉽다는 의미는 물 흐르듯이 문장이 읽힌다는 의미이다. 저자가 말하는 내용이 오해없이 전달된다. (-187-)



네번째 , 출판 존속 기간은 통상적으로 2년이다. 하지만 3년보다 짧게 혹은 더 길게고 할 수 있다. 출판권자의 출간의무는 9개월이내이다. 다섯번째, 만일 출판권자가 12개월 이내에 출판하지 못할 경우에는 출판권 소멸 통고를 저작권자에게 할 수 있다. 또한 출판사의 내부 운영 여건이 열악하거나 출판권자의 출판 의사가 없음이 명백히 밝혀졌을 때는 바로 소멸 통고를 할 수 있다. (-242-)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걸을 수 없다.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다 겨우 두 발을 떼고, 아장 아장 걸어다닐 수 있다. 그리로 아기는 뛰어다닐 마음 자세와 몸을 비로소 가질 수 있다. 어떤 일을 처음 시작할 땐, 서툴고 ,낯설고,두렵다.그것이 나에게 생소하기 때문이다. 책쓰기가 사람에게 두려움으로 느껴지는 이유도 , 책을 쓰고 난 이후, 달라진 내 인생 때문이다.



작가 김기덕님은 2021년 첫번째 저서 『책에서 찾은 나의 꿈 나의 인생 』을 출간하였고, 코로나 펜데믹을 지나 , 두번째 저서 『60대도 쉽게 쓰는 인생반전 책쓰기』가 나왔다.인생 2모작, 나이 60이후의 삶과 인생, 이순(耳順)이후의 삶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해서,책을 써야 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책을 통해 인새을 바꿀 수 있다.



책을 씀으로서,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 나와 가족에게 남길 인생의 메시지르 책 한권에 담아놓는다. 그 다음, 내가 현재의 삶을 돌아보고, 과거의 나를 회상한다.앞으로 남은 삶에 대해 설레임을 가질 수 있고, 용기를 내어서,새로운 도전을 꿈꿀 수 있다. 초판 1000권의 책을 낸다면,150만원의 인세를 얻는다. 돈보다 더 값진 인생의 결실이 될 수 있고, 내 무덤에 이름이 아닌 내가 쓴 책을 새길 수 있다. 


내가 하고자 하는 길이 무엇이며,앞으로 내가 가야 할 길을 찾아간다면, 인생의 길을 잃어버리더라도,다시 길을 찾아갈 수 있다. 포기하지 않고, 재도전할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을 얻을 수 있고,나와 가족 간의 화해와 평온함, 너그러움과 여유로운 삶을 얻는다. 책을 쓰고, 퇴고하고, 교열, 편집하는 과정에서,나를 다시 돌아보고, 공부하고,통찰력와 성찰의 시간을 얻을 수 있으며,  내 인생을 반추할 수 있는 시간과 마음을 얻을 수 있다. 저자는 책쓰기만큼 내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잇는 것은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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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생 순정만화 X SF 소설 시리즈 2
듀나 지음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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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일숙 작가의 《1999년 생》 와 함께 읽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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