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발견 - 나의 특별한 가족, 교육, 그리고 자유의 이야기
타라 웨스트오버 지음, 김희정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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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사진처럼 글이 빽빽이 쓰인 교육학 책 같은 느낌이다. '읽을 수 있을까'라는 의심이 먼저 든다.

더욱이 주제가 배움이라니... 첫 느낌은 교육 관련 교재 같은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요즘처럼 에세이는 많은 글보다는 여백과 그림 등으로 출간되는 터라 이에 익숙한 독자들의 시선을 끌기에는 좀 부족한 듯 보인다.

그러나 첫 인상을 조금 뒤로 하고 읽다보면 어느덧 책 내용에 빨려들어가듯 술술 읽히는 내용이 가득하다.

배움과 가르침, 그리고 잘못된 종교적 신념이 우리의 삶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경각심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이자 화자인 타라 웨스트오버는 1986년 미국 아이다호에서 7남매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세상의 종말이 임박했다고 믿는 모르몬교 근본주의자였고, 공교육에 대한 불신 때문에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타라는 아버지 말에 따라 복숭아 병조림을 만들고, 밤에는 '산속 피신용' 가방을 끌어안고 잠을 청했다.

산파이자 동종 요법 치유사인 어머니를 도와 약초를 끓이며 여름을 보냈고, 겨울에는 아버지의 폐철 처리장에서 폐철을 모으고 자르는 일을 했다.

타라의 가족은 주류 사회로부터 너무나 고립된 상태로 살았고, 이 때문에 자녀들은 제대로 된 교육의 기회도, 가족 간의 은밀한 학대에도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심지어 현대 의학을 믿지 못하는 아버지 때문에 의사나 간호사를 만나 본 적도 없었다.

피가 철철 흐르는 상처, 심각한 뇌진탕, 심지어 폭발로 인한 화상도 모두 엄마가 만든 약초를 써서 집에서 치료했다.


타라가 처음 교실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열일곱 살이었다.

대학에 들어간 셋째 오빠가 집에 돌아와서 산 너머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자 타라는 새로운 인생을 향해 발걸음을 떼겠다고 결심했다.

열여섯 살이던 타라는 아버지의 눈을 피해 대입자격시험(ACT)에 필요한 과목들을 독학으로 공부했고, 기적처럼 브리검 영 대학(모르몬교 재단에서 운영하는 대학으로 홈스쿨링 학생들을 뽑는다)에 합격했다.

타라의 대학 생활은 녹록하지 않았다.

그녀는 기초 교육 과정을 모두 건너뛴 채로 대학에 입학했기 때문에 (나폴레옹과 장발장 중 누가 역사적 인물이고 누가 허구의 인물인지) 구분하지 못할 만큼 기초 지식이 부족했다.

수강 신청하는 법, 처음 치르는 쪽지 시험, 미술 교과서는 단순히 아름다운 그림을 감상하라고 나눠 준 그림책이 아니라 밑의 캡션도 읽어야 한다는 것도 시행착오를 통해 배웠다.

외딴 산골에서 부모의 일을 돕거나 주말에 교회에 가는 것 말고는 거의 사회생활 경험이 없었던 타라는 친구, 지인, 이성을 대하는 법, 커피를 마시는 방법까지 모두 다시 배워야 했다.


새롭게 경험한 대학은 아버지의 입을 통해 들은 세상과 너무나 달랐다.

성경과 모르몬 경전 이외에는 다른 책을 제대로 읽어 본 적이 없던 타라에게 대학에서 배우는 모든 것들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홀로코스트라는 단어도 처음 알았고, 흑인 민권 운동도 처음 배웠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누군가를 질책하는' 표현이 아닌 일반적인 의미로 쓰이는 것도 처음 봤다.

위대한 선지자의 말이나 역사학자가 제시하는 해석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을 수 있고,

자신의 생각을 덧붙일 수 있다는 생각(그전까지는 상상도 못했던 일)을 처음으로 했다.


아버지는 세상 사람들을 '이방인'이라고 불렀지만, 타라는 점점 자신의 가족이야말로 진짜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타라는 아버지의 왜곡된 신념 때문에 자신과 가족들이 얼마나 큰 희생을 치러 왔는지 깨닫고, 깊은 분노와 배신감을 느꼈다.

타라는 '아버지가 기른' 그 소녀와 배움을 통해 새롭게 만들어진 지금의 '나'가 공존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타라는 강의실에서 교수가 칠판에 쓴 물음을 떠올렸다. [누가 역사를 쓰는가?] 그녀는 [바로 나]라고 생각했다.



배움을 향한 열정은 타라에게 새로운 문을 열어 주었고, 그녀는 바다와 대륙을 건너 케임브리지와 하버드 대학교에 가서 공부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가족과 끊어진 삶은 그녀에게 큰 고통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자신이 너무 멀리 와버린 것은 아닌지, 아직 집으로 돌아갈 길이 있는지 의구심을 품기 시작한다.

만약 이 책이 시골에서 열여섯까지 학교 문턱도 밟아보지 않았던 소녀가 명문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입지전적 경험을 쓴 비망록이었다면, 이만큼 주목받긴 힘들었을 것이다. 이 책은 한 여성이 자신의 자아를 찾아 가는 투쟁의 이야기이다.

가장 가까웠던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는 데 따르는 슬픔에 관한 이야기이며, 가족과의 연결 고리를 잃지 않고 세상 속에서 자기 자리를 찾으려는 노력을 담은 이야기이다.

타라에게 배움은 단순히 좋은 대학에서 학위를 따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더 깊고 더 넓게 보는 눈을 뜨고 자신을 재발견하는 일이었다.


책의 내용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 각 매체를 소개한다.

눈을 열게 하고, 인생을 변화시키는 교육의 힘을 아름답게 증명한다.

- 에이미 추아, [뉴욕 타임스 북리뷰]

배우는 방법을 배워야 했던 한 여성의 이야기.

- [하버드 크림슨]

출생의 제약과 환경을 뛰어넘어 더 나은 삶을 향해 성큼성큼 나아간다.

- [USA 투데이]

그녀의 역사는 (…) 놀랍도록 인상적이다.

- [이코노미스트]

정신의 형성에 관한 회고록. 그녀의 쓰라린 시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애틀랜틱]

우리 자신의 얼마나 많은 부분을 우리가 사랑하는 저들에게 내주여야 할까? 또 우리는 자신의 성장을 위해 얼마나 많이 그들을 배신해야 할까?

- [보그]

책의 내용을 잘 담은 책 처음 부분과 마지막 부분의 표현이 감동을 더해준다.

아버지는 정부가 강제로 우리를 학교에 가도록 만들지 않을까 걱정하지만, 그럴 일은 없었다.

왜냐하면 정부는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일곱 자녀 중 네 명은 출생증명서가 없다.

가정 분만으로 태어나서, 한 번도 의사나 간호사에게 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의료 기록도 전혀 없다. <p.12>

[누가 역사를 쓰는가?] 나는 [바로 나]라고 생각했다. <p.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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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보는 그림 - 시끄러운 고독 속에서 가만히 나를 붙잡아 준 것들
김한들 지음 / 원더박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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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산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의 표지 그림으로 유명한 독일 화가 팀 아이텔을 아는가?

『밤이 선생이다』뿐만 아니라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를 비롯해 신형철의 『느낌의 공동체』,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도리스 레싱의 『사랑하는 습관』 등 다양한 책의 표지에서 팀 아이텔의 그림을 만날 수 있다.

팀 아이텔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그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저자를 소개하기 위함이다.

2011년 가을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린 팀 아이텔의 아시아 첫 전시를 비롯해 다양한 미술 전시를 기획해 온 김한들 큐레이터의 첫 산문집이 출간됐다.

김한들 큐레이터는 뉴욕주립대 빙엄턴에서 미술사를 전공하고 돌아와 학고재, 갤러리현대 등에서 십 년 넘게 전시 기획을 해 왔다.

지금은 대학에서 현대 미술사와 비평 강의를 하며 [월간미술] 비평 연재를 비롯해 [세계일보], [VOGUE KOREA] 등 다양한 매체에 글을 쓰고 있다.


이 책은 갤러리와 미술계라는 일터를 배경으로 저자가 20~30대를 지나며 마주한 삶의 인상적인 순간들을 진솔하면서도 감각적인 문장으로 그려 보이고 있다. ‘혼자 보는 그림’이라는 책의 제목과 ‘시끄러운 고독 속에서 가만히 나를 붙잡아 준 것들’이라는 부제를 통해 느끼겠지만, 그림을 실컷 보며 일하는 게 좋아 고된 일상 속에서도 하루하루를 버티며 조금씩 단단해져 간 한 청춘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또 하나 이 책의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은 본문에 삽입되어 있는 그림이다.

큐레이터인 저자가 특별히 소개하고 싶은 네 명의 동시대 미술가 전병구, 박광수, 팀 아이템, 알렉스 카츠의 그림이 글과 조화를 이루며 함께하고 있다.



책은 총 4부로 나뉘어 있다.

1부는 저자가 큐레이터가 되고, 큐레이터로 지낸 일상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하루도 평온치 않았던 날들의 기록’을 남긴 전병구 작가의 그림을 배경으로 담담하게 펼쳐 내려간다.

“좋은 그림을 마음껏 보며 살고 싶다는 생각”(24쪽)으로 큐레이터가 되었지만, 잠시 일을 쉬는 사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없는 현실을 견디지 못해”(22쪽) 구급차를 두 번이나 타기도 했던 저자는 이제 이탈리아의 한 이름 모를 해변에 앉아 휴식을 즐긴다.

“삶을 지키는 것은 결국 마음”(32쪽)이고 그 마음은 훗날 이런 순간의 온기를 기억하는 데서 온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2부는 혁오의 ‘톰보이’ 뮤직비디오 감독으로도 널리 알려진 박광수 작가의 작품과 함께한다.

1부의 키워드가 ‘일상’이라면, 2부는 ‘슬픔’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했던 무엇인가가 존재했던 자리. 그것은 작아지거나 옅어질지언정 사라지지 않는다.

슬픈 경험과 기억은 내 몸과 삶에 각인되어 나와 함께 살아간다.”(66쪽) 물론 저자는 슬픔이 가진 힘을 믿는다.

“슬픔은 계단이 된다”(102쪽)라고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에 앞서 우리가 “그 어떤 것보다 탄탄하게 구축해야 하는 것”이 “바로 나와의 시간을 보내는 방법”(95쪽)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그림을 보는 것이야말로 자신과 자신의 내면을 연결해 주는 가장 적절한 행위라고 소개한다.



3부의 키워드는 ‘고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부정적인 의미의 고독은 아니다.

저자는 ‘선택적 고독’이라고 표현한다.

이는 “누군가에 의해 외로운 형편에 놓인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홀로 있는 상황에 자리 잡은 것”(116쪽)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고독은 애달프거나 구슬퍼 보이는 게 아니라 여유롭고 현연한 태도로 집중한 채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다.

팀 아이텔의 그림에서 만나게 되는 이들처럼 말이다.

저자는 시(詩)에 대한 애정을 고백하면서, 자신이 팀 아이텔의 그림을 좋아하는 것은 그의 그림이 시와 닮아서라고 말한다.

수수하고 옅더라도 오래 남아 문득문득 떠오르는 것에서, 사진기로 직접 찍은 스냅숏에서 시작하는 그의 그림이 결국은 어디인지 누구인지 드러나지 않는 보편적 대상으로 거듭나 결국 해석의 문을 활짝 열어 버린다는 점에서 그의 그림을 좋아한다고 털어놓는다.



4부는 팀 아이텔의 집에서 발견한 알렉스 카츠가 그린 팀 아이텔의 초상화 이야기로 시작한다.

아흔이 넘은 대가의 내공이 담긴 붓놀림은 숨길 수가 없다. 카츠는 지금도 매일 그림을 그린다.

몸이 좋지 않은 날은 단 15분일지라도, 60년 넘게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림을 그려 왔다.

“오랜 시일에 걸친 꾸준한 노력”(153쪽). 저자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공통점은 결국 ‘성실함의 가치’로 돌아온다.

4부에서는 카츠의 그림과 함께 ‘희망’을, ‘내일’을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사랑’을, ‘열정’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따듯한 기운으로 포근히 나를 감싸 함께 머무르는”(166쪽) 오후 햇볕의 소중함을 이야기한다.

바르셀로나의 한 작은 광장을 평등하게 감쌌던 햇볕의 온기. 그 온기가 결국 나를 더 살아가게 하는 것이니까.


큐레이터 체험 에세이도, 작품 감상 에세이도 아닌 이 책은, 미술과 시가 일상인 사람,

그가 인용한 화가 모란디의 말처럼 “지금 보고 있는 것을 성실하게 보는” 사람이 자신의 내면과 주변과 세계를 감각하고 사유한 기록이다.

-문소영(미술 전문 기자, 작가)

저자는 글을 쓰다 마음이 눅눅해지는 순간이 찾아오면 써 온 글들을 종이에 인쇄해서 햇빛이 들어오는 창가 앞에 두고 한참을 기다렸다고 한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고 마음도 종이처럼 바삭해졌다고 전한다.

미술과 문학과 영화와 일상을 오가는 한 큐레이터의 진솔한 기록이,

그리고 글의 배경으로 때로는 글의 주인공으로 함께한 동시대 미술가들의 그림들이 독자 여러분의 마음 또한 바삭하게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미술 기자로 일하면서 내가 매혹된 사람들 중에는 작가들 못지않게 큐레이터도 많다.

큐레이터. 영화에선 언제나 멋지게 차려 입고 화이트 큐브 안을 또각또각 걸으며 엘리트 관람객에게 작품을 설명하는 그들.

하지만 내가 매혹된 큐레이터들은 미술가의 작업실, 갤러리 전시실, 창고, 도서관을 정신없이 종횡무진하며, 작가만큼 작업에 대해 고민하고, 다큐 PD처럼 전시를 구상하며, 인부처럼 무거운 그림을 번쩍 들고, 기자만큼 글을 많이 쓰는 사람들이다.

그런 큐레이터 중의 한 사람인 김한들이 쓰는 글이기에 이 책은 예사롭지 않다.

큐레이터 체험 에세이도, 작품 감상 에세이도 아닌 이 책은, 미술과 시가 일상인 사람, 그가 인용한 화가 모란디의 말처럼 “지금 보고 있는 것을 성실하게 보는” 사람이 자신의 내면과 주변과 세계를 감각하고 사유한 기록이다.

여기에 그가 특히 아끼는 네 명의 미술가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하루도 평온치 않았던 날들의 기록”을 남긴 전병구, “잊히는 것만큼 잊는 것도 두려운” 것을 상기시키는 박광수, “다 말해 주지 않기에 여운을 남기는” 팀 아이텔, “바르셀로나에서 보았던 오후의 햇빛”을 다시 던져 주는 알렉스 카츠의 그림들이 함께한다.

이들과 함께 “최선의 마음으로 알아챌 수 있는 사물들의 통역가”가 되고 싶다는 김한들이 통역하는 세상은 한층 풍부하고 아름답다.

문소영 (미술 전문 기자, 작가)



그림에 문외한이니 배운다는 마음으로 천천히 읽어야지 하였다가 단숨에 흡수해 버린 책이다.

미술이라는 흰 뼈를 제 근간으로 두되 그에 살 붙인 근육과 지방은 다양한 문화 전반에서 끌어올 줄 알았다.

예서 중요한 키워드는 아마도 ‘절로’일 것이다. 자연처럼 스스로 그러할 줄 아는 글의 귀함을 간만에 이 책을 통해 찾은 듯싶다.

이 탄력적인 영민함은 무엇보다 저자의 솔직함에서 비롯한 바 클 것이다.

기교라는 어떤 척으로부터 한참이나 먼 사람. 그 가면 쓰기에 능하지 못해 사회생활 가운데 다친 적이 꽤나 잦았을 것 같은 사람.

그런데 그 과정이 또한 어쩔 수 없었겠다 싶은 사람. 왜? 무얼 어떻게 보고 그 무얼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몸으로 타고난 사람 같으니까.

그런 청춘은 매 순간 아플 수밖에 없고, 그렇게 매 순간 흔들리는 일로 보는 우리에게 매 순간 자극이라는 떨림을 줄 것이 분명하니까.

『혼자 보는 그림』이 품은 예술에 있어서의 그 ‘태도’란 것을 덕분에 여러 번 되씹고 있는 와중이다.

‘혼자’라는 거, ‘봄’이라는 거, ‘그림’이라는 거, 그 풍경을 바라볼 때 발생하는 ‘거리’라는 거. “내가 가고 싶은 자연은 어디에 안 간다.

풍경은 언제나 거기에 있다.” 이 뚝심에 무한한 신뢰를 감출 수가 없음은 기본이고 말이다.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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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나라에서 살면 나도 행복할까? - 행복의 비밀을 찾아 떠난 한 대한민국 청년의 인문학적 행복 관찰기
전병주 지음 / 앤의서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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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많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사회적 지위나 명예도 행복의 필수 조건은 아니다.

행복의 최우선 조건은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한다는 것을 설명할 때 우리가 흔히 인용하는 문구다.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가난할 땐 잘사는 것이 행복의 제 1조건이었다.

먹고 입고 자는 데 부족함이 없어야 한다는 게 행복의 필요조건이었다. 당연한 말이다. 굶고 살면서 행복하다고 말하면 100% 진심이 아닐 것이다.

우리 나라가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에 접어들었지만 3천달러도 안된 방글라데시가 행복지수 1위라는데 우리는 한 번 빙긋 웃고는 만다.

'행복한 삶'이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 요즘은 많이 달라지긴 했다.

행복지수 1위인 나라를 선정할 때 기준이 달라져서 그럴 것이다는 생각이 든다.

덴마크 등 북유럽 나라들이 탑 10에 주로 들어간다. 그들은 물론 우리 국민소득의 2배가 넘는다.

우리는 이렇게 행복지수 평가 때 숫자에 의존한다. 국민소득, 만족도, 환경지수 등이 그렇다.

여기서 행복의 조건이 문제가 되는 건 아닐까. <행복한 나라에서 살면 나도 행복할까?>의 저자 전병주의 의문처럼...



“행복한 나라로 평가되는 나라들은 각자 처한 상황이 다르다. 만약 그들 모두에게 공통된 질문을 던졌는데 공통된 답변이 발견된다면 어떨까?

그것이 또 다른 국가에 살고 있는 나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일반적 사실’일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면 나와 대한민국은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 것이다.”

저자가 이 책을 쓴 의지가 잘 드러난다.



이렇게 조금은 엉뚱한 가설과 5가지 공통 질문을 들고 배낭 하나 달랑 멘 채, 저자는 8개월 동안 9개국을 돌며 전 세계 전문가들과 행복한 나라로 꼽히는 5개 나라의 수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하면서 행복의 이유를 찾아다녔다.

행복 순위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행복 국가의 모델 덴마크부터 국가 부도 상황에서도 행복한 나라로 불리던 아이슬란드, 1만 2천 달러의 국민소득으로도 6만 달러가 넘는 국민소득을 자랑하는 이웃나라 미국보다 행복하게 산다는 코스타리카, 정치·경제적인 위기 속에서도 행복을 위해 투쟁하던 베네수엘라, 가장 날것의 행복이 존재하는 미지의 섬나라 바투아투까지.

이른바 가장 행복하다고 불리는 나라에서 행복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이 왜 행복한지 물었고, 마침내 서로 다른 조건과 환경이라도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것은 우리에게 매우 흡족한 설명을 해주고, 우리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그러나 저자는 이렇듯 ‘절대적이고 상대적인 행복의 비밀’을 두 손에 쥐고도 당시에는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가는

대한민국 사람들이 당장 실행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해 그냥 묻어두었다고 했다.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의 삶은 딱히 여유 있거나 행복해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더 바쁘고 경쟁적으로 살고 있는 것을 보며, 저자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의 기본 원리가 중요해졌음을 깨달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이 책을 출간하게 됐다고 이야기한다.



행복지수 1위, 덴마크 사람들은 왜 그렇게 행복할까?

나도 지금 당장 대한민국을 떠나 덴마크로 이민 가서 살면 행복해질까?

누구나 한 번쯤 가졌을 부러움과 궁금증이다. 요즘 사람들은 개인의 행복에 점점 더 필사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워라밸, 욜로, 소확행, 가심비……, 마치 행복의 지푸라기라도 잡기 위해 말초신경까지 작동시키기 시작했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다.

정말 유행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다시 형태만 살짝 바꿔 등장하는 이런 행복의 방식들이 우리에게 진짜 행복을 가져다줄까?

잘 알다시피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은 그야말로 눈부셨다.

2019년 기준 국내총생산, 즉 GDP는 세계 205개국 중 12위이고, 1인당 국민총소득은 이제 3만 달러를 넘어섰다.

또 세계에서 7번째로 30-50클럽에 가입한 인정받는 경제 강국이다.

과거와 비교하면 천지가 개벽한 수준의 부유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왜 우리는 행복에 있어서만큼은 자랑할 것이 별로 없을까.




이 책은 개인적인 궁금증에서 출발한 책이지만, 저자는 실제 행복한 나라로 꼽히는 나라들을 찾아가 사람들을 만나고, 세계적인 경제학자 로버트 H. 프랭크 코넬대학 교수, ‘행복에 관한 세계 데이터베이스’ 센터장 루트 벤호벤 교수, 행복나눔재단 창립자 미키 클라센 등 수많은 전문가에게 직접 조언을 구했다.

그 과정을 통해 왜 덴마크, 아이슬란드, 코스타리카, 베네수엘라, 바누아투 사람들은 행복한지, 반면 왜 대한민국 사람들은 쉽사리 행복을 느끼지 못하거나 불행하다고 느끼는지 그 이유와 모든 사람들이 궁금해할 돈과 행복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그리고 이 땅 대한민국에서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진지하게 모색해 그 답을 책에 담았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매년 발표되는 여러 행복차트에서 대한민국은 몇 위인지, 행복지수 1위 나라에 가서 살면 나도 행복해질 수 있을지가 더 이상 궁금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바로 지금 이 순간,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할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코스타리카에 처음 도착했을 때 궁금하고 복잡했던 퍼즐도, 이곳의 다양한 삶들을 하나씩 경험하면서 맞아 들어갔다.

무엇보다 소유에 대한 관점은 굉장히 인상적이다. 코스타리카 사람들은 단순히 경쟁하듯 돈을 벌고, 더 많이 소유하려는 삶에서 행복을 찾지 않는다.

크기나 규모와 상관없이 자신이 소유한 무언가를 감사히 여길 줄 알고, 심지어 그것을 자기 주변 사람들과 아낌없이 나눈다.

을 버는 것보다 얼마를 가졌든 그것을 쓰는 방법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잘 깨우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남들과 비교해 덜 가진 것에 집착하고, 지금보다 나은 삶만을 위해 공부하고 일을 하는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코스타리카 사람들의 이런 삶의 태도가 1만 2천 달러의 국민소득으로도 6만 달러가 넘는 국민소득을 자랑하는 이웃나라 미국 사람들보다 훨씬 더 행복한 삶을 누리게 만드는 가장 주된 이유가 아닐까. < p.67 >




행복한 삶은 지구 위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한 목표일 것이다.

하지만 그 행복을 내 삶에 끌어들이기 위해 각자에게 주어진 환경은 너무나 다르다.

누군가는 완벽한 복지국가에서, 누군가는 전쟁 중인 국가에서, 누군가는 굶주림이 당연한 국가에서, 누군가는 무한 경쟁이 강조되는 국가에서, 이렇게 똑같이 행복을 꿈꾸며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간다.

따라서 어쩌면 행복한 삶을 앞에 두고도 태어나는 순간부터 어느 정도 불공평한 게임을 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바누아투에서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을 만난 후, 당장 주어진 환경의 차이를 뛰어넘는, 그 사회와 문화가 가진 특별한 의식의 영향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 p.123~125 >

당시 내가 만난 거의 대부분의 젊은 친구들은 국가부도라는 극단의 경제 위기 속에서 당장의 금전적인 문제나 취업에 대한 여러 불안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개인과 사회의 미래를 바라보는 시각은 공통적으로 긍정적이고 낙관적이었다.

혹시 내가 이방인이라서 스스로의 감정을 숨기는 건 아닐까,

아니면 부족함 없이 행복하게 자라온 젊은이들이 자국의 힘든 상황을 낯선 동양인에게 공유하고 싶지 않은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행복에 대한 질문에 ‘YES’로 일관했다. (중략)



지금 당장은 상황이 좋더라도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언제든 부정적이고 불안한 환경을 다시 맞닥뜨릴 수 있다.

아이슬란드를 방문하고 궁금해진 것은 동일하게 부정적인 환경과 상황을 만났을 때, 서로 다른 태도를 만들어내는 요인이 과연 무엇인가이다.

비슷한 상황을 경험하지만 전혀 다른 해석과 반응이 나타나는 건, 결국 그것을 해석하는, 개인에게 내재된 필터가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 p.145~146 >

이 몇 가지 인터뷰에는 한 가지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물론,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돈에 대한 언급도 찾아볼 수 없다.

그보다 핵심을 찌르는 공통점은 그들이 지금 가지고 있는 무언가를 통해 행복을 느낀다는 것이다.

가족, 친구, 여자친구, 오늘의 날씨, 자연, 사회제도, 국가처럼 이미 나와 내 주변에 있는 것들 말이다. (중략)

어찌 보면 억울할 정도로 매우 간단한 개념이자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이다. 그 누구도 내가 가지지 못한 무언가로부터 지금 행복할 수는 없다.

이렇듯 당연한 개념인데 왜 우리는 가지지 못한 무언가로부터 얻게 될 행복에만 집착해왔을까.

정말 언제 찾아올지 모를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금은 이렇게 힘들고 불행하기만 해야 할까. < p.200~201 >

치열하게 투쟁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베네수엘라에서도, 실업률 90%의 나라 바누아투에서도, 그리고 세계 최강 복지 국가로 손꼽히는 덴마크에서조차도, 대부분 자신의 인생 목표를 묻는 질문에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꿈을 묻고, 인생 목표가 무엇인지 요구 받고, 매년 초가 되면 올해 계획을 세우는 것이 건설적인 일이라 믿는 우리에게는 참 낯선 모습일지 모르겠다. < p.208 >

여기서의 소소하더라도 꾸준하고 자주 일어나는 행복은 소위 말하는 ‘소확행’과는 다름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소확행은 어려운 삶 속에서 행복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고, 소소하더라도 쉽고 확실하게,

개인의 마음을 달래는 소비나 행동을 통해 행복을 쟁취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전혀 다른 개념이다.

소확행이 자기중심적이고, 소비지향적이고, 일종의 허탈감을 동반한다면, 진정한 행복은 정반대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 p.220

우리 모두는 행복의 일용직이다. 행복에 관해서만큼은 모두 하루 벌어 하루 행복할 수 있는 일용직으로 살도록 동등한 조건에서 태어났다. 오늘 행복했으니 내일도 분명 행복할 것이라고 그 누구도 보장받지 못했으므로, 행복에 대해서만큼은 누구도 정규직일 수 없다. 행복에 관해서만큼은 누구나 코스타리카에서 만난 알레한드로가 말했던 ‘YA!’의 개념이 필요하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의 행복’ 말이다.

가끔은 예전에 행복했던 기억이 현재 불행한 상황에 놓인 당신에게 새롭고 긍정적인 기운을 불어 넣어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억들이 당신의 고통스러운 현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지는 못한다.<- p.227~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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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오늘은 꽃이에요 - 나태주 시인의 시를 읽으며 청춘의 일기를 쓰다
나태주 시와그림, 김예원 글 / 시공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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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고 이별하고 행복하고 슬펐던 모든 시간에 시(詩)가 있었다.”

나태주 시인에게 시는 세상에 띄우는 연애편지였다. 그렇게 시인은 40년 넘게 답장이 오지 않는 편지를 써 왔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시인의 시로 인해 삶의 의미를 새롭게 되새기고 있다는 답장이 오기 시작했다.

시가 길이 되고, 시가 동무가 되고, 시가 삶이 된 한 청춘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이 책에는 시험과 취업, 사랑과 이별에 힘겨울 때마다 나태주 시인의 시를 읽으며 기운을 얻었던 한 청춘이 5년 동안 써 내려간 기록이 담겨 있다.

시로 인해 매 순간을 아름답게 받아들이게 된 성장과 깨달음의 여정에 나태주 시인은 자신의 시와 그림으로 응원해 주었다.

50년의 세대 차이를 뛰어넘어 시와 문학으로 이어진 아름다운 인연이 만들어 간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책은 시인 나태주가 쓴 시에 김예원 씨가 글을 더해 펴냈다.

소개글을 대충 봤을 때도, 책이 도착하기 전까지도 김예원 씨가 시와 글을 모두 쓴 것으로 알았다.

읽다가 비로서 나태주 시인의 시에 김예원 씨가 자신의 이야기를 첨가해 만든 책인 줄 알게 됐다.

마치 한 사람이 쓴 것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져 놀라웠다. 시에 대해 자신의 이야기를 그렇게 각주를 달듯이 매우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이다.

곰곰 생각해 보니 김예원 씨는 시와 자신을 한몸으로 그렇게 살아온 것이었다. 행복한 순간만이 아니라 이별하고 슬픔마저도 시처럼 김예원 씨는 살았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태주 시인의 시가 젊어진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시인의 시를 좋아하고 사랑하던 내가 겪지 못한 경험 같은 것이다.

나태주 시인의 시가 먼저였는지, 김예원 씨의 삶이 먼저였는지 헛갈리는 독자는 이 책을 매우 열심히 잘 읽은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나태주 시인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좋아하는 여학생에게 연애편지를 쓰는 심정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연애편지의 대상은 여학생에서 세상으로 바뀌었다.

연애편지 쓰기가 시 쓰기의 시작이었고, 시 쓰기는 또 연애편지 쓰기의 대신이었다.

하지만 시인의 연애편지는 세상에 쉽게 전달되지 않았고, 답장 또한 오랫동안 오지 않았다.



2015년, 당시 스물한 살 대학생이었던 김예원은 학교 도서관에서 새벽 4시까지 시험공부를 하다가 잠시 휴식을 취했다. 1층 로비의 책꽂이에 꽂혀 있던 시집을 집었다. 『꽃을 보듯 너를 본다』. 나태주라는 모르는 시인의 시집이었다.

지쳐 있었던 탓일까, 가까이 있는 것의 소중함과 작은 것의 가치를 노래하는 시편들이 가슴에 크게 와 닿았다.

우울했던 그의 입가에 미소가 잡혔다.

이후 김예원은 나태주 시인의 팬이 되었다. 40년 전에 펴낸 시집까지 찾아서 읽었다.(여기까지는 나와 비슷했다) 시가 그의 일상이 되었다.

슬플 때, 우울할 때 시인의 노랫말이 떠올랐다. 일기를 쓰면서 시인의 시를 옮겨 적었다.

그러던 중 고마운 마음을 담아 시인에게 편지를 썼다.

나태주 시인이 세상에 연애편지를 쓰기 시작한 지 50년이 가까워서야 비로소 도착한 답장이었다.



나태주 시인의 시는 맑다.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애써 감추지 않는다. 쉽게 다가가서 선명하게 박힌다.

젊은 세대가 시인의 시를 좋아하는 이유다. 힘들 때 읽으면 위로가 되고, 기쁠 때 읽으면 삶에 감사하게 된다. 김예원에게도 그랬다.

대학에 입학하고 조금씩 현실의 모서리가 눈에 띄기 시작할 무렵 나태주 시인의 시를 만났다.

삶이 그리 만만하지 않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아 가던 그때 시인의 시는 용기를 주고 위로가 되었다.

시를 좋아하게 되자, 생의 이면에 숨겨진 의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순간순간 다가오는 깨달음의 파편들을 모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한 편의 글을 쓸 때마다 시 한 편이 그 옆에 나란히 놓였다. 70대 노시인의 시와 20대 청춘의 에세이가 어우러진 이 책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또한 이 책엔 90년대생의 절망과 희망, 고민과 방황, 행복과 사랑의 이야기가 짙게 배어 있어 나태주의 시와 함께 큰 감동과 공감을 불러일으켜준다.



고등학교 1학년 열여섯 살 때, 나는 좋아하는 여학생이 생겨 그 여학생에게 연애편지를 쓰는 심정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연애편지 쓰기가 시 쓰기의 시작이었고, 시 쓰기는 또 연애편지 쓰기의 대신이었던 셈이다.

- 「책머리에 _ 한 강물이 되어 흘러라」중에서

나태주 시인을 공주에서 처음 뵈었던 날, 시인과 잠깐 동안 함께하면서 나는 시인의 애정 어리고 소박한 시들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 「첫 만남」중에서



무언가를 이루려고 아등바등 살기보다 내 옆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웃으며 맛있는 걸 먹고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게 훨씬 더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다는 게 참 별것 아닌 것 같다.

- 「죽음 앞에서」중에서

생각해보면 엄마는 지금의 내 나이 때 결혼을 했다.

나보고 지금 한 가정을 이루라고 하면 엄두도 못 낼 일인데, 엄마는 이 나이에 한 가정을 이루어 두 딸의 엄마가 되었다.

그러면서 포기하고 산 일이 참 많았겠지. 엄마에게 옷 한 벌 선물해 드려야겠다.

- 「소녀」중에서


왕따를 당하던 아이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다 털어놓고는 울기도 했고 엄마가 그립다는 한 아이는 과외 시간 전에 아토피 연고를 준비해놓았다가 내가 올 때마다 연고를 발라 달라며 등을 까고 엎드리기도 했다.

우울증에 걸려 손목을 긋고 자해하던 학생의 학부모님께서는 학생이 나에게만 속이야기를 한다며

아예 공부는 필요 없으니 이야기만 들어달라고 하셨다.

자칭 일진이던 한 아이는 가출했다고 했는데 나와 과외를 하는 시간에만 집에 와서 수업을 듣고 수업이 끝나면 다시 가출했다.

아이들은 정말 단지 자신을 이해해주고 진심으로 대해주는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 「공감을 위한 시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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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 - 일제 강점기, 나라와 이웃을 사랑한 젊은 지식인 현성 이야기
이준태 지음 / 도토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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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00년 전 1915년의 우리나라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나라를 빼앗긴 설움과 나라를 되찾겠다는 의지가 뒤섞여 한반도 전역이 혼란에 휩싸였던 시기다.

이 책 제목을 보면서 암울한 당시 시대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는 건 그나마 TV나 예술작품에서 많이 보여주었기 때문에 짐작은 가능했다.

또 독립을 이뤄내려 했던 열사들에 대해서도 책이나 각종 영상물 등을 통해 많이 접했기 때문에 무척 많이 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름 없는 순국열사나 우국지사 등에 대한 조명은 어려워 묻힌 것은 못내 아쉽고 안타까움을 갖고 있다.

또 활자나 영상으로 본 것이 뒤늦게 발견된 자료로서 확인되고, 재조명될 땐 그 시대를 '조금 안다'고 생각했던 무사고(無思考)에 대해 후회를 거듭했다.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지냈을까?

시대의 아픔이 느껴지는 이야기를 듣고, 보고, 배우고 했지만 늘 일부분이라는 느낌은 이 책 <1915>라는 장편소설에서 읽으면서 더 뚜렷해졌다.

아니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주인공 ‘현성’이 남원의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의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혜화동에 있는 중앙고보(중앙고등학교)에서의 학창시절을 시작으로 절친 경식과 현성의 첫사랑 이야기.

선후배들과 지식과 철학을 공유하는 이야기.

보성전문학교(고려대학교)에 진학하고 변호사로서의 꿈을 이루는 과정.

지하조직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이야기 등 여러 이야기들이 순차적으로 펼쳐진다.



이 책의 내용은 사실 오래 전 먼 이야기가 아니다.

내 이야기 일 수도, 내 이웃의 이야기 일 수도 있다.

같은 세상을 살아가지만 자신을 사랑하며 살아가기가 참 힘든 세상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과 우리의 이웃과 먼저 가신 분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말대로 이 소설은 현성이라는 당시 실존 인물을 그린 작품이다.

작가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을 쓰는 데 4년간의 시간을 들였다고 밝힌다.

그 들인 시간만큼 분량도 거의 600페이지에 가깝다. 물론 더 쓸 수 있겠지만 지면이 허락하지 않아 못 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워낙에 작가가 정성을 쏟아서인지 긴장감이 넘치고 그 시대의 모습을 눈에 선하게 그려볼 수 있을 정도로 세밀하게 묘사했다.



전체적으로는 현성이라는 인물의 일대기를 그린 글이기에 그가 서울에 있는 중앙고보(중앙고등학교)로 올라오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여느 학생들처럼 그도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좋은 친구도 만나고, 사랑을 하게 되고, 학교 선후배들과 지식과 사상을 나누면서 점점 더 성장해간다.

그 시대가 일제 강점기라는 사실만 빼놓고 본다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시대가 만드는 아픔은 그에게도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모든 힘을 쏟아 부었던 이름 모를 수많은 선열들처럼 현성이라는 인물도 일제의 압박에서 벗어나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일부 일제에 협력하고 심지어 독립투사를 잡아 가두고, 처형하는 데 협조한 사람도 있지만...



읽다보니 60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의 대하소설이지만 한 시대와 그 시대를 살아간 인물을 그려내기에는 그렇게 많은 분량이 아닌 것 같다.

아마 일제강점기가 길었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엄청나게 묻혀간 얘기가 더 많을 텐데... 그렇다면 더 욕심을 더 세세하게 그려내었으면 좋았을 거란 느낌(작가의 글솜씨 때문인지 더 절절한 내용 때문인지 모르지만)이 들기도 했다.

아무튼 이 책을 통해 우리 역사가 남긴 한 시대와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 보람있었다.

그 분들이 바로 우리에게 이 땅을 남겨주신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얘기니까.



책의 일부를 발췌해 적어본다. 독자들의 사전 이해를 위해서다.

작가가 쓰고자 하는 얘기를 잘 그려낸 듯하다.

-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면 나뭇가지들은 바람에 휘고 풀잎들은 땅에 잠시 눕기도 하지만, 바람이 잔잔해지면 다시 일어나는 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지금 총칼의 위세에 눌려 굴복하고 있지만 우리 영혼마저 정복당했다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영혼이 살아있는 민족은 다시 일어나게 되어있습니다.

- ‘내가 내 근본을 부정한다면 누가 나를 올바르게 인정해줄 것인가.’ 그런 대화에 끼어 인정받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 닥쳤을 지라도, 어떤 사람에게 터무니없는 꼴을 당했어도 조선놈이니, 조센징이니, 노예근성이니, 하는 말은 삼갔다.



- 일본 후생성이 여자 정신근로령을 공포하고 시행하였다.

사탕발림과 교언영색으로 속였지만 여자정신대가 무엇 하는 것인지 알만한 사람은 다 알았다.

숭고한 뜻에 같이하라고 독려했던, 여성계의 친일인사들 황 모, 박 모 여사들 그들의 친인척들이 정신대에 보내졌을 리는 단연코 없었다.

가지고 있을 수도 내려놓을 수도 없는 뜨겁고 더러운 불을 돌리 고 돌리다보니,

결국은 이 추악한 음모를 알 길 없는 힘없고 줄 없는 서민층 여식들이 다 뒤집어썼다.

저 세상에 가서도 씻을 수 없는 상흔을 입게 되었다. (위 내용은 본문 중에서 발췌, 줄 바꾸기는 편의상 임의로 했음)



다음은 독자를 이해를 돕기 위한 유명인들의 작가 이준태와 작품 <1915>에 대한 평이다.

그 시대 를 살고 그런 역정을 걸어온 것처럼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입심 좋게 펼쳐 보인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장렬하고 슬기로운 독립항쟁의 역사를 되돌아보게 되는 시기에 이 소설을 만난 것은 불현듯 가슴이 달아오르는 첫사랑이라도 본 듯하다.

김용균 (시인)

이 작품의 뿌리는 첫째는 역사요, 둘째는 민족이다.

이 묵직한 서사를 읊어내는 데는 투박한 문체가 오히려 잘 어울린다.

오랜 밤을 묵히며 속으로 영근 작가의 문학세계가 찬란한 동을 틔울거라 확신한다.

신기남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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