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 무엇이 문제일까? - 굶는 자와 남는 식량, 스마트 농업이 그리는 해법 10대가 꼭 읽어야 할 사회·과학교양 2
김택원 지음 / 동아엠앤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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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도대체 맬서스는 어떤 짓을 저질렀단 말인가? (…) 맬서스는 19세기를 유토피아적 환상으로 낙관하던 사람들의 낭만적인 꿈을 앗아가 버렸다. 그는 인류가 환희에 넘치는 미래를 맞기는커녕 인구 과다로 인하여 사회 붕괴와 소멸을 맞게 되리라고 전망했던 것이다. 언론은 맬서스를 심판하였고 즉각 그에게 유죄 선고를 내렸다. 새로운 세기를 맞는 감격적인 순간에 맬서스는 재수 없는 소리만 늘어놓아 흥을 깨어 버렸던 것이다. (...) 맬서스의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 중 일부는 애도하러, 일부는 그가 정말 죽었는지 확인하려고 왔을 것이다.”

세계 유수의 투자 회사들에서 투자 자문 역할을 맡고 있는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조지 H. W. 부시 행정부 시절에 대통령 경제담당 비서관을 지낸 토드 부크홀츠가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에서 한 말이다. 『인구론』을 저술한 토마스 멜서스에 대해 당시 지식인들의 태도를 유머로 비판한 것처럼 느껴진다.

인구 팽창 정책은 식량 부족을 야기할 수 있다는 멜서스의 주장은 당시로서는 꽤 충격적이었다고 한다. 2020년 대한민국에서도 멜서스의 인구론은 인구 증가가 엄청난 재앙을 몰고 오며 식량 부족 사태를 촉발한다는 이론엔 많은 사람들에게 설득력이 없다.

멜서스가 인구론을 발표했을 때 당시(1798년) 세계 인구 8억 명에서 200년이 조금 지난 70억 명으로 거의 10배 가량 늘었다.





산업혁명으로 부국이 된 영국 정부에서는 인구를 늘려 더욱 강하고 부유한 나라를 만들고자 자녀수에 따라 빈민에게 생활 보조금을 지급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었다. 이때 『인구론』으로 유명한 영국의 경제학자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THOMAS ROBERT MALTHUS, 1766~1834)가 다소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맬서스는 이런 선심성 정책이 인구 증가로는 이어지겠지만 결국에는 빈곤의 악순환을 낳을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인구론』의 내용을 요약하면 ‘인구 증가는 식량 부족으로 연결되고, 급여 인상은 출산 증가를 불러오고, 이렇게 해서 생겨난 과잉 노동력은 결국 임금을 떨어뜨린다.’는 것이었다.

엄청난 기술의 발전으로 식량 생산이 급증하면서 아직까지는 그럭저럭 버틸 만하다고 생각하지만 대규모 식량 부족 사태는 조만간 우리를 급습할지도 모른다. 지구는 현재도 몸살을 앓고 있다.

이상기후로 한쪽에서는 한파가, 한쪽에서는 가뭄이, 한쪽에서는 홍수가 지구를 아프게 하고 있다는 소식이 자주 들려온다.

전문가들은 2025년쯤에는 세계 인구 가운데 30%가 굶주림에 시달리게 될 것이고, 18억 명은 물 부족으로 고통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자연재해와 전쟁 등으로 식량 생산에 문제가 생겨 굶주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개발도상국들의 빈곤층들은 자신들이 먹고 살 수 있는 식량을 사는 돈도 부족해 아이들을 교육시키거나 땅을 마련하는 등의 미래를 위해 투자할 수 없다.

그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은 굶주리게 되고 그들의 굶주림은 그들을 빈곤의 함정으로 또다시 빠뜨리게 되는 악순환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위기는 결국 식량 때문에 촉발된 것이다. 우리가 먹고 버리는 음식물 쓰레기 문제를 단순히 환경 문제와만 연관시킬 수 없는 이유가 이 때문인 것이다.





이 책 『식량 무엇이 문제일까』는 현재 식량 생산 체계의 문제점을 농업 중심으로 짚어 보고 현재 진행 중인 농업의 변화는 이전의 농업과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는 데 초점이 있다. 저자 김택원은 아울러 우리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새로운 농업에는 무엇이 필요할지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책에 따르면 농업 기반 시설이 굶주림의 원인이 되는 이유는, 농지에 물을 끌어들이는 관개 수로가 부족해서 농지에 물을 대거나 물자를 운반하는 일 등에 너무나 많은 비용과 노력을 낭비하고 있기 때문에 효율성이 떨어져 식량을 많이 생산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삼림 벌채, 지나친 경작(다작), 과도한 방목 등 환경의 과잉 이용으로 땅의 지력을 떨어뜨리고, 생산량도 감소시켜 결국 굶주림의 원인이 된다. 거기에 기후 재앙 속에서 식량이 고갈되는 사태가 발생한다면 누구의 의도대로 움직일까? 자본주의는 본래의 의도를 넘어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

자본은 국가를 존엄하게 만드는 일에 앞장서기 위해, 자본을 보호하기 위해 농업을 대규모화해서 공장처럼 만들고 싶어 한다. 그러나 자연을 파괴할수록 재앙이 따른다는 사실을 묵과해서는 안 된다. 대규모의 농사는 그래서 위험하다. 단 몇 퍼센트의 손아귀에 먹을 것을 쥐어 주면서 재앙의 시발점이 된다.





저자는 AI와 클라우드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 농장 기술은 영상 데이터를 바탕으로 AI가 생물 상태를 분석해서 가장 적절한 생육 환경을 만들어 낸다고 주장한다.

직접 농장에 가지 않아도 온도나 습도 등 중요한 정보들은 스마트폰으로 확인할 수 있다. 앱을 이용해 음성으로 농장 상태를 관리할 수도 있다. 스마트 기술은 농산물 유통에도 영향력을 발휘한다. 수확한 농산물을 ‘제값’ 받고 유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직거래이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서 소비자와 생산자가 직거래하는 플랫폼 시스템도 도입된다.

블록체인은 변조 걱정이 없는 것이 특징이므로, 소비자도 도축 날짜나 축사 온도 같은 식품 생산 이력을 확인해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시스템이 보편화된다면 농사를 실패할 걱정도 없고, 산출량을 구체적으로 예측해서 시장 수요에 딱 맞는 작물만을 출하할 수도 있다. 고도화된 식물 공장 시스템 하에서는 소비자 개인과의 계약을 통한 맞춤형 작물 생산도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한다.





농촌을 기술과는 동떨어진 곳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미 수많은 기술이 농촌에 도입되고 있고, 적용될 예정이다.

덕분에 나이가 많은 농업 종사자는 물론, 늦게 귀농을 선택해 농업 경험이 부족한 사람도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농사는, 농업은 소수만의 것이 아니다. 평화와 안정과 행복이 깃드는 농업, 아이들이 먹고 건강하게 자라고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게 먹을 수 있는 농사를 지으면서 다 같이 따뜻하게 나눠 먹을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을 원한다면 농업의 변화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저자의 제안은 설득력을 얻는다.

코로나 시대에 농업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총 105개국에서 농산물 수출 제한 조치를 취한 바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세계보건기구(WHO),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세계적 식량 위기 가능성에 맞선 국제적인 공동 대응의 필요성을 호소했지만 수출 제한 조치 확산을 막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런 상황에서 코로나19의 팬데믹이 유례 없는 식량 위기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물류 및 생산 피해가 누적되면서 과연 우리나라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발 빠른 진단이 요구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앞다퉈 국경 문을 닫는 많은 나라를 보았다.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인도, 베트남, 캄보디아 등이 쌀 수출을 중단했고, 러시아도 곡물 수출 금지 대열에 합류했다. 알제리,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필리핀, 미얀마, 북마케도니아 등도 일부 먹거리 및 농산물 수출을 제한하는 조치를 내렸다.





참 많은 것을 가르쳐 주는 코로나19이다. 대한민국은 전방위적인 검역, 그리고 공공과 민간이 어우러진 효율적인 의료 시스템, 자발적 참여로 더 빛을 발한 시민 의식 등 국제사회에서 코로나19 사태를 모범적으로 극복하고 있는 나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전염병 방역을 넘어서서 이제 경제 위기와 식량 위기마저 이겨 내는 대한민국으로 설 수 있을까?

오늘날 우리는 굶을 걱정을 하지 않는다. 어디에서나 먹을 것을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음식물 쓰레기는 사회적 문제로 제기되기까지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식량 걱정을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2050년 세계 인구는 약 100억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인구는 약 77억 명인데, 앞으로 30년 동안 20억 명이 더 증가하는 셈이다.

이쯤 되면 수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릴 식량 조달을 걱정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100억 명에 달하는 미래 사람들에게 필요한 식량을 생산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이제 더 적은 노력으로 더 많은 식량을 효율적으로 생산, 공급해야 하는 숙제가 인류 앞에 놓였다.





사실 지구촌 한편에는 비만과 음식물 낭비가 넘쳐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굶주림과 아사가 속출한다. 솔직히, 세계에는 70억 인구의 두 배가 넘는 사람들까지 먹여 살릴 식량이 있다. 따라서 이 지구 위에 굶주림(기아)이 존재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 아니다.

‘지속 가능한 농업’을 지속적으로 이어 나갈 현실적인 대책은 없을까. 이제 농업은 옛날과 같은 논 매고 밭 가는 식의 원시 형태가 아니다. 농업도 스마트하게 바뀐 지 오래이다. 이제는 생명공학, 인공지능(AI), 클라우드, 로봇 등을 적용해 먹거리를 효율적으로 생산한다는 의미이다. 저자의 문제 의식 도출, 과정 소개, 해결 방법 대안 제시 등을 꼼꼼이 써내려간 이 책에 크게 공감한다. '주자 10회'가 생각난다. "풍요로울 때 빈곤의 위기를 생각하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한다."


저자 : 김택원


서울대학교에서 과학사를 전공하고 동아사이언스의 기자, 편집자로 활동했다. 현재는 동아사이언스로부터 독립한 동아에스앤씨에서 정부 출연 연구기관 및 과학 관련 공공기관의 홍보 커뮤니케이션 사업을 지휘하며, 다양한 매체에 과학 기술 관련 글을 여럿 기고하고 있다. 취재차 들린 네덜란드 출장 중 첨단기술을 접목한 새로운 방식의 농업을 접하고 식량과 미래의 농업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어 이 책의 집필에 이르게 되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에서 진행하는

체험단,리뷰단에서 제공 받아 작성한 솔직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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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지도를 바꾼 돈의 세계사 - 화폐가 세상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미야자키 마사카츠 지음, 서수지 옮김 / 탐나는책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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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렸을 때 배운 세계 4대 문명은 발전을 거듭해 인류 역사의 흐름을 가름하는 시작점이 됐다.

문명을 이룩한 인류는 문자 발명과 숫자 발명, 천문학 등 각종 학문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수천 년이 흘러왔다.

지금은 많이 변했지만 세계의 역사는 이 4대 문명을 토대로 기술되는 것이 정설처럼 여겨졌다. 그리스 로마 문명을 이어 받은 서구의 발전이 오랜 세기 동안 지속되면서 서구 중심의 역사가 인류 문명의 역사가 된 것으로 생각하지만 반론을 제기하기는 독자의 지식 수준으로는 어렵다.

하지만 최근 미시사를 중심으로 세계사의 큰 흐름 속의 작은 갈래를 살펴보거나 유럽 중심의 세계관을 벗어난 세계사 기술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사람이 문명을 이룬 이래 '경제'는 언제나 당면 과제였습니다. 그렇기에 항상 경제는 정치와 짝을 이루고 이념과 떼어 놓고 볼 수 없는 개념이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돈'의 역사가 인류 문명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도 있다. 이렇게 가치의 척도가 되고 이를 저장하면서 생산과 소비를 연결시켜주는 화폐라는 개념은 도입된 이래로 경제의 가장 중요한 축 중 하나가 되었다.





『부의 지도를 바꾼 돈의 세계사』는 이러한 ‘화폐’를 중심으로 세계사의 흐름을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저자 미야자키 마사카츠는 이 책에서 ‘화폐’를 중심으로 다양한 역사적 사실과 이야기를 들려준다.

세계 4대 문명 발상지에서의 돈부터 동전과 지폐, 은행, 보험 등의 탄생 배경, 투자와 투기로 인한 돈의 팽창, 그리고 전 세계적인 금융 위기까지, 인류 문명의 발달과 함께해온 돈의 역사를 짚어본다.

책에 따르면 돈은 가치를 측정하는 잣대, 교환의 매개로 모습을 나타내, 사회를 원활하게 움직이는 문명의 혈액으로서 기능했다. 세계사를 되짚어보면, 돈이 어디로 흘러가는지에 따라 세계를 주름잡는 패권국으로서의 지위도 결정되었다. 부의 지도가 곧 세계 패권의 지도가 되었던 것이다.

돈의 기원과 발전 과정을 알아보고 부의 지도가 어떻게 변화되어왔는지를 살펴보는 이 책은,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알아야 할 교양이다.





돈은 크게 금화나 은화처럼 재질 자체가 가치를 지니는 돈과, 동전이나 지폐처럼 재료 자체에는 별다른 값어치가 없는 돈으로 구분할 수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파라오의 영원한 생명과 불멸성을 상징하는 금이 사용되었고, 교역이 발달했던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은이 주로 사용되었다.

중국에서는 진시황제가 저렴한 금속인 동에 가치를 부여해 '반량전'을 만들었고, 송 시대에 동이 부족해지자 세계 최초의 지폐라고 할 수 있는 '교자'를 발행했다. 돈의 재료 가운데 특히 금과 은은 통화의 표준 단위가 되면서, 금과 은을 향한 강렬한 욕망이 신항로 개척, 신대륙 발견 등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전 세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친 강대국들은 재정, 즉 돈이 뒷받침되었다. 즉, 돈이 어디로 흘러갔는지에 따라 세계를 주름잡는 패권국으로서의 지위도 결정되었던 것이다. 12~14세기에는 이탈리아 피렌체를 대표하는 메디치 가문이 은행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며 문화 부흥을 이끈 르네상스의 기반을 다졌다. 15~16세기에는 신항로 개척과 신대륙 발견으로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부를 축적했고, 17세기에는 청어 잡이를 통해 해상 패권을 장악한 네덜란드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며 동인도회사라는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17세기 후반에는 영국이 대서양 무역의 주도권을 장악했으며 근대적인 은행과 보험을 탄생시켰다. 또한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전반에 걸쳐 진행된 프랑스의 시민혁명과 영국의 산업혁명으로 인하여 세계의 부가 영국으로 집중되었다. 19세기 후반 중공업의 발달과 더불어 20세기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겪으며 부를 축적한 미국이 초강대국이 되어 세계 경제를 지배하고 있다.





고대국가에서는 이자는 죄악이라는 게 사회적 통념이었다. 돈이 돈을 낳고 이자를 버는 게 정당하다는 생각은 비교적 새로운 시대에 시민권을 얻은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다.

고대 그리스를 대표하는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돈을 단순한 물건으로 간주했다. 그는 모름지기 돈은 교환의 매개로만 사용되어야 하며, 이자를 받는 행위는 돈의 용도가 아니라고 말했다. 중세 유럽 교회도 '돈으로 돈을 낳는 행위'를 죄로 간주했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샤일록처럼 대부업자는 냉혹하고 무정하다는 인식이 일반에 널리 퍼져 있었다.

현대 사회와는 너무나 다른 인식이다. 요즘 은행과 같은 기능을 한 것이 그 시대의 대부업이며 대부업은 사회 악으로 간주했다

'각인 화폐'는 금 혹은 은이라는 귀금속의 가치를 보증하는 각인을 지배자가 새긴 돈으로, 많은 문명이 각인 화폐 제도를 선택했다.

주조 화폐는 가공하지 않은 청동처럼 거의 가치가 없는 재료에 신의 대리인으로 칭하던 황제가 그 권위로 가치를 부여한 돈으로, 추상적인 성격이 높다.

창시자인 무함마드가 본래 상인 출신으로, 이슬람교는 상업적 면모가 강하여 이슬람 제국은 세계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상업 제국을 이룩했다.

이슬람 제국은 금화를 사용하는 이집트 시리아의 금 경제권과 은화를 사용하는 페르시아의 은 경제권을 계승해 금은 복본위제 체제를 정비했다. 황제의 권위로 돈에 가치를 부여했던 중국처럼, 이슬람 세계에서도 유일신 알라의 권위가 돈에 가치를 부여했던 셈이다. 이슬람 제국의 대규모 교역은 산출량이 많은 은이 뒷받침했다. 이슬람제국의 은 주산지는 이란의 호라산 지방과 실크로드의 중심이었던 소그드 지방이다.





동(구리)의 산출량이 적었던 송(宋)은 심각한 원료 부족 상태에 직면했다. 지폐는 송나라 시대에 출현했다. 베네치아의 상인 마르코 폴로는 동방견문록에서 황제가 발행하는 지폐, 즉 교초를 보고 놀라게 되었다. 종이조각이 금이나 은과 맞먹는 취급을 받는 상황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신기한 광경이었다.

'대항해 시대'라고 부르기도 했던 '신항로 개척 시대'는 경제적 욕망이 큰 원동력으로 작용하기 시작한 시대였다. 아즈텍 제국과 잉카 제국이 스페인인에게 단기간에 정복된 이유는 스페인인이 들여온 천연두가 창궐하며 발생한 공포 때문이었다. 피사로와 스페인 국왕이 손에 넣은 금은 당시 유럽 금의 연간 산출량보다 많았다.

피사로는 힘들이지 않고 어마어마한 '금'을 챙겼다.

그러나 신대륙에서 유럽으로 들어온 귀금속은 대개 은이었다. 막대한 양의 은이 신대륙에서 스페인의 세비야 항구로 흘러들어 왔다고 한다. 약 40%가 스페인 왕실의 수입이 되었고, 나머지는 전쟁 비용과 은행가에게 지급되는 이자, 물품 구매비로 유럽 각지로 흘러나갔다. 신대륙에서 들어온 대량의 은 때문에 은 가격은 폭락했고, 16세기부터 17세기 초반에 걸쳐 유럽의 물가는 3배에서 4배로 가파르게 치솟았다.

시중에 돈이 남아도는 현상이 발생하자 이자를 얻겠다는 목적으로 돈을 운용하는 사업이 활발해졌다.





상인의 나라 네덜란드는 청어가 가져다준 부와 우수한 뱃사람, 대량의 어선을 제조하는 과정에서 축적된 조선업을 무기로 패권 확립에 성공했다.

1609년에는 암스테르담시를 등에 업은 암스테르담 상업은행이 설립된다. 암스테르담 은행에서는 예금자의 의도에 따라 결제를 위해 타인의 계좌로 예금을 이체할 수 있었다. 예금된 돈을 은행에서 기호화하고 손쉽게 타인의 계좌로 이체할 수 있었다.

1602년에 동인도회사가 설립되어 네덜란드 경제를 주도하게 되자 암스테르담 은행은 동인도회사의 단기자금을 조율하게 되었고, 은행과 기업의 유착 관계가 심해졌다. 은행은 예금으로 비축된 '돈'을 기호화해 동인도회사 계좌로 옮겨 투자했다. 은행이 앉은 자리에서 돈을 버는 방식으로 이자를 벌어들이는 구조가 이렇게 완성되었다.

설탕은 브라질과 서인도제도가 주산지로, 대서양 상권을 먹여 살린 효자 상품은 목돈 마련에 제격이었던 설탕이었다.

설탕 생산이 늘어나자 노예무역의 규모가 덩달아 커졌다. 영국의 리버풀 항구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는데, 이곳에서는 노예무역이 손쉽게 한몫 챙길 수 있는 괜찮은 일자리로 여겨졌다.

존 뉴턴은 노예무역에 종사했고 노예선 선장이 되었다. 노예무역에서 손을 씻은 존 뉴턴은 영국 국교회 목사로 거듭났고 55세에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 가사를 썼다.

소설가 대니얼 디포가 1719년에 쓴 로빈슨 크루소라는 해양 소설도 노예무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로빈슨 크루소는 신의 가호를 빋으며 인간의 지혜로 역경을 헤져낸 전형으로 교과서와 아동 서적 등에 많이 실렸다. 소설 속 로빈슨크루소는 브라질에서 농장주가 된 영국인으로, 노예를 사기 위해 아프리카 기니로 향하는 배에 올랐고, 1659년에 무인도에 표류한 것으로 나와 있다.





17세기 후반에 접어들자 영국이 대서양 무역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템스강에는 수많은 범선이 오갔고 런던은 유럽 경제의 심장으로 거듭났다.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에 유럽 경제의 주도권을 영국이 잡은 시기에 체계를 갖춘 로이즈 보험이 탄생했다. 지금도 세계 각국의 선박이 가입하는 해상보험의 중심지는 런던이고, 최대 보험을 인수하는 조직이 바로 로이즈다. 보험의 발상지도 런던이다. 보험 제도와 도시 활동의 활성화는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민자를 계속 받아들인 미국은 점점 양극화가 심각해지고 있었다. 이때 미국은 43년만에 저금리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고 이는 주택 장만 기회로 보였다. 대출을 받아 주택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주택 건설 열풍이 일었고 1997년부터 2006년까지 10년 사이에 주택 가격은 무려 124%나 상승했다. 상승 곡선을 그리는 주택 가격은 빠르게 돈을 불리려는 욕망, 즉 투기와 결탁하게 되었다.

미국 주택 대출은 '논리코스론'이라는, 집을 담보로 하는 대출로 주택을 간단히 전매할 수 있었다. 주택은 담보로 활용되어 자동차 대출을 받거나 주택 가격이 오르면 전매해 갭투자로 돈을 벌 수도 있었다. 주택 가격이 오르는 한 대출은 손쉽게 갚을 수 있었고, 거액의 시세차익도 얻을 수 있었다. 여차하면 주택을 내놓으면 된다는 사람도 많았기에 점점 주택은 투자를 넘어 투기의 수단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주택을 파는 영업사원은 성공보수제로 인해 집을 많이 팔아야 했고 더 많은 수익을 위해 주먹구구식으로 심사한 뒤 집을 판매했다.

채권 불이행 확률이 높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상품의 판매 확대가 바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의 출발점이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2년 동안 1조 달러의 돈이 서브프라임 시장으로 흘러들어왔다.





처음에는 서브프라임론도 유망한 신주택 시장 개척 수단으로 여겨졌다. 대부분의 서브프라임론은 2년만 저금리고 이후엔 가파르게 올리도록 설정하게 되어 있었는데 이는 '티저론'이라 부르는 대출 상품이었다.

저소득층일수록 대출금이 연체될 확률이 높았고 리스크가 높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돈을 빌려주는 쪽도 빌리는 쪽도 자고 일어나면 오르는 집값에 감각이 마비되고 말았다.

서브프라임론에 금리가 오르는 시기가 오자 당연히 대출금 연체, 납부 불능이 빈발했다. 버틸 수 없게 된 사람들은 집을 내놓기 시작했고 2006년 6월을 정점으로 급격히 주택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이다. 주택 가격의 급격한 하락은 부동산 대출회사의 줄도산으로 이어졌고 금융기관에도 엄청난 손실을 입혔다.

통화 위기의 기본 유형은 고도의 경제 성장을 거듭한 신흥국에 하이 리턴을 추구하는 헤지펀드 등의 돈이 대량으로 유입되며 시작한다.

개발 열풍이 일어나 수입이 증가하고, 국가 경제 수지는 적자인데 엄청난 돈이 유입되어 외환 준비액이 상승한다. 일종의 거품이다. 그런 상황에서 어떤 계기로 자금 유출이 시작되면 통화는 하락하고 통화 유출이 연속으로 일어나, 통화 가치가 대폭락한다. 투자가는 동요하고 통화 가치의 폭락을 이용한 투기 자금이 불난 집에 부채질하듯 판을 키운다.

- 「세계 각지에서 되풀이되는 경제 위기」 중에서





세계적으로 시장에 여유 자금이 흘러들어 와 투자·투기의 비대화, 난개발로 인한 지구 환경 악화, 세계적인 경제·사회 격차 확대와 같은 심각한 문제가 산더미처럼 쌓인 지금, 시야를 넓혀 이상적인 ’돈‘의 모습을 냉정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돈이 세계사를 바꾼 결정적 순간들을 살펴보는 이 책은, 기화화한 돈이 전 세계를 도는 불확실한 시대에서 살아가기 위해 앞으로의 돈의 흐름, 나아가 세계사의 흐름을 예상하고 대비하는 데에도 도움을 줄 것이다.


저자 : 미야자키 마사카츠


1942년에 도쿄에서 태어나 도쿄교육대학 문학부 사학과를 졸업했다. 도립미타고등학교, 구단고등학교, 쓰쿠바대학 부속고등학교 세계사 교사를 역임했다. 이후 쓰쿠바대학 강사와 홋카이도교육대학 교육학부 교수를 거치며 20년 넘게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의 편집과 집필을 담당했다. NHK 고교 강좌 〈세계사〉의 전임 강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2007년 퇴임 후, 중앙교육심의회 전문부회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시에 NHK 방송 문화센터, 아사히 컬처센터, 도큐 세미나 BE 등에서 활발한 강의 활동을 펼치며 역사서의 저술에 힘쓰고 있다. 저서로 『하룻밤에 읽는 세계사』, 『지도로 읽는다』, 『물건으로 읽는 세계사』, 『세상에서 가장 쉬운 패권 쟁탈의 세계사』, 『흐름이 보이는 세계사 경제 공부』 등 다수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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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의 헌법 이야기 - 인간의 권리를 위한 투쟁의 역사
김영란 지음 / 풀빛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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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김영란의 헌법 이야기』는 딱딱하고 엄중한 법 이야기가 아니다. 독자도 이 책을 손에 들기 전까지는 '김영란'이라는 엄숙한 분위기에 압도돼 무척 딱딱한 책일 거라고 짐작했다. 그 유명한 부패 공무원에게 서슬 퍼런 법으로 각인돼 청렴한 공무원으로 바뀌게 하는 데 큰 힘을 쓰신 분이라고 알고 있어서다.

또 여성 최초의 대법관 출신으로 이렇게 재밌게 책을 쓸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판결문은 한두 번 들어서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어서 생긴 선입견이다). 책을 펼치자마자 눈에 띄는 게 법 제정의 역사. 무겁게 쓰지 않고 어떤 취지로 어떤 법이 제정됐는지 여행 가이드가 안내하듯이 써서 독자들의 부담이나 선입견을 완전히 무장해제시킨다.

그래서 이 책의 구성이 헌법이 만들어지는 역사의 현장으로 여행을 떠나는 독특한 형식의 책이다. 마치 에세이처럼.

저자는 여행을 안내하는 가이드 역할로 여행 도중 떠오르는 가상의 질문에 대답하는 방식이다. 문답식이어서 구어체로 씌여서 한층 정겹다.

이 책에 나오는 여행지는 영국, 프랑스, 미국, 독일 그리고 대한민국이다. 이 책에서는 각 나라의 헌법이 어떤 상황에서 만들어졌고, 어떤 한계를 지녔으며 우리는 그들의 역사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상세히 알려 주고 있다.

저자는 이미 2016년에 법과 정의에 대한 상식의 철학을 이야기한 『김영란의 열린 법 이야기』를 펴낸 적이 있다는 사실도 이 책을 읽고서야 알았다. 독자의 법에 대한 무지는 '못 말리는 정도'라는 사실을 고백한다.





이 책의 시작은 고대 그리스 극장이다. 책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에서는 연극 주제로 ‘경의’(reverence)와 ‘숙고’(deliberation)를 자주 다루었다. 여기서 ‘경의’란 인간의 한계를 자각하는 지도자의 덕목이고 ‘숙고’란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도 좋은 결정을 내리는 능력이다.

즉 경의란 정치인을 포함한 소수 엘리트 전문가가 지녀야 하는 겸손이고, 숙고란 시민이 엘리트의 말을 의심하고 질문하며 바람직한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는 능력을 지칭한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대중이 숙고를 하려면 그에 앞서 ‘경의’의 감정을 지닌 전문가가 제대로 된 논변을 해줘야 하는데 요즘은 전문가보다는 유명인을 정치인으로 뽑는 데다 주장으로 점철된 논변을 하는 유튜버들이나 가짜 뉴스가 너무 많이 퍼져서 시민이 숙고하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지난 2018년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위원장을 맡았을 때 성별, 나이, 직업, 지역 등이 고르게 분포된 시민참여단 490명을 선발한 뒤 전문가와 질의·응답하는 과정을 거쳐 4가지 방안 중에 바람직한 입시제도 개편 방향을 고르도록 숙고했던 경험을 이야기한다.





독자는 지금부터 마치 한 편의 연극처럼 한 장면씩 이어지는 치열한 헌법 제정의 현장을 관람한다. 지금껏 어떤 책에서도 느껴 보지 못한 전율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현재 우리가 맛보는 민주주의라는 달콤한 열매가 사실은 수많은 사람의 피를 먹고 자랐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에서 비롯된다.

막이 내린 연극 무대를 뒤로하며 독자는 자문한다. 앞으로 우리 헌법이 담아야 할 가치가 무엇인가.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헌법 개정에 내가 참여할 방법은 또 무엇인가.

미리 밝히지만 이 책의 마지막 장은 우리나라 헌법 제정과 개정에 관한 역사다. 역설적이게도 이것은 이 책의 시작인 대한민국 헌법 개정에 대해 불붙은 논쟁과 맞닿아 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새로 만들어진 헌법 제10호가 현재 우리나라에서 적용되는 헌법이다.

대통령 직선제 등 의미 있는 내용을 확립한 헌법이긴 하나 2000년대 중반부터는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개헌 논의가 일기 시작했다. 이후 개헌에 대한 적극적 행동도 있었으나, 아직 그 어떤 정치적ㆍ국민적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채 대한민국 헌법 개정은 표류 중이다.





법이라는 가장 보수적인 틀 안에서 30년을 재직한 공직자이지만, 한순간도 법의 굴레에 매이지 않았던 김영란.(저자 이름을 존칭도 없이 써서 좀 불경스럽지만 '김영란법' 때문에 친근감이 입에 붙어서니 양해해 주시길)

그는 시민을 위한다는 법의 가장 본질적인 속성을 자신의 판단 근거로 삼았고 법이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한 노력을 자신의 능력 안에서 경주했다.

판관의 자리에서는 법이 보호해야 할 약자의 편에서, 국민의 권익을 대변해야 할 자리에서는 부당함 없는 정의로움을 위해 일했다.

저술가의 자리에 선 그는 법의 편이 아닌 사람을 위한 법에 대해 논하고, 이제 법의 정수 헌법에 이르렀다. 역시 헌법을 보는 그의 시각은 헌법을 위한 헌법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헌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저자는 대한민국에 개헌이 필요하다면, 오롯이 지키고 담아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탐색하자고 말한다. 탐색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자 우리가 잊었던 헌법의 시작에서 답을 구해야 한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자신과 함께 그 지난한 길을 떠나 보자고 권한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모두는 개헌에 책임이 있고 헌법에 책임을 물어야 하므로. 그러므로 이 책은 김영란의 헌법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모두가 써 나가야 할 헌법 이야기다.





저자는 먼저 책 전체를 관통할 주제인 교양교육의 가치를 설명하기 위해 그리스 시대 벌어진 『소크라테스의 재판』을 인용한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두고 ① 아테네가 스파르타에 지배당하면서 생긴 후유증을 해소하기 위한 정치적 처벌, ② 공동체를 중요하게 여긴 아테네와 달리 자유를 중시한 소크라테스 양심에 대한 처벌, ③ 윤리적 사유의 역사적 출발점이라는 다양한 견해를 접하며 독자의 시야는 넓어지고, 교양교육을 중시하던 그리스 시민들이 소크라테스의 재판에 실패한 모습을 보여 주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등을 정리했다. 이른바 큰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저자의 세심함은 독자에게 헌법에 대한 진입 장벽을 낮춰 준다.

이어서 헌법이라는 딱딱한 대상에 대한 독자의 거부감을 풀어 주기 위해 문학과 예술 작품을 들어 이야기가 시작된다. ④ 대헌장을 승인한 영국 존 왕의 시대에 활약하던 로빈 후드에 대한 『로빈 후드의 모험』, ⑤ 프랑스 혁명이 진행되는 혼란한 시기의 정치,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면을 그려 낸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 ⑥ 영국을 떠나 아메리카 대륙에 새로이 정착한 초창기 식민지인들의 모습을 담은 『주홍글자』, ⑦ 평생 평화를 위해 헌신하고 전쟁의 참상을 알리려 노력해 온 케테 콜비츠의 『죽은 아들을 안은 어머니』, ⑧ 그리고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에서 가장 큰 기폭제인 박종철·이한열 열사의 죽음과 당시 서울의 모습을 이야기한 『1987』 등(이상 번호 무의미순)이다.

대법관이라고 하면 묵직하고 근엄함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릴 독자에게 저자는 배려로 답한다. 동시에 독자가 던질 질문을 예상하고 그에 맞는 대답을 하며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질문과 대답을 활용한 교육인 문답법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효과적인 교수법 중 하나이며, 소크라테스 역시 자주 애용했다고 배운 바 있다. 저자는 이러한 문답법의 방식을 이용해 독자가 저자의 말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의문을 갖고 사유하도록 돕는다점이 매우 사려깊다고 생각한다.





불과 2백 년 전, 동·서양을 가릴 것 없이 거의 모든 국가의 기본 통치 체제는 전제군주제였다. 군주인 왕은 국가의 모든 통치권을 장악하고 단독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존재였다. 입법, 사법, 행정권이 분리된 현대 국가와 달리 전제군주제를 도입한 나라에서 이 권한은 모두 왕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었고, 입법 및 사법 기관을 포함한 모든 국가 기관은 왕의 결정과 명령을 백성에게 전달하는 곳에 불과했다.

‘왕은 신으로부터 권한을 부여받은 존재’라는 왕권신수설은 국가의 기본 이념이었으며, 왕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는 왕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인식이 지배하고 있어서 왕에 순종하는 것이 미덕이었다.

강력한 권력을 가진 왕에 의한 통치는 모든 결정에 대한 권한이 왕에게 있어서 의사결정이 빠르고, 왕이 현명한 판단을 내리면 크게 발전할 수 있다. 조선의 세종대왕은 한민족 역사상 가장 훌륭한 왕으로 평가받을 정도로 많은 분야에서 업적을 남겼고 건국 초기 기틀을 튼튼히 잡아 5백 년 왕조를 열었다.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가 통치하던 청나라는

전성기를 달렸고 특히 옹정제는 중국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부정부패를 해소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로마 역시 5현제가 통치하는 2백 년 동안 팍스 로마나(Pax Romana)라고 불리는 빛나는 시기를 이룩했고 그리스와 함께 서양 문명의 뼈대를 일구었다.

그러나 인간은 완벽하지 않으며 왕 역시 인간이라는 점에서 모든 왕이 항상 현명한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 또한 전제군주제에서는 왕의 권한이 너무 강력해 제대로 된 정치적 권력 견제가 이루어지지 못한다. 때문에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한 인간의 타락은 자신과 주변 몇몇에만 영향을 끼치지만, 왕의 타락은 곧 국가의 파멸로 연결된다.





우리는 20세기 초까지 전제군주제를 유지했지만, 한참 전부터 지구 반대편 유럽과 아메리카에서는 왕의 권력을 헌법으로 제한하거나 왕을 축출하고 공화정을 세우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영국의 존 왕에 맞서 싸운 귀족들은 왕의 지배 대신 법의 지배를 주장하며 대헌장에 서명을 요구했다.

프랑스의 제3신분을 중심으로 한 다수의 민중은 루이 16세에게 구체제의 모순을 개선하라고 요구했고 프랑스 혁명을 통해 인권선언을 만들었다.

대영제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의 식민지인들은 ‘대표 없는 곳에 과세 없다’는 주장을 내세우며 영국의 식민지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정부를 세우며 독립에 성공했다. ‘왕도 법에 따라야 한다’, ‘사람이 아니라 법이 국가를 통치한다’는 주장은 이렇게 시작됐고 차례로 다음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며 민주주의를 만들어 왔다.

세 가지 사례는 모두 변화하는 시대상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구체제만 고수하려는 세력과 그에 반발하는 신흥 세력 간의 다툼이다. 물론 새로운 흐름이라고 해서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젊은이는 강력한 추진력과 매서움을 지니고 있지만 감정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해 일을 그르치기 일쑤다. 당시 가장 젊고 현대적인 헌법이라는 찬사를 듣지만 민주주의를 보장하지 못한 민주주의라는 평가도 받는 독일 바이마르 헌법의 사례처럼 독일 국민은 스스로 민주주의를 버리고 전체주의를 선택한다.

경제는 엉망이고 정치 체제가 안정적이지 않은 가운데, 국민에게 올바른 길을 제시해야 할 정치인들은 오히려 거짓 정보로 국민을 선동하고 이를 지적하고 개선을 요구해야 할 지식인마저 무너진다면 파멸은 걷잡을 수 없다. 때문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젊음이나 새로운 어떤 것보다 앞서 말한 경의, 정의, 숙고의 능력이다.





한계를 파악할 줄 알았다면 존 왕은 억압 대신 덕치로 백성들을 돌보고 국가를 다스렸을 것이고, 윤리적이고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었다면 영국은 영국인과 미국의 식민지인을 차등을 두어 대우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숙고를 갖추었다면 루이 16세와 독일 국민은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음에도 올바른 판단을 내려 변화의 흐름을 타지, 휩쓸려 내려가지 않았을 것이다.

이 세 가지 능력은 전제군주제의 주인이 왕에게 필요했던 것처럼 민주공화제의 주인인 국민에게도 필요하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것은 과거의 사례를 간접적으로 경험하여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특히나 우리나라에는 다른 나라처럼 민중이 주체가 되어 지배층을 상대로 투쟁을 통해 이룩한 상향식 민주주의가 아니라 광복 이후 진주한 미군에게 영향을 받아 미국의 제도를 정치 지도자들이 도입해 민중에게 전달한 하향식 민주주의가 자리 잡았기 때문에 올바른 역사교육에 대한 비중은 결코 작지 않다. 광복과 한국전쟁 직후, 국민 개개인의 문맹률도 높고 경제 발전이 최우선 목표이던 시대 상황을 고려하면 민주주의에 대한 교육이 부진했던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1987년의 민주화 운동으로 절차적 민주주의를 확립한 지금은 그동안의 실수를 인정하고 그 실수로부터 배울 준비가 되어 있다.




1987년 민주화 운동을 거친 뒤 제정된 헌법 제10호는 독재 정권을 타도하고 국민의 염원인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하는 등,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민주주의 본연의 모습을 되찾고 통치 원칙을 확립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6.29 선언 이후 4개월도 안 되는 짧은 기간 사이에 개헌안 작성, 국회 본회의 통과, 공포까지 진행하다 보니 그 과정에서 심도 있고 깊은 논의가 이어지지 못했다. 때문에 현행 헌법은 국민의 권리가 너무 추상적이고 모호하게 표현되어 있다는 점, 소수자를 제대로 배려하지 못했다는 점, 다른 법과 충돌한다는 지적이 있었고 시간이 지나 21세기에 접어들면서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점이 하나씩 나타나자 헌법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일었다. 결정적으로 2016년에 터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는 시민들로 하여금 대통령에게 너무 많은 권한을 부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게 만들었고 이는 자연스레 헌법 개정에 대한 요구로 이어졌다.

이 시기 헌법 개정에 대한 국민의 열망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았고 문재인 대통령도 이를 반영하여 헌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의결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부결된 뒤 현재는 그 어떤 논의도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다.

앞에서 우리는 영국, 프랑스, 미국의 사례를 통해 정당하지 않은 권력을 휘두르는 왕과 그에 맞서 싸우는 민중의 모습을 살펴봤다.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구체제만 고수한 채 변화를 희망하는 이들을 탄압하고 거부하며 몽니를 부리는 모습은 그 어떤 것보다 추하고 그 끝은 대부분 파멸로 귀결된다. 변화는 때때로 두렵고 처음 보는 길을 걷기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충분한 교양교육을 통해 기본적 소양을 기른 국민이라면 전문가의 의견을 경청하고 상황을 제대로 파악해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자신에게 부족한 점을 스스로 인식하고, 학교 교육만이 아닌 부수적인 활동 등을 통해 자신의 모자람을 보완하고 완전함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진정한 민주시민으로서의 모습이 여기서 발현된다.





저자는 민주주의는 소수 엘리트가 아니라 사안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 국민들의 숙고로 다스리는 정치라며, 비록 속도가 좀 느리더라도 국가의 큰 방향은 전문가의 토론을 경청하고 학습한 다수의 시민이 정하는 게 옳다고 주장한다.

요즘 논의되는 헌법 개정 작업 역시 소수 엘리트에게만 맡겨서는 안 되고 시민의 숙고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이 책에서 각 나라의 헌법이 겪은 파란만장한 역사 속에서 시민의 숙고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어떤 참혹한 결과가 나타나는 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공자는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진정한 앎”이라고 했다. 그리스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 입구에 새겨졌고 소크라테스가 살아생전 중요하게 생각해 자주 인용했던 “너 자신을 알라” 역시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였다. 체면, 지위, 역할 때문에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지 못하고 아는 것처럼 행동하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른다.

자신이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묻는 자는 딱 5분만 바보이지만, 묻지 않는 자는 영원한 바보이다. 자신에게 부족한 능력은 무엇인지, 왜 그것이 필요한지, 어떻게 하면 모자람을 채울 수 있는지 알려고 하는 자세를 국민 대다수가 갖출 때 우리 사회는 더욱 진보할 것이다.


저자 : 김영란


1956년 부산 출생.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재학 중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1981년부터 판사로 일했다. 2004년에는 대한민국 최초 여성 대법관이 되었고, 6년간 대법관으로 재직하면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배려하고 국민의 기본권 보호를 위해 노력하여 ‘소수자의 대법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2011년부터 2012년까지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하면서 우리 사회의 정의 확립에 큰 영향을 미치고 대중에게는 ‘김영란법’으로 알려진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을 입안했다.

2013년부터 2019년까지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로 학생들과 만났고, 2019년 4월부터 대법원 양형위원회 위원장으로, 9월부터 아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로 일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김영란의 열린 법 이야기》 《판결과 정의》 《김영란의 책 읽기의 쓸모》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가 있고, 함께 쓴 책으로 《김영란법, 김영란에게 묻다》 《문학과 법》 《이제는 누군가 해야 할 이야기》 등이 있다. 청조근정훈장, 한국여성지도자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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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을 씁니다 - 1%의 외로움, 나만 아는 이야기
김석현 지음 / 북스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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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 외로움'. 부제로 사용된 문구다. 『외로움을 씁니다』란 제목 아래 왜 이런 부제를 달았을까. 친절하게 '나만 아는 이야기'란 풀이도 달았다. 한참 생각해야 뜻이 제대로 읽힌다. 독자가 SNS를 좋아하지 않아서 SNS 글쓰기에 서툴러서 그런 것 같다.

나만 아는 1%의 외로움은 내 삶에서 특정한 곳이나 상황에서 나만 느끼는 외로움을 의미할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이 책의 글들은 아주 쉽게 술술 읽힌다.

“외로움을 쓰는 것은 결국 나와 가까워지는 과정이다!”

"외로울 필요는 없지만, 굳이 외롭지 않을 필요도 없다!"는 구호 같은 문장도 무슨 의미인지 금세 알아차린다.

'미처 알지 못했던 ‘외로움’에 대한 반전 에세이'란 광고 카피 같은 문구가 오히려 거추장스러울 정도다.

작가 김석현의 외로움을 깨닫자 이젠 SNS 글쓰기를 읽는 것은 문제될 게 없다. 그냥 쓰고 싶은 것을 주제만 유지한 채 생각나는 대로 메모식이든 정리해 책으로 펴낼 땐 약간의 첨삭만 있으면 가능할 듯싶다. 나만의 외로움을 쓰는 데 문장의 격식 같은 게 필요없을 터. 그런 문장이 오히려 작가의 외로움에 대한 이해가 충분해진다.

지면 일부만을 활용해 글자의 크기나 글자체, 색을 바꿔가며 마치 SNS식으로 배열한 것은 작가와 편집진의 의견일 것, 독자는 그저 읽고 느낌으로 받아들이면 될 정도로 평온한 마음으로 독서에 임할 수 있다.




사실 인간은 모두 특별한 상황이 아니어도 알게 모르게 외로움을 느낀다. 마음에 둔 사람과 친해지지 못해 외롭기도 하고, 당장 놀 친구가 없어서 외롭기도 하고, 타인의 경쾌한 일상을 보며 괜히 외로워지기도 한다.

모두에게는 각자만의 외로움이 있다. 다만 외로움을 무겁고 쓸쓸한 감정으로만 바라볼 필요가 없을 뿐.

“1%의 외로움은 나를 위한 감정이다.” 이 책은 외로움이야말로 해소해야 할 감정이 아니라, ‘자신을 오롯이 마주하는 기회’라 이야기한다.

작가는 '외로움을 씁니다'라는 제목이 말하듯, 외로움이라는 마음의 공백을 관찰하고 글로 쓰는 동안 자연스럽게 자신과 가까워지게 되었다고 말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언제 외로움을 느끼는지,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일상의 장치는 무엇인지 알게 된 것이다.

다른 이들과의 관계에 집중하기보다 혼자만의 시간을 풍성하게 채우고 싶다면, 이 책을 통해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가져보자. 어쩌면 가끔 나를 외롭게 하는 외로움이 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책에 따르면 혼자서도 시간을 잘 보내는 성향 덕에 살면서 외로울 일이 없을 거라 믿었던 작가는, 파리라는 도시에 살면서 난생 처음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마주한다. 여행자도 아니고 완벽한 현지인도 아닌, 모호한 경계인의 입장이 되어보니 자신도 얼마든지 외로울 수 있음을 실감한 것이다. 작가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거나 다른 이들에게 외로움을 털어놓는 대신, 자신의 외로움을 글로 써보기로 한다. 외로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나름의 시도였다.

“외로움에 관해 쓰기 시작한 건 사실 어느 정도 외로움이 가신 후였다. 글쓰기를 통해 심리적 여유가 생기자 비로소 외로움을 관조할 수 있게 되었고, 덕분에 나의 외로움을 복기할 수 있었다. 일부러 시간을 낸 건 아니었다. 이동 중에, 식사 중에, 자기 직전에라도 외로움과 마주치면 기록을 남겼다. 하루 일과를 쓰듯 그날 느꼈던 외로움과 그에 대한 생각을 적고, 더러는 내 일상을 외로움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해석하고 기록했다. 외로움에는 타인의 유려한 글보다 나의 서툰 글이 더 위로가 된다는 사실을 이때 알았다.”

- 본문 중에서





우리는 종종, 알게 모르게 외로움을 느낀다. 정도는 다르지만 외롭지 않은 사람은 없다. 또한 외로움은 상황에 따라 변하는, ‘관찰 가능한’ 감정이기도 하다. 저자는 자신이 언제 외롭다고 느끼는지, 다른 사람은 언제 그런지, 외로움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나름대로 정리해갔다. ‘피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외로움과 친해질 수 있을까?’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질문이다. 작가는 ‘이렇게 살아야 덜 외롭잖아’라는 고정관념에 집착하는 대신,

나만 아는 외로움에 대해 세밀하게 쓰면서부터 오히려 외로움의 눈금이 낮아지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외로움은 타인과의 거리 조절이 아닌 ‘나 자신’을 충족해야 해결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선뜻 말하기 어려운 감정이었지만 외로움을 쓰는 동안 누구에게든 ‘털어놓을 수 있는 이야기’로 변해갔다.





“외로움을 말끔히 날려버리는 건 불가능하다 해도,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덜 외로워질 일상의 장치를 찾아낼 수 있다.

외로움이라는 마음의 공백을 관찰하고 채워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를 위한 시간을 갖게 된 것, 내가 끝까지 즐겁게 해주어야 하는 사람은 ‘나’임을 알게 된 것, 모두 외로움을 쓰면서 얻은 수확이다." <- 본문 중에서>

외로움에 대해 썼지만 결국 이 책은 나와 가까워지는 과정의 기록이다. 아울러 조금은 외로워도 괜찮다는 무언의 위로이다. 몰랐던 자신을 알고 싶은 사람, 마음속 이야기를 터놓고 써보고 싶은 사람, 외로움을 통해 소소한 행복의 장치를 찾아가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단언컨대 1%의 외로움은 나를 위한 감정이다. 어쩌면 외로움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활기차고 능동적으로 꾸려갈 에너지가 아닐까. 작가의 외로움의 색깔이 인지되자 빠르게 공감대도 형성된다. 당연이 독자도 나만의 외로움을 갖고 있으니까.

처음 겪는 감정 앞에서는 누구나 당황하기 마련. 파리에서 외로움을 마주한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타국에서 온 나는 외로움을 토로하고 위로받을 지인이 많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외로움이란 가까운 사람일수록 오히려 드러내기 어려운 감정이다.

누구에게나 ‘나만 아는 외로움’이 있는 이유다.

다만 인간은 이성적 존재이므로 곧 자신의 감정을 직시하고, 상황에 적응하고, 대안을 모색한다. 물건을 사거나, 먹고 마시는 데 탐닉하거나, 게임을 하거나, 친구를 사귀거나. 모두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들이다. 물론 모두 도움이 된다. 내 경우 의외로 효과가 없었던 건 읽기, 의외로 도움이 되었던 건 쓰기였다. 외로움에는 타인의 유려한 글보다 나의 서툰 글이 더 위로가 된다는 사실을 이때 알았다.

- 「프롤로그」 중에서




외로움에 대해 쓰면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은 나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혼자 있을 때 외로움을 느끼기 쉬운 만큼, 글을 씀으로써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알아가는 것만큼이나 흥미로운 일이다. 그동안 내가 별 뜻 없이 해온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고, 내가 무얼 할 때 가장 신나는(!) 사람인지 알게 된다.

나는 기본적으로 먹고 마시는 걸 즐기는 사람이었다. 특히 쓰는 행위와 마시는 행위는 분리될 수 없다고 해도 좋을 만큼, 글을 쓰며 무언가 마시는 걸 즐겼다. 집에서 거리가 있는 카페까지 굳이 걸어가 원두를 사와 커피를 내리고, 실력 좋은 바텐더의 바에 일부러 찾아가 칵테일을 맛보고, 이왕이면 구하기 어려운 맥주를 찾아 마셔보는 것. 모두 쓰는 행위가 가져다 준 취미다.

- 「파리의 와인가게」 중에서


직장은 본질적으로 외로운 공간이다.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기분은, 겪어본 사람만이 아는 외로움이다. 정직원과 ‘심리적 파티션’을 사이에 두고 앉은 인턴은 외롭다. 취준생과 회사원의 경계에 있는 신입사원은 외롭다.

이제 회사에 적응했나 싶었는데 슬럼프에 빠져버린 대리는 외롭다. 이대로 평생 부장처럼 살아야 하나 비관하는 과장도 외롭다. 이제는 패기 있게 사표를 쓸 수 없는 부장도 외롭다. 드라마 〈미생〉처럼 아름다운 장면이 존재하지 않는 걸 깨닫게 된 모든 직장인은 외롭다.

#스토브리그


종종 사람들에게 묻는다. “외로움이 뭐라고 생각해요?”

이때 사람들의 대답이 재미있다. 외로움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대신 자신이 언제 외로운지 말한다. 사랑이 뭐냐고 물었을 때와는 반응이 사뭇 다르다.

외로움을 정의하기 어려운 이유는 같은 외로움이라도 상황에 따라 색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외로움이라는 ‘상황’을 관찰하기 시작한 것도, 외로움을 외롭다고만 느끼지 않게 된 것도 이것을 알게 되고서다.

#다자키쓰쿠루





소울푸드가 뭐예요?” 미식의 도시 파리에 살아서인지 종종 듣는 질문이다. 라따뚜이? 꼬꼬뱅? 부야베스? 상대는 내심 프랑스 전통음식들을 기대하고 물었을 텐데 난 늘 머뭇거리다 결국 명확한 답을 하지 못한다. 심금을 울릴 만큼 애착이 가는 음식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 그저 맛있으면 다행이고 맛없으면 서글퍼지며,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맛있는 음식도 달라진다.

생각해보건대 라비올리 역시 나의 소울푸드는 아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대변해주는 음식도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 나에게 파리에 대해 이야기해보라면, 파리에서 느꼈을 외로움에 대해 묻는다면, 라비올리로 이야기를 시작할지도 모르겠다.

처음으로 나만의 라비올리를 만들고 신기했던 기억, 어정쩡한 위치에서 더욱더 크게 느꼈을 소외감을 덜어준 레시피의 분투, 친구들과의 맛집투어를 대신해준 든든한 간식. 라비올리는 외로웠다면 외로웠을 나의 식탁을, 어쩌면 마음을 풍성하게 채워준 존재감 있는 친구다. 그게 소울푸드라면 소울푸드겠지만.

- 「라비올리 한 접시」 중에서





파리 사람들도 나처럼 카페에서는 덜 외로워지기 때문일까.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파리의 카페에서는 비교적 차가운 파리 사람들의 따뜻한 면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이를테면 카페를 나서는 길에 커피나 빵을 하나씩 더 사가는 이들이 종종 있다. 파리에는 노숙자가 많은데 빵 하나, 커피 한잔을 더 사서 이들에게 슬며시 쥐여주는 것이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돈을 주면 술이나 담배, 마약을 살 수도 있다는 염려가 깃든 사려 깊은 행동이다. 언젠가 나도 해봐야지, 하게 되는 시크한 배려랄까.

카페의 무엇이 파리 사람들을 따뜻하게 만드는지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파리를 떠날 때까지도 알지 못했다. 그저 커피의 따뜻한(여전히 대부분의 파리 사람들에게 커피는 차갑게 마시는 음료가 아니다) 속성이 마음의 온도를 높여주는 건 아닐까 추측해볼 따름이다.

서울에서 나는 친구를 만나는 대신 카페에 앉아 조용히 노트북을 켠다.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많지는 않지만 카톡을 보내면 즉각 답을 보내주는 친구가 파리에 한 명, 팔로알토에 한 명, 서울에 한 명 있다. 셋이 각기 다른 시간대를 사는 덕분에 나는 이들 중 누군가와 늘 연결되어 있다. 누군가와 물리적으로 연결되었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건 누군가와 끊김 없이 이어져 있다는 것 아닐까?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영광은 내 인생에 찾아오지 않을지 몰라도, 카톡이 멈추지 않는 나의 삶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 대단히 흡족하다. 외로운 파리에서 터득한 삶의 요령이다

- 「카페의 온도」 중에서





“외로움에 대해 쓴다고?”, “외로움을 글로 쓸 수 있을까?”

외로움에 대한 책을 낸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모두 비슷했다. 나 역시 처음에는 마찬가지였다. 외로움은 다른 이들에게 선뜻 말하기 망설여지는 감정인 데다, 외로움처럼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 감정을 온전히 글로 풀어내기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나라는 사람을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꽤 이성적인 편이다. 평소 일상을 관찰하고 거기서 느끼는 것들을 연결해 나만의 관점을 만들어가는 글쓰기는 즐기지만,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나로서는 모험에 가까운 시도였다. 그것도 외로움이라는 낯선 주제로.

그런 내가 이 책을 쓸 수 있었던 것은 디지털, 그러니까 온라인이라는 존재 덕분이었다. 온라인은 오프라인과 또 다른 세상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완전히 떼어놓을 수는 없지만, 분명 온라인에서만 할 수 있는 이야기, 온라인에서만 튀어나오는 감정이 있다. 때로는 얼굴을 맞대고 말하는 것보다 메신저로 대화할 때 오히려 속내를 털어놓기 편한 것처럼, 온라인이어서 내려놓을 수 있는 순간이 있다.

무언가를 ‘쓴다’는 행위는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속성을 띠는데도, 스마트폰으로 매 순간 스쳐 지나가는 감정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 「에필로그」 중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갖지 못해 결핍을 느끼지만, 마음 둘 곳이 없을 때에도 결핍을 느낀다.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앉아 있다 일어나기만 해도 마음이 채워지는 곳이 있다면 어떨까? 말하지 않아도 내 고민을 알아주는 곳이 있다면 어떨까? 영화 [카모메 식당]에도 그러한 장면이 나온다.

“여기 사람들은 왜 이렇게 여유로워 보일까요?”라고 혼잣말을 하는 마사코에게 핀란드인 토미가 말한다. “숲이에요, 여기엔 숲이 있거든요”라고.

마사코는 그 말을 듣자마자 숲으로 향한다. 숲에 간 그녀는 버섯을 따다 말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한참 바라본다.

이 장면을 보면서 우리가 사는 도시에도 그 숲처럼 아무런 목적 없이 찾아갈 수 있는 공간이 생기길 상상했다.

굳이 구체적인 조건을 달아야 한다면 다른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기보다는 ‘내 이야기’를 쓸(할)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 쓰면서 나를 더 알아가는 곳이면 좋겠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밝히지 않고 나에 대해 쓸 수 있는 곳, 가끔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공감을 표현할 수 있는 곳이어도 좋겠다. 온라인이어도 좋고 오프라인이어도 좋다. 지금도 이따금 카모메 식당에 가고 싶은 이유다.

- 「카모메 식당」 중에서


저자 : 김석현


SNS에서는 김투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며, 일상에서 느낀 엉뚱한 생각들을 논리적인 콘텐츠로 풀어내는 것을 즐긴다. 주기적으로 관심사를 바꾸어가며 다양한 영역에 발을 들이지만, 그중에서도 여행과 먹고 마시는 일에 유독 공을 들인다. 파리라는 도시에서 보낸 5년을 바탕으로 첫 책 『마케터의 여행법』을 썼다. 경영학을 공부했고 마케터와 투자자를 거쳐 지금은 콘텐츠 기획자로 일하고 있다. 언젠가는 ‘유능한 디지털 노마드’로 자신을 소개하기를 희망한다.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을, 뛰는 것보다 걷는 것을, 저녁보다 아침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규정한다. 이 책 『외로움을 씁니다』를 쓸 수 있었던 것도 그러한 자아 덕분이라 믿는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에서 진행하는

체험단,리뷰단에서 제공 받아 작성한 솔직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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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무대는 계속될 거야 - 이채연, 청하, 찬희, 문빈, 호시, 유아, 레오, 제이홉 인터뷰, 개정증보판
박희아 지음 / 우주북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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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아이돌 세대'도 아니고 음악의 특성상 요즘의 팝음악은 너무 시끄러워 좋아하지도 않는다.

한류를 이끄는 배우들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워낙 매스컴에서 앞다퉈 프로그램을 편성하기 때문에 한때 유행일 뿐이라고 폄하해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러다가 세계 무대에서 인정 받고 실제로 20~30년 전에는 생각도 못한 상을 수상하고, 인기를 누리는 것을 보면서 조금씩 생각이 바뀌기도 했다.

그러나 다시 언급하고 싶지 않은 '버닝썬' '마약' 등에 연루된 일부 연예인의 일탈 때 다시 크게 실망하기도 했다. 심지어 한류나 K-POP의 종말이 오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한 적이 있다. 그것은 한류와 K-POP의 유행이 '한때'가 아니라는 것을 내심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사건이 연거푸 일어났어도 여전히 세계 무대에서의 한류와 K-POP의 위치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 한때의 유행이 아닌 진정 한국인들의 예술 감각과 열정이 뭉쳐 우리의 예술을 세계에서 인정 받은 것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의 주인공들을 살펴보니 '그들의 세상'이 궁금해지기도 했다.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다.





미국 빌보드어워드를 위시한 수많은 글로벌 시상식에서 K-POP 아이돌의 활약을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마주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무대를 준비하고, 그 무대 위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들어볼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앞서 언급한 대로 독자는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우리의 무대는 계속될 거야』는 그런 갈증을 해소하고자 제작됐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아이즈원 이채연, 청하, SF9 찬희, 아스트로 문빈, 세븐틴 호시, 오마이걸 유아, 빅스 레오, 그리고 방탄소년단 제이홉까지. 모두 8인의 K-POP 아티스트의 목소리로 무대 위 퍼포먼스에 서린 그들의 땀과 노력, 그리고 마음을 기록했다.

이를 통해 현 K-POP과 K-POP 아이돌에 대한 이해, 나아가 각자의 현실에서 자신만의 무대에 오르고 있는 세상 모든 이들에게 위로와 공감이 섞인 현실적인 조언으로 거듭난다.

이 책『우리의 무대는 계속될 거야』 는 2019년 출간된 『무대위의 아이돌』의 개정증보판이다. 기존 내용에 찬희, 문빈, 유아의 인터뷰가 추가된 것이다.





2018년 말~ 2019년 초, 시청자들의 인기와 드라마 내용이 화제가 됐던 화제작 <SKY 캐슬>.

조용하면서도 예쁜(남자를 이렇게 표현해도 되는지 모르지만 보통 그렇게 말한다고) 인물로 주목받은 배우가 바로 SF9의 메인 댄서 찬희(황우주역)다. 연기를 잘한다고만 생각했는데 이 책을 보니 아이돌 출신이네요. 아역배우였고.

책에 따르면 그는 스스로를 '느리다'고 표현한다. 아마 좀 게으른 편이나 행동이 느리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래도 메인 댄서라니? 굉장한 노력이 필요했을 터. 스타가 되고 인기를 얻고... 다 이유가 있다. 예전처럼 예쁘거나 잘생기거나 노래만 잘 부른다고 가수가 되지는 않은 시대니까. 그의 메인 댄서로의 춤 실력과 그가 말한 성격과는 대조적이다. 아마 땀과 열정으로 극복했을 것 같다.





MBC <전지적참견시점> 예능 프로그램에서 소탈하고 순수한 매력을 보여준 청하. 본명이 김찬미라고 한다. 이름과 외모가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가벼운 웃음이 흘러나온다.

역시나 '프로듀스 101'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몇 번 보진 않았지만 청하가 유독 예쁘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읽으니 프로듀스 101 한 번 찾아서 꼭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청하는 순위가 50위 정도에서 최종 4위까지 오른, 순위 급상승 인물 중 하나였다고 인터뷰 내용이다. 역시 멋진 매력과 노래 실력을 모두 차근차근 인정 받았다고 생각해야 할 듯.

춤도 굉장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20대는 '청하하면 춤'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한다. 시작은 노래부터였다. 그런데 춤을 함께 추니 칭찬을 많이 받았다고.

그녀가 소중히 여기는 친구들과 함께하는 삶이 좋다고 한다. 알게 모르게 경쟁의식이 굉장할 텐데 친구를 이끌어주고, 친구와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이 아름답게 들린다. 이렇게 되면 너무 완벽한 연예인 아닌가? 질투심인가? 인터뷰 내용에 살짝 의심이 가기도 한다.





흔히 팬들은 취향에 따라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을 더 집중적으로 좋게 생각하겠지만 독자는 '누가 더 좋고 누구는 덜 좋고'는 없다.

노래 잘 부르고, 연기 잘 하고, 춤 잘 추면 다 좋다. 누구나 다 노력과 열정이 있고, 노력만큼 흘린 땀으로 보상받았을 테니.독자가 20대 때와는 좋아하는 연예인이 요즘 20대와는 차이가 있다. 딱 한 세대 차이. 이른바 '세대차'인가?

어쩌면 그때 사회 환경이나 인기 기준이 달랐다고 생각한다. 한 세대 전에는 배우는 외모, 가수는 노래실력이 가장 큰 기준이었으니.

여기에 언급하지 못한 분들은 개인의 호불호나 인기 여부에 관계없이 솔직히 독자가 잘 몰라서 쉽게 쓰기 어려워서다. 못 쓰면 인터뷰 내용을 그대로 실으면 되지 하고 사진을 모두 찍었으나 역시 호흡을 같이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보고 듣고 느낀 게 잘 전달되도록 써준 저자에 감사하다.

또 한 가지 기쁜 일은 그들이 단순히 인기 연예인으로서가 아니라 예술 열정과 치열한 노력, 아티스트로서의 고민과 긍지를 모두 갖췄기에 오늘 이 자리에 있게 되고, 그만한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 분명해졌다. 인기를 누린 데 대해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이 책을 읽기로 한 것은 사실 저자가 인터뷰한 내용을 다듬어 싣는다는 것을 알고 망설였으나 저자의 전직을 알고 마음이 바뀌었다. 사회부 기자였다는 사실. 사회부 기자는 취재 열정과 현장 중심의 기사를 써야 하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사실에 입각해 기사를 쓴다.

그렇게 훈련 받은 기자가 연예인 기사를 책으로 만들어낼 때는 자신의 노력이 가치 있다고 느꼈을 것이란 신뢰 때문이다.

그래서 인터뷰 하나하나가 소중했다. 특히 인터뷰를 통해 그룹으로 활동하는 멤버들은 팀을 위해 자신의 많은 것을 양보하고 포기하는 모습이 보여 기사를 통해 그들의 숨겨진 아름다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귀한 내용이란 믿음도 생겼다. 한류, K-POP에 대해 더 믿고 좋아할 수 있게 된 '쉰세대'로서 대한민국의 젊은이의 신념이 믿음직하다는 느낌도 오랜만에 가져본다.


저자 : 박희아


사회부 기자였으나 문화 전문 기자로 방향을 바꾼 뒤, 웹진 아이즈(IZE)에서 취재팀장을 맡았다.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이며, KBS 1, 3라디오, 네이버 NOW 등에서 한국의 음악, 드라마, 예능에 관해 설명하는 일을 한다. 〈아이돌 메이커(IDOL MAKER)〉(미디어샘, 2017), 〈아이돌의 작업실(IDOL'S STUDIO)〉(위즈덤하우스, 2018), 〈내 얼굴을 만져도 괜찮은 너에게 - 방용국 포토 에세이〉(위즈덤하우스, 2019) 등을 작업했다. 무엇보다 아이돌을 같은 직업인으로서 바라보는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에서 진행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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