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을까? 사계절 그림책
이희은 지음 / 사계절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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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한 선, 선명한 색상, 단순한 형태. 

그래서 쉽게 쓰고 쉽게 그렸을거라 생각한다면 심각한 오해일 것이다. 그림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들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그림책의 미덕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이렇게 접근성은 좋으면서 깊이와 확장성은 무한하다는 점이 특히 은혜롭다. 


두개의 동그라미로 표현된 두 아이는, 그렇다. 똑같다. 똑같아 보인다. 모양도 색깔도 크기도. 

하지만 다르기도 하다. 같은 사과를 먹고 한 아이는 "상큼해!" 라고 하고 한 아이는 "달콤해!" 라고 하는 것처럼. 눈을 감으면 한 아이는 바람소리를 느끼고 한 아이는 참새소리를 느끼는 것처럼.

같은 모양을 보고 연상하는 것도 완전 딴판이고 좋아하는 것도 꿈도 다 다르다. 


하지만 같은 것도 있다. 함께 있으면 즐겁다는 것. 서로를 아끼고 좋아한다는 말이겠다. 이런 친구가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이 책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무한하겠지만 지금 단순하게 두가지가 떠올랐다.

먼저 절친(단짝)에게 집착하는 아이들. 동질성에 목숨거는 아이들. 제발 그러지 마. 동질성만 있으면 그건 숨막히는 거야. 상대방에게 너와 다를 자유를 줘. 생각도 다를 수 있는 자유. 그게 아름답고 당연한 거야. 


두번째는 다양성을 주제로 수업할 때. 단순하고도 직관적이고도 재밌고 예술적인 시각자료로 활용하고 싶다. 특히 바람소리-참새소리 장이랑 애벌레-생일케이크, 줄무늬신사-얼룩말 장. 다양성의 시각적 형상화라고 표현하고 싶다. 우리 모두는 이렇게 다 다르다. 물론 인간이 가진 기본적 동질성은 존재한다. 같아서도 좋고 달라서도 좋다. 그게 세상이다. 


이걸 보니 같은 주제의 그림을 한장씩 그려서 오랜만에 우리반 그림책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주 어린 유아부터 조금 큰 아이들까지 모두 재미나게 볼 수 있는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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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플래시 그린이네 문학책장
찰리 하워드 지음, 오영은 그림, 김수진 옮김 / 그린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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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플래시. 딱히 번역하지 않은 이 제목. 아직은 잔잔한 수영장의 물에 비친 한 소녀의 모습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려 할까? 작가의 이력이 힌트를 준다. 이 책은 작가의 첫 작품이라고 한다. (그렇다기엔 정말 잘썼다) 작가는 모델이며 ‘자기 몸 긍정주의’ 전파를 위해 열심히 뛰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것을 전문 작가가 아니라기엔 믿기 어려울 정도의 흥미로운 서사로 잘 표현해 냈다.

나는 호불호가 큰 사람이어서 그런지 이 책을 읽으면서도 좋은 사람 싫은 사람이 구분되었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캐릭터를 그렇게 만든 탓도 있을 것이다. 선역과 악역은 필요하니까. 하지만 현실에서 이런 사람을 만난다고 해서 이렇게 싫어하면 안될텐데 라는 약간 ‘경고’의 느낌을 내 맘속에서 받으며 책을 읽어나갔다. 첫 번째는 몰리를 좌지우지하려는 친구 클로이. 두 번째는 자유분방하단 핑계로 자기가 낳은 자식은 뒷전인 엄마와 그 남자친구란 인간. 클로이는 현실에서 만날 확률이 아주 크다. 그때 난감한 점은, 내가 너무 너무 싫어하는 인간형이지만 그래도 난 그를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결국 발견하지 못할지라도 그 행동의 원인이 되는 상처를 관찰하고, 그 부분에 약을 발라주며 이끌어주어야 한다. 단지 기질과 성향일 뿐이라면 더욱 힘들테고 오히려 내가 상처받고 끝날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노력은 해보아야 한다. 두 번째, 몰리 엄마 같은 사람은 나랑 친해질 가능성이 없으니 큰 문제는 아니겠다만.... 그래도 내 안에 이런 이들을 향한 혐오 같은 것은 그냥 두어도 되는 걸까 라는 고민이 살짝 있다.

나머지는 거의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가장 높이 사고 싶은 사람은 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 이렇게 책임감 있고 건실한 분들에게 어떻게 저런 딸이 태어났지? 어쨌든 다행이지 뭐야. 엄마가 버린 딸을 그래도 큰 결핍 없이 키워준 분들이 계셔서.

두 번째는 몰리의 학교 수영선생님들. 몰리의 재능을 발견하고 격려하여 대회까지 이끌어준 분들. 나와 비교하여 가장 찔렸던 부분은 몰리가 클레이의 눈치를 보느라고 (쿨하게 한답시고) 선생님들의 지도나 제안에 예의없이 틱틱거릴 때, 몰리의 본심을 감안하여 참고 계속 격려하셨다는 점이다. 나에게는 이런 점이 없다. 싫어? 아 그래 알았어. 끝이다. 먼저 숙이고 들어오기 전에 더 이상의 기회는 없다. 솔직히 그래야 될 필요가 있다고 아직도 생각..... 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내가 못가진 면을 가진 이분들이 존경스럽다.

세 번째는 몰리의 오래된 남사친이자 수영 동료인 에드. 친구니까 영화보러 가자고 제안했을 뿐인데 클레이의 눈치를 보는 몰리는 아주 모욕적으로 그 제안을 거절했고 에드는 큰 상처를 받았다. 나라면 거기서 끝이고 다시는 돌아보지 않았을 텐데, 기회를 준 에드. 그리고 많은 조언과 도움도 함께 주었다. 수영실력이 더 뛰어난 몰리를 질투하지도 않는 진정한 친구. ‘손절’이 너무 쉬운 요즘 세상에 이런 친구는 정말 귀하지 않을까. 나도 찔린다.

네 번째는 몰리, 클레이와 같이 어울리는 같은반 친구 네다와 제스. 클레이에게 치이는 몰리에게 완충 역할을 해주는 따뜻하고 사려깊은 친구들. 이런 친구들이 있는데 몰리는 왜 클레이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는지 몰라.

한 명 더 들자면 클레이의 엄마. 마지막에 자신의 악행(?)에 대한 댓가를 한꺼번에 받고 외톨이가 되어버린 딸을 보았을 때 보통 엄마들은 어떻게 할까? 그동안의 잘못은 ‘그럴 수 있었던 것’으로 축소하고 지금의 아픔은 ‘있을 수 없는 것’으로 확대하여 분노하며 문제를 키우는 경우가 아주 많다. 피해자 코스프레는 덤. 더구나 지금 클레이 엄마의 개인 상황도 상처가 가득하기에. 하지만 클레이 엄마는 반대로 행동했다. 비록 지금까지는 클레이를 응석받이로 키웠지만 이 중요한 상황에서 클레이를 객관적으로 보았고, 설득해서 친구들 앞에 사과하도록 이끌어 주었다. 마지막 해피엔딩의 주역은 클레이 엄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비현실적일 정도로 몰리 옆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았네. 최소한의 악역만 빼고 말이다. 비록 가장 중요한 엄마가 자기밖에 모르는 날라리고 아빠는 누군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몰리는 보여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고, 이들이 상처받았을 때 무릎을 세울 수 있도록 격려하는 역할을 살면서 한번이라도 할 수 있는 내가 되길 바란다.

인물 소개를 하다보니 줄거리가 거의 나와버린 것 같다. 가장 중요한 메시지만 빼고. 이 작가의 모토인 ‘자기 몸 증정주의!’ 몸은 상품이 아닌데, 비현실적인 몸매를 이상적인 아름다움으로 치고 모두다 거기에 맞추려고 하는 시도는 얼마나 어리석은가. 이 책에서는 클레이가 주도적으로 그런 언행을 하여 몰리를 기죽인다. 넓은 어깨, 튼튼한 다리. 이것은 수영선수로서 최적의 조건일 뿐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사춘기 학생들이 흔히 그러듯이 몰리는 영향력있는 친구의 정신적 지배에서 빨리 빠져나오지 못하고 한참을 방황했다. 몇몇 생각없는 녀석들이 붙인 ‘덩치’라는 별명도 한몫을 했다. 하지만 이제 몰리는 당당하다. 남의 눈에 맞추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책이 꼭 필요한 아이들이 떠오른다. 모든 교실에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클레이와 몰리들이 존재한다. 톰 무리들처럼 놀림으로 문제를 키우는 녀석들은 거의 기본값처럼 존재한다. 몰리가 자신에게 긍정하게 된 과정이 아이들에게 설득력있게, 그리고 재미나게 다가왔으면 좋겠다. 자신을 긍정하기. 나와 다른 남을 존중하기. 이것이 된다면 우리를 괴롭히는 대부분의 문제가 아름답게 풀릴 것이다. 평생의 숙제이긴 하나 아이들이 일단 첫발을 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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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를 만드는 말의 정원 상상문고 13
김주현 지음, 모예진 그림 / 노란상상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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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이야기다. 말과 향기를 연결시킨 상징성도 매우 좋다. 시각과 후각 등 다양한 감각으로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다는 점이 특히 좋다.

다만 내게는 그리 재밌지가 않았다는 점이 한가지 아쉬운 점이다. 아니 이야기가 재밌지 않았다고? 그럼 꽝이지 뭐! 이렇게 생각하고 별점을 깎기는 너무 아까운 장점들이 많아서 차마 별을 한 개도 깎을 수가 없는데, 하여간 별로 재미는 없었다. 근데 이건 개인적인 취향일 것 같다.

처음부터 이 책의 장점이 나온다. 요즘 아이들에게 느끼는 가장 아쉬운 점. ‘말’이 너무 아름답지 않다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주인공 준수는 입만 열면 막말을 쏟아내는 아이다. 그런 준수가 ‘검은 망토 아저씨’를 만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 아저씨는 ‘냄새를 모으는 사람’ 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좀더 자세히 설명하면 말에서 나는 냄새를 모아 특별한 향수를 만든다고 한다.

말에서 나는 냄새라니 뻔하지 뭐! 준수한테선 엄청 고약한 악취가 나겠지! 나중에 고운 말을 쓰게 되면 향기가 날 테고!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이 책이 전개되었다면 읽다가 던져버렸을 것이다.ㅎㅎ 아저씨는 ‘말의 정원’을 갖고 있었고 준수는 거기 초대받는다. 거기엔 사연 있는 식물들이 가득하고 아저씨는 그 식물들과 대화를 나눈다.

얼떨결에 준수는 작은 제비꽃 화분 하나를 맡게 되었다. 잘 돌봐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어느새, 제비꽃과 준수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게 된다. 제비꽃을 다시 안고 말의 정원을 찾았을 때, 아저씨는 제비꽃의 향기가 진해졌다며 반색을 하고, 향수를 만드는 과정을 준수에게 보여준다.

준수는 이번엔 작은 민들레 화분을 안고 집으로 갔다. 그 화분은 혼자 손자를 키우며 괴팍해진 할아버지의 마음을 녹였다. 이런 대목은 식집사님들이 보시면 공감하시고 기뻐하실 것 같다. 난 먹고살기만도 피곤해서 아직 식물을 키우는 취미는 갖지 못했다. 하지만 가장 아름다운 취미라는 생각은 한다. 아니 그분들에겐 더 이상 취미가 아니다. 사랑이지. 이 책의 배경으로 정원이 나오고, 꽃과 마음을 나눈 과정이 향수의 재료가 되는 것으로 나와서 참 좋았다. 정원 이야기에서 떠오르는 아름다운 시각적 이미지도 아주 좋았다.

그 시각적 이미지는 후각으로 연결된다. 검은망토 아저씨가 준수에게 맞춤형 향수를 만들어 준 것이다. 과연 어떤 냄새일까? 말로는 잘 표현할 수 없지만 상상해볼 수는 있다. 사람을 기분좋게 하는 냄새, 괴팍했던 마음이 부드럽게 풀리는 냄새, 미소짓게 하는 냄새.....

내가 마법을 가질 수 있다면 우리반 녀석들에게 이런 향수를 만들어 줄 수 있는 조향의 마법을 갖고 싶다. 교실이 얼마나 아름답겠냐고..... 하지만 현실은 난 조향사가 아니고 아이들의 입에서는 오늘도....^^;;; 그 말의 전쟁터 속으로 내일도 출근해야 하니 어서 잠자리에 들자고. 아, 이 책은 가방에 챙겨놓고. 내일 아침에 잘 보이는 곳에 꽂아 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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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단비 옆 동바람 반달문고 38
이정아 지음, 김성라 그림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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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취향에 딱 맞는 책을 만났다. 주제가 너무 강하게 드러나도 싫고, 설교해도 싫고, 캐릭터가 너무 전형적이어도 싫고, 너무 되바라지고 입만 살아도 싫고, 상징이 도식적이어도 싫고, 무서워도 싫고, 잔인해도 싫고 뭐 어쩌라는거지?ㅎㅎ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다. 나는 이런 동화를 좋아하는구나.

이 작가님의 책은 한두권 읽어본거 같은데 리뷰를 안쓴거 보니 그리 인상적이진 않았었나보다. 그럴때가 있다. 무심히 넘겼는데 나중에 다시 보니 더 좋은 책. 다시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이 책은 세 편의 단편 모음이다. 세 편 다 소재가 각기 다르다. 첫번째 이야기 <동단비 옆 동바람>은 발달장애 형이 있는 동생의 이야기다. 김혜온 작가님의 <바람을 가르다>에 들어있는 '천둥번개는 그쳐요?' 이후 이런 소재를 처음 보았다. 너무 어둡지도 않고 무턱대고 밝지도 않다. 사려깊게 함께 해주는 친구들과 어른들도 있지만 괴롭히고 서럽게 하는 사람들도 있게 마련이다.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제목은 바로 이 형제의 이름이었다. 바람이가 형, 단비가 동생이다. 유치원 때부터 단비는 형 있는 곳이면 언제나 함께 있었다. 엄마는 단비가 있어 너무 다행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건 단비에겐 속상한 말이었다. 단비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이루어지는 일이었기 때문에. 형은 늘 이런저런 사고를 쳤고 단비는 해결사로 나서야 했다. 때로는 따가운 눈초리 속을 뚫고.

하지만 그리 어둡게 그려지지 않았다는 점이 위안을 준다. 단비가 형을 싫어하는 건 아니니까. 작품 전체의 분위기는 이 책의 삽화와 같이 여리게 환한 색이다. 찬란한 빛은 아니지만 위안을 주는 여린 밝음.

가끔은 형 없이 엄마를 독차지하고 싶은 단비의 마음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모처럼 그럴 기회가 생겼는데!! 너무 좋은 일은 결국 일어나지 않더라. 바람이를 맡길 곳이 없어지고 결국 함께 가야했던 여행길. 너무 실망한 단비 마음도 이해되고 혼자 신난 바람이도 미워할 수 없고, 특히 엄마.... 누가 이 엄마를 탓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내 마음은 어느새 단비에게 부탁하고 있었다. 단비야, 엄마 좀 봐줘, 응? 내가 그럴 것도 없이 단비가 나보다 나았다. 어느새 평상시 포지션으로 돌아온 단비.

여행에서 겪었던 그 위기는 발달장애 가족들에게 일상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거의 30년전 첫담임때 아이가 기억났다. 그땐 학교에 도움반도 없었다. 그 아이가 자주 차도로 뛰어들어 엄마를 애먹인다고 들었었다. 작고 예쁘고 눈이 크던 그 엄마. 지금은 나보다 늙으셨을 그 엄마는 잘 계실까. 아이는 잘 컸을까. 식은땀 흘릴 일이 수시로 벌어지는 일상을 버티는 엄마, 때로는 못참고 울어버리는 엄마에게 위로와 응원의 마음을 보낸다. 그리고 그런 엄마를 지켜주려는 착한 작은아들에게도. 차들의 행렬을 멈추었던 도로 위의 사람들에게도. 이들이 우리 주변에 늘 있기를.

두번째 작품 <너 거기 있니?>는 생태관 공사로 살던 집을 놓고 이사나온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다. 무진이네는 새 집을 지어 이사했고 주호네는 공사지역에서 살짝 비껴나 그대로 남았다. 그래도 아이들은 학교에서 만나는데, 문제는 할머니들이었다. 무진이 할머니와 주호 할머니는 어릴적부터 친구사이다. 친구에 이웃사촌으로 살던 이분들에게 강제 헤어짐은 너무 슬픈 것이었다. 두분은 손자들을 메신저로 편지 왕래를 하신다. 한글교실에서 배운 글자로 '보고시픈 옥화에게' '부월이 보아라' 하고 마음을 전하신다. 할머니들의 우정을 다룬 이야기가 있었던가? 마음이 찡하다. (내가 그쪽에 근접해가니 그렇겠지. 애들은 별 느낌 없겠지...)

며칠만에 주호 할머니의 답장을 받아 할머니 방에 갖다놓은 날, 무진이 할머니가 없어졌다. 온 마을 사람들과 경찰까지 와서 찾아낸 할머니는 어디에 계셨을까?
"고마리 못이랑 문수산은 다 있는디 길이 없다. 아무리 찾어봐도 길이 없어. 뺑 둘러 다 막혀 버렸어. 주호네 갈라믄 어디로 가야 헌다니?"
"내가 옥화야, 옥화야 하믄서 오도 가도 못하고 철망 앞에 서 있는디 산에서 무슨 소리가 나. 가만히 들어 보니께 울음소리여. 슬퍼서 우는 것 같기도 허고, 반가워서 우는 것 같기도 허고, 내 마음 안다고 우는 것 같기도 허고. 그려서 나도 울었당께."

개발을 다룬 동화들이 꽤 있지만 이 작품은 그중에서 결이 좀 다르다. 뭐가 잘쓴 거라고 평가할 순 없지만 섬세한 결의 이 작품이 나는 맘에 든다. 단지 개발의 선악을 다룬게 아니고 짧은 작품 안에 이렇게 많은 생각을 담았다는 게 놀랍다. 인물도 상황도 대화도 모든게 자연스러우면서 마음을 울린다. 사람 사는 이야기라서.

마지막 이야기 <고양이가 다녀간 자리>도 아주 의미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반려동물을 다룬 작품이 많고 그중에 유기동물을 입양하게 되는 이야기들은 감동이 크다. 이 작품은 그런 감동을 주지 못했다. 입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ㅠ

승준이는 장터에서 할아버지가 오천원에 떨이로 주신 고양이를 데려온다. 부모님과 상의도 없이. 이 경우 보통 못이기는 척 받아주는 결말이 대부분인데 승준이 엄마는 그렇지 않았다. 내버린 것은 아니지만 입양처를 찾아주거나 장터 할아버지께 돌려드려야 한다고 한다. 그 과정이 좀 걸렸고 약한 고양이는 그 사이에 하늘나라로 가버렸다. 반대하던 엄마까지 함께 아파하는 결말이 슬프다. 하지만 엄마를 원망하는 마음은 들지 않는다. 적어도 '대책없는' 사람이 아니어서. 생명을 보살필 생각을 한다면 그에 따른 책임을 명심하고 시작할 것. 이것은 사랑만큼이나 중요한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세 작품 다 작가의 경험 없이 머리 속에서만 나왔다기엔 믿기 어려울만큼 작위적인 느낌 없이 자연스러워서 좋았다. 대사를 위한 대사도 없었고 모든게 현실대화 같았다. 우연히 잡은 책이 기대보다 넘 좋았던 오늘은 대박이라 말해도 좋겠지. 이 책 나만 재밌나? 아이들과도 함께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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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는 여우 우리학교 그림책 읽는 시간
카이야 판눌라 지음, 네타 레흐토라 그림, 이지영 옮김 / 우리학교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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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작가인 것 같은데? 라며 살펴보았더니 작가의 첫 책이라 한다. 글작가도 그림작가도 모두 핀란드 사람이다. 어떻게 국내 출판사와 연결되었을까 살짝 궁금하기도 하다. 당연히 작품은 참 좋다. 글도 그림도.

<그림 그리고 싶은 여우> <혼자 있고 싶은 여우> <장미와 오소리와 여우> 이렇게 세 편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세 편의 주인공은 모두 같은 여우다. 세 편에서 보이는 모습이 각각 다르지만, 나 또한 여러 모습을 가지고 있기에 의아하지 않다. 각각 다른 이야기는 어찌보면 방향성을 갖고 있다. 여우가 여러 일과 감정을 겪으며 성장한다는 것이다.

<그림 그리고 싶은 여우>에서 여우는 의욕적으로 그림을 시작한다. 그림도구를 잔뜩 사들고 왔다. 하지만 그릴 대상을 찾는게 쉽지 않았다. 모든게 너무 순간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여우는 '초록 스카프 여우'를 만나 친구가 된다. 초록 스카프 여우의 조언을 듣고보니 그리는 일은 참 즐거운 일이었다. 마음과 함께 여우의 그림도 달라진다.

두번째 이야기 <혼자 있고 싶은 여우>를 처음 펼쳤을 때 다른 여우가 나온 줄 알았다. 여우는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아 혼자 집에 파묻혔다. 가만 보니 아까 그 여우 맞다. 왜 갑자기 우울해졌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여우 자신도 "이유를 모르겠어." 라고 한다. 하지만 그럴 때가 누구에게나 있지. 어쩌면 "모르겠다"고 한 여우 자신은 그 이유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느날 여우는 차가운 바깥으로 발을 내딛는다. 처음엔 아무와도 마주치고 싶지 않아 인적이 드문 곳을 골라 다닌다. 그러다 집에 돌아오는 길, 눈위에 찍힌 발자국을 보고 드는 생각에 깜짝 놀라는 여우. 집이 가까워졌다. 집에 불이 켜져 있다! 초록 스카프 여우가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찻물을 끓이고 있었다. 한 존재가 주는 밝음과 온기. 둘은 금방 대화에 빠져든다.

이건 아닌데, 이러다 큰일나겠어 싶을 땐 무조건 밖으로 나와야 된다.
"자신의 거칠게 내쉬는 숨소리와 쿵쿵 힘차게 뛰는 심장 소리만 들렸어요."
이 느낌이 나를 구원한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건 그렇게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환한 불빛과 온기가 반갑다! 하지만 춥고 어두웠던 시간들도 의미가 없는 건 아니었다.

<장미와 오소리와 여우>에서 여우는 장미화단을 열심히 가꾼다. 그런데 장미들은 화단 밖으로 자꾸만 뻗친다. 줄기들을 뜯어내며 여우는 투덜댄다.
장미가 활짝 핀 여름날, 여우는 너무나 슬픈 일을 당했다. 이웃집 아기 오소리가 큰 병에 걸려 죽고 만 것이다. 여우는 화단의 모든 장미로 꽃다발을 만들어 아기 오소리를 조문했다. 그리고 슬픔에 빠져 더이상 화단을 돌보지 못했다.

그러나 장미는 여기저기에서 뻗쳐 자라났다. 앞면지와 뒷면지에 가득한 장미 그림이 이제 이해되었다. 가을에 여우는 꼭꼭 숨겨왔던 그림들을 모두 꺼내 전시회를 열었다. 중요한 순간에 꼭 친구가 있다. 초록스카프 여우가 벽에 못을 박고 그림을 거는 모습이 나온다. 친구가 없었다면 여우는 용기를 내지 못했겠지?

그림엔 그들이 사랑하는 것들이 담겼다. 이미 지나가버려 더이상 볼 수 없는 것들도 있다. 그것들을 담아 간직해둔 여우의 작업은 소중한 일이었던 거겠지? 슬픔은 남았지만 더이상 슬프기만 하진 않다. 인생이 그렇듯이.

사람들도 이렇게 어른이 된다. '그림'을 남기기도 하지만 나처럼 지나간 일은 추억 속에만 남기기도 하고. 어디에 남기느냐는 중요한 것 같지 않다. 겪어내기. 그리고 겪는 이들을 이해하기. 각자의 방법으로 그들을 위로하기. 이것이 가능하다면 어른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어른은 나이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하여 이 그림책을 보며 중년의 나도 부끄러워 하는 것이지. 이 책을 '어른도 보는 그림책'으로 추천해도 괜찮겠다. 물론 어린이들에게도 충분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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