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개가 되었어요 서유재 어린이문학선 두리번 11
김태호 지음, 장경혜 그림 / 서유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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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호 작가님의 책은 거의 다 읽은 것 같다. <제후의 선택>은 읽은지 꽤 되었지만 단편집 중에서 아직도 손꼽고 있는 책이다. 이번에 인상적인 제목의 단편집이 또 나왔다. 역시 좋다. 간결한 문체 안에 담아놓은 감정들이 출렁거린다. 그리고 어떤 작품은 꽤 어렵기도 하다. 눈으로만 읽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며, 머리로 해석하며 읽어야 할 작품이다.

첫 작품 [초콜릿 샴푸]에선 설명서가 먼저 나온다. ‘천연 초콜릿 샴푸 만드는 법’이다. 그런데 앞부분만 조금 나오고 끊겨있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뒤에 계속 나온다. 설명서와 이야기가 함께 가고 있다. 이런 구성들에서도 작가의 센스를 느낀다. 샴푸 만들기라는 소재도 그렇다. 작가가 이것을 포착하지 못했다면 이런 작품은 나오지 않았겠지.... 작가는 아는 것과 경험이 많을수록 좋겠구나, 소재를 포착하는 감이 뛰어나야겠구나 생각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그리고 그 소재 안에 흐르는 감정은 돌아가신 엄마(아내)에 대한 그리움..... 엄마 없이 남자들끼리 남은 집안에 따스함과 부드러움을 채우기는 얼마나 힘들까? 눈물겹지만 그래도 절망적이진 않은 작품이어서 좋았다.

두 번째 [요즘 자꾸 까먹는 일]에는 장애를 가진 친구가 등장한다. 사고로 다리를 못쓰게 되어 휠체어를 타는 강주다. 강주가 휠체어를 탄 채로 농구경기에 참여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농구의 감각을 갖고있는 걸 보니 강주의 장애는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 얼마나 안타까울까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같은 반 친구들은 평범해 보인다. 강주를 끼워주고, 격려해주고 편들어준다. 다만 주장 격인 태하가.... 승부욕이 과하다보니 졌을 때의 반응이 강주를 주눅들게 만든다. 그리고 상대편 반 아이들은 아주 비겁하고 매너없고 못됐다. 강주에게 상처가 퍼부어진 채로 경기는 끝났고, 아이들은 엘리베이터가 고장났다는 사실을 까먹고 자기들끼리 교실로 들어오고.... 총체적인 난국이다. 강주는 서러움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친구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결말은 평범한 아이들이었다. 그게 엄청 안도감을 주었다.

세 번째 작품이 표제작인 [엄마가 개가 되었어요]다. 제목에서 쉽게 짐작되지 않는다. 웃긴 이야기려나? 아니었다. 이 책에 실린 작품들 중 가장 아프고 괴로웠다. ‘개’가 되어가는 엄마는 이미 ‘개’인 아들을 채근하여 학교로 왔다. 학교 회의실이었다. 가만 보니.... 그건 학폭위였다.ㅠㅠ 아 읽고 싶지 않다.... 하지만 외면하면 안된다.

아들은 학폭 가해자의 위치로 그곳에 섰다. 아이는 친구들을 물어뜯었다고 한다. 폭력 맞다. 하지만 학폭에는 이런 경우가 정말 많다. 오래된 피해자가 그동안 참았던 모든 것을 물거품으로 되돌리고 단번에 가해자로 규정되는 일. 가해자로 여기저기 눈치봐야 했던 부모가 피해자의 자리에 앉아 태도가 돌변하여 고래고래 다그치는 일. 저간의 사정보다도 규정에 따라야만 하는 무능한 학교, 불합리하지만 여간해선 고쳐지지 않는 규정..... 익히 들어봤던 일이라 더 얼굴이 뜨겁고 마음이 괴롭다.

이 상황에서 엄마 혼자만 몸부림을 치고 있다. 아들을 대변하려 하다 남탓만 한다고 비난을 받는다. 항변을 마친 엄마는 누구보다 가장 큰 잘못을 한 사람은 자신이라며 울부짖는다. 그리고 자신 뿐 아이라 당신들 모두도 아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점점 알아들을 수 없는 짖음으로 울부짖는다. 엄마 말이 맞다. 아이가 고립될 때까지 살펴주지 못한 어른들, 고립된 친구를 불러주긴 커녕 사냥감마냥 괴롭힌 친구들, 때는 이때다 하고 심판대에 놓고 비난해대는 어른들, 모두 사과해야 한다. 물론 아이도 자신의 폭력을 사과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자리는....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저마다 눈감고 자기 이야기만 한다. 상대를 가해자라 규정하기에만 혈안이 되어있다. 사과하면 그 프레임이 무너지기 때문에 절대로 사과하지 않는다. 자식에게도 절대 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문제 해결의 출발점인 ‘인정’과 ‘사과’는 그래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모두 함께 진흙탕 속을 뒹군다.ㅠㅠ

[사냥의 시대]는 집중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대충 읽었다가 엥? 무슨 얘기지? 하고 다시 읽었다. 배경은 지금보다 훨씬 뒤의 미래다. ‘돼지가 멸종한지 50년도 더 지났다’고 하고 남북통일도 되어있는 걸 보면 말이다. 첨단 기계화된 도시에서 살던 빈이는 할아버지 동네에 와서 낯선 체험을 많이 하게 된다. 그곳은 자동화되어있지 않으며 기계에 의존하지 않고 인간의 손으로 자연을 일구며 살아가는 곳이었다. 빈이와 할아버지는 산속에서 돼지를 만난다. 할아버지는 뛸 듯이 기뻐하시며 마을 사람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신다. 어느날 마을로 내려온 돼지는 주민들에게 생포되고 어른들은 심각한 회의를 오랫동안 한다. 돼지가 불쌍해진 빈이는 도망시켜주려고 하지만 결국은....ㅠ

빈이는 치명적으로 맛있는 고기를 씹으며 운다. 어린이 독자들은 여기서 ‘잔인하다’ ‘할아버지가 나쁘다’고 하기 쉬울 것 같다. ‘교훈이 뭔지 모르겠다’고 하는 아이들도 있을 수 있겠다. 할아버지의 이 말씀을 읽고서 나는 알아들었다.
“인간이 욕심을 부릴수록 돼지가 아팠어. 살아있는 돼지들을 땅에 묻고, 또 묻고, 그래도 돼지들은 아팠지. 모두 사라져버릴 만큼 너무 아팠던 거야. 우리 때문에 돼지들이 또 아프면 안 되잖아!”
“지구가 키워서 선물처럼 보내주면 우린 이제 사냥해서 잡아 먹을 거야.”
이제 제목의 의미가 이해된다. 아, 우리는 이만큼의 시대를 거슬러야 하는 것인가. 거의 원시시대에 가깝도록?
“너희들의 시대는 너희가 선택해서 만드는 거야.”
이 말씀을 잘 기억해두도록 하자. 강제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보다는 선택을 할 수 있을 때 최선을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바틀비]는 정말 애를 태우며 읽었다. 섬에 버려진 개 바틀비. 아마도 처음에는 미친듯이 헤매며 주인을 찾고 기다렸을 것이다. 선착장에 배가 들어올때마다 목을 빼고 주인이 내리나 살폈을 것이다. 얼마나 그걸 반복했을까. 이제 바틀비는 아무것도 안하는 것을 선택했다. 길위에 죽은듯 엎드려버렸고 그러다 풀숲으로 던져졌다. 안타깝게 보던 해찬이 다가가 말을 걸고 먹을 것을 가져다 주었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해찬이 할머니가 내뱉는 거친 말로 아이의 형편을 짐작할 수 있다. "지 새끼도 버리는데 개야 오죽허겄어!" 애태우며 바틀비를 보살피던 해찬이가 어느날 육지로 나갔다. 이후 태풍이 불어 한참동안 돌아오지 못했다. 바틀비는 내리는 비와 함께 녹아들어 그대로 꺼져버리는 듯했다. 마지막이 가까워져가는 순간에 바틀비는 해찬이를 떠올린다.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생명이 그토록 끈질긴가. 다시 찾은 해찬이가 발견한 것은 반쯤 썩은 시신일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 그래 보였다. 그런데.... 꼬리가, 꼬리가 움직였다. 개를 키워본 사람은 알 것이다. 개가 꼬리로 어떻게 말을 하는지. 울컥 눈물이 났다. 개야. 이제 함께 해라. 너와 같은 처지의 소년과. 이제 버려질 일 없을거야. 해찬이가 용기있게 살아가게 곁을 지켜줘.

[산을 엎는 비틀거인]은 폭력가정의 이야기다. 아빠는 술에 취해 들어와 트집을 잡고 끝내는 밥상을 엎는다. 세상에 이런 남자들이 많다는 걸 난 꽤 나중에 알게됐다. 못난 새끼들. 아껴줘야 할 가족들에게 오히려 분풀이하는 찌질한 루저들. 분노가 인다. 엄마는 안계신 것 같고 (집을 나가지 않았을까?) 할머니와 연우가 그 폭력을 고스란히 받아낸다. 할머니는 연우에게 이야기를 만들어 들려준다. 제목인 '산을 엎는 비틀거인' 이다. 잘 들어보면 이건 바로 '상을 엎는 아빠'에 대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 속엔 희망이 있다. 연우는 그 희망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고작 그게 희망이라는 게 슬프지만.....

여섯 편의 이야기가 하나하나 다 좋아서 쓰다보니 다 쓰게 되었네. 슬프고 외롭고 약한 존재들에 대한 작가의 관심과 사랑이 느껴지는 이야기들이다. 상실을 경험했거나, 폭력을 당하고 있거나, 버려졌거나, 결핍이나 장애를 갖고 있거나, 인간의 욕심 때문에 희생되었거나.... 이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독자들의 마음에도 빛을 준다. 장경혜 그림작가의 노란 표지와 빛나는 햇살 또한 이런 공감 때문이지 않을까.

찬찬히 읽고, 음미하고, 이야기 나눠볼 책 한 권을 더 소장하게 되어 든든하다. 무게감이 남다른 책이라 생각한다. 여운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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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방학 숙제 조작단 사계절 아동문고 103
이진하 지음, 정진희 그림 / 사계절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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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근래 읽었던 동화들 중에서 재미로는 최고다. 고학년 분량인데 단숨에 읽게 된다. 방학숙제가 많고 그걸 개학 후에 시상한다는 게 일반적이지 않다는 점이 살짝 걸리는데, 어딘가 그런 학교도 있을 수 있으니까.... 30년 가까운 경력동안 방학과제 상 주는 학교에는 한번도 안있어봤다. 또 분량 문제도 요즘 방학과제라면 하루 30분 독서하기, 매일 꾸준히 운동하기처럼 제출물이 없는 과제들이 대부분이라 아이들의 큰 근심거리는 아닐 것 같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의 관념 속에 '방학숙제' 하면 부담되는 것, 밀리는 것, 벼락치기로 하는 것 등으로 각인되어 있고 모든 학교의 상황이 같은 것도 아니니 꼭 지금의 전반적인 현실을 반영하란 법은 없겠지. 그리고 중요한 건 방학숙제 자체보다도 그 과정을 통한 아이들의 변화와 깨달음이기에나의 체감과 다른 상황묘사가 크게 거슬리진 않았다.

 

아주 다른 캐릭터를 가진 3명의 남자아이들이 주인공이다. 캐릭터들만 봐도 재미난 얘기가 펼쳐질 것 같은 느낌이 온다. 1호와 2호는 통한다. 오준보와 방구봉. 모범생과는 거리가 먼, 힘든 건 최대한 미루고 놀 궁리만 하는, 어찌보면 우리 주변에 널린 남자아이들 캐릭터다. 3호는 좀 다르다. 구경수. 공부도 1등이고 어긋남 없이 규격에 맞춘 듯이 살아간다. 결정적으로 숙제를 엄청 잘해온다. 작년 방학때도 방학숙제 상을 받았었다.

 

때는 여름방학 중간, 준보는 생활계획표와 아~무 상관없는 빈둥빈둥 쿨쿨 생활 중이다. 보다못한 엄마가 채근을 하다가 입맛 당기는 미끼를 걸었다. 방학숙제 상을 받으면 준보가 꼭 갖고 싶어하던 게임기를 사준다고! 준보는 당장 이 희소식을 구봉이에게 알렸고, 둘은 숙제 작전에 들어갔다. 그리고 평소에 생각지도 않던 친구, 구경수를 끌어들이게 된다. 아무래도 멘토가 필요했으니까.

 

하지만 경수는 멘토가 될 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제 입으로 내뱉고 만다. 그 완벽한 과제물들은 다 아빠의 손을 거친 것들이었다. (보통 아빠가 그러시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데 아빠가 꽂히면 엄마보다 더 징하다는 것이 정설) 이러다가 경수는 코가 꿰이고 만다. ‘여름방학 숙제 조작단이 결성된 것이다.

 

수많은 선택과제들이 있고, 그중에서 3개만 고르면 된다지만, 하나하나 만만한 것이 없으니 어찌 선택과제라 하리오? 그들은 그나마 나은 동시쓰기를 선택했다. 동시 정도면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이는데.... 음 그건 선생의 생각이고. 셋은 준보네 집에 모여 갑론을박하며 동시를 써나가기 시작한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졸작들이 난무한다. (이 과정이 엄청 웃김ㅎㅎ) 그러나 그 엉망진창의 시간들 속에서 뭔가 싹이 트고 틀이 잡히기 시작한다. 이리하여 선택과제 1은 성공!

 

두 번째는 관찰보고서 쓰기로 정했다. “남들이 다 하는 흔한 걸 고르면 안 돼.”라는 경수의 조언 때문이었다. 이제부터가 문제다. 무엇을 관찰할 것인가? 아이들은 주변을 둘러보다 길고양이, 개미, 마트에 있는 반려동물 가게 등을 살펴봤지만 고민만 늘어간다. 그러다가 준보의 결정. “나는 우리 엄마를 관찰할 거야!” 그러자 구봉이도 좋은 생각이 났다며 호들갑을 떨더니 을 관찰하겠다고 한다. 그러자 시무룩해지는 경수가 의외였다. “사실은 너희들처럼 재미있는 생각이 잘 안 나.”

 

마지막 세 번째는 체험학습 보고서다. 이 과정이 가장 길고도 재미있다. 얼떨결에 PC방에 끌려가 금단의 열매를 맛본 경수의 반응도 웃기고 <우리 동네 버스 여행>으로 주제를 정한 아이들의 생각도 신선하다. 지하철역에서 열린 서예전시회, 동네 도서관, 버스 타고 동네 돌아보기 등의 과정도 재미있었다. 그런데 이야기라면 갈등과 클라이막스가 있어야 하는 법. 체험학습을 끝낸 아이들은 서로 다투고 마음이 상한채 돌아서고.... 그런 채로 방학은 끝나고 말았다.

 

개학이 되고, 아이들은 무엇이 달라졌을까? 경수는 역시나 함께했던 방학숙제들을 모두 아빠한테 퇴짜맞고 으리으리한 결과물들을 가져왔다. 하지만 선생님이 전시하려는 찰나, “그거 숙제 아니예요.”라고 밝히는 경수. 으리으리한 결과물을 넣어두고 꼬깃꼬깃한 결과물을 꺼내 제출하는 경수. 그건 반 아이들에게 대단히 인기 있었다. 바로 [친구 관찰 보고서]였기 때문이다. 어떤 친구인지는 굳이 말 안해도 되겠지? 그리고 셋의 서먹함 또한 하루만에 원상태로 바로 돌아갔다.^^

 

그들이 그토록 원했던 열매는 얻지 못했다. 상은 셋 중 누구도 아닌 다른 아이가 받았으니. 하지만 이 책은 엄청나게 해피엔딩인 이야기였다. 이렇게 끝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방학하는 날보다도 더 방학 같은 날이었다.”

 

나는 이렇게 아이들이 변화하는 이야기가 재미있다. 교사라서, 아이들을 관찰하는 게 습관이 된 직업인이어서일지도 모르겠다. 너무 극적인 변화는 좀 부담스럽고, 아닌 척 슬쩍 변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미소가 지어진다. 아이들이 그들의 본성까지야 어떻게 바꾸겠어. 하지만 이렇게 하나씩 깨우치면서 멋있는 쪽으로 조금씩 방향을 트는 것, 그 멋있어짐을 바라보는 것, 그보다 더 재밌는 건 없다. 선생들은 그렇다. 직업병.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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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 떡볶이 그래 책이야 47
소연 지음, 원유미 그림 / 잇츠북어린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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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쪽이 넘으니 아주 두껍지도 그렇다고 얇지도 않은 책인데 속도감이 대단하다. ? 어느새 다 읽었네? 이런 느낌이다.

 

초딩들 연애 이야기라면 내가 목록을 만들 정도였고 리뷰도 많이 썼다. 이 책은 또 색다른 느낌이다. 무겁지 않고, 흥미진진하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공감도 많이 가겠다. 마음은 변하는 것이고 사랑은 움직이는 것이다. 그 과정이 아주 재미있으면서도 누구에게 상처를 주는 방식이 아니어서 아주 훈훈하고 사랑스러웠다.

 

아이들의 연애 시작은 곧 담임의 고생 시작으로 연결되곤 한다. 한마디로 달갑지가 않다는 뜻이다. 그걸 공개적으로 말할 순 없고 내 입장에선 솔직한 심정이 그렇다는 거다. 그건 연애의 과정이 너무 공개적이고, 떠벌리는 성향을 갖고 있고, 주변을 의식하지 않으며, 너무 집착하기 때문에 그렇다. 일상이 잘 운영되지 않고 자잘하거나 크거나 간에 사고들이 따라붙는다. 나는 그것을 건강하지 못한 연애라고 규정한다.

 

연애가 다 그렇지 건강한 연애도 있냐? 라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다고 대답하겠다. 일단은 자신의 일상을 파괴하지 않는 것. 연애 한 가지에만 몰빵하지 않고 자신의 생활도 살아가는 것. 자신의 관심사에 온 우주가 집중해야 한다는 듯이 동네방네 떠벌리며 소란을 일으키지 말고 개인사로 조용히 진행하는 것. 나를, 또 상대를 파괴하지 말고 서로 건강하게 받쳐주는 역할을 하는 것. 한마디로 서로 성장시켜 주는 관계. 나는 이것을 건강한 연애라고 규정한다. 작가님들의 좋은 작품들은 이런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책도 그 목록에 넣고 싶다. 초반이 좀 시끄럽긴 한데 그정도도 봐주지 못한다면 너무 이해심이 없다고 봐야겠지.ㅎㅎ

 

자꾸만 예림이에게 눈이 돌아가는 건이를 짝꿍인 희주가 알아보았고, 거기에 민호가 끼어들어 셋은 진실게임을 하게 됐다. 서로 좋아하는 아이 이름을 공개하고 잘되도록 도와주기. 비밀 수첩에 그 과정을 기록하기. 잘되는 사람이 떡볶이 쏘기. 그래서 모임 이름이 사이 떡볶이가 되었다. ‘사랑이 이루어지는 떡볶이라는 뜻.

 

'사이 떡볶이'는 곧 깨졌다. 민호의 마음이 금방 변해버렸고 이녀석이 배신까지 했기 때문이다. 이게 큰 싸움으로 번지고 울고불고 동네방네 소문나고 쑥덕거리고 잘잘못을 따지고 하다보면 교실이 흉흉해지는 건 순식간이다. 다행히도 나머지 두 명은 괘씸하고 화는 났지만 그들 선에서 대처해 나갔다. 영리하고 사려깊으면서도 행동력이 있는 희주의 역할이 컸다.

 

그 과정에서 둘은 서로에 대한 신뢰와 동지애가 생기며 가까워진다. 그리고 곧 깨닫는다. 그들의 첫사랑의 허상을...... 다음 이야기는..... 상상이 가능하겠지?^^

이 과정을 읽으며 나는 생각했다. 그렇지~ 맞아~ 편안한 게 최고야. 불편하면 그건 아닌거야. 그런데 딱 건이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

아직도 예림이 좋아해?”

.... 모르겠어. 뭔가 불편해. 나는 편한 게 더 좋은 것 같아.”

 

사람들아. 불편한 그 감정 위에서 줄타기 하는 짜릿함을 사랑이라 착각하고 주변을 피곤하게 하는 일을 그만둡시다. 이 쬐끄만 아이들도 말하잖아요. 마음이 편한 게 최고라고.^^

그러니 나도 사랑하고 싶다면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줄 수 있는 인격을 갖출 것. 그리고 내가 도움을 받듯이 상대방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될 것.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파괴하지 말고 성장할 것.

 

언제 연애 강의나 한번 해야 되려나. 음 하지만 못할 게 뻔하다. 내가 꼰대인 건 나도 알고 너도 알고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라서. 그냥 이 책을 함께 읽으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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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안는 법
슷카이 지음 / 창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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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읽으려고 책을 몇 권 대출해왔는데 골골대느라 책도 읽기 힘들다..... 그 몇 권 중에 이 책이 있었던 건 다행이었다. 아플 때 읽는 책으로 추천한다. 재미있고 따뜻하며 위로가 되었다.

거짓말 좀 보태서 요즘엔 한권 건너 한권에 고양이가 나오는 것 같아...ㅎㅎ 덕분에 고양이를 싫어하던 나도 호감을 갖게 되었고 그들의 매력을 조금 알 것 같다. 이 책엔 귀엽고 매력적인 인물이 둘 나온다. 빵이라는 이름의 고양이와 그집 막내딸 노양희다.

빵이는 길고양이였다가 집사를 간택(?^^)했다. 바로 양희네 가족. 그때 양희는 태어나기 전이었고 엄마, 아빠, 오빠가 있다. 빵이는 세 가족과 평화롭고 행복했다. 그러다 1년 후 양희가 태어났다!

오빠가 사려깊고 차분한데 비해 양희는 정말 천방지축 사고뭉치다. 그걸 이해하고 받아주는 가족의 품이 정말 넓다. 이 가족의 모습에서만도 배울 점이 넘친다. 구체적인 직종은 말하지 않았으나 아빠는 집안일을 자주 하는 모습으로 나오고 엄마는 뭔가 컴퓨터로 일을 한다. 아빠보다 엄마 머리가 더 짧은 것도 아주 사소한 거지만 눈에 띄었고, 부부관계가 아주 평등하고 자유롭고 유연해 보였다.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한쪽에만 요구하면 안된다. 이 가족은 따뜻함과 여유가 집안 전체에 배어 있다. 오빠의 너그러움과 무심한 다정함에도 감동했다. 저런 장남 있으면 세상에 무슨 걱정이 있겠니.ㅎㅎ

제목과 같이, 이 책의 주 소재는 '고양이를 안는 법'이다. 빵이는 낯을 가리지 않는 넉살 좋은 고양이다. 심지어 낯선 사람에게까지 잘 안긴다. 오직 한 명 양희만 빼고! 양희는 그게 섭섭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다. 그래서 한달의 연구 프로젝트를 세운다. 고양이를 안는 법!

양희의 상상 이야기, 실제 이야기, 빵이가 화자인 이야기 등 다양하게 구성된 이야기 속에 깨알재미들이
박혀있고 고양이를 키워보신 듯한 디테일이 가득해 시종일관 미소짓게 만든다. 깨알재미 하나 소개. 양희가 빵이와 자신의 전생을 상상하는데 마지막 장면이 '까치와 호랑이' 민화였다. 그러잖아도 내가 잘 아는 집 고양이도 이 호랑이 닮았다는 소릴 자주 듣는데. 아주 빵터졌다.ㅎㅎ 그건 그렇고, 대체 왜! 빵이는 양희한테 가지 않는 걸까? 빵이를 안으려면 어떻게 해야 돼?

"그거야 간단하지. 빵이가 좋아하는 일을 해주면 돼."
아빠의 이 조언은 실패했는데, 엄마의 조언이 내겐 더 중요해 보인다.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을 해 주는 것도 좋지만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는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내 생각이 딱 이거다. 이거 나중에 생활지도 할 때 꼭 써먹어야겠다.
마지막 오빠의 조언은 좀 뼈아프다.
"그건 바로 네가 자꾸 빵이를 귀찮게 하기 때문이야. 연구를 하면 할수록 빵이는 너를 싫어하게 될걸?"

그럴 리 없어.... 하며 눈물을 훔치는 우리의 양희.... 어느덧 계획한 한달이 다 지났고 양희는 "빵이야, 미안해...." 하면서 울며 잠들었는데....^^;;;;

액면 그대로 반려동물에 대한 이야기로도 100점 주겠지만, 보너스로 인간관계에 대입해도 충분히 의미있는 이야기다. 관계에 대한 갈망은 열심과 집착으로는 안된다. 배려와 기다림, 그것도 안되면 포기. 난 그렇게 생각한다.

보고 그리면 따라그릴 순 있을 것 같은 간결한 선의 그림이지만 표현 내용은 풍부하고 실감난다. 이런게 진짜 실력 아닐까 싶다. 작가의 다른 책도 읽어봐야겠다. 마지막으로 양장본인 책 귀퉁이를 둥글린 만듦새와 노란색 표지도 맘에 들었다. 내용의 느낌처럼 따뜻하고 부드러워서. 요즘 부드러운게 땡기나봐. 늙어서인가.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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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인간이 된 선생님 북극곰 이야기샘 시리즈 1
임소영 지음, 이승범 그림 / 북극곰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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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를 보니까 재밌게 생겼고, 출판사도 좋아하는 출판사고, 작가님도 초등학교 교사라 하니 한번 읽어볼까 하고 펼쳤다. 글씨체와 자간 등의 편집이 약간... 요즘 것 같지가 않은 느낌이 들었는데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 옛날 인쇄체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되나... 하여간 오랜만에 보는 느낌이었는데 의아하긴 했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초등학교 교사가 아이들과 글쓰기로 씨름하다 직접 써보자 했던 것이 작가가 되는 과정이었다니 흥미롭다. 그러고보면 초등교사는 동화작가로서 상당히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다. 그렇다고 아무 교사나 동화가 써지는 건 절대 아니지만.... 작가는 첫 책에서 일단 자신을 깨버리는 일로 시작했다. 교사를 주인공으로 했고, 그의 실수와 인간적인 부족함을 부각시켰고, 결국 제자에게 꼼짝없이 당해 한참동안 수난을 겪도록 했다. 그 과정이 바로 책의 내용이자 웃음 포인트였으니, 이 선생님, 도대체 얼마나 스타일을 구긴 거야?

솔직히 나는 이런 설정이 그렇게 막 좋지는 않다. 어른(기성세대)이 희화화되고 심판대에 오르는 상황 말이다. 그래서 난『지각 대장 존』도 아주 좋아하진 않았지?ㅎㅎ 교사도 인간이고 판단착오나 실수도 있을 수 있지 뭐 완벽해야 되냐? 어른이 항상 강자냐? 요즘은 더 약자야... 이런 생각도...^^;;;;

하지만 책 속의 한겨울 선생님은 실수라기엔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긴 했다. 자신의 최초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아이에게 화풀이를 했다는 것이다. 즉 부정적인 감정을 아이에게 쏟아부었다. 감정에 따라 하는 행동에는 일관성이 없다. 아이는 어이가 없었을 테고 화도 났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가진 초등력으로 그만...........

이 부분 솔직히 많이 찔린다. 감정에 좌우되지 않기는 힘들다. 어떤 일로 기분이 나쁜데 그걸 완벽하게 감추고 아이들에게 친절하게 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아이들에게 쏟아붓진 말아야 한다. 아이가 꾸중을 듣더라도 본인의 잘못에 의해서 들어야지 ‘재수없게 걸려서’ 들으면 안되는 거니까. 이부분 한겨울 선생님이 백번 잘못했다.

그 댓가는 바로 이 책의 제목처럼 ‘고양이 선생님’이 된 것이었다. 선생님은 곧 깨닫게 되었다. 남과 다른 존재가 된 자신이 세상에 받아들여지기가 얼마나 힘든지.... 의사는 선생님의 말을 믿지 않았고 정신병자라고 함부로 재단했고 그녀를 잡으러 경찰까지 출동했다. 하지만 학급의 아이들만은 선생님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저 재미있는 해프닝일 뿐이었다. 선생님은 초능력 아이에게 진심으로 사과했고 그 결과는....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이렇게 확연하게 순수한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순수하지 못하다면 그건 어른들에게 그리 배운 탓이다. 타인을 고정관념의 잣대로 재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수한 이들이 우리 주변에 많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이의 초능력을 받기 전에 어른으로서 내 모습도 잘 돌아보고 정돈해야겠다.

표제작 외에 한 편이 더 들어있다. 「214번째 비상상황」이라는 흥미로운 제목의 이야기에는 병정개미들이 나온다. 그중에서도 존재감 없는 미약한 존재 ‘작은턱’. 그는 훈련동기들과 함께 ‘214번째 비상상황’에 투입되었다. “예를 들면 이 하찮은 턱과 가느다란 다리 말인가?” 라는 모진 수모의 말을 들어야 했던 작은턱은 이 비상상황에서 어떤 활약을 펼쳤을까?

“난 그냥 내 할 일을 하는 것뿐이야. 너도 알다시피, 우린 무리를 지키는 병정개미니까.”
작은턱은 이렇게 조용히 자신의 존재감을 지켰다.

눈에 띄는 존재들은 그만큼 공격당하기도 쉽다. 난 작은턱처럼 눈에 잘 안 띄고 조용히 살았다. 작은턱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기여한 것도 없고 겨우겨우 내 몫만 하면서.... 그러니 뭘 했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지만.... 내 할 일을 묵묵히 했으면 빛나지 않아도 만족한 인생일 수 있기를 바란다. 작은턱에게도 행운이 연속해서 오진 않겠지만 오늘의 존재감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길. 이 이야기가 교실의 눈에 띄지 않는 아이들을 위로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너어무 눈에 띄는 아이들을 좀 자중시켜 준다면 더 좋겠고....^^;;;

다음 책에선 어떤 이야기를 할까 궁금해지는 작가다. 예상치 못한 색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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