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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리에는 딱따구리가 산다 ㅣ 마루비 어린이 문학 9
신윤화 지음, 한아름 그림 / 마루비 / 2022년 1월
평점 :
머리, 딱따구리를 들으니 딱 편두통이 생각났는데 그 연상은 맞았다. 이 책에는 그 표제작을 비롯하여 다섯 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공통점을 찾자면 주인공이 판타지 세계에서 무엇인가를 경험하고 느끼고 현실로 돌아온다는 점이다. 그게 무섭기도 하고 다행스럽기도 하고 통쾌하기도 했다.
첫 번째 작품 「숨바꼭질」은 별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무섭고 슬프고 읽기 힘들었다. 잔인한 것은 아니고 직접적인 묘사도 없는데 그냥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괴로웠다. 동네 친구들을 계곡에서 잃고 혼자 살아있는 수호. 절친이었던 훈이는 물이 절벅절벅한 하얀 운동화를 신고 자꾸만 나타나지. 수호가 나름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끝났지만 절대 해피엔딩이 될 수는 없는 소재. 잘 쓰신 작품이지만 굳이 읽고 싶지는 않은 작품.
표제작 「내 머리에는 딱따구리가 산다」는 두통에 시달리는 주연이의 이야기다. 딱따구리가 주는 고통은 너무 심한데, 병원을 다녀봐도 신경성이라 할 뿐이다. 신경성이 맞다. 주연이가 신경쓸 게 너무 많거든! 착하고 배려심과 책임감이 큰 아이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주연이 아빠는 고시공부 중이고 엄마는 돈 벌어야 해서 바쁘다. 하지만 아이는 아이인 걸 잊으시면 안되는데, 잘한다고 주연이에게 너무 많은 것들이 맡겨진다.
주연이는 어느날 너무 피곤하여 버스에서 졸다 종점까지 가버린다. 다음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들어가본 어떤 한의원. 그곳이 판타지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주연이의 ‘해소’가 이루어진다. 다녀온 주연이는 엄마한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이거 엄마가 환불해. 엄마 블라우스잖아.”
아이와 함께 병원을 다니고 신경성이라는 진단까지 받았으면서도 아이의 마음의 짐을 벗겨주지 못한 부모가 좀 이해가 안된다. 하지만 그보다 심한 부모도 천지삐까리니까... 이정도에서 그친 것도 다행이다.
주연이 유치원 시절 바쁜 엄마가 머리 빗질도 못하고 꽂아주었던 딱따구리 핀과 머릿속 딱따구리와의 연결이 참 절묘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의 과거가 갑자기 소환되어 마음이 조금 먹먹하기도.... 나도 바쁘다고 딸아이 머리 한번 예쁘게 길러줘 본 적이 없기 땀시.... 그래도 딸은 딱따구리 없이 무사히 컸다. 그저 다행이라고 말할 수밖에.ㅠ
세 번째 작품 「나의 레벨」은 평상시 나의 생각과 많이 맞닿아 있어서 사이다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다. 그 생각이란 인간 수준에 수천만의 등급이 있다는 것이다. 인간 수준 거기서 거기지 뭐... 라는 생각도 일면 맞지만, 수준 이하의 인간들이 너무 많다는 것도 현실적으로 맞는 얘기다. 다르게 표현하면 ‘진상’이라고 할까. 솔직히 새학년 분반을 할 때 어차피 줄을 세워야 하는 바, 이 ‘인간 수준’으로 줄을 세우는 것이 어느정도 가능하고 보는 눈은 거의 일치한다. 이 작품에서 말하는 ‘레벨’은 바로 그 인간 수준을 말하는 것이다. 태양이는 엄청 좋은 직업의 부모님을 가진 부잣집 자식이다. 그러니 당연히 ‘생활 수준’은 높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남을 무시하고 마음 속으로 깔아 뭉개는 등 인간 수준은 형편없다. ‘내가 누군데’ ‘니가 감히’ 등의 생각에 젖어있고 배려와 예의란 건 갖추지 못했다. 그런 생각은 행동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법, 태양이가 친구를 골탕먹이는 모습은 정말 눈살이 찌푸려진다.
모종의 사고가 있었고 태양이는 유체이탈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다가 다시 몸으로 돌아온다. 그때 내뱉는 외마디가 “잘못했어요. 앞으로는 레벨 높게 살게요!”다. 그 말의 의도에는 200% 공감하지만 살짝 어색한 느낌이 있다. ‘레벨 높게’ 말고 다른 표현은 없을까? 어쨌든 비열하고 남을 괴롭히는 자들, 양심 불량이고 타인을 지배하려는 족속들이 이 작품을 읽고 좀 경고를 받으면 좋겠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인간 수준이 높은 건 아니다.
「단비 오는 날」은 엄마의 죽음을 직면하지 못하는 단비의 이야기다. 그런 단비를 도와준 존재는 엄마가 묻힌 마을의 장승들.........?
「벽장 밖으로」의 유준이는 자폐아다. 남들한테는, 아니 부모에게까지도 모자란 아이, 이상한 아이였지만 오직 한 사람 유준이를 키워 준 시골 할머니에게는 세상 둘도 없는 사랑스러운 손자였다. 아이가 크자 부모님은 서울로 데려왔고, 그때부터 유준이는 벽장에 틀어박힌다. 벽장을 통해 유준이가 갈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그리고 유준이를 벽장 밖으로 나올 수 있게 해주는 존재는 누구일까?
‘작가의 말’에 보니 작가는 ‘무서운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한다. 어릴 적 들었던 괴담 말고 아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무서운 이야기를. 이 책의 모든 이야기가 무섭진 않다. 하지만 적어도 으스스한 분위기 정도는 들어있다. 게다가 그 내면의 무서움을 극복하는 이야기라 아이들에게 힘과 위로를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가진 다양한 문제를 진단하고 ‘무서운’ 약을 조제하신 작가의 노력과 시도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