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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말 사전 ㅣ 슬기사전 3
박효미 지음, 김재희 그림 / 사계절 / 2022년 2월
평점 :
가독성이 최고다. 저학년도 읽기 가능하고 고학년에서 책과 담쌓은 학생들도 그냥 쓱 부담없이 읽을 수 있겠다. 간결하고 글밥이 적은데도 최소한의 스토리 설정이 있어서 내용을 따라가기 좋다. 비문학에 재미를 더하기 위해 곁들여진 스토리가 과하고 난잡해서 짜증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은 딱 적당하다. 내 기준에 그렇다는 것이지만.^^
‘나쁜 말 사전’ 이라고 하기에 흔히 학생들에게 “친구들에게 나쁜 말을 쓰지 맙시다.” 하고 지도할 때의 나쁜 말인 줄 알았다. 전에 말 상처가 너무 심한 학급을 맡아서 ‘우리반에서 추방해야 할 나쁜 말’ 뽑아내기 활동을 국어시간에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중 1위가 ‘관종’이었고 2위가 ‘안물, 안궁’이었다. 이런 식으로 서로 감정을 상하게 하는 말이나 나쁜 욕설을 다루는 책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네? 이 책에서 다루는 나쁜 말은 차별하는 말, 혐오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나오는 나쁜 말이 “남자가, 여자가” 라는 말이다. 사전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는 말이다. 상황에 따라 나쁜 말이 되는 경우다. 예를 들면 “여자애가 축구를 하네?” 같은 말들. 남녀를 구분짓고 역할을 고정하는 말들. 다음으로는 유모차. 엥? 유모차도 나쁜 말이야? 한자를 잘 풀어보면 아기는 엄마가 돌보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들어있다. 이렇게 일상 속에서 무심코 굳어진 ‘나쁜 말’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보면서 깨닫게 된다. 총 36개의 나쁜 말이 들어 있다. 차별어, 혐오표현들이 꽤 이슈가 되었기 때문에 그런 자료에서 많이 보았던 낱말들도 있다.
그런데 사실 말이라는 게 살짝 애매할 때도 있다. 다른 표현이 없는데 어떡하지? 싶은 말들. 예를 들면 외할머니 같은 말인데, 한자를 풀자면 기분이 나쁘지만 내게 그 말은 그냥 어감부터가 푸근한 말이다. 그리고 두 할머니를 구분해서 말해야되는 경우도 있는데 ‘할머니’라는 말밖에 없으면 불편하다. 아빠의 어머니, 엄마의 어머니, 이렇게 표현해야 할까? 이 책의 내용에 딴지거는 건 아니고, 대체할 다른 말이 생겼으면 좋겠다.
‘조선족’ 같은 말도 그렇다. 조선족은 민족 이름이고 차별을 위해 만들어낸 말이 아니지 않나? 다만 그들에 대한 혐오가 있다는 것이 문제인데, 그게 낱말 탓은 아닐 것 같다.
‘장이’나 ‘쟁이’가 붙은 말들도 내 느낌엔 좀 애매하다. ‘장이’ 같은 경우엔 직업의 의미를 가진 우리말로 알고 있는데, 그게 원래 얕잡는 뜻이 내포되어 있었던 건가? 난 그렇다고 느끼지 않았는데. 도배장이, 도배공, 도배사 다 나한테는 비슷하게 보이는데. 공(工)자를 붙이면 낮추는 느낌, 사(士)자를 붙이면 높이는 느낌이라는 거 자체가 사농공상의 구닥다리 사상을 답습하는 것 아닌가? 공을 높이는 사회가 되어야지 공을 사로 바꿔 부르는 사회가 되어야 할까? 이 부분은 좀 납득되지 않았다.
그 외 신체 장애를 얕보는 말, 성역할을 고정하는 말, 인종이나 국적을 낮추는 말, 외모를 비하하는 말 등이 있었고 모두 동의할 수 있었다. 마지막 36번째 나쁜 말이 ‘몰래카메라’였는데 스토리를 이끌어 무사히 엔딩에 도착하는 작가님의 센스를 느꼈다.^^ 이 책의 스토리는 못된 말을 달고 사는 ‘나쁜말씨’가 사고로 죽어 염라대왕 앞에 가게 됐는데 염라대왕이 “이 세상의 나쁜 말을 다 잡아 오너라”는 임무를 내렸다는 설정이다. 이렇게 나쁜 말들을 다 수집한 나쁜말씨는 마지막 ‘몰래카메라’에 이르러서......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 나쁜말씨는 이제 어떻게 될까? 마무리도 간결하게 끝난다. 약간의 열린 결말로. 그리고 이렇게 만든 ‘나쁜 말 사전’은 봉인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과연?^^;;;;
모르고 무심코 쓰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이런 차별표현, 혐오표현은 사전에 지도해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다. 청소년용 책은 꽤 나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렇게 쉽게 쓰인 어린이용 책이 나온 것도 고마운 일이라 매우 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