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어 이빨 문지아이들
안나 볼츠 지음, 나현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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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알래스카>를 워낙 좋게 읽어서, 작가의 이름을 보자마자 바로 책을 샀다. 전작만큼 크게 좋진 않았지만 소소하게 좋았다. 인터넷 서점에 3,4학년용으로 분류되어 있던데, 분량상 두껍지는 않지만 중학년이 재미있게 읽고 소화할 정도는 아니다. 고학년은 되어야 권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안녕 알래스카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요소가 있다. 각각의 상처를 가진 남녀 학생 1명씩이 서로를 잘 모르는 상태로 만나게 된다. 그들이 함께 여러 일들을 겪으며 친구가 된다는 설정이다. 상처는 서로 다르고, 처음부터 좋은 친구로 시작했던 것은 아니지만 상처는 서로를 위로하고 지지하여 함께 나아가게 한다.

전작과는 다르게 이 책만이 가진 특별함을 꼽으라면 로드무비 같은 내용의 성장기라는 점이다. 말 그대로 길 위에서의 이야기다. 하지만 그 기간이 매우 짧다. 1박 2일밖에 안되니까.^^ 여행의 수단은 자전거다. 국내의 작품 중 <불량한 자전거 여행>이 떠오른다. 자전거는 무척 매력적인 소재다.

‘애틀란타’라는 이름의 소녀는 무모한 자전거 여행을 혼자 떠났다. 철인경기도 아니고, 360km나 되는 여정을 숙박도 없이 다녀오기로 작정하고 나섰다. 한시간에 15km를 달리면 된다는 단순 계산만 하고서. 하룻밤 정도는 안자고 샐 수 있다는 각오를 하고.

‘핀레이’라는 이름의 소년은 가출했다. 아무 준비 없이 자전거만 끌고. 둘은 여정에서 만났다. 목적이 없는 소년은 촉박한 목적을 가진 소녀의 길을 따라가게 된다. 그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씩씩한 척했지만 소녀는 무서웠고 서로에겐 이야기를 들어줄 상대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들의 상처는 다르면서도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엄마’. 그리고 둘 사이에 매개적인 소재이자 이 책의 제목인 ‘상어 이빨’이 있었다.

지금부터는 스포. 애틀란타의 엄마는 암 투병중이다. 내일 중요한 검사의 결과가 나온다. 불안감을 동반한 기다림은 정말 견디기 힘든 시간이다. 애틀란타는 뭐라도 해야 했다. 그게 실제적으로는 도움이 될 리가 없는 일이라도, 애틀란타는 자신을 채찍질해야 했다.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하지만 육신의 한계는 마음을 뛰어넘기 힘든 법.

핀레이는 존재 자체에 상처를 받았다. 아빠는 핀레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가버렸고 혼자 힘들게 핀레이를 키우는 엄마는 핀레이에게 말로 상처를 많이 준다. 결정적인 말은 “너를 낳은 걸 후회한다.”는 말이었다.

이 극한의 자전거 하룻길에서 어쨌든 그들은 돌아왔고 각자의 ‘엄마’와 재회했다. 해피엔딩이 너무 급격하게 느껴지는 건 독자의 심술인가.^^;;;; 그들이 떠나지 않았어도 이 결말은 오게 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친구를 얻게 되었고, “뭔가 해보지 않았던 것을 하고 나면 다른 사람이 되어 있던데.” 라는 드라마의 대사처럼(나의 해방일지) 짧지만 강렬했던 여정 속에서 훌쩍 성장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매력은 제목이자 소재인 ‘상어 이빨’이 많은 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소설이든 드라마든 영화든, 작가들은 자신이 접하는 모든 것에서 소재의 가능성을 찾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상어 이빨은 그 언어권에서 ‘유치가 빠지지 않은 상태에서 올라오는 영구치’를 뜻한다고 한다. 즉 덧니의 시작인 것이고, 치아 교정이 필요한 것이지. 주인공 애틀란타가 자전거 여행에 챙겨온 비품들 중에 바로 그 치아교정기도 있었다.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핀레이가 가출하며 들고 나온 엄마의 행운의 상징. 그것 또한 ‘상어 이빨’이었다. 이건 진짜 상어 이빨이다. 오래된 화석이지만. 이런 식으로 중의의 의미를 겹겹이 갖는 소재가 나오면 이야기에 더 흥미와 의미를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안녕 알래스카>도 그렇고 이 책도 그렇고 초반 접근성과 가독성이 높지는 않다. 하지만 그걸 견뎌낼 독서력이 있는 아이들이라면 중반 이후부터는 푹 빠져 읽고 많은 생각을 길어올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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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으로 만난 어린이 세계 - 아홉 살 방구석 그림책 수다에 낀 엄마 성장기
강영아 지음 / 푸른칠판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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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모임을 그려낸 책. 내가 쓸 수 없는 부러운 책이다. 필력이 없다거나 내용이 부족하다거나 등을 다 떠나서, 내 아이들이 이미 다 커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책을 시간들여 읽지 않는다. 육아책을 안읽는 것과 비슷한 심리다. 하지만 예쁘게 나온 책의 만듦새를 보니 한번 읽어보고 싶어서 구입했다. 저자가 휴직교사라고 하는데, 학교가 아닌 집과 마을에서의 실천을 어떻게 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저자는 고등학교 사회 선생님이라고 하는데 국어 전공이라고 해도 믿을만큼 문장도 감각적이고 그림책과 동화책에 대한 안목도 훌륭하고 의미있게 이끌어가는 능력도 좋으신 것 같다. 그렇다고 학교수업처럼 계획과 의도에 따라 목표점을 향해 가는 과정이라는 말은 아니고 그보다 훨씬 유연하고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처음에는 저자도 아차 싶은 순간을 맞이하기도 했던 것 같지만 (선생들의 어쩔 수 없는 직업병) 점차 가르치는 이와 배우는 이가 분리된 과정이 아닌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 되어갔다.

이끔이는 휴직교사인 저자였고, 참여 멤버는 저자의 쌍둥이 자녀와 조카, 그리고 동네친구들이었다. 책과 간식, 그리고 이야기와 가끔의 활동이 있는 독서모임. 이게 말처럼 쉽진 않을거다. 특히 자기 자녀들이 멤버인 경우에. 해보진 않았지만 단기간이면 몰라도 긴시간 유지는 어려울 것 같은데.... 이 책에는 첫 모임 후 사계절이 지나기까지의 과정과 그 후기가 담겼다. 점점 깊어지고 무르익는 과정이 저자의 사색적인 문장과 현장 그대로의 묘사에 잘 나타나 있다.

몇몇 군데에서는 읽은 책의 제목을 검색해 책의 내용을 확인해보기도 하고, 읽어볼 책 후보에 올려놓기도 했다. 이 책은 이렇게 정보를 얻기 위해 읽어도 유용하지만 그보다는 그 모임이 의미를 갖게되는 과정에 그 귀함이 있다고 생각한다.

"말하지 못하는 것들을 보고 듣고 공감하며 엄마 세계에서 건강한 존재로 거듭났다. 언니, 동생들의 삶을 엿보며 비슷한 삶을 사는 것 같아도 매 순간 정성을 다해 사는 사람의 삶은 어쩔 수 없이 빛이 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자가 운이 좋았던 건지, 좋은 사람 곁에 좋은 사람이 모이기 마련인 건지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저자와 아이들은 무엇보다도 소중한 관계를 얻게 됐다. 그 관계 안에서 나눈 이야기와 그로 쌓은 생각이 아이들의 삶의 바탕을 단단히 다져주었다. 그 경험은 꽤 오래도록 아이들의 삶에 밑거름이 될 것이다. 아이들 뿐 아니라 저자도, 교직사회에서만 있었다면 몰랐을 세상을 많이 접하게 된 것 같다.

어디에나 귀한 사람들이 있다. 저렇게 이기적일까 싶은 학부모도 보았지만 지난 학교에서 만났던 '책읽어주는 어머니'들의 자발적 봉사에 진심으로 감사했던 기억이 난다. 마을 안에 스며들어 맺은 저자의 관계와 만남은 아이들과 저자, 그리고 모든 가족에게 귀한 시간들이었다.

이 모든 것이 나에겐 이미 지나갔거나 성격상 불가능한 일들이라 이 책 소감의 대부분은 '부러움'이다. 나중에 손자가 생기면 기회가 있으려나?ㅎㅎ 어린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 독서모임을 꿈꾸는 교사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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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걸의 패션스쿨 서유재 어린이문학선 두리번 13
이조은 지음, 홍지연 그림 / 서유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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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전작인 <패션걸의 탄생>도 꽤 재미있게 보긴 했지만 서평을 쓰거나 주변에 권하거나 하진 않았다. 보육원에서 자라던 아이가 하루아침에 세계적 디자이너 샤넬 오의 손녀딸이 되는 상황이 만화 또는 드라마에나 어울리는 설정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 또한 나의 편견이라 할 것이다. 이어진 이 책을 읽으면서는 오호~ 하게 되었다. 꽤나 전문적으로 관련 분야를 그려낸 것 같아서다. 작가가 미술을 전공하셨다는데 패션 쪽으로도 경험과 관심이 깊으신 게 아닐까.

목표를 향한 주인공들의 대결 구도는 흥미로운 소재다. 그만큼 각종 서사에서 많이 사용하는 소재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요리왕을 꿈꾸는 주인공들의 요리 대결이라든지.... 이 책은 세계 어린이 패셔니스타 대회 출전을 꿈꾸는 패션 꿈나무들의 대결을 담았다. 난 요리라면 좀 눈여겨볼지 몰라도 패션에는 영 관심없는데.... 그런데도 꽤 흥미진진하게 내용을 따라가게 되었다.

샤를 오가 세운 패션스쿨의 이번 시즌 참여자들이 주인공이다. 전작의 주인공이자 샤를 오의 손녀인 조수아를 비롯해서 수아와 보육원에 함께 있던 봉주, 샤를 오와 쌍벽을 이루는 디자이너의 손자인 이준, 자신감이 부족한 진아, 반대로 자신감이 지나친 공주병 세진 등 다양한 캐릭터의 출전자들이 나온다. 이들이 여러 단계의 미션을 치루며 최종 단계까지 가는 과정이 흥미진진하다. 각 미션에 대한 아이들의 해결, 그에 대한 심사 내용 등에서 작가의 내공이 느껴진다. 내가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분야라 더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작가의 생각을 그림으로 직접 표현한 그림작가님도 꽤 애쓰셨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 삽화보다는 작업이 어려웠을 것 같다.

결국 누가 우승을 차지했을까? 납득할 만하게 적절한 이유로 승부가 결정됐고, 승부보다도 협력의 모습으로 마무리도 잘 되었다. 무엇보다도 관심분야에 역량과 안목을 쌓으며 정진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어른들 못지않게 진지했다. 특히 '나다움'에 큰 가치를 둔 작가의 시선이 마음에 들었다. 수행할 수 있는 역량도 중요하지만 남의 것, 기존의 것을 따라하지 않는 자신만의 독창성이 꼭 필요하다. 그것은 '자기 서사'에서 나온다.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이 아이들은 무의식중에 그걸 알고있는 아이들이라고 생각된다.

패션은 흔치 않은 분야지만 다른 어떤 분야든 다 좋다. 어른들이 정해놓은 한가지 길밖에는 길이 없는 줄로 아는 아이들로 키우지 말았으면 좋겠다. 어버이날 카드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다 "좋은 대학 가서 효도할게요." 라는 문장을 보았다. 초등학생이 오죽하면 저런 말을 할까. 명문대, 거길 뚫고 들어갈 학업 등급이 전체의 몇 %나 될까. 모두가 한줄로 서서 한개의 문을 바라보고 거기서 탈락하면 실패자이고 불효자가 되는 건가? 얼마나 불행한 사회인가. 공교육은 모두가 명문대를 가기 위한 교육이 아니고 모두가 자기 분야에 정진할 수 있는 기초학문과 태도를 갖추게 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동상이몽인 경우가 많다. 난 그나마 초등이라서 내적 갈등이 덜한 거고.ㅠㅠ

나는 아이들이 자기 삶을 소중히 여기고 삶의 사소한 순간까지 자기 서사로 만드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 그것이 비옥한 토양이 되어 모두가 자기 삶의 꽃을 피우길. 저마다의 색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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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네리코 3번가 야옹 관장님 코후지 이야기 - 작은 서양관 속 열두 개의 이야기 주머니 바둑이 폭풍읽기 시리즈 2
야마모토 카즈코 지음, 이시카와 에리코 그림, 전정옥 옮김 / 바둑이하우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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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보진 않았지만 일본 영화 특유의 잔잔한 느낌이 난다. 영화로 만들면 재미있겠다는 말이다. 주인공들이 동물이라 실사는 어려울테니 애니메이션으로.... 월별로 한 에피소드씩인 구성도 좋고, 상처받고 숨어든 주인공이 회복하고 나아가는 주제도 어디서 많이 보긴 했지만 또 좋다.

첫장과 끝장은 고양이 후지 할머니의 인사말이다. 할머니는 토네리코 마을의 서양관(서양식 건물)에서 산다. 1년 여행을 떠나며 손녀인 코후지에게 집 관리를 맡겼다. 집세는 한 달에 한 번 그 달에 맞는 행사를 하고 할머니께 편지를 보내는 조건으로.

왠지 마음이 설렌다. 경치 좋은 마을에 쾌적한 집, 눈치 볼 사람 아무도 없어, 미칠 듯 바쁜 일상과 그에 따른 의무도 없어, 조용하고 시간은 널널해. 얼마나 좋을까.ㅎㅎ 하지만 실제라면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해지는 마음을 다스리기 힘들 것이다. 인간이란 왜 이렇게 불안한 존재일까.

더구나 코후지는 직장생활 중 상처받아 회사를 관두고 두문불출하던 중 할머니의 제안을 받고 이곳에 왔다. 그 상처는 관계에서 생긴 것이었으니 역시 관계에서 회복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그게 아니면 책이 되겠어? 할머니의 조건을 봐. ‘행사’를 하라잖아. 내 속에서 약간의 저항이 느껴진다. 꼭 그래야 돼? 좀 혼자 놔두면 어디가 덧나?

하지만 그 행사라는 것은 꼭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달을 거듭할수록 조금씩 커지기는 한다) 첫 행사인 ‘꽃놀이’는 벚꽃을 보며 코후지 혼자 도시락을 먹었으니까. “벚꽃이 나를 위해 이렇게 예쁘게 피어 주었네. 나는 벚꽃한테 아무것도 해 준 게 없는데도 말이야.”

이렇게 달마다 치르는 행사는 일본의 세시풍속과도 관련이 있다. 지식 목적의 책이 아니기 때문에 굳이 기억하려 애쓰며 읽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각 장의 끝에 간단하게 설명이 나온다. 그 밑에 추가로 ‘한국의 세시풍속’도 함께 소개되어 나온다. 이건 출판사 측의 아이디어겠지. 없어도 상관없겠으나 있어도 나쁘지 않다. 다만 본문과 관련된 일본의 세시풍속은 양력 기준인데 우리 세시풍속은 음력 기준으로 소개하고 있어 그 시차가 한 달 이상 된다는 것이다. 어차피 본질적인 부분이 아니라서 상관은 없지만.

4월에 시작한 이야기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을 한바퀴 돌고 다시 4월에 이르러 끝을 맺는다. 그동안 코후지는 수박깨기, 불꽃놀이, 달맞이, 밤 줍기, 크리스마스 리스 만들기, 콩 뿌리기 등등 달마다 절기에 맞는 행사 하나씩을 해나간다. 혼자 도시락을 먹었던 첫 행사와 달리 회를 거듭할수록 함께 하는 이웃들이 늘어난다. 거부감을 느낄 새도 없이 쏘옥 들어와 자연스럽게 함께 하게 되는 이웃들. 아빠랑 둘이 사는 어린 고양이 마끼오, 정리정돈과 글씨를 잘 쓰는 쥐 네즈모리 씨, 태어날 동생 때문에 심통이 난 여우 후사노오, 야노와라는 뱀, 어부가 되고 싶은 곰 아오바, 창의적으로 만들기를 좋아하는 맥 루루아, 분을 못참는 원숭이 곤고 할아버지, 헌책방 할아버지 후나네꼬 등.... 마지막 장의 행사 역시 첫 장과 마찬가지로 ‘꽃놀이’ 인데 그 차이를 보면 1년이 만들어낸 변화를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인간의 참견과 오지랖이 만들어내는 피로함은 정말 싫은 것이고 피하고 싶다. 그렇다고 단절이 답은 아니라는 것도 너무나 확실하다. 혼자 먹으려고 만드는 도시락도 때로는 맛있지만 계속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어느 만큼 다가가고 어디쯤에 머물면 좋을까? 세상 모든 것에 거리와 간격이 있으며 그것들이 어울려 상호작용을 하듯이, 인간들의 관계도 그러해야 할 텐데 그 적절한 지점은 어디일까? 너무 극단적인 생각은 금물. 상처받아 꼭꼭 닫힌 마음으로 마을에 들어왔던 코후지의 마음이 살짝 열려 바람이 드나들듯이, 딱 그정도 열어놓고 서로 드나든다면 좋을텐데. 근데 그걸 재는 자도 없고 니 맘 다르고 내 맘 다르니 어려울 수밖에. 그래서 이런 주제의 이야기는 계속 나올 듯하다. 대충 짐작이 가면서도 재밌게 봤다. 다양한 변주로 표현할 수 있는 근원적인 주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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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진짜 보물이 있다면 우리학교 그림책 읽는 시간
수산나 이세른 지음, 로시오 보니야 그림, 김정하 옮김 / 우리학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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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해 보이는 그림책이었다. 그림체도 색감도 수수하고 내용도 특별할 건 없겠네 라고 생각하며 읽어나갔다. 와 그런데 이 책, 소중하게 소장할 것 같다. 그리고 다음주에 바로, 우리반 아이들에게 읽어줄 거다. 그리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거다. “너희들의 보물은 뭐니?” 이 책의 최고 장점은 이거다. 내 이야기를 하게 만든다는 거. 나한테도 그랬다. ‘음... 나의 보물은....?’ 이런 생각이 미소지으며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양쪽으로 펼친 화면 두 쪽당 한 어린이의 보물을 소개해준다. 그림책 치고는 많은 편인 글밥이 이 책의 가치를 높여주었다고 생각한다. ‘나의 보물은 ~~이다’ 라는 소재 자체는 흔한 것이다. 가치는 디테일에서 판가름이 난다. 이 작가는 그런 면에서 역량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각 주인공들의 상황이나 성향, 가치관까지 어느 정도 짐작이 되는 내용들. 그래서 각 장의 마지막 문장 “♡♡♡의 보물은 ○○○이야.”를 읽을 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무리한 내용 없이 모두 자연스럽다. 열 여덟 명의 열 여덟가지 보물. 독자 아이들은 “아, 내 보물도 저건데!” 할 수도 있고 또 새로운 자신만의 보물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세상에 소중한 것은 많고 각자에게 다 다르니까 말이다.

주 2회 주제글쓰기를 하니까 그중에 ‘나의 보물 1호’ 라는 주제는 해마다 있었다. 가족을 언급하는 아이들이 가장 많고 그 외에는 뭔가 본인의 소장품을 소개한다. 휴대폰이라든지 애착인형이라든지 선물받은 물건 같은 것들 말이다. 이 책을 읽어주면 훨씬 다양하게 나오겠다.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거야.” 라던 어린왕자 여우의 말처럼, 가시적이지 않은 것에서 보물을 찾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의미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첫 주인공 사라의 보물은 ‘친구들’이다. 세 번째 주인공 알바로의 보물은 ‘사랑’이고 여섯 번째 마누엘의 보물은 ‘가족’이다. 이 정도는 반 아이들에게서도 흔히 나오는 내용들이다. 그런데 ‘추억’이라든지 ‘여유로운 시간’이나 ‘모험’ 같은 것은 신선하다. 아이들의 발상을 건드리고 깨울 수 있을 것 같은 내용들이다. ‘책’도 있는데 아이들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다. 나는 공감한다마는....ㅎㅎ

‘담임 선생님’을 보물로 뽑은 에르네스토의 이야기를 읽어줄 때는 본능적으로 좀 위축될 거 같은....^^;;; 인자함과 유머, 격려의 힘과 인내심을 모두 갖고 계신 선생님. “선생님은 에르네스토와 친구들이 별처럼 반짝일 수 있게 해주셔.” 난 몇 년 안 남았지만 이 문장을 나침반으로 삼아야겠다.

끝까지 읽어보니 역시 더 특별히 마음이 가는 페이지가 있다. 나의 경우엔 책, 여유로운 시간, 자신만의 공간, 아름답고 편안한 순간이다. 아이고 딱 성향이 나오네.^^;;; 모험, 추억, 특별한 물건들, 꿈 이런 것들은 귀한 줄은 알겠지만 내 마음이 딱 가지는 않는다. 나의 상태와 가치관을 보여주는 척도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매년 하는 주제 글쓰기지만 올해는 그림책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이 책 이전에 『천 명의 대니』로도 좋은 글을 썼는데 이 책을 읽으며 책 자체도 좋았지만 다른 꿍꿍이(?)로 더 즐거웠다. 현장에 있는 동안은 어쩔 수 없이 이런 꿍꿍이를 멈추지 않겠다. 좋은 책을 읽고 활용하게 해주시는 모든 분들(작가, 출판사 등등)께 감사드리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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