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감정 사전 - 상처받는 교사를 위한 마음 챙김 멘토링
김태승 지음 / 푸른칠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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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선생님과 페친인데, 격동하는 아이나 학부모와 차분히 대화하신 글을 가끔 보면 와 이거슨 성품인가 공부인가 감탄하게 된다. (공부라고 말해줘. 그래야 가능성이라도 있잖아.ㅠ) 상담쪽에 박사학위를 받으셨다니 공부 쪽이 강하다고 믿어도 무방하겠지? 그분이 쓰신 이 책에는 그런 공부가 들어있겠지? 그런 생각으로 책을 샀다.

이 책의 제목과 개요를 처음 접했을 때 '와 이건 대박인데' 라는 생각을 했다. 딱 지금 시기에 말이다. 왜냐하면...ㅠ 교사들의 감정이 지금 말이 아니거든. 너덜너덜하다고 해야하나.... 대부분의 교사들이 심한 소진을 겪고 있는데 그건 일 때문이기도 하지만 들어가보면 감정 문제인 경우가 많다. 감정이 긍정적일 때 낼 수 있는 힘과 그 반대일 때는 차이가 많다. 더이상 힘을 낼 수 없는 상태는 대부분 감정에서 기인한다. 게다가 교사는 상대방의 감정을 살피는 쪽에 주로 서야하다보니 자신의 감정을 살피는 일에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이 책은 그런 교사들을 위한 책인 것 같다.

전문적 용어로 딱딱하고 어려운 책도 아니고, 그렇다고 토닥토닥 안아주는 말랑한 책도 아니다. 약간은 건조한 쪽에 속한다고 나는 보았다. 이정도 포지션이 내겐 맘에 들었다. 한달음에 읽어지는 책은 아니지만 객관적인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다섯 종류로 감정을 분류해서 서술했다. 화, 슬픔, 두려움, 싫음, 행복. 마지막장을 빼고는 다 부정적인 감정이다. 그러고보니 인사이드 아웃의 다섯 주인공과 같은 분류다. 다섯 영역의 감정을 다시 두세가지로 세분했고 (예를들면 두려움 영역에는 공포와 불안) 각 감정에 대한 설명 뒤에 '선생님의 마음챙김' 코너가 있어 상담자와 내담자의 대화 형식으로 실제적인 조언을 해주고 있다.

쭉 읽어보고 나에게 가장 많이 깃들어 있는 감정은 '불안,걱정'이 아닐까 판단을 해보았다. 그건 나에게 있는 가장 큰 욕구가 '편안함, 안정됨'이기 때문에 그 대척점에 있는 감정에 많이 지배되는 것이리라. 읽어보니 교직을 처음 시작해 미숙한 교사를 떠올리며 설명하셨던데 나는 이미 후반부... 흑흑 나는 왜 아직도 불안한가.ㅠ 지금 나의 불안 포인트는 교육과정 운영이나 업무보다도 학생, 학부모 구성, 돌발상황에 있는 것 같다. 즉 '폭탄이 어디 있지? 그게 언제 터지지?'의 불안이다. 평화시에도 전시를 대비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게 괴롭다. 하긴 인생이 원래 그런 건지도 모르는데....

다음으로는 '시기, 질투' 장에 눈이 갔다. '열등감이 보내는 신호를 알아차리세요' 라는 제목 때문이었는데, 젊은시절 열등감을 극복하는 것이 큰 문제였던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질투심이 심하다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시기, 질투와 열등감 간에는 연관이 많았다. 그리고 열등감이 보편적인 것처럼 시기, 질투도 발전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감정이다. 나는 평소 남을 잘 부러워한다. 저자는 '부러움은 시기의 부드러운 버전이다' 라고 표현하셨다. 부러움이 시기로 넘어가지 않도록만 수위 조절을 잘하면 되겠다.

'짜증'도 내게 해당사항이 많을 것 같아 주의깊게 읽어보았다. "짜증은 무엇을 해서 발현된다기보다는 각자의 기준에 맞지 않을 때 발현된다고 보는 편이 더 설득력있다." 라는 문장에 완전 수긍했다. '못마땅'이라는 감정과 비슷한 것 같다. 나는 '삼진아웃 까지는 못마땅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내적기준이 있어서 표현을 크게 안하는 편이지만 일단 아웃이 돼버리면 굳이 짜증을 감추지 않는다. 그런데 이게 상대 입장에서는 난데없는 일이 될 수 있겠고, 내 상태에 따라 심화될 수 있으니 조심해야겠다. 특히, "생활습관 속에서도 짜증을 유발하는 인자를 키우는 경우가 있는데, 당류 섭취가 대표적이다."에서 허걱!! 요즘 주변인들이 식단관리 하시는 걸 곁눈질하던 중인데, 감정과도 관련이 있었다니. 나도 빨리 참여해야 될텐데.^^;;;

다섯 영역의 내용이 끝난 후에는 '내 감정과 마주하기' 장이 있다. 감정이 격동할 때, 그 감정을 터뜨리기에 앞서 꼭 점검해봐야 할 내용인 것 같다. 이렇게 교사 감정에 대하여 넓고 단단하게 두루 살피는 책이 나온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많은 선생님들이 도움 받으시겠다. 나도 다시 꺼내볼 책이 될 것 같다. 되도록 안그러고 싶다는 마음도 있지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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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이오, 연극! 세트 - 전4권 - 옛이야기 연극 수업 연극이오, 연극
임정진.송미경 지음 / 올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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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수업에서 첫 난관은 대본작업인데 몇 년 전만해도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대본이 거의 없었다. 그러던 중 교과서에 연극 단원이 들어오고, 거기에 맞춰 여러 출판사에서 대본집들을 내기 시작했다. 이 책의 저자인 송미경 작가님의 <돌 씹어먹는 아이>가 포함된 문학동네의 [어린이 희곡] 시리즈가 먼저 나왔고, 진형민 작가님 등이 쓰신 [재미있다! 어린이 연극] 시리즈도 창비에서 나왔다. 정말 고맙고 반가운 일이었다.

이번에 올리 출판사에서 나온 이 시리즈는 '옛이야기'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아주 적절한 시도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옛이야기 수업사례를 소개하던 자리에서 그런 경험을 말한 적이 있었다. "연극수업을 할 때 아이들이 모둠별 협력 작업을 원활하게 해나가려면 대본작업의 난이도가 높지 않은게 좋은데, 옛이야기로 선택하면 대략 무난한 정도는 보장이 되는 것 같다."
그런 경험을 갖고 있기에 이번 시리즈에 더 관심이 갔다. 1,2권을 사서 읽어보았는데, 조만간 4권까지 다 갖출 것 같다. 여러모로 마음에 들었다.

1. 옛이야기 재화와 각색의 콜라보
재화는 임정진 작가님이, 각색은 송미경 작가님이 하셨다. 각 이야기마다 극본이 먼저 나오고 이어서 옛이야기가 나온다. 장르가 다른 두 작품은 상호보완되기도 하고 각각 특유의 재미가 있다. 연극까지 가지 않더라도 독서로서의 재미도 충분히 있었다. 임정진 작가님은 ‘전 구비문학회 부회장’이라고 소개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옛이야기 쪽으로 깊은 공부와 경험이 있으신가보다 짐작이 된다. 2권에서 보니 직접 그 나라의 스토리텔러를 만나 들은 이야기를 재화하기도 하셨다고 한다. 이것만 보아도 공이 많이 들어간 책임을 알 수 있다.

2. 문화다양성으로 이끌 수 있는 다양한 민담 소개
권당 5편의 옛이야기를 재화, 각색했는데 그중 2편은 다른 나라의 옛이야기였다. 1권에서는 인도와 티벳, 2권에서는 필리핀과 태국의 민담이 소개되었다. 문화다양성에 대해 배울 때 옛이야기 쪽의 접근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이런 시도도 정말 반가웠다. 특히 옛이야기는 나라간 차이점 속에 공통점이 매우 흥미를 끄는 부분이어서 이런 부분을 교사가 짚어주며 읽으면 흥미로운 경험이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1권에서 인도 민담인 ‘악어와 원숭이’ 다음에 우리 옛이야기인 ‘토끼의 간’이 나온다. 악어는 원숭이의 염통을 노렸고 자라는 토끼의 간을 노렸다. 하지만 둘 다 ‘그것을 육지에 두고왔다고 상대방을 속여서 위기를 벗어남’ 이라는 공통된 화소를 갖고 있다. 나는 이런 점을 발견할 때 신기하고 재밌다. 아이들도 그렇지 않을까?^^

3. 적당한 길이와 난이도의 극본
송미경 작가님의 센스는 극본에서도 빛을 발하는 것 같다. 극본의 대사들이 찰지고, 지문도 매우 효과적이다. 전체 길이가 그리 길지 않고 각 대사도 길지 않게 배치하여 부담을 줄였다. 등장인물은 4인 정도로 적은 경우부터 10인 이상으로 많은 경우까지 나오는데, 많은 경우에는 ‘〇〇〇와 겸할 수 있다’ 라고 1인 2역의 가능성까지 친절하게 적어놓으셔서 감탄했다. ‘목소리로 대체할 수 있다’ 라고 안내된 역할도 있어서 인원의 융통성이 있다.

4. 공짜로 받기 미안한 수업 가이드 제공
책 말미에 ‘충북교사극단 딴짓’에서 제공하는 교육연극 수업 가이드가 들어있다. 2장밖에 되지 않고 마지막쪽에 QR코드가 있는데, 무심코 하나를 열어보았다가 깜짝 놀랐다. 아니, 이런 자료를 공짜로! 이 자료만 모아 가이드북으로 한 권을 만들어서 총 5권으로 시리즈를 냈어도 좋았을 것 같은데. 하여간 노력하는 선생님들의 수고는 어디선가 꼭 빛을 발한다. 그저 감사할 뿐.

이와 같이 여러 분들의 수고와 긴 과정으로 이 책이 나왔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만큼 쓰임새가 많은 책이다. 초등 도서관에는 필히 한 질씩 구입하시길 추천한다. 연극수업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선생님이라면 학급문고나 개인소장도 좋을 것 같다.

(나의 활용 계획을 덧붙인다면, 학년말에 꼭 하는 모둠별 연극 발표에서 대본을 예년처럼 학생들이 쓰게 할까 이 대본집에서 고르게 할까 생각중이다. 우리반에서 하는 연극이 그림자연극이라 지문을 그대로 표현하기 어렵고, 해설이 필요한 부분도 있어 그대로 사용하긴 어려울 것 같다. 그렇다면 대본을 쓰되, 이 책을 참고해서 살릴 것은 살리는 방법도 좋을 것 같다. 딴짓 선생님들의 조언 중 "대본이 있지만 없습니다" 라는 말씀의 의미에 공감한다. 결국 없을지라도 일단은 있는 게 좋다. 어쨌거나 이 책은 활용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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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영웅의 셈법 창비아동문고 322
이병승 지음, 파이 그림 / 창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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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중에서도 아주 짧은 단편들의 모음집이다. 두껍지 않은 책에 7편의 단편이 담겼다. 배경묘사나 서사가 길지 않고, 저자의 주제의식과 가치관을 간결하게 보여주며 마무리하는 방식이 특징이라고 생각된다. 이전 단편집 <마음도 복제가 되나요>도 그랬었는데, 비슷한 점도 있고 달라진 점도 있는 것 같다. 이전 책을 읽은지가 오래되어 정확하게 비교는 못하겠지만, 뭔가 작가의 시선이 닿는 곳에 변화가 있지 않을까? 그중의 하나가 인간 존재에 대한 본질적인 성찰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1. 천하제일 말빨
폭력무용론을 비웃고 폭력의 가치를 고수하는 박치수는 서령이에게 그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벼르고 있는데, 오히려 더 큰 폭력 앞에서 수치를 당하고 노선변경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글투는 매우 시크하고 삐딱한 느낌을 주는데 의외로 교훈적이다. 폭력의 가치를 고수하는 인간들이 여전히 많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발간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2. 공중의 사과
꿈 속에서 머물고 싶은 아이. '자각몽'을 꾸기 위해 노력한다. 현실이 얼마나 초라하고 짜증나면 그러겠어. 그 아이가 꿈을 포기하고 구질구질한 현실로 돌아오는 이야기. '꿈'이 동음이의어라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다른 꿈을 꾸겠다'는 결말은 희망을 보여주는 거겠지.

3. 우주 영웅의 셈법
표제작. 기시감 제로의 완전 새로운 작품. 작가가 가장 전면에 내세우고 싶은 주제의식이 담겨서 표제작으로 삼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생존이 달린 탑승권을 취해야 하는 상황에서 민호가 주장하는 '우주의 셈법'은 무엇일까?
"작은 별이나 큰 별이나 똑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거요. 그러니까 어쩌면 제가 증명하고 싶었던건 제 능력이 아니었는지도 몰라요."
저마다 자신의 존재 이유, 즉 필요를 증명해야 하는 세상에서 작가는 '태어난 것만으로 할 일은 다 한 거'라고 말한다. 필요에 대한 강박이 있는 내게 작가가 던지는 메세지는 얇은 분량과는 다르게 매우 무겁다.

4. 얼음낚시 구멍
손님없는 강변 민박집에 겨울 한 철 일을 도울 수상한 남자가 들어왔다. 해방일지의 구씨처럼 사연이 많아보이네? 그를 숨어들게 한 과거의 아픈 기억은 과연 무엇인가?

5. 캠핑카라 불러주세요
친구 준서는 부모님의 캠핑카를 타고 여행을 다녀왔다는데, '나'는 아빠의 뻥튀기 트럭을 타고 원정 장사인지 여행인지 헷갈리는 여행을 떠난다. 그 여정이 아주 다채롭고 흥미진진하다. 특히 '낙석 주의'를 인생에 빗댄 작가의 통찰이 멋지다.
그러나 아쉬운 대목이 있다. 잘났지만 욕할 수 없는 친구 준서가 그림대회 1등을 했지만 상을 거부했다는 내용이다. 공부 잘한다고, 부잣집 아들이라고 그림까지 상을 몰아주는 건 반칙이라나? 이 대목을 읽을 때 불쾌감이 좀 들었다. 그런 이유로 상을 몰아준다니, 언제적 시절에 그런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교육기관이 그정도로 몰상식하지 않다. 준서라는 아이를 멋지게 만드시려고 작가님이 좀 과하셨던 것 같다. 어차피 픽션인데? 하면 할말은 없지만, 작품에 굳이 필요한 장면도 아니었다고 본다.

6. 빨강의 기억
요즘 고기능 자폐 주인공이 나오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는데 이 작품에 바로 '서번트 증후군'을 가진 아이가 나온다. 근데 아이는 본인의 능력이 곧 고통인 경우여서 많은 시간을 힘들게 보냈을 것 같다. 지나온 이야기를 들은 화자 또한 지금의 현실에 직면하려 한다.

7. 뱀파이어와 투명인간
인간과 함께 뱀파이어족과 투명인간족이 공존하는 세상을 크로키처럼 빠르게 그려낸 이야기. 한 뱀파이어족 소녀가 눈길에서 죽어가고 있다. 투명인간족인 '나'의 선택은? 인간이 아닌 두 존재를 통해서 인간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분량도 비중도 모두 치우치지 않고 고른 7편의 감상평을 간단히 써보았다. '작가의 말'에서 작가님은 작가의 개성이 드러나는, 작가가 기억되는 그런 작품을 쓰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고 했는데 내게는 어느정도 그럴 것 같다. 단편은 특히 기억이 짧고 다른 작품과 섞여버리기도 쉬운데, 섞여버리기엔 똘망똘망한 인상적인 작품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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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덩이를 건너는 방법 별숲 동화 마을 42
이혜령 지음, 오승민 그림 / 별숲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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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보니 연속해서 여학생들의 힘든 관계에 대한 책을 읽게 됐다. 적어놓지 않으면 내용이 다 섞일 것 같아 간단히 적어보려고 쓴다. 이 작가님의 책 중 <우리 동네에는 혹등고래가 산다>는 남학생들의 갈등을 다룬 책이었는데 소개했을 때 반응이 아주 좋았다. 여유가 있다면 두 권을 나란히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여학생이라고 여학생 책을, 남학생이라고 남학생 책을 읽는다면 폭이 좁은 독서가 될 것이다. 두루 함께 골고루 읽으면 훨씬 좋겠다.

어떤 연수 자료에서 보니, 여학생들은 무리에서 탈락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여학생들 관계를 다룬 동화들을 보면 한결같이 무리짓는 아이들이 나온다. 그리고 그 틈바구니에서 눌리고 상처받는 아이가 있다.

이 책에서는 ‘오해인’이 그런 아이다. 무리짓는 아이들의 단골메뉴인 댄스팀이 등장하고, 수아의 호의로 겨우 그 팀에 끼게 된 해인이는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많다. 일단 춤에 흥미도 실력도 없는데다가 말주변도 용기도 없다. 생각은 꽉 찬 아이인데, 그 무리들 앞에서는 어버버 바보가 된다.

해인이의 짝 ‘정겨울’은 그런 면에서 해인이와 정반대다. 이 아이는 ‘자발적 왕따’라고 할까? 스스로 벽을 치고 타인의 근접을 사양한다. 갈구하지 않으니 구차할 것도 없다. 책에 ‘심해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나는 그 말이 마음에 든다. 누구나 심해어로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심해어는 심해어만의 영역과 자유가 있을 것이다. 다만 좀 외롭기는 할 텐데, 그렇다고 친구가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더 깊고 이상적인 관계로 갈 수 있는 유형이 바로 이 심해어들이다.

무리의 중심이지만 여왕벌이라기엔 마음이 약하고 배려심도 있어보이는 ‘조수아’가 세 번째 유형이다. 수아는 잘하는 게 많아 좀 튀었고, 그것 때문에 이전 학교에서 은따였다. 수아 엄마는 수아를 철저하게 ‘엄마표’로 만들어 관리하고 있고, 그래서 새 학교에서는 꽤 잘나가는 것으로 보이지만 만들어진 위치는 항상 위태롭다.

이 세 아이가 번갈아 각 장의 화자로 나오며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부모의 이혼과 비혼모 양육도 이야기의 중요한 배경이다. 10여 년 전에 어떤 동화에서 비혼 모자가 주인공으로 나와서 ‘와, 요즘엔 이런 이야기도 동화의 소재로 나오는구나’ 하고 좀 놀랍게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당연한 가족의 한 형태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그러나 이 책 속에서는 아직 그렇지 못하고, 무리들의 뒷담화와 괴롭힘의 소재가 된다. 물론 그런 인간들의 찌질함이 부각되었지만.

부모의 이혼도 그렇다. 아이 입장에서는 ‘왜 나를 우선으로 생각하고 결정하지 못하나?’라고 서운해하며 상처를 받지만, 길게 봤을 때는 부모 각자가 자기 자신에게 최선의 결정을 내리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 책임감을 잃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이 책에서 마음에 드는 소재들이 있다. 첫 번째는 비혼모인 겨울이 엄마의 미술학원 ‘놀숲’이다. 다양한 재료와 표현방법을 학습자 개개인에게 맞춰 자유롭게 운영하는 방식. 일반적인 운영방식과는 다르지만 그 안에서 창의성과 치유가 일어나는 것에 동의하고 공감한다. 그게 얼마나 손이 많이 가고 섬세해야 하는 방식인지 나도 가르치는 사람이라 조금은 알 것 같다. 배우는 사람 입장에서야 자유지 가르치는 사람은 훨씬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아이들에게 이런 공간이 많아지면 좋겠다.

두 번째는 놀숲 안에서 해인이가 선택한(겨울이 엄마가 권해준) 활동인 인형 만들기. 손바느질과 인형이라는 작업은 아이들에게 주는 바가 많은 것 같다. 쉬운 작업은 아니라서 모두에게 시키기는 어렵지만 좋아하는 아이들에겐 충분히 시켜주어도 좋은 활동인 것 같다.

세 번째는 제목에 나오는 ‘웅덩이’. 이 책에선 중요한 장면에서 비가 온다. 우산도 중요한 소재다. 비가 오면 어쩔 수 없이 웅덩이가 생긴다. 우린 그걸 건너야 하고. 그 방식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 나라면 조심조심 가장자리를 밟고 최대한 물 안 묻히면서 건널 테고, 첨벙첨벙 건너는 사람도 있겠고 아예 뒹굴고 나서 씻는 방법도 있겠지. 분명한 건 지금이 지나면 날은 또 갤 거라는 사실. 세 아이가 빗속으로 나아가는 결말이 싱그럽다.

모두 각자의 웅덩이를 용감하게 건너가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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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비밀 클럽 사과밭 문학 톡 3
유순희 지음, 박지윤 그림 / 그린애플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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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생들의 불편한 관계에 대한 동화는 이미 많이 읽었다. 더 읽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좋아하는 유순희 작가님의 책이라 읽어봤다. 복잡한 관계에 얽히느니 그냥 혼자인 게 나은 나는 같은 여자이면서도 여학생들의 심리를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작품 속에서는 관계의 권력을 쥐고 부당하게 행사하는 여왕벌 같은 아이가 자주 나오는데, 그 아이도 알고 보면 주변이 무척 힘들고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아이였다는 결말에 이르곤 한다. 뭐 당연히 그렇겠지. 사이코패스 같은 드문 경우가 아니라면.

하지만 나도 늙었는지 지쳤는지 (사실 늙을수록 마음이 넓어져야 하는데 실제로는 반대인 듯) 저런 이야기에 그닥 감동받지도 어머나 그랬구나 몰랐어 미안해 흑흑 이런 마음이 들지도 않는다. 그냥 너도 힘들었구나, 그치만 그렇다고 남을 괴롭히는 게 괜찮을까? 이런 마음?

이 책에도 여학생 관계의 중심에 있는 ‘예나’가 나온다. 전학 온 예나는 눈에 띄는 아이였고, 주변에 금방 아이들이 몰려들어 무리를 이룬다. 그리고 멀찌감치서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은서’가 있다. 이 책의 화자다. 은서는 먼저 다가가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친구를 사귀지 못해서 고민이다. 없으면 없는대로 살아갈 수 있는 성격이 아니라는 게 더 문제다. 이렇게 독립적이지 못한 경우 물불을 못 가리게 되기 때문에 더 위험할 수가 있다.

다행히 은서는 그정도 분별이 없는 아이는 아니었기 때문에 깊이 빠져 허우적대기 보다는 상황을 파악해가는 쪽이다. 예나의 거짓말과 뻔뻔함, 절친인 척 하는 친구들의 두얼굴을 모두 본다. 아이들도 가면을 쓴다. 이 책의 아이들처럼 이중삼중으로 쓰는 경우까지는 못보았지만, 그건 진짜 내가 ‘못’본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의 담임선생님도 그랬으니까. 예나의 실체를 보게 되고 이유(변명?)를 듣게 된 은서가 한 말에는 단단한 뼈가 있다.
“그 아이는 바로 너잖아.... 다른 아이가 시킨 게 아니라 네가 그런 거잖아.... 누구도 널 조종하지 않아. 잘못을 인정해.”

하지만 은서는 예나의 잘못을 품고 있을 수밖에 없다. 나머지 아이들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친한 척 뒤통수치고, 뒤에서 모략하고... 그런 아이들에게 예나의 비밀을 까발리고 싶지는 않다. 그건 나라도 그랬을 것 같다.

은서가 깨달아가는 것에 작가의 주제가 들어있는 것 같다. 그림을 좋아하는 은서는 미술학원에서 “너를 나타내는 색이 뭐니?” 라는 질문을 받고 ‘나만의 색’에 대해서 혼자 생각에 잠긴다.
“난 우비 클럽 아이들과 있어서 안심이 되기는 했지만, 잘 모르는 화장품 브랜드 이야기를 들어 주느라 지루했다. 키 때문에 놀림을 당하거나 주눅 들 때가 많았다. 그래도 다시 혼자가 되는 게 너무 싫어서 참기만 했다. 대화가 잘 안 통해도 내가 그 아이들에게 무조건 맞춰 주면 친구가 된다고 믿었다. 스스로를 속이면서 말이다.” (131쪽)

은서의 깨달음이 지금도 관계 속에서 전전긍긍하는 아이들에게 용기와 결단을 주었으면 한다. 너무 조급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특히 소위 ‘클럽’의 아이들(이 책에선 우비클럽) 틈에 끼는 일은 당당히 사양해도 좋지 않을까? 독립적인 아이들은 관계를 구걸하지도 목매지도 않지만 자연스럽게 좋은 친구가 생긴다. 좀 오래 걸릴 수는 있지만.

결말에서 예나는 멀리 떠나게 됐지만, 멀어진 거리만큼 관계는 진실해진 것 같아 다행이다. 음모와 술수가 가득한 전개에 비해 결말은 아주 깔끔한 해피엔딩이다. 아이들 관계는 어려워.... 어떤 애들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힘들어.... 이 책을 읽으며 아이들을 한 번 더 공부한 셈이다. 물론 그 공부 끝나려면 아직도 멀었다. 아마 영원히 끝나지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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