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점심시간 - 우리가 가장 열심이었던 날들
김선정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해주고 싶은지 생각해봤다. 첫 번째로는 바로 나다. 작가님처럼 퇴직하기를 꿈꾸어보는 교직 말년의 교사.(나는 작가님보다도 나이가 많고 작가님은 조금 일찍 퇴직하신 편) 퇴직 이후의 삶이 어떨지 생각해볼 수도 있고 나간 후에 돌아보는 학교의 삶을 읽어보며 이 순간의 소중함을 되새길 수도 있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을 한다 해도 지금 이순간이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래도 조금의 색을 입힐 수는 있겠지....

 

두 번째는 후배 선생님들이다. 갈수록 힘들어지는 학교에서 고군분투하는 젊은 교사들. 그나마 아름다웠던 것들은 선배들이 추억으로 다 묻어버리고, 시련과 고통만 남은 것 같은 안타까운 후배들.... 그들도 일상에서 따뜻하고 반짝이는 순간들을 잡을 수 있기를 빌며 이 책을 권해본다.

 

세 번째는 학부모들이다. 불안하고 조급한 부모들은 이 책을 읽으며 과정이란게 있구나 깨닫고 마음이 좀 편해지지 않을까. 시시한 것 같은 순간들이 모여 어느새 훌쩍 자라는 것이구나, 그 과정에 내가 원치 않는 것들이 끼어들 수도 있지만 그걸 바로바로 내가 치워주는 것보다는 기다리는 믿음이 필요하구나 등의 생각을 할 수도 있고, 아이들은 이런 짓(?)들을 하는구나 라는 생각에 귀엽고 웃음이 날 수도 있다. 물론 현타가 올 수도 있고.

 

이 책은 아주 건조하게 말하자면 퇴직교사의 회고 에세이라 할 것이다. 이런 종류의 책을 펼쳐드는 기준은 전적으로 작가가 누구인가이다. 이런 글을 김선정 선생님만 썼을 리는 없겠지. 나도 읽어본 적이 있었겠지. 하지만 끝까지 읽은 건 처음이다. 그건 같은 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대작가이신 선생님께 동질감을 느낀다면 좀 실례가 되겠지만, 교실에서 펼쳐지는 요지경과 그걸 보는 교사의 마음에 속속들이 공감한다. 심지어, “이 선생님 내 꽈인가봐.” 이런 착각까지 하게 된다.

 

작가님을 대면해본 적은 없지만 줌으로 만나본 적이 있다. 2020 코로나 첫해를 마치며 다음해 원격수업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에 비공식 연수를 누군가가 여셨고, 강사님이 바로 작가님이었다. 작가님은 글만 잘 쓰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수많은 줌수업 노하우와 원격수업 도구들을 알려주셨다. (난 그중에 반도 접수 못했다.ㅎㅎ) 하얗게 불태우는 종류의 사람인 듯했다. (알고보면 내 꽈가 아니신지도 모른다.^^;;;;) 이런 책은, 그러니까 하얗게 불태우는 사람이었기에 쓸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책은 그 아름다운 재가 아닐까.^^

 

작가님은 퇴직하고 가장 먼저 평일 점심시간 혼밥을 하고 카페에서 조용히 차를 마셨다고 하셨다. 바로 그거야! 나도 딱 그걸 할 거거든. 하지만 뭐 그것도 한때가 아니겠나. 평생 그 낙으로 살 수는 없겠지. 요즘은 퇴직교사를 가만두지 않는다. 코로나로 학교 결원이 많이 생기기 때문에 작가님도 시간강사로 불려다니기 바쁘다. 그리고 작가로서 새로 꾸린 삶이 있으시다. 이런 부분은 흉내낼 수 없다. 나는 나름대로 다른 삶의 계획을 세워야겠지. 아직도 그게 뭔지 모르겠지만....

 

대 작가님을 무려 내 꽈라고 착각하게 만든 공감의 지점들을 몇 군데 짚어보면 이렇다.

각자 개성대로 즐겁고 신나게 살면 좋겠는데 이상하게 교실에는 자꾸 서열이 생긴다. 아이들 사이에서도 더 좋아 보이고 더 매력 있는 캐릭터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친구가 더 좋아 보일수록 나는 자꾸 초라해 보인다. 그렇다면 돋보이는 캐릭터 없이 모두가 조금 시시하게 지내도록 하자. 나는 오랜 시간을 돌아 그렇게 선택하였다.” (‘선생님이 결근한 날중에서 53~54)

세상 불공평함을 증명이나 하듯이 많은 잘남을 한몸에 가진 아이들이 있다. 나는 이 아이들을 치켜세워주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대신 신뢰와 칭찬의 뜻을 무언으로 전달하려고 하는데, 그 눈빛을 알아채고 자신도 신뢰로 보답하는 아이가 있는가하면 도통 못알아먹고 왜 자신을 특별하게 대우하지 않는지 자꾸만 나를 시험하는 아이도 있다. 심하면 부모까지 그렇게 한다. 그런 이들에게 나는 정말 성에 차지 않는 교사였을 것이다. 뭐 어쩔 수 없지....

 

하지만 나는 아이들과 먹었던 숱한 음식들 중 유난히 그때 그 엉성했던 쑥버무리가 생각난다. 나는 이제 쑥버무리를 잘 만들 수 있게 된 만큼 다른 것도 더 잘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성장이라는 것이다. 보았느냐, 18년 전 5학년들아.” (‘성장의 쑥버무리중에서 64)

이 꼭지는 아주 배꼽을 잡으면서 읽었다. 이 글에서 보이는 작가의 성정은 나와 많이 다르다. 선생님은 야심차게 아이들과 야외활동을 하고, 아이들이 캔 쑥으로 쑥버무리를 쪘지만 결과물은 대참사 수준이었다. ‘질퍽한 눈밭에 지푸라기 덤불이 놓인 형국이라는 표현이 폭소를 자아냈다. 나는 대참사를 겪은 경험은 두 번 다시 하지 않는다. 아주 기억에서 지워버리려고 한다. 하지만 작가님은 다시 도전한 후에 쑥버무리, 화전의 베테랑으로 거듭났다. 아이들만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교실에서 아이들과 교사는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이런 면을 좀 너그러운 시선으로 일단 봐주었으면 하는 것은 욕심일까. 나도 쑥버무리에 얽힌 기억이 있긴 하다. 2학년을 맡으며 놀이와 다양한 활동에 의욕을 불태웠던 해에, 아이들과 쑥을 캐고, 그 쑥을 아이들 몰래 버리고, 대신 어머님이 청정지역에서 뜯어오신 쑥으로 쑥버무리를 쪘다. 첫 도전이었지만 상당히 멀쩡한 쑥버무리가 나왔고, 성공적으로 마무리를 했다. 작가님의 대참사에 비하면 대성공이었던 셈인데, 웬일인지 그걸로 끝이었다. 다음 해부터는 그런 도전을 하지 않았다. 학교가 멀어져서 찜기 같은 것을 들어 나르기 무거웠고, 그걸 감수하기엔 가성비가 떨어진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도전하지 않았으니 이 부분에선 성장도 없었다.^^

 

일인 일역할이 없는 교실을 꿈꿨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나 혼자 이십 칠역할을 하고 있었다. 나는 유토피아를 꿈꾼 건지도 모른다.” (‘일인 일역할 없는 유토피아중에서 109)

며칠 전 오랜 친구를 만나 한참 수다를 떨었는데 그 친구가 작년 한해 아이들 잘 키웠다고 자부하다가 마지막에 뒤통수 맞은 이야기를 했다. 쉬는 시간에 놀던 블록을 정리하고 딱 두 개가 바닥에 남았는데 그걸 아무도 안 치우더라는 거다. 보통 교사가 말하면 자기가 놀던 게 아니라도 근처에서 눈치빠른 아이가 싹 치워서 야단맞을 상황을 모면하곤 하는데 그날은 모두가 끝까지 고집을 부리더란다. “내가 주로 갖고 놀긴 했지만 블록의 대부분을 치웠으니 내 할 일은 했고, 쟤도 잠깐 만졌으니 이정도는 치워야 한다. 그것까지는 내가 못 치운다.”는 것이다. 잠깐 만졌다는 그애는 나는 다른 걸로 놀았고 그걸 치웠으니 저건 못 치운다.”면서 대립했다. 꼴랑 두 개의 블록은 그렇게 바닥에서 학년말 교사의 자괴감을 무럭무럭 증폭시켰다. 흔한 이야기다. 아이들의 인성에 큰 기대를 하면 반드시 뒤통수를 맞는다. 그게 인간의 본성이라면 어쩌겠는가. 접고 또 접어야 할 수밖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마음과 의도를 최대한 좋게 해석해주려는 노력은 꼭 필요하다.

너는 본래 그런 사람이 아니며 충분히 달라질 수 있고 끝까지 믿어주는 어른이 있을 때 아이들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해와 오해 사이중에서 141)

교사들은 아이들을 믿어서는 안되며 동시에 믿어야 한다. 이 미묘하고 모순된 줄타기의 감을 익혀야 비로소 교사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30년이나 한 나도 때로는 성공하지만 자주 실패한다. 그 결과는 쓰디쓴 자괴감이다. 참 쉽지 않은 일이다.

 

과거의 인연을 보는 작가의 관점도 나랑 비슷해서 공감이 갔다. 어느날 교육청 스승찾기 시스템을 통해 지금은 성인이 된 과거의 아이가 번호를 남겼다. 고마운 마음에 연락을 했지만 느낌은 기대와 살짝 달랐다. 나도 아주 똑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솔직히 그 아이가 만나자고 할까 봐 조금 걱정했던 것 같다. 다행히 서로 축복의 문자로 잘 마무리를 하고 끝냈다. 그 정도가 좋다.

나는 다시 한번 깊이 깨달았다. 우리가 오래전 만들었던 과거의 인연은 그때의 인연으로 잘 남겨놓고 사는 것이 좋다는 것을.” (‘스승찾기224)

작가의 의견과 같이, 나도 교육청 스승찾기 메뉴는 없어져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접어놓았던 대목은 많지만 일일이 쓰다간 글이 안 끝날 것 같아서 마지막으로 하나만.... 내가 남은 교직생활 중에 유지해야 될 것 같은 태도로 딱 알맞은 말이 적혀 있었다.

내 직업은 누군가의 선명한 어린 시절에 박제당해 끝없이 소환된다. 나는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아있고 싶지 않다. 좋은 사람으로도 나쁜 사람으로도 불리지 않고 그냥 잊히고 싶다.”

과거에 했던 말과 행동을 떠올릴 때 떳떳하기만 한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싶다. 그런 면에서 교사는 유난히 후회가 많은 직업이다. (중략) 그러니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계속해서 겸손하고 뻔뻔하게 살아갈 수밖에.” (‘겸손하고 뻔뻔하게 살아갈 수밖에중에서 220~221)

엎질러진 물을 주워담을 수는 없으니 나는 적당히 뻔뻔해질 생각이다. 하지만 되도록 엎지르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끊임없이 나를 성찰하려면 겸손한 태도를 갖춰야 한다. 뻔뻔하고 겸손하게. 이 균형을 기억하겠다. 교사는 참으로 균형감각이 필요하다. 평균대에서 걷지도 못하는 내가 균형감각이라니 나의 직업인생은 거의 형벌에 가깝다고 보여진다.ㅎㅎㅎ

 

쓴 글을 다시 읽어보니 인용한 문장들이 밋밋하게 느껴진다. 그 이유는 내가 아이들이 나온 문장들을 다 뺐기 때문이다. 이 책의 생명은 거기에 있는데 그게 다 빠진 것이니, 책을 꼭 읽어보시길 권한다. 가만보면 작가님은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아이들과 가깝게 지낸 분이다. 나보다 훨씬. 글 중에서 많은 아이들이 등장하는데 독자들은 그 수많은 캐릭터가 다 생생하게 떠오르는 경험을 하실 수 있다. 김선정 작가님의 앞길도, 나의 남은 교직생활과 그 이후도, 아직 많이 남은 후배선생님들의 교직생활도 부디 평화롭기를 빌어본다. 이 책 표지의 느낌처럼, 살짝 나른할 정도의 평화로움이었으면 좋겠다. 실제는 전쟁터지만, 그치만 부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룡 반점 특별 수련 저학년은 책이 좋아 24
예영희 지음, 신민재 그림 / 잇츠북어린이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학년은 책이 좋아시리즈인데 주제 상으로는 고학년에게 읽히고 싶은 마음이다. 그럼 최대한 끌어올려서 3학년 권장이라고 해보자.^^

 

소룡반점이라는 제목처럼 이소룡을 추앙하는 이들이 나오는 것이 특징이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노랑 추리닝과 함께. 사실 나는 무술영화를 싫어해서 이소룡 영화를 한편도 안봤기 때문에 노랑 추리닝이 유명한지도 몰랐었다. “아뵤오~” 하면서 엄지로 콧잔등을 쓸어내리는 동작은 한참 유행했었기에 기억이 난다. 어쨌거나 나는 이소룡에 대한 향수가 전혀 없기에 그것 때문에 구미가 당기거나 하진 않았다. 아이들도 그렇겠지 뭐. 나보다 더 모를 테니까.

 

고수시 쌍룡동에 이소룡 같은의인이 출몰한다는 내용이 세상에나 그런 일이에 방송되었다. 같은 반 아이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우영이는 동네 중국집 소룡반점아저씨에게서 낌새를 발견하고 그에게 무술을 가르쳐 달라고 조른다. 그또한 노랑 추리닝을 입고 있다.

 

우영이의 사부가 된 중국집 사장님이 주신 미션은 양파까기일 뿐이다. 그게 수련이라고? 약수터까지의 아침 달리기도 우영이 스스로 하는 훈련이다. 그러던 중 사부님은 또 한 명의 제자를 받아준다. 바로 우영이를 괴롭히던 재서다.

무술을 배우려면 인간의 기본이 먼저 되어 있어야 한다. 너희는 학생이고 학생의 기본은 공부다. 강해지려면 기본에 충실하도록.”

무술은커녕 우영이와 재서는 남아서 공부까지 해야 한다. 그러면서 우영이는 싫어하기만 했던 재서의 몰랐던 모습들도 조금씩 알게 되고....

 

그러던 중 젊은 노랑머리 무리들이 들이닥쳤다. 사부님의 제자들이라고 했다. 오호, 드디어 이제 제대로 된 수련을 보여 주시는가? 사부님과 형아들이 야외수련을 간다고 한 날, 우영이와 재서도 따라간다. 그 수련 현장은 바로.... 달동네에 연탄을 나르는 일이었다. 사부님이 매년 하시는 일이라고 한다. 그 일에 동참하게 된 노랑머리 형아들도 제각각 사연이 있겠지? 중요한 것은, 그들이 더 이상 주먹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고기만 등급이 있는 게 아니라 인간에게도 천차만별 급이 있다고 난 생각한다. 그중에 최하급은 남을 괴롭히면서 즐기는 인간이다. 자신의 상처를 감추기 위해 쎈척하고, 그 방식으로 폭력을 사용하는 인간도 하급이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어디 멀리 범죄의 세계에서만 있는 게 아니라 매일을 살아가는 교실에도 있다는 사실.ㅠㅠ

 

그래서, 선행의 가치를 보여주려는 이 작품의 시도가 나는 참 고맙다. 인간은 힘에 대한 동경이 있다. 어떤 형태로든 힘을 가지고 영향력을 발휘하기를 추구한다. 그러나 가장 강한 힘은 남을 괴롭히는 힘이 아니다. 가장 부드럽고 따뜻한 선의의 힘이 가장 강한 힘이다. 그거야말로 고수의 경지인 것이다.

 

, 마지막으로 그럼 세상에나 그런 일이에 나왔던 이소룡 닮은 의인은 과연 누구인가? 소룡반점에서 켜놓은 텔레비전에서 그의 정체가 드러난다. ! 사부님인........? 누구지? 책에서 확인!^^

 

나는 태생이 쫄보라서 폭력을 사용해본 적은 없다. 그러니 아까 말한 인간 등급에서 최하는 아니라고 하겠지만.... 상급이라고 하기엔 귀차니즘과 이기주의가 나를 꽁꽁 얽매고 있지.... 아이들에게 인간 고수가 되자는 동기를 줄 수만 있다면 그걸로 인성교육은 출발한 거나 마찬가지다. 이런 주제의 책들이 재미와 문학성을 가지고 더 많이 나와서 골라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 폭력과 비행의 저열함에서 벗어나 인간 고수를 지향하는 아이들.... 생각만 해도 마음이 벅찬데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떤 곳에서도 안녕하기를 - 삶의 곳곳을 비추는 세 사람의 시선 문학인 산문선 2
김지혜.이의진.한정선 지음 / 소명출판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시콜콜한 주변잡기라면 오히려 더 달갑게 집어들었을지도 모른다. 사회를 이야기하고 우리를 이야기하고 당위를 얘기하는 책이라면 썩 읽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있다. 내가 슬램덩크의 강백호 말투로 어디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내 피가 끓고 있다구!!” 할 수 있는 주제면 좋겠는데 난 이제 모가지 잡혀 출근하는 곳 아니면 집 밖을 나설 의욕도 없는 사람이라서. 이 책은 안 봐도 안다. 내가 엄청 공감하리란 걸.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공감만 하면 뭐하나? 나는 여전히 집구석에 쭈그리고 있을 텐데?

 

그래도 용기를 내어 구매 버튼을 눌러보았다. 저자들의 이력을 보고 궁금하기도 했다. 한 분은 나랑 같은 교사(이게 가장 큰 이유), 한 분은 독일 거주하는 음악가(음악이 아니라 사회학을 전공한 분이던데? 이런 이력 가진 분들 신기), 마지막 한 분은 인권활동가다.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 중에 열혈 활동가는 없다. 이런 분들 얘기는 책으로 접하는 수밖에....

 

독일 거주 음악가인 김지혜 님의 글이 가장 먼저 나온다. 이분의 글에 가장 많이 나오는 내용은 소수자,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제도와 책임이다. 산재로 죽는 사람들의 비율이 대한민국은 이토록 높은데, 왜 법과 제도를 정비하지 않으며 정치인들은 나몰라라 하는지 그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다. 사회 격차를 줄이면 모두가 안전망 안에 들어올 수 있을텐데 왜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지에 대하여 분노하며 지적한다. 말만큼 쉬운게 아니겠지... 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내게 부끄러움을 주는 글들이었다. 당연히 쉽지 않다. 하지만 역사는 어려움을 뚫고 발전해오지 않았던가. 문제의식을 느꼈다면 현실적으로 바뀔 때까지 노력하는 것이 사회구성원들의 역할이다.

 

요즘 느끼고 있던 것과 맞아떨어져서 특히 공감되었던 글은 정치인을 지지하는 방식이라는 글이었다. “누군가 내게 한국 사회의 여러 문화 중에서 지양되어야 할 것 하나를 꼽아 보라고 한다면 정치인을 지지하는 모임을 없애야 한다고 서슴지 않고 말하고 싶다.”(67) 이 말은 바로 묻지 마 지지에 대한 일침이다. 정치인은 덕질의 대상이 아니다. 조건없는 열광도 비판이 실종된 동정도 모두 무익하다. 중립적인 태도로 그의 행보에 따라 지지나 비판을 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진영에 따른 묻지 마 지지가 특히 강하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음) 어떤 당이라면 나라를 팔아먹었어도 뽑아줄거야~ 라는 인터뷰 보도가 한동안 회자되었듯이.... 이쪽은 절대 되고 저쪽은 절대 안되고.... 이런 태도가 정치발전의 발목을 잡고있는 것 아니겠나. 그리하여 우리나라 정치의 수준이 이렇게 엉망진창이 된 것 아닐까. 아니, 우리나라에 훌륭한 사람들 많은데, 왜 정치판에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거야? 괜찮은 사람이 전체의 평균비율 정도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왜 괴상하고 찌질한 인간들 모아놓은 집합소 같냐고! 진영논리를 부수고 우리가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태도를 갖추어 나간다면 점차 정상적이고 괜찮은 사람들도 인력풀 안에 들어오지 않을까! 기대를 해보고 싶다.

 

이어서 나오는 거꾸로 가는 한국 사회의 시계에서도 정치를 보는 우리 사회의 저열한 시각을 꼬집는다. 정치인을 검증할 때 필요한 기준은 위법행위 여부와 세계관이다. 그러나 저열한 언론들은 상식적인 것들은 제쳐두고 자극적인 것에 골몰한다. 바로 사생활이다. 그리하여 보통의 사람들이 환멸을 느껴 머리를 흔들도록 만들어버린다.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하는 한국과 독일의 차이가 살짝 엿보이는 글도 있었는데, 우리나라는 주로 인간이 빠져있다. 무엇을 위한 발전인가? 우리는 수없이 질문해야 한다. 여기에 답이 없다면 굳이 왜 달려야 할까? 걸음을 멈출 필요도 있다는 걸 생각해야 한다.

 

두 번째 저자는 고등학교 국어교사인 이의진 님이다. 이분의 단독저서를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에서는 고3 교사로서 느끼는 문제의식이 더 많이 들어가 있다. 나와 학교급은 다르지만 교사로서 공감과 위안이 많이 되었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이야기를, 그래도 역량있는 작가로 활동하시는 분이 이리 써주시니 그래도 조금은 읽히겠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 교육기관을 거치지 않은 사람은 없다. 학생으로서 학부모로서. 그러니 모두들 자신이 무척 안다고 생각하고 그게 전부인 것처럼 생각한다. 사회에 무슨 문제가 터졌을 때 그게 학교에서 안 가르쳐서 그렇다며 학교 탓을 하기는 얼마나 쉬운가. 그래서 너도나도 교육과정에 참견한다. 그게 사실은 이미 교과목 안에 다 들어있다는 사실을 찬찬히 살피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다양한 의무교육 시수들이 들어오고 만원 줄테니 와퍼세트 두 개 사고 2천원 남겨오라는 요구를 실현하느라 교육과정은 누더기가 된다.

누구나 교육전문가를 자처하는 시대다. 하지만 교육은 전문적인 영역이다. 쉽게 건드리면 건드릴수록 정작 진짜 배워야 할 것을 배우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제발 초중고 교육과정에 대해 어설프게 아는 국회나 시민단체 등이 왈가왈부하거나 건드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강제된 의무교육 시간을 국어 교과 진도표 안에 억지로 욱여넣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108~109)

 

공교육이 추구하는 가치와 욕망이 반영된 각 개인들의 가치가 같을 수는 없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공교육의 목표가 대입일 수는 없다. 대입도 그냥 대입인가? 명문대 입학이지. 공교육 대상자가 몇 명이며 그중에 소위 명문대 입학 자리는 몇 자리인가? 그걸 추구하는 게 공교육의 역할일 수가 어떻게 있겠냐고? 그런데 그걸 못해낸다고 비난을 퍼부어대는가 하면 한쪽에서는 어항 영상을 무한 돌려대면서 공교육이 창의성을 말살한다고 욕을 해대니 뭐 어쩌라는 거임? 이의진 님은 고3 담임을 10년 이상 계속한 대입 지도의 베테랑 교사다. 그가 진학지도를 성심으로 하면서도 붙잡고 가는 공교육의 가치에 대해서 미래사회는 어떤 아이들을 원하는가?(부제:뭣이 중한디?)라는 글을 꼭 읽어보시기 권한다.

 

코로나로 인한 현장의 혼란과 원격수업의 소회에 대한 글을 읽으며 그때의 고생이 떠올라 울컥했다. 원격수업도구나 플랫폼에 대해서 전혀 모르던 내가 그걸 운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주어진 시간은 한 달도 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2주쯤 되었나?) 심지어 계획조차 미리, 정확히 알려주지 않았고 필요한 것들이 제때 제공되지도 않았다. 안개속에서 더듬더듬하며 동학년 선생님들과 구하고, 배우고, 협업하고, 확인하고, 피드백하는 모든 과정을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뭐 그걸 바랐던 적도 없다. 당연히 해야될 일이라 생각하니까. 다만 애먼소리 하면서 힘빼는 사람들은 없었으면 좋겠다.

밖에서 보는 것보다 현장은 훨씬 역동적이며 능동적이다. 이 많은 인원들이 교육부에서 달랑 몇 페이지의 글로 내려보낸 일들을 몸으로 부딪혀 가며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을 오로지 맨땅에 헤딩하는 정신으로 부딪히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116)

그해 나에게 배정된 교실은 일반교실과 좀 다르게 교사 자리가 뒤에 있고 조금 분리된 느낌의 가벽이 한쪽에 세워져 있던 특이한 공간이었는데, 그 공간을 떠올리기만해도 거기서 만들던 수많은 수업과 시도들이 생각나 흠칫 몸서리가 쳐지곤 한다. 그해 협업하던 후배들과는 아직도 뗄 수 없는 사이로 지낸다. 그런 나에게 이 글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참, 고마웠다. 물론 나보고 고마워하라고 쓰신 글이 아님은 잘 알고 있다.ㅎㅎ

 

그의 마지막 글 징검다리 게임이 말해주는 것을 읽어보면 앞의 저자 김지혜 님의 글들과도 통하고,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보인다. 우리가 함께 안녕하려면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할까?

 

마지막 저자 한정선 님은 공감능력이 매우 뛰어나신 분 같다. 타인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느낀다. 나는 이 민감성을 많이 차단했다. 아픈 건 싫기 때문에.ㅠ 그건 내가 이 사회에서 그래도 살만한 위치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뜻하겠다. 여성이긴 하지만 큰 차별은 없는 직종에서 일하고 있고, 풍요롭지는 않았지만 안정적인 아동기를 보냈고, 장애인도, 성소수자도, 빈곤층도 아닌 내가 타인의 아픔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을까말까 망설였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냥 이렇게 살아도 별 문제 없는데 괜히 들쑤셔서 심란해지고 싶지 않은 마음...

 

하지만 이분의 글은 그렇게 살아도 정말 별 문제 없을까요? 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내게 던진다. 가장 인상적인 글은 불평등한 평정심이라는 글이었다. 평정심이란 외부의 자극에 동요되지 않는 마음을 뜻하며 누구나 이런 상태를 원할 것이다. 하지만 그 가능성이 누구에게나 공평할까? 외부의 자극이 누구에게나 비슷할까? 누군가는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하거나 거의 불가능한 지경이라면, 그 사회는 평등하지 않다. 그럴 때 그들의 편에 가까이 서서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 꼭 필요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집구석 쭈그리가 이 훌륭한 주제의 책을 다 읽었다. 읽었다고 당장 달라지는 것은 없다. 저자들의 어떤 곳에서도 안녕하기를이라는 마음에 같은 마음 하나 포개는 것 외에는. 거기에서 반 발짝만 더 나간다면 내가 그동안 무심코 하던 말이나 행동이 혐오에 해당된다는 것을 알아채기, 그래서 입방정으로 남에게 상처주기 같은 것을 좀 덜 하게 될지도 모른다. 부디 진정성으로 쓴 저자들의 글이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다가가 앉기를 바라며, 리뷰로라도 마음을 보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안녕, 엄마 안녕, 로마 웅진책마을 116
김원아 지음, 리페 그림 / 웅진주니어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읽고 따라서 떠오른 책이 있었다. 최나미 작가님의 엄마의 마흔번째 생일이다. 당시 아주 새로운 내용이었고 많은 곳에서 읽혔고 사랑받은 책이었다. 생각난 김에 검색해보니 첫 출간이 2005! 이제 거의 20년이 다 되어가는구나. 그래도 세상이 아주 조금은 바뀌었나보다. 당시엔 나도 우와 이런 소재, 이런 결말? 하면서 놀라워했는데, 지금 나왔다면 그렇게까지 특별한 느낌은 아닐 것 같으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여성을, 엄마를, 가족을 바라보는 눈이 그때와 크게 달라졌냐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아직도 고정관념은 존재하고 나도 예외는 아니다.

 

김원아 작가님의 이 책도 가족의 문제, 그중에서도 자신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난 엄마와 가족의 관계를 조명한다. 가족 간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는 시시콜콜히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배경의 스케일이 커졌다. 로마! 승아는 2년만에 엄마를 만나러 로마로 떠났고, 로마에서 겪는 일들이 이 책의 대부분을 이룬다.

 

아빠와 갈등을 겪던 엄마는 2년 전 승아에게 어떤 설명도 없이 홀연히 떠나버렸다. 남은 아빠는 책임감이 강하고 딸에 대한 애정이 극진한 사람이었기에 최선을 다해 승아를 키웠다. 2년이 지난 어느날 승아는 엄마에게 난데없는 엽서를 받는다. “엄마 로마에 있어. 놀러 와.”

 

복잡한 감정을 안고 승아는 홀로 로마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그 긴장된 여행길에 미리 나중나와 있어도 부족할 엄마가 늦게 오질 않나, 잘생긴 외국남자와 함께 그의 차를 타고 오질 않나, 한국에선 입지 않던 과감한 패션을 하고 있질 않나.... 승아의 마음이 더 꼭꼭 닫혀버릴 상황들만 눈에 띈다. 엄마는 상처받고 힘들었을 승아에게 미안해할 생각이 없어보인다. 매일 본 듯 무심하며, 당당하고 자유롭다. 자신의 일(로마에서 여행 가이드)도 멋지게 하고 있다. 승아만 속을 끓이는 듯하다.

 

승아는 엄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으로 여길 왔는데 언감생심, 어른들 세계의 벽은 높았다. 승아가 어찌 해보겠다는 생각은 어림없었다. 끝내 승아는 최후의 방법을 쓰고 만다. 자신의 안위에 대한 걱정을 담보로 한 작전이었다. 자식에 대한 걱정이라면 어느 부모가 한마음이지 않을까? 극약처방이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그 방법도 어른들의 마음을 돌리지는 못했다. 엄마는 로마에 남고, 승아는 다시 한국행 비행기를 혼자 탄다. 그렇다면 서사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아마도 로마에 올 때와 떠날 때 승아의 마음과 생각이 조금은 달라졌다는 것....?

 

부모도 부모가 처음이라는 말을 흔히 하듯이, 어른이라고 완전하지 않다. 완전하기는커녕 모순과 허물투성이인 것이 인간이다. 이 책에서 엄마가 자리를 지키지 못했고 아빠에게도 알고보니 좋은 모습만 있진 않았던 것처럼. 물론 부모라는 이유로 사람들은 많은 수양(?)을 하며 산다. 말하자면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일방적인 희생하고는 의미가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머리가 조금 큰 자녀라면, 이런 부모의 모습에 좌절하거나 화내지 말고 쿨하게 인정하는 편이 훠얼씬 낫다. 엄마의 인생은 엄마의 인생, 나의 인생은 나의 인생. 서로 대신 살아줄 수 없으니.

 

로마에서 만난 여행객 중에 중요한 조연이 있었다. 엄마와 둘이 여행온 지훈이. 지훈이는 승아가 갖지 못한 엄마와의 시간을 갖고 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끔찍하게 싫어하고 있는 중이다. 말하자면 엄마랑 좀 떨어지는 게 소원이다. 이쪽도 이해가 간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중간이 없을까.^^;;;

 

난 독립적이지 못하고 걱정이 많은 성격이라 가족을 벗어나 단독질주할 생각은 평생 해보지 못했다. 가족 공동체에, 그리고 특히 어린시절 양육에 큰 의미를 두는 편이다. 하지만 이 책의 결말에 불만은 없다. 승아는 앞으로도 좀 쓸쓸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쓸쓸함을 독립적인 감성으로 잘 승화시키길 바란다. 그러면 나보다 훨씬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우리 생각대로 안되는 일은 인생에 수없이 많이 닥쳐온다. 그걸 상대하는 모습, 거기서 삶의 자세가 나온다. 승아와 엄마의 다음 만남은 훨씬 더 편안하고 즐거우리라 믿어본다. 행복하지 못할 건 뭔가.


표지에 캐리어를 끌고 노을지는 저녁길을 혼자 걷는 승아의 모습이 우리 모두의 모습인 것 같아 살짝 눈물겨운 느낌이 든다. 쓸쓸하지만 아름답잖아. 힘을 내어 가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띵띵이가 그랬어 바람그림책 133
윤진현 지음 / 천개의바람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글작업도 함께하시는 그림책작가 윤진현 님의 그림책에선 내용과 그림 모두에 아이디어가 넘친다. 재미있는 발상, 그리고 그것을 구체화하는 그림, 그 안에 담긴 유머와 따뜻함. 이것이 작가님 그림책의 특징인 것 같다. 특히 그 디테일 속에 깨알재미들이 잔뜩 숨어있다. 나처럼 그림을 꼼꼼히 못보는 사람들은 손해다. 그렇지만 아이들에게는 그런 걱정을 안해도 되겠지.^^

 

띵띵이가 그랬어.” 라는 핑계를 만날 대는 아이가 있다. 옷에 흙을 잔뜩 묻혀 들어온 날도, 실내화를 잃어버리고 온 날도, 밥 먹기 전에 군것질을 하는 날도, 책을 잔뜩 어질러놓은 날도 띵띵이를 끌어들인다. 띵띵이는 누구일까? 제목만 봤을 때는 아무개와 같은 불특정의 대상을 말하는 줄 알았다. 나는 보통 땡땡이라고 하는데.... 하지만 좀 달랐다. 아이가 친구에게 하는 말을 보니. “나한테는 띵띵이라는 비밀 친구가 있어.” 이건 내 안에 있는 또다른 나를 말하는 게 아닐까. 오늘은 이런 띵띵이. 내일은 이런 띵띵이. 내 안에 띵띵이는 많기만 하다.^^

 

흙투성이인 아이가 거실에 흙발자국을 찍으며 들어온다. 엄마는 당연히 놀라고 화난 표정으로 어디서 뭘 하다 온 거냐고 묻겠지? 그때부터 띵띵이 타령 시작이다.

띵띵이가 그러는데...... 땅속 마을 보물 가게에 새로운 게 많이 들어왔대. 그래서 잠깐 놀러갔다 왔어.”

그리고 펼쳐진 장면에 작가님 특유의 디테일과 유머가 가득이다. , 이런 그림 한 장 그리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그림에 소질이 없는 나는 감탄만 하고 있는데, 하긴 교실에서도 머릿속에 든 걸 쓱쓱 빨리 그리는 아이가 있기는 하더라만.... 그렇다고 쳐도 대단하다. 구석구석 작은 그림 하나에도 표정과 동작, 상황이 살아있다. 땅속 마을에는 다람쥐 씨앗 가게와 거미 의상 가게, 개미 사탕 가게, 두더지 보석 가게.... 등등이 있다. 각 동물들이 하는 일과 말들이 너무 재미난다. 이후 나오는 모든 그림들이 그렇다.

 

띵띵이 타령을 하는 아들에게 엄마가 하는 반응도 인상적이다. “거짓말 하지 마!” “어디서 헛소리야!” 하기가 쉬울 텐데 이 엄마는 그러지 않는다. 눈높이 반응이라고 해야 할까? 비슷한 맥락으로 대화를 맞춰 준다. 그렇다고 끌려가는 건 아니고 엄마의 요구를 정확히 담아서. 어른들이 주목할 포인트는 여기인 것 같다. 예를 들면 아이가 냉장고를 열어놓고 시간을 끌며 얼음 나라에 소동이 나서 그걸 구경하는 중이라고 하자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정말? 어떤 소동일까? 그런데 여기도 소동이 나겠는걸. 얼음 나라 구경하느라 네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 다 녹겠다.” 물론, 그림책에 표현되지 않은 엄마의 인내의 시간과 부들부들 주먹 꽉이 있을 것 같지만.... 그래도 유머와 여유는 중요해. 그것이 많은 상황을 해결하니까.

 

마지막으로 엄마도 그건 말이지, 엄마 친구 뿅뿅이가 그랬어.” 하면서 끝나니 더욱 재미있었다. 이렇게 엄마와 아들이 서로를 이해해가는 과정으로 생각해도 될까? 한쪽만 이해하라는 법은 없으니까 말이야. 물론 띵띵이가 안내한 세상에 훨씬 많은 상상이 담겨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겠다. 한마디로 이 책에는 아이들의 상상이 담겨있다. 좀 노골적으로 말하면 저녀석 머릿속에 뭐가 들었는지 보고 싶네!” 할 때의 그 머릿속? 그걸 그려내시다니 작가님은 천재가 아닙니까? 너무 깨알같아서 저는 보기도 바빠요.ㅎㅎㅎ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