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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 꾼 ㅣ 일공일삼 45
김정민 지음, 이영환 그림 / 비룡소 / 2022년 3월
평점 :
『담을 넘은 아이』에서도 느꼈지만 이 작가님의 서사 능력은 정말 대단하다. 처음 몇 장만 넘기면 그냥 빠져들어 마지막장까지 쭉 가게 된다. 아직 작품이 많지는 않지만 역사동화의 강자로 손꼽을 수 있을 것 같다. 긴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전개에도, 주인공들의 감정에도 푹 빠져들게 되는 힘이 있었다.
배경은 일제강점기 경성. 주인공 이름은 ‘노미’다. 언뜻 보면 예쁜 이름 같기도 한데, 이놈이, 저놈이 할 때의 그 ‘놈이’를 소리나는 대로 부른 것이다. 귀하게 자라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다리 밑에 버려져 그 일대의 소매치기단에서 자란 아이다. 이 아이도 이제 일을(소매치기를) 할 때가 되었는데 아직 솜씨가 미숙하기만 하다. 그리고 아이를 키워준 소매치기단의 누나 ‘벅수’의 반대도 심하다. 벅수 누나는 노미 몫까지 일한다며 몸을 돌보지 않고 일하지만 노미한테는 절대로 소매치기를 시작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일제강점기라는 최악의 시대 배경에, 날 때부터 소매치기단이라는 최악의 환경 속에서도 작가는 희망을 그린다. 그 구렁텅이에서 대체 뭐가 보일까? 거리에는 일본 순사들이 눈을 번득이며 돌아다니지, 다리 밑에서 거적을 깔고 사는 생활도 모자라 하나라도 있으면 대장한테 다 뺏겨야 하고, 당연히 그 대장은 비열하고 악독한 놈이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길 했나 학교를 다녀보길 했나.... 여기에서 어떻게 솟아오르란 말임?
무리다. 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작가는 포기하지 않고 개연성 있는 서사를 짜 넣었다. 죽은 동생을 생각하며 노미를 길러준 벅수 누나의 사랑, 그리고 공중변소 동지(?)인 고보 형, 그리고 이 이야기 중 가장 긴박한 상황에서 만난 쫓기는 남자... 이들과의 만남이 노미 안에 있는 선한 본능을 일깨웠다.
이 책에서 소매치기를 묘사한 장면들이 아주 실감나는데, 노미의 첫 수행은 예기치 않게도 쫓기는 남자를 구하는 상황에서 이루어졌고, 그것은 독립운동과도 연결이 된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삼았는데 빠져서는 안되는 설정일 것이다. 그리고 위험을 무릅쓰고 곤경에 빠진 여성들을 구해주는 장면은 아슬아슬하면서도 멋지고 흐뭇하다.
전작 『담을 넘은 아이』에서 작가는 ‘담을 넘다’ 라는 말로 주제를 표현했다. 이 책에서도 비슷한 방법을 쓴다고 느꼈다. 그것은 ‘길을 간다’ 라는 표현이다.
“나는 그러지 못했지만 노미야, 너는 바른 길로 가야 해.”
“넌 찾을 수 있어. 노미 넌 너의 길을 찾아야 해.”
알려진 역사적 사건을 본격적으로 크게 다루진 않았지만 역사적 상상력을 통하여 그 시대의 고난과 고뇌를 느끼게 해준다는 점에서 역사동화로 가치가 높다고 평하고 싶다. 특히 그 어려움 속에서도 옳은 길을 선택한 이들에 대한 애정과 존경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점이 이 책의 미덕이라고 꼽고 싶다. 그게 크고 훌륭한 사람들 뿐 아니라 소매치기단에서 자란 노미에게도 가능했다는 사실. 이 점이 이 시대의 힘든 아이들에게도 큰 힘과 위로를 주었으면 좋겠다.
노미의 그 인식 전환은 “너는 좋은 사람.” “넌 정말 조선 최고 꾼이라 할 만해.” 라고 자기긍정의 확신을 심어준 사람들 때문에 가능했다. 이런 면에서 조금 마음이 찔린다. 요즘 인간의 악함 쪽에 마음이 기울고 있던 차여서.... 물론 그런 면이 없다고는 볼 수 없지만 가능성을 더 높게 보는 방향으로 균형을 잘 잡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아직까지는 어린이들을 상대하는 사람이니까.
일단은 재미있어서, 다음으로는 이런저런 의미도 깊어서 좋은 책이었다. 역사동화 목록이 이미 수십 권인데 아래 칸을 하나 더 추가해 집어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