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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뉘의 시간을 너에게 ㅣ 웅진 당신의 그림책 6
마르틴 스마타나 지음, 정회성 옮김 / 웅진주니어 / 2022년 8월
평점 :
원제가 궁금하다. 어떤 제목이었길래 '볕뉘'로 번역하셨을까? 거의 사용해본 적 없는 이 낱말이 참 맘에 든다. 기회가 있다면 자주 쓰고 싶다.
(볕뉘 : 작은 틈을 통하여 잠시 비치는 햇볕. 그늘진 곳에 비치는 조그마한 햇볕의 기운)
이 볕뉘의 효과는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자주 사용된다. 어둠의 터널을 통과하는 주인공에게 잠시 머무는 볕뉘, 주인공의 눈이 볕뉘에 머무는 잔잔한 장면. 이 책의 각 장면들도 그것과 일맥상통한다. 세상은 주로 춥고 거칠고 어둡지만 볕뉘와 같은 장면은 의외로 많다. 그 따스함으로 우리는 살아간다.
작가는 그런 볕뉘 이야기 50가지를 콜라주 작품과 함께 책에 담았다. 때가 때이니만큼 코로나라는 전염병 시대를 살고있는 세계 각국의 소시민들 이야기가 가장 많다. 할머니를 뵈러 가기로 했는데 비행기 운항이 취소되자 걸어서 할머니가 계신 나라에 도착한 소년과 아빠의 이야기, 연주회가 취소되자 식물들 앞에서 연주한 현악 4중주단 이야기, 방호복 위에 웃는 사진을 붙이고 일한 의료진 이야기, 집단 감염된 자신의 고향에 약과 음식을 싣고 달려간 사이클 선수 이야기, 창문 콘서트 이야기 등....
그 외에도 어려운 이웃에게 용기를 준 이야기나 따뜻한 마음을 나눈 이야기, 자신의 일을 넘어서 좋은 일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 작은 생명들을 살린 이야기 등이 가득 들어있다. 세상은 살만한 곳이 맞는 걸까. 그렇다고, 그렇게 만들자고 말하고 싶어서 작가는 작업을 했겠지. 여기 담긴 이야기 중 어떤 것은 놀랍지만 어떤 것은 그냥 살짝 미소를 띨 정도로 사소하기도 하다. 조금의 마음만 낸다면 우리도 '볕뉘'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듯이.
언젠가 미술수업 때문에 콜라주 그림책들을 찾아본 적이 있었는데, 이 책은 그 용도로도 아주 알차다. 50여 점의 작품이 모두 콜라주니까. 천, 뜨개직물, 종이, 실, 부직포 등 다양한 재료들이 사용되어서 참고가 많이 되겠다. 아이들한테 콜라주를 시키려면 멀쩡한 재료 난도질해서 쓰레기 만드는 것 같아 망설이다 못하고 있다. 원래 자투리 재료들 모아서 써야 하는 거지 멀쩡한 거 잘라서 자투리 만들려고 하는 게 아니잖아... 근데 그렇게 따지면 모든 작품활동이 환경을 괴롭히는 일인거 같고 뭐 할 게 없잖아? 책도 나무 베어서 만드는 건데 말이야.... 이 모순을 어찌 극복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여간 콜라주 활동에도 참고가 많이 되는 책, 굳이 작품을 하지 않더라도 감상으로도 훌륭한 책으로 기억을 하겠다.
북풍과 대결해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햇볕이 될 꿈은 애저녁에 꾸지도 않지만 잠시의 볕뉘가 되어볼 꿈은 꾸어도 되지 않을까. 남은 후반의 인생에 곁들일 낱말로 '볕뉘'. 참 괜찮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