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싸움 동아리 어린이 희곡집 1
오완 지음, 박진아 그림 / 노란돼지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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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에서 연극을 해보고 싶어도 마땅한 대본을 구하기 어렵다는 말을 얼마 전까지 했었는데, 이제는 그것도 옛말이 되어버린 것 같다. 몇 년 사이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주로 유명한 창작동화나 옛이야기를 각색한 희곡집이 대부분인 가운데, 최근 출간된 창작 희곡집이 있어 눈길을 끈다.

저자는 초등학교 교사이고 극단 ‘빈도’의 단원이라고 한다. 빈도라면 모교의 연극 동아리! 그저그런 동아리들도 많지만 빈도는 내가 다니던 그옛날부터 유명했다. 졸업생들도 꾸준히 공연에 참여해서, 나도 두번쯤 그 연극을 보러 갔었다. 그런 단원들이 현장에서 연극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서 본인들의 특기를 살려 애쓰지 않았을까? 이 책은 그 결과물이라는 느낌이 든다.

초등교사 치고 아이들과 연극수업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겠지만, 대부분은 교실수업에서 끝난다. 그게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나도 그러니까. 나는 연극에 호감은 많지만 전문성은 전혀 없어서 아이들이 교실에서 즐거웠으면 됐다는 주의다. 남에게 보일 정도로 하려면 필요한 게 많아서. 하지만 저자는 무대 연출의 경험이 많은 것 같고, 그 노하우를 이 시리즈에 녹여내었다. 두 권의 대본집과 한 권의 활용서다. 이왕 아이들과 연극을 해본 김에 진짜 무대경험까지 시켜주고 싶은 교사, 학교 발표회 등에서 우리반 프로그램을 연극으로 정한 교사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겠다. 무대연출까지의 노하우가 담겼지만, 거기까지 다 가지 않고 중도에서 만족할 교사들도 재미있게 읽고 필요한 만큼 도움을 받을 만하다.

창작희곡인 이 대본은 생활밀착형 스토리다. 현실 아이들, 현실 상황, 현실 캐릭터, 현실 말투들이 등장한다. 그래서 어떤 부분은 살짝 짜증까지 난다는....ㅎㅎ 하지만 막장으로 끝나지 않는 적당한 주제의식이 앞뒤에 배치되어있어 교육적으로도 무리가 없다. 그 주제는 제목에서 드러난다. ‘말싸움 동아리’!

말싸움이든 몸싸움이든 나는 싸움은 질색이다. 조금 싫으면 걍 참고, 너무 싫으면 손절한다. 하지만 그건 일종의 회피라고 할 수 있겠지. 아이들에게 가르치기에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다. 아이들에게는 싸우는 법(?)도 가르쳐야 한다. 폭력을 행사해서는 절대 안되고, 적법한 방식으로 자신의 분노와 항의 표현은 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이 책에서 말하는 ‘말싸움’이다. 언어폭력도 폭력 아닌가요? 맞다. 말싸움이 몸싸움보다 더 나쁜 경우도 있지. 여기서 말하는 말싸움은 그렇게 상처를 목적으로 하는 언어폭력이 아닌 정당한 의사표현이다.

이러한 주제를 드러내는 장면이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의 이누이트 축제 장면이다. 그들은 노래로 싸웠고 주변 사람들이 그 내용을 들어주었다고 한다. 이 한 장면이 연극 전체에 힘을 넣어주고 수준을 높여주고 지향할 바를 제시해 준다.

드센 아이들 그룹(하라,유리,다미)의 수작에 당하기만 하던 빛나와 어진이 말싸움 동아리를 만들고 범도와 우길이를 끌어들인다. 범도, 우길은 나중에 실제 대결을 할 때 현장 중계를 맡는데, 이것이 연극에서는 관객들을 웃길 수 있는 웃음 포인트다. 대본 그대로도 재미있지만 본인들 스타일을 살려서 조금씩 바꿔가며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책도 그런것을 권장하고 있다.) 범도는 전학생인데, 웬만해서는 아무 일에도 끼지 않으려고 하지만 결국 분위기 반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범도의 사연은 아이들이 자칫 빠지기 쉬운 함정에 경고를 보내주기도 한다.

고학년 학급에 있게 마련인 교실 내 서열과 권력관계의 문제, 그 아래서 말 못하고 시들어가는 아이들의 숨통을 틔워주는 이야기로 아주 적당하다고 생각된다. 아이들이 이 책을 기본으로 대본작업, 연습과 공연 등의 과정을 통해 문제의식과 내면화의 과정을 모두 거칠 수 있다면 너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여러 각색 희곡집에 창작 희곡집까지 더해져 선택의 폭이 넓어져 더욱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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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17 20: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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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망설일 거야 사계절 웃는 코끼리 25
유은실 지음, 김유대 그림 / 사계절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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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유은실 작가님을 만나뵈었다. 우리학교 시청각실에서.
작가라면 무슨 외계인 급으로 생각했는지 인간 유은실 님을 보곤 아이들이 놀랐다.
"우리 선생님이랑 비슷하네?"
아담한 키에 안경쓴 아줌마라는 면에선 약간 그렇기도 하다. 물론 작가님이 나보다 조금 젊고 더 예쁘시다.

미리 준비한 아이들 질문판에서 작가님이 이 질문을 고르셨다.
"작가님이 가장 애착을 갖는 작가님의 책은 무엇인가요?"
순례주택이나 멀쩡한 이유정을 예상했는데 빗나갔다. 바로 이 '정이 시리즈'가 가장 맘에 드신다고 하셨다. <나도 편식할 거야>로 시작된 정이 시리즈는 이번 겨울쯤 5권으로 완간될 예정이라고 하셨다. <나도 망설일 거야>는 그중 네번째 책이다.

정이는 1학년이고, 책은 저학년 분량의 시리즈다. 각 권 50여쪽 쯤 되니 저학년 읽기용으로 딱이다. 하지만 작가님 최애라고 하시니 관심을 보이는 우리반(중학년) 아이들을 위해 학급문고에 넣어도 인기를 끌 것 같다.

1인칭 시점의 문장들이 거의 단문이고 매우 간결하다. 그런데도 생생하고 유머가 넘친다. 작가님의 커다란 특기라고 생각한다. 각권에서 보여주는 등장인물의 심리와 메시지도 의미 깊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번 권의 '망설일 거야' 라는 의미가 나는 가장 좋았다. 뭐 깊이 곱씹어보고 그런 건 아니다. 그동안 맺힌게 많아서 나온 본능적인 반응이라고 할까.

아는 샘 교실 앞에는 '말.전.생.'이 급훈처럼 붙어있다. "말하기 전에 생각했나요?"라는 뜻이다. 나도 내년부턴 똑같이 써붙일 생각이다. 이 책의 '망설임'은 바로 이 뜻이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하지 말고 생각하기.^^

'뇌를 거치지 않고 나오는 말'(과학적으론 성립되지 않지만 느낌은 뭔지 아는)의 고약함을 작가님도 느끼신 것일까? 나는 정말로 이게 너무너무너무너무 싫다. 집에 와선 TV도 켜지 않는다. 말이 없는 곳에 나를 담그어야 회복이 된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닐거라 생각한다. 현대인은 모두 성급한 말의 홍수 속에서 산다. 정이가 엄마와 함께 어른 대상 작가 강의를 듣게 되었을 때 오빠 혁이가 써 준 지침 중 이런 것이 있다.
"말하기 전에 생각한다. 생각나는대로 말하는 건 유치원 때 끝난다. 초등학생은 망설여야 된다."

'신중해야 한다' 보다도 '망설여야 한다'가 훨씬 와닿는다. '망설이다'를 부정적 의미로 쓰지 않으신 것도 좋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망설이다에는 보통 답답하다는 감정이 따라붙게 마련인데 이 책에선 그렇지 않다. 초등학생은 망설여야 한다. 청소년, 어른들은 어떻고? 오빠 말이 딱이다. 유치원 졸업했으면 말.전.생.은 필수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이고 때와 장소도 구별 못하고 솔직과 무례의 차이도 모르는 이들에게 1학년 정이가 말합니다.
여러분,
말하기
전에
생각했나요?

아울러, 말 그대로 '망설이는' 아이들에 대한 기다림과 배려도 필요할 것이다. 독촉하면 생각할 수 없고, 생각에 드는 시간은 저마다 다르니까.

망설임에 대한 내용은 뒤쪽 절반이고, 앞쪽 절반엔 순진한 아이를 놀려먹는 어른에 대한 '어린이의 단결' 내용이 나온다. 이 부분도 재밌다. 마지막 5권 완결은 '무엇'할거야 일지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그리고 이 책은 꼭 써먹을 거다. '말전생'을 가르칠 때.
"여러분, 이젠 좀 망설입시다. 유치원 졸업했으면 그래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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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으읍 스읍 잠 먹는 귀신 - 2022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장편동화 선정작 우리학교 상상 도서관
백혜영 지음, 박현주 그림 / 우리학교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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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의 귀함을 이야기 씨앗으로 품으신 작가님께 공감과 경의를 보낸다.

어느 날, 늦은 밤까지 환하게 불이 켜진 거리를 걷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는 왜 잠들지 못할까?'
그런 고민이 머릿속에서 뱅글뱅글 돌다 이 책이 태어났어요.

나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퇴근하고 모임 갔다가 잔뜩 늦은 시간에 같이 엘리베이터를 탄 아이. 학원에 갔다가 이시간에 온다고 했다. 겨우 초등학생인데 말이다. 나는 모처럼 늦은거고 보통 이시간엔 집에 편한 자세로 있는데.... 전문가들은 그나이대 아이들의 권장 수면 시간을 9시간 정도로 잡는데 그 이야길 하면 아이들이나 부모들이나 다 깜짝 놀란다. 왜겠어. 훨씬 적게 자고 있기 때문이지...ㅠㅠ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잠을 낭비하는 시간, 게으른 시간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많이 자면 자책한다. 언젠가 연수에서 강사님이 너무 대단해서 누군가가 질문했다.
"선생님은 어떻게 그 많은 일을 해내세요?"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잖아요. 솔직히 잠을 줄이는 수밖에 없어요."
흑.... 나는 그때 깨닫고 포기했다. 나는 걍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 수밖에 없다고. 욕심낼 수 없다고. 왜냐면 나는 '잠'을 포기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잠을 못자는 상황이 되면 본능적으로 목표를 축소 수정한다. 잠을 못자면 사람구실을 못하겠다.
"내가 무생물 중에서 제일 사랑하는 게 베개야."
무심코 이렇게 말했다가 남편의 폭소가 터진 적도 있다. 이렇게 잠을 사랑하는 나는 솔직히 성취를 꽤 많이 포기해야 하고 그에 따른 자괴감도 없진 않았는데, 이 책은 이런 나를 위해 쓰여진 책인가?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ㅎㅎ

저승세계를 다룬 판타지 동화는 이 책 말고도 꽤 있다. 개인적으로 그런 배경을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은 '잠빚'이라는 특별한 설정이 있다. 살아생전 잠을 못채운(잠빚이 있는) 귀신들을 '잠귀'라고 한다. 그들은 잠밥을 먹어 그 빚을 다 갚아야 저승에 무사히 갈 수 있다. 잠밥은 이승에서 잠을 충분히 잔(초과한) 사람들에게 빨아먹으면 된다. 제목의 '스으읍 스읍'이 바로 그 소리다. 아하하하하하하 저한테 오세요 잠귀님들~ 제가 나눠드릴게요.ㅋㅋㅋㅋ

혜령이는 엄친딸 장서연과 비교당해 쉴 틈이 없다. 잠 못자고 노력해도 늘 실패하고 엄마의 실망은 깊어간다. 어느날 밤 학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깜빡 조는 순간 트럭에 치어 이승을 떠나게 됐다. 혜령이의 '잠빚'이 꽤 될거라는 짐작을 할 수 있겠지? 그 빚을 갚으며 일어나는 일들이다. 후회하고 시들어가는 엄마, 언니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면서도 언니몫까지 하려고 애를 쓰는 동생 아령이. 그리고 같은 날 잠귀가 된 트럭아저씨. 바로 혜령이를 친 그 택배 트럭.... 아저씨의 잠빚이 훨씬 더 많다. 어떤 일상을 살았을지 짐작이 가능하다.ㅠ

그 외 혜령잠귀 옆에서 함께 해 준 수지언니잠귀, 엄격한 듯 허당스럽기도 한 잠귀현감, 무섭지만 자애로운 잠귀대왕 등 다양하고 흥미로운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악귀 같은 무섭고 끔찍한 캐릭터도 나오고. 참, 혜령이 집에서 키우는 앵무새 연두의 활약도 고맙고 귀엽다.

성취욕은 나쁜게 아닐거다. 잠을 잊어가며 몰두하는 경험도 인생에서 필요하긴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전반적으로 한 템포 느리게 가야 할 필요가 있다. 어린이들의 잠을 보장하라!! 부모들에게 이 책을 읽히고 싶다. 아 그리고 어른들도. 충분히 자고 깨어있을 때 맑은 정신으로 삽시다. 잠이 보약이란 말이 괜히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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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말, 단단한 말 - 고정욱 선생님이 들려주는 우리학교 그림책 읽는 시간
고정욱 지음, 릴리아 그림 / 우리학교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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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 대한 어린이책들도 워낙 많이 나와서 이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싶을 정도인데, 이 책을 보고는 또 마음에 들었다. 다 읽어줄 수는 없으니 골라야 한다. 내 마음속에서까지 경쟁을 해야 하다니 아 괴로워.... 하지만 즐거운 비명이다.^^

이 책에서 마음에 든 포인트는 제목에 있다. 다정한 말 단단한 말. 보통 언어 예절을 다루는 책들에서는 다정한 말들을 주로 다루고 있다. 당연한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가끔은 자신을 지켜야 할 상황이 있고, 그럴 때 단단한 말이 필요하다. ‘단단한’은 딱딱함과는 다르고 날카로움과는 완전히 거리가 멀다. 단단하면서도 부드럽고 공격성이 없으며 자신을 잘 세운다.
“비교하지 않을 거야”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어.”
같은 말들은 스스로 나를 세우는 단단함이고
“네가 그러면 기분이 나빠.”
“그런 말은 하는 게 아니야.”
같은 말들은 외부로부터 나를 세우는 단단함이라고 하겠다.

말의 종류는 많지는 않고 24가지가 들어있다. 펼친 화면 두 쪽에 예쁜 글, 그림과 함께 하나씩 제시되어 있다. 이 책이 마음에 든 이유 두 번째가 여기에 있다. 그림이 너무 예쁘다. <파랑 오리> <초록 거북>등을 만드신 릴리아 작가님이 그리셨는데 가는 선에 부드러운 채색의 느낌이 좋고 캐릭터들이 순하고 귀여워 보여서 마음이 편해진다.

‘나에게 힘을 주는 단단한 말’,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다정한 말’ 이렇게 2부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님께서 말들을 고르실 때 많이 생각하고 엄선하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말을 몇가지 골라보겠다.
[나는]
이게 무슨 다정한 말이지? 읽어보니 I-메시지를 표현하신 것이었다. 너 때문에~! 라고 말하지 않는 것. “너는으로 시작되는 말은 상처를 주기 쉽지만 나는으로 시작되는 말은 화해를 가져다줘요.” 아이들에게 자주 지도하는 내용인데 참 예쁘게 잘 표현되어 있다.
[내가 도와줄까?]
무턱대고 도와준다고 덤비기 전에 물어보라고들 한다. 이 책에는 이렇게 풀어서 설명되어 있다. “겨울에는 고맙던 난로가 여름에는 반갑지 않은 것처럼 따뜻한 마음도 누군가에겐 부담이 될 수 있어요.”
그리고 “혼자 할 수 있어.” 라고 답하면 조용히 미소로 답하라는 조언도 인상적이다. 보기 좋은 장면이다. 의외로 쉽지 않기도 하고.
[이유가 있겠지]
뭔가 쎄한 느낌이 들자마자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뒷담화를 늘어놓으면 나중에 엄청나게 미안하거나 후회하게 되는 상황이 생긴다. (아니면 말고 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다만) 내 원칙은 “세 번까지는 단정하지 않는다.”인데 그래도 실수를 한다. 참 중요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 외의 말들도 다 적절하게 골라진 말들이라는 생각이 읽으면서 들었다. 비슷한 주제의 책들이 많긴 하지만 이 책도 소중히 소장하는 책이 되겠다. 내 아이가 어리다면 이 책을 손에 잡고 폭 빠져 볼 수 있도록 옆에서 권하고 지켜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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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아플 때 읽는 역사책
박은봉 지음 / 서유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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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일 거라고는 예상을 못했다. 통사는 아니더라도 저자의 전공을 살려 역사를 다루며 서술될 것으로 예상했다. 펴보고 깜짝 놀랐고, 읽어가며 더욱 놀랐다. 사람의 이야기였다. 위인일 수도 전혀 아닐 수도 있는 사람들이었다.

생각해보면 나의 예상이 빗나갔을 뿐 <역사>라는 말에 무리는 없다. 모든 이의 삶은 역사다. 개인의 역사가 모여 세상의 역사가 만들어진다. 그래도 마지막장에 한 중학교의 교육복지실 선생님과 소위 비행청소년(?)들의 역사를 보니, 저자님께 그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걸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아직도 확실히 기억난다. 2003년, 6학년을 맡았을 때 저자의 대표작 <한국사 편지> 초판이 나오고 있었다. 그때 저자는 역사학계의 젊은 피라고 할 수 있었겠다. 새롭고 균형잡힌 사관에 쉽고 친근한 서술, 짜임새 있고 알찬 구성의 <한국사 편지>는 그간의 역사책들에 비해 단연 돋보였다. 감탄하던 나는 아이들에게 그 책을 읽히려고 많은 노력을 했었다. 이후 비슷한 컨셉의 책들이 많이 나오고 어린이 역사책 시장은 그때와 비교가 안되게 넓어져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책을 골라야 할 지경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한국사 편지의 입지는 탄탄하다. 20년이나 지났는데도. 그 외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 같은 책들도 역사 단원을 가르칠 때 많이 참고하며 읽었다. 박은봉 저자님은 그래서 나에게는 확실히 각인된 분이다.

그 저자님이 뒤늦게 심리학에 입문하셔서 학위를 받으시고 관련 책도 집필하신 배경이 궁금하다. 이 책도 같은 선상에서 나온 것으로 짐작된다. 평생 한 우물만 파는 것도 좋지만 새로운 도전도 흥미롭다. 영역이 확장되어가는 느낌이라서.

이 책은 굳이 말하자면 인물사라고 하겠다. 가장 알려진 인물로는 다윈과 안데르센을 다룬다. ‘마음 아플 때 읽는 역사책’ 이라는 책의 정체성이 말해주듯이 인물의 업적보다도 그의 내면에 집중한다. 다윈은 연구 인생 내내 극심한 질병에 시달렸다. 안데르센은 그의 극빈한 배경 때문에 평생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다윈을 보면서는 ‘저렇게 극기할 수 있다니’ 라는 감탄이 나왔다면 안데르센에게선 약간 안타까움도 느꼈다. 그가 애달프게 추구하던 것은 사실 그럴 필요가 없었던 건데, 그는 성장하고 있었으며 성공도 했는데 마음은 왜 늘 쪼들려 있었을까 안타까웠다. 이제그만 당당하고 평안한 마음을 가져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지만, 인정욕구에 매달린 심리는 자기 안에서 그 에너지를 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의 근자감이 매우 부끄러우면서도 다행스럽다.(^^;;;;;) 하지만 나는 그를 일면 이해하기도 한다. 나도 열등감이 없는 것은 아니기에.

다음 장에서는 암투병을 하며 인생 후반부를 정리한 두 사람, 폴 칼라니티와 진수옥 씨를 다루었다. 두 분 다 이 책에서 처음 알았는데 각자 저서가 한 권씩 있어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는 죽음이 두렵다. 아니 죽음이 아니라 거기에 이르는 육신의 고통이 두렵다. 안락사를 찬성하고 싶다. 그런데 이분들은 그 고통을 고스란히 겪으면서도 인생의 기쁨과 아름다움을 찾아냈다. 몸이 움직이는 때까지는 최대한 할 수 있는 일을 했고 그게 불가능한 시기도 견디고 눈을 감았다. 세상 모든 것의 끝이 중요하다. 아름다운 끝은, 아니 최소한 존엄을 잃지 않는 끝은 어떻게 준비하면 될까. 이들을 잃고도 세상은 무심하게 흘러간다. 나야 말해서 뭐하겠나. 이처럼 당연한 것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마지막이면 얼마나 좋을까.

마지막 장은 위에서 잠깐 언급한 교육복지실의 인물들 이야기다. 고정원 선생님 이름이 낯익었다. 읽고 서평도 썼던 책 <책으로 말 걸기>의 저자였다. 그때는 그분이 지전가(지역사회전문가)셨는지 모르고 읽었다. 아마 그 직업 자체를 잘 몰랐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번에 옮긴 학교에서 처음으로 ‘교육복지실’과 거기 근무하는 지전가의 존재를 알았다. 참 귀한 일이어서 내가 받는 혜택이 아니어도 늘 감사하다는 말이 나오곤 했다. 특히 저분은 아이들에게 책으로 다가가기가 특기. 그래서 책도 쓰셨고, 인터뷰를 기반으로 이 장의 내용이 구성되었다. 각기 다른 사정으로 소위 일진이 된 아이들. 그들의 거친 면은 상처 때문인 것을 알지만 그래도 나처럼 멘탈이 약한 사람들은 다가가기 어렵다. 나도 책 붙들고 사는 사람이지만 책의 위력을 그런 식으로 실감해보지 못했다. 책으로 선생님과 소통하고 자기의 새 삶을 찾아나가는 아이들. 이것이야말로 대단한 역사다.

이 책으로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은 저자의 필력이다. 비문학인 역사도서에서는 쉽게 드러날 수 없는 표현력들이 이 책에선 유감없이 발휘된다. 이 책도 문학은 아니지만 저자의 생각과 감정을 많이 포함한 책이어서. 어떤 분야에 있든 글을 잘 쓴다는 것은 큰 강점이다. 한국사편지도 그래서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제아무리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시간도 끝난다. 언젠가는.”
본문의 끝도, 후기의 끝도 이 문장이다. 터널 속에 있는 이들에게는 이보다 더 큰 희망이 없으리라. 더 많은 이들이 위로받고 서로 따뜻한 손을 내밀고 옆에 있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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