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소이 이야기
송미경 지음 / 읻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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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부분의 하루를 별볼일없이 살아간다.
(월급값 하느라고 분주히 살기는 하지만.... 딱 거기까지.)
그러면서도 별볼일없는 하루에 대한 염려와 거부감이 있다.
휴일날 거한 계획을 세워 떨쳐 나가지도 못하면서, 덧없이 하루가 흘러갈까봐 걱정한다. 책이라도 좀 읽거나 공연이나 영화를 보거나 식구들을 잘 먹이거나 수업자료를 만들거나 하면 그나마 위안을 한다.
그런데 내가 그런 조바심을 내지 않고 그냥 아무 생각이나 목적없이 하루를 보냈다고 해도 뭐가 크게 다를까? 잘 모르겠다.

'메리 소이'를 기다리는 이 가족, 화자인 '나'(은수)의 가족은 내 눈에 참을 수 없이 한심했다. 나의 지인이라면 당장 "왜 저러고 살아? 어휴..." 라고 속말을 했을, 답답함이 가득했다. 송미경 작가님의 작품은 이해가 잘 되지 않는 안개같은 모호함에 싸여 있을 때가 있는데 이 작품은 특히 그랬다. 덜 잠근 수도꼭지를 그냥 두고 사는 가족 같달까. 내가 가서 꽉 잠가버리고 나오면 속시원할거 같은. 그런데 끝까지 그 수도꼭지는 잠그지 않는듯.... 나중에는 그걸 잠그고 싶어 들썩거렸던 내 마음이 더 이상하게 느껴진달까. 뭔지 모르겠는 마음이 이 책 전체를 휩싼다. 나의 전제 자체가 틀린 것 아닐까 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이게 송미경 작가님 작품의 특징이기도 하다. 형태가 모호한 세상에서 나혼자 "아 그래서 그게 무슨 모양인건데! 네모야? 세모야?" 하면서 펄쩍펄쩍 뛰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하는. 세상은 니가 보는 차원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문득 느끼게 하는?

'나'의 엄마는 어렸을 때 동생(소이)을 유원지에서 잃어버렸다고 한다. 미미제과의 백일장에 어린시절 동생이 좋아했던 딸기웨하스의 추억을 써보냈다가 대상을 탔다. 그 사연이 마케팅에 이용되면서 가족은 실속도 없이 유명해졌다. 가족이 사는 단독주택은 누가 봐도 모를 수 없을 정도로 웨하스 지붕으로 꾸며졌고, '내가 잃어버린 메리 소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수시로 찾아왔다. 엄마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들을 받아주었다가 떠나면 보낸다. 막지도 않고 잡지도 않는다. 그러다 가장 인상적인 사람이 찾아왔는데 이름이 '제리미니베리'라고 했다. 이 책의 주요 인물 중 한명이다. 하는 짓을 보면 나라면 샅샅이 검증하고 당장 내보낼텐데... 결국 어찌저찌 나가게는 되지만, 다시 돌아와 익숙한 풍경의 한 부분이 된다.
"드라마는 비록 삼류 드라마일지라도 개연성이 있어야 하지만 삶은 그렇지 않다. 삶은 도무지 아무런 개연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중략) 나에겐 제리미니베리가 그런 존재다. 이야기 속에서라면 존재할 수 없는, 개연성과 무관한 존재, 혹은 시스템의 작은 오류 같은 존재." (141쪽)

드라마로 비유한데는 이유가 있다. 가족 외 중요한 인물, 동네 주민이자 친구인 마로니. 알고보니 이 사람은 드라마작가 마영희였다. 마영희로 말할 것 같으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막장드라마 작가다. '나'와 삼촌, 그리고 이 드라마작가는 자주 어울려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들의 대화나 에피소드 속에 의미심장한 부분도 있고 웃기는 부분도 많다. 폭소 정도는 아니고 풋, 하고 웃게 되는 정도. 하지만 마로니는 충격적으로 슬프게 떠난다. 이 책에선 그것 또한 무심하게 툭, 놓아두고 넘어간다.

이 소설에서는 보통의 소설이라면 기승전결을 통해 해결할 것들을 좀처럼 해결하지 않는다. 무엇 하나 속시원히 말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메리 소이 사건까지도. 어느날 마로니는 '나'에게 메리 소이를 정말 기다렸냐고 돌직구 질문을 던지는데, 이후에 '나'는 이렇게 쓴다.
"내가 메리 소이를 기다렸건 기다리지 않았건 메리 소이를 끝없이 기다리고 살았던 것은 내 삶에 굉장한 안정감을 주었다고. 늘 변하지 않을 한 가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정말 괜찮은 일이었다고." (200쪽)
글쎄, 알듯말듯하다.
돌아보면 이 책에서 마로니의 역할은 '질문하기' 였던 것 같다. 삼촌에게도, 나(은수)에게도. 그 질문에 대체로 대답을 못하지만 질문은 거울처럼 자신을 보여주곤 했다.

자식 가진 부모로서 가장 한심한 인물은 뭐니뭐니해도 화자인 '나' 였는데, 얘는 거의 20년째 눈깜빡이 인형 미사엘을 끌어안고 살며 동네 '원더마트'를 천천히 일주하면서 백화점과 아울렛을 떠돌다 종착역으로 들어온 떨이 옷들을 구경하다 사는 것이 일과다. 부모는 벌인 일이 망해서 어려운데도 이런 딸의 소비에 돈을 대준다. 그러다 마트의 젠탱글 강좌에 다니게 되자 엄마는 기뻐한다.
"미사엘이나 안고 다니는 대신에 책상에 앉아 뭔가를 하고 있으면 엄마는 들뜬 표정을 애써 감추며..." (75쪽)
그러고보면 독촉하지 않았을 뿐이지 엄마들 마음은 다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후반부에 '나'는 친척 동네의 한 잡화점에 판매원으로 취직해서 다닌다. 이전과 다른 역할에 뿌듯함을 표현한 문장도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소설을 얘가 쓰고 있는 것 아닌가!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토록 독특한 글을.

이 책에서는 슬픔도 조금 우스꽝스러워지고 웃음에서도 슬픔이 느껴진다. 슬픔도 기쁨도 톤다운해서 결국 비슷한 색깔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그런 세상에서 오늘도 잡화를 팔며 소설을 꿈꾸는 '나'는 비슷한 처지의 독자, 즉 나를 위로한다. 딱히 힘주진 않고.

한번 더 읽으면 다른 게 보일게 확실하지만 그냥 한번만 읽고 잘래. 나도 내일 잡화를 팔러... 뭐 그 비슷한 일을 하러 출근해야 되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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냥냥 도넛 배달부 바람어린이책 30
이혜령 지음, 홍그림 그림 / 천개의바람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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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좀 과장해서) 한 작품 걸러 하나에는 나오는 고양이, 거기다가 음식점(가게) 류의 판타지 공간. 완전 유행 소재로 범벅이 된 책이잖아? 뭐 새로울 수가 있을까?

 

아 그래도 새로울 수가 있네...ㅎㅎㅎ 이야기라는 게 참 신기하다. 그래서 새 이야기는 끊임없이 쓰여지고 읽히는 거겠지. 개중에 마음에 안 들거나 전혀 인상적이지 않거나 재미없는 책도 있지만 이 책은 마음에 들었다. 재미있었고 아이들도 좋아할 것 같다. 고양이의 매력은 아직 식지 않았고, 도넛이라는 소재 또한 구미를 당긴다.

 

두리는 바쁜 엄마를 대신하여 할머니가 거의 키워주신 아이다. 그런데 지금은 할머니가 병원에.... 그리고 가장 가슴아픈 일은, 할머니가 두리를 못 알아보신다는 것. 함께 했던 기억이 할머니에게선 사라져버렸다는 것.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밤양갱을 사가도 양갱만 낚아챌 뿐 두리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콱 막히는 일이다.

 

돌아가는 길에 두리는 발을 다친 하얀 고양이를 만나 치료를 해주었는데, 그 고양이를 뒤따르다 판타지 공간으로 진입하게 된다. 거기에 냥냥도넛가게가 있었다. 좀 더 자세한 이름은 이야기를 담은 냥냥도넛이다. 인간에게 이야기의 의미는 뭘까. 많은 작가들이 이야기의 힘에 대해서 말한다. 이 책도 그중의 한 작은 이야기라고 느껴졌다.

 

하얀 고양이 설탕이는 그 냥냥도넛의 배달부였다. 보기와는 달리 나이가 많이 들었다고 한다. 게다가 발까지 다쳤으니.... 그리하여 두리는 냥냥도넛의 임시 배달부 역할을 맡게 된다. 덩실이 집사 누나에게 덩실이의 이야기를 담은 도넛을 배달하는 역할이었다.

 

덩실이 누나네 집을 겨우겨우 찾아갔는데 누나라기엔 할머니....? 그만큼 오래 함께한 사이였다는 거지. 나도 우리집 개한테는 엄마니까...^^;;; 그 누나가 도넛을 하나씩 먹는 장면에서 이야기를 담은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된다.

 

이번에는 두리가 냥냥도넛의 고객이 되고자 한다. 할머니를 위해서. 하지만 냥냥도넛에는 고양이의 이야기만 담을 수 있는데.... 두리는 기억을 잃은 할머니에게 어떻게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을까?

 

이 책은 고양이 한 마리의 캐릭터로 이끌어가는 책은 아니다. 배달부였던 설탕이, 집사 누나에게 이야기를 전달하고 자기 갈 길로 떠난 덩실이, 두리의 부탁을 거절 못하고 도넛에 이야기를 담으려고 애써 준 불곰 등 여러 캐릭터가 있다. 이 책의 2편이 나온다면 이중에서 불곰은 계속 중요한 역할로 나올 것 같다. 두리에게 냥냥도넛 출입증, 일명 불곰 카드를 주고 끝났으니까. 불곰의 눈썹에서 빛이 나면 두리를 부르는 거다. 배달할 도넛이 있어서. 이렇게 2편으로 이어지겠구나 하는 짐작을 해본다.

 

할머니가 기억을 되찾는다든지 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 책이 아무리 판타지라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보여주는 나름의 행복도 현실적으로는 정말 어려운 것을 안다. 두리 같은 가족의 역할이 중요한데, 할머니의 옆에서 이야기를 이어가는 존재가 현대사회에 얼마나 있을 것인지가 문제다. 입을 닫은 나는 재잘대는 사람들이 부럽고 존경스럽다. 저런 사람들이 세상을 이어가는 것이구나. 이야기가 별것이 아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많이 읽는 내 입에서는 왜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것일까.

 

이 책엔 작가가 전하고 싶은 많은 메시지가 보이지만 나는 그중 할머니와 그 옆에 앉은 두리의 장면에 눈이 고정되었다. 나이가 나이라서 그렇기도 하고 어려운 만큼 귀한 장면이라 그런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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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쳐 쓸 용기 - 방송작가에서 어린이책 쓰는 교사로
안소연 지음 / 푸른칠판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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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연결은 기억이 안나지만 안소연 선생님은 페이스북 친구 중에서 매우 인상적이고 부러우면서도, 친근하고 가깝게 느껴지는 페친이다. 서로의 글을 잘 읽어주고 공감표시나 댓글로 소통한다는 점에서 가깝고, 그의 다양한 이력이나 작가로서의 능력은 동경의 대상이다. 그는 젊은 시절 방송국에서 교양 프로그램 작가로 일했고 그러다 진로를 바꾸어 늦깎이 교사가 되었으며 여전히 살아있는 작가적 역량으로 어린이 정보책 몇 권을 썼다. 철저한 자료조사와 공부가 필요한 비문학 책쓰기는 그의 예전 작업과도 맞닿아 있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도 했다. 어쨌든 그는 다양한 경험을 가진 인재라는 느낌을 받는다. 한우물도 깊게 못 판 나로서는 관심이 가고 부러운 사람이다.

 

그의 이력이 담긴 에세이가 나왔다길래 당장 구입해서 읽어보았다. 이 책은 교사로서는 다소 특이한 그의 이력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글쓰기 교육 경험담 성격이 더 강한 느낌이었다. 제목은 이 두 가지를 절묘하게 아우르고 있었다. <고쳐 쓸 용기>

 

페북에서도 느꼈지만 저자샘과 나는 공통점이 꽤 있다. 독서와 글쓰기를 중시한다는 것이 그 첫번째이다. 저자샘 교실의 아침독서는 우리반 풍경과 비슷하다. 잔잔한 음악이 깔린 조용한 교실에서의 자유독서. 여기서 자유는 책 선택의 자유일 뿐 다른 활동이 허용되진 않는다. 교사들 중에서도 혹자는 이것을 대단히 부자연스러운 풍경으로 보시는 걸 보았다. 아침이라도 아이들이 좀 편하게 하고 싶은 말 하면서 부담없이 시간 보내게 하자는 말씀인데, 나의 경험으로는 그게 훨씬 더 어려웠다. 교사의 하루 에너지를 수업 시작하기도 전에 몽땅 낭비하게 만든달까. 그리고 이때 아니면 10분이라도 독서하는 시간을 만들기 어렵다. 이건 꼭 내가 '마련해줘야 하는' 시간인 것을 얼마전에 재차 확인할 기회가 있었다. 지난 방학때, 딱 한가지 방학숙제만 내주었다. 방학기간 주말 빼고 평일 날짜만 넣은 독서기록표였는데, 그날 읽은 책 제목과 쪽수 정도만 한 줄로 넣는 표였다. 안 읽은 날은 공란으로 두면 되니 솔직하게 기록해서 제출하라고 했다. 방학 안내장과 알림장에는 학교도서관 개방 시간, 지역도서관 이용 방법 등을 안내해주었다. 개학날이 되어 아이들이 제출한 기록표를 살펴보고 "열심히들 했네. 수고했어요." 라고 칭찬해주었지만 속으로는 조금 허탈하기도 하고 의욕이 불끈 나는 양가적 감정이 생겼다. 아이들 대부분이 책을 대출하거나 구입해서 읽은, 말하자면 새로운 자료를 구해서 읽은 기록이 전혀 없었다. 예를 들면 한 권의 예외도 없이 출판사가 집에 있는 전집 한 종이라거나 모든 제목이 유아때 읽었을 법한 흔한 옛이야기라거나 하는 식이었다. , 이 아이들 독서는 내가 시켜줘야겠다는 의욕이 불끈 솟는 결과였다.

 

이렇게 독서로 기반을 다져가며 저자가 연중 힘을 쏟는 교육은 글쓰기다. 교대 이전 학부때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현장 작가로 일한 경험이 큰 자원이 되겠다. 책 속에는 글쓰기의 의의에 대한 작가의 풍부한 생각들이 들어있다.

- 나는 아이들에게 내 말을 들어줄 친구가 없다면 글을 써보라고 말한다. (69)

- 나는 교실 속 글쓰기는 혼자만의 활동이 아닌 함께하는 활동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100)

- 사람은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내 이야기를 글로 쓰고 그 글을 친구가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들 사이에는 정서적 유대감이 생긴다. (124)

 

저자의 글쓰기 지도 과정을 보니 나보다 훨씬 많은 노력을 투자하고 있었다. 특히 피드백과 퇴고(이 책의 제목인 고쳐쓰기’)를 철저히 하고 계신 점에서 배울 점이 많았고,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에 존경하는 마음이 생겼다. 확신에 따라 지도하고, 그에따라 발전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독자 선생님들에게도 자신감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이 책은 글쓰기 교육서 뿐만 아니라 일반적 글쓰기의 지침서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특히 교사의 글쓰기에 큰 의미와 지침이 되어줄 수 있겠다. 나의 교직인생을 되돌아보니 기록한 만큼 남았다는 생각이 든다. 100%는 아니지만 그 상관성은 매우 크다. 다행히, 나는 체계적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뭔가 끄적이는 성격이어서 페이스북에 교실 이야기를, 서재에 서평을 불규칙적이나마 남긴다. 그 기록이 축적물이 되어줄 때가 있고, 다른 이들과 소통의 매개가 되는 때도 많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영화 어바웃 타임을 예로 들며 자신의 경험을 복기하며 글을 쓰는 작업이 인생을 두 배로사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인생을 두배로라니! 아니기만 해봐! 라고 나에게 누가 달려든다면 말이 그렇다는 거지!ㅎㅎ라고 한발 물러설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그 느낌이 뭔지 확실히 알겠다. 이렇게 글쓰기는 모두에게 매우 유용하고 의미있는 작업이다. 이 책은 읽는 독자들은 확실히 느낄 것 같다.

 

기억하고 싶어 메모해두었던 구절을 다시 적어보면서 마무리해야겠다.

글을 쓰는 과정은 선택과 결정의 연속이다. 자유롭게 선택하고 결정하면서 창조자의 희열을 맛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137)

표면적으로 볼 때 학생들에게 글쓰기 시간은 자유와 창조의 시간이기보다는 구속과 고통의 시간인 것으로 보인다. (하긴 창작의 고통은 작가들에게도 마찬가지지) 하지만 글쓰기가 자유와 해소와 위안과 소통의 역할을 하는 날이 반드시 오기는 한다. 그날까지 나도, 아이들도, 독자들도 모두 정진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안소연 선생님이 앞으로 쓰실 좋은 책들을 기대하며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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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 2025년 아침독서 추천도서, 2025 경남독서한마당 초등저학년 선정도서, 2025년 한학사 추천도서 미소 그림책 9
현단 지음 / 이루리북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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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하지 않은 길~쭉한 판형의 그림책이다. 첫 번째 읽을 때 나는 아주 눈치없이 읽고 말았다. 희나의 특별함도, 놀이의 변형도 의식하지 못하고 읽으면서, 뭔가 이상한데? 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마지막 장에 거의 가서야 아, 이 책은 장애를 가진 아이와 친구들의 이야기구나 하고 깨달았다. 내가 눈치가 없는 면도 있지만 이건 작가님이 잘 표현하신 탓도 있다. 희나가 튀지 않게. 친구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그리고 놀이. 나는 어렸을 때도 뛰어노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아이였지만 그래도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도 안해본 건 아니거든. 그런데 워낙 놀이 경험에 자신감이 없다보니 아 뭐지...? 무궁화꽃 놀이가 이런 거 아니지 않나...? 하고 갸우뚱하고만 있었던 거다. 그래, 원래 무궁화꽃 놀이는 내가 알던 게 맞다. 이 아이들이 변형해서 한 거다. 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게 맞나....?? 할 정도로 절묘하게.

희나는 시작장애인이지만 놀이에서 전혀 주눅들지 않는다. 첫 화면의 “시작한다!”도 희나가 외치는 소리다. 원래 무궁화꽃 놀이는 움직임을 들키면 걸리는 건데, 희나에게 맞추어 소리를 들키면 걸리는 것으로 변형했다. 와, 아이들은 이런 데 천재지. 실컷 놀아본 경험만 있다면 말이야. 요즘은 예전같지 않아서 가르쳐줘도 못노는 아이들이 많아졌지만 그 문제는 여기서 할 얘기는 아니므로 패스.... 하여간 아이들은 내가 깜빡 속아넘어갈 정도로 변형된 놀이를 재미있고 진지하게 하고 있었다. 마치 희나 때문에 더 재미있어진 놀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줄무늬셔츠 남자아이(‘나’)가 가장 재미있다. 반드시 이기겠다는 일념으로 만반의 준비를 한다. 콧구멍까지 휴지로 막고, 위기시에 고양이 소리내기 연습까지 하는 ‘나’는 우리가 아는 사랑스러운 장난꾸러기 딱 그모습이다. 놀이가 재미있어질 정도의 적당한 승부욕을 가진.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참지 못한 재채기. 거기에다 독가스 살포까지. 재채기에는 슬쩍 넘어가 주었던 희나가 독가스는 정확히 잡아내는 장면에 친구들이나 독자들이나 깔깔 웃게 된다.
마지막 장면,
“재채기는 봐줬다.”
“나도 방귀 뀌어 준 거거든.”
이런 현실대화. 슬픔이나 서러움은 없는.

장애어린이가 나오는 이야기가 점점 진화하는 느낌이다. 이야기만큼 현실도 진화하면 좋겠다. 이렇게 유쾌하게. 이렇게 자연스럽게. 배려라고 굳이 이름 붙이지 않는 배려가 가득하게. 그런데 그 배려가 모두를 행복하게.

이런 재미난 책들이 현실을 견인할 수 있기를 빌면서, 아이들과 함께 꼭 읽어보겠다. 아이들도 참 좋아할 것 같고 나눌 이야기도 많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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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보 까보슈
다니엘 페나크 지음, 그레고리 파나치오네 그림, 윤정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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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페나크의 이 책 원작이 나왔던 1999년에는 나도 교직 초반부였다. 그때 한창 어도연 등 각종 권장도서 목록에서 빠지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나도 당연히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이 그래픽노블을 보니 완전 새로운 거야!^^ 오래됐기도 하고, 강정연 작가님의 <건방진 도도군>이랑 내용이 뒤섞여 기억 속에 묻혀 있었던 것 같다. 하여간에 내용을 많이 잊은 탓에 더욱 흥미롭게 읽었다.

최초로 발표된 해는 1982년이라고 한다. 40년이 넘었다는 건데, 시대를 앞서가신 건가, 지금 읽어도 문제의식이 전혀 낡지 않았다. 그때 사람들에게도 필요한 말이었겠지만 지금 사람들은 더더욱 들어야 할 말이다. 어떻게 보면 작가가 걱정한 방향대로 세상은 흘러온 것 같다.

이 책의 화자는 ‘개’다. (종 이름이기도 하고 개체의 이름이기도 하다) 소위 ‘주인’이라 할 수 있는 ‘사과’라는 소녀가 지어준 이름이 그렇다. (사과, 얘도 참 특이해 보인다ㅎㅎ) 사과에게 오기까지 ‘개’의 삶은 참 파란만장했다. 어떤 종이 섞인 건지 가늠도 못하겠는 잡종으로 태어나, 그중에서도 가장 못생겨서 팔리지도 않겠다는 이유로 낳자마자 물에 빠뜨려졌다. 쓰레기장에 버려졌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시컴댕이’라는 큰 개의 도움으로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배우며 살아간다. 늘상 위험이 도사린 그곳에서 결국 시컴댕이는 사고로 죽었고, ‘개’는 시컴댕이가 해준 말들을 기억하며 쓰레기장을 떠난다. 포획되어 유기견 수용소로 가게 됐고, 거기서 운좋게 바캉스 왔던 ‘사과’의 품에 안겼다. 사과의 특이한 취향 때문이다. “난 사나운 개가 좋아!”

그러나 어린이들이 대체로 그렇듯이, 사과도 관심사가 급변했고, 원래부터 달갑지 않아했던 엄마 아빠와, 마음이 변해버린 사과가 있는 집에서 ‘개’는 천덕꾸러기가 되어갔다. 시컴댕이가 “도시에 가서 여주인을 찾아내서 잘 길들이라”고 했건만.... 실패한 것을 깨달은 ‘개’는 집을 탈출해 다시 거리의 개가 된다.

그러다 만난 ‘하이에누’와 ‘멧돼지’의 모습은 서로를 구속하지 않는 우정을 잘 보여준다. 하이에누는 개고, 멧돼지는 사람이다. 거기에 끼어든 ‘개’까지도 멧돼지는 무심하게 반겨주었다. 가끔 꾸던 악몽까지도 가라앉게 되는 행복한 생활이었다. 하지만 ‘개’는 그곳도 떠났다. 다시 사과를 만나러. 개와 마주친 사과는 반색을 했지만 개는 호락호락 다가가지 않았다. 결국, 개는 ‘여주인을 길들였다’? 그렇게 말하는게 맞는지는 모르겠고, 어쨌든 좋은 친구가 되었다. 이후 부모의 작당에 의해 또 버려지고, 돌아오는 과정은 아주 극적이고 흥미진진하며 통쾌하고 감동적이다. 책 읽는 맛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결말이다. 이래서 몇십년이 지나도 사랑받는 작품, 현대의 고전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우리집에도 개가 한 마리 있다. 딸이 난데없이 데려온 개인데, 독립하면서 데리고 나갔지만 근처에 살아서 자주 온다. 딸한테는 귀찮은 일이지만 혼자 계신 아버님이 그녀석만 기다리고 계시니 주 2일 정도는 집에 데려다 놓는다. 난 그녀석한테 만날 “너 같은 팔자가 세상에 어디 있다더냐” 하면서 부러워하지만 그녀석도 그렇게 생각할까? 사실 온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는 것은 사실인데, 태생부터 철저히 인위적이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요즘 유모차보다 개모차가 훨씬 더 많이 팔린다던가.... 앞으로 돈을 벌려면 반려 사업을 해야된다고들 말하는 것처럼 반려동물한테 돈을 아끼지 않는 세상이 되었는데, 이면에는 여전히 버려지는 동물, 학대받는 동물, 공장식 축산, 터전을 위협받는 동물들이 있다. 인간의 빈부격차가 어마어마해진 것처럼 동물들도 그렇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이쪽 동물이나 저쪽 동물이나 다 행복하지 못할 것 같다. 물론 배부르고 등따신 동물들이야 고통당하는 동물들보단 훨 낫겠지만, 본성을 침해당하고 자신의 영역을 존중받지 못한다는 면에서 그들이 과연 원하는 것일까 라는 의문을 가진다.

인간의 생활 방식 자체가 동물과 친구가 되긴 어려운 형태가 되어버렸다. 현실 안에서 최선을 찾는 수밖에 없을 테지만 이 ‘개’의 이야기를 읽는 것은 우리 마음가짐을 한번 점검해보는 기회는 될 것이다. 시종일관 ‘친구’의 관계를 추구하며 보여주는 이 책을 인간관계에도 대입할 수 있겠다. 서로의 영역을 지켜주며 자유를 존중해 주어야 하는 것은 사랑이나 우정의 기본이기도 하니까. 누굴 길들이겠다는 의도 자체가 우정이 아니니까.

원작을 다시 봐야 정확히 알겠지만, 이 그래픽노블은 원작을 축약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게 줄거리에 충실하고 느낌 또한 풍성하고 강렬하며 흥미롭다. 각색과 그림 표현을 정말 잘하신 것 같다. 원작자도 만족할 만큼이 아니었으려나? 원작과 병행하면 가장 좋겠지만 어린이들이 이 책으로 작품을 먼저 접해도 충분히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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