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오기傳 - 활자 곰국 끓이는 여자
김미옥 지음 / 이유출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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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으로 필력이 뛰어난 한 분을 알게 되었다. 책이 그냥 쭉쭉 읽힌다. 이분은 불세출의 서평가라고 한다. 이 책 말고 또 한권의 책이 있는데 그건 서평집인 모양이다. 그 책도 읽어보고 싶다. 근데 그 안에 내가 읽은 책이 있을랑가 모르겠다.

이책은 '전'자가 붙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한 사람의 일대기다. 굳이 말하자면 자서전이라 하겠다. 원래 남의 이야긴 재밌는데 이 책은 특별히 재밌다. 작가의 필력이 첫번째고 두번째는 인생 자체가 다이나믹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나와 공통점이 너무 없는 분이다. 이 책의 리뷰는 아무래도 이분과 나의 차이점 늘어놓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겪으신 일로 보아 나보다 몇살 많거나 비슷한 또래 아닐까 싶다. 하지만 내가 아주 평범한 순한맛 집안에서 엄마 치마꼬리 붙잡고 성장한 것에 비하면 이분의 성장 배경은 악천후 속의 거친 들판이었다. 자신의 힘으로 세상에 자리를 확실히 잡기까지 모든 일이 풍파였다. 반면 주인공은 너무 똑똑하고 출중했으며 성격 또한 보통이 아니었으니 필연적으로 전투가 벌어진다. 미오기라는 검객이 칼 한자루를 들고 세상과 챙챙 싸우면서 한걸음씩 나아가다 이제야 조금 쉴만해진 이야기?

보통의 일대기가 시간순인 것과는 달리 이 책은 시간 면에선 뒤죽박죽이다. 의식의 흐름 순이라고 할까? 부제는 '활자 곰국 끓이는 여자'. 자신의 과거를 소환해 충분히 삭힌 후에 글로 엮었다. 그래서인가, 아픈 기억에도 유머가 있고 때로는 남얘기하듯 툭 던지기도 신나게 쏟아붓기도 한다. 그 여유가 내게는 무용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긴, 무용담이 맞긴 맞지.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여러 남매를 데리고 세상을 헤쳐나가야 했던 어머니는 미오기를 도구 취급했다. 그녀의 출중함을 기뻐하고 칭찬하긴 커녕 못마땅해했다. 요즘 세상이면 그 천분의 일만 해도 아동학대이고 자식은 금쪽이 방송에 나와야 할만큼 정신적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당당하신 어머니와, 그 어머니와 잘 지내는 미오기. 시대의 차이인가 난 잘 모르겠다. 이와 같이 과거로 곰국을 끓여 이해하며 화해한 탓이겠지. 이렇게 스스로 곰국을 끓일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다행인가. 드물게 강한 사람. 그래서 나랑 비교된다.

어릴 때 그녀에게 구원은 책이었다. 나도 아주 약간 그렇긴 했는데 작가님과 수준 면에서 비교가 불가하다. 대단한 독서력과 통찰력을 가진 사람. 그 밑바탕이 되는 예술적 교양을 두텁게 가진 사람. 그래서 그의 서평집이 기대된다. 내가 읽어본 책이 한 권도 없을지라도, 아니 그래서 더욱 읽어봐야겠다.

그에게 살아갈 의미를 부여해준 스승님이 6학년 담임선생님이었다는 사실은 나에게 안도와 부끄러움을 동시에 주었다. 보통 과거를 회상할 때 개차반 교사들을 많이 언급하는데, 친부모보다 더한 관심과 사랑과 기대를 주었던 선생님이 계셨다니. 지금은 과거와 같은 개차반 교사도 잘 없지만 이렇게 모든걸 내어놓는 분도 잘 없다. 옛날엔 모 아니면 도였던가...^^;;;; 나는 모도 도도 아니지만 어쨌든 나의 부족함은 인정한다.

어릴 때는 엄마 아빠, 결혼해서는 남편과 시아버지, 지금은 주변 언니들에게 매우 의존적인 나는 작가님의 독립적이고 자립적인 젊은 시절에 경의를 표한다. 스스로 생존하면서 그 많은 지식과 교양을 쌓았다는 점이 가장 놀랍다. 양육이나 직장생활 묘사는 주로 무용담 같았지만 그또한 대단했다. 부동산 쪽 얘기 읽어보니까 마음만 먹으면 뭐든 해내는 사람 같아서 살짝 무섭기도.... 나는 기가 쎄고 억척스러운 사람과는 잘 안친해지는 편인데 그래도 이 책과의 만남은 참 즐겁고 반가웠다. 딱 한 군데서 작가님과의 동질감을 느꼈는데 '독학형 인간' 이라는 꼭지에서였다. 물론 작가님과 학습의 깊이는 다르지만....
"살며 부딪히는 모든 일들이 내게 스승이었다. 성공하고 실패하며 복기하고 반성하는 과정이 나쁘지 않았다."
"배우는 건 나의 선택이고 검증도 나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런 문장들이 좋았다. 아직도 배움이 남아있다는게 꼭 삶이 남아있다는 말과 비슷하게 내게는 느껴져서다.

시뻘겋고 날카로운 날것의 재료들이 푹 고아지면 부드러운 곰국이 되듯이 작가님도 이제 인생을 깊이있고 부드럽게 관조하며 그 성찰을 독자들에게 나눠주시는 것 같다. 내가 그동안 뭘 바라면서 책 리뷰를 쓴 건 아니고 단지 잊어버리지 않게 적어놓는 용도로 쓴 것이지만 이분의 서평집을 읽게 되면 엄마야 이런게 서평이구나 하면서 놀랄 것 같다.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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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 국내 최초 프로파일러의 연쇄살인 추적기
권일용.고나무 지음 / 알마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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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같은 토요일이 이 책을 읽으며 지나가버렸다. 휴일을 책으로 보내는 건 나쁘지 않지만 이런 책을 읽고나면 썩 상쾌하진 않단 말이지.... 이 책을 읽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이렇다. 출근길에 플레이리스트에 담겨있는 홍이삭의 노래들을 듣다가 달달하지 않은 종류의 곡들에 관심이 갔는데 다 무서운 드라마의 ost들이었다. 그중에 김남길이 주연을 했다는 이 책과 동명의 드라마를 알게 됐고, 책을 먼저 읽어볼까 해서 동네도서관에서 빌려 읽게 됐다.

1년 전인가 잠이 안오던 밤에 어떤 알고리즘이었는지 ‘알쓸범잡’ 영상을 연이어 보게 되었다. 이 책을 읽다보니 내가 그 영상을 꽤 많이 봤었나? 다 들어봤던 얘기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책은 범죄를 기술하기만 하는 책은 아니다. 프로파일러라는 일을 하는 사람들, 그중에서 초창기 멤버인 권일용 씨의 업무 수행 과정을 주로 담고 있다. ‘악의 마음을 읽는’ 이라는 제목이 인상적이다. 드라마가 궁금해지고 이 책을 읽게 된 이유가 거기에 있다. ‘악의 마음’을 나도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건 느낌에 불과하긴 하지만 ‘그 마음’이 갈수록 늘어나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이 내게 있기도 하다. 딱히 ‘악의 마음’이라기보다는 이상한 심리,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심리, 위험한 심리라고 하겠다.

이 책을 읽고 났지만 여전히 알지는 못하겠다. 흔히 만들어지는가, 타고나는가 하는데 작가나 여기 등장하는 전문가들은 만들어진다에 90 정도의 비중을 두고 있다. 다만 같은 환경이라고 똑같이 악인이 되는 것은 아니니 10 정도의 타고남이 있다고 보는 것 같다. 내가 보기엔 10을 훨씬 넘는 것 같지만 그 10도 작은 숫자가 아닌지도 모른다.

악인의 파괴력은 절대적이다. 그 주변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무고한 목숨을 잃거나 인생이 고통으로 점철된다. 그들을 빨리 분리해내어 선량한 이들의 희생을 막기 위해 수사를 돕는 사람들이 프로파일러다. 모든 직업이 중요하지만 범죄를 다루는 모든 분들에게도 감사하는 마음이 생긴다. 주로 경찰직과 교정직. 그분들은 어떻게 멘탈을 다스리고 일상을 유지할까. 쫄보인 나는 감히 상상이 가지 않는다.

이 책에서는 자극적인 내용을 최대한 자제했기 때문에 없지만 내가 봤던 영상에는 그런 말이 있었다. 여기 나온 연쇄살인범 중의 한 명은 이른바 ‘쾌락 살인’을 했고 희생자의 고통에서 희열을 느꼈으며 “담배는 끊어도 살인은 못 끊는다.”라는 말을 했고, 그 ‘살인 금단’ 때문에 복역 중에 자살했다고 한다. 그 ‘악의 마음’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사람 고쳐서 못 쓴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은 아니겠지. 하지만 갱생이 불가능하다면 사회는 악인들의 관리에 얼마나 힘을 써야 되는 걸까? 인간을 컴퓨터처럼 리셋할 수도 없는데 말이다. 갱생이 가능한 경우는 최대한 갱생을 돕되, 불가능한 자들은 다시는 사회를 불안하게 하지 못하도록 관리한다. 이정도가 답일까? 그 둘을 구분하는 일 또한 쉽지 않을 것이다.

권일용 씨는 이제 현역에서 은퇴했다. 이 일은 아주 오래 할 수 있는 일은 못되는 것 같다. 하지만 그 뒤를 잇는 분들이 또 현장에서 열심히 뛰고 있겠지. 내가 요즘 느끼고 있는 걱정, 이 사회의 심리적 건강의 적신호. 그게 그냥 기우이기를 바란다. 그 불안을 상세히 기술하자니 힘들다.... 그저 사회의 구석구석 모든 곳에서 건강한 개인과 사회를 위해 일하고 있는 분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이 책에 자주 거론된 미국의 책 <마인드 헌터>가 궁금해졌다. 그 책도 읽어볼까? 아니다. 그만 읽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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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시게 무시무시한 반짝이 귀신 저학년 씨알문고 12
윤여림 지음, 신민재 그림 / 북멘토(도서출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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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림 작가님이 이번엔 귀신 이야기를 쓰셨다! 신민재 작가님의 그림도 재미있어 읽을 맛이 더욱 상승! 어린이들은 무서운 이야기, 특히 귀신 이야기를 좋아하고 작가님도 전부터 귀신 이야기를 쓰고 싶으셨다는데, 오랫동안 품고 있던 이야기 씨앗 하나가 귀신 이야기로 전환되어 이렇게 새로운 이야기로 탄생했다고 한다.

질문1. 무서운가? 이거 중요한데, 아쉽게도 무섭지는 않다. 어쩜좋아...ㅎㅎㅎ 하지만 엽기적인 호러물을 매우 싫어하는 내게는 아주 사랑스러운 귀신 이야기였다. 질문2. 재미있나? 이건 주관적인 것이지만 대체로 재미있다고 할 것 같다. 질문3. 의미있나? 그렇다!라고 하고싶다. 이것도 물론 주관적인 느낌이지만.

“세상에는 귀신들이 엄청 많아요.” 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며, 펼친화면 가득 이런저런 귀신들을 보여주는데, 글작가님과 그림작가님의 콜라보가 훌륭하다. 초반부터 아이들을 훅 끌어들일 구성이다. 첫 장의 제목은 ‘귀신은 무얼 먹고 살까?’ 인데 결론을 말해버린다면 사람들 비명 소리를 먹고 산다. 말하자면 자신에 대한 공포를 먹고 더욱 강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굶는 귀신도 있다. 안무서우니까. 하지만 그럴 염려가 없는 귀신이 있으니 바로 달걀귀신이다. 이 책의 주인공이라 하겠다. 이 달걀귀신이 이 책의 제목인 ‘반짝이 귀신’이 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때부터 달걀귀신은 ‘반짝이는 것’을 추구하기 시작한다. 반짝이는 것만 보면 몸에다 붙이고 만족해한다.

반짝이를 좋아하는 등장인물은 또 있었다. 바로 반짝이왕자다. 반짝이왕자의 집에는 온갖 반짝이는 것들이 가득했다. 눈이 부실 정도로. 하지만 욕심은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같이 계속 목이 마른 법. 반짝이귀신의 소문을 들은 반짝이왕자는 그 귀신까지도 갖고 싶어 한다. 그리하여 귀신을 잡아들일 계략을 꾸민다.

계략대로 귀신을 잡아가두는 듯 했지만 왕자는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고 말았다. 반짝이 귀신은 신이 났다. 왕자의 수많은 반짝이들을 자기 몸에 덕지덕지 붙이고 의기양양하게 그곳을 떠난다. 하지만.... 움직임이 예전같지 않다. 너무 무거워졌기 때문이다.
“반짝이를 너무 많이 붙였나?
그래도 반짝이를 포기할 수 없어.”
귀신의 이 혼잣말에 인간의 모습이 담겼다고 하면 너무 오버일까?

반짝이를 너무 많이 붙여 몸집이 커진 귀신은 몸집만큼 무서웠지만 느리고 둔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발견하고 도망치긴 쉬웠다. 사람들을 마주할 수 없는 귀신은 비명소릴 들을 수 없었고, 배가 고파 점점 약해져갔다. 지쳐서 들판에 쓰러져 잠든 어느날, 아침에 깨어난 귀신은 엄청나게 예쁜 반짝이들을 보았다. 도처에서 영롱하게 반짝이는 그것은.........

귀신은 이제 그 반짝이들에 대한 사랑으로 마음이 차올랐고 행복해졌다. 몸에서 떨어져나간 반짝이들은 이제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때, 왕자가 귀신을 발견했다. 왕자는 잃었던 보물들을 되찾아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돌아갔다.

누가 이긴 것일까? 이런 걸 윈윈이라고 하는 건가?ㅎㅎㅎ 물론 이건 승부의 차원이 아니니 우문이다. 하지만 나는 귀신이 찾은 행복에 더 축하를 보내고 싶다. 세상에 반짝이는 것은 많다. 가장 아름답게 반짝이는 것은 무엇일까? 저마다 생각이 다를 테지.

귀신 이야기를 쓰신대놓고 이렇게 깊은 의미를 넣어버리시다니 이건 작가님의 직업병이라 해야될까?ㅋㅋ 그렇지만 재미도 있단 말이죠. 저학년부터 어른까지 자기 수준에 맞춰 읽을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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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최애 다산어린이문학
김다노 지음, 남수현 그림 / 다산어린이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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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읽고 계신다는 페친들의 포스팅을 몇번 본거 같은데 내가 제대로 읽지 않았는지 장편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읽어보니 단편이었고, 정확히 말하면 6학년 한 학급 아이들이 주연과 조연으로 바뀌어 등장하는 연작동화였다. 봄부터 겨울(졸업)까지로 이어지는 차례만 보아도 감각적이고 섬세한 감성이 돋보였다. 내용 또한 그러했다.

잘못 알고 있었던 것 외에 또 하나의 사전 정보는 이 책이 사랑이야기, 그러니까 초딩 연애담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일전에 초딩 연애동화 목록을 만든 적이 있다.ㅎㅎ 거기에 또한권 추가로군!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잘 쓰여진 초딩 연애동화를 귀하게 여기지만 그 연애 자체는 달가워하지 않는다.^^;;;; 내가 아이들을 지도하고 통솔해야 하는 입장이 아닌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좋아좋아~ 하고 웃으면서 귀엽네 하고 부채질도 해줄 수 있는데, 학급의 분위기와 태도에 온 감각을 집중해야 하는 담임으로서는 무방비로 헤헤거리다간 순식간에 무너진 교실 분위기를 다시 세우느라 무진 애를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다가오는 사랑을 어쩌겠는가? 조선시대도 아닌데 가슴으로만 묻고 벙어리 냉가슴 앓으라고? 그런 뜻은 아니다. 다만 감정놀음에 속지 말고 집착하지 말고 건강한 일상과 병행하란 뜻이다. '작가의 말'에 바로 그 뜻을 지닌 세련된 문장이 나온다.
"나는 부드럽고 신중한 로맨스를 알고 있다."
작가님은 어떤 박물관에서 옷의 단추에 작게 새겨진 이 문장을 보았다고 한다. 나는 작게 감탄했다. 와... 이런 걸 발견하는 눈과 마음이 작가구나. 그리고 그게 마음 속에서 여물고 다듬어져 작품이라는 것으로 태어나는구나.

그러니 나는 작가와는 얼마나 다른가. 나는 교실에서 "누가 누구 좋아한대!" "누구 누구가 사귄대!!" 하면서 꺅꺅 괴성 지르는 걸 흐뭇하게 지켜보지 못하는 아주 딱딱한 교사다. 그리고 교실 안에서 그런 말 공공연하게 하는 걸 단속한다.
"누구를 좋아하는 마음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거예요. 싫어하는게 문제지 좋아하는 게 문제겠어요? 하지만 공개적으로 누굴 언급하는 건 삼가하세요. 그건 언급된 사람이나 언급되지 않은 사람 모두에게 불편해요. 말하자면 공동체를 배려하지 않는 무례한 말인 거예요!"
이런 식으로 그럴듯하게 말하면서, 속마음은 아마도 '사랑도 좋고 다 좋은데, 제발 떠벌이지 말고 조용하게 좀 해줄래? 지금 사랑이 영원할 리가 없는데 니들 할 일은 하면서 해야 할거 아니야.' 이런 생각일 거다. 이런 나에 비해 작가님은, 그리고 그 옛날 단추에 그 문장을 새겼던 이의 언어는 얼마나 수준있고 세련되었나. '부드럽고 신중한 로맨스'라니.

자, 이제 작가님이 이 책에서 그린 로맨스들이 얼마나 부드럽고 신중한지 감상할 차례다. 첫번째는 봄 이야기 [무지와 미지]. 서미지는 또래 여학생들보다 머리 하나쯤 훌쩍 큰 아이다. 그정도면 남자아이들보다도 크다. 더구나 강무지는 반에서 가장 작은 남자아이. 그런데 미지가 무지에게 고백을 했다. 거기에 대한 무지의 답은 "난 나보다 키 큰 여자는 싫어."라는 세상 찌질한 말이었지 뭐야. 쿨한 미지는 알았다고 바로 돌아섰지만, 그때부터 일렁이는 건 무지의 마음. 편견과 자격지심에 떠밀려 부정했던 것을 다시 되돌리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는 수난과 함께 다가오는데....

이 작품을 읽으면서 요즘 우연히 보았던 이영지 가수의 ‘small girl’ 뮤직비디오가 떠올랐다. 이름만 들어본 가수였는데 갑자기 호감과 관심이 생겨서 검색까지 해보았다. 이 가수의 키는 175라고 한다. 옛날보다는 여성들도 큰 키를 선호하는 것 같지만, 그래도 남성보다 작아야 하고, 품에 쏙 들어가게 귀여워야 하고... 등등의 판타지라 이름하는 편견이 아직도 존재하는 것 같다. 아니 그 판타지는 나 때보다 더 치밀하고 잔인해진 느낌이다. 왜 그럴까.... 그런데 이 노래에서의 연인은 당당하게 말한다.
“Girl I don’t got no fantasy”
무지와 미지. 이 뮤직비디오의 주인공들보다 더 멋지게 성장할 거라 믿는다.

여름 이야기 [눈인사를 건넬 시간]에서는 들이대는 덕형이와 부담스러워하는 수민이가 주인공이다. 사랑을 소위 ‘강하고 남자답게’ 표현하는 걸 멋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겠지. 그런데 그 결말을 보면 그것이 폭력과 종이 한 장 차이더라고. 말하자면 사랑이라 이름붙일 수 없는 것이고 완전 대척점에 있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을 단호히 거부하는 법을 누구나 배워야 할 것 같다. 남자든 여자든. 여린 수민이가 차츰 그것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다. 덕형이가 이 기회를 통해 자신의 태도를 고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야 다음 사랑은 폭력이 아니게 될 수 있을 테니까.

가을 이야기 [그리고 한 바퀴 더]는 육상부 만년 2인자 채준구와 다소 엉뚱하지만 어른스러운 갈기온의 이야기다. 준구 아버지는 이제 육상부를 그만두라고 명하셨다. “언제까지나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살 순 없어.” 준구는 그만둘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고, 운동회 날이 다가오고 있는데 기온이가 2인3각 종목에 손을 번쩍 들며 준구랑 같이 나가고 싶다고 한다. 끙끙대는 준구와는 반대로 기온이는 어려움 없이 자신있는 말을 한다.
“우리 태어난 지 10년 조금 넘었을 뿐인데 지금 좋아하는 걸 해야지, 언제 하려고. 앞으로 살 날이 창창한데, 뭘 벌써 포기하냐?”
나이든 나는 아버지 말씀도, 기온이 말도 상황에 따라 다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좋아하는 걸 포기하고 그만큼 매진할 것을 찾을 수 없어 무기력해진다면 포기는 너무 이르지. 다른 이야기에 슬쩍 나오는 준구의 근황을 보면 잘 성장하고 있더라고. 이 책은 이렇게 아이들의 연애담이자 성장기. 그래서 더 마음에 든다.

초겨울 이야기 [확신의 확률]은 웃음 성분이 가장 많이 들어간 작품이랄까. 초딩 연애에서 연하남과의 연애는 거의 못본 것 같은데. 그런데 이건 모르고 시작한 감정이라서.^^ 명지가 당근나눔으로 만난 키 큰 남학생 택이. 설레이게 하는 그 애가 알고보니 5학년이라는 사실도 놀라웠는데 더 놀라운 사실은....? 하지만 사랑은 직진한다.
“다시는 의미없는 확률 따위는 계산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것이 얼마나 기적에 가까운 확률인지, 이 확실한 사실을 이제는 알고 있으니까.” (126쪽)

겨울(졸업) 이야기이자 표제작인 [최악의 최애]. 앞편들에서 군데군데 주변인으로 나왔던 진아와 대한이가 마지막 주인공이다. 진아의 최애는 춘기라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아이돌의 멤버다. 진아가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인 것을 여기서야 알고 조금 놀라는 내가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다. 그 옆을 묵묵히 지키는 대한이. 둘이 춘기네 사인회에 같이 가게 되어 일어나는 일들도 하나같이 작가의 섬세한 의도와 함께 재미와 감성이 다 좋았다. 졸업식에서 일어나는 대박 에피소드도 재미나고 흐뭇했다. 그렇게 이 책의 아이들은 졸업을 했고, 중딩이 된 이후의 한장면을 살짝 보여주며 책이 끝난다. 졸업 때 쓴 손글씨 롤링페이퍼를 마지막장에 넣어준 구성도 돋보인다. 짧은 문구들에 아이들 각각의 개성이 담겨있고, 성장도 드러난다. 특히 두 번째 이야기에서 수민이를 힘들게 했던 덕형이가 남긴 문장. “혹시 나 때문에 기분 나빴던 일 있었으면 사과할게. 내가 참 어렸다.” 나를 안심시키는 귀여운 문장. 많이 컸구나. 너도 친구들도.^^

이렇게 섬세하면서도 치밀한 구성에 버릴 것 없는 문장들, 무엇보다 재미있는 스토리, 그리고 사랑 이야기이되 단지 거기까지만은 아닌 주제들. 이런 작품을 구상하고 써내는 데까지 얼마나 걸릴까? 단숨에 썼다면 너무한 거고.^^ 이런 작품들이 아이들의 마음에 마지막 이야기의 눈처럼, 꽃잎처럼 예쁘게 내려앉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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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 점프 하늘 킥! - 2025 행복한 아침독서 추천도서 마루비 어린이 문학 20
전성현 외 지음, 한아름 그림 / 마루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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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작가들의 작품을 한권에 담은 엔솔로지 동화집이다. '편견과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한 특별하지 않은 아이들의 특별한 이야기'라고 뒷표지에 책의 성격을 규정해 놓았다. 이런 주제로 모아놓은 작품들이 전형적 내용을 담기 쉬운데 이 책은 그런 느낌을 피하고 새로운 면을 보여주려 애썼다는 느낌이 든다.

전성현 작가님의 [골목의 토르]의 '나'(도영)는 굳이 말하자면 저소득층 아이? 거주가 열악한 형편이다. 골목 어귀의 다세대주택, 그중에서도 햇빛이 잘 들지 않는 반지하에 살며 골목의 맨홀뚜껑에선 악취와 모기가 올라온다. 술취한 행인이 창문앞에서 소변을 보는 대목은 영화 '기생충'을 바로 떠오르게 한다. 그리고 떠오르는 실제사건도 있다. 해마다 폭우 때면 반복되는 반지하주택 침수 피해. (작년에는 사망자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ㅠ) 이 책에서도 침수와 생명의 위험이 있었다. 그 생명은 도영이가 돌보던 유기묘 로키. 집 안으로 진입이 불가한 상황에서 로키를 만날 수 있게 해준 건 도영이가 '토르의 망치'라고 이름붙인 바로 그 물건이었다. 그러고보니 제목이 핵심 소재들을 잘 담았네. 도영이를 만나기 전 이미 길에서 죽었을 수도 있었던 생명이지만 이 긴박한 상황에서 발견한 그 생명은 얼마나 큰 안도와 기쁨을 주던지.... 아 근데 집은 어떻게 복구한담 한숨이 나오는 나. 하지만 로키를 구하는 결말은 다른 희망도 전제한다. 저소득층이라고 어두움을 보여주지 않는 작품.

성동혁 작가님은 작가의 말에서 희귀 난치병으로 어린시절부터 고생해온 본인의 아픔을 얘기했다. 그런데 작품은 자신의 입장이 아닌 누나의 입장을 그렸다. 내 병원생활 때문에 혼자였을 누나. [나는 토요일까지 달릴 거예요]는 그렇게 쓰여진 작품이다.

병원에 있는 동생을 주중에는 엄마가 돌보고 주말에 아빠와 교대한다. '나'에겐 토요일이 엄마를 만나는 날이다. 아이는 외롭지만 동생이 어리고 아프니 어쩔 수 없다는 걸 이해한다. 외로움은 공원의 고양이인 '꽃씨'와 나누며 아이는 달리기를 한다. 계주선수도 된다. 마지막 주자로 승리를 이끈다. 그 순간에도 혼자다. 하지만 작가님의 누나는 잘 자라 좋은 어른이 되었을 것이다. 이 아이도 그럴 것이라 믿게 해주는 작품이다.

안미란 작가님의 [어디서 온 누구냐고]는 난민의 이야기다. 다루기 어려운 주제이기도 하고 많은 작가님들이 도전한 주제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비유나 판타지가 들어가지 않은 생활동화로, 그 성격에 맞게 매우 현실적인 상황과 인물들이 그려진다. 나스린의 가족은 6년째 난민 허가를 바라며 불안한 생활을 이어가지만 그사이 나스린은 한국 아이가 다 됐다. 아이돌 그룹 '보라비'의 열성팬이라는 것도. 그들의 콘서트에 가고 싶어 고대하는 것도. 결국 끝까지 난민 인정을 받지 못한다. 이들과 함께 하면 안되는 것일까?

표제작인 정주영 작가님의 [점프 점프 하늘 킥]은 인물과 소재가 참 멋지다. 파쿠르라는 다소 생소한 스포츠를 접할 수 있어 흥미로웠다. 근데 아이들의 감정을 우정 차원에서 다루면 안되는 거였나? 사랑의 방향이 동성애로든 이성애로든 어떤 방향으로 뻗어갈수도 있고 모두다 괜찮다고 말씀하고 싶은 것으로 이해하면 될까? 편견 주제의 엔솔로지니까 성소수자까지 나가야 격이 맞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다만 초등용이라 감정면에서 너무 빠른 느낌이... 이건 내가 너무 뭘 몰라서일 수도 있다.

황명숙 작가님의 [단우의 빛]에 나오는 세 친구는 모두 엄마가 외국인인 다문화가정 아이들이다. 단우는 캄보디아, 윤은 몽골, 한별이는 필리핀. 엄마 문화를 경험하고 오겠다며 몽골로 떠난 윤과 필리핀에서 1년 반 유학(?)을 하고 돌아온 한별이가 나름의 자존감을 갖고 성장하는 데 비해 단우는 스스로를 초라하게 느낀다. 하지만 제목이 암시하듯이 단우 또한 빛을 되찾으려 한걸음 나아가려 하고, 독자들은 응원하게 된다.

앞으로는 다문화라는 구분의 언어가 굳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많은 국적의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야만 하지 않을까. 나 자신도 익숙한 것에 기대는 성향이 너무 커서 좀 낯설어할지도 모르겠지만 결국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다름과 마주하고 나의 부족함을 느낀다. 그리고서 그 부족함을 잘 채우지 못하는게 문제지만... 아이들도 책을 읽으며 자신을 좀더 열었으면 좋겠다. 다른 것을 받아들이면 좋겠다. 이 책을 만든 이들의 바람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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