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학교 연구부장인 언니가 요즘 연수를 받고 와서 머리 복잡해 한다. 그 중의 한 내용이 4차 산업 시대의 도래에 대한 것이다. 이로 인해 현재의 직업 중 상당수가 없어질 것이며 현시대에 중시하는 역량들이 그시대에는 쓸모없는 것들이 될 것이라 한다. 기계와 로봇이 그 기능을 대신할 것이기 때문이다.

학교교육이라는 게 학생들이 장래 살아갈 역량을 키우는 측면이 강하므로 이런 논의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본다. 문제는 정확한 전망이다. 미래를 정확히 전망해야 필요한 교육의 내용이 나올 것이다. 그런데 이게 참 어렵다. 어떤 이는 과학기술 발전의 장밋빛 꿈을 가지고 공상과학소설을 쓰는가 하면 어떤 이는 과도한 개발로 이제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인류가 가야할 어둡고 괴로운 길에 대해 얘기한다. 통역기가 발전해 외국어능력 같은 것도 필요없고 각종기능은 로봇이 대신하니 창의력, 상상력, 협업능력 등을 키우는 교육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도 보았다.















이런 시대에 나온 이 동화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때는 2055년. 승모네 가족에게 특별한 일이 닥친다. 99년에 냉동인간상태에 들어간 증조할아버지가 깨어나는 날이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깨어나 새로운 세상과 맞닥뜨리며 겪는 에피소드들이 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 내용은 '과학상상화대회' 그림 내용의 총집합이라 하면 되겠다.
- 아빠의 직장은 달기지. 형은 우주항해사 훈련중
- 식사는 우주식(튜브식) 아니면 분자요리(식재료 없이 맛과 영양만 살린 요리)
- 가족도 각자의 생활, 필요한 경우에는 홀로그램으로 집합, 함께 식사를 하거나 스킨십을 하거나 하진 않음
- 자동변기가 알아서 장운동을 시키고 변을 뽑아 처리함. 똥 눈다는 개념이 없음(이것을 할아버지가 제일 못견뎌함)
- 잠은 수면기에 들어가 시간조절하면 딱 시간에 맞추어 숙면하게 해 줌
- 옷은 첨단 센서를 갖춘 위생복으로 자동 소독과 감염예방이 됨
- 하늘을 나는 무인자동차
- 출석을 하는 학교는 없음(이 대목 애들이 좋아하겠다)
- 노동에 해당되는 모든 일들을 곳곳에서 로봇이 하고 있음
- 모든 것은 첨단화 되어 있어 언제나 최적의 상태를 자동적으로 유지하도록 시스템화 되어 있음

승모는 이러한 세상에 할아버지를 안내하고 적응시키는 임무를 맡는다. 할아버지는 모든게 인공적이고 사람의 정이 의미없는 이 세상이 참 마음에 들지 않는데.... 여러 곳을 안내받던 할아버지의 눈에 띈 곳이 있다. 승모네가 사는 과학도시 바깥에는 과학화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자연지대가 있었던 것이다. 할아버지의 고집으로 승모와 할아버지는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디지털 세상을 맹신하고 자연지대를 경멸하던 승모의 생각에도 약간의 틈이 생기기 시작한다.

결국 할아버지는 과학도시의 시민칩을 사양하고 자연지대로 가는 선택을 하며, 가족들도 모두 그 선택을 존중한다. 이렇게 작가는 미래 디지털세상의 장밋빛 꿈에 일침을 가하며 경고를 보낸다.













생각해보니 이러한 주제의식은 이미 오래전에 나왔었다. 권정생 선생님의 마지막 작품 <랑랑별 때때롱>이다. 이 작품은 랑랑별에 사는 때때롱 가족과 지구의 새달이 가족이 교신을 하게 되면서 시작한다. 나중에는 새달이 일행이 랑랑별로 가게 되는데 그 별의 모습은.... 자연이 맑고 아름답던 우리 부모님 세대의 지구 모습과 거의 비슷했다. 그러나 때때롱 할머니의 수수께끼 같은 말, '500년 동안....'
일행은 할머니가 주신 도깨비옷을 입고 500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하는데, 놀랍게도 랑랑별의 그 과거는 위의 책 <디지털보이>가 보여주는 지구의 미래였던 것이다. 인간성이 상실되고 과학기술만이 발전된.... 500년이 걸려 랑랑별이 간신히 회복시킨 세상은 바로 우리가 어린시절 살던 그 세상이었다. 이 결말을 읽었을 때 결이 고운 권정생 님의 문장 속에 숨겨진 힘을 느끼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다시 4차 산업과 교육으로 돌아와서, 우리는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지금 가르치고 있는 것들은 대부분 휴지조각이 될 뿐이니, SW교육에 매진해야 하는가? 자동통역기와 번역기가 완벽한 작업을 해줄텐데 영어단어 따위를 뭐하러 외우냐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는가? 인간성 상실에 대비해서 인성교육과 더불어사는 능력을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은 이 맥락에서 가능한 얘긴가?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를 갖는 나는 이런 논의 자체가 불편한 게 사실이다. 내가 랑랑별이 500년 걸려 회복한 세상에 갈채를 보내는 것은 내가 디지털 세상에서 뒤떨어질 게 뻔해서인지도 모른다. 이런 내가 미래의 디지털보이들을 가르친다? 말이 안되는 일이다. 그럼 나는 이제 손을 놓는게 맞는 건가?

진정 그러하다면 놓아야겠지. 그러나 놓을 때 놓더라고 묻고 싶고 듣고 싶다. "이미 브레이크 밟기엔 늦었으니 우리는 조만간 저기에 처박히게 될 겁니다" 라는 미래전망 말고, 진정 우리가 추구하는 미래는 어떤 모습인지, 거기에서 교육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듣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투명한 아이 어린이 나무생각 문학숲 2
안미란 지음, 김현주 그림 / 어린이나무생각 / 201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투명한 아이라니?

건이네 낡고 작은 건물에는 건이아빠가 운영하는 신문보급소와 살림집이 있고 월세를 주는 작은 공간이 둘 있다. 구석방에는 외국인근로자 아주머니가 어린 딸과 함께 살고, 신문보급소 옆에는 동자귀신을 모신다는 할머니가 손녀딸 보람이를 데리고 들어왔다.

어린 딸 이름은 눈이다. 한국에 와서 난생처음 눈을 보고 딸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이 아이가 바로 '투명한 아이'다. 신정 연휴를 하루 앞둔 어느 늦은 시간 어린이집 원장님이 엄마한테 연락이 안된다며 급히 건이네한테 부탁하고 떠난 아이. 엄마는 밤이 지나도 오지 않는다. 백방으로 엄마의 행방을 찾던 가족들은 알게 된다. 눈이는 실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아이라는 것을. 떠나버린 아빠. 불법체류자인 엄마 밑에서 출생신고도 되어있지 않은 무국적 아이라는 것을. 그래서 아이는 '투명한 아이'다.

작가는 이 아이를 통해 소외된 계층도 함께 누려야 하는 인권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나와 너, 편가르기보다 지구촌이라는 커다란 울타리 안에 함께 사는 이웃, 인간으로서의 존엄권과 행복추구권, 평등권을 가진 이웃으로서 투명한 아이 눈을 보듬어 안아 주시면 좋겠어요. 많은 사람들이 손에 손을 잡고 국적없는 아이 눈의 가족이 되어주기 바랍니다."(159쪽. 작가의 말)

이렇게 제목에 부각된 대상은 다문화가정이지만 작가가 마음에 품고 다루는 대상은 하나 더 있다. 장애인이다.
건이네 4식구 중 한 명은 고모인데, 소아마비로 인한 지체장애이고 다리를 쓰지 못해 휠체어로 이동해야 한다. 고모는 오빠인 건이아빠의 신문보급소에서 광고지를 끼우는 일 등을 도우며 함께 살고 있다.
(여기에서 전혀 필요없는 감정이입. 이런 시누이랑 사는 건이엄마는 얼마나 힘들까? 예민할 때는 건드리지 말아야 하고, 말도 조심해야 하고, 밥도 차려줘야 하고... 가족끼리 단란한 시간을 가질래도 눈치봐야 하고... 참 무던하다 무던해... 나같으면 스트레스 받아서 못 살텐데.... 이런 쓸데없는 생각. 나는 이게 문제다.)
세상에 나갈 일이 적은 고모가 그나마 조금의 발걸음으로 나가서 겪은 일들은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그대로 보여준다.

외로운 이들은 자기들끼리 보듬는 법, 고모는 눈이를 입양해서 자기가 키우겠다고 해서 가족들을 놀라게 한다. 다행히 눈이 엄마를 다시 찾게 되어 이 얘기는 없던 걸로 되었지만.... 눈이가 엄마랑 떠날 때, 이 따뜻한 가족들은 한가지씩 선물을 한다. 고모는 깨끗하게 머리를 빗기고 예쁜 옷을 입힌다. 엄마는 보건소에 데려가 필요한 예방접종을 한 아기수첩을, 아빠는 색연필과 크레파스를... 마지막으로 건이와 보람이는 '우주 시민증'을 만들어준다. 작가의 메시지가 잘 드러난 결말이다. 시민증의 문구. "당신은 우주 시민으로서 모든 권리를 누릴 수 있습니다. 푸키로 별 뿐 아니라 지구 넘어 어떤 세상도 상관없어요."^^

고모도 시민증 발급을 부탁하는 장면이 재밌지만 애틋하다. 고모는 용기를 내서 더 배우고 더 다녀보려고 한다. 아까 했던 저런 생각에 미안해진 나는 고모를 힘껏 응원한다. 자기것을 조금씩이라도 양보해야 모두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온다. 난 뭘 양보할 수 있지....? 라는 질문이 체에 거른 듯이 마지막으로 남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 읽은 동화 두 권이 우연히 비슷한 소재를 담고 있었다. 아동학대와 방임, 그리고 아이들이 보육원에 가는 상황까지....














<해피버스데이 투 미 / 신운선 / 문학과지성사>

이 책의 화자는 아이다. 남매 중에 누나다. 아빠는 집을 나갔고 엄마는 남매를 돌보지 않는다. 며칠씩 안들어오기도 하고 들어와도 잠만 잔다. 늘 술에 절어 있다. 보다못한 동네 주민들의 신고로 복지사들이 방문을 했고, 아이들을 일시보호소로 보냈다. 기간 중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다음 코스는 보육원이다. 













<우주비행사 동주 / 김소연 / 별숲>

이 책의 화자는 복지센터에 근무하는 미술치료 선생님이다. 선생님은 동주라는 아이의 치료와 상담을 맡게 되는데 엄마는 이혼과 함께 떠났고, 아빠는 몇년 키우다 아이를 할머니에게 맡겼으며, 몇 번 생활비를 보내다 그마저도 끊고 잠적했다. 이 할머니도 위 책의 엄마처럼 알콜중독이다. 더 심한 것은 술을 마시면 울분이 폭발해 아이를 개 패듯 팬다. 이 상황을 알게된 상담사 선생님들은 아이의 보육원 행을 추진한다.


두 작품 모두에서 아이들의 공통된 반응은 보육원 행에 극렬히 저항한다는 것이다. 비록 돌보지는 못해도 엄마 아빠가 있는데, 할머니도 있는데.... 아이들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것을 한편으로는 알면서도 강력히 부인하고 싶어한다. 이 아이들에게 보육원이란 세상의 끝에 이르러서야 가는 곳이다. 즉, 세상 모두가 나를 버렸을 때 말이다. 아이들은 그 누구라도 한명은 나를 버리지 않았다고 믿으려 한다. 동주는 자신을 패는 할머니가 바로 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 그냥 아빠가 오기만을 기다렸어요. 나는 그 때 세상에 아니, 우주에 나 혼자 남은 줄 알았어요. 정말 무서웠어요. 할머니가 날 때리는 거 참을 수 있어요. 하지만 날 버리는 건 참을 수 없어요."


위 책의 누나 유진이는 몇 년 전에 갔던 할머니댁을 떠올린다. 할머니가 있는데 왜 보육원에 가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유진이는 하루의 탈출을 감행해 시골에 있는 할머니집까지 간다. 하지만 그 집에는 다른 가족이 살고 있다. 할머니는 돌아가셨던 것이다.....ㅠㅠ


이리하여 두 동화 모두 주인공들이 보육원에 가게 되는 상황으로 이야기가 끝난다. 누군가가(예를 들면 상담사 선생님이라든지, 할머니 집에 새로 이사온 가족이라든지) 그들의 상황을 딱하게 여겨 대신 부모가 되어준다든지, 그런 건 없다. 그들은 주어진 현실에 직면해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무진장 딱하고 안타깝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무식한 말이지만, 죽으라는 법은 없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뭔가 붙잡을 것, 희망을 가질 것이 있을 것이다. 다시 찾아올 엄마 혹은 아빠일 수도 있고 스스로에게서 보이는 가능성일 수도 있고 함께 삶을 나누는 이들의 작은 사랑일 수도 있다.


두번째 책의 상담 선생님은 동주와의 관계에서 감정에 빠지지 않으려 애를 쓴다. 이 적절함이 그를 프로로 보이게 했다. 이 모습에 비추어 나를 볼 때, 나는 교사 초년생일 때 너무 감정 과잉이었다. 도와주고 싶어 눈물 가득한 눈으로 동동거렸으나 결국 아무 도움도 되지 못했다. 지금의 나는 감정부족이다. 선을 정확히 긋고 사적 영역 안에는 절대 들여놓지 않는다. 그게 피차를 위해서 좋은 일이라고 생각을 한다. 둘 중에 하나 선택을 하라면 난 초보일 때의 감정과잉보다는 지금을 선택하겠으나, 그게 꼭 좋지만도 않다. 감정이 빠진 껍데기에는 진정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 둘의 조화가 잘 되어야 진정한 선생이다.


동화의 소재는 시대상을 반영한다. 내가 하루에 잡은 동화 두 편이 너무 흡사한 이야기였다는 것은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올해들어 접한 가슴아픈 이야기만도 한 둘이 아니었다. 현실은 동화보다 더 참혹한 경우가 많다. 그 아이들이 보육원이든 어디든 극한 상황만은 벗어났으면 좋았을 것을... 그랬다면 어떻게든 꿈을 꿀 수는 있었을 것을.... 이 두 권의 책은 살아가는 이유나 힘을 어떻게든 찾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응원한다. 건강한 사회에서는 이것이 충분히 가능할 테고, 그것이 우리가 건강한 사회를 바라고 노력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1 사계절 1318 문고 104
이금이 지음 / 사계절 / 201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너도 하늘말나리야, 밤티마을 큰돌이네 집 등의 동화와, 유진과 유진, 소희의 방 등의 청소년 소설로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한 이금이 작가가 이번엔 새로운 화제작을 펴냈다. 역사소설이다.

작가에 대한 신뢰가 있으니 책을 구입해서 읽었다. 300쪽 정도의 책 두 권으로 되어있는데 그 두 권에 담기 힘겨울 정도로 파란만장한 두 여인의 인생이 펼쳐진다.

채령은 일제강점기에 부와 권력을 손에 쥔 친일파 자작의 딸. 수남은 그녀의 생일선물로 팔려온 몸종. 수남이 팔려올 때 했던 말이 이 책의 제목이 되었다. "거기, 내가 가면 안돼요?"
이 말은 원래 가기로 되어있던 아이가 가기 싫다고 울자, 수남이 자진해서 나서며 한 말이다. 일곱 살 때 했던 이 말이 수남의 인생을 대표하는 말이 되었다. 이후 수남은 수많은 '가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렸다. 그 도전은 그녀에게 주로 고난을, 때로는 행운을, 그리고 행복과 불행을 가져다 주었다. 그녀는 한몸에 현대사의 고난과 아픔을(그리고 약간의 희망도) 짊어진 인물이었다.

채령은 부족함 없이 자란 철부지 아가씨였으나 식민지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면서 자신의 이름을 수남에게 대신 넘기고 수남 못지 않은 고난의 삶을 살아가야 했다. 바뀌어진 역할 때문에 꼬여버린 이들 인생의 진실은, 90이 넘은 나이로 숨을 거두기 직전, 한 방송작가 한 명에게만 간신히 전해졌다.

이 책이 나온지 한달 남짓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작가의 작품 중 판매량으로 수위에 올라있다. 대박이 날 모양이다. 이왕 대박이 난 김에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져도 참 재미있게 볼 수 있겠다. 책으로는 두 권이지만 드라마로 10부작도 가능할 것 같은 스토리다.

경성, 일본, 미국, 하얼빈, 중국 임시정부 등을 오가며 펼쳐지는 이야기이니 작가의 고증과 취재가 얼마나 어려웠을지 짐작이 된다. 작가의 도전은 꽤 의미있는 성공을 거둔 것 같다.

역할과 신분이 뒤바뀌어 살게 되는 운명으로 두 여인 모두 고통의 세월을 겪지만, 결국 자작의 딸이 전에 가졌던 것들을 (소유 면에서는) 거의 되찾고 말년까지 간판과 명예도 가지고 사는 모습은 청산하지 못한 과거가 지금까지 이어지는 우리의 현대사를 대변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그녀들이 좀 편해지고 행복해질 때 독자도 편안해지고, 다시 소용돌이 속에 던져질 때는 조여드는 마음으로 두 여인을 다 응원하게 되었다. 소유가 곧 행복을 말해주는 것은 아닐 수도 있으니. 작가가 창조한 두 인물은 참 생생하게도 굴곡의 역사를 독자들에게 온 몸으로 보여주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 여름의 덤더디 시공주니어 문고 2단계 80
이향안 지음, 김동성 그림 / 시공주니어 / 201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6.25전쟁을 다룬 책들이 꽤 있는데 그중 읽어주기에 아주 좋을 것 같은 책을 이번에 발견했다. 그 여름의 덤더디라는 책이다. 그림책은 아니어서 한번에 읽어줄 분량은 아니지만 며칠에 걸쳐 나눠서 읽어주면 좋을 것 같다.

작가는 전쟁을 겪은 세대는 아니다. 나또한 그렇다. 전쟁이 일어난지 66년이 지났으니 이제 전쟁을 기억하는 세대는 머지않아 하나둘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런데 전쟁의 위험도 그만큼 사라지고 있나? 이땅에 평화가 그만큼 찾아왔나? 그렇다고 말할수 없을 것이다. 작가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이렇게 동화로 썼다. 귀엽고 착하던 어린시절의 아버지와 그 가족의 소박한 행복 따위는 전쟁 앞에서 얇은 종이조각보다도 더 쉽게 짓밟혔다.

여기에 애절함을 더하는 존재가 있으니 바로 '덤더디'다. 이건 가족이 키우던 늙은 소의 이름이다. 얼마전 개가 나오는 동화의 리뷰를 쓴 적이 있는데, 소의 충직함과 교감도 그에 못지 않은 것 같다. 몸만 피하기에도 힘든 피난길에 늙은 소를 꼭 데려가는 가족들, 노구를 이끌고 가족의 옆을 지키며 유산한 형수까지 수레에 싣고 마지막 힘까지 다하던 덤더디.

전쟁은 그 덤더디와 가장 잔인한 이별을 하게 만들었다. 덤더디는 가족을 원망할까? 죽어서도 가족을 도울 수 있어 다행이라고 할까? 어떤 쪽이든 덤더디는 가족의 가슴에 총알처럼 박힌 아픈 전쟁의 기억이 되었을 것이다.

무기를 내려놓고 소년과 덤더디가 얼굴을 부비며 살 수 있는 날을 그려보는 것. 아이들과 그런 생각을 해보는 건 너무 꿈같은 일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