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주인공은 모두 길을 떠날까? - 옛이야기 속 집 떠난 소년들이 말하는 나 자신으로 살기 아우름 3
신동흔 지음 / 샘터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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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를 즐겨보던 내가 옛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김환희 님의 '옛이야기와 어린이책'을 읽고부터였다. 이 책에는 여러가지 흥미로운 내용이 있는데 나에게 가장 강렬히 다가온 것은 옛이야기의 심리적 가치에 관한 내용이다. 구전된 이야기들의 각편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화소들의 심층에는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옛사람들의 지혜가 들어있으며 놀라운 심리적 가치로 아이들의 내면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옛이야기를 재화할 때는 각각의 상징성들을 훼손하지 않도록 무척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이어서 읽은 책은 아주 재미있었다. <신데렐라 천년의 여행>이라는 책이었는데 세계 곳곳 전혀 무관하게 떨어진 지역에서도 화소가 유사한 이야기들이 전승되어 왔다는 것을 신데렐라를 예로 들어 알려주었다. 또한 그 화소들이 잔인하거나 어린 아이들에게 교육적이지 못한 것으로 보일지라도 아이들의 통과의례에 꼭 필요한 장치이니 그대로 의미가 있다는 이야기들이 내겐 매우 인상적이었다.

세번째로 읽은 책이 이 책의 저자인 신동흔 교수의 <삶을 일깨우는 옛이야기의 힘>이었다. 위의 책들과 일맥상통하는 주장으로, 특히 우리 옛이야기에서 주인공들의 여정이 우리 심리에 주는 힘이 무척 크다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었다.

얼마전 인터넷서점을 어슬렁거리다 이분의 책이 또 나온 것을 알게 되었다. 나온지 2년이 되어가는데 이제야 발견한 것이다. 이분의 책은 구수한 육성으로 듣는 듯하다. 친근하고 쉽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왜 주인공들은 모두 길을 떠날까?>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는 많은 옛이야기들을 '길떠남'의 관점에서 조명했다. 저자의 시각이 매우 새로우면서도 이야기와 삶에 대한 통찰이 탁월해서 여러번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가믄장아기> 이야기에서 두 언니는 결국 지네와 버섯이 되는데 이를 저자는 이렇게 해석한다. "나이가 들도록 부모의 품에 머물러 거기 의존하며 살아가는 삶이란 온전한 사람의 삶이라 할 수 없다. 그건 차라리 지네나 버섯의 삶에 가깝다." (본문61쪽)
또한 형제들과 부모의 간을 빼먹은 <여우누이>를 보고 저자는 부모의 품이 완전한 독이 된 경우라고 해석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과보호 속에서, 어떤 잘못도 다 용인되는 안온한 품 속에서 원하는 바를 다 얻으며 자란 아이들이 바로 여우 딸이 되고 여우 아들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괴물이 된 아이는 쉽사리 돌이켜지지 않는다. 바깥에 나가면 아무것도 못하니 누가 그를 받아주겠나. 결국 부모형제가 가진 걸 자꾸 빼먹으려 든다는 것이다. 학급에서 만났던 몇몇 아이들이 떠오르면서 걱정스러웠다. 지금은 잘 지내고 있으려나.
<악어 아들>은 잘못된 사랑의 비극을 말해준다. 잘못된 사랑이라니. 부모는 악어아들이 커져서 떠난 후에도 매일 불러다 먹이를 주었을 뿐인데... 그러나 자식을 떠나보냈으면 의존하지 않고 홀로 서게 해야 한다. 나아갈 때 나아가지 못하고 머물러 안주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를 알려주는 이야기다.

익히 아는 <효녀심청>이야기도 저자는 길떠남의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했다. 길떠남으로서 청 뿐 아니라 심봉사도 행복을 얻게 되었다. 무거운 책임감만으로 자리를 지켰으면 끝내 얻을 수 없었을 행복을.

바이칼 호수에서 흘러나오는 앙가라강의 전설을 보면 부모를 떠나는 앙가라는 무참한 비극을 맞는다. 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야 한다"고 말한다. 자식은 때가 되면 놔주는 것이 답이다. 바꾸어 말하면, 자식은 때가 되면 부모 품을 떠나 자기 삶을 사는 것이 답이다. 성경에도 비슷한 말이 나온다.

이 책을 쭉 읽다보니 아주 괴상하고 엉뚱하며 대책없는 우리 아들이 실제로는 이야기 속의 트릭스터와 같은 존재였던가 라는 생각이 든다.ㅎㅎㅎ 중딩 때부터 우리 아들의 입에 붙어 있던 말 "내가 알아서 할게" 지가 알아서 깨지고, 지가 알아서 실패하고, 지가 알아서 실수하고? 일찌감치 엄마손을 거부한 아들은 지금도 민담의 주인공들처럼 때로는 해가 중천에 뜨도록 자빠져 자고, 때로는 벌떡 일어나 좌충우돌 하는데 그 와중에 이 엄마로선 상상도 못해본 길에 발을 들여놓기도 한다. 더 살아보면 알려나? 내 뜻은 아니었지만 내 품에서 일찍 튀어나간(길을 떠난) 것이 천만다행이었다는 것을?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길떠난 주인공들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거나 어딘가에 정착하게 된다. 떠남이 있으면 머무름도 있는 것이 인생사의 순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차피 돌아올 것을 굳이 힘들여 떠날 필요가 없었던 것 아닌가? 그렇지는 않다. 같은 곳으로 돌아왔어도 돌아온 그는 이미 떠날 때의 그가 아니다. 세상 많은 것을 품게 된 그는 이제 세상의 주인공으로 살아갈 존재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길떠남의 원리를 제시하는데 거기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
- 혼자 떠난다 혼자 떠나는 여행이야말로 참여행이다 혼자 떠나야만 자기 뜻대로 길을 나아가 자기가 뜻한 바를 자유롭게 행할 수 있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 망설이거나 몸을 사리지 말고 일단 부딪친다. 이런 캐릭터를 저자는 민담형 인간이라고 명하면서 반대의 캐릭터를 소설형 인간이라고 했다. 머리속으로는 만리장성도 쌓지만 생각만 많아 선뜻 움직이지는 못하는 - 바로 나같은 사람이다. 길을 떠나려면 이래서는 안된다.
- 창의적 발상으로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고 그것에 도전한다.

길떠남. 낯선 두려움을 주는 이 단어. 이 말은 비단 여행만을 일컫는 말은 아닐 터. 중년의 나에게도 길떠남의 기회는 아직 남아있는 것일까? 갈무리가 더 적절할 이 나이에도 나는 떠남을 생각해야 되는 것일까?

한편, 투박하고 거칠어보이는 옛이야기에 이렇게 깊은 인생의 진리들이 보석처럼 숨어있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큰 재미요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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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놀이 아이스토리빌 26
원유순 지음, 이예숙 그림 / 밝은미래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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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원유순 작가님의 강의를 들으며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귀족놀이책을 이제야 읽었다. 우리 사회는 보이지 않는 계급사회가 되었으며, 그 격차는 갈수록 심해지고 장벽은 더욱 높아진다는 이야기들을 한다. 그런데 그 현상을 동화에서 어떻게 다루었으며 아이들 사이에서는 어떤 문제로 이 현상이 나타날까 궁금했다.

 

주변의 재개발로 학생수가 확 줄어든 양지초등학교에 아이들이 줄줄이 전학오기 시작한다. 입주를 시작한 리버뷰팰리스라는 고급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의 태도는 완전 뜨내기들이다. 원래 입학하기로 되어 있었던 팰리스초등학교의 개교가 늦어지면서 임시로 몇 달 있게 된 학교이기 때문이다. 담임의 입장으로 생각해보니 너무나 싫은 상황이다. 내자식들이라 생각하고 가르치려니 어차피 금방 떠날 것이며 아이들 자체도 전혀 뭘 배우려는 자세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치 우리 아이들을 키우는 집에 대하기 껄끄러운 어떤 친척(?) 정도가 맡기고 간 아이들 같은 느낌? 어쨌든 내 아이들처럼 대하기는 마땅치 않은 아이들....

 

이 아이들의 특징.

1. 바쁘다. 학교보다도 그 이후의 일정이 더 바쁘다. 그래서 쉬는 시간에도 항상 뭔가를 들여다본다. 레벨시험이나 능력시험이 줄줄이 있어 늘 쫓기는 모습으로 전전긍긍한다.

2. 엄청난 선행을 한다. 6학년 담임을 하는 아는 선생님이 얼마전 상담을 하셨는데 고1 수학 선행을 한다는 얘길 듣고 헐~ 하셨다고 한다. 이런 식이다. 그 외 초등에서 배우지 않는 과목들도 미리 배운다. 2외국어 등등.

3. 수업시간을 의미없게 여긴다. 다 배운 것이고 자신의 수준보다 낮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4. 자취활동 능력이 전혀 없다. 대표적인 예로 청소를 못한다. 공평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하신 선생님이 억지로 청소를 배정하시자 청소도우미 아줌마들이 일당을 받고 출동한다.(난 아직 이런 사례까지는 듣지 못했는데, 사실일까? 슬프다 못해 걱정스러운 현실...)

 

이 아이들의 생활은 걱정스러운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얼마 전 신경학(뇌과학)연수에서 들었던 우려되는 사례들이 여기에 다 모여 있었다. 부모들은 아이들의 뇌를 일찍부터 발달시켜 사회의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게 하려는 것이지만, 위에 열거한 행위들은 모두 뇌에 해롭다. 수면부족은 성장기의 뇌에 치명적인 것이고, 발달단계에 맞지 않은 선행 또한 뇌에 독약인 것이며, 학습동기를 떨어뜨리는 것이야말로 배움에 가장 큰 방해가 된다. 그리고 자기가 먹고 입는 것들을 스스로 하고 스스로 치우고 정리할 수 있는 자취능력을 키우는 것은 돈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인간의 능력을 완성해 나가는 필수 단계 중 하나에 위치하는 것이다. 강남의 매우 유명한 학교에 근무하시는 선배님 한 분은 빨리 그 학교를 떠나고 싶어하신다. 교사의 가르침에 의미를 찾기 힘들 정도로 그 아이들은 이미 빽빽한 사교육의 시스템 안에 들어와 있다. 그런 아이들이 운동화 끈을 매지 못하며 자신들이 먹은 급식의 뒷정리를 못하고 가위질이 서툴러 어버이날 카드를 만들지 못하면서, 돈주고 사면 될 걸 이런 걸 왜 만드냐고 한다.

 

양지아파트 아이들은 이 팰리스 아이들의 행태가 꼴사납지만, 개중에는 이 아이들을 선망하고 따라하려는 아이들도 생겨난다. 특히 이 아이들이 입고 다니는 옷이나 갖고 다니는 물건의 명품 브랜드에 기가 죽는 아이들. 결국 반 전체가 그 유행을 따라가게 되는데 거기에는 짝퉁의 힘이 컸다는 씁쓸한 현실.

 

이야기의 후반부에는 오만하던 팰리스 아이들의 아픔도 살며시 보여준다. 특히 늘 엎드려있던 이빨이 축구에서 의외의 활약을 보여주고 나서 눈물을 훔쳐내는 모습이 찡하다. 다섯 살부터 차붐축구교실에 다녔는데 실력이 너무 뛰어나서그만두어야 했다는 사연. 왜냐하면? 축구 같은 건 그저 취미나 교양으로만 해야 하는 것이라서....

 

가장 교만하던 갈색머리의 아픔도 살짝 보이는 듯 하다가... 아이들은 예상보다 빠른 이별을 맞는다. 양지초 아이들과 같이 섞여서 공부시킬 수 없다는 팰리스 엄마들의 등쌀에 학교가 서둘러 개교를 한 것이다. 아이들은 떠나고, 양지아파트도 도색을 새로 했다. 그리고는 이름도 새로 지어 새겼다. “선샤인캐슬웃지못할 대목이다.

 

원유순 작가님은 기대대로 이 계급사회에서 아이들의 모습을 잘 표현해 내셨다. 높아진 계급의 벽 사이로도 아이들은 우정의 싹을 살며시 보여주기도 했는데, 결국 그것이 꽃피우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었다. 발달단계에 따라 적절한 쉼과 놀이 속에서 건강하게 자라는 아이들은 이제 많지 않고, 계급에 따라 그런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이 사회의 지도층이 될 확률이 매우 높으니 미래를 어떻게 보아야할지 솔직히 모르겠다. 귀족 아이들뿐만이 아니다. 짝퉁을 사서라도 그 아이들과 맞춰가려는 엄마들의 심리는 그 자녀들을 또 비슷한 시스템 안에 밀어넣는다.

 

난 이 사회의 행복의 정의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전적인 의미가 아니니 누구 한 사람이 바꾼다고 될 일은 아닐 것이다. 행복의 다양성이 있을 때 계급의 벽도 슬며시 허물어지게 될 것이다. 그런 관점으로 아이들을 보면 행복할 이유가 없는 아이들은 아무도 없는데, 오늘도 엄마들은 조바심을 내며 단원평가 시험지 며칠 늦게 나눠주면 아이들을 시켜 독촉을 해댄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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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삶에서 나를 만나다 - 잃어버린 나를 다시 찾고 서로 위로하는 수업 성찰
김태현 지음 / 에듀니티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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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첫 책, <교사, 수업에서 나를 만나다>를 참 좋게 읽었다. 근데 이런.... 내용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래도 내 맘에 지침이 되던 딱 한마디는 남아있다. 좋은 수업의 최우선조건은 '관계'라는 말이다. 관계가 어그러진 학급에서 좋은 수업은 거의 가능하지 않다.

그 책에서 내가 느낀 저자의 이미지는 마치 스타강사 같은 것이었다. 거의 연예인급의. 그러니 내가 배울 것은 있어도 함께 느끼고 공감할 것이 있으리라 생각하진 않았다. 그런데 이번 책을 읽고는 상당히 놀랐다. 마치 나의 고백 같은 자기고백이 거기에 있었다. 흔한 말로 "내가 쓴 글인 줄 알았어요."와 같은.(나는 이만한 문장력이 없으니 그건 사실 말이 안되긴 하지만 ㅋ)

수업코칭의 대가인 저자도 침체기가 있고, 애들에 대한 분노로 진정하기 힘들 때가 있으며, 내 수업에 대한 불만족이 끊임없이 찾아오고, 애쓰다가 한순간은 이래서 뭐하나 싶은 회의가 찾아오는구나. 아이들과 관계맺기의 필요성을 알면서도 막상 깊은 관계의 기회 앞에서는 거부감과 두려움이 들기도 하는구나.

그러나 별볼일 없는 나와 같은 종류의 감정을 겪는 저자에게 따라가기 어려운 능력이 있으니 그것은 성찰이다. 그리고 국어교사로서 갖고 계신 다양한 문학적 소양과 예술적 감수성을 통해 성찰해보는 교사로서의 우리 모습은 특히나 눈물겨웠고 눈물겨운만큼 위로가 되었다.

1,2장에서는 이와같이 "괜찮아요.... 누구나 그래요. 조금은 흔들려도, 쉬어도 좋아요"라는 위로가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3장으로 넘어가며 이 책의 목적이 단순한 위로에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3장에서는 교사의 신념을 다루고 있다. 수업의 기교보더 더 필요한 것은 각 수업에 맞는 주제의식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주제의식이라니, 예측하지 못했던 말이었다. 여기부터 저자가 주는 메시지는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지난 책에서 다루어준 수업의 기술보다 한 차원 높은 것이었다. 수업의 기술은 따라할 수 있고 흉내도 낼 수 있다. 하지만 주제의식은 다르다. 내 삶을 통해 내 스스로 형성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4장에서는 창조성을 다루고 있다. 난 가끔 아이디어가 좋다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대체로는 창조성에 자신이 없다. 그리고 수업에 있어서 창조성은 대부분 수업에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동기유발이나 새롭고 참신한 활동을 찾아내는데 관여한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저자의 시각은 다르다.
"수업을 재구성해야 하는 근원적인 이유는 학생들에게 참된 배움을 주고자 하는 것도 있지만, 창조자로 태어난 우리가 수업내용에서 나만의 창조적 감성을 발휘하지 않으면 스스로 갑갑함을 느낀다. 내가 만든 것이 아닌, 남의 것으로 수업을 하기 때문에 늘 수업에서 나의 이야기가 아닌 남의 이야기를 하는 기분이 들고, 이것은 수업을 하는 내적 에너지가 떨어지는 것으로 연결된다. 손수 이해하고 창조한 내용이 아니면 우리는 스스로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대목이다. 최근 10년 안에 나는 두 번의 교과전담을 했는데, 담임을 하면서 그 시절이 그리워질 때가 많다. 한 과목을 전담하다보니 깊이있는 교재연구가 가능하고, 참고서적도 많이 찾아보게 되고, 서툰 자료라도 내가 직접 만들어서 쓰다보니 위에서 말한 '내적 에너지'가 넘쳤다. 수업이 끝나면 녹초가 될지언정 수업중에는 의욕과 기쁨이 있었다. 이 기쁨을 담임을 하면서도 맛보고 싶은데 그것을 온전히 누리기에는 정신 빼앗기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 그만큼 내가 부족해서겠지만....ㅠ

이를 위하여 저자는 예술과의 만남을 강조한다. 예술작품을 깊이 만나면 내 감성이 움직이고 내 수업의 빛깔이 달라진다고 한다. 의도하지 않아도 수업에서 예술작품 특유의 감성이 생긴다는 것이다. 아~ 난 진정으로 그러고 싶다. 사치고 유희인가 싶어 미뤄뒀던 예술감상활동을 마음껏 하고 싶다. 좀 비싼 콘서트나 뮤지컬도 보고, 악기연습에 빠져도 보고, 수업과 관련없는 미술책도 보고... 영화를 보면서도 나는 우길테다. 나는 지금 수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이러한 감각을 잘 유지하고 언제나 고르게 발휘해야 전문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글을 쓰라고 교사들에게 조언한다. 내 삶의 의미있는 단상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말고 잘 붙잡아두라는 것이다. 이것은 참 유용한 조언이다. 나는 글쓰기에 별 거부감이 없지만 그에 비해 글을 쓰며 살아오진 않았다. 내가 쓴 글이란 읽은 책에 대한 리뷰가 고작인데 그나마도 많이 자주 쓰진 않는다. 최근 페북에 일기도 뭣도 아닌 글을 올리면서 남들도 보는 데다 이게 뭐하는 짓일까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당분간은 유지해야겠다. 더 좋은 공간이 생길때까지는.

마지막 5장의 키워드는 '공동체'이다. 위의 모든 것들을 나눌 수 있는 공동체는 개인이 가진 것들을 극대화할 뿐만이 아니라 그 가치를 더해준다. 나는 교직에서 공유와 소통의 중요성을 매우 크게 본다. 이중 공유에 대해서는 부끄럽지 않다. 줄 것이 변변치 못해서 그렇지 난 내게 있는 아이디어와 자료를 아낌없이 나눠준다. 나같은 사람과 동학년을 처음 해봤다는 선생님도 계셨다. 그런데 소통은 매우 제한적으로 한다. 사람을 많이 가린다.... 그래서 공동체의 위력을 체험한 경험이 많지 않다. 이 부분은 나의 숙제로 남겨둔다. (물론 나혼자 애쓴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지만.)

지금 근무하는 학교에서는 정식으로는 아니라도 수업친구라 할 만한 선배님이 두 분 계시다. 두분께 이 책을 마구 들이댔더니 두분다 첫장에서부터 공감하셨다. 언니들과 이 책을 천천히 다시 읽을거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서로 어루만지고, 그리고 수업을 얘기할거다. 우리의 삶에 잔잔한 기쁨이 아이들에게도 잔물결처럼 퍼져가기를......♡

(초판이라 그런지 의외로 오타가 많네요. 꽤 있었는데 그냥 지나가 버려서... 지금 보이는 것 적어봅니다.
61쪽 낫게-> 낮게
95쪽 몰했다-> 못했다
317쪽 2015년-> 내용상 2005년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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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20 18: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21 1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토믹스 : 지구를 지키는 소년 - 제4회 스토리킹 수상작 아토믹스 1
서진 지음, 유준재 그림 / 비룡소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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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연수에서 김남중 작가님의 '동화의 소재와 주제'라는 강의를 들었다. 그 때 나는 질문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작가님들은 자신의 작품으로 세상을 조금이라도 치유하고 변화시키고 싶어하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시대의 문제나 아픔을 동화의 소재로 삼으시는 경우가 많죠. 그렇다면 이제 원전문제를 다룬 작품도 많이 나올 때가 된 것 같은데, 작가님께서는 그럴 계획은 없으신지요?"
질문을 못했으니 이에 대한 답은 당연히 듣지 못했지만, 왠지 언젠가는 쓰실거란 기대를 혼자서 해 보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놀랍고 강력한 작품과 마주했다! 내가 고대하던.

작가의 이력이 흥미롭다. 전자공학과 박사과정을 하다 문화잡지의 편집장이 되었다가 소설가로 데뷔? 다양한 작품활동을 하다 동화로는 처음 쓴 작품 같은데 제4회 스토리킹 수상작으로 뽑혔다. 이건 어린이 심사위원들이 뽑는 것이라 일단 가독성과 흥미는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그럼 소재와 주제는 어떠할까?

여기에서 내 눈이 휘둥그래진 거다. 바로 원전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이 책은 많이 팔릴 것 같으니 파급력도 크겠다. 그럼 중요한 메시지를 설득력있고도 인상적으로 잘 전하고 있을까?

주인공 소개를 읽어보았다.
오태평 : 원전사고로 피폭되어 슈퍼파워를 얻었다. 이 능력으로 아토믹스가 되어 부산 앞바다에 나타나는 괴수를 무찌른다.
엥? 이게 뭔 황당무계한 소리야? 철없는 아이들이 읽고 "나도 피폭돼서 아토믹스 되고 싶어!" 이러면 어쩌려고?

그런 아이가 있을 확률도 0.1%는 되겠으나(앞에 몇장만 읽고 집어던진 아이ㅎㅎ)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이 책은 문제를 단순하게 다루고 있지 않다. 의문이 제기되며 궁금증이 생기고, 그것이 책에 더 몰입하게 만들고, 그러다보면 의문이 해결되기도 하고 더 깊은 의문에 봉착하기도 한다. 아무리 메시지가 좋아도 끝까지 이끌어가는 힘이 약해 중간에 책을 놓게 만들면 아무 소용이 없는데, 이 책은 주인공에게 지구영웅의 역할을 주어 괴물을 무찌르는 긴박하고 흥미진진한 장면으로 어린이 독자들을 끌어들인다.

그러나 이 책의 장점은 반전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괴물과의 싸움이 끝나며 하나씩 밝혀지는 사실들. 아토믹스인 태평이나, 그가 무찌른 바다괴물이나 모두 원전의 희생물이었을 뿐이라는 것. 이것을 감추고 원전을 계속 진행하려는 세력의 많은 속임수와 음모가 그것을 가리고 있었다는 것.

이제 태평이는 하나하나 생각하고 알아보며 진정으로 지구를 지키는 소년이 되려한다.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가 되지만 앞선 스토리킹 수상작들의 속편이 계속 나왔던 것처럼 이 작품도 그렇지 않을까 기대를 하게 된다. 작가가 무게와 재미 모두를 잃지 말고 뚝심있게 다음 이야기를 이어나가기를 응원하며 기대한다. 이 작품이 널리 읽혀 원전 문제가 수면으로 떠올라 널리 공유되고, 상식적인 토론과 대안이 많이 나오게 되었으면 좋겠다. 문학이 때로는 그런 힘도 가지기를 각별히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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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꼬마 거인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36
로알드 달 지음, 퀜틴 블레이크 그림, 지혜연 옮김 / 시공주니어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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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알드 달의 작품을 거의 다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안 읽은게 있었다. 요즘 상영되고 있는 영화 <마이 리틀 자이언트>의 원작인 <내 친구 꼬마 거인>이다.

로알드 달의 작품은 아이들과 어른들이 모두 좋아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건 그 엽기성(?)과 유머, 상상력 때문일 것 같고, 어른들이 좋아하는 건 그 엽기성에도 불구하고 결말이 갖고 있는 교훈성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옛이야기가 그렇듯이 말이다. 로알드 달의 작품의 캐릭터는 단순하고 과장되어 있으며 이중적이지 않다. 결국 약하고 선한 존재가 강하고 악한 존재를 물리치는 옛이야기의 전형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론을 공부한 바는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로알드 달의 인기는 그의 작품이 가진 심리적 치유효과와 관련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해 본다.

이 작품도 그렇다. 고아원에 살던 소녀 소피는 우연히 거인의 밤 활동을 지켜보다 거인에게 들켜 그가 사는 굴로 납치당한다. 그 마을은 거인들이 사는 곳이었는데 나머지 거인들은 모두 인간을 잡아먹는 존재들이었고 몸집도 두배 이상 더 컸다. 이 거인 선꼬거(선량한 꼬마 거인)는 거인 중에 가장 작고(그래봤자 7m가 넘지만) 사람을 먹지 않기 위해 맛이 끔찍한 킁킁오이만을 먹으며 살고 있었다.

거인의 굴에는 수많은 유리병들이 가득했는데 이것은 그가 밤에 하는 일과 관련이 있다. 바로 자는 사람들에게 꿈을 불어넣어 주는 일이다. 선꼬거는 꿈을 잡아서 유리병에 넣어두었다가 필요한 사람들의 잠자리에 찾아가 그 꿈을 넣어준다.
꿈에 대한 거인의 생각이 무척이나 시적이다.
"이 세상에 있는 꿈들은 저마다 다르게 음악 소리를 내고 있는다."
"음악이 뭔가를 전해 주는다. 메시지를 보내는 건다. 음악이 나한테 말을 거는다. 음악은 언어와 같는다."

(거인은 학교를 다니지 못해 문법이 아주 서툴다^^)

나머지 거인들은 세계를 휩쓸며 사람들을 잡아먹고 다닌다. 그것을 막기 위한 거인과 소피의 활약. 그건은 로알드 달의 상상력이 아니면 펼치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이 작품에서 로알드 달의 유머는 언어유희로 많이 나타났다. 원작으로 읽어볼 수 있는 영어실력을 갖추지 못한 것이 이럴 때 젤 아쉽다. 모름지기 인간은 배울 수 있을 때 본인의 최선을 다해 배워 두어야 하는 것을.^^;;

내일 영화를 보려고 예매했다. 상영관이 별로 없는데다 횟수도 적어 맞추기 어려웠다. 살짝 지루하다는 영화평도 보인다. 어떻게 만들었길래 이런 이야기가 지루해? 내일 내 눈으로 확인해 봐야겠다. 가을 독서축제 때 원작이 있는 영화상영이 있는데 내일 보고 결정해야겠다. 그때 되면 DVD로 나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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