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숲에서 생긴 일 환상책방 5
최은옥 지음, 성원 그림 / 해와나무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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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가 무수히 변형되고 재생산되는 것을 보면 옛이야기의 원형이 가진 강력한 힘을 느낄 수 있다. 최은옥 님의 <보름달 숲에서 생긴 일>은 현대를 사는 한 가족의 이야기인데 이들이 맞닥뜨리는 건 '구미호'이다. 즉 <여우누이>를 모티프로 하고 있다.

최은옥 님은 '저학년을 맡게 되면 많이 읽어주고 활용해야지~'라고 내가 평소에 생각하던 작가다. 그동안은 저중학년 수준의 얇은 책들을 주로 냈다. <책읽는 강아지 몽몽>은 발간된 그 해에 3학년 아이들과 돌려읽기로 읽어봤는데 반응이 아주 좋았고, 이어지는 <책으로 똥을 닦는 돼지>, <똥으로 책을 쓰는 돼지> 등 책읽기를 설득하는 책들이 전혀 설득스럽지 않고 재미나면서 유쾌해서 참 맘에 들었다. 그런데 이 책은 그동안의 쉽고 유쾌한 느낌을 완전히 벗어 버렸다. 일단 책이 두꺼워졌고(200쪽이 안되니 아주 두껍지는 않지만), 무겁고 기괴하다. 연기자들도 연기변신을 하듯, 작가들도 고정된 분위기의 작품을 계속 쓰기보다 이렇게 새로운 느낌을 주는 작품을 내놓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가족은 캠핑을 간다. 얼마나 신날까? 그런데 이 가족, 같은 곳에 함께 왔으나 제각각 홀로이다. 아들(현규)은 게임기만 하고 있고, 딸(현아)은 단어장에 코박고 있고, 엄마 아빠도 서로에게 틱틱거리기만 할 뿐이다. 캠핑까지 와서 왜? 아빠의 독단으로 오게 된 캠핑이기 때문이다. 아빠는 'SNS 친구들에게 보란듯 사진을 올리고 싶어서' 식구들을 끌고 왔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라고 분개하기엔 마음 한구석 찔리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보여주기에 맞춰 사는 삶. 부인할 수 없는 우리 시대의 모습이다.

그렇게 왔으니 가족은 사소한 일에도 불만이 터지고 고운 말이 안 나온다. 설상가상으로 밤에 비까지 내려 그들의 자동차는 길을 잃고 헤매다 어떤 곳에 다다른다. 여기서부터 옛이야기 여우누이와 현대 가족의 이야기가 숨가쁘게 엮어진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동안 독자들은 몇 번 놀라고, 몇 번 숨을 죽이는 경험을 해야 한다.

작품 초반에 보여주는 다소 극단적인 가족의 모습은 너무 쉬운 복선이라 할 수 있다. 음~ 이렇게 각각 따로 노는 불소통 가족이 있어. 이 가족이 어려움에 처해. 이걸 극복하며 가족애가 싹터. 결말은 해피엔딩이야.
이 뻔한 예측은 들어맞는다. 하지만 예측이 맞다고 해서 시시하게 느껴지는 건 아니다. 전체적 흐름은 예측이 가능하지만 구미호(들)와의 사건들은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긴박함의 연속이다. 그래서 예상한 결말에 이르렀을 때 시시함보다는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특히 옛이야기 원전에 나오는 하얀병, 파란병, 빨간병 화소를 적절히 변형한 작가의 창의성이 놀랍다.

하지만 "너희가 알고 있는 것보다 사람들이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은 훨씬 크고 강해. 가끔은 서로에게 서툴고, 가끔은 틀릴 때도 있지만 가슴 깊이 가지고 있는 마음은 모두 한결같다고!"
라든가
"알아. 예전에 우리 가족이 어땠는지. 그래서 지금부터 잘해 보려고. 엄마, 아빠, 누나가 지금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상관없어. 내가 먼저, 내가 먼저 달라질 거라고!"
와 같은 현규의 대사들은 너무 도식적이고 신파조여서 감동을 좀 반감시키는 느낌이었다. 영화로 치면 오글거리는 대사?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강하다 보니 너무 날것으로 들어간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너무 까다로운 독자인가?^^;;;

이런 점이 별 한개를 깎아먹을 정도는 아니어서, 난 여전히 이 작가의 작품에 별 다섯개를 붙인다. 재미있는 이야기꾼인 작가가 옛이야기를 들고 와 기괴하지만 매혹적인 미스터리 동화를 만들어낸 것에 큰 반가움을 표한다. 그리고 각각홀로인 현대의 가족들이 함께 해결할 문제에 봉착했을 때, 그것이 가족의 갈등을 해결할 기회가 된다는 생각에도 동의한다. 물론 더 깊은 갈등의 길로 가는 가족들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우리 가족도 요즘 전원이 모여 밥먹을 시간이 거의 없고 나 또한 혼밥을 가장 선호하는데, 이 가족보다 아이들이 컸긴 하지만 그래도 좀 더 노력해야 할 부분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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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집혀 혀집뒤! - 제5회 비룡소 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비룡소 문학상
이리을 지음, 서현 그림 / 비룡소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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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살아가는 모습에 바탕을 둔 작고 따뜻한 판타지, 일상과 연결되는 자연스럽고 천연덕스러운 판타지. 내가 읽어본 중에 이런 판타지는 오카다 준의 작품들이다. 비를 피할 때는 미끄럼틀 아래서, 밤의 초등학교에서 등이 그런 느낌을 준다. 이 책을 읽으며 이런 느낌을 어디서 받았더라... 골똘히 생각했는데 다 읽을 때쯤 생각났다. 오카다 준이었다. 물론 이건 개인적인 느낌일 뿐이니 어떻게 그렇게 연결돼?’ 라는 타박을 들어도 할 말은 없다.^^

 

이 책에는 세 편의 단편이 들어있다. 각각의 작품이지만 둘째와 셋째 작품은 연결되기도 한다. 세 작품 다 우리 주변의 일상에서 출발하되,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첫 번째 이야기 뒤집혀 혀집뒤!에서는 딱지치기 이야기가 나온다. 전통딱지는 아니고 문구점에서 파는 고무딱지다. 가끔 이런 게 유행할 때가 있다. 따고 따먹히는 건 일종의 도박성이 있어서 이런 현상은 교사로는 좀 골치 아프다. 종이딱지야 이면지나 우유갑으로 만들면 되지만 고무딱지 같은 건 돈주고 사야되니 부작용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의 교장선생님이 아이들의 딱지를 보는대로 압수하고 부모님이랑 같이 와서 찾아가!”라고 하시는 걸 너무 비난해선 안된다.ㅎㅎ 하여간에 태풍이는 대마왕딱지에게서 얻은 신비한 능력으로 그렇게도 그리던 딱지왕에 등극하게 되는데, 그 보람도 없이 교장선생님께 딱지를 모두 압수당하고 말았다. 그 신비한 능력이란... “,,,혀집뒤!”라고 주문을 외우면 목표물이 홀랑 뒤집히는 능력이었는데, 딱지를 뺏겨 버렸으니 그 능력을 어디에다 쓴단 말인가?

화가 난 태풍이는 거리에서 만난 못된 사람들을 골려준다. 금연구역에서 보란 듯 담배를 피우는 아저씨의 콜라캔을 뒤집고, 뻔뻔하게 주차된 자동차를 뒤집어 놓는다. 내친 김에 학교로 간 태풍이는 설마...? 하면서도 학교건물을 향해 주문을 외워본다. 그런데, 뒤집혔다!!

다행히 일요일이라 다친 사람은 없었고, 다시 뒤집을 방법은 없으니 학교는 천장과 바닥을 바꾼 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태풍이는 다시는 딱지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조용히 학교를 잘 다니다 졸업했다고 한다. 마지막 부분은 정말 천연덕스럽다. 난 왠지 이런 부분에서 매력을 느낀다.

태풍이가 졸업한 뒤에 자라서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아는 사람이 없나 봐. 지금쯤이면 벌써 어른이 되었을 텐데 말이야. , 이 학교 급식에는 달걀 프라이가 유난히 자주 나오는 편이야....” 그 다음은 상상이 가능할 듯.^^ 뭐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미소가 지어지는 작은 판타지. 아이들에게 읽어주면 분량도 적당하고 무척 재미있어 하겠다. 딱지를 압수하는 교장선생님께 분노하고 학교가 뒤집힐 때 함성을 지르겠지? 그정도는 감수하고 읽어주자!!^^*

 

두 번째 이야기 파라솔 뒤에 테이블 뒤에 의자가라는 작품의 느낌이 내겐 가장 좋았다. 24시간 편의점에서 밤시간에 일하는 정 군이 있다. 손님이 가장 없는 새벽시간은 정 군에게 가장 졸립고 지루한 시간이다. 어느날부터 그 시간에 찾아와 편의점의 파라솔 테이블에서 머물다 가는 고양이가 있었다. 정 군은 그 고양이에게 삼순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친구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삼순이가 오지 않았다.

삼순이를 못 본지 일주일째 되는 날, 이번에는 까만 고양이가 나타났다. 이때부터 판타지가 시작된다. 파라솔과 테이블과 의자가 행진하며 정 군을 어디로 이끌었다. 가보니 그곳에는 다 죽어가는 삼순이가 있었다. 정 군이 삼순이를 조심조심 편의점으로 데려오자 파라솔들은 시치미를 뚝 떼고 다시 제자리를 잡았다.

까만 고양이는 뭐였냐고?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해줄게.” 2편은 이렇게 마치며 3편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해서 세 번째 이야기 제목은 책고양이가 된다. 고양이가 얘길 한다. “난 책이 아니야. 나는 고양이거든.”

고양이는 이렇게 저렇게 해서 마법사의 비서가 되었고 또 어쩌구 저쩌구 해서 마법사에게 책이 되는 벌을 받았다. “열의 세 곱절 번 읽힐 때까지라는 단서가 붙어 있으니 독자가 이 책을 읽어주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는 얘기다. ! 정군에게 나타나 삼순이를 구해주게 했으니 이미 열의 세 곱절 번 읽힌 셈인가?^^

 

세 편 다 아이들에게 읽어주고 싶다. 반응이 좋아야 힘이 나는데, 이 책은 반응이 기대된다. 대단한 환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만들어놓지 않고도, 일상의 사소한 것과 연결한 따뜻한 판타지를 창작한 작가의 작품세계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리을이라는 작가의 이름이 본명인지는 모르겠지만 작품으로 처음 만나는 작가다. 비교문학을 전공했고 그동안은 주로 번역작업을 하신 것 같다. 다음에도 이와 비슷한 작품세계를 선보일지, 아니면 또 새로운 느낌으로 찾아올지는 모르겠지만 다음 작품이 나오면 꼭 찾아보게 될 것 같다. 상상력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도 출발할 수 있다. 다시 한 번 깨닫는 그 느낌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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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 장례식 아이앤북 창작동화 41
원유순 지음, 조윤주 그림 / 아이앤북(I&BOOK)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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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몇 년 전에 동물을 키운 적이 한 번 있다. 고슴도치였다. 아들이 다니는 영어공부방 선생님이 처치곤란인 고슴도치를 원하는 아이에게 주겠다고 하셨나보다. 그걸 가져오고 싶다고 울고불고 하는 통에 어쩔 수 없이 허락했는데, 가져와보니 그건 '애완'동물이 아니었다. 잔뜩 화가 나('겁이 나'가 맞나?) 온 몸을 팽팽하게 부풀리고 가시를 세운 채 쉭쉭거리는 고슴도치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처치곤란 애물단지였다. 나도 누구한테 떠넘기고 싶을 정도....
이녀석의 가시를 조금이라도 내려 준 사람은 처음에 반대하던 남편이었다. 남편은 며칠 후 암컷 한 마리를 사왔다. 한마리도 싫은데 더 사온다고 난 질색을 했지만, 얼마 후 새끼 다섯 마리가 태어났다. 남편은 그녀석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크는 과정을 사진 찍으며 애지중지 돌봤다. 첫째는 덩치 크고 순해서 곰순이, 둘째는 독일군 닮았다고 일군이.... 밤늦게 들어오면 "우리 애기들, 잘 지냈나?" 하며 도치들 집으로 향했다. 세끼 네 마리는 분양하고 아빠 엄마 도치들과 곰순이는 우리가 계속 키웠다. 곰순이를 키우니 비로소 애완동물 느낌이 조금 났다. 도치가 보여주는 최고의 사랑은 '가시를 세우지 않아주는 것'이다. 특히 남편 손에서는 절대 가시를 세우는 법이 없었다. 그렇게 온 가족이 도치들에게 빠져 있을 무렵, 엄마도치가 시름시름하더니 죽었다. 딸과 아들은 눈이 빨개지도록 울다가 아빠와 같이 나가 묻어주고 왔다. 얼마 있다가 아빠 도치도 죽고, 곰순이는 꽤 오래 우리와 같이 있다가 떠났다.
그러는 동안에 집에 들어오면 곰순아~ 부터 부를 정도로 정이 들기도 했지만 많은 식구, 많은 짐에 도치 집과 사육물품들은 솔직히 공간적으로 부담이었다. 곰순이가 떠나던 날, 아프다 떠난 곰순이가 불쌍해서 울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홀가분하기도 했다. 모든 물건을 다 버리고 치웠다. 그 이후 아무 것도 키우지 않는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 동화를 읽으며 계속 곰순이 생각이 났다. 도치 통에서 태어나 평생 거기서 살다 간 곰순이, 이뻐해 주긴 했지만 안쓰럽고 미안했던 곰순이. 솔직히 인간의 집에서 살 존재는 아니었던 고슴도치 곰순이.

작년 여름방학, 어린이문학 연수에서 원유순 선생님을 뵙고 계속 그분의 작품을 좋아하고 있는 중이다.^^ '작가의 말'에 선생님의 퇴직 전 경험담이 실려 있었다. 아이의 말과 태도에 머릿속이 '띵'하고 울리던 경험. 이건 아닌 것 같아 붙들고 가르쳤지만 전혀 스며들지 않는 느낌. 교사라면 이 느낌에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선생님의 이 경험담은 아이들의 '곤충 기르기'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동화는 그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아이들 사이에 장수풍뎅이나 사슴벌레를 키우는 게 대유행이 되었다. 벌레 싸움을 붙이는 것도. 여기에 혹한 새봄이도 엄마를 졸라 사슴벌레를 샀고, 한동안은 이것저것 먹여가며 정성껏 돌봤다. 벌레싸움에서 이기길 고대하며 '헐크'란 이름도 지어주면서.

하지만 헐크는 새봄이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못했고, 관심이 멀어진 어느날 문득, 죽어있는 헐크를 발견하게 된다. 곤충 장례식을 치르자는 친구 정택이의 제안에 뜨악한 마음으로 헐크를 가지고 나가는데 정확히 언제 죽었는지도 모르는 헐크는 그사이 바짝 말라 있었다. 묻어주고 정택이는 인사를 하는데 새봄이는 인사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나오기 직전까지만 해도 그냥 쓰레기통에 버리면 되지 뭘... 이라고 생각하던 새봄이였기 때문일까? 억지로 입을 떼는데 울컥 떠오르는 생각들, 그리고 눈물.... 원유순 선생님이 하고 싶었던 말씀을 그 짧은 눈물에 담았다고 생각된다.
"미안해 헐크, 잘 가. 다음에는 꼭 숲에서 태어나."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그래서 아예 하지 않고 있는 나보다는 훌륭한 이들이 훨씬 많다. 하지만 우리 사람들은 이 점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 생명들은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을 검색해보니 원유순 선생님의 다른 책들에 비해 판매지수가 높지는 않다. 그닥 눈길을 끌지 않는 책일 수는 있겠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과 한 번 읽어보고 싶다. (두껍지 않으니 몇 번에 나누어 읽어주어도 좋겠다) 아이들이 무심코 가지고 있을 수 있는 생각을 한번 돌아보는 기회를 줄 것 같다. 그런 기회를 많이 가진 아이들일수록 건강하지 않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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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철도의 밤 햇살어린이 32
미야자와 겐지 지음, 양은숙 옮김, 고상미 그림 / 현북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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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유명한 작품을 이제서야 읽었다. 어린시절 TV에서 했던 만화영화 <은하철도 999>의 모티프가 된 작품이라는데, 만화의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힘차게 달려라 은하철도 999~" 지금도 정확히 부를 수 있는 이 주제가와 신비로운 메텔과 친근한 철이의 모습만 기억이 난다. 뭔가 엄청 슬픈 느낌이었다는 것도.... 은하철도라는 모티프만 따 왔을 뿐 줄거리는 이 책과 달랐던 것 같다.

이 책은 중반부까지 생각보다 재미가 없었다. 작가가 천천히 깔아놓은 복선은 결말 부분에 와서야 회오리치며 독자의 가슴에 무거운 여운을 남기고 사라진다. 아이들이 그걸 느끼려면 독서력이 좋거나 조금은 인내심이 있어야겠다. 아니 그건 어른인 나의 생각일 뿐일수도. 은하계를 여행하는 환상적인 내용에 아이들은 금방 빠져들 수도.

주인공이 겪은 신비로운 일이 깨어보니 꿈이었다... 동화에서 흔히 나오는 일이다. 이 작품의 은하철도 여행도 역시 그렇다. 하지만 꿈이었는데도 꿈으로 느껴지지 않는(등장인물 뿐 아니라 책을 읽는 독자조차도), 꿈과 현실이 연결되어 있는 느낌은 참 강렬했다. 그건 마치 이 세상과 죽음 저편의 세상이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었다. 내게 그런 느낌을 준 첫번째 책은 C.S.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 마지막 권인 <마지막 전투>였다. 난 거기서 천국의 모습의 끄트머리자락의 일부를 보았다. 인간의 능력으로 더이상의 묘사는 무리겠다 생각했다.

나니아 연대기와는 매우 다르지만 난 여기서도 비슷한 느낌을 맛봤다. 나의 감각으로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전부라고 어찌 확신하랴. 은하열차에 탔던 청년과 두 아이는 남십자성에서 내려 엄마가 계신 천국으로 향했다. 그 모습이 경건했고 눈물이 날 것 같았으나 슬프진 않았다. 나도 그렇게 기차에 몸을 싣듯 갈 수 있다면 좋겠다. 하지만 그 기차는 그냥 올라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이 세상에서 주어진 일을 다 해야 되는 것, 그게 설령 고통이라 해도.... 내게 남겨진 삶이 약간은 두렵기도 하지만 가는 길은 가볍고 경건할 거라는 소망의 그림자를 조금 보는 듯했다. 좀더 아름답게 살아야 되는데.

이 책의 주인공은 조반니라는 아주 가난한 소년이다. 아버지는 실종되었고 어머니는 병들어 아이의 어깨에 올려진 삶의 무게는 무겁기만 하다. 아이들은 소년을 놀리고 따돌릴 뿐 마음을 나눌 친구라고는 캄파넬라 한 명 뿐이다.
그날은 은하축제가 있는 날이라 아이들은 등불 띄우기 준비에 여념이 없는데, 조반니는 몇 푼 돈을 위해 인쇄소에서 일을 하고 어머니를 돌본다. 저녁에 어머니를 위해 우유를 받으러 나왔다가 언덕에서 그 기차를 만난다.
어느새 조반니는 달리는 기차에 타고 있었고 앞에는 캄파넬라가 앉아있었다.
「바로 앞자리에 키 큰 아이가 앉아 있는데, 새까만 윗옷은 물기가 척척해 보였습니다.」
"엄마가.... 날.... 용서해 주실까?"
"그래도 누구든 진짜로 좋은 일을 하면 가장 행복한 거잖아. 그러니 엄마도 날 용서해 주실 거라고 생각해."

별 생각없이 넘겼던 이런 내용들은 작가가 깔아놓은 복선이었다. 열차여행의 마지막에 캄파넬라마저 사라져 울부짖던 조반니는 언덕에서 잠들어 꿈을 꾸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또 알게 되는 사실, 물에 빠진 친구를 구한 캄파넬라가 물에서 나오지 못했다는 사실..... 현실처럼 생생한 꿈에서 조반니는 캄파넬라를 배웅했다는 것, 그리고 또 만나기로 약속했다는 것을.

여행 중 만난 전갈자리에서 그들이 부여한 의미가 참 무겁다. 모두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서 자신을 태워 불을 밝히고 있는 전갈자리. 작가는 이 작품을 7년이나 품고 있었지만 결국 미완성인 채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만큼 이 작품은 무겁다. 자신의 삶이 없이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얼마나 공허한가. 그래서 그는 또 생각하고 또 생각했을 것이다.

서평 또한 쓰기 어려운 책이다. 시작은 했으나 어찌 끝맺을지 모르겠다. 저 너머의 세계를 생각한다. 그리고 다시 이 세상을 본다. 나는 좀 달라져야 하는데... 라고 생각한다. 미야자와 겐지가 생각한 행복은 이만저만 어려운 행복이 아니다. 평생 그 끝자락이라도 만질까말까한 행복. 하지만 우리의 기도는 거기에 머물러야 함을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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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고양이 가장의 기묘한 돈벌이 1~2 세트 - 전2권 보름달문고
보린 지음, 버드폴더 그림 / 문학동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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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를 영화에 비유하자면 예술영화 독립영화 단편영화 등등 많겠는데, 이 동화는 영화 느낌은 아니다. 그럼 뭐? 드라마, 드라마다! 현실과 판타지가 적절히 어우러진, 에이 저게 말이 돼? 하면서도 눈을 떼지 못하는, 입소문을 듣고 전편을 몰아서 보기도 하는 화제작 드라마.

보린이라는 작가를 몰랐던 나는 이 책을 외국작품으로 오해할 뻔했다. 그림작가 이름도 외국이름 같아서 말이다. 그리고 '고양이 가장'에서 '가장'이 고양이 이름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버지는 우리집 가장이다' 할 때의 그 가장이었다. 즉 고양이가 이 집의 가장이란 뜻이다. 어떤 황당한 설정인 걸까?

지하 단칸방에 철든 딸(심메리)과 한심한 애비(심병호)가 살고 있는데 어느날 아빠는 가장 노릇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한다. 음유시인이 되고 싶다나 뭐라나. 딸한테 넘어갔던 가장 자리는 고양이(꽃님이)한테까지 떠밀리는데 이때 고양이의 반응,
"좋소이다."
"이 몸이 한번 해 보겠소이다."
이로부터 구질한 현실에 뿌리를 댄 긴박하고 환상적인 판타지가 펼쳐진다.

고양이의 말투가 너무 맘에 든다. 이보다 더 믿음직하고 멋질 수가 없다. "알겠소이까? 그리 생각하란 말이외다."와 같은 말투. 그와는 너무나 대조적인 이름 꽃님이.(이 이름은 내 첫조카의 어릴때 애칭. 남성적 검은 고양이와는 너무나 맞지 않아 더욱 재밌는 이름이다)

가장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 돈을 벌러 나갔던 꽃님이는 하나밖에 없는 방의 월세 고객으로 여우를 유치해 오는데, 곰팡내 가득한 그 방에 자그마치 백만원을 지불한단다. 그것도 월세가 아닌 일세로! 횡재를 맞아 좋아하던 부녀는 여우의 수수께끼 같은 올가미에 깊이 빠져들고 마는데.... 철없는 그들의 정신을 들게 해주는 건 역시 꽃님이의 존재. 결국 돈을 계속 벌 순 없었지만 제자리로 돌아올 수는 있었다. 이렇게 해서 1권 [여우 양복점]의 에피소드는 마무리.

하지만 그냥 끝나면 드라마가 아니지. 뭔 일이 터지고 헉! 이걸 어째 할 때 끝나야 다음편을 기다릴 게 아닌가. 병호 씨의 폰으로 문자가 온다. 자그마치 15,324,000원을 사용했다는 카드사의 문자였다. 여우 사건은 후유증을 남겼다. 그들 부녀의 인두겁을 쓴 자들의 짓이다. 이렇게 해서 사건은 2권으로 넘어간다.

2권의 제목은 [황천택배 헬택배]이다. 택배 아저씨를 선망의 눈으로 보는 메리 앞에 어느날 꽃님이는 택배 복장을 하고 나타난다. 택배원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택배 회사는 이세상에 있는게 아니었다. 황천에 있었다.
무릇 눈을 뗄 수 없는 옛이야기들엔 판도라의 상자와 같은 '금기'가 나온다. 그러나 그걸 안 깨면 얘기가 안되잖아? 1권에서도 그랬지만 2권에서도 병호씨와 메리는 꽃님이가 정한 금기를 깨고, 어쩔 수 없이 꽃님이까지도 사건에 휘말린다. 하지만 꽃님이는 만만치 않다. 그도 그럴 것이 꽃님이는 황천에서는 알아주는 아주 오래된 '어르신'이었던 것이다. 그런 꽃님이가 왜 인간 세상의 메리네 집에 머무르며 고생을 자처할까? 지우지 않는 기억 때문이다. 그 기억을 처음으로 꺼내놓는 꽃님이의 모습이 아프고도 쓸쓸했다. 세상사는 부질없지만 또 그만큼 소중하기도 한 것. 다 지우면 편하겠지만 그러면 우리에겐 무엇이 남을까?

이 코믹환상황당 드라마 같은 동화는 전혀 교훈 같지 않은 방법으로 우리에게 인간사의 모순된 면을 보여준다. 내가 볼 땐 그게 이 동화의 가장 큰 매력이다. 아 근데, 나름 힘들게 몰아보기로 전편을 다 봤더니,

"이 다음은 3권에서"
라고 끝나는 것 아닌가. 다음 무대는 박스시티팩토리인 것만 살짝 보여주면서.
드라마는 계속된다. 근데 반칙이다. 연속극이 이렇게 중간에 쉬는 법이 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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