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모두 다 금지야! 모퉁이책방 (곰곰어린이) 45
아나 마리아 마샤두 지음, 조제 카를루스 롤로 그림 / 책속물고기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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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데 15분이면 충분하다. 60쪽 정도 분량에 글씨도 크고 자간도 넓다. 분량으로만 친다면 1,2학년용이다. 실제로 인터넷서점의 분류에도 1,2학년용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내용으로는 그렇지가 않다. 1,2학년도 나름의 수준에서 받아들이며 읽겠지만 이 작품을 쓴 작가의 의도와 배경까지 생각하려면 어른들이 읽고 토론해도 될 만한 내용이다.

 

작가는 브라질 사람이다.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1980년대 브라질에서 겪은 우리의 이야기입니다.”라고 했다. 나는 브라질의 역사를 잘 모른다. 하지만 우리와 비슷한 부분이 많은 것 같다. 이 책의 키워드는 자유. 반대편에서 찾자면 독재자. 우리의 현대사에서도 수많은 일들을 떠올리게 하는 낱말이다. 이 키워드로 우리의 현대사를 서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시절어떤 나라가 있었다. 모두가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나라였다. 조금의 문제와 불편함은 있었다.

가끔은 혼란스럽고 정신없어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모두 동시에 말할 수 있었거든요. 그러다보니 목소리도 커지고 말다툼과 싸움도 자주 일어났습니다. 다 함께 질서를 지키고 평화롭게 사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본문 9)

 

그 사이에 독재자가 나타났다. 스스로 그 자리에 앉아서 힘이 제일 세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그런데 그걸 반기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사실.

처음에는 그 방식을 반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해서 시끄러운 말다툼을 멈추게 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라가 조용하고 평화로워졌다고 느꼈던 것이지요. 하지만 독재자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모두 무시하고 점점 바보같은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본문 12)

 

그 바보같은 일들은 이런 것이다. 다른 의견 금지. 반대자 감옥으로 보내기. 다른 색깔 금지(회색으로 통일하기), 금지, 금지, 금지......

이런 순 없어! 이런 경우가 어디 있어?”

모두가 이렇게 분통이 터지는 와중에 손뼉을 치며 기뻐하는 족속들도 있었다. 이 부분 떠오르는 자들이 많아 진심 섬뜩했다.

많은 사람들 눈에는 이상해 보였지만 이렇게 변해버린 나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지금처럼 나라가 편하고 좋았던 때가 없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회색 페인트를 만드는 사람들, 아스팔트나 시멘트, 채소 캔 같은 이 시대에 많이 쓰이는 용품을 만드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너무 기뻐 두 손 모아 박수를 쳤습니다. (본문 19)

 

독재자가 그 체제를 유지하는 시스템을 설명한 부분도 섬뜩하다.

독재자의 지휘 아래에서 사람들은 쉴 틈 없이 많은 일을 했습니다. 물건은 무척 비쌌고 사람들은 돈을 아주 적게 벌었습니다. 직장과 집은 너무 멀었습니다. 오고 가는 길은 몹시 복잡했습니다. 사람들은 긴 출퇴근 시간에 지쳐서 가족들이나 친구들과 대화할 시간을 갖지 못했습니다. 푸른색을 찾아다니거나 생각할 시간도 갖지 못했죠. (본문 23)

 

이 숨막히는 탄압의 시대에 숨결을 불어넣은 것은 아이들이었다. 아이들로 시작해서 사람들은 기억 저편에 감춰 두었던 색깔들을, 음악들을, 춤을 찾아내었다. 이것은 독재자를 깜짝 놀라게 하는 축제로 이어졌다. 결국 겁을 먹은 독재자는 아무도 모르게 도망치고 말았다. 무척 다행스러운 해피엔딩이지만 작가는 이런 말을 잊지 않았다.

그 날 이후 그 누구도 그 나라에서 독재자를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독재자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나라를 지금도 찾아다닌다고 합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더 똑똑해진 독재자가 우리 곁에 나타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늘 독재자가 가까이 오지 못하게 조심해야 합니다. 만약 독재자가 더 똑똑해졌다면 주머니에 있는 무지개와 몸에 있는 음악과 별만으로는 내쫓을 수 없을 테니 말입니다. (본문 57)

 

오랜 암흑을 가까스로 벗어났지만 그 기쁨을 유지하지 못했거나 더 깊은 암흑으로 빠져든 경험이 우리에게도 있다. 지금 이 시점. 광장에 모인 시민들의 축제가 몰아낸 어둠. 하루하루 뉴스에서 기쁨과 힐링을 느끼는 이 색다른 경험. 이 시기에 우리는 더욱 냉철하고 지혜로워져야 하겠다고 간절하게 생각한다.

 

나는 이 책을 저학년보다는 고학년 현대사 수업을 할 때 읽어주겠다. 짧고 상징적인 이런 글에서는 무한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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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이네 옆집이 수상하다! 초승달문고 39
천효정 지음, 윤정주 그림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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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직업을 딱히 부러워하진 않는데 교사이면서 작가인 분들은 부럽다. 작품을 읽다보면 천재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드는 이들. 천효정 작가가 대표적이다.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을 수상했던 삼백이 이야기를 읽고 세상에나~ 하고 놀라버렸다. 신에게 이야기주머니를 받았구나.... 이후 건방진 수련기 등으로 이야기 주머니를 찼음을 계속 증명하고 있다. 오늘 읽은 이 작품은 최근작이다. 귀엽고 깜찍한 저학년 동화다.

강낭콩만한 꼬마 생쥐 콩이. 늘 빨빨거리고 싸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참견하기 좋아하는 오지랖 캐릭터다. 어느날 집 옆에 새로 생긴 구멍을 발견하게 되는데 저 안에 있는게 누굴까?라는 궁금증으로부터 이야기는 펼쳐진다.

각 장마다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한다. 전체를 통틀어도 길지 않은 이야기인데 한장 한장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캐릭터가 이리도 선명하고 독자에게 뭔가를 말해준다니! 다음 캐릭터는 콩이의 친구 두더지 빽인데 남의 뒷담화가 특기다.
"얼마 전에 들었는데, 토끼가 쫄딱 망했다는군. 있는 잘난척 없는 잘난척은 다 하더니, 거지 신세가 될 줄 짐작이나 했겠어?" 이런 식.

다음 캐릭터는 청개구리 씨니. 청개구리의 숙명적 특징 -반대로 말한다- 외에도 비비꼬아 말하는 특징이 있다.
"콩이구나! 오늘따라 유난히 차분해 보이네!"(정신없이 돌아다니는 콩이를 보고 한 말)

다음은 청설모 깡군아저씨. 차갑고 무서운 외모에 숨겨진 배려와 따뜻함.
두꺼비 떡두도 있다. 비꼬기대장 씨니를 무력화시키는 그 순수함.

모두들 콩이네 옆집 수상한 존재를 두려워하는데, 콩이네 집에 다같이 모여 있던 어느날,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누구세요?"
"옆집에 이사온 동물이에요."
친구들은 멘붕에 빠지고, 콩이는 마침내 문을 여는데, 옆집의 그 주인공은.....
매우 예측 가능한 인물이긴 한데^^ 추리소설은 아니니까 뭐.ㅎㅎ

깡군 아저씨의 따뜻함을 알게 된 것도, 두려워만 하던 옆집 식구들과 소통하게 된 것도 모두 콩이의 오지랖과 인간에 대한(아니구나 동물에 대한) 무조건적 신뢰 때문이었다.
"니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이 말을 듣는 상대방은 내심 감동하게 될 것이다. 나도 가끔 아이들한테 이런 멘트를 쓸 때가 있다만.....
우리 아이들에게 무조건적 신뢰를 가르칠 수가 없는, 아니 가르쳐서는 안되는 세상이어서 조금 슬프다.

이 책은 꽤 재밌다. 읽어주기용으로도 아주 좋겠다. 저학년용이지만 중학년 정도 수업에서 간단한 캐릭터 분석 활동으로도 좋을 것 같다.

유사 이래로 무수한 이야기들이 창조되고 전승되어 왔건만, 그래도 아직 이야기의 샘은 마르지 않고 있음이 신기하고도 다행스럽다. 작가의 이야기주머니에서도 계속 흘러나올 이야기를 나는 그저 아이들과 재미있게 즐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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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가면 선생님이 웃었다 - 2022 어린이도서연구회 동화동무씨동무 선정, 2017 아침독서신문 선정, 2017 오픈키드 좋은 어린이책 추천 바람어린이책 5
윤여림 지음, 김유대 그림 / 천개의바람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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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스승의날이다.
세상이, 아니 교직이 일면 바람직한 방향으로 흘러오긴 했다고 본다. 20여년 전 내가 처음 발령났을 때 스승의 날에는 책상위에 손수건, 스타킹 등 선물이 잔뜩 쌓이곤 했다. 그중에는 부담스러운 립스틱이나 커피잔 같은 것도 있었다. 멋모르고 발령난 나는 그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헤맸다. 몇년이 지나며 조금 제정신이 든 나는 스승의 날이 가까워지면 알림장을 통해 이런 안내를 했다. 어찌보면 무척 거칠고 무례한 멘트였다.
"저는 스승의 날이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스승의 날을 상기시키는 일체의 행위를 불쾌하게 생각합니다. 스승의날을 빙자한 교실내 소란행위를 엄금하며 꽃 한송이도 받지 않으니 불편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퉁명스러운 멘트에서 보이듯, 나의 이런 행위는 뭔가 정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알량한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서였다. 10년이 넘도록 이 멘트를 고수했다. 특히 언론에서 5월만 되면 교사들을 애들 코묻은 선물이나 바라는 거지떼들로 묘사하는 걸 보며 이 멘트는 더욱 견고하게 굳어갔다. 그래서 우리반은 옆반 아이들이 일찍 와서 풍선으로 교실을 꾸미고 칠판편지로 선생님을 기쁘게 해드릴 계획을 꾸밀 때 아무것도 하지 못해 입이 댓발 나왔고, 그날은 괜히 더 날카로워져서 아이들을 다그치곤 했다.

다행히 작년부터는 김영란법이 생겨 이정도로 단도리를 하지 않아도 꽃한송이 안보고 지나갈 수 있다. 나도 멘트의 수위를 조절했다.
"5월 15일은 스승의날입니다. 스승의날은 교사의날이 아닙니다. 스승은 평생 잊지 못할 인생의 가르침을 주신 분을 일컫는 말이고 현재의 담임과는 무관합니다. 스승의날을 본교 교사와 연관지어서 불편한 상황이 발생되지 않도록 주의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김영란법의 학교 적용에 민망하고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20년전 책상위에 스타킹 손수건 화장품 더미가 쌓이던 상황에 비하면 진일보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상담때 빈손으로 오지 못해 들고온 다과 종류를 다시 들려 보내자니 미안하고 먹자니 체할 것 같던 그 난감함을 느끼지 않아도 되고. 이 편이 훨씬 마음 편하다. 이것이 오직 교사들의 자정 노력에 의해 된 것이라면 더욱 좋겠지만.... 신속히 단호하게 하지 못하는 사이에 어어어 떠밀려온 경향도 있음이 아쉬울 뿐이다. 정이 없다는 둥 하는 염려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원래 정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학교는 직장이고 나는 전문 직업인으로서 월급값을 다하려 애쓰고 있다. 그거면 (일단) 됐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일단)이 나의 발목을 잡는다. 여기까지는 교사의 언어다. 스승의 언어는 그것이 아닐 것이다. (나는 스승이 되겠다는 욕심 같은 것은 없지만, 왠지 아이들한테 약간은 미안한 마음이 있다)

이런 마음으로 복잡한 스승의날 전 주말에 나는 선생님이 주인공인 책을 읽었다. 여기에 나오는 콩가면 선생님은 나랑 좀 비슷한 점이 있다.(주로 단점이?ㅎㅎ) 하지만 내가 닿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다. 그래도 페북에서 경이롭게 구경하는 스타선생님들에 비하면 훨씬 나와 닮았다. 친근한 마음으로 읽어나갔다.

<콩가면 선생님이 웃었다> 이 제목을 보여주고 나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질문할 것 같다. "얘들아, 제목을 보니 이 선생님은 평소에 잘 웃으시는 것 같니? 안 웃으시는 것 같니?"
웃지 않는 무표정 선생님. 일단 마이너스 아닌가? 친절이 얼마나 중요한데.
나 또한 감정표현을 잘 하지 않는 편이다. 애정표현을 주로 구박으로 한다. 다음해에 찾아와 교실 문밖에서 서성이는 아이들은 주로 구박덩이들이다. 과장된 칭찬도 잘 하지 않는다. 이런점이 닮았다면 닮았다.(단 이 선생님은 구박도 잔소리도 잘 안한다)

첫번째로 등장하는 동구라는 아이는 숙제만 하려고 하면 엉덩이가 간지러운 '숙제병'에 걸린 아이다. 그런데 선생님은 "매일 숙제를 내주겠다"고 하신다. 그리고서 이어지는 말. "숙제해 왔다고 상주는거 없고 숙제 안 해 왔다고 벌주는거 없다."
와, 이거 내게 매우 흥미진진한 상황이다. 상도 벌도 없는 교실에서 과제가 어떻게 이행될까?
처음에 글쓰기 숙제를 반 정도 아이들이 해왔는데 그 이후 숙제를 해오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더니 마지막엔 숙제병 동구까지도 해오게 되었다. 그 비결은.... 아주아주 단순하지만 어려운 거다. 한 수 배웠다.

콩가면 선생님의 교실에도 보일듯말듯 관계의 문제들이 등장하는데 그 해결에 선생님은 보일듯말듯 관여한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해결해주었다고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고도의 기술이다. 나는 20년이 지났어도 이 기술을 익히지 못했다. 음 부럽다.

선생님이 학급의 외토리 비호감 성인이와 친해지는 과정도 흥미롭다. 성인이를 불쌍해하지도 봐주지도 않으면서 존재감을 살려주는 과정. 말투는 여전히 무뚝뚝. 와 정말 내 스타일.ㅎㅎ

"콩가면 선생님이 웃었다" 제목과 같은 일은 그럼 언제 일어나는 걸까? 그건 바로 방학식날.
"무슨 선생님이 방학이라고 좋아해요?"
"선생님이니까 방학을 좋아하지. 말썽꾸러기 녀석들도 안보고 얼마나 좋아? 내일부터 늦잠 자야지!"
뭐 그게 끝은 아니다. 심통 부리는 성인이를 불러세워 함께 교실 문을 잠그고 짜장면 먹으러 가는 선생님. 선생님의 멋지고 즐겁고 보람된 방학을 나도 응원한다.^^

스승 이야기로 시작했으니 마지막에도 스승 이야기를 해보겠다. 콩가면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스승일까?
이건 우문이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녀가 교사로서는 정말 괜찮은 교사라는 것이다. 비록 일년 내내 안웃다가 방학식날 웃는, 평소에 아이들과 부비부비도 하지 않는 무뚝뚝한 교사라 할지라도 말이다.
나는 더도말고 이정도만 괜찮은 교사이고 싶다.
욕심히 과하다고? 그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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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쓰고 그린 책 - 2020 볼로냐 라가치 상 COMICS Early Reader 대상 수상작 모퉁이책방 (곰곰어린이) 47
리니에르스 지음, 김영주 옮김 / 책속물고기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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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쓰고 그린 책이라 해서 실제 어린이가 쓰고 그린 책인줄 알았더니 그건 아니었다. 이 책에는 어른과 어린이, 두 사람의 그림체가 나오는데 둘 다 작가의 것이다. 어른 그림체는 네모 틀 안에 갇혀 있으며 바깥 이야기(아이가 색연필을 선물받아서 기뻐하며 이야기를 그려나가는 과정)를 이끌어 간다. 아이 그림체는 틀 밖에서 자유롭게 펼쳐지며 아이가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부럽다. 이렇게 맘껏 지어내고 맘껏 그릴 수 있는 아이의 상상력이.(아이가 아니라 작가가 그린 거라니깐! 그래도, 이정도 짜임새까진 못 갖추더라도 아이들의 이야기는 참 기발하고 그림은 대범하다. 물론 나보다 더 소심하고 끙끙대는 아이들도 없진 않지만.)

아이는 엄마한테 색이 많은 목색연필 한 갑을 선물받았다. "예쁜 무지개 조각을 가진 기분이 드는걸" 이라는 시적인 표현을 하는 아이. "아주 멋진 이야기를 만들 수 있겠어." 라며 일단 제목과 표지를 완성한다. <모자 두 개를 쓴 머리 세 개 달린 괴물>
우와 대단하다. 괴물이라니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질 것이고, 머리가 세 개 달렸는데 모자는 왜 두 개인지 독자들은 궁금해할 테니 그것과 관련된 이야기로 이어갈 수가 있잖아?(왜이래. 아이것도 작가가 쓴 거라고 했잖아.ㅎㅎ)

틀 안에 들어있는 어른 그림은 작고 단정하고 펜선이 섬세한데 비해 아이 그림은 크고 거친 선들이 그대로 드러난다.(내 눈엔 크레파스로 보이는데 색연필화가 맞나??) 어쨌든 아이가 만든 이야기를 보자. 깜깜한 밤, 무서워서 인형을 안고 잠을 청하는 에밀리아에게 무슨 소리가 들린다. 그러더니... 옷장에서 손이 튀어나오고 그 다음에는 머리가.... 이렇게 해서 괴물과 대면하게 된다.

괴물들의 사연을 듣고 나서 그들을 돕기 위해 옷장을 열었을 때, 옷장이 깊이를 알 수 없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 부분 뭔가 익숙한데? 나니아 연대기에서 모티프를 차용했구나. 하긴, 모방에서 창조가 비롯되는 것이니까. 이야기에서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은 상당히 중요한데 아이는 기존에 있던 '옷장'을 한번 더 선택했다. 하지만 그 이후(옷장 속)는 많이 다르다. 그 속에선 더 큰 괴물도 등장하고, 적절한 조력자도 등장하고.... 한마탕 모험과 추격전을 마친 후 방으로 돌아오는 일행. 그리고 모자를 찾아쓴 세 괴물은 에밀리아에게 선물을 주고 떠난다.

안쪽 이야기는 이렇게 서툰듯 재미있고, 바깥 이야기는 이야기를 만들 때 생각해야 할 점들을 적절히 짚어준다. 이 책을 읽은 아이들은 "나도 이야기 한 번 만들어보고 싶다!" 라고 할 것 같다. 아니, 솔직히 잘은 모르겠지만 어린시절의 나라면 그랬을 것 같다. 그땐 이런 책이 없어서.....^^;;;;

전에 다른 서평에서 자세히 쓴 적이 있는데, 나도 이야기 만들기 수업을 좋아해서 다양하게 시도해 보았다. 느낀 점은 어린 아이들이 더 잘한다는 것. 5,6학년 아이들보다는 2,3학년 아이들이 만든 이야기가 훨씬 아름답고 재미있었다. 요는 아직 말랑말랑할 때 주물러 줘야 한다는 것. 어느덧 굳어있는 것을 발견한 후에는 잘 되지 않으니까.^^ 이 책을 보고 나서 하면 더더더 잘하겠다. 동기유발과 안내자 역할을 동시에 해주는 책이라서.

아이들이 상상과 창조 속에 빠져 있는 건 참 행복한 일일 것이다. 그 행복에 빠뜨리는 게 교사의 역할 중 하나라면 한번 잘해보고 싶다는 의욕을 불태워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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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소원을 들어주지 마세요 두뼘어린이 7
김태호 지음, 홍하나 옮김 / 꿈초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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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소원을 들어주지 마세요 / 김태호 / 꿈꾸는초승달>

이 작가의 <제후의 선택>을 재미있게 읽어서 신작이 나온걸 보고 바로 찾아 읽었다. 제후의 선택과 그 전작이 모두 단편이었으니 작가의 첫 장편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길이만 길 뿐 훨씬 편하고 가벼워졌다. 단편들은 고학년은 되어야 권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이 작품은 3학년 정도면 권해줄 수 있겠다.

제목과 표지그림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무릎 꿇고 소원을 비는 듯한 아이 옆에 컸다가 점점 작아지는 "제발 소원을 들어주지 마세요"라는 제목은 마치 아이의 육성처럼 느껴진다. 아이들과 도서실 수업을 갔다가 이 책을 대출해서 나오는데 몇몇 아이들이 "응? 제발 소원을 들어주지... 마세요?" 라며 궁금해 한다.^^

첫번째 등장인물은 붕어빵 장수 황도사다. 한자리에서 30년을 버텨낸 업계의 지존이다.
두번째로 등장하는 인물은 세구다. 하루가 멀다고 찾아오는 초딩단골이다. 마침 황도사는 소원을 들어준다는 전설의 황금붕어빵을 만들어낸 참이었고 세구는 첫 손님이었다. 먹는동안 소원을 빌라는 말도 잊고 세구는 그 다이나믹한 맛에 빠져들었다. 그러다 삼킨 후에야 겨우 소원을 빌었다. 그 소원이란.....

세구네 선생님은 언제나 1등을 외치는 분으로, 매일 시험을 보고 등수도 발표한다. 꼴찌에서 두번째인 세구는 학교생활 자체가 수치고 고역이다. 그래서 황금붕어빵에게 빈 소원은 "반에서 1등이 되게 해주세요."

그러나 다음날 본 시험 점수는 20점. 역시 소원은 이뤄지지 않는 것인가? 그런데, 그 소원은 전혀 생각하지 못한 엉뚱한 방법으로 이뤄지고 있다. 세구의 점수가 올라가는 게 아니라 세구 앞에 있는 친구들이 하나씩 전학을 가는거다. 오오오 그런 방법이 있었네. 하지만 섬뜩하지 않은가?^^

친구들이 자기 때문에 떠나는 것도 괴로운데 붕어빵 황도사님도 천막을 접고 떠났다. 어찌할 바 모르는 세구는 표지의 저 제목과 같은 기도를 할 수밖에 없는데...... 세구가 깨닫게 된 것이 있다. 1등은 공부가 아니어도 된다는 거다. 급식먹기를 1등으로 잘해 칭찬받은 다음날, 처음 전학갔던 친구가 돌아왔다. 이 대목을 읽고 난 우리만 포실이가 생각나 웃었다. 우리반엔 식판을 싹싹 비우는 아이들이 몇 없다. 하지만 포실이는 언제나 1등으로 싹싹 비운다. 오늘 학급평화회의를 하는 날이었다. 특별한 안건이 없는 날은 칭찬과 감사 나누기를 한다. 먼저 한 명이 "저는 ~~~~한 것을 칭찬받고 싶습니다." 하고 마이크를 넘기면 다음 사람이 "~~~하시다니 정말 훌륭해요. 칭찬합니다." 이런 식으로 한바퀴 도는 거다. 시작 전에 포실이는 내게 다가와 "급식 먹은거 말해도 돼요?" 하고 물었다. "그럼~~ 아주 좋지." 그제야 안심하며 자리에 앉는 포실이. 하지만 자기 차례가 되니 머뭇거린다. "괜찮아. 어서해~" 했더니 "놀릴 거 같은데..." 라며 고인 눈물을 손바닥으로 쓰윽 닦아낸다. 다행히 다음 아이가 아주 센스있고 사려깊은 아이다. "포실님, 편식도 안하시고 급식을 잘 드시니 정말 훌륭해요. 저도 포실님처럼 편식을 안했으면 좋겠어요."
기특한 내새끼들. 그것도 모자라 다같이 박수를 짝짝짝. 포실이의 얼굴에 활짝 번지는 쑥스러운 웃음.^^

그래. 백인백색이듯 백인백칭찬이 있는 것이지. 세구도 찾아보면 1등할 것이 많다. 세구의 1등하기 대작전. 여기에 맞추어 친구들은 하나둘씩 돌아온다. 세구가 '우리 동네' 발표를 하는 장면이 아주 감동적이다. 30년 역사의 붕어빵집과 황도사님을 소개하는 내용.(여기에 특별히 감동받을 수밖에 없는 또다른 인물의 사연도 있다) 세구의 발표는 친구들에게 많은 칭찬을 받는다. 내일이면 아마도 한 명 남은 친구도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황도사님도.^^

상징이 깊고 좀 무겁기도 했던 단편들과는 상당히 느낌이 다른 새로운 작품이었다. 아이들을 한 줄로 세우지 않는, 아니 줄을 설 필요가 거의 없는 세상에서 아이들이 자신을 사랑하며 서로 칭찬하며 살면 좋겠다. 알흠다운 우리반 녀석들처럼.(하교지도할 때 서로 맨 앞에 서겠다고 아귀다툼을 벌인다는 것은 굳이 밝힐 필요 없는 비밀.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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