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지 않는 병 휴먼어린이 중학년 문고 2
정연철 지음, 김고은 그림 / 휴먼어린이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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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엄마는 이혼했고 아들 은오를 혼자 키우게 됐다. '아빠 없는 애란 소리 안듣게 하려고' 아이에게 엄청난 지침을 안겼다. '아들 십계명'으로 대표되는. 거기엔 인사 잘하기 같은 당연한 것도 있지만(당연한게 당연하지 않은 순간도 있는것) 눈물 금지, 음식투정 금지, 아빠에 대한 말 금지 같은 본인의 설움을 반영한 것들이 더 많다. 그리고 방귀나 재채기 같은 에티켓에 관련된 것들도 있다. 한마디로 엄마는 '성가시지 않고' '반듯한' 아이로 은오를 키우려 하는 것이다.

엄마의 힘듦과 슬픔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엄마의 기세에 주눅든 은오는 십계명을 지키려 애를 써보지만..... 그럴수록 병이 깊어진다. 이 책의 제목인 '웃지 않는 병'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혼자된 엄마가 단기간의 집중노력을 통해 얻게 된 직업은 '웃음치료사' 화장을 하고 문을 나설 때, 전화를 받을 때, 엄마는 연기모드로 들어간다. 활짝 웃으며, 인사를 건네며.... 그러나 집에 들어서면 그 가면을 벗는다. 가면 밑에는 우울하고 지친 엄마의 모습이 있다. 당연히 엄마는 아들을 웃게 하진 못한다.

뭔가 새로운 전기가 필요한 시점에, 작가는 어떤 사건과 인물들을 넣었을까? 엄마의 출장, 외삼촌 가족. 엄마에게 그런 가족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외사촌 범수는 밥상머리에서 거침없이 방귀를 뀌어대고, 엄마의 구박도 웃음으로 넘기고, 누구도 화내지 않는다. 엄마한테 반말을 하고 심지어 말대꾸까지 해도, 그래서 엄마가 한대 쥐어박아도 가족의 분위기는 얼어붙지 않는다. 은오에게는 신기한 풍경.

범수와 더불어 은오는 마을에서 말썽을 부리고, 야단맞고 돌아온 외삼촌댁에는 예정에 없던 엄마가 돌아와 은오를 꼬나보고 있다. 화내는 엄마, 피토하듯 괴로움을 쏟아놓고 달려나가는 은오, 그 밤에 휘몰아치듯 일어난 일들. 그 와중에도 엄마는 "은오야, 힘들었지? 엄마가 미안해." 라는 말을 하지는 못한다.(그런 신파는 피차 좋을게 없긴 하다^^) 하지만 외할머니가 해주신 말씀이 든든하면서도 절절하다. 대답은 없었지만 엄마는 그 말을 가슴에 담았을 것이다.
"그런 소리 마라. 네가 떳떳하지 못할 게 뭐 있어."
"네가 행복해야 은오도 행복한 거여. 이것아."
등등의 여러 말씀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은오는 '엄마십계명'을 마음속으로 적어본다. 나한테도 웃어주기, 일주일에 두번은 밥해서 나랑 같이 먹기, 운다고 뭐라 하지 않기 등등으로....^^

이 책을 전체한테 읽어주기엔 나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의 마음을 힘들게 할까봐 조금 조심스럽다. 하지만 아이들이, 또는 엄마들이 이 책을 찾아읽는 건 권하고 싶다. 어느 지점일지는 모르지만 위로나 치유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찔림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나도 아이들 키우며 '반듯함'에 대한 강박이 있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강조한 것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은오가 아니고 나또한 강한 엄마가 못되어서 그 중 절반 이상이 허공으로~~ 그러나 어쩌면 그게 다행 아닌가 싶다. 내 말을 다 듣고 내가 가리킨 길로만 갔으면? 지금보다 나을거라 나는 장담을 못한다.ㅋ 너무 말을 잘 듣는건 어쩌면 위험한거다. 혹시 엄마들이 이 책을 읽으신다면 이런 위로를 받으셨음 하는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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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 둘째주가 되어서야 겨우 혼자놀기를... 아버님이랑 저녁 먹은 후 나가서 저녁 8시 영화를 보고 바로 들어왔으니 잠깐의 혼자놀기였다.^^


원더풀 라이프라는 일본영화를 봤다. 98년? 20년전에 만들어진 영화네. 영화의 배경은 이승과 저승의 중간 기착점? 이곳에서 죽은 사람들은 7일을 머물며 인생을 복기하고 가장 아름다운 기억 하나를 골라 간직한 채 저세상으로 가게 된다.

황당한 설정이지만 영화가 매우 진지하고 아름다워 우습다는 생각을 느낄 겨를은 없다.
근데 그곳에서 일하는 존재들은 누굴까? 천사? 차사?.... 여야 할 것 같지만, 오는 이들과 마찬가지로 죽은 사람들이다. 아직 저승으로 가지 못한. 어떤 이는 추억을 선택하지 못해서. 어떤 이는 어린 딸을 두고 죽어서.... 그들은 이곳의 직원으로 하루하루를 바쁘게 지낸다. 직장으로 치면 밤낮으로 빡센 직장이다. 수요일까지는 죽은 이들이 기억을 고를 수 있게 상담해주기, 금요일까지는 촬영준비하기, 주말에는 촬영하고 시사회하기까지. 그렇게 1주가 가면 이곳을 방문한 이들은 그 영상의 기억을 안고 저세상으로 떠난다.

영화는 그 딱 1주의 시간을 다룬다. 저너머 환한 빛을 등지고 사람들이 하나 둘씩 들어선다. 이곳의 규칙을 듣는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어린시절의 추억을 바로 떠올리며 천진난만하게 웃는 할머니, 뭐 이래? 라는 식의 젊은이, 디즈니랜드라고 바로 대답하는 여중생, 아무것도 기억하고 싶지 않다고 완강히 버티는 중년남자, 고민하는 할아버지 등....

이곳에서도 남녀의 얽힌 관계는 있다. 4각관계라 해야되나? 할아버지의 기억을 돕던 모치츠키(남직원. 20대. 50년 전 전사함)는 할아버지의 부인이 참전하기 직전 약혼자인 교코인 걸 알게된다. 그런 모치츠키만을 바라보는 시오리(여직원. 18세. 생전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음). 그들의 마음을 영화는 담담하게 담아낸다. 결국 할아버지는 부인 교코와의 추억을 갖고 떠났고, 알고보니 먼저간 교코는 모치츠키와의 추억을....ㅠ 이제 모치츠키도 떠날 때가 되었음을 안다. 그는 무슨 추억을 선택했을까? 그리고 남겨진 시오리는?

가장 색다른 설정은 이곳에서는 방문자들이 선택한 기억을 재연해 영상으로 촬영해 함께 감상한다는 것이다. 직원들이 가장 동분서주하는 일이 바로 이것이다. 최대한 비슷한 느낌을 내고자..... 이곳은 꼭 오래된 학교건물 같은 느낌을 주는데, 그중 별관 같은 곳에 들어서자, 영화 세트장이 펼쳐지는 게 아닌가! 세트장마다 각 주인공들의 행복했던 한때를 찍느라 여념이 없다. 신선한 발상이고 실제로 이 대목이 재미있긴 했지만 재연이라니.... 그렇게 추억을 재생하는게 가능할까? 그건 박제일거다. 그래서 공감은 가지 않았다.^^;;;

사후세계에 대한 생각이 나와 다르지만, 거부감은 거의 없는 아름다운 영화였다. 이 영화는 저승을 다루고 있지만 사실은 이승을 말하는 영화가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소중한 기억을 만들고 있나요? 헉, 지난주 돼지우리 같은 집을 정리하며 "추억 따지지마, 다 갖다 버려!!" 라고 명령하던 나는 뭐란 말인가???ㅋㅋ

한가지 기억만 남긴다는 것도 좀 그렇다. 그건 추억끼리도 경쟁해야 한다는 거잖아.... 어릴적 여름밤, 엄마가 갈아입힌 깨끗한 옷을 입고 엄마의 부채질 바람을 느끼며 잠이 들던 기억? 긴긴겨울밤, 삼남매가 엄마아빠의 귤내기 맞고를 관전하며 운좋은 밤엔 아이스크림을 얻어먹던 기억? 배깔고 주황색 계몽사 전집에서 린드그렌을 읽던 기억? 남편과 결혼전 눈오는 성탄절 무렵에 나홀로집에를 보고 대학로를 걷던 기억? 첫 딸을 낳고 바라보던 기억? 결혼 20년만에 남편과 대만여행을 했던 기억?....... 뭘, 왜, 선택해야 하냐는 거지.ㅎ

이렇게도 이의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난 이 영화를 참 괜찮은 영화로 고르겠다. 인생에 대한 경의. 그런게 느껴져서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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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아이 독깨비 (책콩 어린이) 22
R. J. 팔라시오 지음, 천미나 옮김 / 책과콩나무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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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아이 시리즈는 모두 4권이다. 그중에 나는 두번째 나온 <줄리안 이야기>를 가장 먼저 읽었다. 각편 모두 독자적인 완성도를 가지고 있어서 읽고 감동받는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그래도 전편을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크리스 이야기>와 <샬롯 이야기>가 나왔길래 그걸 먼저 읽고 이 책은 가장 나중에, 너무 늦게 손에 잡았다. 읽으면서 감탄이 계속 나왔다. 아, 이 책을 먼저 읽을걸! 그리고 작가는 원래 그래픽 디자이너고 이 작품이 데뷔작이라는데 어쩜 이렇게 한방에 대단한 작품을 썼을까! 500쪽에 가까운 분량도 분량이지만 그 분량이 하나도 지루하지 않게 읽히고, 주인공 오기와 주변 인물들이 돌아가며 화자가 되는 구성이 유기적이고 탄탄하다. 서로 다른 입장과 시각에서 사건을 볼 수 있고 그 각자의 입장이 다 이해가 된다.

오기(어거스트) : 선천적 안면기형을 갖고 태어났다. 모든 유전적 요인이 가져올 수 있는 최악의 결과를 나타냈다고 보면 된다. 누구나 헉! 하고 놀라게 되는 일그러진 얼굴. 10살이 되도록 홈스쿨을 하던 오기가 드디어 학교에 입학한다. 그 험난하고 사연많은 1년의 이야기다.

비아(올리비아) : 오기를 사랑하고 오기에게 혐오를 보이는 사람들에게 오기보다 더 분노하는 누나다. 이런 누나도 없다 싶지만 그 마음에 갈등이 왜 없으랴. 오기의 상태와 원인에 대한 설명은 주로 비아의 입에서 나오는데 그 담담한 설명이 가슴아프다.
<유전학 개론> 이라는 장에서 "그리고 내 몸에도 그 유전자가 존재한다."
<푸네트의 사각형>이라는 장에서 "배선 섞임이나 염색체 재배열, 혹은 지연 돌연변이와 같은 말들 밑에는 무수한 사람들이 있다. 결코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할 무수한 아기들이. 나의 아이들처럼."
같은 대목들이 그렇다.ㅠㅠ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비아는 친구들 사이에서 진통을 겪기도 하고 남자친구를 사귀기도 한다. 그러나 언제나 그녀의 중심엔 동생이 있다.

서머 : 오기의 외모에 개의치 않고 단번에 점심친구가 되어준 소녀. 어거스트의 장점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아이. 어거스트를 두고 '전염병놀이'를 하는 대다수의 아이들을 이해 못하는 아이. 관계 권력에 굴하지 않는 쿨한 아이. (이런 아이가 학급마다 있으면 좋겠다)

잭 : 오기의 입학 전 교장선생님께 환영친구가 되어달라고 부탁받은 세 명 중 한명. 줄리안이 자기 패거리들과 함께 악의적으로 오기를 괴롭히고, 샬롯은 형식적으로 대해주는 것에 비해 꽤 진심으로 잘해준 아이. 그러나 완전히 괜찮았던 건 아니어서 자신도 모르게 오기의 뒷담화에 동참했고, 그날은 마침 할로윈이라 가면을 쓰고 있던 오기는 그 말을 들었고, 한참을 앓았다. 그러나 그 상처를 극복하고 좋은 친구가 되는 두 사람.

저스틴 : 비아의 남자친구. 바이올린을 켠다. 비아의 집에 초대되어 부모님께 많은 관심을 받지만 정작 자신의 부모님께는 아무 관심도 못받는 아이. 틱이 있다. 투정부리지 못하고 살아온 비아의 눈물을 보아주고 닦아주는 아이. 생각이 깊은 아이.

미란다 : 비아의 오랜 친구로 어릴 때부터 오기를 예뻐했고 가족과 무척 가까웠던 누나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비아와의 관계가 삐그덕! 비아에게 많은 고민과 눈물을 안겼지만.... 오기를 아끼는 마음은 진심. 마지막으로 비아가 연극무대에서 환호를 받을 수 있게 결정적인(!) 역할을 해준다.

이렇게 6명이 저마다의 입장에서 서술하는 이야기가 어느 한군데 아귀가 맞지 않는 곳이 없다. 저마다의 입장이 다 이해되고 그를 응원하게 된다. 너무 두꺼워서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이 책을 아이들과 '온작품읽기'로 읽어보고 싶다. 수많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친구들에게 받은 상처, 내가 준 상처, 그리고 그 상처를 후비지 않고 가장 잘 낫게 하는 방법, 차별에 대하여, 방관자와 수호자의 역할, 그 구도에 따라 상황은 얼마나 바뀌는지 등....
또 이 책에 브라운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월별 금언을 제시해주시고 아이들 스스로의 금언도 적어오게 하시고 글쓰기와도 연관지으시는데 교사로서 그 지도방식이 아주 좋아보였다. 여기 나온 금언들로도 아이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다. "만약 옳음과 친절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친절을 택하라. -웨인 다이어 박사" 와 같은 것들 말이다.
다룰 수 있다면 시리즈 4권을 다 다루고 싶지만 이 한권도 쉽지는 않아보인다. 고학년이라면 도전해볼 만하고 중학교에서 다루어도 아주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가장 감동적인 존재를 꼽으라고 한다면 (그건 참 난감한 요구라 할 수 있지만) 난 오기의 부모님을 꼽겠다. 나이가 있다보니 어쩔 수 없이 부모에게 가장 감정이입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나는 도저히 그들처럼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나라 엄마들이 자식에게 매우 헌신적이고 서양 부모들은 상대적으로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 줄 알았는데, 오기의 부모님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의 삶의 중심에 오기가 있었다. 그러나 비관하거나 슬퍼하지 않았다. 가족은 너무나 소중한 존재였고 그들은 끊임없이 행복에너지를 만들어냈다. 힘들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라 그걸 불행히 여기지 않았다는 뜻이다. 아빠는 눈물이 나올 순간에 가족을 웃겨주었고 엄마는 언제나 아이들이 품에 들어와 울 수 있도록 늘 준비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이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른다. 그들의 가족애는 다른 집 아이들까지 품어줄 정도였다. 미란다나 저스틴 같은. 사실 도움을 받는 존재와 도움을 주는 존재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힘든 이들에게 시혜적 태도로 접근할 일이 아니다. 그저 우리는 브라운 선생님이 첫번째 주신 금언처럼 '친절'을 내 삶에 스며들게 하면 될 일이다.

비아의 장에서 한밤중에 방문을 열었다가 오기의 방문 앞에 서 있는 엄마를 보고 쓴 대목이 나온다. <문가의 유령>이라는 장이다. "....엄마는 얼마나 많은 밤을 그렇게 서 있었을까."
그럼에도 늘 침착함을 잃지 않는 오기의 엄마는 얼마나 단단한 사람일까. 난 이 책의 모든 이야기의 가능성은 이 부모님에게서 나왔다고 본다. 내 주변의 누군가는 "감당할 수 있는 시련 외에는 주지 않으신다"는 말이 너무나 싫다고 했었다. 하지만 오기가 이 가정에서 태어난 걸 보면 그런 말이 실감난다. 나같은 작고 소심한 그릇이 아니라.
나아가서는 굳이 그릇을 따지지 않아도 좀 다른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고 함께 살 수 있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작가도 그래서 이 작품을 쓴 것이 아닐까.

저스틴의 장을 읽다가 간지를 끼워둔 대목이 있다. 그부분을 옮겨놓고 오늘따라 구구절절한 리뷰를 마치겠다. 아! 그리고 이번 주 안에 영화를 꼭 볼 것이다.(Wonder)

"그렇다면 이 우주는 거대한 복권 뽑기 기계에 불과하다는 얘기가 아닌가?..... 아니야, 아니야, 완전히 무작위는 아니야. 진정 완전한 무작위라면 우주가 우리를 완전히 버리는 셈이지만, 그건 아니다. 우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방법으로 우주의 가장 연약한 창조물들을 보살펴 준다. 맹목적으로 크나큰 사랑을 베푸는 너의 부모님. 평범한 사람이 된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누나. 너의 일로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하는 걸걸한 목소리의 그녀석. 그리고 심지어 네 사진을 지갑 속에 지니고 다니는 그 분홍머리 여자애까지. 설령 복권 뽑기 기계일지라도 우주는 결국 모든 것을 공평하게 만들어 준다. 우주는 자신의 모든 새를 저버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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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브레드위너 세트 - 전4권
데보라 엘리스 지음, 권혁정 옮김 / 나무처럼(알펍)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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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데보라 엘리스의 <나는야 베들레헴의 길고양이>를 읽고 시작한 이 작가의 작품읽기가 <아주 평범한 날에>를 지나 <브레드위너>에 이르렀다. 이 책은 4권으로 되어있어 호흡이 훨씬 길고, 등장인물도 많다. 전쟁과 인권침해의 현장을 다룬다는 면에서는 작가의 다른 책들과 일맥상통한다. 그중 이 책은 탈레반 정권의 폭압과 미군의 침공 사이에서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삶과, 이를 극복하려고 목숨을 걸고 싸우는 용감한 여성들의 삶을 다루었다.

영어에 약한 나는 제목인 'breadwinner'의 뜻을 몰라 찾아봐야 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 가장이라는 뜻이 있었다. 남장을 하고 시장을 누비며 가족을 먹여살린 두 소녀, 파바나와 샤우지아가 바로 breadwinner 였다. 그녀들이 남장을 했던 이유, 거기에 아프간 여성들의 인권문제가 있다. 여성의 신분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얼굴을 드러내는 것조차 금지되어 부르카와 차도르로 온몸을 휘감아야 하고 남자의 동행 없이는 거리에 나설수도 없는, 남자의 소유물이나 부속품같은 존재가 바로 여성이었던 것이다.

<1권 : 카불 시장의 남장 소녀들>에서 이러한 아프간 여성들의 모습이 잘 나타난다. 고등교육을 받은 파바나의 엄마도 탈레반이 정권을 잡은 후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 무력하게 집에만 있는다. 아버지는 영국 유학까지 갔다 왔지만 그건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라 숨겨야 하는 일이다. 결국 아버지는 탈레반에게 잡혀가 옥에 갇히고 고문을 당한 뒤 그 후유증으로 돌아가시고 말았다. breadwinner가 되어야 하는 파바나는 남장을 하고 시장에서 이런저런 일로 푼돈을 벌어 가족을 먹여살린다. 거기서 만난 또다른 남장소녀 샤우지아와 꿈을 공유하는 친구가 된다. 이런 극한의 땅에서 꿈을 꾼다는 것은 가능할까? 20년 후 에펠탑 앞에서 만나자고 약속하며 두 소녀는 각자의 험난한 여정 속으로 발을 디딘다.

<2권 : 위험한 여정>에선 두 친구 중 파바나의 고난의 여정이 펼쳐진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묻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엄마와 형제들을 찾아 홀로 떠난 여정은 참혹하다. 폭격과 지뢰의 위협 뿐 아니라 배고픔과 목마름은 습관이 되어야 하고 잘 곳도 씻을 곳도 없는 어린 소녀의 여정을 보니 내 일생 가장 힘들었던 날도 이 소녀의 하루보다는 편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루하루 생존의 위협을 받으며 살아야 하는 생활은 대체 어떨까. 지구상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상태로 살아가고 있는걸까. 이런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내가 너무 편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잠시잠깐 조금 힘들 때 징징거렸던 것이 후회된다. 파바나는 이 극한 여정에서도 사람을 만났고, 그들을 챙겼다. 폭격의 폐허 속에서 아기를 만나 데리고 갔고(세상에나 나 한 몸도 힘든데) 쉬러 들어간 동굴에서 한쪽 다리를 잃은 소년 아시프를 만나 그와도 동행했다.(비록 처음부터 끝까지 티격태격하지만) 깊은 계곡에서 발견한 집의 레이라와는 자매의 정을 나눴지만... 레이라를 잃게 되는 장면은 이 책의 가장 슬프고 몸떨리는 장면 중 하나...ㅠ 그런데 바로 그 현장에서 엄마를, 가족을 만나게 되는 것이 또 인생의 아이러니다. 이렇게 극한 상황 가운데서도 파바나는 글을 쓴다. 샤우지아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그것은 사소한 개인의 일기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역사이며 기록이다. 기록의 힘은 크다. 그래서 신은 인간에게 글쓰기의 욕망을 주신 것일까. 6.25때 전사한 학도병의 주머니에서도 편지글이 나왔었지...ㅠ

< 3권 : 라벤더 들판의 꿈>은 샤우지아가 겪는 이야기다. 샤우지아가 품에 간직한 사진이 있다. 보랏빛 라벤더 들판... 소녀는 그곳이 있는 프랑스로 가는 것이 꿈이다. 하지만 현실은 보랏빛은 커녕 흙먼지뿐이고 거지꼴을 하고 거리에서 살아가야 한다. 이 책에는 여자의 굴레를 벗고 일하며 싸우며 살아가는 용감한 여자어른 두 명이 나오는데 한 명은 파바나의 엄마고 한명은 위라 아줌마다. 위라 아줌마와 미망인 수용소에서 일하게 된 샤우지아는 자신의 꿈과의 괴리로 여러번 어깃장을 놓지만.... 결국 위라 아줌마의 뒤를 쫓아간다. 보랏빛 꿈은 그 다음으로 미루고, 한몸같던 개 재스퍼를 남겨두고....ㅠ

<4권 : 소녀 파수꾼>은 몇 년 후의 이야기다. 9.11테러를 일으킨 알카에다를 지원하는 탈레반에 대한 보복으로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고, 탈레반은 정권을 잃었다. 그러나 흩어진 탈레반들의 위협과, 남성들의 뇌리에 박힌 여성학대의 악습은 여전하다. 파바나의 엄마는 학교를 세웠고, 모두들 그곳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한다. 여학생들은 삶을 되찾아가지만, 그 댓가는 너무나 크다. 그곳에는 언제나 살해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 결국 회의차 나갔던 엄마는 그들의 손에 시신이 되어 돌아온다. 학교는 폭파되고, 현장에 남아있던 파바나는 테러리스트라는 의심을 받고 미군 감옥에 갇혀 고초를 겪는다. 도대체 작은 한 소녀의 어깨에 지울 수 있는 고난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그래도 완전히 비극으로 끝나진 않는다.
"아프가니스탄이잖아. 뭘 바란 거야? 혹시 해피엔딩이라도?"
샤우지아의 이 말로 4부작은 모두 끝나는데, 이 말이 묘하게 희망과 약간의 미소를 준다.

책을 읽으며 이 장면이 영화라면, 이라는 상상을 많이 했다. 영화의 원작으로 더할나위 없는 책이라는 생각이다. 과연,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캐나다와 미국에선 얼마전에 개봉되었고 2018년엔 다른 나라들에도 개봉된다고. 우리나라에도 오겠지? 꼭 보고 싶다.(자막 없으면 못보니 꼭 와야돼^^;;;) 이 책을 읽으며 아쉬움이 아이들과 함께 읽기에는 너무 길어서 힘들겠다는 것이었는데, 영화를 함께 보고 나서는 책을 읽을 아이들이 많을 것 같다. (그래도 역시 함께 읽기는 좀 힘들듯. 하긴 청소년소설이니.)

마지막 작가의 말을 인용하며 마치려 한다. 이런 작품을 쓰는 작가와, 그 작품을 읽는 독자들로 인하여 세상 어느 구석의 참혹함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프간 사람들의 삶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지금 파바나와 샤우지아, 위라 아줌마와 같은 개개인은 아프간 여성들의 더 나은 삶을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 이들을 지원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럴 의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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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지도로 우리 동네를 바꿨어요! 내가 바꾸는 세상 2
배성호 지음, 이유진 그림 / 초록개구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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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성호 선생님과 개인적으로 안면은 없지만 초등교사들 사이에선, 특히 사회 수업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모를 수가 없는 분이라 나도 알고 있다. 내가 볼 때 이 선생님은 홀로 우뚝하신 분이다. 무슨 뜻이냐면 도저히 흉내를 낼 수가 없다는 뜻이다.

이분의 특기가 지식이나 수업기법이라면 배워서 따라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면도 훌륭하실 것 같긴 한데 이분의 차별성은 좀 특별하다. 사회에 대한 넓고 깊고 세세한 관심, 그걸 내가 어떻게 해보겠다는 오지랖(?), 게다가 그걸 아이들과 함께 해내겠다는 집념, 결국 일을 만들어가는 추진력!!^^

나는 배성호 선생님이 아이들과 벌인 프로젝트의 과정을 웬만큼 알고 있다. 첫번째 초딩, 자전거 길을 만들다 책을 읽고 리뷰를 썼던 적도 있는데 (그게 벌써 8년전이네) 그 이후로 박물관을 바꿨어요, 안전지도로 동네를 바꿨어요, 학교 교문을 바꿨어요 등의 프로젝트가 이어졌다.(교문 프로젝트는 아직 책으로 안나온 것 같고 출간된 것들 중에서는 이 책이 가장 최근의 내용이다.)

이 책에 나오는 동네탐험과 마을지도 그리기는 흔히 하는 수업이다. 나도 올해 2학년 '마을' 단원에 이 활동이 나와서 했고 대략 만족했다. 만족한 이유는 일단 교과서와 지도서에서 요구한 활동을 달성했고, 아무 말썽없이 무사히 다녀왔고, 최종 결과물인 마을지도가 괜찮게 그려져서 복도 벽에 걸어놓으니 그럴듯했다는 점이었다. 보통은 이정도에서 만족하지 않나? 하지만 배성호 선생님은 다르다. 문제를 찾고 해결방법을 탐색하고, 실제로 해결의 과정에 참여하며 변화를 이루어낸다.

학급 아이들은 모둠별로 맡은 지역을 돌아보러 나갔다. 뭔가를 볼 때는 목적없이 보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식을 갖고 봐야한다. 이 학급은 '안전'이라는 눈으로 마을을 살폈다. 그러자 평상시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아이들은 위험한 곳과 안전한 곳을 스티커로 표시하고 붙임종이에 설명을 써서 붙이며 지도를 완성해 나갔다. 꼭 필요한 경우엔 양해를 구하고 인터뷰도 했다. 이렇게 마을의 안전 상황이 점차 파악되었다.

여기까지도 훌륭하지만 여기서부터가 문제다. 파악한 문제를 어찌할 것인가? 만약 나라면?- 얘들아, 여기는 이러저러해서 위험하니까 지나다닐 때 조심하자~ 정도로 구렁이 담넘어가듯.... 그리고 누가 쫓아올까 얼른 다른 주제로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부터가 배선생님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부분. 선생님은 아이들이 문제의 해결방법에 대해 생각하도록 계속 유도하고, 국민으로서 의무와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한다. 여러 협의 끝에 아이들은 구청장님에게 편지를 쓰고, 구청장님의 답장과 방문을 받게 되었다. 아이들의 의견이 즉흥적이거나 억지스러웠다면 이런 결과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선생님과 아이들이 밟아온 과정은 치밀하고 실제적이었기에, 어른들이 제기한 민원 이상의 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결국 아이들이 제기한 민원들은 대부분 해결되었고 마을은 한결 안전한 곳이 되었다.

아이들에게 권리를 가르치는데, 나부터도 미적거리게 된다. 아이들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으며 분별력 있게 적정선을 정할 줄 알며,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 할 것이라는 믿음이 내 안에 없어서이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가르치며 불의의 돌발상황도 수습하며 일이 만들어져 가도록 이끌 지도력에 자신이 없어서인지도 모른다. 하여간 다 된 결과를 책으로 읽으면 그런가보다 하실 분들도 많겠지만 동료교사로서 그 과정을 생각해보면 정말 대단하다 아니할 수 없다.

그렇게만 치부하지 말고 나에게도 조금이라도 적용점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백가지 지식이 있어도 한 가지를 실천하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 마을을 변화시키거나, 나라의 평화를 지키거나, 지구촌의 환경문제를 해결하거나 하는 모든 일도 결국 한걸음의 실천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교육활동에서 이 점을 늘 잊지 말고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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