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종소리 사계절 저학년문고 31
송언 지음, 한지예 그림 / 사계절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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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나는 이 책이 정말로 슬픈 이야기일거라 생각했다. 슬픈 종소리라니, 듣기만 해도 구슬프지 않은가? 그런데 표지 그림이 너무나 익살스러웠다. 아니나 다를까, 이야기 역시 송언 선생님 특유의 익살이 가득 담긴 유쾌한 이야기였다. 슬픈 종소리란 다름 아닌, 쉬는 시간이 끝나는 종소리였던 것이다. 이런!^^*

이 학급의 쉬는 시간은 시끌벅적한 모양이다. 선생님은 자리에 앉아 일기검사를 하고 계시고, 아이들은 이런저런 기상천외한 놀이들을 하고 논다. 급기야는, 죽은 듯 엎어져 있는 아이를 두고 아이들이 외친다. “선생님, 여기요! 김귀휘가 죽었어요!” 선생님의 대응은 더욱 걸작이다. “죽었으면 어쩔 수 없지. 저기 운동장 가 모래밭에 묻어 줘라. 살았으면 그냥 놔 두고.” 

신이 난 아이들은 ‘죽은’ 아이를 떠메고 복도와 계단을 지나 운동장으로 향한다. 아이들에게 운동장 대신 넓은 들판과 산이 펼쳐진다. 아이들은 호랑이도 되었다가, 산토끼도 되었다가, 마지막으로 모래밭에 도착하여 죽은 친구를 파묻어주려는 찰나, 책의 제목인 그 ‘슬픈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종소리와 함께 죽은 아이는 “애들아, 나 죽었다가 지금 살아났어!” 라며 발딱 일어나고, 3분 늦게 입실한 아이들을 너그럽게 용서하신 선생님은 말씀하신다. “자, 이제 공부하자.” 

아이들이 친구를 떠메고 계단을 내려가는 장면에서 아찔해지는 나는 어쩔 수 없는 이 땅의 소심한 선생이다. 나 같으면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그렇게 운동장에 나가는 걸 용납할 리가 없다. 그러다 계단에서 놓치기라도 하면 어떡하나? 다치면 그 책임을 어떻게 지나? 교실 앞뒤에서 뒹구는 애들을 보면 말한다. 어디서 뒹굴어! 니네 집 안방인 줄 아냐? 조심해서 놀아야 다치질 않지!(실제로 학교는 다칠 일 투성이다. 쉬는 시간에 맘껏 풀어놓았다가는 당장에 보건실 단골손님이 된다. 이 일을 어쩌면 좋을까?)

아마도 털보 선생님에게는 내가 모르는 내공이 있으신 게 틀림없다. 무질서 속의 질서, 자유스러움 속의 자연스러운 규칙, 아마도 그런 것이 있으리라. 그래서 참 부럽다.

아이들은 텅 빈 운동장에서도 즐겁게 논다. 상상 속에서 아이들은 못 될 것이 없다. 얼마 전 즐거운생활 시간에 아이들과 새의 날개를 만들었다. 자~ 날개 달고 나가서 놀자~ 별다른 계획이 없었던 나는 데리고 나가면서 궁리한다. ‘한 조씩 빨리 날기 시합을 할까? 멋지게 날기 대회를 할까?’ 운동장 구석 정자에 이르러 나는 입에서 나오는대로 말했다. “얘들아, 여기는 새집이야. 날다가 힘들면 여기에 와서 쉬어.” 

이야~! 흩어진 아이들은 날개를 펴고 힘차게 뛰어다닌다. 그 중에 몇 아이들은 매도 되고 독수리도 되어 다른 아이들을 쫓아다닌다. 쫓기던 몇 아이들은 다시 정자로 들어와 헥헥거린다. 어느새 매와 독수리는 정자에 들어올 수 없다는 규칙이 생긴다. 정자에 들어와 쉬던 한 아이가 쪼그리고 있다가, “선생님! 알 낳았어요.” 하며 정자 기둥에 붙어있는 둥그런 것을 어루만진다. 놀이에 있어선, 아이들이 어른들의 스승이다.^^*

우리에게도 ‘슬픈 종소리’가 울려 땀이 뻘뻘 흐르는 아이들을 데리고 교실로 들어왔다. 다음 날 일기에 보니 너무나 재미있었다고 쓴 아이들. 나에겐 준비 안 된 수업이 아이들에겐 행복한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가끔은 현장학습을 가서 넓게 펼쳐진 잔디밭에 풀어놓아도 “선생님, 심심해요. 뭐하고 놀아요?” 하며 게임이건 수건돌리기건 같이 놀아주지 않으면 못 노는 아이들이 있기도 하다. 또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놀이공원의 자극적인 놀이가 아니면 만족을 못하는 아이들이 많아지고... 이건 아마도 어릴 때부터 자유롭게 놀도록 놓아주지 못한 어른들의 탓일 것이다. 머리말에 송언 선생님은 이렇게 써 놓으셨다. “동산에 둥근 달이 떠오를 때까지 오늘도 내일도 신나게 놀아라. 너희들이 놀지 않으면 새 세상은 끝내 오지 않는단다.”

하지만 집의 아이들이건, 학교의 아이들이건 이렇게 마냥 놀도록 내버려 둘 수 없는 내 자신이 슬프기만 하다.


(2008년 다른 곳에 썼던 리뷰를 옮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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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천구백이 파랑새 사과문고 61
송언 지음, 최정인 그림 / 파랑새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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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에 쓴 서평이다. 어느덧 털보샘은 퇴직하셨고, 내가 이 책의 털보샘 나이가 되어가고 있다. 이 책은 중학년 권장도서로 많이 올라있고 송언 선생님 책 중에서도 많이 읽히는 책에 속한다. 10년만에 읽어보니 교실도 나도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든다. 난 털보 선생님을 좋아하고 샘이 참 존경스럽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털보선생님의 지도방식은 옛날식이고, 지금 식으로 따지자면 인권침해적 요소가 아주 많다는 사실이 눈에 보인다. 10년 전에도 난 이 책에서 약간 아슬아슬하게 느꼈었나보다. 아 그렇다고.... 털보샘을, 그리고 아이들이 털보샘께 받은 사랑을 부정할 수 있을까? 10년 전 서평을 보다가 문득 생각에 잠긴다.....ㅠㅠ) 

아래는 10년 전 쓴 글을 퍼온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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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작가인 송언 님은 현직 초등학교 교사이시다. 가끔 아침독서 소식지 등에서 이 분의 교실 이야기를 본 적이 있는데 느낌이 참 좋았다. 나이 지긋하신 남자 선생님이 느긋하게 꼬맹이들을 사랑하시는 교실은 여유가 넘친다.

주인공인 김건하가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한 것이라 하니 그럼 이 책속의 선생님은 바로 작가 선생님? 책 속에서 본 선생님의 모습은 느긋하고 정이 넘치시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무척 집요하시기도 했다. 선생님의 다른 모습을 보게 된 셈이라고 할까? 

스토리는 무척 단순하다. 김건하(별명 김 브라보)는 가게를 하시느라 바쁜 부모님 밑에서 다소 방치된 채로 크는 아이다. 하지만 구두쇠인 엄마 때문에 사고 싶은 걸 맘대로 사지는 못한다. 그런 김 브라보는 요즘 유행하는 ‘비드맨’을 무척 갖고 싶어하는데 어느날 엄마 화장대에 있는 돈을 집어온 박마법의 선심(?)에 넘어가 비드맨을 사게 된다. 하지만 선생님께 사실이 들통나고, 선생님은 비드맨 값 칠천원을 돌려주라는 판결을 내리신다. 계속되는 선생님과 김브라보의 줄다리기... 마침내 선생님은 김브라보의 별명을 김칠천으로 바꾸시고, 하루에 백씩 이자를 붙인다고 하시며, 김 만이 되면 경찰에 신고하든지, 전학을 보낸다고 하신다. 별명은 계속 숫자를 더해가고, 김 구천구백이가 되는 날, 마침내 해결이 된다.

학교에 있다 보면 별 일이 다 있다. 이런 일 정도는 그리 큰 사건 축에 끼지도 못한다. 어찌 보면 사소한 이런 일이 이렇게 길고 재미있는 동화의 소재가 되다니, 이렇게 디테일한 상황묘사는 현직 교사가 아니면 쓸 수 없는 이야기다. 킥킥대며 재미있게 읽었다.

여기 나오는 선생님은 누구나 본받아야 할 이상적인 선생님이라 할 수는 없겠다. 7000원 사건으로 그렇게 지루한 줄다리기를 하시는 걸 보고 있자니 훈수라도 한 수 두고 싶어질 지경이다.^^ 경찰서에 신고한다는 둥 전학 보낸다는 둥의 협박도 썩 본받고 싶은 방법은 아니다. 하지만.... 하나밖에 없는 우리 아들이 이 선생님 반이라면 어떨까? 하는 상상에 즐겁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설익은 교사인 내가 “선생님 그건 아니잖아요.” 할 수 없는 이유가 그것이다. 쥐어짜지 않아도 느긋하게 배어나오는, 억지로 꾸며낼 수 없이 드러나는 아이들에 대한 선생님의 사랑이다. 

김건하가 김 칠천에서 김구천구백이가 될 때까지 학교에서, 소통이 부족한 가정에서 겪은 마음의 부담은 엄청났으리라 짐작된다. 말이 7000원이지 그걸 만들어낼 방법이 없는 김건하에게 그 돈은 백만원만큼이나 암담한 액수일수도 있으니까... 선생님도 그것을 아시는지라 어느 날 고개 빳빳이 들고 울부짖으며 대드는 것도 참아주신다. 마지막 날 최후의 방법으로 아버지께 건하를 보내고, 찾아 온 아버지와의 상담이 무사히(?) 끝나자 내 입에서도 한숨이 새어나왔다. 첫째 이유는 선생님께 공손한 건하 아버지의 태도 때문이고(“예, 그런 일이 있었군요. 당연히 갚아야지요.”하시는 건하 아버지. 요즘 이렇게 하시는 아버지가 흔할까?) 두 번째 이유는 “허어, 식구끼리 이렇게 말문이 꽉 막혀서야.” 라는 아빠의 말씀 때문이다. 이제 건하는 곤란한 일이 생겨도 이렇게 마음고생을 길게 하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

마침내 돈을 갚던 날, 선생님은 건하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신다. “김 브라보, 그동안 마음고생이 많았다. 빌린 돈은 꼭 갚아야 한다는 걸 너희들에게 일러주고 싶었을 뿐인데,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릴지는 선생님도 예상 못했다. 미안하구나.” 건하, 김 브라보는 뚜벅뚜벅 자리로 들어가 앉으며 특유의 이런 멘트로 책을 마무리한다. -오랜만에 기분이 브라보이다.-

다른 누군가가 책을 읽고 선생님의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둥 따진다면 난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싶다. 이제 6학년이 된 김 브라보는 축구를 하다가도 선생님을 보면 멀리서부터 달려와 “쌤! 브라보!” 한다니, 이 모든 에피소드는 누구에게나 피와 살이 된 셈이리라. 

송언 선생님 브라보! 이 책을 덮는 내 기분도 브라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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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처럼 되고 싶지 않아 새로고침 (책콩 청소년)
아베 나쯔마루 지음, 김지연 옮김 / 책과콩나무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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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서재를 만들기 전에 서평을 올리던 곳은 회사가 몇 번이나 바뀌었다. 그래서 내가 쓴 서평을 한번에 찾아볼 수가 없고 책을 찾아 들어가야 한 편씩 볼 수 있다. 가끔 생각나는 책이 있으면 찾아본다. 아예 없어지기 전에 가끔 하나씩 옮겨놓을 생각이다. 2011년에 썼던 서평을 옮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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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빠를 얼마나 사랑하는 줄 아세요?' 그림책을 읽던 딸과 아들이 고등학생, 중학생이 되었다.

지금도 남편은 생각날 때마다 그 책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책이라며 아기가 있는 아빠들한테 권한다. 그 옆에선 우리 애들이 '귀여운 우리 아빠' 라는 표정을 지으며 비웃고 있고.....^^;;

 

그런데 난 며칠 전 도서관에서 이런 제목의 책을 보고 말았다.

'아빠처럼 되고 싶지 않아'

당장 빌렸다. 그리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호들갑을 떨며 가족들을 불렀다.

"짜잔! 이 책 읽어볼 사~람?"

그러자 남편이 인상을 쓰며 세상에서 가장 나쁜 책이라면서 당장 갖다 주란다.^^;;

 

책에 관심이 없어진 우리집 청소년들은 제목에만 잠깐 관심을 가질 뿐 내용에는 무관심하다. 할 수 없이 내가 읽었다.

읽기 전의 예상은 늘 빗나가곤 하는데 이 책도 2가지가 내 예상을 빗나갔다.

첫째, 단편집이라는 것.

둘째, 아주 나쁜 아빠가 등장하고 아들과 심각한 갈등을 겪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점.

우리와 비슷한 평범한 가정의 평범한 부모들이 나온다.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이 나온다. 연령은 초등학생부터 중학생 정도.

밖에서 볼 때 화목해 보이는 가정도 내부에서는 크고 작은 갈등을 겪기 마련인데 이 책에 나오는 갈등은 딱 그정도이다. 심각한 문제 부모도, 심각한 문제 자녀도 없다. 그러나 갈등은 생긴다. 그것이 인생이므로.

 

이 책에서, 갈등에 대처(대처라는 말이 좀 거창하게 들린다)하는 부모들의 태도를 보면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감탄스럽지는 않다. 하지만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 나도 저 정도의 부모는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표제작인 <아빠처럼 되고 싶지 않아>는 일본의 중학교 2학년 교과서에 실린 작품이라고 한다. 사토시는 평범하고 얌전한 편인 중학생인데 진로 선생님께 고등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했으며 아빠처럼 되고 싶지 않다는 말까지 했단다. 선생님께 그 말을 들은 후 엄마는 고민에 휩싸였고, 밤늦게까지 일에 바빠 아들과 별 대화도 나눠보지 못했던 아빠는 모처럼 시간을 내어 아들과 낚시를 가게 된다.

여기에 아빠의 명대사가 몇군데 나온다.

"어쨌든 어떤 인생이든 고통도 따르고 기쁨도 따르는 법이지. 다양한 사람이 있는 만큼 다양한 인생이 있어도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저기, 아빠. 내가 아빠처럼 되고 싶지 않다고 한 말 있잖아요........ 별 뜻은 없었어요."

"그래......... 그런데 난 아빠처럼 되고 싶다고 하는 자식이 더 별로다."

시쳇말로, 참 쿨하지 않은가? 난 쿨한 것도 부모의 미덕이라고 본다. 자식일에 쿨해지기는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난 결국 사토시가 고등학교에 갔을 거라고 생각한다. 뭐, 안갔더라도 제대로 된 길을 찾았을 거라고....^^*

 

<울어도 괜찮아>에 나오는 엄마는 평범해 보이지만 참 현명한 엄마다. 아이들의 괴롭힘을 받는 울보 아들 히데토. 내가 상상하는 보통 엄마의 모습은 바보같이 울지 말라고, 그렇게 징징대니까 더 만만하게 보는 거 아니냐고 자식을 잡든가, 아님 분노에 이성을 잃고 씩씩거리며 학교에 찾아가는 엄마다. 그런데 이 엄마는 그 어느쪽도 아니다. 우는게 뭐 어떠냐고, 울어도 괜찮다고 한다. 자식이 우는게 가슴아프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래서 이 엄마는 참 은근히 훌륭한 엄마다.

 

<오랜만의 식탁>에서의 아버지 유지는 서점의 월급쟁이 점장인데 늘 늦게 퇴근해서 가족과 저녁을 함께하지 못한다. 서점에서 책을 훔치는 학생을 잡아 부모에게 인계한 날, 모처럼 일찍 퇴근하여 가족과의 식사 시간을 갖는다. 별다른 내용은 없는데 아빠의 마음이 많이 공감이 된다.

 

<버릴 수 없는 것> 이 작품을 우리반 아이들에게 읽어주고 싶어졌다. 버려진 새끼고양이를 가까스로 살려 사랑하며 키우던 가족은 엄마와 딸이 앓는 천식이 바로 고양이 때문임을 알게 된다. 고양이를 버려야 한다는 아빠와 자신들이 아파도 가족같은 고양이를 버릴 수 없다는 엄마와 딸.... 아빠는 과연 고양이를 버릴 수 있을까?..... '버리진 않더라도 남을 주든가 해야되는거 아니야?' 라고 나는 답답해 하지만, 애완동물을 키워 본 사람들의 생각은 다를지도 모르겠다.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기에 좋은 소재인 것 같다.

 

이 외에도 몇 편의 작품이 더 있다. 청소년용으로 나온 책인데, 우리반(5학년) 아이들과도 함께 읽고 싶다. 요즘은 책 수준이 너무 높게 잡혀 있어서 고학년용 책을 읽혀도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청소년용이면서도 고학년이 함께 읽어도 괜찮겠다 싶다. 야한 잡지를 숨겨두고 읽는 중학생 이야기 부분이 쬐금 걸리기는 하지만.....(그것도 실은 지당한 이야기다)

 

여러 편의 단편이 모두 가족을 소재로 하고 있고 잔잔한 느낌도 비슷한 듯 하지만 조금씩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확 빠져들진 않지만 은근히 매력있는 책인것 같다. 아마 한번 더 읽으면 더 빠져들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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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캐러멜! 중학년을 위한 한뼘도서관 3
곤살로 모우레 지음, 배상희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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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아이들과 하는 돌려읽기의 권수를 줄이고 기간을 늘리며 이야기를 좀더 나눠보려고 한다. (그래도 한 학기 한 책 읽기보다는 조금 더 다룰 생각이다. 애들보다도 내가 더 싫증을 잘 내서 한 권으로 푹 고아먹는 슬로리딩은 나에게 딱 맞지 않는다. 두세 가지 정도 활동하면 후딱 다음으로 넘어가고 싶다. 나부터가.^^) 이야기 나눌 때 함께읽은 책에 대해서도 나누지만 자신이 읽은 책을 소개해주는 활동도 좋을 것 같다. 그 주제 중 하나로 '가장 슬펐던 책'은 어떨까. 그때 나는 아이들에게 이 책을 소개하겠다.

작가는 스페인 사람인데 사하라 난민촌을 자주 찾는다고 한다. 이 책은 그 척박한 사하라사막을 떠돌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하라위족의 슬픔에 대한 이야기이며 특별히 그중 듣지 못하는 소년 코리와 그의 소중한 친구 낙타 캐러멜의 이야기다.

모로코에게 쫓겨나 국제적으로 소외된 민족, 장애로 친구들 사이에서 소외된 아이, 나무 한 그루도 없는 불모의 환경에서 생존해야 하는 삶. 생각만 해도 너무 최악이라 한숨만 나온다. 이런 곳에서도 아름다움이나 예술이 나올 수 있을까.

코리는 전혀 듣지 못하니 말도 하지 못한다. 사람들의 입이 움직이는 걸 보고 저기에 무슨 뜻이 있나보다 할 뿐이다. 그러던 중 외삼촌댁의 낙타가 새끼를 낳았고, 코리는 캐러멜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친구가 되었다. 낙타가 입을 우물거리는 걸 말하는 것으로 생각한 코리는 그것에 귀를 기울이고, 친구의 마음을 읽어내게 된다. 선생님을 졸라 쓰기를 배우고 그것을 글로 옮긴다. 그것은 곧 시였다. (바로 위의 내 생각은 보기 좋게 틀렸다. 시는 아름다움이고 예술이다.)
서툰 글씨로 처음 쓴 시는 이러했다. 일식을 보고 쓴 시다.
"해와 다리 사랑해서 하느레서 만나지요."

이런 대목에서 감동하는 한편, 그 선생님이 존경스러웠다. 그 척박한 환경에서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아이에게 글을 가르치는 일을 어떻게 하셨을까? 나라면 가능했을까?

둘의 사랑은 깊어만 가는데, 계속되는 기근으로 숫놈인 캐러멜을 희생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어른들의 결정이 떨어진다. 그건..... 제단 위에서 참수되는 것이다. 아아.... 생각만 해도 내 몸이 떨릴 지경이다. 그토록 사랑하던 코리의 마음은...... 울고 울고 울고 또 울지만 상황을 돌이킬 순 없다.

어느 밤 코리는 간단한 채비를 하고 캐러멜을 데리고 마을에서 도망쳤다. 그러나 그곳은 사하라사막. 아무리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 없다. 그 때 캐러멜이 보내준 시가 너무 슬프고 너무 아름답다.

이건 내가 우리 엄마 뱃속에서
꿈꾼 땅이 아니야.
이건 들판이 아니야.
이건 강이 아니야.
이 외로움은 죽은 거야.
달콤한 풀들의 쓸쓸함이 아니야.

내 가슴은 남쪽으로 가라고 하지만
내 코는 풀 냄새도, 물 냄새도,
나무로 둘러싸인 정겨운 언덕 냄새도 맡지 못해.

우리는 길을 잃었어, 작은 코리.
하지만 나의 샘물은 너고
너의 풀은 나야.

이런 사랑 노래가 또 있을까? 어른들에게 발견된 두 친구는 마을로 돌아왔고 현실을 받아들였다. 코리는 묵묵히 캐러멜의 떠나는 길에 동행했다. (아이가 이렇게 강할 수가 있을까? 생각만 해도 살이 떨리는데....) 그리고 캐러멜의 마지막 시를 받아적었다.

내 생명이 꺼진다고
눈물짓지 마.
우리가 함께 산 날을 생각해.

난 죽음을 받아들였어.
난 너의 기억을 안고
하늘의 초원으로 가는 거야.

네가 사는 동안
난 항상
너와 함께 있을게.

넌 아직 알 수 없지만
네가 밤을 맞으면
너도 그곳을
이해할 거야.

작은 코리, 내 하나뿐인 친구......


이 책의 마지막 장은 에필로그 같다. 코리는 어른이 되었고 시인이 되어 있다. 그는 아직도 캐러멜을 생각하며 시를 쓴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을 보며 생각한다. '저기 캐러멜이 있구나, 저들의 힘 속에, 저들의 삶 속에.'
코리의(캐러멜의) 시와 그들의 이별에서 미어지는 슬픔을 느끼지만 이야기는 그 민족의 인내를 상징하듯이 굳세게 끝을 맺는다.

세상에 슬픈 이야기가 많다. 슬픈 이야기도 세상에 나온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 책과 함께 아이들에게서 슬픈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고 싶다. 슬픔에 잠기지는 말고 슬픔으로 씻어내 말개진 우리의 모습을 한번 볼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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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의 첫 책 - 제18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반달문고 35
주미경 지음, 김규택 그림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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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고 특이한 느낌의 단편동화집을 읽었다.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을 받은 책인데, 수록된 6편의 단편이 각각 개별작품이라고 하기엔 인물과 소재가 살짝 겹치고, 연작이라고 하기엔 관련성이 별로 없는 것 같고.... 심사평에 보니 '살짝 스치면서 조금씩 이어지는 이야기들' 이라고 표현되어 있다.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썼다는 뜻이 아닐까? 하여간 느낌이 독특했다.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창작물들 중에서 독특하기는 쉽지 않으리라. 그래서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와우의 첫 책>에서 주인공은 개구리 와우다. 와우에게 어느날 '이야기'가 '찾아왔다'. 그건 작가 구렝 씨의 이야기였는데 책을 10권까지만 낼 수 있다는 숲법에 따라 구렝 씨는 그 이야기를 와우한테 넘겨줬다. 와우는 숲에서 잡아먹히려던 위기마다 이야기를 들려줬고 그때마다 이야기는 생각지도 못한 길을 찾아 새롭게 흘러갔다. 완성한 이야기를 구렝 씨에게 다시 돌려주러 간 와우는 "이건 자네 이야기야." 라고 인정을 받는다. 드디어 와우의 첫 책이 나온다.

이야기의 발단이 이리 저리 흘러가 위기와 절정을 맞고 결말까지 이르는 과정을 나는 흥미깊게 지켜보았다. 아이들은 그런 걸 보진 않겠지만.^^ 위기철 작가님의 책에서 "이야기는 살아있는 유기체이다." "이야기가 이야기를 쓴다."라는 표현을 본 적 있는데 이 작품에서 실감을 한다. 아이들과 이야기만들기 수업을 할 때 이 작품을 활용해야지 라는 아이디어가 마구마구 떠오른다.^^*
.
두번째 작품 <킁 손님과 국수 씨>는 내게 두번째로 느낌이 있는 작품이었다. (이 제목은 앞 작품에서 구렝 씨의 여덟 번째 책 제목으로 나옴) 어느 가을 밤 국수 씨의 칼국수집에 찾아와 칼국수 반 그릇을 주문하고 국수 값으로 도토리를 부어주고 가버린 킁 손님. 얼마나 배가 고팠던지 후루룩 후룩 국수 먹는 소리가 노래처럼 울려퍼지던 킁 손님. 그의 정체는 뭘까? (킁이니 멧돼지일까? 뭐 이런 상상만 해볼 뿐. 근데 왠지 애틋해지는. 내가 칼국수는 잘 못하지만 한그릇 가득 끓여주고 싶어지는...)

세번째 <어느 날 뱀이 되었어>에서는 다시 뱀 이야기가 나온다. 이상한 허물을 써보았다가 뱀이 되어버린 아이.... 다시 돌아오기 위해 백방으로 방법을 찾는다. 그러나 아, 반전도 이런 반전이.... (근데 내겐 느낌이 조으지 아니하다. 그래도 뱀은 싫단 말이야 ㅠ)

곧 헐릴 비둘기아파트와 그 앞 백년된 버드나무가 이야기를 나누는 <그날 밤 네모 새를 봤어>가 네번째 이야기.

다섯번째 <당깨 씨와 산딸기아파트>는 가장 내 맘에 드는 이야기. 난 이런 따뜻하고 흐뭇한 느낌을 좋아한다. 반달곰 당깨 씨는 페인트공이다. "페인트칠하러 왔당께요!" 사투리도 순박하다. 5층 아파트에 페인트칠을 하러 왔는데 서로 교류가 없는 다섯 집은 전혀 합의된 바가 없는 상태. 결국 각 집에서 원하는 그림을 그려주기로 한다. 여기에서 각 집의 바람과 사연이 나온다. 그림이 완성된 5층 아파트의 모습이 아기자기하고 예쁘다. 자신의 일도 열심히 하면서 사람들의 다리도 되어주고 자신의 꿈도 살며시 키우는 당깨 씨. 이런 사람이 많으면 좋겠다. 음, 그리고 아이들과 당깨 씨에게 의뢰할 자기집 벽 그림을 그려보는 활동도 재미있겠다. 이유도 서로 나누고.

마지막 이야기는 <고민 상담사 오소리> 자나깨나 청소에 집착하는 청소박사 오소리는 새로 이사 온 집에서 졸지에 고민상담사가 된다. 전주인이 떼지 않고 간 간판 때문이다. 하지만 본의 아니게도 어찌어찌 하다보니 고민해결을.... 그 과정이 웃기고 작가의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두번째 의뢰인 욕쟁이 노루 할머니를 보면서 각반의 말썽쟁이들이 생각나 잠깐 짠해진 것은 참말로 직업병이라 할 것이다. 노루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욕을 하면, 싫어하면서도 한 번쯤 나를 쳐다본단 말이지. 그렇게라도 나를 봐주고 입에 올려주면 좋지."
관심끌기라는 어긋난 목표행동의 대표적인 사례.(또 직업병.....)
마지막 의뢰인으로 또 뱀이 나온다. 그의 고민은 "걷고 싶어요." 그 고민을 묵묵히 해결해주는 오소리의 모습을 감동적으로 비추며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리뷰를 쓰다보니 한 권의 책 안에 정말 많은 것들이 담겨져 있구나 다시 느끼게 된다. 130쪽 정도의 분량으로 중학년에게 단편을 읽힐 때 가장 적당할 것 같고, 각 편은 짧으니 저학년에게 읽어주기로도 괜찮겠다. 고학년은 고학년대로 물론.....

<와우의 첫 책>은 동화로서 작가의 '첫 책'이다. 첫편부터 이글이글한 작가의 창작의지를 보는 것 같았다. 아주 싱싱한. 숲법에는 책을 10권까지만 낼 수 있다지만 이곳은 그렇지 않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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