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최고로 특별해지는 법
카트레인 베르에이큰 지음, 에바 마우튼 그림 / 푸른날개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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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최고로 특별해지는 법 / 카트레인 베르에이큰 / 푸른날개>

사람들은 모두 특별해지기를 원한다? 글쎄 그런 것도 같고 아닌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나는 어떤가? 나는 평범한 내가 그럭저럭 괜찮다. 어디서든 Top보다는 중간 조금 위, 중상 정도의 위치에 있으면 안심이 된다. 그렇지만 속속들이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몹시 부럽다. 엄청 똑똑한 사람, 절대음감을 가진 사람, 뭐든 쓱쓱 그리는 사람, 감동적인 책을 쓰는 사람 등등.... 그러고 보면 나도 특별해지고 싶은 욕구가 없다고는 볼 수 없겠다.

이 책의 얀은 이름부터 시작해서 외모, 능력, 성격 등등 뭐하나 튀는 게 없는 아이다. 그게 지겨워진 얀은 특별해지겠다고 마음먹는다.
얀은 친구 니나와 이런 이야기를 하다 세계기록을 세운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그러나 지켜보니 그들은 하나같이 기괴할 정도로 별 도움 안되는 일에 집착하는 모습이었다. 한발 들고 뛰기, 손톱 기르기, 타자 치기, 트림 길게 하기 등등.... 일련의 경험 후 얀은 "나의 특별함은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나를 내가 스스로 좋아한다는 거다." 라고 결론내린다.

그냥 "나는 꼭 특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평범하면 어때!" 해버리면 안되나? '특별하지 않은 특별함'이라며 정신승리를 할 필요가 있나?^^ 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러면 이 책의 주제 자체를 부정하는게 될테니.... 사람들은 모두 특별함을 추구하는게 거의 사실이다. 그게 지나쳐 주변을 힘들게 하거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그러나 사람들은(아이들은) 대부분 평범하며, 긍정적으로 특별한 사람은 비율적으로 그리 많지 않다. 그러니 평범의 미덕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 자기 분수를 알고 나름의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 세상을 돕는 일이다. 앗, 그러고보니 그게 특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아주 재밌지는 않았다. 학급 전체와 함께 읽을만큼 우선적인 매력은 못느꼈다. 하지만 얀처럼 특별함에 목맨 아이가 있다면 읽고 상쾌해질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왜 꼭 특별해야 되는데?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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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질리언스 - 다시 일어서는 힘
천경호 지음 / 교육과실천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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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실수를 한다. 실패와 좌절을 겪는다. 상처를 받는다. 온실의 화초처럼 별 위험 없이 살아온 나도 되돌아보면 아찔하고 아득한 일이 한두번이 아니다. 이불킥 할 일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그런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키웠다. 만족스럽진 않지만 전의 나보다는 조금은 나아진 나를 본다. 그것은 그 수없는 실수를 만회할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고, 이해나 용서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고, 한 번의 잘못으로 나를 규정당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이제 와서 느낀다. 그런 내가 나보다 어린 세대의 사람들, 말하자면 자식이나 제자들을 볼 때 왜 그만큼의 여유를 찾지 못하는 것일까? 자식은 한번 발을 헛디뎌 깊은 수렁에 빠질까 불안해하고, 제자는 한 시기의 못된 짓에 정나미가 떨어져 사랑하기 어려워한다. 이 책은 초반부터 이런 나를 위해 쓴 책임을 역설하고 있었다.

학습할 준비와 태도가 전혀 되어있지 않고 주변을 힘들게 하며 주변인의 고통을 아랑곳하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 소위 '힘든' 아이들이다. 이런 아이들은 어느 학급에나 있지만, 유독 어떤 학교 어떤 지역에 유난히 많기도 하다. 그것은 그 아이들의 양육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 아이들 스스로의 힘으로 단번에 끊을 수 없는 고리와 같은 것이다. 그런 아이들은 학교에서라도 안정감과 신뢰감을 느껴야 한다. 이 결정적인 역할은 아무래도 교사가 맡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교사의 헌신과 노력에만 모든 것을 맡겨야 할까? 학생 개인의 노력을 강요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처럼 교사도 마찬가지다. 교사도 신뢰받는다는 확신이 필요하고 공격당하지 않는 안정된 상태에서 아이들을 상대할 여유가 필요하다. 낭떠러지에서 한발 잘못 디디면 굴러떨어질 상태에서 인간은 생존과 방어를 생각하지 사랑과 헌신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리질리언스의 기본은 '신뢰'에 있다. 우리가 작은 역경에도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는 것은 불신과 그에 따른 회의 때문이다. 지탱할 것이 있어야 짚고 일어날 수 있듯이 나를 지지해줄 누군가가 있다는 확신이 우리를 일으켜 세운다. 그러나 사회는 우리에게 불신을 강요한다. 사회를 반영하는 학교 또한 그렇다. 친구들간의 갈등을 학교폭력이라는 프레임으로 보게 만들고 교사의 의도를 재단하고 의심하며 교사는 학부모를 극도로 경계한다. 이 안에는 각자도생만 있다. 즉 리질리언스는 없다.

어떤 한 해, 나는 무방비 상태에서 무지막지한 아이들을 맡았다. 아이들과 소통이 비교적 원활했던 나에게 처음 닥친 시련이었다. 학폭에 준하는 사건들은 끊임없이 일어났고 대화와 기다림의 태도는 방임과 무대책으로 비난받았다. 그동안 학폭의 시스템을 알지도 알 필요도 없었던 나는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들어 주변의 충고대로 모든 사건에 적자생존(적어야 살아남는다)을 적용하여 기록과 증거를 보존하는 어설픈 형사짓을 했지만 그것 또한 상처로 남았다. 아이들은 12월까지 알뜰하게 사고로 하루하루를 장식하다 2월이 되어서야 나를 좀 놓아주며 그나마 무사히 다음 학년으로 올라갔다. 그동안 아이들의 언어폭력성, 타인에 대한 무책임한 태도, 무배려와 무매너 등이 내 안에 화를 쌓았고 내가 그들을 싫어해서인지 그들이 나를 존중하지 않아서인지 우리 사이에 신뢰의 느낌은 없었다. 내 마음은 차갑게 닫혔고 자격지심으로 예민해졌으며 무너지지 않겠다는 오기로 일년을 버텼다. 그리고 다음 해에도 같은 학년을 맡았다. 이 아이들도 명성이 자자했다. 소위 학년 넘버원도 우리반에 있었다. 말썽도 잦았다. 그런데 다른 것이 있었으니 나에 대한 호의적인 태도였다. 이유는 나도 모른다. '우리 선생님'이라는 의식이 강했고 나의 아주 작은 특기에도 찬사를 보냈으며(^^;;;;;) 실수도 그럴 수 있는 것으로 여겼고 돌아서면 잊을지라도 일단은 내 말을 귀담아 들었다. 나는 출근하는 발걸음 자체가 달라진 것을 느꼈다. 전 해에 하지 않았던 여러가지 학급활동들을 시도했다. 그 힘은 그들의 나에 대한 호의와 신뢰에서 나왔다. 어른도(교사도) 이러하다. 하물며 아이들이야.

저자는 아이들의 리질리언스를 키우는데 개인요인으로 자기조절 능력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이에 대한 이론적인 내용도 이해하기 쉽게 잘 설명하고 있다. 또한 이를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교실에서 실천한 내용들도 소개했는데, 저자의 교사로서의 내공을 느끼게 했다. 인지편향이 있는 아이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그 아이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이가 밉다. 그리고 여간해서는 고쳐지지 않아 좌절을 안긴다. 저자는 이를 아이 스스로 느끼고 고치기 위해 장기적인 활동을 했다. 월별 시 외우기와 관련 활동들. 보통은 동시를 외우는데 저자는 세계의 명시들을 활용했다. 생각해보지 못한 방법이었다. 고학년과는 좋은 활동이 될 것 같다. 교사의 문학적 소양도 높아야 하겠다. 두번째는 명언 읽고 글똥누기. 이것도 참 좋다. 성찰의 거울이 될 만하다. 전에 고전읽기를 강권하는 학교에서 난감함을 느낀 적이 있었는데, 이 정도로 적용하면 정말 괜찮겠다. 책도 더 읽고 명언도 많이 찾아봐야겠다. 하여간 유식해야 한다.^^;;

3장은 가족요인을 다루고 있다. 부모의 모습은 무의식적으로 자녀의 모델이 되며 평가의 대상도 된다. 그런 의미에서 부모의 처신은 매우 중요하지만, 이런 말조차 배부른 소리인 가정도 물론 있을 것이다. 그래도 부모님들이 이런 내용을 한번 보시기는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관계는 상대적이고 부모도 격려가 필요한 존재이니 아이들을 통해 부모님을 격려하는 방법도 교사들이 고민해 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사실 가족요인을 만들어내는 많은 부분이 사회의 역할이다. 우리나라가 이 부분에서 많이 성장했으면 한다. 학교에서 밤까지 보육하겠노라며, 교사들에게 묻지도 않고 생색을 내는 정치인들이 부모가 자녀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는데 정치력을 썼으면 한다. 이런 내용은 4장 사회요인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교육의 의미를 학생의 행복, 나아가서 사회의 행복에서 찾는다. 행복. 참 흔한 말이다. 지난 교육감 때는 행복독서교육이라는 말이 공문과 함께 내려왔고 그때 생긴 행복독서축제라는 우리 학교 행사명은 아직도 고정되어 있다. 이런 식으로 교육과 행복은 흔히 함께 명명된다. 그런데 행복이 무엇인가? 편안하고 만족스러운 상태, 욕구가 충족된 상태를 말하는가? 그러면 서로의 행복이 상충할 때 교육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기서 저자의 성숙한 안목을 보게 된다. 저자가 말하는 행복은 '올바른 일을 행했을 때' 생기는 것이다. Helper's High에서 보듯이 타인을 사랑하는 행위, 남을 돕는 행위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는 것이다. 결국 교육의 목적은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돕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의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리질리언스를 갖도록 가정과 학교와 사회는 안전망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초등 동료교사이자 페친으로 평상시엔 나처럼 평범한 한 개인으로 보였던 저자의 통찰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교사들 안에는 이런 내공을 은근히 갖춘 이들이 많다. (나는 아니어서 좀 아쉽지만...^^;;;) 물론 나처럼 진짜로 평범하거나 아니면 평균도 못하는 이들도 없지는 않다. 그리고 정말 개념없었던 과거에 아이들에게 트라우마를 남긴 교사들이 꽤 있었던 것을 안다. (그렇다. 나도 아이에게 상처를 주고 후회한 적이 있다.ㅠㅠ) 그러나 그 이유로 교사들을 매사에 세모눈으로 보며 가장 중요한 학생, 학부모 관계에 불신을 조장하는 행위는 없었으면 좋겠다. 교사불신. 교사자학. 교사위축으로 이어지는 지금의 세태가 나는 늘 걱정스러웠는데, 이 책을 읽으며 교육을 위해서 꼭 극복되어야 할 문제라 생각되었다. 교사도 적당한 포지션에 서있지 못하면 사지를 결박당한 느낌일 수가 있다. 정말 특별한 사람 외에는 홀로 극복할 수가 없다. 교사도 학생도 리질리언스가 가능한 분위기라면 학교는 지금보다 훨씬 행복할 것이다. 거기에 교사들의 각성과 노력도 필수임은 물론이다. 나는 당장 내일부터 귀염둥이들에 대한 애타는 인내심을 늘려야 한다. 확신을 갖고.

독서모임샘들과 이 책을 다시 한 번 읽고 싶다. 널리 읽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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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실이와 고구마 도둑
허윤 지음, 김유대 그림 / 거북이북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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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대 님의 그림 때문에 집어든 책이다. 그림이 책을 맛있게 하는 그림작가들 중 한 분이다. 게다가 개 이야기인 것 같아서 더욱 손이 갔다.

화자인 개 보보스는 흰색 포메라니안이다. 우와~ 스타일 멋지고 비싼 개잖아? 그런데 하루아침에 시골집에 맡겨지는 신세가 된다. 집안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냄새나는 마당 구석에서 더러운 판자집(개집)에 묶여 살아야 하는 보보스는 절망한다. 이름까지 복실이로 바뀌고 말이다.

어렸을 때 보던 개들은 늘 이랬다. 당연한 줄 알았기 때문에 아무 느낌이 없었는데, 지금 보니 굉장히 힘겹게 느껴진다. 사람의 생각과 느낌은 참 쉽게 변하고 자기중심적이다.

그런데 보보스, 아니 복실이는 시골생활을 하며 달라진다. 할아버지가 복실이에게 밤에 고구마밭을 지키는 임무를 준 것이다. (무려 멧돼지에게서) 그 일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복실이가 자존감과 자신감과 기여감을 찾아가는 이야기.

근데 솔직히 난 잘 모르겠다. 복실이처럼 살면 개는 정말 행복할까? 남편은 우리집 강아지 눌눌이를 옆에 재우면서 말로는 "개는 개답게 키워야지!"라고 한다. 개답게는 어떤 것일까?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대신 해주는 것, 예를 들면 썰매를 끈다거나 맹인 안내를 한다거나 하는 것이 개답게일까? 그들은 그런 기여를 할 때 행복한 것일까?

옆집 개 멍멍이는 도시의 애완견을 '사람들의 장난감'이라 표현했다. 집안에서 먹고 자고 사람들이 시켜줘야 산책을 하고, 애교부리고 사랑받는 것 외에는 하는 일이 없는 견생.... 심지어는 중성화수술에 성대수술까지 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보보스나 복실이나 사람을 위해서 이용된다는 것에는 다를 바가 별로 없어보인다. 그래서 시골 복실이의 견생이 더 개답고 행복하다고 단정은 못내리겠다. 그저 인간은 참 동물들을 멋대로 이용하는구나, 그동안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나 하는 생각이 들 뿐.

돈들여 시간들여 얽매이고, 떠나보낼 때 가슴아파하면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우리는 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 애타게 마음주며 죄를 짓는 것이라 표현할 수 있을까. 이제 와서 어쩔 수도 없고 말이다.

아 모르겠다. 눌눌아~ 산책이나 한 번 더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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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부회장 - 떠드는 아이들 1 노란 잠수함 2
송미경 지음, 하재욱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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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부회장 / 송미경 / 스콜라>

좋아하고 손꼽는 송미경 님의 작품에는 언제나 놀라움과 감탄을 보내게 되곤 했다. 감탄의 이유는 주로 세밀한 시선, 새로운 시각, 인간의 내면에 대한 이해와 심리묘사 때문이었다. 이 책에선 그런 감탄까진 나오지 않았다. 그저 웃으며 고개를 약간 끄덕이는 정도. 바로 작년에 2학년 담임을 한 입장에서 이 책의 아이들이 살아있는 내 교실의 아이들로까지 느껴지진 않았다. 왠지 그랬다. 다소 전형적인 상황에 전형적 인물로 느껴진다고 할까.

2학년의 학급임원선거. 내가 근무한 학교에서는 2학년에서 임원을 뽑는 경우는 없었다. 보통은 아예 없든가 돌아가며 하든가 한다. 하지만 있는 학교도 아예 없진 않겠지. 그리고 요즘 학급임원들은 떠드는 아이들 이름적기 같은거 하지 않는다. 난 20년 전에도 이런거 시킨 적 없다. 하물며 책 속 선생님은 신규시더구만.^^;;;

화자인 유리. 받아쓰기도 계산도 거의 못하지만 당당하고 말하기 좋아하며 할 말은 다 하는 성격.
사촌이며 같은 반인 시하. 말을 거의 안해서 목소리 듣기도 어려운 아이. 자기 주장은 거의 없지만 공부는 무척 잘하는 아이.
회장인 다솔이. 자신감 넘치고 말을 어른 뺨치게 잘하며 회장이라는 권위의식이 넘치는 아이.
아빈이. 누구의 말도 잘 듣지 않으며 하고 싶으면 하는 아이.
등등 각양각색의 아이들이 모인 교실의 임원선거와 선생님의 잠깐의 부재 등 몇가지 작은 에피소드가 이 책의 내용이다. 특히 학급 아이 한 명이 6학년이 던진 신주머니에 안경을 맞아서 다친 일(이런 사건은 실제 일어난다ㅠ)로 당황한 선생님이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시고 아이들은 회장 부회장의 지휘 아래 교실에 있게 되는 일(이런 일은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있어서도 안된다. 가게 되면 보건샘이 가심.ㅠ)이 이 책의 클라이막스이자 결말인데 그 상황에서 아이들은 똑똑이 회장이 아무리 명령을 하고 부회장들이 칠판에 이름을 적어가며 보조해도 아이들다움을 버리지 않고 실컷 떠들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돌아오신 선생님께 혼이 났고, 유리는 앞으로 부회장 같은 건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며 나와 친구들이 시끄러워서 좋다고 생각하며 끝.^^

뭐 다 좋다. 저 상황에서 안떠들 아이들은 없으며 떠든 것은 당연했다. 아이들이 재깔재깔 떠드는 모습은 귀엽고 사랑스러우며 세상 시름 없어진다. 근데 그게 다는 아니다. 세상에 한쪽 방향 화살표는 없으며 누가 말하면 누군가는 들어야 한다. 그때 필요한 것이 경청이다. 나의 얘기를 들어주길 바란다면 나도 남이 말할 때 들어야 한다. 내 말을 듣는다는 전제가 있을 때 굳이 소리를 지를 필요가 없다. 그러나 경청이 없는 교실에선 저마다 강한 화살을 쏜다. 그 화살들은 명중되진 않고 아비규환처럼 교실 안을 휘젓고 어지럽게 날리기만 한다. 그 와중에 꼭 필요한 소통은 껍질 안에 숨어버린다.

동화 안에서 현상을 가볍게 웃으며 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것은 직업인의 비애라 하겠다. 아이들의 입에 재갈을 채우진 않겠다. 그러나 떠들기 예찬론에는 무조건 동의하기 어렵다. 자신의 본성을 발휘하는 것과 같은 무게로 주변을 살피고 배려하는 힘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말을 하고 있는 내 반 교실이 동학년에서 가장 시끄럽다는 고백을 하면 반전이려나?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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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개였을 때 튼튼한 나무 24
루이즈 봉바르디에 지음, 카티 모레 그림, 이정주 옮김 / 씨드북(주)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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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쪽 가량의 다소 긴 그림책이다. 그러니 고학년 정도에게 적당할까? 아니 내가 볼 땐 어른이 읽기에도 쉽지 않다. 내용이 어렵거나 이해가 가지 않아서가 아니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다.

25세지만 지적 능력은 5세를 넘지 못하는 앙투안이 화자로, 자신에게 닥친 일을 자신이 이해하는대로 서술하는 이야기다. 캐나다는 복지정책이 잘 되어 있지 않던가? 장애인을 돌보는 일이 이렇게 전적으로 가족에게 맡겨지고 아무런 도움도 지원도 없단 말인가? 어디에나 복지의 사각지대는 있는 모양이다.

앙투안은 엄마와 세 살 아래인 동생 자크와 함께 산다. 엄마는 평생 앙투안을 돌봤고, 자크는 커가면서 형에게 화를 많이 낸다. 이 책의 엄마는 밝은 느낌이 없다. 그러더니 아예 누워서 일어나질 못한다. 앙투안은 삼촌 집에 잠시 맡겨졌다. 돌아와보니 엄마는 돌아가시고 없다. 앙투안은 그걸 '쉬러 멀리 가셨다'고 이해한다.

그때 동생 자크가 울면서 한 말이 그들의 상황을 알려준다. "이제 내가 형을 책임져야 해!"
그러나 엄마도 힘들었던 그 일을 동생이 잘할 리가 없고, 동생의 울분과 학대는 점점 심해지다 어느날 술에 취해 집을 나가버린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던 앙투안은 집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먹지도 씻지도 못하다가 마당의 개 델핀느에게 사료를 주게 되고 그때부터 개와 함께 먹고 자게 된다. 제목은 이 부분에서 나왔을 것이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둘은 행복했던 것 같다.(결국 델핀느도 세상을 떠났기에...ㅠ)

개의 시신까지 더욱 엉망이 된 집을 두고 앙투안은 집을 나와 나무에 올라간다. 새랑 친구가 된다며.... 그때쯤 결국 삼촌이 다시 와서 앙투안을 거두며 이야기는 끝난다. 삼촌과 누군가와의 통화에서 동생 자크도 사고사(혹은 자살)했다는 암시까지 보이니, 내용은 더할 수없이 슬프고 참혹하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이런 글을 작가는 왜 썼을까? 현실 르포의 성격으로 쓴 작품일까? 혹시 아이들은 이 책을 읽고 장애인이 있으면 이렇게 슬프고 힘들구나 라는 생각만 하게 되는 건 아닐까? 라는 걱정을 살짝 하고 있는 나. 하지만 이러한 사각지대가 현실이라면 여기에 처한 이들을 공감하고 이곳까지 관심과 도움이 닿는 사회가 되도록 깨어있으라는 메시지를 받는 것도 좋을 것이다. 우리나라를 놓고 볼 때 장애인으로, 장애인의 가족으로 사는 것이 아직은 많이 힘들고 개선해야 할 문제들이 많으니까 말이다. 최근의 보도를 예로 든다면 장애인 자립시설을 만드는데 주민들이 "결사 반대합니다" 라는 연판장을 내거는 일 같은 것. 생각해보니 이런 상황은 이 책만큼이나 참혹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청소년이나 조금 생각이 깊은 아이들이 읽는다면 현실을 마주하고 대안을 찾는, 생각의 확산이 가능한 책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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