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학습자와 함께하는 국어 수업 - 말하기에서 쓰기로 넘어가는 교실 함께 걷는 교육 17
한희정 지음 / 우리학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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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정 선생님은 만날 기회는 거의 없어도 내 마음에 늘 의지가 되는 동료다. '이런 동료가 있어서 감사한' 교사이기도 하다. 힘든 길을 마다않고 가면서 꿋꿋이 헤쳐나가는 걸 보면 나랑은 종류가 다른 사람이기도 하다. 또 한 가지, 그는 공부로 무장한 사람이다. 그래서 목소리만 큰 사람들이 가질 수 없는 탄탄함을 가지고 있다. 특히 비고츠키 번역 작업에 참여하였고, 비고츠키 아동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학업은 학위만 따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현장적용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어서 동료교사들에게 널리 소개하고 알릴 만하다. 그 학업을 풀어쓴 이런 책이 나온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

 

이 책은 그리 두껍지도 않고 문장도 어렵지 않지만 그렇다고 쉽게 읽어버릴 책도 못된다. 가볍지만 묵직하다. 내 독서력 탓도 있겠지만 보기보다 시간이 꽤 많이 걸렸고, 집중해서 읽어야 했다.

 

4년쯤 전에 나온 저서 <초등학교 1학년 열 두달 이야기>도 한 톨 버릴 부분 없는 명저다. 이 책은 그중에서도 국어수업 부분을 좀더 상술하였고, 특히 다양한 발달단계의 학생들을 함께 이끌고 가야하는 교실 상황에 대한 고려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그래서 제목이 이렇게 나왔을 것이다. <느린 학습자와 함께하는 국어수업>

 

느린 학습자가 없는 교실은 없다. 다양한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점점 늘어나는 요즘, 여기에서 자유로운 교사는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1학년 수업을 논하는 책이지만 2학년 담임들도 취할 내용이 많이 있고, 전학년에 걸친 통찰을 준다고 생각한다. 초등교사라면 한번 정독해보시길 권하고 싶다.

 

저자가 제시한 발달단계에 대한 표를 살펴보면, 1학년은 대부분 7세의 위기에서 초기학령기 어디쯤에 위치할 것이라고 우리는 예상하지만 아직 거기까지 도달하지 못한 '전 학령기'(개똥이)의 아이들이 상당수 있다. 지역마다의 차이도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늘어난다는 것이 현장의 체감인 것 같다. 올해 우리학교 1학년의 상황이 1학년 선생님들 뿐 아니라 관리자님들과 타학년 선생님들까지 관심을 가질 정도로 심각했다. 교육과정의 평균적 내용으로 지도하면 되겠지 라고 무심히 생각하고 있었다가는 맨붕을 면치못할 이런 교실상황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반면 초기학령기(소똥이)를 넘어서 중기학령기(말똥이)에 도달해 있는 빠른 학생들도 있기 마련이다. 한 교실에 이렇게 세 가지 발달단계가 공존하는 가운데 학급살이가 이루어져야 한다. 크게 잡아서 세 단계이지, 세분한다면 더 많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개똥이가 좌절하거나 소외되지 않고, 소똥이가 발전하면서, 말똥이도 시시해하지 않는 수업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책을 읽으면 그 실마리가 보인다. 읽은 교사들이 또다른 사례들을 만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그것들을 모으고 공유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이 그 문을 열어주길 기대한다.

 

저자는 "생각과 말, 행동에 지성(인식)의 층을 끼워넣는 과정" 이라는 표현을 여러번 사용하셨는데, 이 말이 처음 나왔을 때 나는 그 의미를 곰곰히 씹어봤다. 어떤 생각에서 쓰신 표현인지 다는 아니지만 조금 알 것 같았다. 처음 나온 문장을 조금 줄여서 옮겨보면 이렇다.

 

"너의 행동이 어떻게 보이는지 차근차근 알려줘야 합니다. 나의 맥락만 있는 것이 아니고 수많은 타자의 맥락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해요. 이것이 일곱 살의 위기를 건너가도록 도와주는 핵심이며, 생각과 말, 행동에 지성(인식)의 층을 끼워넣는 과정이에요." (20)

 

이것을 '체험의 공동일반화'(21)라는 용어로 설명하셨다. 외적인 시선(타자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지도하는 과정이다. 이것은 이처럼 생활지도에서도 유용하지만 국어수업에서도 의미를 지닌다. 많은 아이들이 이게 안되는 교실은 초기에 난장판으로 보이겠지만 저자처럼 차근차근 알려줄 때 알아듣고 배워가는 아이들이 생기면 조금씩 안정된 교실이 되어간다. 이후에도 비슷한 설명이 또 나온다.

"이것이 체험의 공동일반화입니다. 내 맥락에서의 체험을 너의 맥락에서도 이해할 수 있게 전체적인 맥락을 조망해서 함께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확장하는 것입니다." (57)

 

쓰기의 선 역사는 읽기가 아니라 몸짓과 그리기(50) 라는 설명에서 나의 오개념을 바로잡기도 했고, "초기문해력 단계의 어린이들에게 똑같은 자모음자를 반복하여 쓰게하는 연습은 학습활동의 층위를 하강시킬 수 있습니다." (93) 라는 설명에서 정신이 번쩍 들기도 했다. 믿기 힘든 일이지만 난 30년이 넘어가는 경력에 1학년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는데, 만약에 했다면 이런 활동을 무심코 시켰을 것 같기 때문이다. 한글을 익히는 것도 다양한 발표와 활동을 통해서 해야하는 것이다. 이 책은 그 과정을 잘 보여준다.

"1학년 교실에서 쓰기 학습의 의미는 단순히 쓰기 기능을 숙달하는 것 뿐만 아니라 말과 행동에 인지적 층을 삽입하는 것, 내적 자아와 외적 인격 간의 분화를 촉진하는 것... 등의 정신기능을 숙달해 가는 과정" 이라는 설명 (61)이 매우 의미있고 무겁게 다가온다. 사실 나는 오래 전 취학 전에 아무 교육기관도 다니지 않은 상태에서 저절로 글을 다 익혀서 혼자서 읽고 쓸 줄 알게 되었는데, 어떤 과정으로 그렇게 됐던건가? 신기하기도 하고, 교실에도 다행히 그렇게 마치 자연발생처럼 깨우쳐가는 학생들도 있으니 교사가 너무 심하게 부담되지는 않는 마음으로 적절한 활동을 구성하고 발전 과정을 흥미롭게 관찰하며 잘 안되는 학생들을 도우면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해본다.

 

전에 저자샘의 교실에서 열린 번개연수에 가본 적이 있는데, 기본적인 책상배치를 ㄷ자로 하셨다. 나도 저학년일때는 이 배치를 선호하는데, 16명 넘으면 여유가 없고, 20명 넘으면 너무 좁다. 16명 선에서 학급당 인원수가 형성되면 좋겠고 20명은 절대 넘지 않으면 좋겠다. 이 배치의 장점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저자샘이 발표를 시키는 방식과도 관계가 있다. 대답을 독식하지 않도록, 손을 들어 지명하는 방식은 자주 사용하지 않는게 좋겠다(94)고 나와있다. , 모두가 돌아가며 대답하는 것이다. (생각 안나거나 모를 때 '통과' 가능) 저학년 교실 하면 '저요! 저요!' 하고 조르는 광경이 먼저 연상되는데, 그럴 때 적극적인 아이들만 참여하게 되는 부작용이 있으므로 일상적인 발표를 모두 돌아가며 하게 하는 저자의 방식이 옳다고 여겨진다. 이 방식에 가장 적절한 배치가 ㄷ자이며, 적정수준의 학급당 인원수가 필수적이다.

 

[주말 지낸 이야기] 활동은 아이들의 입말이 쓰기로 나아가는 과정을 아주 잘 보여준다. 난 주말이야기에 대한 선입견이 있어서 (유치원때 실컷 했던것?) 별로 선호하지 않았는데 저자의 방식을 보고는 무릎을 쳤다. 돌아가며 말하고 끝인 단순한 층위가 아니고 아주 세심한 여러 층위의 의도가 숨어 있었다. 일단 아이들의 일상 경험을 수업의 소재로 가져온다. 그것을 함께 공부하는 텍스트로 만든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체험을 언어화하는 연습을 하고, 그것이 교사의 손끝에서 글로 바뀌는 과정을 지켜보며 말이 어떻게 글이 되는지 관찰하게 된다. 이 과정을 거치며 아이들은 스스로 서사를 구성하는 수준으로 나아가게 된다.

"말하기에서 쓰기로 넘어가는 교실에서 활용하는 여러 활동은 함께하는 것에서 개별적으로 하는 것으로 진행합니다. 서로를 모델링하며 함께 의미를 구성해가고 그 활동을 바탕으로 개별활동을 하는 거예요." (107)

즉석에서 구성된 텍스트는 바로 출력하여 학생들의 활동교재가 되고, 뿌듯한 결과물이 되며, 교사에게는 발전 과정이 담긴 기록물이 된다. 주말 보내기에 대한 보호자의 부담이 문제로 떠오를 수도 있는데, 이에 대한 조언 코너도 있어서 매우 공감하고 납득했다.

 

주말 이야기 뿐 아니라 학교 내의 경험, 즉 수업 이야기도 비슷한 방법으로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활동으로는 [소감 나누기]가 여기에 해당된다. 수업 활동 후에 돌아가며 자신의 소감을 이야기하고 교사는 아이들이 보는 화면에 이것을 받아 적는다. 의미 구성과 문자 구성에 교사가 조력하고 시범을 보이는 것이다. 이것은 교사의 조력에서 점차 학생들의 주도적 활동으로 옮겨가게 된다. 이렇게 입력한 텍스트를 날짜별로 저장하면 성장 과정을 볼 수 있는 교사의 기록이 되겠다. 나도 기록을 남기는 편이지만 산발적인 경우가 많아 전체를 조망하기 어려운데, 수업이 바로 기록으로 이어지는 이 방식을 꼭 적용해 보겠다고 결심한다.

 

[낱말 불리기 수첩]도 각 개인의 쓰기 능력 발달에 함께하는 친구 같은 도구다. 2학년 담임을 했을 때 돌멩이는 어떻게 써요?” 이런 식으로 물어보러 나오는 아이들이 꼭 있었는데 나는 그때마다 칠판에 써주곤 했었다. 하지만 그건 그날이 지나면 지워지는 것이라서, 각자의 수첩을 가지고 1년간 낱말을 불려가는 방법이 훨씬 좋겠다고 생각된다. 그건 또 그 아이의 발전의 기록물이 되는 것이며 복습의 자료도 되는 것이다. 아이들이 이 수첩을 소중히 여긴다면 참 보기 좋을 것 같다.

 

[사진 보고 글쓰기] 아이들의 생생한 현장 경험을 서사로 만들어갈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이와같이 저자가 고안하고 실천한 방법들에는 일상적이고 사소해 보이지만 든든한 이론적 바탕이 들어있어 교사가 의지를 가지고 꾸준히 실천한다면 학생들의 발달을 이끌어내고 더하여 관찰과 진단도 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생각한다. 검증된 방법이니 일단 따라해보고 좋은 방법과 사례들이 더 모이면 막막함이 훨씬 줄어들 것 같다.

 

이후 [함께 쓰는 그림 글쓰기], [주제가 있는 글쓰기]로 진행하게 되는데, 이 어디쯤에서 쓰기 폭발이 일어나게 된다. 생각만 해도 즐거운 일이다. 여기까지는 지난한 어려움이 있지만 그래도 발전된 학생들을 보면 교사는 그동안의 어려움을 다 잊게 될 것이다. 각자의 속도가 다르니 모두를 기대하면 안되겠지만 처음의 단계에서 조금씩이라도 진보해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대견해하고 기뻐할 심리적 여유가 우리에게 있으면 좋겠다. 그것은 신뢰와 지지에서 나오지만 그얘길 여기서 풀면 끝이 안 나겠지.^^;;;;

 

3월 초 진단활동부터 시작하여 학습이 무르익은 후반부의 주제글쓰기까지, 모든 활동을 이행적 쓰기 프로그램이라고 명명하였다. (저자의 논문 제목이기도 함) 마지막장에는 지금까지 상술한 각 프로그램들을 다양한 도표로 정리하여 이해를 돕는다. 각각의 프로그램이 얼마나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비고츠키 아동학의 이론적 기반 위에 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보게 된다. 저자는 이행적 쓰기 프로그램은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182) 라고 하셨다. 동학년이 이 책을 토대로 수업을 함께 나누며 시기에 맞는 적용을 함께 논의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도 생성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니 오랜만에 기분이 좋아진다. 저자의 연구와 실행이 이 척박해진 교육의 현장에서도 그렇게 결실을 맺을 수 있다면 좋겠다.

 

나가는 말에는 보편적 학습 설계에 대한 언급도 살짝 나온다. ‘변주라고 하신 표현에 무척이나 공감한다. 말처럼 쉽지 않고, 매시간 혹은 완벽히 하기도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이것 또한 일상에 젖어들 수 있도록 늘 염두에 두어야겠다. 이 책이 그 출발이다. 수업이라는 예술적 행위의 출발. 어렵쥬? 너무 쉬우면 재미없다는 긍정적 마인드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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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만한 음치 거북이들
아구스틴 산체스 아길라르 지음, 이은경 그림, 김정하 옮김 / 북스그라운드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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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나서 마음에서 울컥 올라오는 욕망은 "뭔가 배우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건 '배워서 나아지고 싶다'는 것이고 '뭔가 못하던걸 해내고 싶다'는 뜻이기도 했다. 일시적인 감정이다. 나는 이제 퇴직을 꿈꾸는 나이많은 직장인에 불과하고, 이것저것 실짝 맛을 봤지만 나란 인간 참 재능은 없는 인간이구나 결론을 이미 내렸었기 때문이다.ㅎㅎ 그저 그럭저럭 했던 공부로 대학에서 딴 자격증 하나로 지금껏 버텨왔고 이제 무사한 퇴직만을 기원하고 있는 중인데.... 그러니 헛된 바람은 가능하지 않다. 그저 내가 즐거워하고 몰입할 수 있는 일을 찾으면 된다. 과정을 즐기는 것. 그것에 담긴 가치. 그게 이 책의 주제이기도 하다. 그것 또한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말이다.

처음보는 스페인 작가의 작품이다.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는 작품이라고 한다. '에데베 어린이 문학상'을 받았다고도 한다. 고학년 정도 어린이들에게 적당하기도 하지만 어른들을 위한 동화 느낌도 강하다. 주인공인 수탉 카실도는 말하자면 '퇴물' 성악가다. 명예와 부와 자신감 모든 것을 잃고 홀로 우울하게 살아가던 그에게 다가온 모처럼의 기회. 근데 그건 너무 어처구니없고 불가능하고 자존심도 상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집세도 못내는 형편에 찬밥더운밥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던지라 그는 할 수 없이 그 일을 수락했다.

그 일이란 거북이들의 노래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다. '원더풀' 이라는 이름의 그 합창단은 크리스마스에 열리는 노래 경연대회에 참가하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심지어 우승을 바라고 있었다. 상금을 받아 그들 중 한 거북이의 아들의 지병을 치료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좋은 목표가 모든것을 해결해주진 않는다. 크리스마스까지는 석달밖에 남지 않았는데 현실은 카실도에게 아주 미치고 환장할 상황이었다. 거북이들은 너어무 느렸고 (괜히 거북이가 아니겠지), 기본적인 음악성조차 없었다. 발성 자체가 되지 않거나, 소리를 내도 그 소리가 음정이 실리지 않은 괴성이거나 등등. 그들은 불가능한 꿈을 꾸고 있었다. 그걸 알면서도 수업료 때문에 일을 하는 카실도는 괴롭다. 말을 꺼낼 기회만 보고 있지만 번번이 실패하곤 했다. 거북이들은 의심이 없었고, 호의가 가득했다. 어떻게보면 오지랖이 너무 넓은게 탈이기도 했다. 카실도에게는 그게 참기 어려운 점이었다. 이 부분 나랑 너무 비슷해서 가슴이 뜨끔했다.

아프다고 수업을 하루 쉬기로 했던 날, 거북이들이 하나 둘씩 찾아와 집에 가득해졌다. 혼자 조용히 있고 싶었던 카실도에겐 스트레스 상황이었다. 거북이들은 좀처럼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게 꼭 필요한 일들을 해주었다. 음식을 만들어주고, 집 구석구석 문제있는 곳을 수리해주고 등등. 하지만 원하지 않던 하루에 화를 못참은 카실도는 결국 분노를 폭발시키고 말았다. 화를 내는 김에, 그들의 '주제파악' 까지 시켜주면서.

원더풀들은 사과하고 조용히 돌아갔다. 하지만... 노래수업은 종료되었다. 카실도는 괴로웠다. 우연히 레논 부인을 마주치게 되어 그는 용서를 구했다.
"그러실 필요 없어요. 그날은 불편하셨을 거예요. 이해해요. 저희가 선생님의 영역을 침범했어요. 때때로 원더풀은 필요 이상으로 흥분을 한답니다."
카실도가 감동한 건 당연한 일. 그리고 이어지는 문장들에 큰 교훈이 담겨 있었다.
"누군가에게 모욕을 당하면 똑같이 갚아줘야 한다고 배웠다. 그런데 레논 부인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
"선생님, 오래전 일 때문에 평생을 세상에 화풀이하며 살아가는게 의미있다고 생각하세요? 분명 아니겠죠?"
내가 마음속에 새겨야 할 구절이기도 하고, 요즘 사람들이 한번쯤 곱씹어볼 말이기도 하다. 특히 화해와 회복의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고 사소한 싸움까지 극단으로 치닫게 만드는 학부모들. 그 아이들이 자기 부모보다 이 거북이 부인에게 배웠음 한다. 요즘 어떤 부모들은 자기 자식에게 '화'를 가르치는 것 같다. 그 아이 한 명의 화를 빼내는데 수많은 어른의 손길이 필요했다. 담임 한 명으로는 어림없었다. 그나마 여럿의 협력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가능했다. 완전히 빼냈다는 건 아니고 조금 둥글어지는 정도가 그렇다.ㅠㅠ

이어지는 두 번의 반전이 있다. 희망과 긴장. 그리고 좌절. 다시 긴장과 환희와 희망으로 이어지는 서사가 꼭 영화의 공식 같았다. 어디서 많이 본 느낌이지만 재미있고 응원하게 되고, 기분 좋은 영화 말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야금야금 읽어주며 아이들의 반응을 즐기는 재미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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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성 : 백 년이 넘은 식당 - 2023 뉴베리 아너 수상작 오늘의 클래식
리사 이 지음, 송섬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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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쪽 정도. 조금 두껍긴 해도 어려운 책은 아닌데 읽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초반엔 정신없이 넘어갈 정도로 아주 재밌진 않았던 게야... 그래도 도중에 놓기는 싫어서 끝까지 읽었다. 뒤로 갈수록 흥미로웠고 작가의 풍부한 장치와 크고작은 메시지들이 보여 읽는 재미가 점점 커져갔다.

한국계 이민 3세인 태 켈러의 <호랑이를 덫에 가두면>도 뉴베리상 수상작인데 이 작품도 뉴베리상을 받은 걸 보면 이 상은 타 문화권의 전통을 반영한 이민자의 서사에 관심이 있는 걸까, 그런 소재에 후한 점수를 주는 걸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수상작을 다 읽어보지도 않았는데 두 권을 보고 내릴 판단은 아니지만.... 두 작품은 소재가 전혀 다르지만 아시아계 이민자들의 이야기이며 이민 3~5세 정도의 아이들이 모종의 사연으로 조부모와 함께 하게되어 듣는 이야기라는 점에선 비슷했다.

이 책은 중국계 미국인 3세인 리사 이의 작품이고, 차별과 혐오에 대한 메시지가 매우 강하게 부각되어 드러난다. 로자 파크스 여사가 버스 안의 흑인차별에 맞선던 때가 20세기 중반, 아직 100년도 되지 않은 일이다. 하물며 이 책의 화자인 메이지의 고조할아버지 러키 첸이 미국으로 건너와 정착하려 애썼던 때는 19세기.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얼마나 심했을까. 초기 이민자들은 주로 험하고 위험한 일에 종사했다. 러키도 철도 공사장에서 소중한 친구를 폭발사고로 잃었다. 거의 목숨을 건 도박같은 일이었다. 절박한 이들의 처절한 삶을 안정된 삶을 사는 요즘 사람들이 이해하기는 무리다.

1대 이민자 러키의 치열한 삶의 결과로 일구어낸 중국음식점 '황금성'은 지금 3대인 '오파'와 '오마'가 운영하고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란 뜻) 메이지의 외조부모들이다. 자신의 삶을 살고 싶어 고향 '라스트찬스'를 떠났던 엄마는 오파가 아프시다는 소식에 메이지의 방학을 맞아 부모를 보러왔다. 이 짧은 기간동안 메이지는 조부모와 아주 찐하게 만났다. 그 만남의 이야기가 이 책이다.

이 책의 작가가 훌륭한 이야기꾼이라는 것, 서사를 밋밋하게 이끌지 않고 많은 재료와 양념을, 그러니까 맛깔나는 장치로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는 걸 여러군데서 느꼈는데, 몇가지만 적어보자면 이런 것이다.

1. 현재와 과거의 교차구성
이건 흔한 구성이긴 하지만.... 지금 여기(메이지의 여름방학, 황금성)의 이야기와 그때(러키)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러키의 이야기를 메이지에게 들려주는 사람은 오파(할아버지)다.

2. 포춘쿠키의 문구
포춘쿠키의 정확한 기원은 모르지만 황금성의 특색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메이지는 타자기를 이용해서 포춘쿠키에 직접 문구를 넣기 시작했는데, 여기에 작가의 소소한 메시지가 반영된다. 그걸 읽는 재미가 꽤 컸다. 작가의 유머도 느껴지고. 내게는 가장 매력적인 소재로 느껴졌다.

3. 할아버지가 가르쳐주는 포커의 판 읽기
이제 오파는 병이 깊어져 집에만 계시게 된다. 할아버지에게 식사를 가져다주고 상대하는 일을 주로 메이지가 하게 되었다. 그중 하나가 카드놀이였다. 난 카드놀이를 시시하게 봤는데 그것도 나름 꽤 심오한 세계더라구?^^ 특히 오파는 '판을 읽는 법'을 제대로 가르친다. 그게 이어지는 서사에 적절히 등장할 때 아주 재미있었다. 특히 한 위선자를 응징할 때, 쫄깃하고도 통쾌했다.

4. 황금성의 벽에 걸린 사진들
황금성을 거쳐갔던 사람들의 사진이다. 거기에 황금성의 100년 역사가 담겼다. 황금성은 단순 식당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누군가에겐 오아시스였고 누군가에겐 생명의 환승역이었다. 사람은 올챙이적 생각을 하기가 쉽지 않다. 이제 겨우 자리잡았는데, 이제부턴 편하고 싶지, 어려운 이들이 옆에 복작이는 게 달가울 리 없다. 이게 내 수준이고, 황금성의 운영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 사진들은 이 책에서 연결과 연대의 상징이었다. 오파의 장례식에서 실감할 수 있었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차별과 혐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19세기도 20세기도 넘긴 21세기지만 차별과 혐오는 남아있고, 계속 새로운 형태로 재생산된다. 그곳 미국 뿐 아니라 여기 대한민국도 마찬가지지. 이 책을 읽어낼 독서수준이 되는 학생들이라면 함께 읽고 많은 얘길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책읽기 좋아하는 6학년은 가능할 것 같고 중학생 정도면 무난히 가능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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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쓸모 보통날의 그림책 7
최아영 지음 / 책읽는곰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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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쓸모가 있어야 하나? 라는 반문을 할 수도 있지만,

나의 쓸모에 회의가 들 때 우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마음이다.

 

나는 직장에서 대단히 중요한 직책을 하고 있진 않지만

작으나마 나의 업무를 알차고 깔끔하게 처리하려고 한다. 나의 쓸모 때문이다.

동학년에선 조그마한 자료라도 나누면서 도움을 주려고 한다.

인격이 훌륭해서가 아니고, 도움이 되지 못하면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인 것 같다. 이 또한 나의 쓸모를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쓸모가 정점에 있는 청장년 시기를 지나면 노년기에 접어들 텐데

모두가 그 시기를 두려워하는 것도 쓸모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나도 마찬가지다.

 

우리 아버님은 함께 살면서 자식들에게 엄청난 쓸모를 유지하셨다.

손자들을 보살펴주셨고, 전직 목수셨던 이력을 살려 집안 곳곳의 유지 보수를 담당하셨다.

재활용과 쓰레기 처리도 다 알아서 하시니 다른 가족이 신경 쓸 일이 없었다.

이제는 90이 넘으셨고 무릎 연골이 다 닳아 지팡이에 의지해 겨우 걸으시는데,

아직도 재활용을 넘기지 않으신다. 아버님이 깔끔하게 종류별로 묶은 재활용품을 바퀴 달린 카트에 싣고 한손으로는 지팡이를 짚고 나가시면 저 멀리서 경비원님이 보시고 달려온다.

아이고 어르신! 제가 하겠습니다.” 하시면 손을 내두르신다.

경비원님도 마찬가지고 주민들도, “저 할아버지 가족들은 뭐하는 거여할 거다.;;;;

그래도 아버님은 그걸 마치고 들어오셔야 모처럼 웃으신다.

아이고, 이번 주 일도 끝났다!” 하시면서.

그때 느낀다. 인간의 쓸모가 얼마나 중요한지. 나는 아버님처럼 못할 텐데 더더욱 걱정이고.

 

친정 엄마도 마찬가진데, 매년 올해가 마지막이다 하면서도 동지 팥죽을 쒀서 딸들을 부른다.

엄마 팥죽은 진짜 맛있거든.ㅠㅠ

지난번에는 밑을 태워가지고 탄 맛이 반, 맛있는 맛이 반이었다. 그래도 탄 맛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이 책의 주인공은 하얀 도자기다. 장식용 도자기였던 걸로 보인다. 그런데 주둥이 한귀퉁이가 깨졌다. ‘쓸모가 없어진 도자기는 쓰레기장에 버려졌다.

 

다음 장에 보니 한 할머니가 그 아이를 들어 자기 집으로 데려간다. 그러잖아도 깨지고 버려져서 속상한 아이에게 물을 끼얹고 박박 닦고, 밑바닥에 못으로 구멍까지 뚫는다! 이 책의 특징이자 장점은 표정인데 하얀 도자기에 그려진 표정들이 많은 걸 말해준다.

 

바닥에 구멍을 뚫을 때 짐작했듯이 이 아이는 화분이 되었다. 베란다에서 살게 되었는데, 그 베란다엔 이런 운명으로 화분이 된 아이들이 즐비했다. 손잡이가 녹아내린 주전자, 이삿짐 옮길 때 부주의로 흠집난 항아리, 한때는 최고급 포도주가 담겼던 병 등등.... 같은 것은 하나도 없지만 저마다의 모습에 맞추어 생명 하나씩을 품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하얀 도자기도 그들 중의 하나가 됐다.

 

도자기의 몸에 담긴 흙에서 새싹이 돋아나오며, 표정도 조금씩 변해 간다. 노오란 꽃을 피울 때쯤엔 기대감도 느껴진다. 그 다음엔 주렁주렁 열매를 매달게 된 도자기. 이젠 제범 수다까지 떤다.

내가 이 몸에 온갖 꽃을 다 담아봤지만, 열매를 담기는 또 처음이잖아.”

도자기는 이제 베란다의 완벽한 한 식구가 되었다. 마지막 장엔 할머니가 또 주워오신 듯한 어항이 잔뜩 속상한 표정으로 놓여있다. 모든 이해를 담은 표정으로 인사를 건네는 도자기.

 

뒷표지에 당신의 쓸모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라는 문구가 있다.

도자기의 쓸모는 완전히 끝난 듯했다. 쓰레기장에 버려졌을 때, 버린 주인도 도자기 자신도 그걸 인정했다. 하지만 할머니의 손길은 그게 아니라는 걸 입증해 주었다.

 

최소한의 양심을 가지고 사회에 속한 삶을 살아가려는 평범한 모든 이에게 쓸모는 생명처럼 소중하다. 나는 도자기이기도 하고 할머니이기도 하다. 현직에 있는 지금은 할머니로서의 역할이 중요한 시기다. ‘너의 쓸모를 알려주는 데도 진통이 필요한 시간들. 이 시간들을 잘 보내고 나면 나의 쓸모도 심각하게 고민할 때가 오겠지. 참 예쁘고 정겨운 그림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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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 부르는 바람의 노래
홍세기 지음 / 템북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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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기 선생님을 알게된 건 홍이삭 가수 때문이었다. 58호의 무대를 본 후 그를 응원하고 있던 차에 페북에서 좋은교사 소속 선생님이 그 썸네일과 함께 "홍세기 선생님의 아들이 이런 청년으로 자랐구나!" 라고 올리신 걸 봤다. 검색해봤더니 그 아버님은 나와 공통분모가 아주 조금 (출신학교라든가 소속단체 정도) 있었고 반가운 마음에 이것저것 보다가 꽤 많은 사정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이 얼마 전 나온 걸 알고 당장 읽어보았다. 그간 단편적으로 보았던 정보들이 서사로 엮여있었다. 흥미롭기도 했고, 감동도 받았다. 보기 전부터 내가 이 책을 좋아할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근데 객관적으로 좋은 책일지는....? 읽고나니 이 책은 그냥 참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종교라는 진입장벽이 있긴 하지만, 그 색채가 아주 찐하진 않고 저자의 필력도 상당하고 무엇보다 그의 태도가 난 좋았다. 마지못해 가는 길일지라도 최선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성실하고 사려깊게 임하는 그 태도, 과장하지 않고 담백하며 감정에 크게 좌우되지 않는 태도. 개인마다 취향이 다르겠지만 난 이런 사람을 좋아하기에 이 책이 크게 만족스러웠던 것 같다.

리뷰의 흐름이 중구난방일 것 같지만 홍이삭 가수에게 빠진 얘기부터 해보겠다. 싱어게인 1,2는 좀 늦게부터 보기 시작했는데 시즌3은 58호의 독무대를 보자마자 바로 응원을 시작했다. 잠이 바로 오지 않을 땐 그의 유튜브를 보다 잠드는게 한동안 일상이 됐다. 파도파도 계속 나왔기 때문이다. 참 무던하고 꾸준하게 열심히도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라디오방송의 게스트 출연까지 끌어다 주었는데, 벤지가 영어로 진행하는 방송이었고 둘은 주로 시덥잖은 수다를 떨었다. 거기서 이런저런 tmi들을 알게 되었다. 교육자 가족이라는 것, 그중 부모님은 아프리카에서 교육을 하고 계신다는 것. 어릴 때 부모님을 따라 파푸아뉴기니에서 몇년 살았다는 것. 그걸 듣고 '아 선교사이신가보다' 했는데, 초등교사 출신인 것은 앞에서 말했듯 '홍세기' 라는 성함을 안 후에야 알게 되었다. 어머니인 강학봉 선생님도 마찬가지다. 홍이삭은 부부교사의 아들이었던 것. 참 남일 같지가 않았다.ㅎㅎㅎ

그의 모든 앨범을 멜론에서 다운받고 출근길에 들었다. 가장 좋아하는 유튜브 영상은 'Lean on me'와 '하나님의 세계' 'Give Thanks' 등이 함께 들어있는 ccm 영상이다. 그걸 보면서 저렇게 예쁜 청년이 또있나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 내가 본 가장 오래된 영상은 10년이 넘은 영상이었는데, 거기엔 지금과 다른 모습의 홍이삭이 있었다. 부정교합 수술을 받기 전의 모습이다. 솔직히 말해서 정말 놀랐다. 밥을 먹기도 호흡 때문에 잠을 자기도 어려웠다고 듣긴 했는데, 정말 턱의 틀어짐이 매우 심했다. 하지만 20대 중반의 그는 슈스케에 나가고 싶다고 말할 때는 천진난만했고, 수술에 대해서 말하며 부모님을 걱정할 때는 너무나 어른스러웠다. 어린시절과 학창기를 부모님 사역에 따라 수시로 달라지는 환경에 적응해야 했고, 신체적으로도 저런 핸디캡을 가졌으며, 경제적으로도 어려웠는데 어떻게 부모를 원망하지 않을까? 난 그게 충격이었다. 내 주변에 저런 사람은 없다. 나도 마찬가지고.

그건 홍이삭씨의 타고난 인품이기도 하겠지만 홍세기 선생님의 사역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납득했기 때문이라고 짐작한다. 그리고 더 어른이 된 지금은 서로 응원하고 있다. 부모님에 대한 이해와 존경심이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닌 바, 이 책을 읽어보고 나는 이해하게 되었다. 물론 최선을 다해 살았는데도 자식한테 이해받지 못하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런 면에서 보면 부자는 서로에게 고마워해야 할 것 같다.

홍세기 선생님 부부의 사역은 주로 교육사역이었다. 처음엔 선교사 자녀들을 주로 가르쳤다. 지금 계신 우간다의 쿠미대학으로 가게 된 것도 교육사역의 연장선일 것이다. 교대를 졸업하시고도 더 공부를 하시긴 했지만, 어쨌든 초등교사 출신이 대학의 총장 자리를 맡으신 건 이례적인 일로 보인다. 명예나 지위를 추구하는 사람도 아닌데 말이다. 이 일에 대하여 선생님은 '구레네 시몬'에 자신을 비유했다. 예수님이 십자가형을 당하러 골고다 언덕으로 갈때, 병사들은 일정구간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십자가를 대신 지게 했다. 홍선생님은 이와 같이 자신이 '구레네 시몬' 임을 자처했다. 그건 본인이 감히 '십자가를 지겠다' 라고 말할 주제가 못된다는 완곡한 표현이다. 그냥 나밖에 없다니 어쩔 수 없이 떠밀려 하기는 하지만 어서 적임자가 나타나 그 짐을 벗었으면 좋겠다는 정직한 고백이다. 하지만 그는 일을 꽤 잘해냈다. 나는 이런 사람들에게 빚진 마음이 있다. 세상에는 주로 빈수레만 요란한 인간들이 앞에 나서서 설치면서 일을 그르친다. (대표적인 분야가 정치) 그런 것들이 설치는 걸 막으려면 찐인 사람들이 나서야 하는데 찐들은 또 나서는 걸 싫어해요... 가끔은 무거운 어깨를 감수하고 일을 해주시는 분들이 있는데 이렇게 찐이면서 적당히 앞에 나서줄 수도 있는 분들은 흔하지 않기에 난 그분들에게 늘 고마워한다.

쿠미대학교는 한국선교사가 설립한 학교지만 홍선생님이 임무를 시작할 때의 상태는 심각했다. 재정적으로도 악화되어 교직원들의 임금도 주기 어려운 형편이었으며, 교정은 방치되어 살풍경했고 수업 기자재도 거의 갖추어져 있지 않았고 의미있는 교육활동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 막막함이 전해지며 나라면 그냥 돌아서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이 잔을 내게서 옮겨 주십시오.”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신 것 같습니다.”
이런 기도가 너무나 이해되었다. 하지만 그는 코뚜레 꿰인 황소처럼 묵묵히 일했고, 하나님은 수레의 바퀴를 서서히 굴려 주셨다. 돌아보면 기적인 것 같은 변화들은 조금씩, 또는 물밀듯이 일어났다. 폐교 위기였던 학교는 꽤나 탄탄한 학교로 변모해갔다. 외관도 그렇고 내용적으로도.

하지만 진짜로 힘든 일은 이런 눈에 보이는 일들이 아니었다. 사람에게 실망할 때, 오만 정이 떨어지고 더 이상 일할 동력을 잃게 된다. 나로서는 상상도 가지 않는 인내심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저자도 물론 이런 때의 마음 상함을 숨기지 않았다. 나랑 다른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발 더 나아갔다는 점이지만....

아프리카에서 일하는 저자의 태도에서 인상적인 점은 또 있었다.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려는 모습이었다. 부족의 문화를 통합하고 희석하려는 시도보다 있는 그대로 장려하고 함께 즐기는 모습, 제국주의의 희생물이 되어 피부색이라는 감옥에 갇혔던 그들의 잠재성을 인정하고 그들의 필요에 함께 하려는 태도였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자신의 태도조차도 주제넘은 것이 아닌지 경계한다. 에필로그의 마지막 문장조차도 그의 조심스러운 심정을 나타낸다.
“길지 않은 6년간의 우간다 쿠미대학교 생활을 글로 정리했다. 나와 같은 경험을 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용기를 내었다. 어떻게 보면 이 경험으로 인해서 나는 우간다 사람들의 인식 깊은 곳을 어느 정도 들여다볼 수 있었고, 그러면서 쉽게 생각한 ‘이들과 함께 살기’에 대한 뼈저린 통한을 경험했다. 그러나 그것은 아마도 타 문화권에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가슴 저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이들은 그렇게 살아왔고, 또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그저 이물질 같은 내가 저들 속에 들어가 주제넘게 여러 고민을 해댄 것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254쪽)

책날개에 제목에 대한 저자의 말이 나온다. 바람의 노래. 저자는 교육을 바람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교육이 당장 직접적으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기보다 사람들과 사회에 바람처럼 부드럽게 인격적으로 다가가 변화를 일으키길 기대한다. 공간을 만들고 그곳에 어떤 바람이 불기를 기대하는, 자연적이면서도 예술적인 활동이 교육이다.”
저자의 비유대로라면, 우간다의 교육 형편은 아직 열악하지만 바람이 불 공간이 충분하다. 아직은 소수에게만 주어진 기회, 신분 상승을 꾀하는 기회로 우리나라의 수십년 전과 비슷한 모습이지만 불어온 바람이 그들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기대가 되는 상황이다. 반면 과거와 달리 이제 거의 충족된 우리나라 교육에는 바람이 지나다닐 자리가 남아있는지 모르겠다. 이 리뷰에 우리 교육 이야기를 하자면 너무 길고 답답하여 그만하겠지만, 누군가와 이 책을 놓고 이야기할 기회가 있다면 한번 답답한 속을 터놓고 싶은 마음도 든다.

홍이삭 씨가 결승전에서 ‘바람의 노래’를 부르기 전, 아버지와 상의 끝에 정한 노래라고 했는데, 그날 매우 좋지 않았던 목상태로 부르기엔 살짝 힘들었던 부분이 있어서 나는 같이 보던 딸한테 이렇게 한탄했었다.
“아이고, 아빠 말은 들으면 안돼~~~~”
웃자고 한 소리였다.ㅎㅎㅎ ‘바람의 노래’가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알게 되니 그 무대가 더 절실하게 느껴진다.
『나의 작은 지혜로는 알 수가 없네
내가 아는 건 살아가는 방법 뿐이야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켜갈 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았네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겸손한 저자는 이 가사의 마지막 구절은 그저 추구하는 바일 뿐이라고 말씀하실 것 같다. 나는 더하다. 엄두도 내지 못한다고 할까... 하지만 그의 사역에 동행하신 하나님은 연약한 사랑들이 모여 꼭 필요한 일에 쓰이고 길을 내는 광경을 경험하게 하셨다. 이제 곧 소원대로 퇴직하실 선생님 부부의 건강과 새로운 길을 응원한다. 더불어 대안학교에서 일하는 든든한 따님 하늘 씨와 내가 평생 처음으로 팬까페 가입한 홍이삭 가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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