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한 자전거 여행 2 - 마지막 여행 창비아동문고 299
김남중 지음, 문인혜 그림 / 창비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남중 작가님의 불량한 자전거 여행이 나와서 읽은 것이 딱 10년 전이다. 작품 그대로 완결성이 있어서 후속편이 나올 거라 생각은 못했는데, 10년만에 2권이 나왔다. 오랜만에 김남중 님의 책을 읽었다. 탄탄한 서사능력 때문인가, 스토리 구성과 대사들이 자연스러워서인가, 김남중 님의 책은 잡으면 그냥 한달음에 읽게 된다. 전편만한 속편이 없다는 말처럼 이야기의 신선함과 긴장감은 전편에 더 많았지만 속편도 재미있었다.

 

엄마 아빠의 불화와 이혼 선언에 집을 나온 호진이가 삼촌을 찾아갔다가 자전거 여행에 합류하여 겪은 이야기가 전편의 줄거리다. 많은 일을 겪었고 많은 사람을 만났기에 이야기는 빈틈없이 탄탄했다. 마지막에 엄마 아빠가 자전거 여행에 동참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끝났는데, 이 책은 그 이후의 이야기다.

 

전편의 결말은 뭔가 새로운 희망을 강하게 암시했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치 않았다. 엄마와 아빠는 여전히 서먹했고, 빨리 여행을 끝내고 싶어했다. 그런데 호진이의 계획은 지금 있는 부산에서 서울까지 닷새의 자전거 여행을 가족이 달성하는 것! 반대하던 부모님을 설득해 이 여행은 시작된다.

 

호진이의 속셈은 어찌보면 순진했다. 여행으로 부대끼다 보면 가까워지고 갈등도 풀리리라 예상했던 것. 하지만 그렇게 풀릴 것이라면 깊은 갈등도 없었겠지. 모처럼 둘만의 시간을 주고 둘이 나누는 얘기를 엿듣던 호진이는 절망한다. 도란도란 나누는 이야기는 화해의 대화가 아니라 이혼 계획이었다.

 

마음이란 그렇게 쉽게 풀리는 것이 아니지만 바늘 끝 한 점에 풍선이 터지듯이 한 순간에 전환되기도 한다. 엄마의 깊은 오열과 가족의 위로와 사과가 여행길의 막바지에 있었다. 전혀 신파스럽지 않았다. 한 마디가 많은 것을 감싸 안는 법이다. 가족끼리는 특히. 그 한마디를 안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면 방법이 없지만.

 

이번 여정에서도 전편만큼은 아니지만 인상적인 여러 만남이 있었다. 여러 사건도 있었고. 그런 것들을 잘 엮어가시기에 김남중 님의 책에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나는 경험이 없어 잘 모르면서도 자전거 길의 고생과 휴식의 편안함이 내것처럼 느껴졌다.ㅎㅎ 가족은 고행 끝에 집으로 돌아왔고 당분간 여행하듯 살아보기로 잠시의 타협을 했다. 잠시1편의 결말보다 더 완전히 희망적으로 보인다. 사실 인생 전체가 여행 같은 거 아닌가.

 

나의 여행은 여행 막바지에 만난 노부부, 그 중에서도 보조바퀴를 달고 모두의 추월 속에서 탈탈탈 달려가시던 할머니를 닮았다. 그래도 그 할머니는 행복했잖아. 그래서 엄마가 폭풍오열을 한 거잖아.... 그래서 나도 그냥 이렇게 여행하기로 한다. 보조바퀴를 못 떼.... 그래도 어쩌겠어....^^;;;;;

 

아래는 10년 전에 쓴 전편의 리뷰다. 어디엔가 올려두었던 걸 찾아내서 덧붙인다.^^*

---------------------------------------------------------------------

 

작가가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것은 참 중요하겠다. 이 책을 읽어보니 경험하지 않고서는 이렇게 생생한 표현을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다. 자전거 여행. 막연히 동경은 했었지만(자전거도 못 타는 주제에 말이다^^) 막상 책을 읽어보니 주인공들의(어떻게 보면 작가의) 숨소리와 땀방울이 그대로 느껴지는 듯하다.

 

부모의 갈등과 이혼의 위기. 요즘 동화에 흔히 등장하는 소재이지만 자전거 여행을 통해 극복해가는 설정은 참 새롭게 느껴졌다. 공부를 못하는 것 외에는 특별한 문제가 없는 호진이. 자식이 공부 잘하는 것만이 삶의 목표인 듯한 엄마. 회사밖에 모르는(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직당하는) 아빠. 이 가족은 평화로운 일상을 누려 본 지 너무나 오래되었다. 서로를 투명인간 취급하는 부모 사이에서 호진이는 발 디딜 곳이 없어진 듯한 절망감을 느낀다. 급기야 부모의 입에서 이혼이라는 말이 튀어나오던 그날, 호진이는 집을 나선다. 엄마, 아빠가 경멸해 마지않는 삼촌에게로.

 

고등학교도 졸업 못하고 제멋대로 살아가는 듯한 삼촌, “너 삼촌처럼 될래?”라는 엄마의 협박 속의 그 삼촌. 삼촌을 찾아가보니 여자친구(여행하는 자전거 친구)라는 자전거 여행단의 단장이었던 것. 얼떨결에 호진이도 조수 겸 여행자로 동행하게 된다.

 

때는 한여름. 자전거 고행(?)에 대한 묘사는 쌀쌀한 요즘 날씨에 읽기에도 미간에 주름이 그려질 정도다. 난 헬스클럽에서 타는 자전거도 20분 타면 다리 아픈데. 아스팔트 위에 뚝뚝 떨어지는 이들의 땀방울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다. 게다가 잠은 어떤가, 아무데다 텐트를 치면 그곳이 잠자리이다. 때로는 더워서, 때로는 축축해서 괴로운 곳. 11박의 일정 동안 그들이 가장 쾌적하게 잔 곳은 딱 한번 찜질방에서였으니. 이쯤 되면 자전거 여행에 대한 근거 없는 동경은 접어야 했다.

 

로드무비가 그렇듯, 이런 이야기에선 함께 여행하는 이들의 속 이야기가 중요한 법. 술로 인생의 절반을 망쳤고, 나머지 절반은 망치지 않기 위해서 자전거 여행을 결심했다는 아저씨, 암 수술을 앞두고도 늘 의연하게 선두에 서던 아저씨. 왕따를 견디다 못해 대안학교에 다니고 있는 누나. 지친 여행길에서 털어놓는 자신의 이야기들은 서로에게 큰 감동이 된다. 호진이는... 엄마 아빠의 이혼 이야기를 차마 털어놓지 못했다. “그냥 삼촌 따라 놀러왔어요.” 하지만 독자들은 알고 있다. 어제의 일도 내일의 일도 생각할 겨를이 없는 극한의 여정 가운데서 호진이의 마음의 키가 얼마나 자랐는지.

 

여행의 마지막 합류자에 대한 이야기도 나에게는 인상 깊었다. 열쇠가 꽂혀있던 여행단의 트럭을 훔쳐 가버린 청년. 지친 여행자 한명이 일사병으로 응급실에 가게 되는 상황에서 트럭 도난사건까지 일어나자 내 입에서까지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는데, 그 사건을 통해 삼촌의 일면을 알게 된다. 도둑을 용서하고 여행단에 끼워주는 삼촌. 호진이는 철없을 때 했던 잘못의 이유를 변명할 기회도 얻지 못하고 계속 삐뚤어져야만 했던 삼촌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땀은 고민을 없애주고 자전거는 즐겁게 땀을 흘리게 하지. 난 그 기회를 영규에게도 주고 싶어. 내가 남한테 줄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어.”

 

그것밖에 없다고 하지만 인생 실패자로 취급받는 삼촌이 줄 수 있는 것은 그를 비웃는 사람들이 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다. 누구에게 무언가 줄 수 있는 인생이 잘 살아온 인생이 아닌가. 호진이 또한 비록 공부를 못한다지만 앞으로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될 것이다.

 

생각해보니 나는 살아오면서 얼마나 땀을 흘렸나,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땀을 흘린 기억은 얼마나 되나 돌아보게 된다. 이를 악물고 페달을 밟는 이들의 여정을 생생하게 지켜보며 편안한 게 제일이야~ 사서 고생을 왜 해~ 이렇게 살아 온 내 마음에도 약간의 들썩임이 느껴진다.^^*

 

이혼 위기의 엄마 아빠가 어쩔 수 없이 자전거여행에 동참하는 것으로 끝나는 결말도 맘에 든다. 여보, 그동안 미안했어 라는 말은 없지만 뭔가 좋은 일을 상상하게 만드는 결말. 현장감 탁월하고 이야기 전개도 억지스럽지 않은 참 좋은 이야기 한편을 읽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47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나는 3학년 2반 7번 애벌레- 제20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저학년 부문 대상 수상작
김원아 지음, 이주희 그림 / 창비 / 2016년 3월
11,000원 → 9,900원(10%할인) / 마일리지 55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23년 04월 05일에 저장

[세트] 우당탕탕 야옹이와 바다 끝 괴물 + 우당탕탕 야옹이와 금빛 마법사 - 전2권
구도 노리코 지음, 윤수정 옮김 / 책읽는곰 / 2022년 5월
24,000원 → 21,6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0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23년 02월 04일에 저장

거미줄 줄넘기- 2022 문학나눔 선정도서
신원미 지음, 홍그림 그림 / 마루비 / 2022년 7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23년 02월 04일에 저장

오리 부리 이야기- 제11회 비룡소 문학상 수상작
황선애 지음, 간장 그림 / 비룡소 / 2022년 3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2월 23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23년 02월 04일에 저장



47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괜찮아 ADHD - 살피고 질문하고 함께하는 300일 여행 스토리인 시리즈 3
박준규 지음 / 씽크스마트 / 2019년 1월
평점 :
품절


이 책이 나오면 꼭 읽어보리라 생각했다. 저자인 박준규 선생님은 페이스북에서 알게 되었는데, 안정적인 공교육 교사의 삶을 내려놓고 대안교육을 시작하시고, 부모도 감당하기 어려운 아이들을 데리고 숙식을 함께 하며 장기여행을 하시는 삶이 너무 대단해보였다. 한편으론 신기하다고 할까. 사서고생을 하는 분들을 보며 느끼는 경외심 같은거다. 왜 저렇게 사실까,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하는....^^*

새 학급을 맡아 가출석부 이름 옆에 별표가 있는 아이를 발견하면 벌써 불안이 엄습한다. 어떤 어려움일까. 학습장애일까, 분노조절의 문제일까, 수업을 얼마나 방해할까,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물론 대부분 시작 전의 불안감보다는 현실이 나았고, 어찌어찌 지지고볶다보면 1년이 지나가곤 했다. 하지만 박샘이 가르친 아이들은 훨씬 심했다. 대안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여기서 대안교육이란 분리를 위한 대안교육이 아니라 적응을 위한 대안교육이라는 것이다. 결국 이 아이들도 사회 안에서 어울리고 자신의 역할을 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 과정을 돕는 것이다. 이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고도의 전문성 외에도 여러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대표적인 것이 신체적 단련도이다. 박샘은 나보다 선배시지만 체력이 대단히 좋으시고 각종 스포츠에 능하신 것 같다. 그것으로 아이들과 몸으로 부대꼈다. 또한 아이들의 폭력을 지그시 제압할 수 있는 호신술(?)도 갖고 계셨다.

나는 '사랑만 있으면 다 할 수 있다'는 뜬구름 잡는 말이 싫다. 박샘과 같은 깊은 애정을 가진 사람은 많지만 그 사랑 이상의 상처를 받는 분도 많이 보았다. 문제는 고도의 전문성이라고 생각하며, 이것은 박샘의 경우처럼 개인의 능력과 헌신, 학부모의 지원(경제력 포함)에 기댈 것이 아니라 국가적 지원이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박샘같은 전문가가 필요한데 박샘의 경우는 스스로 된 전문가이고, 이런 전문가를 양성할 교육과정은 있는지 모르겠다. 필요할 것 같다.

이 아이들의 어려움은 신체적 나이와 학년에 걸맞지 않은 정서적 연령이었다. 서너살에 불과한 자기절제력과 자기중심성을 갖고 있었다. 이들에게는 다양한 관계맺기가 필요한데, 최우선적으로 부모와 함께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 외 성숙한 어른의 조력이 필요하며 또래와 함께 놀거나 공부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세번째가 가장 어렵다. 같은 학령 친구들과 관계맺기에는 사회적 기술이 현저히 낮기 때문에 갈등과 불만이 생기지 않을 수 없고 그럴 때 감정의 폭발이 격하므로 주변이 초토화된다. 일반 학급에서의 고충이 이것이다. 많은 아이들에게 대안교육을 선택하라 종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교실상황에 대한 지원은 있어야 한다고 본다. 담임이 몸을 둘로 쪼개지 않는 이상 다른 아이들과 함께 감싸안을 수 없는 상황이 있기 때문이다.

박샘은 이 아이들의 다양한 일탈행동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을 세우시겠다고 하셨는데 그 설명들에 고개가 끄덕여졌다.(내가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음)
첫째는 생존 전략이라는 것이다. 자신들의 행동이 바르지 않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불구하고 그 행동을 선택하는 것은 그것이 본인에게 어떤 식으로든 가장 유리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둘째로 지배하려는 욕구의 거친 표현이다. 주도권에 대한 욕구, 갑의 욕구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이것은 사회의 정서가 그대로 스며든 결과이다.
박샘은 '신비스런 비법'은 없다고 하시며 걸림돌을 치우기 위한 '첫 삽'을 뜰 것을 제안하셨는데 이건 내게는 좀 모호하게 느껴졌다. 이것 역시 사회적 정서에 대한 말씀인 것 같은데, 토양 자체를 바꾸는 대단히 거시적인 방법이라고 이해하면 될까?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을 볼 때 설득력있는 진단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진단하에 박샘은 경험의 반복과 다양성을 중시하며 건강한 일상의 루틴과 다양한 신체활동, 예술활동을 아이들에게 제공하고자 애썼다. 동물과의 교감이 도움이 되다는 얘길 들은거 같은데 역시 승마 프로그램도 나왔다.(그러니 어느정도 경제력은 받쳐줘야 할거 같다. 일반적으로 가능한 사회는 아직 갈길이 멀고...ㅠ)

마지막 '공립학교로 복귀하는 아이들에게' 쓰신 편지에 감동받았다. 아직 당위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비유를 통해 친절히, 그리고 간곡히 하신 말씀이 마음에 와 닿는다.
"너희들이 어떤 이유로든 잘못 공부하여 남의 불편을 놀리면서 속 시원하게 여기고 자기 불편만 해결해 달라고 아우성을 치면 정작 자기가 필요한 서비스와 물건을 가질 수 없게 된다. 네가 주려고 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너에게 주지 않는다. 네가 주려고 마음을 쓰면 네 주변의 사람들은 네 불편을 살피고 불편을 줄여주려고 애쓸 것이다. 이런 이치는 사람이 살아온 수백만 년 동안 이어져 온 전통이다. 이런 전통이 아니었다면 자연계에서 가장 힘이 약한 사람은 벌써 멸종됐을 것이야." (이 앞에도 구렁이 허물, 펠리컨 등의 비유들이 내겐 인상적이었음) 이런 조언을 하신다는 것 자체가 아이들이 꽤 성장했다는 증거가 된다. 물론 그 과정은 힘들고 물심양면 많은 투자가 필요했다. 병원으로 치면 '집중치료실' 과정이었다. 박샘의 "괜찮아" 라는 말씀은 "별 거 아냐, 쉬워" 라는 말씀이 아니라는 걸 책을 읽으며 절절히 느꼈다. 그건 "가능해"라는 말씀이고, 그러나 그 노력은 쉽진 않다는 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다.

이 책은 대안학교 학부모들에게 보낸 주말 리포트를 모은 것이라 편지형식의 매우 쉬운 문체로 되어 있다. 하지만 여기에 담긴 내공은 대단하다 느꼈다. 여러가지 질문이 떠오르는 것은 좋은 책이라는 증거일 것이다. 이 아이들과 비슷한 아이를 만나게 된다면 다시 이책을 뒤적이고 있을 것 같다. 저자와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페이스북으로 연결되어 있으니 질문하면 답을 주시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 무덤에 사는 생쥐
원유순 지음, 윤태규 그림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3년 전엔가 '책읽기를 설득하는 세 권의 책들'이라는 페이퍼를 썼었는데 거기 추가할 한 권을 더 발견했다. 원유순 작가님의 책이다.

현대인들은 책을 잘 읽지 않는다고 한다. 특히 우리나라 성인들의 독서량은 우려할 수준이라고. 난 그리 체감은 못하고 있다. 나부터 비록 애들책이긴 하지만 늘 책 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주변에 책벌레들이 많으며 페북 속에서 페친샘들은 엄청난 학구열로 책을 읽어대시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그렇다고 한다. 1년에 1권 읽을까말까 하는 이들도 많으며 지하철에서 책 읽는 사람 찾아보기 힘들다고....(사실 나도 지하철에선 폰을 봄ㅎ)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자녀들)에 대한 독서교육의 열기는 뜨겁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책 좀 읽으라 잔소리를 하고 학교에선 한권이라도 더 읽힐 방법을 고심한다. 이 책에서 설정한 '책무덤' 이라는 배경이 가까운 미래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진 않는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아이들이 이 책을 읽으며 "책이 무덤에 파묻힌 세상이라니!" "사람대신 책을 누리는 생쥐들이라니!" 라며 재미있게 읽으면 그만이다. 그리고나서 책읽기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 아니, 책이 꼭 있어야겠구나 라고 느끼고 좀 더 흥미를 갖게 된다면 충분할 것이다.

엄마생쥐와 삼형제는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나섰다. 먹을 것이 없어서였다. 사람들은 이제 더이상 맛있는 음식을 해먹지 않고 알약 하나로 대신한다. 너무나 바쁜 세상이 되었기에. 먹을 것이 있는 곳을 찾아 헤매던 생쥐 가족은 낡고 우람한 건물 앞에 도착한다. 그곳은 '책무덤'이었다. 생쥐가족이 지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곳에서 가족은 막내 끄덕이의 변화에 주목하게 된다. 유순하고 소심하던 끄덕이가 적극적으로 변하고 특히 문제해결능력이 탁월해진 것이다. 그 이유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근데 여기에서 책을 '먹었다'는 설정이 좀 그렇다. '읽었다'고 하면 안되나? <생쥐기사 데스페로>에서 데스페로가 책을 읽는 모습은 숭고하도록 아름다웠는데.... 물론 '먹었다'는 표현은 그만큼 꼭꼭 씹어 정독했다는 비유로 읽힐수도 있지만 여기선 딱히 그런 느낌으로 다가오진 않아서 말이다. 내게는 좀 아쉬운 대목이었다. 동화인데 생쥐가 책을 못읽을 건 뭔가? 쥐라고 꼭 먹으라는 법 있나?^^;;;

생쥐들 세상은 점점 풍성하고 살기 좋아졌다. 결국 인간들까지 생쥐마을을 찾게 되었다. 마지막에 생쥐들은 그들의 지식을 후손들에게 꼭꼭 전달해 주었으며 새 책은 일부러 만들지 않았다고 마무리되었다. 아뿔싸!! 난 이게 작가님의 결정적인 실수가 아닐까 생각한다.(나도 내 안목을 믿지 못하니 그냥 나만의 생각일 뿐) 책을 권하는 책에서 다시 책이 단절되는 세상을 그리면 어떻게 되는거지? 구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생겨난 것이 책 아니던가? 이 부분이 가장 아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올해 2학년 우리반 아이들에게 한 번 읽어주고 싶다. 이러니저러니 따지는 건 구닥다리 독자의 나쁜 습관이고, 새로운 독자들은 즐겁게 들을 것 같다. 전에 페이퍼에 적었던 책들과 함께 적절히 배분해서 읽고 나눠볼 생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숨은 신발 찾기 - 제19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 반달문고 37
은영 지음, 이지은 그림 / 문학동네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아이들과 교실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아이들의 조용한 아픔에 주목한 적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일단은 잘 드러나지 않고 겉보기에는 큰 문제가 없으니까. 드러난 문제만 처리하기에도 교실이란 곳은 너무나 별 일이 많이 일어나는 정신없는 곳이니까. 가르칠 것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으며 교사의 첫째 역할은 수업이지 심리치료는 아니니까. 내게 그런 전문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요즘 들어 자꾸만 아이들의 아픔에 눈이 간다. 이것을 모른 척 하고서 학급을 운영하기에는 아이들의 아픔이 심상치 않다. 하지만 위에서도 말했듯이 나는 이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고, 그저 내가 할 일은 알아주기, 인정해주기, 가끔 기회를 잘 잡아서 격려해주기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을 읽고 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픔을 안고서도 드러내지 못하고 나를 스쳐간 수많은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그 아이들에게 손 한번 잡아주었었기를, 무심코 웃으며 안아주었던 일이 한번이라도 마음에 위로가 되었었기를 바랄 뿐이다.

 

이 책에는 다섯 편의 단편이 담겼다. 얇은 두께 안에 다섯 편이니 각편의 길이는 짧은 편인데, 뭔가 깔끔한 짧음이라고 할까, 군더더기가 없다는 느낌이다. 그러면서 외롭고 슬픈 아이들의 심리가 아주 잘 담겼다. 상징적으로.... 그래서 길이가 짧은 것 같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으니. 그래서인가. 더 서늘하게 마음속으로 훅 들어온다.

 

파란 목도리 여우의 란이는 천둥치는 긴 밤을 해진 파란목도리여우인형을 끌어안고 떨며 보낸다. 수업이 끝나자 선생님은 란이야, 오늘은 어머니 오시지?”하고 묻는다. 란이는 같은 반 친구 지수랑 싸우다 얼굴에 손톱자국을 내고 말았던 것이다. 그래서 양쪽 부모님이 오시기로 한 듯. 하지만 란이는 엄마가 없다고 말하지 못한다. 그런데! 누군가 란이 엄마라며 교실로 들어선다. ‘파란 목도리를 한 예쁜 아줌마가. 이어서 우락부락한 지수 아빠도 들어온다. 손톱자국을 냈으니 어쩔 거냐며 으르렁대는 지수 아빠를 파란목도리 엄마는 여유있게 받아친다. 그리고 어젯밤 지수 부모가 혼자 있던 란이 집에 들이닥쳐 가한 폭행을 까발린다. 지수 아빠는 당황해서 꼬리를 내리고 허둥지둥 나가버린다. 통쾌한 결말.

 

그런데 참 슬프다. 이 통쾌한 결말이 아이의 환상이라는 사실이. 누가 이 아이의 파란목도리 여우가 되어 줄 것인가. 편들어줄 엄마도 없이 대부분 혼자 있어야 하는 아이가 친구 부모에게 당한 잡도리는 얼마나 서러웠을까. 몰지각한 어른들은 많고 그 어른들은 상처를 주는데, 따뜻이 감싸줄 어른은 많지 않고 내 마음을 알리기는 어렵다. 이 이야기가 단지 환상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기를 바란다. 내 아이 남의 아이 가리지 말고 필요시 파란 목도리 여우가 되어줄 수 있는 어른이 이 사회에 많다면. 이것이 너무 큰 꿈이 아니라면!

 

동그라미 그리기의 비밀은 섬뜩하다. 마치 옛이야기의 화소와 같은 소원 들어주기, 대신 조건이 있어로 시작된다. 생일잔치를 하고 싶어 엄마를 조르는 시아에게 외눈박이 까마귀는 화려한 생일잔치를 열어주는 대신 딱 한 명의 친구들 초대하지 말라는 제안을 한다. 다미를 제외하고 모든 친구가 모여 화려한 생일파티를 한 후, 아이들은 까마귀가 가르쳐 준 동그라미 그리기 놀이에 빠져들었다. 손에 손을 잡고 동그라미를 그리며 노는 놀이, 단 다미는 절대 끼워 주지 않고....

 

그 놀이는 마치 수렁과도 같았다. 아이들은 더 이상 즐겁지 않았으나 멈출 수가 없었다. 시아는 다미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까마귀가 가만두지 않았다. 결국 손을 내민 것은 다미였다. 까마귀가 되어 하늘로 오르던 아이들은 그 손에 의지해 겨우 땅에 발을 붙였다. 그리고.... 다음날은 우리가 아는 그 시끄럽고 평범한 아이들의 일상이 펼쳐진다.

 

그렇다. 따돌림은 어떤 경우에 하나는 빼야 돼. 그래야 더 재미있지 않겠니?”라는 까마귀의 속삭임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아이들도 모든 아이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는 힘들다. 따라서 결속하기도 하고 소원해지기도 하는 것이 정상적인 관계이지만 누군가를 표적으로 삼는 것은 까마귀의 속삭임이다. 다른 작품들은 어른들을 부끄럽게 하지만 이 작품은 아이들의 비틀린 마음을 직접 지적한다. 그래서 이 작품을 함께 읽으며 아이들의 반응을 보는 것이 어쩌면 두려운 일일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 상황이 되기 전에 아이들의 관계를 잘 살펴야 한다는 사실이 무겁게 다가온다.

 

표제작인 숨은 신발 찾기에서는 미처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태이가 갑작스러운 부모의 이혼을 겪으며 갈 바 모르는 자신의 마음에 당황하는 이야기다. 그 마음은 신발이 되어 제멋대로 돌아다니고, 아이는 그 신발을 찾아 헤맨다. 헤매다 만난 교감선생님도 똑같은 아픔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하지만 상관없어. 날 위로해 줄 필요는 없단다. 난 이미 다 컸으니까.” 하는 말씀에 살짝 비친 눈물이 보인다. 그렇게 모두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상처를 안고, 갈 바 모르는 마음을 찾아 헤매다 붙들다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겠나. 상처 없는 마음이 어디 있으랴. 그 마음끼리 서로 손잡는 것이 필요할 뿐.

 

헤매다가도 하교시간이 되면 딱 제자리를 찾아 돌아오던 신발이 어느 날은 나타나지 않았고, 태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 차로 돌아가는 길에 아빠에게 온 전화,

태이 별 일 없는 거지? 애는 온데간데없고, 신발만 덩그러니 현관에 놓여 있잖아. 흙투성이가 된 채로!”

태이 신발이라고?”

그럼, 내가 아들 신발도 모를 거 같아?”

그 때 마음은 눈물을 그쳤고, 울음은 좀 시간이 걸려 잦아들었다. 아이는 이렇게, 아픔을 치유해갈 것이다. 신발도 점점 제자리를 찾겠지.

 

시간을 묻는 아이의 마리는 새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 아이 마음의 두려움은 강박적으로 시간을 묻는 행동과 수다스러운 말투에서 드러난다. 새엄마는 좋은 사람인 듯한데, 고정된 새엄마의 이미지(아이는 신데렐라나 백설공주 책을 자주 언급한다), 낳아준 엄마도 아닌데 어떻게 닮느냐는 친구의 말, 둘이만 다정한 아빠와 새엄마의 모습.... 이런 것들이 아이의 불안을 부채질한다. 아이가 마음을 털어놓는 상대는 공원 연못의 거북이다. 거북이는 어느날 할머니의 모습으로 아이의 수다를 다 들어주고 괜찮니?”라고 물어봐준다. 새엄마가 찾으러 와 둘이 손잡고 다정하게 가는 모습을 뒤에서 지켜본다. 거북이. 가장 큰 어른의 모습이다.

 

이상하고 괴상하고 발칙한 것은 다름아닌 뿔이었다. 솔이가 마마보이라는 친구의 말에 화나서 엄마의 말에 반대로 행동하기 시작한 날부터 머리에 뿔이 돋았다. 엄마나 교장선생님은 그걸 당장 뽑아야 한다며 펜치를 들고 달려든다. 솔이는 뿔을 엉덩이로 옮겨 붙였다. 그러자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는 솔이는 더 대단한 사고들을 치게 됐다. 솔이를 복도로 내쫓은 선생님이 잠시 후 나오셔서 하신 말씀에 나는 부끄러워졌다. “언제 이렇게 컸냐? 오솔! 뿔도 다 나고....”

 

나는 뿔 달린 아이들이 싫다. 그래, 그건 어쩌면 나는 아이들이 크는 게 싫다는 말일수도 있겠구나. 이 선생님처럼 단호하게 행동은 제지하되 뿔 자체는 인정해주는 어른이 되어야 하겠구나. 솔이를 마마보이라고 놀리던 구태가 놀라서 한 말, “세상에.... 내 거보다 크다니!” 이 마지막 문장은 무슨 오래된 유머 같기도 하고 웃음이 터진다. 아 그래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뿔이 없는(없었던) 사람 있냐고!! 이 작품으로 아이들과 솔직한 나눔이 가능할 것 같다. ‘나의 뿔 이야기.... 교사의 뿔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이 벽을 허무는데 가장 효과적일 듯. 서로의 뿔을 이해하고, 그걸 존중하여 되도록 건드리지 말고, 그렇다고 뿔 있다고 아무데나 들이받지는 않게 잘 조절하고, 혹시라도 뿔사고가 났을 때는 함께 의견을 모아 잘 해결하고.... 이런 교실을 만들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내가 올해 5학년을 맡았다면 온작품읽기로 이 책을 선정할까 고민해 보겠다. 4학년도 괜찮은데 상징을 이해하기에 조금 이른 것도 같고. 6학년이 읽기엔 조금 얇은 것도 같고. 어쨌든 넓게 잡아 4~6학년 교실에서 읽기에 추천하고픈 책이다.

 

이런 책을 읽고 나면 어른들은 몹시 불안하다. 상처받고 숨어있는 아이를 어떻게 알아볼까? 어떻게 치유해줄까? 내게 그런 능력이 있을까? 그러나 그런 걱정을 크게 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아이들에게는 어느 정도 자가 치유의 능력이 있다. 이 책은 그 과정에 함께 할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의 마음결을 깊이 들여다 본 작가의 시선에 감사하며, 이런 책을 함께 읽는 교사가 되는 것도 하나의 노력이라 위안을 해 본다. 그러다 필요한 한 마디, 웃음, 박수, 포옹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면 좋겠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