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안 하기 게임 일공일삼 65
앤드루 클레먼츠 지음, 이원경 옮김 / 비룡소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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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쓰신 앤드류 클레먼츠 님께 충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내게 신이 주신 이야기 주머니가 있다면 이런 멋있는 글을 쓰고 싶다. <프린들 주세요>도 대단했는데 이 책도 못지않게 짜릿하다. 이 작가의 책으로 가장 먼저 읽은 책은 <성적표>라는 책이었다. 다음으로는 10년 전에 읽었던 <잘난 척쟁이 경시대회>. ㄱㅈㅌ 교육감이 취임 일성으로 "미안하지만, 초등학생들도 경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라는 말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내뱉었던 즈음이었다. 그 책을 읽고 "미안하다고? 미안한 짓을 왜 해!!" 하면서 분노의 서평을 썼던 기억이 난다. (그해, 일제고사 거부를 허용한 담임들이 교사로서의 사형선고를 받고 길거리로 내몰린 사건도 있었다. 서울시 교육청 앞에서 촛불을 들며 mb정권의 먹구름을 온몸으로 느꼈던 그해.ㅠ)

이와같이 앤드류 클레먼츠는 작품마다 참 멋있다. 그리고 교육의 본질을 꿰뚫는다. 어려운 교육학 책을 읽기에 독서력이 딸린다면 그냥 이분의 동화를 읽자!! (나만 해당되나 ㅎㅎ)

레이크턴 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은 역대 유례없는 수다쟁이에 고래고래들이었다. 그리고 이또래의 특징대로 남녀 대결의 성향도 강했다. (이부분 우리반 아이들이 매우 공감할거라 예상한다. 평소 경기에서 승부욕이 강하지 않던 우리반 아이들이 남녀로 대결할 때 눈이 뒤집히도록 광분하는 걸 보고 정말 깜짝 놀란 적 있다ㅋ) 이들은 서로를 수다쟁이라 비난하다가 시합을 벌이게 된다. 바로 말 안하기 게임!

이 책은 이 게임이 진행되는 열흘간의 과정을 담고 있다. 아이들은 나름대로 '게임의 규칙'을 수립했고 그중엔 "어른들께는 어쩔수 없이 대답하되 3단어 이내로 한다."와 같은 규정도 있다. 처음엔 아이들이 힘들어했지만 이내 익숙해졌고 조금 지나자 선생님들이 당황하기 시작한다. 수업진행에 어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것 때문에 선생님들 회의가 소집되었는데 선생님들마다 반응이 다양한 것도 재미있었다. 이 상황에 분노하는 선생님, 즐기는 선생님, 이 현상을 연구하려 부지런히 기록하는 선생님.... 그냥 두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교장선생님은 아이들을 모아놓고 게임을 중단하라 명한다. 이후 자신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중단하지 않는 모습을 본 교장선생님은 순간 이성을 잃고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이고 마는데.... 이부분에서 나도 뜨끔했다. 절대 보여서는 안되는 모습이다. 다행히 교장선생님은 바로 잘못을 시인하고 바로잡는 모습을 보여준다. 교사도 실수할 수 있는데 빨리 인정하는 것이 그나마 스타일을 덜 구기는 방법이다.;;;;

이 책에서 내가 주목하고 싶은 지점은 '언어의 정선' 이다. 아이들은 수업중 세 낱말로 말해야 했기에 적절한 낱말을 찾기 위해 고도의 두뇌활동을 해야 했으며 평상시에 얼마나 필요이상의 말들을 해왔는지를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의사소통에는 그리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으며 언어의 쓰레기를 버리고 말을 줄여야 할 필요가 인간 대부분에게 있다. (말하기를 그리 즐기지 않는 나도 가만보면 쓸데없는 소리를 퍽 많이 한다ㅠ) 유난히 시끄럽고 말이 많은 학급을 맡을 때가 있는데, 가만히 듣고 있자면 모두가 '남 얘기'다. 그것도 아님 말고 식의 근거 없는. 그로 인한 생활지도의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본성대로 떠드는 것에 그리 동의하지 않는다. 언어의 절제는 필요하다고 본다. 어른이 가장 그렇고, 고학년 정도라면 절제를 시작할 때라고 본다. 저학년도 조금은 필요하고. 이 게임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던 이 말은 일리가 있다.
"간디는 수년간 매주에 하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 마음에 질서가 생긴다고 믿었다."
이 말을 액면 그대로 적용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고, '마음의 질서'라는 말에 주목하고 싶다. 아이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것은 옳지 않지만 조용한 순간은 있어야 한다. 시종일관 시장바닥이라면 아이들은 차분히 생각할 힘을 잃게 된다. 서로 헐뜯기 여념이 없었던 초기의 아이들이 시장바닥 상태였다면, 서로를 인정하고 배려하며 박수를 보내는 후기의 모습은 조용한 성찰을 거친 상태다. 게임을 통해 이렇게 멋진 변화를 재미있게 보여주는 작가의 능력에 감탄할 뿐이다. 이 설득은 전혀 꼰대적이지도 설교적이지도 않으며 반전과 유머를 통해서 전해지기에 더욱 빛을 발한다.

한편으로 내가 이 책에 환호를 보내는 것이 시끄러운 것을 혐오하는 나의 개인적 성향과 규칙과 질서를 중시해야 하는 교사라는 직업적 신분 때문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기는 한다. 아이들도 나만큼 공감할까? 이제 다음주부터 우리반 아이들이 돌려읽을 책에 이 책이 포함되어 있으니 한번 반응을 살펴봐야지. 내가 한 생각을 아이들이 할 가능성은 적지만, 적어도 재밌게는 읽으리라 생각한다. 교사인 내가 환호한다고 해서 설교책인 것은 아니고,ㅎ 흥미진진한 요소가 가득 있으니. 나와 같은 각도에서 공감하진 않더라도 그들 나름대로 공감하며 읽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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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베트남
심진규 지음 / 양철북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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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고 싶었다. 왜 그랬냐고. 전쟁의 광기가 눈을 멀게 했던 것일까. 그들도 자상한 어머니가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아들이었거나, 꼬물꼬물 귀여운 아기의 아버지였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전장도 아닌 마을에서 어머니 같은 노인들을, 자식 같은 아이들을 그렇게 무참히 학살할 수 있었을까.

이 책을 읽으니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 전우는 죽어가고, 나 또한 언제 죽을지 모르고 적들(베트콩)은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작전과 명령에 의한 일이었다는 것을. (물론 그 작전과 명령 자체에 문제가 있고, 필요 이상의 잔인함을 발휘한 개인도 있었으리라 짐작되지만) 병사 개인으로서 어찌할 수는 없는 일일 수도 있었겠다는 것을. 하지만 그것으로 합리화할 수 없는 고통이 그곳에 있었으며 아직도 남아 있다.

"무서워서 그랬어. 언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니 무서웠어. 그래서 닥치는 대로 총을 쐈어. 죽을까 봐 무서웠고, 내가 사람에게 총을 쐈다는게 무서웠어."
할아버지는 손자 도현이에게 이렇게 고백했다. 이책은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할아버지가 평생을 미루어왔던 사죄를 하러 손자를 데리고 베트남으로 떠나는 이야기다.

도현이가 그 과거의 사실을 알게 되는 과정이 등장인물들의 회상일거라 짐작했는데 뜻밖에도 판타지였다. 주인공을 현장에 갖다 놓는 방법이기 때문에 또래의 독자가 현장을 이해하고 느끼기에는 가장 좋은 서사 방법일 것이다. 그런데 어른인 나는 왠지 그 판타지 안으로 쉽게 들어가지지 않아서 약간 애를 먹었다. 공항 활주로에서, 쌀국수집에서 도현이 눈에만 띄는 티엔의 환영은 판타지로 이끄는 복선일 텐데도 왠지 뜬금없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어색함이 내게는 약간 옥의 티로 작용해서 몰입을 방해하긴 했지만, 전체 내용에 작용할 정도는 아니었다. 일단 이렇게 들추기 두려운 역사를 정면으로 다룬 첫 동화라는 점에서 큰 획을 그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도현이가 판타지의 문을 열고 들어간 곳은 50년 전 과거의 현장이었다.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곳. 거기에서 만난 젊은시절의 할아버지는 다행히 좋은 분이었다. 전쟁고아가 된 티엔을 최대한 보살펴주려 애썼다. 하지만 그 또한 한국군의 만행에서 자유로울 순 없었고 티엔을 끝까지 책임져 줄 수도 없었다. 평생 그 마음의 짐을 혼자서만 지고 살아왔던 할아버지는 이번 여행에서 티엔을 찾으려 한다. 한국군이던 자신을 삼촌이라 따르던 아이, 하지만 한국군에 의해 모든 것을 잃게 된 아이....

우여곡절끝에 만난 티엔은 할아버지와 다름없어보일 정도로 늙은 모습이었다. 그는 호아쓰(peace)꽃을 가꾸며 살고 있었다. 추모비(한국군에 대한 증오비) 주변에 평화를 상징하는 꽃을 심고 가꾸며 한국이 진정한 사과를 하리라 믿어왔다고 한다. 여행에서 돌아온 할아버지는 이들에게 용서를 빌 방법을 찾아 애쓴다.

우리도 전쟁의 피해를 많이 겪은 나라다.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 의해 희생된 이들의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못하고 남아있다. 이분들이 온전한 사과를 받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더불어 우리가 누군가에게는 가혹한 가해자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부끄러워할 줄도 알아야 할 것이다. 몇 년 전 마포구에 있는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을 방문한 적 있는데 관람 동선 마지막에 베트남 여성 피해자들에 대한 실상과 사죄의 내용도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이 책과 같은 생각에서 그런 전시 구성을 한 것이 아닐까. 마땅한 생각이라고 여겨진다. 좀 더 많은 이들이 그런 인식을 공유해야 될 것 같다.

가장 중요한 것은 평화를 지키고 전쟁을 막는 것이다. 인간의 악마성이 가장 극명하게 발휘되는 곳이 전쟁터일 것이다. 내가 사는 이 땅에, 그리고 지구상에 전쟁의 불씨를 없애는 일이라면 인간으로서 힘을 다해 동참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과거의 가해를 전쟁이어서 라는 이유로 얼버무려서도 안 될 것이다. 그 태도는 이 책의 할아버지가 잘 보여주시고 있다. 평상시에 손자보다도 철부지 같았던 할아버지였기에 더 실감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책을 읽어보시기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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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신부 문지아이들 154
김태호 지음, 정현진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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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무심코 지나치거나, 혹은 거리끼는 생명들의 소중함을 일깨우며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고 하면 "그럼 바퀴벌레도 소중하냐?", "파리도 소중하냐?" 이런 반박이 나오곤 하는데, 진짜 그런 얘기가 나왔다. 아하하하하하.... 풀벌레가 아닌 집곤충들을 극혐하는 나로서는 솔직히 동의하긴 어렵다. 근데 이야기는 작가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재밌다. 어쩜 이렇게 능청스럽게 진지하며, 심각한듯 우스울 수가!!^^

야무지고 사려깊은 파리신부와 인내심이 부족하고 뭔가 얼뗘 보이는 파리신랑은 함께 비행중이다. 먹이를 찾지 못해 고생을 겪던 중 천국과도 같은 곳에 당도했다.
"신이시여, 힘없고 불쌍한 우릴 도와주세요." 라고 기도하자마자 발견한 그곳은 사람의 집이었다. 그중에서도 한 남자아이의 방. 거기엔 이미 많은 파리들이 아무 걱정없이 기거하고 있었으며 남자아이를 '신'이라고 불렀다. 그 신의 캐릭터인즉, 간식을 아무데서나 먹고, 잘 흘리고, 아무데나 버리며, 치우지 않고, 잘 씻지도 않는다. 그곳에서 파리들은 서로 경쟁할 필요도 없이 느긋하게 만찬을 즐겼다. 그 만찬의 묘사가 정말이지 리얼하다. 우엑~~~~

그러나 그곳에 다리가 여섯개밖에 안남은 늙은 거미가 함께 살고 있었으니.... 그 거미는 이런 수수께끼 같은 노래를 불러주었다.
"빨간 나무는 시작이고
거꾸로 비는 끝이다.
거꾸로 비가 내리면
바람이 부는 곳으로 가라."

그것은 일종의 재앙 예언 같은 것이었지만 누구도 미리 그 뜻을 알지 못했다. (내가 아무리 스포에 개의치 않고 리뷰를 쓴다지만 이런 것까지 말하진 말자^^;;) 동료들을 잃고 겨우 살아남은 파리신부는 그 '신'에게 할 수 있는 대로 복수를 하고 그곳을 떠나려 한다. '신'은 울며 겨자먹기로 어쩔 수 없이 방을 치우기 시작하고.... 그러나 그곳을 떠나는 파리부부에게 더욱 화려한 천국이 펼쳐지는데 그곳은.....ㅋㅋㅋ

이 책을 읽으며 "작은 생명을 사랑하자"의 효과가 클까? "으헉, 방 좀 치우자." 의 효과가 클까? 작가의 의도와는 달리 난 후자라고 생각한다. 왜냐고? 내가 바로 그렇기 때문이다. 파리의 사랑을 받는 건 사양하겠어. 뽀뽀도 물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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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렙이 알렙에게 환상책방 9
최영희 지음, PJ.KIM 그림 / 해와나무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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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는 내 취향이 아닌가보다. 200쪽도 안되는 책을 읽는데 한참 걸렸다. (피곤해서 그런 탓도 있음) SF를 많이 안읽어봐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새롭고도 상당히 잘 짜여진 작품인 것 같다. 지구의 멸망, 새로 정착한 세계, 그 세계의 모순과 음모, 해결 등 장대한 이야기가 그리 두껍지 않은 분량 속에 잘 들어있고 작가의 메세지도 묵직하다.

여름방학 때 최영희 님의 <인간만 골라골라풀>을 읽고 오호~ 했더니 여러 분들이 우리나라 SF계의 주목받는 작가라고 추천해 주셔서 마침 신간이 나왔길래 읽어보았다. 모든 작품이 고뇌의 결과물로 나오겠지만 특히 SF는 과학적 지식도 갖추어야 하고 상상력도 뛰어나야 하며 허무맹랑하되 허무맹랑해선 안되는, 조건이 까다로운 장르라서 쓰기가 매우 어려울 것으로 짐작된다.^^ '작가의 말' 맨 끝에 고인이 된 스승님께 "치열하게 고민하고 성장하는 과학소설가가 될 테니 지켜봐 주세요." 라고 하신 걸 보니 앞으로도 작품이 계속 나오겠다. 일단 이번 작품에서 작가가 설정한 미래는 이렇다.

1. 지구멸망은 핵무기 : 지구는 핵무기로 인해 멸망했다. 생태계가 끝장났고 살아남은 사람들도 생존할 가능성이 없어 지구를 탈출했다.

2. 다음 세계의 지배자는 인공지능 : 생존자들은 테라 행성에서 마마돔을 짓고 그 안에서 최대한 환경을 조절하며 살아간다. 그들의 지배자는 마마. 그는 인공지능이다.

3. 그들이 대를 잇는 방식은 인간복제 : 마마돔은 정확히 200명의 인구로 유지되며 100세를 채우면 그의 유전자를 배양한 새로운 인간으로 교체된다. 사고 등으로 일찍 사망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인공지능 마마는 이 세계를 존속할 모든 정보와 기술을 지닌 존재다. 그는 마마돔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고 있다. 그러나 주민들은 그가 주는 정보 외엔 알 수 없다. 마마돔의 바깥 세계에 대하여 다른 사실을 눈치챈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사고를 위장한 죽음에 이르고, 그 사실을 알게된 주인공들은 피할 수 없는 길을 떠난다.

주인공 소녀 이름 알렙이나 마마돔 밖의 생명체 이름 룩스 등의 작명에도 작가의 심사숙고가 느껴진다. 책 전체에 작가가 담고자 한 많은 의미가 들어있다. 두껍지 않은 책인데도 내용이 허술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인 것 같다.

"알렙과 알렙이 만나면 빛이 비치리라.
그날이 오면 세상은 지혜를 되찾으리라."
수수께끼 같은 약속의 노래는 어떻게 이루어질까? 그 속에 작가는 지구를 지킬 지혜를 담아놓기도 했다.

이 책은 절대악에 맞서 악을 무찌르고 정의를 지키는 영웅적 이야기는 아니다. 극적인 대결은 없지만 뭔가 희망적인 가능성을 보여주며 이야기는 끝난다. 지금의 지구에도 이만큼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인가? 작가의 다음 책도 꼭 읽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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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김소연진아일 동안 황선미 선생님이 들려주는 관계 이야기
황선미 지음, 박진아 그림, 이보연 상담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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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한 문장 한 문장 차분히 꼼꼼히 세심하게 읽을 수가 없었다. 난 정신없이 책장을 넘겼다. 어떻게 되었는지 빨리 알아야 해서. 그렇게 읽고 났더니 다시 꼼꼼히 읽을 기운이 없다. 그래서 미처 알아보지 못하고 넘어간 부분이 많을 것임을 인정한다.

이제 세계에 널리 알려진 작가가 된 황선미 님은 작명 센스도 남다르신 것 같다. '내가 김소연진아일 동안'. 화자는 진아다. 이진아. 그리고 그 반엔 주변의 도움이 필요한 느린 친구 김소연이 있었다. 보다못한 선생님은 그 반의 야무지고 딱부러진 이하나에게 도우미를 부탁하셨다. 하지만 하나는 그 성격대로 딱부러지게 거절한다. 그 역할은 말없고 소심한 진아에게로 온다. "역시 이진아, 착해. 잘할 거라고 믿어." 이렇게 상황은 이진아를 '김소연진아'로 몰고 갔다.

진아의 수락과 함께 선생님은 어쩌면 한시름 놓았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끝이 아니다. 선생님의 시름이 진아의 시름으로 옮겨갔을 뿐인 것. 아니나다를까 진아는 생각보다 훨씬 더 무거운 임무에 힘겨워졌고, 표현하지 못하는 성격 탓에 스트레스는 터질 듯이 쌓여 갔다. 이젠 나 이진아가 아닌 '김소연진아'로 몰아붙여진 현실, 진아에게만 떠밀어놓고 모두다 나몰라하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현실에 억울함과 분노, 슬픔이 솟구쳐 어쩔 줄을 모르는 진아. 친구들의 태도는 어이가 없을 뿐이고 좋아했던 선생님의 태도는 원망스럽고, 내 감정을 쏟아놓았던 비밀일기장을 훔쳐본 새엄마에 대한 분노는 끓어오른다. 결정적으로, 이제 한몸이자 짐짝이 된 소연이에 대한 짜증은 소연이를 붙잡은 손에 힘을 가하기 시작했다. 아 그러면 안되는데.... 하지만 내 마음은 또 이해를 할 수밖에 없어 가슴이 아프다.

이 잘못된 구조를 짠 결정적인 책임은 선생님에게 있다. 그런데 이 선생님이 특별히 나쁜 사람은 아닌 평범한 교사로 보인다는 점이 나를 두렵게 했다. 선생님은 빠지기 쉬운 함정에 빠졌다. 하지만 그러면 안되는 거였다. 마음을 놓고 싶었겠지만 그래서는 안되었다. 늘 깨어 관찰해야 했지만 한동안 그 시기를 놓쳤다.

지난 여름 나는 일본 군마대학교 특수교육과의 임용재 교수님을 모시고 말씀을 듣는 공부모임에 나가봤었다. 그분 자신이 양팔이 없는 장애인이었다. 여러 말씀 중에 이제 특수교육과 일반교육의 경계는 의미없어질 것이라는 말씀, 학급 아이들에게 장애 친구를 다양성 중의 하나로 인식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 또 장애아동을 도울 때 이렇게 한 명에게 전담시키는 방법은 삼가야 한다는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그런 실수가 가끔 현장에서 벌어지곤 한다. 친한 선배님이 얘기해 주셨던 이전 학교에서의 가슴아픈 사연이 있다. 수학여행 중 숙소에서 장애아동에 대한 집단 괴롭힘 사건이 있어 학폭이 벌어졌다. 놀랍게도 가해학생 중의 주동자는 그 장애아동의 도우미를 오랫동안 해 온 아이였다. 선배님은 선생들이 어떻게 그랬는지 모르겠다며 탄식을 하셨다. 물론 하기 싫다는데 억지로 맡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이나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서 계속된 일일 수도 있고, 진아처럼 착한아이 컴플렉스가 작용된 것일수도 있다. 그래도 교사는 그것까지 살펴야 한다.

다행히도 진아의 상황은 폭발되기 직전에 진정될 수 있었다. 짖궂은 말썽쟁이 친구가 이럴 때는 한 몫을 했다.(그러니 교실 안의 다양성은 정말 소중한 것) 진아의 심상찮은 변화를 알아채고 공으로 얼굴을 가격당하는 수모를 겪고서도 진아에게 화내기보다 그 상황을 선생님께 알려준 정우가 참 고맙다.
그리고 새엄마....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지 않는 딸의 심상치 않은 상황을 눈치채고 일기까지 읽어보고(이게 객관적으론 좋은 일 아니지만) 선생님과 이성적인 상담을 하신 걸 보면 참 현명한 사람이다. 친딸이 아니라서 이성적일 수 있다고? 절대 그렇지 않다. 사람 나름일 뿐.
소연이 엄마는 좀 아쉽다. 엄마가 자식의 도우미를 이토록 알뜰히 이용하면 안된다. 최소한의 도움 외에는 사양하는 것이 맞다. 그리고 선물공세는 오히려 상대방을 모욕하는 일이 될 수 있다. 자기 마음 편하자고 하는 일이다.
선생님. 이 모든 사단의 책임자라 할 수 있어서 보는 내내 원망스러웠지만 나 또한 이분보다 나은 점이 없는지라 안타깝기만 했다. 그래도 상황파악 후의 대처는 잘하셨다.

이제 짓누르는 슬픔에서 벗어난 진아의 발걸음에 내 마음도 가벼워진다. 진아는 이제 학급에서 훨씬 더 당당한 존재로 자리매김할 것 같다. 선생님과의 관계도, 친구들과의 관계도 좀 더 건강해질 것 같고 특히 정우라는 녀석이 짖궂은 듯 든든한 응원군이 될 것 같다. 그리고 소연이.... 소연이와의 관계는 끝난 게 아니다. 그동안은 종속자였지만 이젠 친구가 될 것이다. 과학실 유리 파편 사건 때 진아에게 달려와 안아주었던 소연이를 생각하면.... 그래, 어떤 상황에서도 학급 아이들은 '친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친구가 언니가 된다거나 엄마가 되어야 한다면 당연히 관계는 이상해지지 않겠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동화를 읽고 하는 말 치고는 이상할 지 모르겠지만 인력의 문제다. 소연이를 도와 줄 사람이 선생님과 친구들 외에도 있어야 하는 거다. 왜 선생님이 나쁜 사람이 되고 진아가 친구를 이끄는 손에 힘이 들어가 친구 몸에 멍자국을 남겨야 했을까? 요즘 사회에서 벌어진 일들을 입에 올리자니 이야기는 한도끝도 없겠고, 정말 좋은 인력들을 현장에 주어야 한다. 선생님은 다른 아이들도 가르쳐야 할 의무가 있고 그들 또한 그림같이 앉아 있는 존재들이 아니며, 아이들은 때로 제 한 몸 추스르기도 힘든 존재들이다. 물론 이 안에도 돕는 관계가 형성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지나친 책임은 이와 같이 관계를 어그러뜨릴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문학+상담수업의 구성으로 되어있는데 내가 보기에는 사족같다. 문학만으로 충분하다. 설명과 해설과 설교가 필요하다면 그건 문학이 부족해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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